가나안으로 가라, 세계로 가라4 (창12:1-3)
본문
창세기 1:26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7은 인간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이 신분입니다. 그 인간에게 주신 것이 28절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이 말씀은 인간은 이와 같은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사명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어떤 신분이요, 어떤 사명을 가진 사람이냐를 깨닫는 것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분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계십니까 일생을 두고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입니까 깨달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에 어린 아이로 만들지 않고 성숙한 성인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어린 아이로 만드셨다면 우리는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래 인간을 만드실 때에 성인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막바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여야 합니다. 그러면 사명 자체가 무거운 짐이냐 아닙니다. 사명은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세상에서 남보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할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본인 스스로에게도 할일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무능해 보이고, 처량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닫는 것은 삶을 출발하기 전에 먼저 해야할 본분입니다.
1.피와 땅
창세기 1:28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바로 세 가지 내용을 주시고 명령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 두 개가 있는데 피와 땅입니다. 성경에서 피는 구원을 상징하고, 땅은 전도를 가리킵니다.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제가 볼 때는 피보다 땅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 창세기
1,2장에는 피가 없습니다. 그때는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피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땅은 창세기 1장부터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는 죄 때문에 나온 것이고, 그 이전의 본질은 땅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피가 아니고 땅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는 구원 개념이 필요 없었습니다. 범죄 이전에 인간에게 주어진 명령은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면서 피가 등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구원자 개념을 통과하여 그를 주인으로 모시는 생활로 가야 합니다. 구원자 개념은 그분을 주인 되게 하기 위한 통과의 과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구속과 생명 살리는 전도 중 어떤 것이 본질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구약의 땅은 신약의 전도입니다. 구속은 본질을 위한 과정이지 그 자체가 본질은 아닙니다. 인간이 지음 받았을 때 처음부터 하나님은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 사명을 마귀에게 속아 상실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회복할 수 있는 길로써 구속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해야할 일은 평생토록 전도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가 “나는 구원받았으니까 괜찮다” 하고 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본질인 전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땅을 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전 흐름이 땅을 차지하는 전쟁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어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하게 하셔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십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전쟁하는데 전부 땅 때문에 하는 전쟁입니다. 그게 뭡니까 이 땅의 나라를 위해 전쟁하는 것과 신약에 와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전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모형으로 상징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땅 이야기가 신약에 오면 무엇으로 바뀝니까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마지막으로 전부 하신 말씀은 모두 전도하라는 명령입니다. 마 24:14, 마 28:16-20, 막 16:15-20, 행 1:
8. 모두 전도에 관한 명령입니다. 구약에서 피보다는 땅이 본질이고, 피를 통해 구원받은 자가 본질인 땅을 차지해 나가야 하듯이 신약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삼고 전도에 자신의 생을 드려야 합니다.
2.구약에 나타난 땅
구약성경은 땅을 이해해야만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6절과 28절은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1:26은 인간 설계도입니다. 인간 설계도에 인간을 지으신 목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26에 보면은 “.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여기에 뭐가 빠졌습니까 땅을 정복하라가 빠졌습니다. 그러나 28절에 가면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두 요절 가운데 제일 중요한 핵심단어가 땅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는 것이 아담과 하와의 최대의 축복이요. 그러면 이 땅에 와서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는 인생이 가장 멋있는 인생입니다. 인생의 본질을 다하고 가는 것입니다.
노아가 홍수 이후에 역사는 새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노아에게 하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거기에 있는 것을 다스리는 것은 인생 최대 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땅 이야기가 나올 때 언제나 “복을 주시며” 이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명 이 자체가 깨닫고 보면 어마어마한 축복입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땅에 관한 말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역시 땅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 그러니까 아브라함보고 떠나라고 할 때에 벌써 뭘 주었습니까 어마어마한 비젼을 주었습니다. 그냥 아브라함보고 너 나가라 하면 아브라함이 나갔겠습니까 아브라함이 그런 돌머리가 아닙니다.
2“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 13:14-17)
아브라함과 롯이 선택할 때에 롯은 소돔 고모라의 평지를 선택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산지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그러면 만약에 아브라함이 저 밑의 평지를 내려갔더라면 아브라함에게 보이는 땅은 조그만 것밖에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산꼭대기에 올라갔으므로 아브라함의 눈에는 어마어마한 땅이 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약속합니까 “눈에 보이는 땅을 다 주겠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눈에 보이는 저 요단 저 소돔 고모라에 평지를 찾아가는 것이 낫습니까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낫습니까 눈에 보기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낫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낫습니다.
3“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걸어서 밟는 땅을 네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언약입니다. 전도자에게는 보이는 땅은 전부 내 것이고, 밟는 땅도 전부 내 것입니다.
리챠드 바크(Richard Bach)가 쓴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는 갈매기가 멀리 내다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비행기 타고 높이 올라가서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비행기를 안타면 평생 동네만 돌아다니다가 끝나고 맙니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야 됩니다. 그래야 보이는 땅을 하나님이 다 주실 것입니다. 구약에는 우리 하나님이 땅, 땅 하는데 이 땅이 무엇입니까 신약에서 이게 뭘 의미하는지를 깨달으면 구약의 비밀이 전부 우리 것이 됩니다.
4“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창 15:7)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밖으로 이끌어내 또 언약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가만히 검토해 보면 그가 자기 것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땅 약속을 다시 해주었습니다.
고향 떠날 때에 땅 약속해 주었고, 롯 떠날 때에 땅을 약속해 주었고, 엘리에셀 포기할 때에 땅 약속해 주었고, 이삭 포기할 때에 땅 약속해 주었습니다. 무얼 말하는 겁니까 하나님은 내 것을 포기하는 그 위에다가 이 어마어마한 땅의 약속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5“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창 17:1-3)
17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에 다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땅을 약속하십니다.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고난 다음에 99세까지 하나님이 13년 동안 침묵하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니까 “네 마음대로 한번 해봐라.” 그래서 하나님이 침묵하십니다. 13년을 침묵하셨습니다. 13년 동안 아브라함은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 그는 인생의 답답함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두손들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렸습니다. 순종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뒤에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4-8)
언제나 땅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땅을 이해 못하면 참 어렵습니다. 거꾸로 신약의 전도 이해 못하면 완전히 끝장입니다.
6창 22:16, 그 전에 무슨 일이 나옵니까 이삭을 바친 사건이 나옵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또 땅 이야기합니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18)
이제 아브라함이 마지막으로 다 바쳤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그에게 나타나셔서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성도가 개인적인 모든 욕심을 버리고 설 때마다 하나님은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십니다.
3.약속의 땅 가나안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땅을 지금 누가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땅은 공터가 아니고 가나안 백성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거기 공터라고 하면 거기를 개간하는데 수많은 세월이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사람들이 다 일구어 놓은 땅을 가서 차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땅을 가나안이 지금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이 어떤 땅인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가나안 땅은 셈의 후손에게 약속된 땅이었습니다.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창 9:26)
노아가 자식들을 놓고 축복하고 저주한 내용을 기록한 성경이 창세기 9장입니다. 지금 가나안, 팔레스타인 땅은 함의 자손 가나안이 가서 개척한 땅입니다. 그러면 가나안을 개척해 놓으면 그 땅의 주인은 누가 되게 되어 있습니까 셈입니다. 셈과 그의 후손들에게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역사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는 이유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가나안 사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아무리 제 땅이라고 해도 이것은 하나님이 영원한 언약으로 “가나안은 셈의 종이다. 그 땅의 주인은 셈이다”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왜 2000년을 주인으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내고 이스라엘이 들어가서 나라 세우고 주인이 되느냐고 따집니다. 역사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흘러갑니다. 언약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사야 40:8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이 “셈의 후손의 땅이 되리라”는 약속도 영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그 약속을 붙잡고 있습니다.
2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팔레스타인에게 돌려준 이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난 다음에 여호수아가 이 성을 재건하면 망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수 6:26)
여호수아의 예언을 무시하고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벧엘 사람 히엘이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예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 16:34)
작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리고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성경에 “여리고를 재건하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재건할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건 우리 땅 아니니까 너희가 가져라” 이렇게 해서 돌려준 것입니다. 힘이 없어 내어준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3세계복음화의 언약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창 27:27-29)
이 말씀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언제나 세계복음화입니다. 아브라함도 세계복음화, 이삭도 세계복음화, 야곱도 세계복음화, 요셉도 세계복음화. 전부 세계복음화요, 이스라엘 자체가 세계복음화입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 27:29)
전도자를 저주하면 망합니다. 어떻게 안 망하겠습니까 전도자를 저주하는데. 성경인데 성경. 언약 붙잡은 자를 저주한다 저주받게 되어 있고, 언약 붙잡은 자를 축복한다, 그 사람은 축복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언약 붙잡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다 그 사람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전도자에게 밥해 주니까 그 사람 이름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전도자에게 돈을 대주니까 그 사람이 이름이 로마서 16장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전도자의 신분이 얼마나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언약을 붙잡은 자의 신분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냥 막연히 우리의 인생을 내가 사는 좁은 동네나 누비고 다닐 생각을 하고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저는 이런 사실이 깨달아지니까 그렇게 살고 싶지를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그렇게 살든지 말든지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를 않습니다.
4.전도란 무엇인가
이삭은 가나안 땅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에서에게 쫓겨 가지고 20년 동안 그 땅을 차지 못했습니다. 힘을 길러 가지고 그 땅 찾아 깃발 꽂으러 갑니다. 그게 전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도라고 하는 것은 잠깐 빌려 맡겨놓은 땅, 차지하러 가는 것입니다. 등기문서 들고 내 것이라고 내놓으라고 호령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갈 때의 장면을 기록한 신명기 성경을 찾아봅시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신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회보케 하자 하기에”(신 1:20-22)그러니까 지금 그럼 가나안 땅, 정탐하러 갑니까 측량하러 갑니까 이게 지금 문서하고 맞냐 안맞냐 측량하러 가는 것이지 정탐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속을 알고 보면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네가 보는 땅, 네가 걸어가는 땅, 다 주겠다. 언약 아닙니까 이게. 야곱이 힘이 없어서 20년 동안 형에게 맡겨놓은 땅, 20년 지나서 차지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구원이 아닙니다. 타락 이전의 본질은 피가 아니라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이후의 삶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을 차지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건지시는 구원자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은 구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전도가 있어야 합니다. 온 땅에 사는 만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우리가 보아야 할 땅이 있습니다. 차지해야 할 세계가 있습니다. 눈을 높이 듭시다. 가서 땅을 차지합시다. 생명을 살립시다. 언약 붙잡은 자가 반드시 승리한다고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 분명한 주인만 된다면 주인 되시는 그가 우리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1:27은 인간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이 신분입니다. 그 인간에게 주신 것이 28절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이 말씀은 인간은 이와 같은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사명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어떤 신분이요, 어떤 사명을 가진 사람이냐를 깨닫는 것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분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계십니까 일생을 두고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입니까 깨달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에 어린 아이로 만들지 않고 성숙한 성인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어린 아이로 만드셨다면 우리는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래 인간을 만드실 때에 성인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막바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여야 합니다. 그러면 사명 자체가 무거운 짐이냐 아닙니다. 사명은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세상에서 남보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할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본인 스스로에게도 할일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무능해 보이고, 처량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닫는 것은 삶을 출발하기 전에 먼저 해야할 본분입니다.
1.피와 땅
창세기 1:28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바로 세 가지 내용을 주시고 명령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 두 개가 있는데 피와 땅입니다. 성경에서 피는 구원을 상징하고, 땅은 전도를 가리킵니다.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제가 볼 때는 피보다 땅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 창세기
1,2장에는 피가 없습니다. 그때는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피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땅은 창세기 1장부터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는 죄 때문에 나온 것이고, 그 이전의 본질은 땅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피가 아니고 땅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는 구원 개념이 필요 없었습니다. 범죄 이전에 인간에게 주어진 명령은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면서 피가 등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구원자 개념을 통과하여 그를 주인으로 모시는 생활로 가야 합니다. 구원자 개념은 그분을 주인 되게 하기 위한 통과의 과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구속과 생명 살리는 전도 중 어떤 것이 본질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구약의 땅은 신약의 전도입니다. 구속은 본질을 위한 과정이지 그 자체가 본질은 아닙니다. 인간이 지음 받았을 때 처음부터 하나님은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 사명을 마귀에게 속아 상실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회복할 수 있는 길로써 구속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해야할 일은 평생토록 전도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가 “나는 구원받았으니까 괜찮다” 하고 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본질인 전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땅을 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전 흐름이 땅을 차지하는 전쟁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어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하게 하셔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십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전쟁하는데 전부 땅 때문에 하는 전쟁입니다. 그게 뭡니까 이 땅의 나라를 위해 전쟁하는 것과 신약에 와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전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모형으로 상징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땅 이야기가 신약에 오면 무엇으로 바뀝니까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마지막으로 전부 하신 말씀은 모두 전도하라는 명령입니다. 마 24:14, 마 28:16-20, 막 16:15-20, 행 1:
8. 모두 전도에 관한 명령입니다. 구약에서 피보다는 땅이 본질이고, 피를 통해 구원받은 자가 본질인 땅을 차지해 나가야 하듯이 신약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삼고 전도에 자신의 생을 드려야 합니다.
2.구약에 나타난 땅
구약성경은 땅을 이해해야만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6절과 28절은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1:26은 인간 설계도입니다. 인간 설계도에 인간을 지으신 목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26에 보면은 “.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여기에 뭐가 빠졌습니까 땅을 정복하라가 빠졌습니다. 그러나 28절에 가면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두 요절 가운데 제일 중요한 핵심단어가 땅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는 것이 아담과 하와의 최대의 축복이요. 그러면 이 땅에 와서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는 인생이 가장 멋있는 인생입니다. 인생의 본질을 다하고 가는 것입니다.
노아가 홍수 이후에 역사는 새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노아에게 하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거기에 있는 것을 다스리는 것은 인생 최대 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땅 이야기가 나올 때 언제나 “복을 주시며” 이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명 이 자체가 깨닫고 보면 어마어마한 축복입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땅에 관한 말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역시 땅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 그러니까 아브라함보고 떠나라고 할 때에 벌써 뭘 주었습니까 어마어마한 비젼을 주었습니다. 그냥 아브라함보고 너 나가라 하면 아브라함이 나갔겠습니까 아브라함이 그런 돌머리가 아닙니다.
2“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 13:14-17)
아브라함과 롯이 선택할 때에 롯은 소돔 고모라의 평지를 선택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산지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그러면 만약에 아브라함이 저 밑의 평지를 내려갔더라면 아브라함에게 보이는 땅은 조그만 것밖에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산꼭대기에 올라갔으므로 아브라함의 눈에는 어마어마한 땅이 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약속합니까 “눈에 보이는 땅을 다 주겠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눈에 보이는 저 요단 저 소돔 고모라에 평지를 찾아가는 것이 낫습니까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낫습니까 눈에 보기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낫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낫습니다.
3“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걸어서 밟는 땅을 네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언약입니다. 전도자에게는 보이는 땅은 전부 내 것이고, 밟는 땅도 전부 내 것입니다.
리챠드 바크(Richard Bach)가 쓴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는 갈매기가 멀리 내다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비행기 타고 높이 올라가서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비행기를 안타면 평생 동네만 돌아다니다가 끝나고 맙니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야 됩니다. 그래야 보이는 땅을 하나님이 다 주실 것입니다. 구약에는 우리 하나님이 땅, 땅 하는데 이 땅이 무엇입니까 신약에서 이게 뭘 의미하는지를 깨달으면 구약의 비밀이 전부 우리 것이 됩니다.
4“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창 15:7)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밖으로 이끌어내 또 언약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가만히 검토해 보면 그가 자기 것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땅 약속을 다시 해주었습니다.
고향 떠날 때에 땅 약속해 주었고, 롯 떠날 때에 땅을 약속해 주었고, 엘리에셀 포기할 때에 땅 약속해 주었고, 이삭 포기할 때에 땅 약속해 주었습니다. 무얼 말하는 겁니까 하나님은 내 것을 포기하는 그 위에다가 이 어마어마한 땅의 약속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5“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창 17:1-3)
17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에 다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땅을 약속하십니다.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고난 다음에 99세까지 하나님이 13년 동안 침묵하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니까 “네 마음대로 한번 해봐라.” 그래서 하나님이 침묵하십니다. 13년을 침묵하셨습니다. 13년 동안 아브라함은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 그는 인생의 답답함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두손들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렸습니다. 순종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뒤에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4-8)
언제나 땅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땅을 이해 못하면 참 어렵습니다. 거꾸로 신약의 전도 이해 못하면 완전히 끝장입니다.
6창 22:16, 그 전에 무슨 일이 나옵니까 이삭을 바친 사건이 나옵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또 땅 이야기합니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18)
이제 아브라함이 마지막으로 다 바쳤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그에게 나타나셔서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성도가 개인적인 모든 욕심을 버리고 설 때마다 하나님은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주십니다.
3.약속의 땅 가나안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땅을 지금 누가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땅은 공터가 아니고 가나안 백성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거기 공터라고 하면 거기를 개간하는데 수많은 세월이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사람들이 다 일구어 놓은 땅을 가서 차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땅을 가나안이 지금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이 어떤 땅인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가나안 땅은 셈의 후손에게 약속된 땅이었습니다.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창 9:26)
노아가 자식들을 놓고 축복하고 저주한 내용을 기록한 성경이 창세기 9장입니다. 지금 가나안, 팔레스타인 땅은 함의 자손 가나안이 가서 개척한 땅입니다. 그러면 가나안을 개척해 놓으면 그 땅의 주인은 누가 되게 되어 있습니까 셈입니다. 셈과 그의 후손들에게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역사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는 이유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가나안 사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아무리 제 땅이라고 해도 이것은 하나님이 영원한 언약으로 “가나안은 셈의 종이다. 그 땅의 주인은 셈이다”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왜 2000년을 주인으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내고 이스라엘이 들어가서 나라 세우고 주인이 되느냐고 따집니다. 역사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흘러갑니다. 언약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사야 40:8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이 “셈의 후손의 땅이 되리라”는 약속도 영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그 약속을 붙잡고 있습니다.
2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팔레스타인에게 돌려준 이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난 다음에 여호수아가 이 성을 재건하면 망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수 6:26)
여호수아의 예언을 무시하고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벧엘 사람 히엘이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예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 16:34)
작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리고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성경에 “여리고를 재건하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재건할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건 우리 땅 아니니까 너희가 가져라” 이렇게 해서 돌려준 것입니다. 힘이 없어 내어준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3세계복음화의 언약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창 27:27-29)
이 말씀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언제나 세계복음화입니다. 아브라함도 세계복음화, 이삭도 세계복음화, 야곱도 세계복음화, 요셉도 세계복음화. 전부 세계복음화요, 이스라엘 자체가 세계복음화입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 27:29)
전도자를 저주하면 망합니다. 어떻게 안 망하겠습니까 전도자를 저주하는데. 성경인데 성경. 언약 붙잡은 자를 저주한다 저주받게 되어 있고, 언약 붙잡은 자를 축복한다, 그 사람은 축복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언약 붙잡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다 그 사람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전도자에게 밥해 주니까 그 사람 이름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전도자에게 돈을 대주니까 그 사람이 이름이 로마서 16장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전도자의 신분이 얼마나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언약을 붙잡은 자의 신분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냥 막연히 우리의 인생을 내가 사는 좁은 동네나 누비고 다닐 생각을 하고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저는 이런 사실이 깨달아지니까 그렇게 살고 싶지를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그렇게 살든지 말든지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를 않습니다.
4.전도란 무엇인가
이삭은 가나안 땅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에서에게 쫓겨 가지고 20년 동안 그 땅을 차지 못했습니다. 힘을 길러 가지고 그 땅 찾아 깃발 꽂으러 갑니다. 그게 전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도라고 하는 것은 잠깐 빌려 맡겨놓은 땅, 차지하러 가는 것입니다. 등기문서 들고 내 것이라고 내놓으라고 호령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갈 때의 장면을 기록한 신명기 성경을 찾아봅시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신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회보케 하자 하기에”(신 1:20-22)그러니까 지금 그럼 가나안 땅, 정탐하러 갑니까 측량하러 갑니까 이게 지금 문서하고 맞냐 안맞냐 측량하러 가는 것이지 정탐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속을 알고 보면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네가 보는 땅, 네가 걸어가는 땅, 다 주겠다. 언약 아닙니까 이게. 야곱이 힘이 없어서 20년 동안 형에게 맡겨놓은 땅, 20년 지나서 차지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구원이 아닙니다. 타락 이전의 본질은 피가 아니라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이후의 삶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을 차지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건지시는 구원자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은 구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전도가 있어야 합니다. 온 땅에 사는 만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우리가 보아야 할 땅이 있습니다. 차지해야 할 세계가 있습니다. 눈을 높이 듭시다. 가서 땅을 차지합시다. 생명을 살립시다. 언약 붙잡은 자가 반드시 승리한다고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 분명한 주인만 된다면 주인 되시는 그가 우리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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