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다시 육으로 (창33:1-20)

본문

여러분 목회자들이 목회를 하면서 가장 즐거워하는 때가 언제인 줄 아십니까 다른 목회자들은 어떤지 잘 모 르지만 제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때는 성도들의 삶이 말씀 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 되는 것을 보는 때입니다. 예수를 믿고 말씀을 배우면서 삶을 사는 방법이 달라지고, 인격이 변화되며, 말투가 달 라지는 것을 보는 것, 이것 보다 더 큰 기쁨이 목회자에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 봅니다. 바로 이런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수고의 땀 을 흘리기도 하고 눈물의 기도를 드리기도 하며,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사역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 앞에서 변화되는 성도들을 보면 그래, 그래도 흘린 수고의 땀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면서 위로를 삼고 다 시 힘을 얻어 이 길을 갑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변화 가 없는 성도들을 볼 때면 어깨에 힘이 쭉 빠집니다. 분명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하기도 하고, 성경에 대 해서도 꾀 많은 지식이 있음 에도 삶에 변화가 없고 가치관의 변화도 없으며, 인격의 변화도 없는 그런 성도들을 볼 때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 그리스도가 저들 속에 없는 것은 아닌가 그리스도가 저들 속 에 있다면 변화가 틀림없 이 있을 터인데 왜 변화가 없는 것일까 사울을 바울 되게 하셨던 그 복음이 왜 저에게는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는 것일까 혹 복음이 없는 것은 아닐까 김대두도 예수를 믿고 변화를 받았는데 그 흉 악한 지존파도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를 받았는데 왜 변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변화의 열매들이 맺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야곱처럼 질기디 질긴 여러분들은 아닌지요 고래심줄 저는 요즘 야곱의 생애를 준비하면서 이런 고민을 해결 받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야곱의 생애를 살피면서 야곱 하면 어떤 생각이 나십니까 저는 고래심줄이 생각이 납니다. 왠 줄 아 십니까 예, 야곱의 자아가 고래심줄처럼 강하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제가 고래심줄이 어떤 것인지 본적은 없지만 제일 질긴 것을 이야기하 면 으레 고래심줄을 이야기하더군요. 그래서 야곱 하면 저는 고래 심줄이 생각이 납니다. 그만큼 질기다는 것이 죠. 야곱의 자아가 얼마나 강하고 질긴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하셨건만 야 곱은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야곱의 자아는 참으로 회귀본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아 무리 멀리 가도 다시 옛 모 습으로 돌아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아 돌아오는지. 아마 여러분들은 비둘기의 회귀본능을 잘 아실 것입니다. 한 실험에 의하면 비둘기는
3,600 km나 떨어진 곳에서도 집으로 돌아 올 수 있다 고 합니다. 이렇게 멀리 떨 어졌을지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그 능력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 면 육적인 자아로부터 한없이 한없이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시 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면 아이쿠 하나님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가 어쩌고저쩌고 하기도 하 고 단을 쌓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런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애를 쓰셨습니까 삼촌 라반에게 20년이나 맡겨서 저를 훈 련시키셨습니다. 그래도 잘 변하지가 않습니다. 제가 야곱의 생애를 강해하면서 야곱은 20년이나 훈련을 하여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어떤 분이 목사님 저는 20년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요. 어떻 게 하죠 하는 분이 계시 더군요. 여러분 여러분들은 20년이 되도록 기다리지 마십시오. 야곱을 변화시키는데 20 년 이상 걸렸다고 여러분들 도 그렇게 걸리라는 법이 없잖아요. 여러분들은 얼마든지 그 기간을 단축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애 를 쓰십시오. 또 혹 여러분 가운데 야곱처럼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화가 없는 분들은 낙심하지 마십시 오. 왜죠 그렇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셨잖아요. 여러분들 의 변화가 좀 더디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포기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야곱을 기다리셨던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들도 기다리시면서 만 들어 가실 것입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 때문에 잘 변하지 않는 성도들을 봐도 위로가 됩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하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수고의 땀을 흘려도 변화되지 않는 모습 을 보면 화도 나고 힘도 빠 지지만 야곱을 변화시킨 하나님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저들도 변화시키시 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힘이 나죠. 얍복강가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 야곱이 얼마나 질긴가에 대한 사건 하나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얍복강가의 씨름이었습니다. 이 씨름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렇습니다. 질기디 질긴 야곱의 자아를 꺾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싸움을 거셨던 사건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싸움에서 야곱은 어떻 게 했습니까 쉽게 항복을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쉽게 항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형을 이겼던 야곱이, 아버지를 이겼던 야곱이, 삼촌을 이겼던 야곱이 하나님 마져도 이기려 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질 수 없다고 버 티는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도록 저 의 환도뼈를 치자 그제야 하나님께 굴복을 하고 복을 구했습니다. 이게 야곱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질 수 없다고 버티는 야곱, 이 야곱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 난 한 주간 동안에는 하나님과 씨름을 하면서 이겨 보려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떠세요, 하나님 항복합니다. 하고 쉽게 손이 올라가던가요. 아마 잘 안 올라 갈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에 요. 아마 지난 주 말씀을 들 으면서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어쩌면 그럴 수 있담, 하나님과 싸우려 하다니 하고 웃으신 분도 계실 것 입니다. 어떻던가요 지난주간 하나님께 항복하는 손이 쉽게 올라가던가요 아마 쉽지 않음을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손을 들고 항복을 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터인데 그렇게 하려 하질 않습니다. 고래심줄처럼 버팁니다. 바로 이 시대의 야곱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질긴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그랬더니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고쳐 주십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합니다. 성경에서 이름이 변할 때는 대부분이 새로운 출발 이 시작이 됩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경우나 베드로가 게바가 된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고쳐주신 것은 새 출발을 하라는 것입니다. 삶의 방식을 바 꾸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삶 에서 이스라엘의 삶으로 바꾸라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야곱이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서 잘 아실 것입니다. 어떤 뜻이죠 그렇습니다.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식의 표현으로는 등쳐 먹는 자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는 이 이름에 걸맞게 살았습니다. 등쳐먹는데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 엘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대게 두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하나님의 왕자로 해석을 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위해 싸우는 자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어떻든 그렇게 살아가라는 것이죠. 왕자처럼 하나님을 위해서 싸우는 자처럼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 받은 야곱 그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이제 33장의 말씀을 통해 서 야곱이 어떻게 변화되 었는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은 좀 전에 33장을 읽으실 때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저는 33장을 읽으면 서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33장을 보면 야곱의 모습이 전혀 변화된 것 같지 않습니다. 아직도 야곱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육 적인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분명 그는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를 받았건만 이스라 엘로 산 것이 아니라 야곱 으로 살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야곱이었건만, 환도뼈가 위골이 되어서 두 손을 번쩍든 야곱 이었건만 아직도 옛 자아의 영향을 받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도. 이런 야곱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르셔서 이스라엘로 변화시켜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도 부르셔서 죄인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성도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도처럼 하나님의 아들처럼 그렇게 살아가라 말씀하십니다. 그렇 다면 한 번 여쭙니다. 어떻 습니까 여러분들은 정말 성도처럼 살아가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처럼 사십니까 아마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쉽 지 않다는 것을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수많은 다짐과 결심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상의 영향을 받고 있음 을 부인 할 수 없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은 바로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 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야 곱은 32장에서 이스라엘로 불려 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인 33장에서 이스라엘로 살아 가지 못합니다. 여전히 야 곱 같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들도 성도로 하나님 의 자녀로 불려 졌지만 사 실 이렇게 불려 지고난 다음 곧 바로 성도처럼 하나님의 아들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세상의 영향 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광 육 사이를 오락가락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 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스라엘로 변화를 받고도 이스라엘처럼 살지 못하는 야곱을 보면서 함께 은혜를 얻기를 원합니다. 버리지 못한 자아 먼저 1-3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 를 만나기 전 어떤 일을 합니까 예, 가 족들을 줄 세웁니다. 제일 먼저 누가 앞에 섭니까 두 여종과 그 자식들입니다. 여기 두 여종은 라헬의 몸종 빌하 와 레아의 몸종 실바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이란 빌하가 낳은 단, 납달리, 실 바가 낳은 갓, 아셀을 가리 킵니다. 이들을 자신의 가족들 중 가장 먼저 세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레아와 그 자식들인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라헬과 그 아들인 요셉을 세웁니다. 그리고 자신은 제 일 앞에 서지요. 자
그렇다면 이 순서를 자세히 보십시오. 어떤 순서처럼 보입니까 그 렇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순서대로 줄을 세웁니다. 어느 쪽이 가장 사랑하는 쪽입니까 예, 뒤쪽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야곱은 라 헬을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라헬이 늦게 낳은 요셉 그는 누구보다 더 사랑했죠. 얼마나 이를 사랑했으면 형들의 시기를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갔겠습니까
그렇다면 야곱이 왜 이렇게 줄을 세웠다고 생각하십니 까 그렇습니다. 여차하면 피하기 위함입니다. 혹 형 에서가 공격을 하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은 도 망칠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보십시다. 야곱은 왜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아직도 야곱 은 자신의 옛 본성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한다고 하면서도 아 직 그는 자신의 계획을 포 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다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거기에 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본다면 이렇 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저 기쁨으로 에서를 만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자신의 머리를 사 용해서 마지막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환도뼈를 위골 시키시자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을 하는 야곱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손을 들고 항복을 할 때 그 때는 정말 변화된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야곱 으로 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야곱은 어떻습니까 예, 다시 야곱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 여러분 중에 이런 야곱을 보면서 손가락질하실 수 있는 분이 계 십니까 누가 이 야곱을 향 해 돌을 던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야곱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 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야곱처럼 자주 하나님을 향해 항복을 하고 손을 듭니다. 그러나 다시 야곱처럼 육적 인 자아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런 우리들을 당연시 여기자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 도 그랬으니 우리들도 괜 찮다고 말씀을 드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야곱도 변 화시키셔서 하나님께서 사 용을 하셨으니 낙망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야곱을 변화시켜 가시던 그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우리들을 그분 의 손에 맡기자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으로는 가능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가 능한 문제이기에 하나님께 이 문제를 맡겨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야곱을 변화시키시던 그 하나님의 손길로 우리들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제가 야곱의 생애를 처음 강해를 할 때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성경이 왜 이렇게 질기디 질긴 야곱의 이야 기를 장황하게 기록하느냐하면 이런 야곱도 사랑하셔서 변화시키셨다
그러므로 이 성경 을 읽는 독자들도 아무리 질기다 하더라도 변화시킬 것이다. 하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것을 지금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내 손에 맡겨라 내가 변화시키겠다. 이 하나님께 여러분들의 모든 것들을 맡기시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에서를 자 이렇게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 야곱이 드디어 에서를 만납니다. 이 순간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3절을 함께 읽습니다.  야곱이 무엇을 하죠 그렇습니다. 형 에서에게 7번 절을 하면서 다가 갑니다. 여러분 이 때 야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초조와 불안이 최대로 고조되는 그런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고 형을 향해 절을 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형이 어떻게 반응을 할 것인가를 생각 하면서 불안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에서의 반응 이런 야곱을 향해 에서는 어떻게 반응을 하죠 함께 4절을 읽습니다.  형 에서는 야곱에게로 달 려와 야곱의 입을 맞추며 목을 껴안습니다. 그리고 둘 이는 울기 시작합니다. 형 에서는 반가움의 눈물이었을 것 이고 야곱 그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송구스러움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 까 야곱이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집니까 그렇습니다. 벌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형은 아우의 목을 껴안고 웁니다. 그리고는 아우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함께 12절을 읽습니다.  어떤 제안입 니까 그렇습니다. 너의 앞잡이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즉, 호위병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제안은 파격적인 것입니다. 야 곱은 에서에게 있어서 원수 와 같은 존재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자신의 장자권을 훔쳤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내려져야 할 복을 가로챈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서는 야곱을 선대합니다. 그래서 야 곱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이제는 야곱의 앞잡이가 되어서 야곱의 길을 지켜 주겠노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원수를 이렇게 용서하고 받아들이다니요. 사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에서는 그 일을 해 냈습니다. 야곱의 모든 허 물과 죄를 덮어주고 용납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야곱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야곱의 거절
그렇다면 이런 에서에게 야곱은 어떻게 반응을 할까요 13,14절을 읽습니다.  야곱은 정중하게 거절을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 자식과 가축들이 피곤해서 과히 몰면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가시면 곧 따라 가겠다고 말합니다. 제법 타당한 이유처럼 보입니다. 에서는 야곱 의 이야기에 동의를 하고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15절에  라 말합니다. 그러자 야곱이 무엇이라 대답을 합니까  라 대답을 합니다. 형의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장면에서 뭔 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 되지 않습니까 얼핏보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피면 이 사건 속에 야곱의 계략이 숨어 있음을 우리는 또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형 에서도 눈치를 체지 못하고 읽는 우리들도 쉽게 눈치를 체지 못할 정도의 계산된 야곱의 생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 이 무엇일까요 절반의 진실 자 다시 13,14절을 읽습니다.  이 말은 절반은 진실이고 절반은 거짓입니다. 어느 것이 진실이 죠 예, 자식과 가축들이 피곤하다는 말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세일로 가겠다는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16,17절을 볼까요 야곱이 어디로 갑니까 예, 숙곳으로 갑니다. 거기서 잠시 머뭅니 까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집 까지 짖고 우리를 지은 것을 보면 제법 오래 머문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리고 여기를 떠나 세겜성으로 가서 땅을 삽니다. 땅을 산 것을 보면 여기서도 제법 머무를 심산임에 틀림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이후에 야곱이 세 일에 간 것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은 없습니다. 즉, 야곱은 세일에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왜 세일로 가지 않을 것이면서 세일에 간다고 거짓을 말을 했을까요 그것은 형 에서를 완 전히 믿지 못하였기 때문 이었습니다. 여차하면 형이 자신이 지은 옛일을 가지고 보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가 앞잡이가 되겠노라고 했던 것도 거절을 하고 몇 사람을 남겨서 너의 여행 을 돕겠다는 것도 거절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의 모습입니다. 형의 선의를 의심을 하면서 적당한 거짓말로 형을 속이는 이 야곱의 모습을 보십시오. 여러분 에서가 세일로 돌아간 연후에 틀림없이 야곱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야곱을 생각하면서 그는 또 다시 씁쓰레한 웃음을 지었을 것입니다. 이 녀석이 또 나를 속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또 다시 형을 속이고 말았습니다. 절반의 진실을 가지고 전부가 진실인양 가장을 하여 형을 속여먹은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도 종종 이 야곱과 같은 사람들을 봅니다. 절반의 진실 을 가지고 모든 것이 진실 인양 속입니다. 절반의 진실을 가지고 절반의 거짓을 그럴듯하게 꾸밉니다. 그러지 마 십시오. 이것은 우리들이 살 아가야 할 삶의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은 온전한 진실이어야 합니다. 거짓이 들 어 있지 않는 온전한 진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법입니다. 절반의 진실 그것은 세상의 방법 입니다. 그래도 절반은 진실 이지 않는가 하고 항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들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래도 내가 주님을 믿기에 절반이라도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 역시 우리들의 취할 삶의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온전한 진실을 가 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이 종종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것입니다. 절반의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내가 예수를 믿으니 이 만큼이지 안 그랬더라면 큰일 낼 뻔하였 다고 말하면서 반쪽자리 진실을 정당화시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반쪽의 진실은 그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절반의 진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온전 함을 위해서 우리들을 부르 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반의 진실이 아닌 온전한 진실로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절반인 이유
그렇다면 야곱은 왜 이렇게 절반의 진실을 가지고 거짓을 꾸민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아직 하나님에 대한 온 전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로 선언은 되었지만 아직 야곱의 본 성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야곱의 본성이 차단되지 않는 한 야곱은 계속해서 야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여러분들의 성도로 선언되었다는 이 사실에 만족하지 마십 시오. 여러분들의 성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이 되었다면 그렇지 못할 때의 본성을 차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 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이 구절은 우리들이 벗어버려야 할 것이 있고 입어야할 것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벗어버 리라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버리자 말합니다. 즉, 과거의 죄된 일들을 벗어버리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입자고 하죠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자고 합니다. 바로 이것 입니다. 우리들이 성도로 선 언된 그것에 만족하고 매여 있으면 안됩니다. 성도로 선언이 되었기 때문에 과거 죄된 일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옛 성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종종 자신이 성도가 된 것은 감사하고 감격하면서도 어두움의 일 들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성도들을 봅니다. 아닙니다. 벗어야 합니다. 그래야 차단이 됩니다. 그래야 성도로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들이 차단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 해 보십시오. 벗어버려야 할 어두움의 일들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시고 그것을 미련 없 이 벗어버리는 여러분 되시 기 바랍니다. 계속되는 불순종 야곱의 육적인 모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함께 17-20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들은 이 말씀에서 야곱의 또 다른 육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구절 이 왜 문제가 된다고 생각 하십니까 언뜻 보면 이 구절들에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나름대 로 하나님을 잘 섬긴 것처 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19,20절을 보면 야곱이 어떤 일을 하죠 그렇습니다. 세겜 땅을 하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무엇이라 합니까 그렇습니다. 엘 엘로헤 이스라 엘 하나님은 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고 말합니다. 무슨 말이죠. 예, 하나님은 바로 자신의 하나님이라는 말 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야 야 곱의 신앙이 많이 성장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몇 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3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 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 라 하신 지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죠 그렇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 곱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세겜에 땅을 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왜 여기에 머물렀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추측컨대 이곳이 야곱에게 제법 매력적인 곳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 땅을 사고 하나님께 제사하 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여 기서 제사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야곱은 순종은 하지 않고 제사만 드립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나의 참 하나님이라고 말 합니다. 이런 야곱에게 어울리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낫습니다. 순종이 없는 제사는 그 제사가 아무리 화려하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순종이 따라와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이 야곱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음을 봅니다. 야곱처럼 제 멋대 로 돌아다니면서 하나님께 제사도하고 예배도 합니다. 하나님 뜻에는 상관없는 삶을 살면서 그저 예배 한 시간 드 리면 다 인줄 착각을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삶은 여전히 세상 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면서 예배한 것으로 성도의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순종이 없는 제사 그것은 자기 만족 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가 이 렇게 예배하니 나는 괠찬아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순종이 따라와야 합니다. 순종이 없는 여러분들의 모든 것들 은 다 헛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로 변화를 받고도 계속해서 육의 영향을 받는 야 곱을 살펴보았습니다. 야곱 은 이스라엘로 부르심을 받고도 이스라엘처럼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하 지 못했던 것은 계속해서 옛 자아가 야곱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바로 이 야곱처럼 성도로 부름을 받고도 여전히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이 성도 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 에 만족하고 있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성도로 부르심을 입었기에 이제는 성도처럼 살아 가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합니다. 애쓰고 힘씀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옛 자아가 나를 영향주지 않도록 해 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옛 것을 단절하십시오. 과감히 잘라버리십시오. 그래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멋지게 하나님 앞에 서시는 여러분 되 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5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