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요3:1-15)
본문
어느날 신문에 흥미로운 구인광고가 하나 실렸습니다. "사람 구함:키 180cm, 가슴둘레 120cm, 허리 40inch, 체중 120kg, 목소리 괴팍하고 큰 분. 숙식제공 및 월 200만원 이상 보장." 면접시험에는 광고의 조건과 비슷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엄정한 심사 끝에 선택된 한 사람은 즉각 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디 서 무엇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한 달 남짓 후 신문에는 대문짝 만한 광고가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네 타고 담배 피우는 곰 등장! 50여 가지의 환상묘기 대개봉!-o o 동물 원." 포효하는 곰의 사진은 한 달 동안 곰가죽을 입고 갖은 곰흉내를 연습해온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몰려든 사람 앞에서 어설픈 재주만 부리면 되었 습니다. 어정어정 걷기도 하고 가끔 앞발(손)을 쳐들면서 괴성도 지르고, 조 련사가 물려준 담배를 한모금 빨고 만족한 듯한 시늉을 하면 사람들은 환호 성을 지르면서 좋아라고 박수를 쳐댔습니다. 그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는 더욱 곰다워지기 위해서 자기를 철저히 다듬어갔습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나는 곰이다. 진짜 곰이다" 하고 되뇌었고 더 곰같이 해달라고 그가 믿는 신 에게 기도도 했습니다. 그는 백과사전에서 곰에 대한 내용을 거의 외다시피 했고, 곰의 습성을 관찰하고 모방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곰 생태 연구 특별 세미나에도 부지런히 쫓아다녔습니다. 그는 이제 누가 봐도 의심 못할 재주 많은 곰이 되어갔습니다. 그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모인 어느날, 그는 그네 타기 묘기를 부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발을 구를 때마다 "더 높이! 더 높이!"하고 외치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그는 점점 그네를 세게 굴리기 시 작했습니다. 그는 흥분한 나머지 무의식 중에 줄을 잡은 손을 놓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그만 그네에서 떨어져 옆 호랑이 우리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픔도 잊고 공포에 질려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호랑이 가 입을 쩍쩍 다시면서 자기를 향해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철조망을 죽어라고 흔들면서 소리쳤습니다. "사람살려! 나는 사람이오! 사람살려!" 그때 호랑이의 입이 목줄기에 턱 닿더니 조그맣게 속삭이는 것이 었습니다. "쉿! 조용히 해! 나도 사람이야"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한가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곰의 가죽을 쓰고, 곰과 같은 행동을 하고, 곰의 재주를 넘는다 하더라도, 또 그렇 게 되기 위하여 뼈를 깍는 훈련의 수고를 했다 하더라도, 그래서 사람들이 깜박 속을만큼 완벽한 연기를 했다 하더라도 사람이 곰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그는 어디까지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성전환수술이라는 것을 합니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여자가 되는 수술 을 받고 여자 행세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남자입니다. 외모만 여 자처럼 꾸민 것에 불과합니다. 머리를 기르고 가슴을 부풀리고, 목소리를 여 자처럼 꾸미지만, 그에게 임신과 출산이라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이 여자 가 아니라 남자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곰사람이 많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예수믿고 교회에 다니면 복을 받고 천국간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주일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배우며, 기독교인의 생활 스타일을 익혀갔습니다. 그리고 예배, 찬양, 기도, 헌금 등을 통해 경건한 삶을 살아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례도 받 고, 많은 이들에게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 받기도 했습니다. 신앙서적도 많이 읽고,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연구도 많이 했습니다. 그 리고 그렇게 살아 보려고 열심히 훈련도 받고 기도생활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의 기쁨이 없습니다. 감사의 노래도 없습니다.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신앙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나 를 발견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지 않았 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밤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니고데모는 당시에 가장 위대한 종교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경건한 유대 인이었고, 유대사회에서 존경받는 신앙인이었으며, 불과 70명 밖에 되지 않은 산헤드린의회 의원으로서 예루살렘에서 대단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었 습니다. 그는 유대인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랍비였습니다(3:10 예수께서 가 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그리고 그는 전 이스라엘에 6천명을 넘지 않는 바리새인 중의 한사람으로서, 선택된 사람 가운데서도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생 명을 바쳐 십계명을 준수하기로 서약한 사람입니다. 진실로 한분이신 하나님 만 섬기고, 우상을 다 포기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합니다. 거짓과 간음과 도적 질과 탐심을 버리며 삽니다. 철저히 십계명을 지키며 삽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보기에 모자랄 것이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경건 한 신앙인으로, 랍비로 존경했습니다. 이렇게 모자랄 것이 없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것도 한밤중에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속까지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왜 니고데모가 밤중에 사람 의 눈을 피하면서까지 찾아왔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영적인 문제, 신앙적인 문제, 즉 구원과 영생의 문제, 하나님 나라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이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저의 말을 들 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상담에 응하기 위하여 사전에 가 져야 할 탐색의 시간을 갖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아시되,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우리의 계획을 아시 고, 심지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까지 나에 관하여서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욥은 23:10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 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고백했고, 시편 기자는 "주는 마음의 비밀과 나의 우매함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고,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신 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해도 주님은 우리를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가진 문제들을 치료하실 뿐만 아니라, 내가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까지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가 신앙의 문제, 즉 구원과 영생의 문제를 들고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을 이미 아시고 그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 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구원과 영생의 문제, 즉 신앙의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면 그에게는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인생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이 인생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와 사회적 지위가 인생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이것들을 가져본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것이 인생의 문제가 아 니라 구원과 영생의 문제가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리새인이요, 랍비이며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메마르게 하고 허기지게 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빈곤과 영적인 메마름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급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하면 나의 눈으로 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의 스승이 어도, 아무리 그가 율법을 그렇게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어도, 그가 산헤드린 의 종교적 지도자로 높은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어도, 그리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스승의 자리에 있었어도 그의 영혼 한 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빈곤과 영적인 메 마름입니다. 여러분, 어느 누구든지 영적인 빈곤과 영적인 메마름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 른 것으로 아무리 잘 포장되어 있어도, 부족함없이 살아가는 것 같아도, 돈이 있어 자랑스럽게 뽐내고 다녀도, 그 인생은 언제나 갈급함 뿐입니다. 이것이 채워져야 합니다. 그 안에 예수의 생명이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그는 삶의 공허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 인생은 비로소 행복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수녀 시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 당신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대를 걸었던 나의 어리석음도 뉘우치면서 당신 안에 평온히 쉬고 싶습니다." 이것이 이 수녀 한 사람만의 기도이겠습니 까 이 땅에서 호흡하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영적인 빈곤과 영적인 메마름을 해결받는 길은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 입니다. 사람은 세 번 태어납니다. 첫 번째 탄생은 어머니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은 모체로부터 육체적으로 분리되어 이 세상에 독립 된 개체가 되는 일입니다. 두 번째 탄생은 나의 존재, 나의 생의 목적에 대한 질문을 갖는 일입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존재하는가"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하면서부터 인생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을 찾는 일인데, 이것을 루소는 제 2의 탄생, 정신적 자각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 존재가 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탄생은 첫 번째 탄생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에는 세 번째 탄생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 번째 탄생을 성경은 "거듭남, 중생" 이라고 말하고, 이를 통해서 사람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 녀로 영생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인생의 성패 여부는 세 번째 탄생에서 결정 됩니다. 한 인생의 행복도 세 번째 탄생을 통해서 결정 됩니다. 이 세상 사람 가운데는 첫 번째 탄생이 훌륭한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가문 에서,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가운데 태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고 부러워 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 탄생이 그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집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호강하면서 자란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을 우리 주변에서 찾는 것은 너무 쉽고 흔한 일입니다. 박지만이라는 사람을 다 아실 것입니다. 그는 대통령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 지금의 삶은 어떻습니까 마약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불쌍한 한 인간을 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첫 번째 탄생이 훌륭하다고 그의 인생 이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도 좋습니다. 이 세상 사람 가운데는 두 번째 탄생이 훌륭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 년 때에 인생의 뜻을 세우고 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젊음의 세월을 아낌없이 희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사회에서 그럴듯한 지위 와 존경을 얻고 재물을 많이 모아 사람들에게 부자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의 末路가 지극히 불행하게 된 사람들을 우리는 쉽게 찾 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엄변호삽니다 라는 책 가운데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글이 있는 데, 엄상익 변호사가 노태우 대통령의 외아들인 노재헌씨가 당한 일을 적어놓은 글입니다.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 터진 후 답답해 하던 노재헌씨가 갑자기 자신 의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이미 서로 가까이 지내던 터인데, 세상 살기가 너 무 답답하여 찾아왔노라고 하면서 이름없는 허름한 술집에 가서 감자국이나 한 그릇 사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화문 뒷골목의 쓰러져 가는 한옥에 있는 포장마차 같은 술집으로 가서 감자국 한 그릇 시켜놓고 먹을려 하는데, 거기에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술집의 여자들이 노재헌씨를 알 아보고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하는 말이 "원 세상에 저렇게 멀끔하게 생겼는데, 아버지 때문에 신세가 저렇게 됐구먼" 하면서 마치 동물원의 짐승을 보 듯이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노재헌씨는 감자국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 국그릇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한 때는 대통령의 아들이었지만, 이제는 술집에서 일하는 작부들까지 혀를 차면서 동물원 짐승 보듯이 하는 수모를 당해야 하는 노재헌씨의 눈물은 바 로 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두 번째 탄생이 훌륭하 다고 그의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도 좋습니다. 니고데모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당시 신분제사회에서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는 첫 번째 탄생이 훌륭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좋 은 부모에게서 태어났기에 좋은 공부를 했고, 그 후광으로 부족함이 없이 자 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찍이 뜻을 세워 유대사회에서는 가장 부러워 하는 산헤드린의 의원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역시 존경받는 랍비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이는 두 번째 탄생도 훌륭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밤에 잠을 이 룰 수 없는 허전함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잠들 어 있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의 갈급한 영적 갈증과 영적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제 전혀 새로운 탄생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세 번 째 탄생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는 니고데모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질문하기를 "사람이 늙은 뒤 에,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 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님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러분,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세 번째 탄생을 통해서 해결됩니다. 세 번째 탄생이 없으면 그 인생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가짜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허전함 앞에서 괴로워하게 될 것입니다. 니고데모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박지만씨도 그런 사람입니다. 노재헌씨도 그런 사람입니다. 한 때는 조선사회에서 가장 잘나가던 사람이 이완용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후손들 조차도 이완용씨가 자신들의 할아버지라는 것을 숨 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첫 번째, 두 번째 탄생이 우리 인생을 승리로, 행복으 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환상을 이제 버리십시다. 오직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세 번째 탄생이 없이는 첫 번째 탄생, 두 번째 탄생이 무가치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세 번째 탄생을 경험해야 합니다. 첫 번째 탄생은 세상의 부모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요, 그리고 두 번째 탄 생은 자신의 의지적 결단과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탄생은 물과 성령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는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훈련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거듭남의 역사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 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그러나 이를 믿으라.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 셨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할 세 번째 탄생은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교육과 훈련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의 노력과 수고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의 은 혜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나무에 달리신 그리스도,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주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기십시다. 거기에 행복이 있고, 장래가 있고, 소망이 있으며,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해도 주님은 우리를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가진 문제들을 치료하실 뿐만 아니라, 내가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까지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가 신앙의 문제, 즉 구원과 영생의 문제를 들고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을 이미 아시고 그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 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구원과 영생의 문제, 즉 신앙의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면 그에게는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인생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이 인생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와 사회적 지위가 인생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이것들을 가져본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것이 인생의 문제가 아 니라 구원과 영생의 문제가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리새인이요, 랍비이며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메마르게 하고 허기지게 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빈곤과 영적인 메마름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급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하면 나의 눈으로 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의 스승이 어도, 아무리 그가 율법을 그렇게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어도, 그가 산헤드린 의 종교적 지도자로 높은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어도, 그리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스승의 자리에 있었어도 그의 영혼 한 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빈곤과 영적인 메 마름입니다. 여러분, 어느 누구든지 영적인 빈곤과 영적인 메마름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 른 것으로 아무리 잘 포장되어 있어도, 부족함없이 살아가는 것 같아도, 돈이 있어 자랑스럽게 뽐내고 다녀도, 그 인생은 언제나 갈급함 뿐입니다. 이것이 채워져야 합니다. 그 안에 예수의 생명이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그는 삶의 공허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 인생은 비로소 행복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수녀 시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 당신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대를 걸었던 나의 어리석음도 뉘우치면서 당신 안에 평온히 쉬고 싶습니다." 이것이 이 수녀 한 사람만의 기도이겠습니 까 이 땅에서 호흡하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영적인 빈곤과 영적인 메마름을 해결받는 길은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 입니다. 사람은 세 번 태어납니다. 첫 번째 탄생은 어머니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은 모체로부터 육체적으로 분리되어 이 세상에 독립 된 개체가 되는 일입니다. 두 번째 탄생은 나의 존재, 나의 생의 목적에 대한 질문을 갖는 일입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존재하는가"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하면서부터 인생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을 찾는 일인데, 이것을 루소는 제 2의 탄생, 정신적 자각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 존재가 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탄생은 첫 번째 탄생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에는 세 번째 탄생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 번째 탄생을 성경은 "거듭남, 중생" 이라고 말하고, 이를 통해서 사람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 녀로 영생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인생의 성패 여부는 세 번째 탄생에서 결정 됩니다. 한 인생의 행복도 세 번째 탄생을 통해서 결정 됩니다. 이 세상 사람 가운데는 첫 번째 탄생이 훌륭한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가문 에서,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가운데 태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고 부러워 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 탄생이 그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집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호강하면서 자란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을 우리 주변에서 찾는 것은 너무 쉽고 흔한 일입니다. 박지만이라는 사람을 다 아실 것입니다. 그는 대통령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 지금의 삶은 어떻습니까 마약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불쌍한 한 인간을 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첫 번째 탄생이 훌륭하다고 그의 인생 이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도 좋습니다. 이 세상 사람 가운데는 두 번째 탄생이 훌륭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 년 때에 인생의 뜻을 세우고 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젊음의 세월을 아낌없이 희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사회에서 그럴듯한 지위 와 존경을 얻고 재물을 많이 모아 사람들에게 부자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의 末路가 지극히 불행하게 된 사람들을 우리는 쉽게 찾 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엄변호삽니다 라는 책 가운데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글이 있는 데, 엄상익 변호사가 노태우 대통령의 외아들인 노재헌씨가 당한 일을 적어놓은 글입니다.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 터진 후 답답해 하던 노재헌씨가 갑자기 자신 의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이미 서로 가까이 지내던 터인데, 세상 살기가 너 무 답답하여 찾아왔노라고 하면서 이름없는 허름한 술집에 가서 감자국이나 한 그릇 사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화문 뒷골목의 쓰러져 가는 한옥에 있는 포장마차 같은 술집으로 가서 감자국 한 그릇 시켜놓고 먹을려 하는데, 거기에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술집의 여자들이 노재헌씨를 알 아보고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하는 말이 "원 세상에 저렇게 멀끔하게 생겼는데, 아버지 때문에 신세가 저렇게 됐구먼" 하면서 마치 동물원의 짐승을 보 듯이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노재헌씨는 감자국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 국그릇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한 때는 대통령의 아들이었지만, 이제는 술집에서 일하는 작부들까지 혀를 차면서 동물원 짐승 보듯이 하는 수모를 당해야 하는 노재헌씨의 눈물은 바 로 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두 번째 탄생이 훌륭하 다고 그의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도 좋습니다. 니고데모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당시 신분제사회에서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는 첫 번째 탄생이 훌륭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좋 은 부모에게서 태어났기에 좋은 공부를 했고, 그 후광으로 부족함이 없이 자 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찍이 뜻을 세워 유대사회에서는 가장 부러워 하는 산헤드린의 의원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역시 존경받는 랍비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이는 두 번째 탄생도 훌륭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밤에 잠을 이 룰 수 없는 허전함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잠들 어 있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의 갈급한 영적 갈증과 영적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제 전혀 새로운 탄생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세 번 째 탄생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는 니고데모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질문하기를 "사람이 늙은 뒤 에,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 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님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러분,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세 번째 탄생을 통해서 해결됩니다. 세 번째 탄생이 없으면 그 인생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가짜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허전함 앞에서 괴로워하게 될 것입니다. 니고데모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박지만씨도 그런 사람입니다. 노재헌씨도 그런 사람입니다. 한 때는 조선사회에서 가장 잘나가던 사람이 이완용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후손들 조차도 이완용씨가 자신들의 할아버지라는 것을 숨 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첫 번째, 두 번째 탄생이 우리 인생을 승리로, 행복으 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환상을 이제 버리십시다. 오직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세 번째 탄생이 없이는 첫 번째 탄생, 두 번째 탄생이 무가치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세 번째 탄생을 경험해야 합니다. 첫 번째 탄생은 세상의 부모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요, 그리고 두 번째 탄 생은 자신의 의지적 결단과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탄생은 물과 성령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는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훈련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거듭남의 역사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 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그러나 이를 믿으라.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 셨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할 세 번째 탄생은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교육과 훈련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의 노력과 수고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의 은 혜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나무에 달리신 그리스도,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주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기십시다. 거기에 행복이 있고, 장래가 있고, 소망이 있으며,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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