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달려보자 (고전9:25-27)
본문
저는 몇년동안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 받을 심판을 생각하며 깨닫기를 호소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속히 돌아가고 회개하기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긴급한 기도를 하게 하며,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을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가 계속하여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간직하도록 주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어려움을 막아내지 못하고 지금 큰 시련과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이 이 민족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오히려 개인과 민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으로 재창조하는 좋은 기회가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합니까 저는 큰 공원에 불을 질러 다 태워버리고 그 곳을 새로운 수목으로 다시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나라도 지난 날의 잘못된 도덕과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국민성을 기르는 좋은 기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바람에 휩쓸리고 폭풍이 휘말리는 것과 같은 삶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경제위기 후에 범죄가 증가되고 자살자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가정이 파탄되고 이혼이 늘고 많은 청소년이 탈선하고 있고 가정주부들도 남편이 어려움과 실직을 당하자 몸을 팔아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마약과 술에 손대고, 자포자기하고 좌절하는 정신적인 몰락으로 나아가는 삶이 너무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 야곱은 어려움을 만날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룻은 남편을 잃고 이방땅에 왔지만 이삭을 주으면서 부지런히 일할 때 보하스 남편을 얻고 전보다 더 많은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나라가 어려울 때 영성운동을 통해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혈루병을 앓았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병이 낫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에스더가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유대민족은 메데와 파사 나라에서 위대한 민족으로 존중을 받게 되었습니다. 욥은 '고난이 지나면 좋은 날이 올 것을 굳게 믿고 금이 단련을 받는 것처럼 다시 살아나 견고해질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회개하고 소망을 갖고 힘을 다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민족으로, 다시 일어서는 민족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잘하는 이는 없습니다. 한 인생의 삶도 굴곡과 어려움이 있고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의 어떤 인물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잘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처음부터 천재는 아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하교에서 '무엇을 하든지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그 부모는 이것을 보고 낙심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는 단지 아인슈타인에게 이 쉐마 교육을 들려 준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쉐마교육이었습니다. 쉐마 교육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앉아있을 때나 누웠을 때에라도 이것을 가르쳐라.'는 것입니다. '쉐마' 라는 말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 말은 늦게 합니다. 토라는 성경을 말합니다. 선생과 부모되는 이들이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도록 말씀을 계속 들려주는 것입니다. 인생은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도 그 머리를 하나님께 향하면 휼륭한 사람이 되고 휼륭한 사람도 죄악된 길로 머리를 돌리면 할 수 없이 그런 사람이 되고 맙니다. 저는 어제 정부 지도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기를, "목사님, 미국이 경제공황이 왔을 때 무디선생이 나와 영적, 도덕적 회복 운동을 일으켜 미국이 잘 살게 되었습니다. 영국이 엉망이 되었을 때 웨슬레 형제가 나와서 옥스포드 대학부터 하나님의 말씀 운동을 일으켜 영국을 살려 냈습니다. 그룬투비 목사가 나와 덴마크를 위기에서 건져내지 않았습니까"라 했습니다. 그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인데도 하나님을 믿으면 민족과 나라가 사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어려운 때에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기도하고 회개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될 줄 믿습니다. 지금 탈옥수인 신창원을 지 못해 온 국민이 욕을 하고 돌을 경찰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만 나쁘고 잘못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또 간첩을 못잡는다고 해서 군인에게 워라고 막 그럽니다. 또 국회의원은 무엇을 하느냐 하면서 망신을 주고 그럽니다. 물론 국회의원도 문제가 있고 경찰이나 군인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다같이 책임을 질 문제입니다. 교회도 회개할 것이 있고 목회자나 기업가 선생도, 모든 국민이 다 반성하고 회개하고 다같이 일어서야 합니다. 어느 누구만 나쁘다고 돌을 던지면 안됩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기를 "링컨은 그렇게 가난할 때 고학해서 대통령이 되었다는데 너는 밤낮으로 그것이 뭐냐" 하니까 아들이 말합니다. "링컨은 아버지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는데 아버지는 그 나이가 되셔서 무엇합니까."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아이에게나 부부간에, 당신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같이 '내 잘못이다' 라고 생각해서 이 민족이 하나로 화합되고 또다시 저력을 만들고 재기의 터를 닦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들어가다가 앉은뱅이를 만납니다. 그 사도들이 "나는 은, 금은 없어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니 앉은뱅이가 걷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같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다시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믿는 사람의 삶이 '누구를 높이고 자랑하느냐, 삶의 목적이 어디있는지'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폿대는 예수님이고 그를 향해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똑같은 어려움을 겪어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예수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침체, 범죄, 실패, 연약한 앉은뱅이 처지에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은과 금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에수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가 일어나야 할 줄 믿습니다. 일어나 걸으라. 내가 새 힘을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니네 일어나. 걸으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저를 일으키실 분도 예수님이시고 교회와 여러분을 일으키실 이도 주 예수님이십니다. 맘이 속상하고 걱정 근심 미움과 정욕이 가득찬 괴로움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 때 찬송부르세요. 주님의 이름을 한마디라도 부르세요. 인간의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찬송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시도를 해 보세요. 주님은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일생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며 인생의 경주자로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줄 믿습니다. 인생은 계절과 같습니다. 항상 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나 가정과 사회도 그렇습니다. 여름은 덥습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면 열배를 맺게됩니다. 우리 가정도 여름을 거치면 가을에는 시원함을 느끼고 열매를 많이 맺게 됩니다. 만약 항상 봄으로 살면 꽃에서 끝나고 싹에서 끝납니다. 무더운 여름이 필요합니다. 어렵더라도 늘 주의 전을 다녀가야 합니다. 그것이 여름이다. 그러다 가을이 되어 자식들이 잘 되고. 그러다가 겨울이 오면 또 좋은 것입니다. 휴식을 할 수 있습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교회 생활도 그렇습니다. 항상 은혜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설교말씀이 무엇인지 하나도 안 들어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입니다.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추위가 봄을 만들어 내듯이 이 경제위기가 끝나면 좋은 시절이 다시 옵니다. 어떤 나라는 봄이 없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들레가 방긋 웃고 할미꽃이 손짓하며 진달래가 방긋하는 봄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경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을 마라톤과 비유합니다. 신앙은 경주입니다. 성경에는 '경주' 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요사이 살았더라면 분명히 월드컵에 대한 비유를 꼭 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월드컵에 기대를 걸었다가 이패일무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온 국민이 화가 나고 낙심되어 차범근 감독을 해임시키고 보상금도 차 감독에게는 한 푼도 안주었습니다. 우리국민이 참 가볍습니다. 다른 국민은 그렇지 않고 다 봐주는데 우리는 그 상황에서 차 감독을 해임시킵니다. 차 감독이 잘할 때, 중국, 일본과 싸울 때 잘한 것은 안 보고 있습니다. 세계의 어마어마한 선수들과 싸우는 것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은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예수님 같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 까요 "범근아, 힘내라. 기회가 한번 밖에 없나 수고했다. 힘내. 일억 줄께. 하시지 않을까요 에이, 예수님 같으면 긍휼을 많으시니까 그렇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나 다른 나라 축구 선수들은 잔디가 많은 땅에서 늘 경기를 했는데 우리는 맨땅에서만 축구하다가 월드컵에 가다가 보니 어려웠습니다. 우리와 많이 다른 환경에서 당장에 싸워서 일등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안됩니다. 오랜 인내가 필요한 것이 축구 게임입니다. 축구는 4분의 3박자입니다. 개인기, 팀웍, 페스와 골인이 잘 연결되어야 합니다.
1. 개인기입니다. 축구에서 개인기는 본인이 얼마나 노력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공 가지고 걸어가고 앉고 하는 개인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신앙도 개인기가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기도 안에서 기본기를 닦아야 합니다. 축구 선수가 늘 공을 가지고 놀듯이 우리 믿는 자들도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인물들 예를 들면, 아브라함, 링컨, 다윗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도 교회생활을 할 때 언제나 예수 안에서 항상 믿음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말씀과 교회 생활 중 믿음안에서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개인기는 선생에게 지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스포츠 선수가 좋은 감독을 만나고 코치를 잘 만나야 하듯이 신앙생활도 혼자는 안되고 지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믿음안에서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항상 배우는 선수가 좋은 선수가 되듯이 우리 성도도 항상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2. 팀워크입니다. 페스입니다. 프랑스는 스타가 없어도 이겼습니다. 프랑스 팀이 팀워크가 좋아서 주고 받으면서 찬스가 올 때 골인하듯이 우리도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패스를 잘해야 합니다. 교회생활도 팀워크가 필요합니다. 서로 주고 받고 은혜와 물질과 사랑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남여선교회의 예배는 나누는 시간입니다. 감사 찬송, 기도는 주께 드리고, 주님은 우리 인간의 생명, 앞날, 자녀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주님께서는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는 올리고 주님은 내려주시고 우리는 감사하여 이웃에게 물질도 나누워 줍니다. 사랑을 패스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에서는 패스하는 법을 배웁니다. 서로가 다 존귀히 여기고 나누는 것입니다. 자기가 최고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경제나 스포츠가 모두 이 패스하는 법을 배울 때 존귀하게 됩니다. 남북한이 패스가 안되고 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심심하면 머리에 안둘러도 되는 빨간 띠를 매고 소리를 지르고 싸우고 있습니다. 강하면 강할수록 넘어집니다. 그러나 부드러움의 장점을 살려 서로 서로 패스를 잘하면 됩니다. 행복한 가정생활도 그렇습니다. 서로 고맙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좋은 음식있다고 하는데 같이 갑시다." 하면서 같이 찬스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부흥하는 것은 목사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패스를 잘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장로님들도 패스를 잘 해 주시고, 저도 다시 패스하고 이것이 잘 된 것입니다. 서로 많이 돕자는 것입니다. 저는 성격도 별로 안좋고 잘하는 것이 없으나 모든 교인들이 패스를 잘하니까 이렇게 목회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프랑스는 축구 대표 선수는 11명 뿐이지만 브라질을 이겨 온 나라가 승리의 영광을 누리듯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2002에는 우리 민족이 새롭게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실직이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냥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히 이길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승리하는 삶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상을 얻기 위해서 달려야 합니다. 그냥 포기하거나 운명론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목적을 주님 앞에서 세우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 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주는 나의 큰 능력, 큰 소망. 내가 항상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오늘 찬양은 참 은혜롭습니다. 설교 제목과 통하는 성가를 참 오랜만에 하였습니다. 잘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땅의 능력에 소망을 두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땅의 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전에 이 세상을 호령하던 자들은 지금 무덤에 누워있지만 예수님만이 영원히 다스리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길을 인도하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로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젖과 꿀이 있는 땅을 예비하시고 불러내십니다. 주님은 좋은 목표를 이미 두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가정생활, 사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2.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이기는 사람은 절제하는 사람입니다. 시간, 물질, 자신의 욕망이나 범사를 절제하는 삶입니다. 마지막 승리의 웃음은 절제하는 사람에게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곳에 가도 안되고, 아무 일이나 하면 안됩니다. 먹지 말라는 것들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곤충, 물고기 새 중에서 먹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크게 보면 비늘이 없는 것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새 중에는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는 것은 먹지 말라고 합니다. 무리를 짓지 않는 새는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악하고 더러운 것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해석이 여기 있습니다. 짐승 중에서도 굽이 갈라지지 않는 것, 통발인것, 되새김질하지 않는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신 소나 양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굽이 의미하는 것은 신앙이 갈라져야 한다는 것, 즉 의로운 것과 악한이 갈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죄악된 삶이 믿음의 길과 다릅니다. 신앙의 길과 불신앙의 길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굽이 갈라져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할 말과 안할 말, 먹을 것과 못먹을 것이 있는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의 길이며 승리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선택하면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름받은 삶을 경주자로 잘 달려가야 합니다. 잘 달려가면 좋은 날이 분명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늘 나를 바르게 하고 내 믿음을 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면 하나님 앞에서 복받게 됩니다.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가 문제인 것입니다. 다윗이 누구의 도움을 받았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앞에 바로 살때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앞에 담대했던 것입니다. 춘향이가 이도령을 사랑할 때가 16살이었는데 얼마나 당당하였습니까 그러나 월매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춘향이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굽이 갈라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약합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너무 약합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정신적으로 매우 약합니다. 20살이 되어서도 양말 한 쪽이라도 엄마가 안 도와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대입니다. 우리도 자녀들을 너무 약하게 기르고 있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힘있게 일어날 때입니다. 우리 모두가 세계를 향해 일어설 때 우리 민족이 새 민족이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 오더라도 주님을 의지하여 일어서는 거룩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고난이 이 민족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오히려 개인과 민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으로 재창조하는 좋은 기회가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합니까 저는 큰 공원에 불을 질러 다 태워버리고 그 곳을 새로운 수목으로 다시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나라도 지난 날의 잘못된 도덕과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국민성을 기르는 좋은 기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바람에 휩쓸리고 폭풍이 휘말리는 것과 같은 삶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경제위기 후에 범죄가 증가되고 자살자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가정이 파탄되고 이혼이 늘고 많은 청소년이 탈선하고 있고 가정주부들도 남편이 어려움과 실직을 당하자 몸을 팔아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마약과 술에 손대고, 자포자기하고 좌절하는 정신적인 몰락으로 나아가는 삶이 너무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 야곱은 어려움을 만날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룻은 남편을 잃고 이방땅에 왔지만 이삭을 주으면서 부지런히 일할 때 보하스 남편을 얻고 전보다 더 많은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나라가 어려울 때 영성운동을 통해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혈루병을 앓았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병이 낫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에스더가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유대민족은 메데와 파사 나라에서 위대한 민족으로 존중을 받게 되었습니다. 욥은 '고난이 지나면 좋은 날이 올 것을 굳게 믿고 금이 단련을 받는 것처럼 다시 살아나 견고해질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회개하고 소망을 갖고 힘을 다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민족으로, 다시 일어서는 민족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잘하는 이는 없습니다. 한 인생의 삶도 굴곡과 어려움이 있고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의 어떤 인물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잘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처음부터 천재는 아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하교에서 '무엇을 하든지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그 부모는 이것을 보고 낙심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는 단지 아인슈타인에게 이 쉐마 교육을 들려 준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쉐마교육이었습니다. 쉐마 교육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앉아있을 때나 누웠을 때에라도 이것을 가르쳐라.'는 것입니다. '쉐마' 라는 말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 말은 늦게 합니다. 토라는 성경을 말합니다. 선생과 부모되는 이들이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도록 말씀을 계속 들려주는 것입니다. 인생은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도 그 머리를 하나님께 향하면 휼륭한 사람이 되고 휼륭한 사람도 죄악된 길로 머리를 돌리면 할 수 없이 그런 사람이 되고 맙니다. 저는 어제 정부 지도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기를, "목사님, 미국이 경제공황이 왔을 때 무디선생이 나와 영적, 도덕적 회복 운동을 일으켜 미국이 잘 살게 되었습니다. 영국이 엉망이 되었을 때 웨슬레 형제가 나와서 옥스포드 대학부터 하나님의 말씀 운동을 일으켜 영국을 살려 냈습니다. 그룬투비 목사가 나와 덴마크를 위기에서 건져내지 않았습니까"라 했습니다. 그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인데도 하나님을 믿으면 민족과 나라가 사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어려운 때에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기도하고 회개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될 줄 믿습니다. 지금 탈옥수인 신창원을 지 못해 온 국민이 욕을 하고 돌을 경찰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만 나쁘고 잘못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또 간첩을 못잡는다고 해서 군인에게 워라고 막 그럽니다. 또 국회의원은 무엇을 하느냐 하면서 망신을 주고 그럽니다. 물론 국회의원도 문제가 있고 경찰이나 군인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다같이 책임을 질 문제입니다. 교회도 회개할 것이 있고 목회자나 기업가 선생도, 모든 국민이 다 반성하고 회개하고 다같이 일어서야 합니다. 어느 누구만 나쁘다고 돌을 던지면 안됩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기를 "링컨은 그렇게 가난할 때 고학해서 대통령이 되었다는데 너는 밤낮으로 그것이 뭐냐" 하니까 아들이 말합니다. "링컨은 아버지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는데 아버지는 그 나이가 되셔서 무엇합니까."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아이에게나 부부간에, 당신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같이 '내 잘못이다' 라고 생각해서 이 민족이 하나로 화합되고 또다시 저력을 만들고 재기의 터를 닦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들어가다가 앉은뱅이를 만납니다. 그 사도들이 "나는 은, 금은 없어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니 앉은뱅이가 걷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같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다시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믿는 사람의 삶이 '누구를 높이고 자랑하느냐, 삶의 목적이 어디있는지'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폿대는 예수님이고 그를 향해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똑같은 어려움을 겪어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예수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침체, 범죄, 실패, 연약한 앉은뱅이 처지에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은과 금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에수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가 일어나야 할 줄 믿습니다. 일어나 걸으라. 내가 새 힘을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니네 일어나. 걸으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저를 일으키실 분도 예수님이시고 교회와 여러분을 일으키실 이도 주 예수님이십니다. 맘이 속상하고 걱정 근심 미움과 정욕이 가득찬 괴로움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 때 찬송부르세요. 주님의 이름을 한마디라도 부르세요. 인간의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찬송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시도를 해 보세요. 주님은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일생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며 인생의 경주자로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줄 믿습니다. 인생은 계절과 같습니다. 항상 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나 가정과 사회도 그렇습니다. 여름은 덥습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면 열배를 맺게됩니다. 우리 가정도 여름을 거치면 가을에는 시원함을 느끼고 열매를 많이 맺게 됩니다. 만약 항상 봄으로 살면 꽃에서 끝나고 싹에서 끝납니다. 무더운 여름이 필요합니다. 어렵더라도 늘 주의 전을 다녀가야 합니다. 그것이 여름이다. 그러다 가을이 되어 자식들이 잘 되고. 그러다가 겨울이 오면 또 좋은 것입니다. 휴식을 할 수 있습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교회 생활도 그렇습니다. 항상 은혜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설교말씀이 무엇인지 하나도 안 들어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입니다.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추위가 봄을 만들어 내듯이 이 경제위기가 끝나면 좋은 시절이 다시 옵니다. 어떤 나라는 봄이 없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들레가 방긋 웃고 할미꽃이 손짓하며 진달래가 방긋하는 봄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경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을 마라톤과 비유합니다. 신앙은 경주입니다. 성경에는 '경주' 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요사이 살았더라면 분명히 월드컵에 대한 비유를 꼭 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월드컵에 기대를 걸었다가 이패일무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온 국민이 화가 나고 낙심되어 차범근 감독을 해임시키고 보상금도 차 감독에게는 한 푼도 안주었습니다. 우리국민이 참 가볍습니다. 다른 국민은 그렇지 않고 다 봐주는데 우리는 그 상황에서 차 감독을 해임시킵니다. 차 감독이 잘할 때, 중국, 일본과 싸울 때 잘한 것은 안 보고 있습니다. 세계의 어마어마한 선수들과 싸우는 것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은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예수님 같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 까요 "범근아, 힘내라. 기회가 한번 밖에 없나 수고했다. 힘내. 일억 줄께. 하시지 않을까요 에이, 예수님 같으면 긍휼을 많으시니까 그렇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나 다른 나라 축구 선수들은 잔디가 많은 땅에서 늘 경기를 했는데 우리는 맨땅에서만 축구하다가 월드컵에 가다가 보니 어려웠습니다. 우리와 많이 다른 환경에서 당장에 싸워서 일등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안됩니다. 오랜 인내가 필요한 것이 축구 게임입니다. 축구는 4분의 3박자입니다. 개인기, 팀웍, 페스와 골인이 잘 연결되어야 합니다.
1. 개인기입니다. 축구에서 개인기는 본인이 얼마나 노력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공 가지고 걸어가고 앉고 하는 개인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신앙도 개인기가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기도 안에서 기본기를 닦아야 합니다. 축구 선수가 늘 공을 가지고 놀듯이 우리 믿는 자들도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인물들 예를 들면, 아브라함, 링컨, 다윗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도 교회생활을 할 때 언제나 예수 안에서 항상 믿음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말씀과 교회 생활 중 믿음안에서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개인기는 선생에게 지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스포츠 선수가 좋은 감독을 만나고 코치를 잘 만나야 하듯이 신앙생활도 혼자는 안되고 지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믿음안에서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항상 배우는 선수가 좋은 선수가 되듯이 우리 성도도 항상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2. 팀워크입니다. 페스입니다. 프랑스는 스타가 없어도 이겼습니다. 프랑스 팀이 팀워크가 좋아서 주고 받으면서 찬스가 올 때 골인하듯이 우리도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패스를 잘해야 합니다. 교회생활도 팀워크가 필요합니다. 서로 주고 받고 은혜와 물질과 사랑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남여선교회의 예배는 나누는 시간입니다. 감사 찬송, 기도는 주께 드리고, 주님은 우리 인간의 생명, 앞날, 자녀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주님께서는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는 올리고 주님은 내려주시고 우리는 감사하여 이웃에게 물질도 나누워 줍니다. 사랑을 패스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에서는 패스하는 법을 배웁니다. 서로가 다 존귀히 여기고 나누는 것입니다. 자기가 최고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경제나 스포츠가 모두 이 패스하는 법을 배울 때 존귀하게 됩니다. 남북한이 패스가 안되고 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심심하면 머리에 안둘러도 되는 빨간 띠를 매고 소리를 지르고 싸우고 있습니다. 강하면 강할수록 넘어집니다. 그러나 부드러움의 장점을 살려 서로 서로 패스를 잘하면 됩니다. 행복한 가정생활도 그렇습니다. 서로 고맙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좋은 음식있다고 하는데 같이 갑시다." 하면서 같이 찬스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부흥하는 것은 목사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패스를 잘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장로님들도 패스를 잘 해 주시고, 저도 다시 패스하고 이것이 잘 된 것입니다. 서로 많이 돕자는 것입니다. 저는 성격도 별로 안좋고 잘하는 것이 없으나 모든 교인들이 패스를 잘하니까 이렇게 목회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프랑스는 축구 대표 선수는 11명 뿐이지만 브라질을 이겨 온 나라가 승리의 영광을 누리듯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2002에는 우리 민족이 새롭게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실직이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냥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히 이길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승리하는 삶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상을 얻기 위해서 달려야 합니다. 그냥 포기하거나 운명론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목적을 주님 앞에서 세우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 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주는 나의 큰 능력, 큰 소망. 내가 항상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오늘 찬양은 참 은혜롭습니다. 설교 제목과 통하는 성가를 참 오랜만에 하였습니다. 잘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땅의 능력에 소망을 두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땅의 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전에 이 세상을 호령하던 자들은 지금 무덤에 누워있지만 예수님만이 영원히 다스리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길을 인도하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로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젖과 꿀이 있는 땅을 예비하시고 불러내십니다. 주님은 좋은 목표를 이미 두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가정생활, 사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2.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이기는 사람은 절제하는 사람입니다. 시간, 물질, 자신의 욕망이나 범사를 절제하는 삶입니다. 마지막 승리의 웃음은 절제하는 사람에게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곳에 가도 안되고, 아무 일이나 하면 안됩니다. 먹지 말라는 것들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곤충, 물고기 새 중에서 먹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크게 보면 비늘이 없는 것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새 중에는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는 것은 먹지 말라고 합니다. 무리를 짓지 않는 새는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악하고 더러운 것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해석이 여기 있습니다. 짐승 중에서도 굽이 갈라지지 않는 것, 통발인것, 되새김질하지 않는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신 소나 양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굽이 의미하는 것은 신앙이 갈라져야 한다는 것, 즉 의로운 것과 악한이 갈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죄악된 삶이 믿음의 길과 다릅니다. 신앙의 길과 불신앙의 길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굽이 갈라져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할 말과 안할 말, 먹을 것과 못먹을 것이 있는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의 길이며 승리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선택하면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름받은 삶을 경주자로 잘 달려가야 합니다. 잘 달려가면 좋은 날이 분명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늘 나를 바르게 하고 내 믿음을 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면 하나님 앞에서 복받게 됩니다.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가 문제인 것입니다. 다윗이 누구의 도움을 받았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앞에 바로 살때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앞에 담대했던 것입니다. 춘향이가 이도령을 사랑할 때가 16살이었는데 얼마나 당당하였습니까 그러나 월매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춘향이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굽이 갈라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약합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너무 약합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정신적으로 매우 약합니다. 20살이 되어서도 양말 한 쪽이라도 엄마가 안 도와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대입니다. 우리도 자녀들을 너무 약하게 기르고 있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힘있게 일어날 때입니다. 우리 모두가 세계를 향해 일어설 때 우리 민족이 새 민족이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 오더라도 주님을 의지하여 일어서는 거룩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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