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야곱이 되지 말라 (창35:1-10)
본문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것은 창세기 32:28절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창35장10절에 보면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당부가 있으면서 성경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부릅니다. 이것은 사람의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는 변화의 역사요, 믿음의 역사요, 은혜의 역사입니다.
1.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보면 변화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 하셨던 것을 봅니다. 먼저 아브람이 변하여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무리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즉 믿음이 없는 자들의 대표자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후 ‘열국의 아비’ 즉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뜻은 ‘사기꾼, 무법자, 깡패’인데 이스라엘 = 이스라(다스리신다) + 엘(하나님) 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자가 되었습니다. 모세가(바로의 딸의 아들) 변하여 모세가(하나님의 종) 되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에 있으면 바로의 딸의 아들로 사회적 지위와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사면이 너무 중하여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을 네 품에 넣었다 빼라고 하셨습니다. 보니 손에 문둥병이 발했습니다. 다시 그리하라해서 손을 품에서 빼보니 깨끗해졌습니다. 또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팡이가 되는 역사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두 가지의 역사는 과거의 모세는 더러운 손 문둥병자 같았고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사탄 같았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능력의 사람이 되었다는 표적입니다. 시몬이 변하여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시몬은 변덕쟁이 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반석이 된 것은 주님을 만난 후의 역사입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요구하다’의 뜻을 가진 자로서 늘 불평 불만의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의 사건을 통하여 바울 ‘작은자, 겸손한자’로 변했습니다. 전에는 사울 자신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주님이 최고이심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학문을 배설물 같이 여기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변화는 본질적 변화입니다.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옥 자식이 변하여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 나물이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버림받습니다. 사울 왕은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자 결국 왕위가 다윗가(家)로 넘어갔습니다. 가룟 유다도 회개의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회개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자 버림받아 나지 않으면 좋은 사람 불행의 사람이 되어 창자가 터져 죽었습니다.
2.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합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믿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1) 순종이 믿음입니다. 노아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데 약120년이 걸렸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계신지 120년 후에 무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노아는 120년 동안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2) 기도가 믿음입니다. 아합왕 시대에 디셉사람 엘리야는 아무도 기도하지 않던 시대에 변함없이 기도했습니다. 엘리야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특별한 가문도 아닌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신할 때 엘리야는 하나님을 믿는 표현으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3) 믿음은 삶에 나타납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 종, 자녀가 죽었습니다. 또한 아내까지 욥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입술로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 취하신 분도 하나님이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찬양했습니다.
3.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이삭이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야곱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 [은혜 1] 창25:23절에 보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긴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태여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형보다 앞선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은혜 2]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잘한 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을 때 물권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은혜 3] 기도하지 않던 야곱 외삼촌 집에 가서 한번도 예배드리지 않던 야곱 그가 얍복강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은혜 4] 창34장과 35장 사이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히위족속 하몰의 아들에게 욕을 당했습니다. 이일로 야곱의 아들들이 히위 족속을 죽이는 살인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야곱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넘어진 곳은 벧엘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야곱 예배드리지 않던 야곱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나머진 문제를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벧엘로 올라가서 예배후 하나님은 추격하는 자가 없을 것을 약속하셨고,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다시는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이스라엘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 지난주 계속 되는 말씀 ]
(1)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합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믿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순종이 믿음입니다. 노아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데 약120년이 걸렸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계신지 120년 후에 무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노아는 120년 동안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기도가 믿음입니다. 아합왕 시대에 디셉사람 엘리야는 아무도 기도하지 않던 시대에 변함없이 기도했습니다. 엘리야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특별한 가문도 아닌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신할 때 엘리야는 하나님을 믿는 표현으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삶에 나타납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 종, 자녀가 죽었습니다. 또한 아내까지 욥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입술로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 취하신 분도 하나님이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찬양했습니다.
3.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이삭이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야곱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 [은혜 1] 창25:23절에 보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긴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태여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형보다 앞선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은혜 2]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잘한 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을 때 물권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은혜 3] 기도하지 않던 야곱 외삼촌 집에 가서 한번도 예배드리지 않던 야곱 그가 얍복강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은혜 4] 창34장과 35장 사이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히위족속 하몰의 아들에게 욕을 당했습니다. 이일로 야곱의 아들들이 히위 족속을 죽이는 살인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야곱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넘어진 곳은 벧엘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야곱 예배드리지 않던 야곱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나머진 문제를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벧엘로 올라가서 예배후 하나님은 추격하는 자가 없을 것을 약속하셨고,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다시는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이스라엘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보면 변화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 하셨던 것을 봅니다. 먼저 아브람이 변하여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무리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즉 믿음이 없는 자들의 대표자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후 ‘열국의 아비’ 즉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뜻은 ‘사기꾼, 무법자, 깡패’인데 이스라엘 = 이스라(다스리신다) + 엘(하나님) 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자가 되었습니다. 모세가(바로의 딸의 아들) 변하여 모세가(하나님의 종) 되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에 있으면 바로의 딸의 아들로 사회적 지위와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사면이 너무 중하여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을 네 품에 넣었다 빼라고 하셨습니다. 보니 손에 문둥병이 발했습니다. 다시 그리하라해서 손을 품에서 빼보니 깨끗해졌습니다. 또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팡이가 되는 역사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두 가지의 역사는 과거의 모세는 더러운 손 문둥병자 같았고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사탄 같았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능력의 사람이 되었다는 표적입니다. 시몬이 변하여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시몬은 변덕쟁이 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반석이 된 것은 주님을 만난 후의 역사입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요구하다’의 뜻을 가진 자로서 늘 불평 불만의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의 사건을 통하여 바울 ‘작은자, 겸손한자’로 변했습니다. 전에는 사울 자신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주님이 최고이심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학문을 배설물 같이 여기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변화는 본질적 변화입니다.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옥 자식이 변하여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 나물이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버림받습니다. 사울 왕은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자 결국 왕위가 다윗가(家)로 넘어갔습니다. 가룟 유다도 회개의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회개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자 버림받아 나지 않으면 좋은 사람 불행의 사람이 되어 창자가 터져 죽었습니다.
2.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합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믿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1) 순종이 믿음입니다. 노아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데 약120년이 걸렸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계신지 120년 후에 무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노아는 120년 동안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2) 기도가 믿음입니다. 아합왕 시대에 디셉사람 엘리야는 아무도 기도하지 않던 시대에 변함없이 기도했습니다. 엘리야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특별한 가문도 아닌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신할 때 엘리야는 하나님을 믿는 표현으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3) 믿음은 삶에 나타납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 종, 자녀가 죽었습니다. 또한 아내까지 욥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입술로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 취하신 분도 하나님이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찬양했습니다.
3.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이삭이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야곱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 [은혜 1] 창25:23절에 보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긴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태여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형보다 앞선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은혜 2]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잘한 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을 때 물권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은혜 3] 기도하지 않던 야곱 외삼촌 집에 가서 한번도 예배드리지 않던 야곱 그가 얍복강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은혜 4] 창34장과 35장 사이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히위족속 하몰의 아들에게 욕을 당했습니다. 이일로 야곱의 아들들이 히위 족속을 죽이는 살인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야곱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넘어진 곳은 벧엘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야곱 예배드리지 않던 야곱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나머진 문제를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벧엘로 올라가서 예배후 하나님은 추격하는 자가 없을 것을 약속하셨고,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다시는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이스라엘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 지난주 계속 되는 말씀 ]
(1)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합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믿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순종이 믿음입니다. 노아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데 약120년이 걸렸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계신지 120년 후에 무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노아는 120년 동안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기도가 믿음입니다. 아합왕 시대에 디셉사람 엘리야는 아무도 기도하지 않던 시대에 변함없이 기도했습니다. 엘리야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특별한 가문도 아닌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신할 때 엘리야는 하나님을 믿는 표현으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삶에 나타납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 종, 자녀가 죽었습니다. 또한 아내까지 욥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입술로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 취하신 분도 하나님이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찬양했습니다.
3.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이삭이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야곱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 [은혜 1] 창25:23절에 보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긴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태여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형보다 앞선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은혜 2]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잘한 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을 때 물권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은혜 3] 기도하지 않던 야곱 외삼촌 집에 가서 한번도 예배드리지 않던 야곱 그가 얍복강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은혜 4] 창34장과 35장 사이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히위족속 하몰의 아들에게 욕을 당했습니다. 이일로 야곱의 아들들이 히위 족속을 죽이는 살인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야곱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넘어진 곳은 벧엘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야곱 예배드리지 않던 야곱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나머진 문제를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벧엘로 올라가서 예배후 하나님은 추격하는 자가 없을 것을 약속하셨고,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다시는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이스라엘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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