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전천후 신앙생활 (욥2:7-10)

본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찢고 홍수와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어떻게 장마철이 다 지난 후에 꼭 이런 어려움이 오는지 유비무환이란 교훈을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한국은 비가 와도 걱정, 오지 않아도 걱정이다.
뉴스를 통해 보면 어떤 곳은 비때문에 농토 집이 떠내려가는데, 포항, 울산은 비가오지 않아 농이 갈라지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가뜩이나 가난한 나라에 수해, 한해로 보는 피해가 수십억어떤 때는 수백억 이번 홍수로도 수백억의 피해를 입었다.
이것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도 큰 손실일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의 상처로 국가의 소망이 허물어 지는 것이다.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도 선진국처럼 전천후 영농시설,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수리시설을 빨리 완비하여야 하겠다.
전천후란 말은 기후나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전천후 비행기는 날씨가 아무라 나빠도 하늘을 날아다닐 수있는 비행기를 말하는 것이고, 전천후 여객선이란 어떤 파도에도 견디며 항해를 할 수 있는 배를 말하는 것이다.
한시바삐 우리나라가 이런 어떤 기후조건에도, 어떤 날씨 변화에도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전천후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편하고 순조로우면 그 때문에 타락하고 곤고하면 그 때문에 낙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것은 신자의 바른 태도가 아니다.
“욥”과 같이 우리도 형통하든 곤고하든 요동 없이 꿋꿋한 전천후 신앙생활이라야 참 신자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 전천후 신앙생활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사도바울은 빌 1:20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또 고전10:31 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말씀하셨고
또 고후5:9에도
“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빌4:8에서도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바울의 신앙은 든지든지 신앙이다.
바로 전천후 신앙인인 것이다.
본문의 욥은 엄청난 고난 가운데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변함없는 전천후 신앙인임을 말씀해 주고 있다.
어떤 주변환경에도 달라지지 않고, 어떤 역경에서도 꾿꾿하게 견디며, 어떤 상황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인 것이다.
바로 이런 멋진 그리스도인의 삶을 알고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들이 되자.

그렇다면 전천후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1. 잘 되는 날에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지켜야할 준수사항에 “배불리 먹고 하나님을 찬송하라(신 8:10)”말씀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싱겁고 이상한 말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배가 고플 때 생각과는 달라진다.
예) 군대에서 졸병-고참이 되면,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는 며느리-내가 시어머니가 되면, 서양속담-여름 하루는 겨울 10일보다 더 음식이 상한다는 말처럼 신자는 역경보다 평탄 때문에 신앙을 잃을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욥은 잘 될 때도 하나님을 잘 섬겼다.
양 7천, 약대 3천, 소 5백, 암나귀 5백, 7남 3녀, 인격자.
인생이 순탄할 때도 하나님을 잘 섬겼다.
혹시 그 자녀들이 마음 속으로라도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을까 하여 생일잔치 후에는 한 사람씩 번제를 드렸다.
우리도 우리 인생에 순풍에 돛을 달게 될 때 내가 부르는 콧노래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찬양이 되어야 한다.
2. 잘 안 되는 날에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어려울 때 오히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살면 좋으련만 인간이란 대개 주린 창자를 졸라매면서까지 주님을 따르고 싶어하지 않는다.
등은 어두운 밤에, 지팡이는 험한 산길에 필요하다.
우리는 시련의 밤에 기도의 등을 끄고 환란의 험한 산에 신앙의 지팡이를 내던져서는 안 된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를 불러가며 신앙생활하던 사람이 질병과 가난의 밤에 실패와 배신의 고개 앞에서 그만 힘없이 쓰러지고 마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욥은 인생이 아주 잘못되는 날에도 하나님을 시종여일 잘 섬겼다.
재산을 모두 잃고, 10남매가 잔치 자리에서 몰사하고, 독한 질병에 걸리고, 친구들은 그 모든 불행을 가리켜 욥의 죄 값이라 하며, 아내마저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러나 욥은 주신 자도 하나님이며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리로다 하며 여전히 하나님을 잘 섬겼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은 다만 주로 믿게 할 뿐 아니라 그를 위해 고난을 받게 하시려는 목적(빌 1:29)임을 깨닫고 우리도 내 인생의 불경기 속에서도 시종 여일하게 하나님을 잘 섬겨 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있을 것이다.(엡 6:24)
3. 까닭 없이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사심없는 신앙, 이기적 욕심 없는 신앙)
사심이 전혀 없는 순수한 봉사나 희생심이란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예) 수해대책-의연금-정치적 목적으로 낸 100만원 보다 국민학교 어린이의 500원이 더 순수하다.
사람들은 흔히 많은 경우에 남을 위한 봉사까지도 실상은 나를 위해서 남을 위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께도 이런 식으로 대하려 한다.
사업이 잘 되고, 병이 고쳐지고, 자녀가 입학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서기지 그 이유가 없어지면 신앙도 버리고 냉랭해진다.
새벽 기도회에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는 사람이 늘어간다.
그러다가 그 문제가 끝나면 그만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약점을 뻔히 아는 사탄은 하나님께 고하기를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욥 1:10)”
그러나 욥은 이 모든 까닭이 없어져도 하나님을 잘 섬겼다.
예) 슐리어 엘마하, 군인이 나오는 것은 젊은 처녀 까닭이고 젊은 처녀는 대학생 까닭이며 대학생은 교수의 학점 까닭.
우리는 까닭없이 사심 없이 이기적인 욕심 없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죄를 대신 지셨으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만으로도 그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십리 길에도 굴곡이 있다.
사람이 사는 일에 평탄할 수 만은 없다.
하루에도 낮, 밤, 일년에도 춘하추동, 인생의 희비애락, 이런 것들에 구애되지 않는 전천후 신앙,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자.
사도바울처럼, 욥처럼 든지든지 신앙인, 어떤 것에도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만족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58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