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4 (행1:9-10)
본문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는 가장 큰 이유를 하나님께 매어 달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주를 위하여 헌신하는 마음과 주의 복음과 주의 나라를 위해서 충성할 마음을 갖고 있는 한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안 주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복은 주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모든 조건과 모든 기초에 관한 기본적인 충분한 조건일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모든 어려움들은 그 어려움을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내가 만들어져 가는 일종의 학교 공부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이상한 에 도달한다.
신자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핵심이 되는 사명은 사는 것이다. 이 말은 생존한다는 말이 아니다.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앙생활하면 일상생활에서 많은 시간들을 구별해 내어 주를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문이 이야기하는 바는 신자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 하늘보좌 우편에 가 계신 가장 큰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으며 보이는 이 세상에서의 가치가 최고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영원한 것이며 절대적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 곁은 떠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만들기 위하여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셔서 내가 그 기초 위에 서서 내 힘과 정성을 다 바쳐 주를 위해 무슨 할 일이 있는 자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 쪽이 주를 위해서 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를 만드시기 위하여 시대와 역사와 환경과 일 속에 우리를 태어나게 하셔서 그 사람들과 부딪히는 매일의 삶 속에서 영원한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어떤 업적을 남기는 싸움이 아니라 모든 일상 생활에서 영원한 것을 준비하는 자로서의 반응이요 영원한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자세와 실력을 키우기 위하여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하여 부딪혀 나를 만들어 가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전부 내가 잘 할 수 있고, 잘 알고 있는 전공 분야에만 상대를 끌어 들여서 비교하며 스스로를 신앙인이라고 자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학교 과목을 우리가 정하지 않듯이 우리가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과목을 우리가 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신앙인 되기 위해서 이런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목표를 정하면 대부분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훌륭한 것이다. 훌륭한 일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하듯이 우리가 훌륭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일상적인 우리의 생활을 신자답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정한 교과과목이다. 우리의 아내, 남편, 이 시대, 이 환경, 이웃, 친척 등이 과목이다. 그들과 부딪히면 신자로서 반응을 해야 한다.
세상에서 훌륭해지는 것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을 자녀에게 가르쳐야 한다. 세상에서 대접받는 것 말고 하늘 나라에서 대접받는 것으로 세상의 유혹과 괄시를 이기고 나가는 싸움을 해야 한다. 세상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이 거들먹거리는 데 시험받지 않아야 하고 악으로 악을 갚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왜 구제하고 헌금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 잘못이겠는가
그런데 그것 하나밖에 없으며 그게 유일한 신앙의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것은 열매이다. 그것은 과정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에 전도나 구제로 나타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이야말로 삶인 것이다. 과정이 생활이고 만들어진 일은 결국 이룬 일이고 열매이고 이다.
그런데 또 우리는 이 을 나열만 하고 있지 모두가 과정이 없다. 모두가 모여서 을 나열하는 법에만 익숙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점수를 잘 받는가 어떻게 해야 대접 잘 받는 괜찮은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을 알고 있지 그렇게 되는 과정을 겪고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둘로 나눠서 산다. 세상에 나가서 사는 법과 교회에 와서 엄숙 떠는 법을 양손에 들고 사는 교활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영원을 준비하여야 한다. 그 모든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점검하여야 한다. 그게 신앙생활이다. 그리고 우리는 훨씬 더 많이 실패한다. 정답을 알고 있는데 정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울부짖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때는 체념도 해야 한다. 그런 기간들을 거치고 거쳐서 드디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또 이상하게도 그런 신앙생활로 모두가 자신을 치장하고 있는, 속은 썪어 있으면서도 안 그런 얼굴을 하고 있고 남에게도 할 말 없고 스스로에게도 항복을 못하니까 신앙생활에 힘이 없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으로 가서 이 문제의 을 내리자.“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33-40)”
믿음의 위인들에 관한 설명이다. 그들이 어떤 일을 찾아갔다고 묘사하지 않고 그들이 삶에 부딪힌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영원한 목적지를 가는데 불어닥치는 칼날과 돌과 환난과 핍박과 경멸과 시험을 뚫고 걸어갔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해서 이런 방법과 이런 디딤돌로 저기를 갔다가 아니라 내가 일을 정하고 삶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환경과 시대는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그 속에서 부딪히는 모든 일에 대하여 영원한 목표로 가는 길에 이것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갔다는 것이 믿음의 위인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설명이다.
우리들도 중요한 싸움을 한다. 나는 큰일을 못하니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큰일이 아니라고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주를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죽는 것같이 오늘 사소한 문제에서 영원한 나라를 걷는 사람들로 유혹과 환난과 시험을 이겨내는 것이 동등한 대접을 받는 일이고 동등한 목적지를 향하여 내딛는 한 걸음이다.
그 한 걸음이 쌓여서 영원한 나라로 간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매일매일 그런 의미에서 목숨을 건 싸움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직까지는 대부분 실패한 여정이었을지 몰라도 실패될 수 없도록 운명되어진 사람이고 그 싸움이 매일, 그리고 가장 사소한 것으로, 평범한 것으로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것을 고쳐달라고 하지 말고 그것으로 인해 내가 영원을 준비하는 데 이익을 본다는 것과 그 길을 구부러뜨리려고 이 유혹과 시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하루하루가 분명히 주께 가까이 가는 영원한 나라의 사람다워지는 일에 어느 만큼 진전이 있는가로 늘 자기를 점검하는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모든 어려움들은 그 어려움을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내가 만들어져 가는 일종의 학교 공부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이상한 에 도달한다.
신자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핵심이 되는 사명은 사는 것이다. 이 말은 생존한다는 말이 아니다.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앙생활하면 일상생활에서 많은 시간들을 구별해 내어 주를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문이 이야기하는 바는 신자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 하늘보좌 우편에 가 계신 가장 큰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으며 보이는 이 세상에서의 가치가 최고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영원한 것이며 절대적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 곁은 떠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만들기 위하여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셔서 내가 그 기초 위에 서서 내 힘과 정성을 다 바쳐 주를 위해 무슨 할 일이 있는 자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 쪽이 주를 위해서 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를 만드시기 위하여 시대와 역사와 환경과 일 속에 우리를 태어나게 하셔서 그 사람들과 부딪히는 매일의 삶 속에서 영원한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어떤 업적을 남기는 싸움이 아니라 모든 일상 생활에서 영원한 것을 준비하는 자로서의 반응이요 영원한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자세와 실력을 키우기 위하여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하여 부딪혀 나를 만들어 가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전부 내가 잘 할 수 있고, 잘 알고 있는 전공 분야에만 상대를 끌어 들여서 비교하며 스스로를 신앙인이라고 자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학교 과목을 우리가 정하지 않듯이 우리가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과목을 우리가 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신앙인 되기 위해서 이런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목표를 정하면 대부분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훌륭한 것이다. 훌륭한 일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하듯이 우리가 훌륭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일상적인 우리의 생활을 신자답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정한 교과과목이다. 우리의 아내, 남편, 이 시대, 이 환경, 이웃, 친척 등이 과목이다. 그들과 부딪히면 신자로서 반응을 해야 한다.
세상에서 훌륭해지는 것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을 자녀에게 가르쳐야 한다. 세상에서 대접받는 것 말고 하늘 나라에서 대접받는 것으로 세상의 유혹과 괄시를 이기고 나가는 싸움을 해야 한다. 세상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이 거들먹거리는 데 시험받지 않아야 하고 악으로 악을 갚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왜 구제하고 헌금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 잘못이겠는가
그런데 그것 하나밖에 없으며 그게 유일한 신앙의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것은 열매이다. 그것은 과정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에 전도나 구제로 나타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이야말로 삶인 것이다. 과정이 생활이고 만들어진 일은 결국 이룬 일이고 열매이고 이다.
그런데 또 우리는 이 을 나열만 하고 있지 모두가 과정이 없다. 모두가 모여서 을 나열하는 법에만 익숙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점수를 잘 받는가 어떻게 해야 대접 잘 받는 괜찮은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을 알고 있지 그렇게 되는 과정을 겪고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둘로 나눠서 산다. 세상에 나가서 사는 법과 교회에 와서 엄숙 떠는 법을 양손에 들고 사는 교활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영원을 준비하여야 한다. 그 모든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점검하여야 한다. 그게 신앙생활이다. 그리고 우리는 훨씬 더 많이 실패한다. 정답을 알고 있는데 정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울부짖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때는 체념도 해야 한다. 그런 기간들을 거치고 거쳐서 드디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또 이상하게도 그런 신앙생활로 모두가 자신을 치장하고 있는, 속은 썪어 있으면서도 안 그런 얼굴을 하고 있고 남에게도 할 말 없고 스스로에게도 항복을 못하니까 신앙생활에 힘이 없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으로 가서 이 문제의 을 내리자.“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33-40)”
믿음의 위인들에 관한 설명이다. 그들이 어떤 일을 찾아갔다고 묘사하지 않고 그들이 삶에 부딪힌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영원한 목적지를 가는데 불어닥치는 칼날과 돌과 환난과 핍박과 경멸과 시험을 뚫고 걸어갔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해서 이런 방법과 이런 디딤돌로 저기를 갔다가 아니라 내가 일을 정하고 삶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환경과 시대는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그 속에서 부딪히는 모든 일에 대하여 영원한 목표로 가는 길에 이것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갔다는 것이 믿음의 위인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설명이다.
우리들도 중요한 싸움을 한다. 나는 큰일을 못하니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큰일이 아니라고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주를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죽는 것같이 오늘 사소한 문제에서 영원한 나라를 걷는 사람들로 유혹과 환난과 시험을 이겨내는 것이 동등한 대접을 받는 일이고 동등한 목적지를 향하여 내딛는 한 걸음이다.
그 한 걸음이 쌓여서 영원한 나라로 간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매일매일 그런 의미에서 목숨을 건 싸움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직까지는 대부분 실패한 여정이었을지 몰라도 실패될 수 없도록 운명되어진 사람이고 그 싸움이 매일, 그리고 가장 사소한 것으로, 평범한 것으로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것을 고쳐달라고 하지 말고 그것으로 인해 내가 영원을 준비하는 데 이익을 본다는 것과 그 길을 구부러뜨리려고 이 유혹과 시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하루하루가 분명히 주께 가까이 가는 영원한 나라의 사람다워지는 일에 어느 만큼 진전이 있는가로 늘 자기를 점검하는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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