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샘물을 팝시다 (창26:12-23)
본문
여호와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여러 성도님들의 기도에 힘입어 지난 19일 서울을 떠나 뉴욕에 있는 한인 중앙교회 집회와 동생 목사가 있는 뉴욕 만민교회 집회 를 은혜중에 잘 마치고 지난 26일 목요일 저녁에 무사히 귀국하였습니다. 뉴욕 에 도착하는 날 저녁부터 시작하여 떠나는 날 새벽까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 게 되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고 지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렇게까 지 들어 써 주심이 마냥 감사하기만 하였습니다. 다시 기도로 힘이 되어주신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고가는 동안에 비행기 안에서 책도 읽고 성경을 가까이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뉴욕까지는 비행기로 13시간이 걸렸으며 오는 시 간은 바람을 거슬러서인지 무려 16시간 가까이 걸리는 긴 여행이었습니다. 특히 구약 창세기를 읽어 가는 동안에 오늘 봉독한 말씀이 전에와는 달리 유난히 가 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삭이 샘을 팠다는 말씀을 읽으면서 무엇이 긇게 중요하 기에 하나님은 샘을 판 기사를 이렇게 자세히 기록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비하신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하심 이라는 생각이 들어 본문을 다시 생각하며 읽다가 큰 깨달음이 있어 함께 은혜 를 나누고자 합니다. 외국에 사는 교포들은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에 지대한 관심을 가 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국이 부흥과 발전은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자 신들의 입장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 약에 자국이 힘을 잃게 되면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발언권이 축소되고 입지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나라 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애국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에서 만나는 교 포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앞으로 전망이 어떻게 될지에 대하여 무척이나 궁금해 하고 염려하였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지식은 외국 뉴우스를 통한 것이여서 객관 적으로 상당히 타당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쳐 모르고 있는 것들에 대한 외국의 평가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별로 크 게 생각지 않은 것이지만 외국에 뉴우스를 통하여 알려진 것에 근거함으로 지 나치게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어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번에 외국에 살고 있는 분들과의 대화의 주제는 경제위기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나라의 입장에 대한것이었습니다. 견디어 낼 수 있겠느냐 아니면 나라가 부도에 처하는 것이 아니냐 또는 언제면 다시 회생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주된 관심이 었습니다. 이런 대화를 주고 받을 때마다 언제나 빠지지 않고 강조하며 그들에 게 위로를 준 말은 한국의 성도들이 기도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 하는 백성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고 분명 붙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고백하 였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나라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정치, 교육, 경제, 국방 등 그 어느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그 은혜를 받아 누 릴 수 있는 기도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84편 6절에 보면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 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asg은 분들을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정말 귀한 말씀입니다. 마음속에 기억하고 늘 음미할만한 귀한 말씀입니다. 고난의 골짜기를 통행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절망과 고통으로 사망의 골짜 기가 되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 골짜기를 사망과 고통의 골짜기 가 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샘의 골짜기가 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눈물의 골짜기요 아픔의 골짜기이지만 그는 믿음으로 그곳을 축복과 은혜의 샘이 넘치는 골짜기로 바꾸어 가게 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샘이라는 곳은 물이 나오는 곳으로 물이 귀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는 대 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 샘이 열림은 축복을 의 미합니다. 창세기 21장에 보면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낳은 후 종이면 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던 하갈을 박대하여 내어쫓았습니다. 하갈이 쫓겨나 광야를 헤메다 죽게 되었을 때에 19절에 보면 "하나님이 하 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하심을 보이신 것 이였고 마침내 복을 받아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블레셋에서 구한 역사상 가장 힘이 센 사사 삼손이 블레셋 사람과 싸움에 지쳐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사기 15장 19절에 보면 "하나님이 레히 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 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 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 에 오늘까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고난 당하는 사람에게 복주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샘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받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많은 샘이 터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 15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가 잘 되는 것을 그대로 못보는 경 향이 있습니다. 특히 영적으로 볼 때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은 혜를 받고 축복을 누린 것을 곱게 보지 않는 악한 사탄의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십일 새벽기도회에 은혜를 받고 또 귀한 종을 통하여 부흥회에 넘치는 은 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냥 두지 않고 우리들의 은혜의 샘을 막고 메 우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7절에서 "마귀로 틈을 타지 못 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은혜를 받고 그 안에서 충만하게 사는 꼴을 보지 못하고 은혜의 샘을 막아 넘치는 삶에서 떠나 염려하게 하고 근심하 게 사탄은 지금도 가진 계략을 다 부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7-18절에 보면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 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 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 이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다 메꾸어 샘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 샘을 다시 팠다고 하였습니다. 늘 주시는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아는 이삭인지라 은혜의 샘 파는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우리의 형편도 같습니다.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게을러 돌보지 않으면 블레셋과 같은 사탄의 무리들이 우리들의 영적인 샘을 막아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 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은혜의 샘이 막히게 되면 우리의 영혼 이 갈급하게 되고 점점 힘을 잃어 생기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샘을 막지 못하도록 늘 정신을 차리고 깨어 믿음에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이삭이 한 것처럼 우리도 막힌 우물을 다시 파야 합니다. 계속 블레셋 과 같은 사탄의 무리들이 있어 세상 염려와 걱정 근심이라는 돌과 흙으로 은혜 의 샘을 막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마음을 흐리게 하고 근심과 염 려로 두려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믿음을 떠나게 하려고 유혹합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기도 생활을 통하여 이런 잡동사니들을 끄집어 내 어 은혜의 샘이 막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삭은 그랄 골짜기에 있던 아브라함때 팠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러자 그 랄 목자들이 자신들의 물이라고 하여 계속 다투어야만 했습니다. 20-21절에 "그 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삭은 다른 곳으로 전전하며 우물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 으로 그랄 사람들과 싸우면서 아브라함의 우물을 지키게 하지 않으시고 자기 우물을 다시 파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다른 사람을 통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 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한 사람 한사람이 바로 깨 닫고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시인하고 은혜 안에 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 내가 믿는 나의 하나님이 있어야 그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22절에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 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였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이삭의 우물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그랄 사람들과 싸우지 않아도 되었고 넉넉하고 넓은 땅에서 번성하는 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삭 자신이 판 자신의 우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내가 깨닫게 된 나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내가 믿게 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 되심과 내가 고백하고 찬양할 수 있는 은혜의 충만함이 있어 야 함을 보이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샘을 파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샘에서 얻어 마시는 샘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영원히 갈하지 않는 샘이 터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4장 14절에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샘물을 마심으로 시작 된 영원히 갈하지 않고 솟아나는 샘물의 역사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샘물을 팝시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다고 하여도 은혜의 샘이 막히지 않도록 또 파고 또 팝시다. 은혜의 샘이 마르지 않으면 그곳에서 번성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샘을 팜으로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린 이 삭의 역사가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자국이 부흥과 발전은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자 신들의 입장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 약에 자국이 힘을 잃게 되면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발언권이 축소되고 입지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나라 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애국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에서 만나는 교 포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앞으로 전망이 어떻게 될지에 대하여 무척이나 궁금해 하고 염려하였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지식은 외국 뉴우스를 통한 것이여서 객관 적으로 상당히 타당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쳐 모르고 있는 것들에 대한 외국의 평가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별로 크 게 생각지 않은 것이지만 외국에 뉴우스를 통하여 알려진 것에 근거함으로 지 나치게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어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번에 외국에 살고 있는 분들과의 대화의 주제는 경제위기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나라의 입장에 대한것이었습니다. 견디어 낼 수 있겠느냐 아니면 나라가 부도에 처하는 것이 아니냐 또는 언제면 다시 회생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주된 관심이 었습니다. 이런 대화를 주고 받을 때마다 언제나 빠지지 않고 강조하며 그들에 게 위로를 준 말은 한국의 성도들이 기도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 하는 백성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고 분명 붙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고백하 였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나라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정치, 교육, 경제, 국방 등 그 어느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그 은혜를 받아 누 릴 수 있는 기도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84편 6절에 보면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 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asg은 분들을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정말 귀한 말씀입니다. 마음속에 기억하고 늘 음미할만한 귀한 말씀입니다. 고난의 골짜기를 통행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절망과 고통으로 사망의 골짜 기가 되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 골짜기를 사망과 고통의 골짜기 가 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샘의 골짜기가 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눈물의 골짜기요 아픔의 골짜기이지만 그는 믿음으로 그곳을 축복과 은혜의 샘이 넘치는 골짜기로 바꾸어 가게 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샘이라는 곳은 물이 나오는 곳으로 물이 귀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는 대 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 샘이 열림은 축복을 의 미합니다. 창세기 21장에 보면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낳은 후 종이면 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던 하갈을 박대하여 내어쫓았습니다. 하갈이 쫓겨나 광야를 헤메다 죽게 되었을 때에 19절에 보면 "하나님이 하 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하심을 보이신 것 이였고 마침내 복을 받아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블레셋에서 구한 역사상 가장 힘이 센 사사 삼손이 블레셋 사람과 싸움에 지쳐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사기 15장 19절에 보면 "하나님이 레히 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 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 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 에 오늘까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고난 당하는 사람에게 복주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샘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받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많은 샘이 터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 15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가 잘 되는 것을 그대로 못보는 경 향이 있습니다. 특히 영적으로 볼 때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은 혜를 받고 축복을 누린 것을 곱게 보지 않는 악한 사탄의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십일 새벽기도회에 은혜를 받고 또 귀한 종을 통하여 부흥회에 넘치는 은 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냥 두지 않고 우리들의 은혜의 샘을 막고 메 우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7절에서 "마귀로 틈을 타지 못 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은혜를 받고 그 안에서 충만하게 사는 꼴을 보지 못하고 은혜의 샘을 막아 넘치는 삶에서 떠나 염려하게 하고 근심하 게 사탄은 지금도 가진 계략을 다 부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7-18절에 보면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 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 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 이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다 메꾸어 샘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 샘을 다시 팠다고 하였습니다. 늘 주시는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아는 이삭인지라 은혜의 샘 파는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우리의 형편도 같습니다.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게을러 돌보지 않으면 블레셋과 같은 사탄의 무리들이 우리들의 영적인 샘을 막아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 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은혜의 샘이 막히게 되면 우리의 영혼 이 갈급하게 되고 점점 힘을 잃어 생기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샘을 막지 못하도록 늘 정신을 차리고 깨어 믿음에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이삭이 한 것처럼 우리도 막힌 우물을 다시 파야 합니다. 계속 블레셋 과 같은 사탄의 무리들이 있어 세상 염려와 걱정 근심이라는 돌과 흙으로 은혜 의 샘을 막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마음을 흐리게 하고 근심과 염 려로 두려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믿음을 떠나게 하려고 유혹합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기도 생활을 통하여 이런 잡동사니들을 끄집어 내 어 은혜의 샘이 막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삭은 그랄 골짜기에 있던 아브라함때 팠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러자 그 랄 목자들이 자신들의 물이라고 하여 계속 다투어야만 했습니다. 20-21절에 "그 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삭은 다른 곳으로 전전하며 우물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 으로 그랄 사람들과 싸우면서 아브라함의 우물을 지키게 하지 않으시고 자기 우물을 다시 파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다른 사람을 통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 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한 사람 한사람이 바로 깨 닫고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시인하고 은혜 안에 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 내가 믿는 나의 하나님이 있어야 그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22절에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 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였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이삭의 우물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그랄 사람들과 싸우지 않아도 되었고 넉넉하고 넓은 땅에서 번성하는 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삭 자신이 판 자신의 우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내가 깨닫게 된 나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내가 믿게 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 되심과 내가 고백하고 찬양할 수 있는 은혜의 충만함이 있어 야 함을 보이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샘을 파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샘에서 얻어 마시는 샘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영원히 갈하지 않는 샘이 터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4장 14절에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샘물을 마심으로 시작 된 영원히 갈하지 않고 솟아나는 샘물의 역사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샘물을 팝시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다고 하여도 은혜의 샘이 막히지 않도록 또 파고 또 팝시다. 은혜의 샘이 마르지 않으면 그곳에서 번성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샘을 팜으로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린 이 삭의 역사가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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