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하는 주인 (마25:14-30)
본문
오늘날 우리의 사회구조와 문화구조는 전통적인 한국의 것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욱이 농경문화에서 도시화와 기계화로의 급격한 변화는 추수에 대한 느낌을 반감시켰으며, 추수감사주일의 의의가 많은 부분 상실되고 있음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추수감사절이 성서적인 절기 호칭이 아니기에 그에 대한 재고의 목소리는 계속 있어 왔고, 그로 말미암아 추석에 감사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열매에 대한 감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단지 감사헌금만 하는 절기로 추수감사주일이 전락되고 있는 것입니다. 1621년 청고도들이 드린 첫 추수감사예배는
1)지키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예배였습니다.
2)그 지역의 인디언을 초청하여 예배와 감사를 드렸으며 그들과 함께 나눈 나눔과 화해의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이 감사예배의 원래 의미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사랑하심에 대한 감사와 그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은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교회가 드려야 할 참된 예배의 내용인 것입니다.
1. 기회를 부여하는 주인
주인은 일꾼이 지니고 있는 재능과 여건에 따라서 모험하고 수고하고 정성을 기울여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기로 결심하고 교회에 등록한 그 시간부터 경주장에 출전한 경주자가 되어서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므로' 선한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인은 일꾼의 상태나 행동의 성격과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 차등을 두어 분배(19절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를 보아서는 위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합니다. 그들 중 둘은 그것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선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안일하고 소극적이며 답습적이고 현상 보존적 안일과 안주의 자세를 취하여서 비신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2. 장사하는 일꾼(16절)
존 웨슬리 목사님은 "재물을 열심히 모으시오, 열심히 저축하시오, 구제를 위해 쓰시오."라는 그리스도인의 경제관을 교훈하신 바가 있습니다.
재물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장사'라 하는 것은 성도들이 지니고 있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총체적인 방법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일꾼의 행동은 엄격히 말해서 봉사의 성격이 아니라 일꾼으로서 지녀야 할 성실한 자세라 말할 수 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에서 주인이 일꾼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은 먼 곳에 가 있었기 때문에 감독하거나 일꾼의 행동에 제약을 가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꾼의 행동은 자의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업윤리는 수단과 방법을 우선하기보다는 성실과 근면이 우선되어야 하며 많은 이득보다는 `수고한 대고 먹게 되기를 ' 그리고 `자신의 행위에 합당한 소득'을 추구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를 통해서 그들은 그에 합당한 이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3. 저희와 회계할 새(19절)
결과는 과정을 평가하는 유일한 수단이며, 과정은 좋은 결과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임산부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순산이요, 해산한 부부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자녀의 올바른 양육이며, 한 인간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어떻게 죽을 것이냐일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인을 통한 일꾼에 대한 평가(회계할 새)는 일정기간 동안의 수고와 결과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매순간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도 하고 가리기도 합니다. 매순간 우리는 심판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고 또한 그순간 우리는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의 순간이 되고 다가오는 시간은 다시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으로, 기회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 매순간의 행동은 단순한 인간의 행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종말론적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서 기도하기에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가운데 간직하고 시대를 분별함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의 전신갑주를 두르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선행과 덕행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냄으로써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뜻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열매에 대한 감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단지 감사헌금만 하는 절기로 추수감사주일이 전락되고 있는 것입니다. 1621년 청고도들이 드린 첫 추수감사예배는
1)지키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예배였습니다.
2)그 지역의 인디언을 초청하여 예배와 감사를 드렸으며 그들과 함께 나눈 나눔과 화해의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이 감사예배의 원래 의미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사랑하심에 대한 감사와 그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은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교회가 드려야 할 참된 예배의 내용인 것입니다.
1. 기회를 부여하는 주인
주인은 일꾼이 지니고 있는 재능과 여건에 따라서 모험하고 수고하고 정성을 기울여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기로 결심하고 교회에 등록한 그 시간부터 경주장에 출전한 경주자가 되어서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므로' 선한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인은 일꾼의 상태나 행동의 성격과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 차등을 두어 분배(19절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를 보아서는 위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합니다. 그들 중 둘은 그것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선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안일하고 소극적이며 답습적이고 현상 보존적 안일과 안주의 자세를 취하여서 비신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2. 장사하는 일꾼(16절)
존 웨슬리 목사님은 "재물을 열심히 모으시오, 열심히 저축하시오, 구제를 위해 쓰시오."라는 그리스도인의 경제관을 교훈하신 바가 있습니다.
재물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장사'라 하는 것은 성도들이 지니고 있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총체적인 방법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일꾼의 행동은 엄격히 말해서 봉사의 성격이 아니라 일꾼으로서 지녀야 할 성실한 자세라 말할 수 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에서 주인이 일꾼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은 먼 곳에 가 있었기 때문에 감독하거나 일꾼의 행동에 제약을 가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꾼의 행동은 자의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업윤리는 수단과 방법을 우선하기보다는 성실과 근면이 우선되어야 하며 많은 이득보다는 `수고한 대고 먹게 되기를 ' 그리고 `자신의 행위에 합당한 소득'을 추구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를 통해서 그들은 그에 합당한 이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3. 저희와 회계할 새(19절)
결과는 과정을 평가하는 유일한 수단이며, 과정은 좋은 결과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임산부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순산이요, 해산한 부부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자녀의 올바른 양육이며, 한 인간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어떻게 죽을 것이냐일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인을 통한 일꾼에 대한 평가(회계할 새)는 일정기간 동안의 수고와 결과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매순간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도 하고 가리기도 합니다. 매순간 우리는 심판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고 또한 그순간 우리는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의 순간이 되고 다가오는 시간은 다시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으로, 기회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 매순간의 행동은 단순한 인간의 행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종말론적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서 기도하기에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가운데 간직하고 시대를 분별함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의 전신갑주를 두르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선행과 덕행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냄으로써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뜻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