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희망 (슥9:1-17)
본문
오늘 스가랴 9장에서 함께 같이 공부하시겠습니다. 스가랴 9장을 함께 같이 공부하시겠습니다. 한마디로 스가랴 9장의 장 제목을 붙일 수가 있다면 예루살렘의 희망, 혹은 시온의 희망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스가랴서를 4개의 커다란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둘째는 8개의 환상들, 8개의 이상들을 두번째 부분을 형성합니다. 세번째 부분은 두개의 메시지, 두개의 메시지는 금식과 회복의 메시지 7장과8장, 오늘 9장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14장까지, 이 부분은 네번째 부분인데 두개의 예언, 두개의 예언혹은 두개의 신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신탁. 신탁이라는 말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느냐 하면 자, 스가랴 9장1절을 우리 한번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스가랴 9장1절 다같이 시작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 네 거기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이런 말로 시작되죠 경고가 우리가9장부터 14장까지 마지막 장까지를 다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면 9장부터11장 까지가 이 두개의 예언 가운데 첫번째 예언이에요 또 12장부터14장까지가 두번째 예언의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두번째 예언이 시작되는 다시 12장1절을 보시면요
12장 1절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12장1절 다같이 시작,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 자 12장1절 어떤 낱말로 시작됩니까 경고 경고라 경고란 말을 히브리말로 맛사, 맛사라고 말합니다. 맛사, 아- 이것은 본래 부담이다 이런 뜻입니다. burden 마음의 부담이다. 혹은 이 단어를 어근에서부터 연구하고 있는 성서학자들은 이것이 본래 마음의 부담이 큰소리로 외쳐진 모습이다. 이것은 일종의 심판성의 경고를 뜻하는 말입니다. 심판성의 경고. 종종 이러한 경고들을 아- 우리 서양 문학편에서는 이것을 신탁이라는 낱말로 불렀습니다. 소위 오라클, 신탁. 미래에 대한 심판성의 경고다. 그러나 이것은 비관적인 경고만은 아닙니다. 경고의 밑바탕에는 희망적 예언이 동시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네번째 부분, 스가랴서의 네번째 부분을 다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면9장 부터11장까지가 첫번째 예언, 그리고12장부터14장까지가 두번째 예언. 이 첫번째 예언은 이방인에 대한 심판의 경고, 이방인에 대한 심판의 경고. 그러나 이방인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밑바탕에서 희망적인 예언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오심의 예언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의 예언. 두번째부분 자 이 네번째 부분을 다시 크게 둘로 나누었을 때의 마지막 부분이 12장부터 14장까지는 이방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경고입니다. 이스라엘민족에 대한 심판의 경고. 다시 경고의 밑바탕에는 다시 희망적 예언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예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메시야의 재림의 예언. 그래서 쉽게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자 스가랴서를 크게 네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요.
첫째는 둘째는 8개의 이상, 혹은 환상. 그 다음에 세번째는 두개의 메세지. 두개의 메세지는 뭡니까 금식과 회복의 메세지.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두개의 예언. 두개의 예언은 쉽게 이렇게, 기억이 잘 안되면은 두개의 예언은 예수님의 초림의 예언, 재림의 예언. 이렇게 두가지를 생각하고 있어도 되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이방인에 대한 심판. 이방인에 대한 심판이 먼저 나와요. 이방인에 대한 심판의 예언. 그 다음에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예언. 이 두개의 예언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오늘 본문 9장으로 들어와서 이 9장을 예루살렘의 희망,이런 타이틀을 붙였는데 이 9장을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9장1절부터8절까지, 여기는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타인 정복의 예언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타인의 정복의 예언. 그리고 9장9절에서 17절까지는 멧시야의 초림의 예언, 멧시야의 오심에대한 예언. 이렇게 9장을 다시 두 부분으로 두 섹션으로 나눌 수가 있겠습니다. 자, 우선 9장1절부터8절까지, 그 중에서도 다시 또 두 부분으로 나눠요. 9장1절부터4절까지는 팔레스타인 북부지역의 정복에 대한 예언, 또 5절부터8절까지는 팔레스타인 남부지역의 정복에대한 예언. 자, 우리1절부터4절까지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스가랴9장 1절부터4절까지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1절: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색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 2절:그 접경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 에게도 임하리라 3절: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은즉 4절: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지 라 자 이 부분이 뭐에요 무슨 예언이에요 팔레스타인 북부지역 정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누가 정복하느냐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을 합니다. 주전BC 336년경에 마케도니아에는 아주 존경받는 유명한 한 사람이 왕이 됩니다. 그 왕의 이름이 필립이라는 왕이에요. 필립,
그런데 왕은 나중에 후세 역사에서 그 필립이라는 왕보다 그 아들의 이름이 더 알려지게 됩니다. 이 필립왕의 아들이 누구일까요 알렉산더입니다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페르시야의 그 당시의 통치자였던 다리오스를 정복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한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갖습니다. 온 세상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겠다. 그래서 온 세계 정복에 대한 꿈을 가졌습니다.온 세상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는 단순한 군사적인 정복자였을 뿐 아니라 그는 문화적인 정복자였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에게서 우리가 흔히 헬레니즘의 선교적 사도, 헬레니즘이라는 헬라 문화를 전파한 그런 사도라 이렇게 보통 일컬어집니다. 그는 정복하는 모든 정복지에 피정복지에 헬라의 문화를 심습니다. 또 헬라의 스포츠를 심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가 정복한 모든 곳에 헬라 스타일의 그 스포츠 스타디움이, 체육관이 건립이 되고 그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헬라어를 헬라어, 그리스어를 세계적인 언어로 보급합니다. 이것은 사실은 신약적인 관점에서 볼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알렉산더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했지마는 그 알렉산더 배후에서 하나님이 알렉산더를 쓰신 것이다, 그러니까 알렉산더가 전세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만들어놓으니까 나중에 지금 기독교인들의 최후의 명령 지상명령은 뭡니까 땅끝까지 전도하는 것인데 전도의 가장 커다란 방해물이 무얼까요 언어가 다른것이에요. 그래서 알렉산더가 세계언어를 하나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얼마나 전도하기에 쉬운거에요 녜, 헬라어, 헬라어를 전세계 공용어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로 신약성경은 무슨 말로 쓰여집니까 헬라어로, 이 그리스어로 쓰여집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보통사실이 아니지요. 알렉산더는 몰랐지만 누가 쓰셨을까요 하나님이 알렉산더를 쓰신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많아요. 나도 모르지만 내 배후에서 누가 나를 쓰실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그러니 언제 어떻게 쓰시나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네, 알렉산더를 하나님이 쓰신거에요. 그래서 그는 전세계를 땅끝까지 정복할 야망을 갖고 알려진 그 당시의 전세계 정복원정을 합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지 와요. 팔레스타인 땅까지, 이스라엘 땅까지 와서 정복을 하고 애굽까지 정복을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오래 살지는 못했습니다.
33세에 예수님처럼 요절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자, 그가 팔레스타인 땅까지 정복의 발걸음을 옮겼을 때 팔레스타인 땅 지금의 이스라엘땅 북방지역이 어떻게 정복되었는가가 여기 예언되어 있어요. 예언, 저는 이것 하나만 보아도 성경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냐 그런 사실을 알 수가 있어요. 예언한 그대로, 정복예언을 한 그대로 정복의 역사가 펼쳐져 갑니다. 자,1절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이 하드락 땅이 어디일까 신학자들이 아주 논쟁을 벌리는 그 초점중의 하나인데, 일반적으로 오늘날 성서학자 특별히 구약 고고학자들은 이 하드락 땅을 시리아의 땅하고 일치 시킵니다. 특별히 시리아의 고대도시 가운데 하타리카, 하타리카 라는 고대도시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앗수르의 고대 비문들의, 그 고고학자들이 그 비문들을 해석해 보니까 그런 도시가 존재했든 그 기록이 나왔습니다. 바로 그래서 이 하드락 땅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면 되요 시리아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는거에요. 시리아 땅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이 다메섹, 소위 다마스코스, 다마스코스, 다메섹, 다메섹 하면 누가 생각이 나요 바울생각이 나죠 다메섹으로 가다가 회심을 하죠 이것이 시리아에요. 이 다마스코스 라는 도시는 시리아의 수도입니다. 시리아의, 그러니까 하드락 땅에 임하며 특별히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봄이니라 자, 어떤 사건이 일어날까요 2절, 그 접경된 하맛에도 하맛, 하맛은 역시 이것은 팔레스타인의 북방 도시인데 시리아 레바논쪽으로 오른테스라는 강이 흘러가는데 강 상류에 있었든 도시중의 하나가 하맛이라는 도시였습니다. 거기에도 알렉산더가 왔어요. 쳐들어 왔을때 거기까지 왔습니다. 하맛에도 임하겠고, 또 어디에 두로와 시돈, 여러분이 성지 지도를 펼쳐보면 해안지방을 타고 이스라엘 북쪽을 가면 거기 두로와 시돈 이라는 두개의 도시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다시 말하면 알렉산더가 두로와 시돈까지도 점령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본래 이 두로와 시돈은 그 이스라엘의 해안도시 가운데서도 가장 무역항이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해외 무역을 위해서 이 두로나 시돈에서부터 무역하는 배들이 출항을 합니다. 그래서 자연히 이 도시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번영되는 그런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돈이 많았어요. 심지어는 이 도시의 과거를 역사적으로 뒤져보면 고고학적으로 뒤져보면은 은이 먼지처럼 그리고 금이 진흙처럼 쌓여있던 도시다.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곳에 가서 한번 살아보면, 보석상 갈 필요도 없고 은이 먼지처럼 금이 진흙처럼 쌓여있었던 도시, 그것이 시돈과 두로의 형편이였습니다. 그 많은 경제적인 부요, 그 돈을 가지고 그들은 매우 강력한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성을 건설합니다. 뿐만아니라 약 그 두로에서부터 한 반 마일쯤 떨어진, 반 마일쯤 떨어진 조그만 섬이 있었는데 그 섬에다가 150피트, 150자의 철벽 같은 성읍을 건설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처음에 이 두로와 시돈을 점령하는데 한 5개월쯤 걸렸지만 이 사람들이 다 그 바닷가에 있는 작은 섬 안에 그 성을 쌓고 그 안에 들어가 있으니까 그 성을 깨는데 알렉산더가 7개월을 소모합니다.
그런데 방법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모든 이 두로나 시돈을 격파해 볼려고 시도한 사람들이 과거에 다 실패했어요. 처음으로 알렉산더가 성공했습니다. 방파제를 만들어가지고 육지와 그 섬을 연결하는 땅을 메꾸는 작업을 통해서 드디어 이 성읍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니까 이 두로와 시돈사람들은 굉장히 교만했어요. 돈도 많고 그리고 왜적에게 점령당한 역사도 없고 우리는 항상 이긴다, 자존심이 있단 말이죠. 프라이드가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굉장히 아주 교만했든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 이 교만 때문에 이 도시들을 심판하신다는 거에요. 그 심판의 도구로 누가 쓰임을 받은 겁니까 알렉산더를 들어서 하나님이 이 도시 사람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자 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4절 다같이 시작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지라 그래서 성경예언 그대로 이루어졌어요. 그대로 이루어졌어요. 여러분 성경은 그냥 뭐 어떤 얘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예언하고 있고 또 그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예언들은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 가능해요 하나님 말씀 아니에요 이것이 성경이, 녜 그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이제 9장5절부터8절까지는 팔레스타인 이제는 북부지역이 아니라 어디도 남부지역도 정복된다 알렉산더에 의해서. 자 한번 그 부분을 읽겠습니다. 5절부터 8절까지를 같이 읽어요.
시작 5절: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6절: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셌 사람의 교만을 끊고 7절: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 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같이 되리라 8절: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 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 으로 친히 봄이니라 녜, 우리가 그 6절에 보시면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두로와 시돈 사람들만이 교만했던 것이 아니라 그 해안지방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면은 남쪽 도시에 사는 사람도 굉장히 교만했습니다. 대개 해안지방 사람들이 돈도 잘 벌고 또 부유하고 그러니까 군사적인 무장도 갖추고 이러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 지형적으로 이들은 교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었을런지 모릅니다. 블레셋, 바로 이 남쪽지역에 살고있었든 지방을 주로 블레셋이라고 불렀습니다. 블레셋, 블레셋 족속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죠 이 블레셋이란 말에서부터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거기에서 나온거에요. 필리스틴, 필레셋트, 필리스틴, 팔레스타인. 거기서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지금도 이스라엘하고 팔레스타인하고 싸우잖아요 바로 그 지역의 원조 원조들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피에로의 원조들이 바로 이 남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보면은 그 남부지역에 유명한 5개의 도시가 있었는데 4개의 도시의 지명이 다 나타나요. 4개의 도시, 자 어떤 지명들이 나타납니까 5절에 보시면 아스글론, 또 가사, 가사도 나오잖아요. 가사, 잘 봐요. 가사일에 바빠서 가사가 안보이십니까 하하 가사, 그 다음에 에그론 에그론, 또 어디에 뭐가 나와요 6절에 아스돈, 이 4개의 지명이 나와요. 하나만 딱 빠졌습니다. 갓 이라는 도시가 빠져있어요. 갓, 갓. 그 한 도시만 빼고 4개의 도시지명이 여기 다 나타나있어요.
그런데 4개의 도시들이 다 역시 그들의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알렉산더는 이 남부지역까지도 도시들까지도 휩쓸고 다 점령을 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의 죄 뿐 만아니라 7절에보시면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재하리니 그것은 우상숭배를 뜻해주고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고 우상의 피를 마시든 사람들, 그들이 그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 여기 예언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런 재앙에 대한 예언만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희망적 징후들도 그 7절에 보면은 나타나있죠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된다고 그랬어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같이 되리라 그들은 멸절한다고 예언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세우고 회복되는 사람도 세우고 가나안 땅에서 당당한 삶을 누릴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이 피에로,팔레스타인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성경의 예언이에요.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뭐냐하면 사실은 유태인들이 예수를 지금 더 안 믿습니다. 우리가 성지순례를 해보면 이스라엘 땅에 가보면 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녜, 오히려. 그래서 우리는 심정적으로 유대하고 팔레스타인 하고 싸우면 어디를 동정하게 됩니까 심정적으로, 녜 이스라엘에서도 동정적인 그런 마음을 갖습니다마는 크리스챤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가운데 훨씬 더 많아요. 저는 그것이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해요. 예언의 성취. 지금 베들레헴 같은데도 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통치하고 있어요. 다스리고 베들레헴. 그리고 크리스챤 사람들이 적지않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챤 인들을 만나보면 다 유대인들이 아니고 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성경의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알렉산더의 거침없는 행진,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와서 저 북쪽으로부터 시작해서 남쪽까지 해안을 타고 내려오면서 하는 정복의 역사 가운데서 기묘하게 한 도시만이 정복에서 예외가 됩니다. 알렉산더가 거기는 정복하지 못해요 뭘까요 어디를 정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녜 8절에 나와있어요 8절, 자 8절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8절 다같이 시작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하나님이 어디는 보호해준다고 그랬어요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보호하겠다. 내 집이 어딜까요 예루살렘, 녜 예루살렘 도성을 의미하는 거에요. 그래 예루살렘만을 보호하겠다!
그런데 이상하죠 이상하다 못해 참 놀라운 사실입니다. 미치고 환장하도록 놀라운 사실이에요. 이것이 졸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이 졸아야 할 문제가 아니에요 너무 놀라운 사실이에요. 알렉산더가 팔레스타인 땅을 전체적으로 다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요. 가다가 아- 그 캠프에서 군대 막사에서 꿈을 꾸는데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말씀하셔요. 그래서 알렉산더가 꿈을 믿고 예루살렘을 정복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그 꿈은 개꿈입니까 신령한 꿈입니까 하하- 하나님이 주신 꿈임에 틀림이 없어요. 그래서 이 말씀이 성취되었어요. 8절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여기에 예루살렘의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 땅의 사람들의 교만과 사치와 또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심판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러나 그 심판 속에서도 당신의 집을 구별하고 그 백성들을 지켜 보호하시고 예루살렘성에 하나님의 소망을 두시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오늘 이 세상을 심판하시면서도 당신의 백성들을 눈동자같이 오늘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쳐 보호하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상하신 섭리를 우리는 확인하게 됩니다. 자 우리가 9장의 두번째 부분 이제 9장9절부터 17절까지, 여기는 무슨 예언이 있다고 그랬어요 9장의 두번째 부분, 9장의 두번째 부분. 메시야의 오심의 예언, 메시야의 초림의 예언. 메시야가 오신다는 예언. 자 알렉산더는 어떤 의미에서 메시야가 오실 길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사자였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는 몰랐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쓰신거에요. 그래서 길을 준비하고 세계가 다 통할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고 언어도 준비하고 또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하다 보면 선교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뭐냐하면 문화적인 장벽이에요. 문화적인 장벽. 그래서 문화를 어떻게 뛰어넘느냐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문화를 뛰어넘느냐 Cross cultural이라는, 문화를 어떻게 뛰어넘느냐 그래서 다른 문화 속에 우리와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느냐 이것이 큰 문제인데 그 당시에 참 편리했든 것이 누가 다 문화를 통일시켰어요 알렉산더가, 다 헬라 문화로 다 이렇게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놓았단 말이죠. 하나님이 하신 일 입니다. 그리고 할 일을 다 하니까 알렉산더는 어떻게 되어야 됩니까 돌아가셔야 합니다. 하하`- 그래서 할 일을 어느정도 해놓고 나서 알렉산더는 죽습니다. 33세에 요절을 했어요. BC 323년에 죽었는데 죽은 후에 자기의 신하들에 의해서 알렉산더가 통치하든 세계가 한 3개의, 크게 3개의 지역으로 분활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4개, 조그만 자치제가 하나 있었습니다마는 보통 3개로 나누는데,
그런데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금 이스라엘 땅과 시리아 레바논 그쪽 , 그쪽 지역에 통치자로 임명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등장하는 통치자가 누구냐하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라는 사람이에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이 사람이 주전 175년까지 통치합니다. 주전175년까지 다스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일종의 뭐냐하면 알렉산더의 통치의 연장선상에서 통치하고 있는 일종의 헬라 희랍문화를 가지고 이 팔레스타인 땅을 다스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라는 사람이 악질이에요 문제는, 악질입니다. 아주 악질입니다. 그래서 아주 팔레스타인 땅을 다스리는 동안에 아주 악한 통치를 진행합니다. 우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우스신상, 희랍의 제우스 신상을 앉혀 놓았어요. 그리고 유대인들이 고기 가운데 제일 싫어하는 고기가 무얼까요 녜 돼지고기 싫어해요 유대인들이 돼지고기 안먹죠 녜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돼지 대가리 같은 것을 성전 안에다가 갖다 놓고 돼지 피를 성전 여기저기에다 발라놓고,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죠 도전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하고 할례를 폐하고 또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하는 종교적 의무를 다 패기하고 반대 시켰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돼요 여러분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자 우리가 나라를 빼앗기고 짓밟혀온 경험이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돼요 그렇게 되면 열 받지요 뭐 열 받지요 녜,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독립운동을 시작해요. 그때 제사장 가운데 마티아스라는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는데 경건한 제사장이고 민족을 사랑하는 제사장이였습니다. 그가 우리민족을 살려야겠다 이렇게 시리아의 횡포를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자기 자신도 똑똑했지만 자식들이 똑똑해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과 더불어 붕개합니다. 그들을 막카비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않아요 녜 교회 오래 다니다 보면 좀 어디선가 그런 말도 들어본 것 같은 생각이 나야 되요. 마카비 형제, 소위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중간기. 우리가 구속사를 공부하면 다 공부하게 되는데 마침 내일부터 우리가 구속사를 공부합니다마는 그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시대를 얘기해 주고 있는거에요. 유다 마카비 그 중에서도 형제들 가운데서도 제일 지도자가 유다 마카비. 마카비란 말은 망치라는 말입니다. 망치 hammer, 왜 망치유다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사람 유다 마카비의 얼굴이 생긴게 꼭 망치같이 생겨서 그렇게 별명을 붙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게 아니라 그의 강력한 전술, 게릴라전을 통해서 이 시리아와 대결하면서 매우 효과적인 민족해방 전쟁을 벌렸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드디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를 쫓아내고 그리고 성전을 회복해요. 성공했어요. 이 독립운동이, 게릴라식 독립운동이 성공을 합니다. 13절 한번 보세요. 9장13절, 9장1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9장13절 시작,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이게 바로 무슨 예언일까요 녜 이게 바로 마카비 예언이에요. 자 어디에서 알수 있어요 13절에서 어떤 부분 내가 네 자식들을 격동 시켜 하나님이 격동시켜서 누구를 치게 한다구요 헬라자식들을, 헬라 자식들이 바로 누구에요 바로 이 시리아. 아-그리고 바로 알렉산더의 후속 세력들. 그게 헬라 자식들이에요.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여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성공합니다. 성공해서 성전을 빼았고 성전을 뺏고나서 제일 먼저 무얼하느냐 하면 이런 청소를 해요. 더러운 것들을 다 청소하고 제우스상을 없애고 돼지 다 없애고 그 다음에 불을 켭니다. 어두워졌든 캄캄했든 성전에 일제히 메노라의 촛불이 등불이 환하게 빛나요. 그래서 신약성경에 가면은 그게 수전절이라고 되어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유태인들은 지금도 지키는데 일년 중에 아주 중요한 명절로 지키는데 이것을 하누카! 하누카 그런데 하누카 명절이 꼭 시기적으로 언제 같이 오느냐 하면은 크리스마스하고 같이 와요. 비슷한 때에요. 그래서 난 처음에 미국가서 살다가 우리 동네근처에 유대인들이 많은데 집집마다 그냥 다 이렇게 촛불을 많이 밝혀놓아서 크리스마스를 촛불 가지고 다 지키는구나 이 동네는, 무식해 가지고 몰랐어요.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지키는게 아니라 유대인들이 하누카의 명절을 지키는 그런 의식입니다. 자 16절 한번 같이 한번 읽어봐요. 16절 다같이 시작,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같이 구원 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그것이 성취된 거에요. 자, 그래서 마지막에 어떻게 되느냐, 17절 그 결과 다같이 읽겠습니다. 17절 시작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하리로다 이 포도주나 곡식은 기쁨과 풍요의 상징이죠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의 회복, 형통함과 아름다움이 회복되는 모습,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예루살렘의 이런 회복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더 중요한 예언이 나와요.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그렇게 왜적의 세력에서 해방하는 것, 거기서부터 끝나지 않아요. 예루살렘에 대한 기대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왜적의 침략에서 해방되어 잘 살게 된다, 하나님은 거기서 만족할 수가 없어요. 더 근본적인 해방,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더 근본적인 해방, 이번에는 가난에서의 해방이나 외세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 무슨 문제일까요 죄의 문제, 죄로부터 해방되어 정말 자유한 그리고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해방, 예루살렘의 진정한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한 분을 예비하십니다. 그분이 누구일까요 예수그리스도. 그 예언이 어디에 나옵니까 11절 녜, 아주 유명한 예언이지요 자 11절같이 읽습니다 시작 아, 9절부터 읽어요 9절 먼저 읽어요.9절부터 먼저 읽겠습니다. 9절10절을 먼저 읽고, 자 9절 10절 시작, 9절: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절: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어 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 우선 거기 까지만 읽으세요. 어떻게 또 이렇게 때를 맞추어서 하나님이 딱 이 말씀을 우리 고난주간에 이렇게 묵상하도록, 제가 계획한 것도 아닌데, 고난주간 이때 9장하자! 딱 그런것도 아닌데, 저는 언제든지 놀래요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님이 때를 잘 맞추어주시나, 하나님의 타임테이블은 정확합니다.
자 지나간 주일을 우리가 무슨 주일이라고 부릅니까 지난주일을 종료주일, 녜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멧시야로, 멧시야로 입성하신 그 사건이 여기 예언되어 있는거죠 BC 700년, 주전 700년경에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이 사건이 일어나기 700년 전에,그분이 메시야되실 그 예수그리스도가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여러분 그래도 성경이 성경이 아니에요 우연히 그렇게 일치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우연히 자 우리가 나중에 신약성경에 보시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 뭐 타고 오세요 나귀새끼 타고 오시잖아요 그대로, 예언된 그대로, 녜, 자 이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희망의 시작. 진정한 복음 진정한 희망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뿐만이 아니에요. 인간의 더 근본적인 문제, 죄로부터 해방되어 정말 하나님 앞에 죄 사함 받고 자유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복음이죠 믿습니까 여러분 자, 이 복음이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뭘 전할 것이요 화평을 전할 것이요 예수그리스도는 이방 사람들에게 군사적인 정복을 하는 알렉산더 같은 그런 분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는 뭘 전한다고 그랬어요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예수님의 정권은 어디에 미칠까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어디까지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스도의 정권은 이루게 될 것이다. 그분은 어떤 정부도 소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온 세계 안에 그분을 따르는 무리들로 가득합니다. 전세계 흩어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주간에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고난을 기억하잖아요 이것이 복음의 시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엄청난 역사를 보세요. 이 엄청난 예언, 녜. 이게 돌아버릴 문제에요. 이렇게 놀라운, 성경의 예언이 이렇게 정확할 수가 있어요 아주 디테일 하게 정확한 예언. 뿐만 아니라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11절입니다.
1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그런데 어떻게 주님이 해방하시는가 군사적인 방법으로 정복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한다고 그랬어요 언약의 피를 통해서 하시겠다. 언약의 피! 이게 정확하게 이루어진 것이 목요일 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밤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면서 잔을 높이 드시고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잔은 너희를 위해서 흘리는 내 언약의 피!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이에요. 언약의 피! 피! 녜. 다시한번 읽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물론 이것은 가까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해방되는 사건을 얘기해주고 있지마는 궁극적으로 이것은 뭐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예언입니다. 물 없는 구덩이 같은 지옥에서, 사회적인 압제에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지옥에서부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든, 황량하고 허무한 지옥에서부터 우리를 건져내신 분, 우리를 그렇게 건져내시기 위해서 예수께서는 이땅에 오셔서2000년전 바로 이주간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피를,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보혈의 피, 그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고 새로운 생명, 새로운 평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우신 구세주 메시야를 예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 그렇습니다. 정치적인 압제보다 더 무서운 영적인 압제. 죄 때문에, 방황하고 죄 때문에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상처 받고 괴롭고 어두운 인생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구세주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그가 예루살렘성에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시고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를 지시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므로 이 그리스도를 받아드리는 사람마다 새로운 삶을 새로운 평강을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감사하십시요. 그의 이름을 높여 드리십시요.
첫째는 둘째는 8개의 환상들, 8개의 이상들을 두번째 부분을 형성합니다. 세번째 부분은 두개의 메시지, 두개의 메시지는 금식과 회복의 메시지 7장과8장, 오늘 9장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14장까지, 이 부분은 네번째 부분인데 두개의 예언, 두개의 예언혹은 두개의 신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신탁. 신탁이라는 말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느냐 하면 자, 스가랴 9장1절을 우리 한번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스가랴 9장1절 다같이 시작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 네 거기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이런 말로 시작되죠 경고가 우리가9장부터 14장까지 마지막 장까지를 다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면 9장부터11장 까지가 이 두개의 예언 가운데 첫번째 예언이에요 또 12장부터14장까지가 두번째 예언의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두번째 예언이 시작되는 다시 12장1절을 보시면요
12장 1절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12장1절 다같이 시작,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 자 12장1절 어떤 낱말로 시작됩니까 경고 경고라 경고란 말을 히브리말로 맛사, 맛사라고 말합니다. 맛사, 아- 이것은 본래 부담이다 이런 뜻입니다. burden 마음의 부담이다. 혹은 이 단어를 어근에서부터 연구하고 있는 성서학자들은 이것이 본래 마음의 부담이 큰소리로 외쳐진 모습이다. 이것은 일종의 심판성의 경고를 뜻하는 말입니다. 심판성의 경고. 종종 이러한 경고들을 아- 우리 서양 문학편에서는 이것을 신탁이라는 낱말로 불렀습니다. 소위 오라클, 신탁. 미래에 대한 심판성의 경고다. 그러나 이것은 비관적인 경고만은 아닙니다. 경고의 밑바탕에는 희망적 예언이 동시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네번째 부분, 스가랴서의 네번째 부분을 다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면9장 부터11장까지가 첫번째 예언, 그리고12장부터14장까지가 두번째 예언. 이 첫번째 예언은 이방인에 대한 심판의 경고, 이방인에 대한 심판의 경고. 그러나 이방인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밑바탕에서 희망적인 예언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오심의 예언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의 예언. 두번째부분 자 이 네번째 부분을 다시 크게 둘로 나누었을 때의 마지막 부분이 12장부터 14장까지는 이방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경고입니다. 이스라엘민족에 대한 심판의 경고. 다시 경고의 밑바탕에는 다시 희망적 예언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예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메시야의 재림의 예언. 그래서 쉽게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자 스가랴서를 크게 네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요.
첫째는 둘째는 8개의 이상, 혹은 환상. 그 다음에 세번째는 두개의 메세지. 두개의 메세지는 뭡니까 금식과 회복의 메세지.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두개의 예언. 두개의 예언은 쉽게 이렇게, 기억이 잘 안되면은 두개의 예언은 예수님의 초림의 예언, 재림의 예언. 이렇게 두가지를 생각하고 있어도 되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이방인에 대한 심판. 이방인에 대한 심판이 먼저 나와요. 이방인에 대한 심판의 예언. 그 다음에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예언. 이 두개의 예언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오늘 본문 9장으로 들어와서 이 9장을 예루살렘의 희망,이런 타이틀을 붙였는데 이 9장을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9장1절부터8절까지, 여기는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타인 정복의 예언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타인의 정복의 예언. 그리고 9장9절에서 17절까지는 멧시야의 초림의 예언, 멧시야의 오심에대한 예언. 이렇게 9장을 다시 두 부분으로 두 섹션으로 나눌 수가 있겠습니다. 자, 우선 9장1절부터8절까지, 그 중에서도 다시 또 두 부분으로 나눠요. 9장1절부터4절까지는 팔레스타인 북부지역의 정복에 대한 예언, 또 5절부터8절까지는 팔레스타인 남부지역의 정복에대한 예언. 자, 우리1절부터4절까지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스가랴9장 1절부터4절까지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1절: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색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 2절:그 접경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 에게도 임하리라 3절: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은즉 4절: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지 라 자 이 부분이 뭐에요 무슨 예언이에요 팔레스타인 북부지역 정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누가 정복하느냐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을 합니다. 주전BC 336년경에 마케도니아에는 아주 존경받는 유명한 한 사람이 왕이 됩니다. 그 왕의 이름이 필립이라는 왕이에요. 필립,
그런데 왕은 나중에 후세 역사에서 그 필립이라는 왕보다 그 아들의 이름이 더 알려지게 됩니다. 이 필립왕의 아들이 누구일까요 알렉산더입니다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페르시야의 그 당시의 통치자였던 다리오스를 정복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한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갖습니다. 온 세상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겠다. 그래서 온 세계 정복에 대한 꿈을 가졌습니다.온 세상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는 단순한 군사적인 정복자였을 뿐 아니라 그는 문화적인 정복자였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에게서 우리가 흔히 헬레니즘의 선교적 사도, 헬레니즘이라는 헬라 문화를 전파한 그런 사도라 이렇게 보통 일컬어집니다. 그는 정복하는 모든 정복지에 피정복지에 헬라의 문화를 심습니다. 또 헬라의 스포츠를 심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가 정복한 모든 곳에 헬라 스타일의 그 스포츠 스타디움이, 체육관이 건립이 되고 그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헬라어를 헬라어, 그리스어를 세계적인 언어로 보급합니다. 이것은 사실은 신약적인 관점에서 볼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알렉산더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했지마는 그 알렉산더 배후에서 하나님이 알렉산더를 쓰신 것이다, 그러니까 알렉산더가 전세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만들어놓으니까 나중에 지금 기독교인들의 최후의 명령 지상명령은 뭡니까 땅끝까지 전도하는 것인데 전도의 가장 커다란 방해물이 무얼까요 언어가 다른것이에요. 그래서 알렉산더가 세계언어를 하나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얼마나 전도하기에 쉬운거에요 녜, 헬라어, 헬라어를 전세계 공용어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로 신약성경은 무슨 말로 쓰여집니까 헬라어로, 이 그리스어로 쓰여집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보통사실이 아니지요. 알렉산더는 몰랐지만 누가 쓰셨을까요 하나님이 알렉산더를 쓰신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많아요. 나도 모르지만 내 배후에서 누가 나를 쓰실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그러니 언제 어떻게 쓰시나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네, 알렉산더를 하나님이 쓰신거에요. 그래서 그는 전세계를 땅끝까지 정복할 야망을 갖고 알려진 그 당시의 전세계 정복원정을 합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지 와요. 팔레스타인 땅까지, 이스라엘 땅까지 와서 정복을 하고 애굽까지 정복을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오래 살지는 못했습니다.
33세에 예수님처럼 요절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자, 그가 팔레스타인 땅까지 정복의 발걸음을 옮겼을 때 팔레스타인 땅 지금의 이스라엘땅 북방지역이 어떻게 정복되었는가가 여기 예언되어 있어요. 예언, 저는 이것 하나만 보아도 성경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냐 그런 사실을 알 수가 있어요. 예언한 그대로, 정복예언을 한 그대로 정복의 역사가 펼쳐져 갑니다. 자,1절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이 하드락 땅이 어디일까 신학자들이 아주 논쟁을 벌리는 그 초점중의 하나인데, 일반적으로 오늘날 성서학자 특별히 구약 고고학자들은 이 하드락 땅을 시리아의 땅하고 일치 시킵니다. 특별히 시리아의 고대도시 가운데 하타리카, 하타리카 라는 고대도시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앗수르의 고대 비문들의, 그 고고학자들이 그 비문들을 해석해 보니까 그런 도시가 존재했든 그 기록이 나왔습니다. 바로 그래서 이 하드락 땅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면 되요 시리아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는거에요. 시리아 땅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이 다메섹, 소위 다마스코스, 다마스코스, 다메섹, 다메섹 하면 누가 생각이 나요 바울생각이 나죠 다메섹으로 가다가 회심을 하죠 이것이 시리아에요. 이 다마스코스 라는 도시는 시리아의 수도입니다. 시리아의, 그러니까 하드락 땅에 임하며 특별히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봄이니라 자, 어떤 사건이 일어날까요 2절, 그 접경된 하맛에도 하맛, 하맛은 역시 이것은 팔레스타인의 북방 도시인데 시리아 레바논쪽으로 오른테스라는 강이 흘러가는데 강 상류에 있었든 도시중의 하나가 하맛이라는 도시였습니다. 거기에도 알렉산더가 왔어요. 쳐들어 왔을때 거기까지 왔습니다. 하맛에도 임하겠고, 또 어디에 두로와 시돈, 여러분이 성지 지도를 펼쳐보면 해안지방을 타고 이스라엘 북쪽을 가면 거기 두로와 시돈 이라는 두개의 도시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다시 말하면 알렉산더가 두로와 시돈까지도 점령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본래 이 두로와 시돈은 그 이스라엘의 해안도시 가운데서도 가장 무역항이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해외 무역을 위해서 이 두로나 시돈에서부터 무역하는 배들이 출항을 합니다. 그래서 자연히 이 도시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번영되는 그런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돈이 많았어요. 심지어는 이 도시의 과거를 역사적으로 뒤져보면 고고학적으로 뒤져보면은 은이 먼지처럼 그리고 금이 진흙처럼 쌓여있던 도시다.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곳에 가서 한번 살아보면, 보석상 갈 필요도 없고 은이 먼지처럼 금이 진흙처럼 쌓여있었던 도시, 그것이 시돈과 두로의 형편이였습니다. 그 많은 경제적인 부요, 그 돈을 가지고 그들은 매우 강력한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성을 건설합니다. 뿐만아니라 약 그 두로에서부터 한 반 마일쯤 떨어진, 반 마일쯤 떨어진 조그만 섬이 있었는데 그 섬에다가 150피트, 150자의 철벽 같은 성읍을 건설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처음에 이 두로와 시돈을 점령하는데 한 5개월쯤 걸렸지만 이 사람들이 다 그 바닷가에 있는 작은 섬 안에 그 성을 쌓고 그 안에 들어가 있으니까 그 성을 깨는데 알렉산더가 7개월을 소모합니다.
그런데 방법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모든 이 두로나 시돈을 격파해 볼려고 시도한 사람들이 과거에 다 실패했어요. 처음으로 알렉산더가 성공했습니다. 방파제를 만들어가지고 육지와 그 섬을 연결하는 땅을 메꾸는 작업을 통해서 드디어 이 성읍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니까 이 두로와 시돈사람들은 굉장히 교만했어요. 돈도 많고 그리고 왜적에게 점령당한 역사도 없고 우리는 항상 이긴다, 자존심이 있단 말이죠. 프라이드가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굉장히 아주 교만했든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 이 교만 때문에 이 도시들을 심판하신다는 거에요. 그 심판의 도구로 누가 쓰임을 받은 겁니까 알렉산더를 들어서 하나님이 이 도시 사람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자 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4절 다같이 시작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지라 그래서 성경예언 그대로 이루어졌어요. 그대로 이루어졌어요. 여러분 성경은 그냥 뭐 어떤 얘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예언하고 있고 또 그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예언들은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 가능해요 하나님 말씀 아니에요 이것이 성경이, 녜 그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이제 9장5절부터8절까지는 팔레스타인 이제는 북부지역이 아니라 어디도 남부지역도 정복된다 알렉산더에 의해서. 자 한번 그 부분을 읽겠습니다. 5절부터 8절까지를 같이 읽어요.
시작 5절: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6절: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셌 사람의 교만을 끊고 7절: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 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같이 되리라 8절: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 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 으로 친히 봄이니라 녜, 우리가 그 6절에 보시면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두로와 시돈 사람들만이 교만했던 것이 아니라 그 해안지방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면은 남쪽 도시에 사는 사람도 굉장히 교만했습니다. 대개 해안지방 사람들이 돈도 잘 벌고 또 부유하고 그러니까 군사적인 무장도 갖추고 이러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 지형적으로 이들은 교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었을런지 모릅니다. 블레셋, 바로 이 남쪽지역에 살고있었든 지방을 주로 블레셋이라고 불렀습니다. 블레셋, 블레셋 족속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죠 이 블레셋이란 말에서부터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거기에서 나온거에요. 필리스틴, 필레셋트, 필리스틴, 팔레스타인. 거기서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지금도 이스라엘하고 팔레스타인하고 싸우잖아요 바로 그 지역의 원조 원조들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피에로의 원조들이 바로 이 남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보면은 그 남부지역에 유명한 5개의 도시가 있었는데 4개의 도시의 지명이 다 나타나요. 4개의 도시, 자 어떤 지명들이 나타납니까 5절에 보시면 아스글론, 또 가사, 가사도 나오잖아요. 가사, 잘 봐요. 가사일에 바빠서 가사가 안보이십니까 하하 가사, 그 다음에 에그론 에그론, 또 어디에 뭐가 나와요 6절에 아스돈, 이 4개의 지명이 나와요. 하나만 딱 빠졌습니다. 갓 이라는 도시가 빠져있어요. 갓, 갓. 그 한 도시만 빼고 4개의 도시지명이 여기 다 나타나있어요.
그런데 4개의 도시들이 다 역시 그들의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알렉산더는 이 남부지역까지도 도시들까지도 휩쓸고 다 점령을 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의 죄 뿐 만아니라 7절에보시면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재하리니 그것은 우상숭배를 뜻해주고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고 우상의 피를 마시든 사람들, 그들이 그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 여기 예언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런 재앙에 대한 예언만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희망적 징후들도 그 7절에 보면은 나타나있죠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된다고 그랬어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같이 되리라 그들은 멸절한다고 예언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세우고 회복되는 사람도 세우고 가나안 땅에서 당당한 삶을 누릴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이 피에로,팔레스타인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성경의 예언이에요.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뭐냐하면 사실은 유태인들이 예수를 지금 더 안 믿습니다. 우리가 성지순례를 해보면 이스라엘 땅에 가보면 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녜, 오히려. 그래서 우리는 심정적으로 유대하고 팔레스타인 하고 싸우면 어디를 동정하게 됩니까 심정적으로, 녜 이스라엘에서도 동정적인 그런 마음을 갖습니다마는 크리스챤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가운데 훨씬 더 많아요. 저는 그것이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해요. 예언의 성취. 지금 베들레헴 같은데도 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통치하고 있어요. 다스리고 베들레헴. 그리고 크리스챤 사람들이 적지않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챤 인들을 만나보면 다 유대인들이 아니고 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성경의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알렉산더의 거침없는 행진,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와서 저 북쪽으로부터 시작해서 남쪽까지 해안을 타고 내려오면서 하는 정복의 역사 가운데서 기묘하게 한 도시만이 정복에서 예외가 됩니다. 알렉산더가 거기는 정복하지 못해요 뭘까요 어디를 정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녜 8절에 나와있어요 8절, 자 8절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8절 다같이 시작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하나님이 어디는 보호해준다고 그랬어요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보호하겠다. 내 집이 어딜까요 예루살렘, 녜 예루살렘 도성을 의미하는 거에요. 그래 예루살렘만을 보호하겠다!
그런데 이상하죠 이상하다 못해 참 놀라운 사실입니다. 미치고 환장하도록 놀라운 사실이에요. 이것이 졸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이 졸아야 할 문제가 아니에요 너무 놀라운 사실이에요. 알렉산더가 팔레스타인 땅을 전체적으로 다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요. 가다가 아- 그 캠프에서 군대 막사에서 꿈을 꾸는데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말씀하셔요. 그래서 알렉산더가 꿈을 믿고 예루살렘을 정복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그 꿈은 개꿈입니까 신령한 꿈입니까 하하- 하나님이 주신 꿈임에 틀림이 없어요. 그래서 이 말씀이 성취되었어요. 8절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여기에 예루살렘의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 땅의 사람들의 교만과 사치와 또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심판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러나 그 심판 속에서도 당신의 집을 구별하고 그 백성들을 지켜 보호하시고 예루살렘성에 하나님의 소망을 두시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오늘 이 세상을 심판하시면서도 당신의 백성들을 눈동자같이 오늘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쳐 보호하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상하신 섭리를 우리는 확인하게 됩니다. 자 우리가 9장의 두번째 부분 이제 9장9절부터 17절까지, 여기는 무슨 예언이 있다고 그랬어요 9장의 두번째 부분, 9장의 두번째 부분. 메시야의 오심의 예언, 메시야의 초림의 예언. 메시야가 오신다는 예언. 자 알렉산더는 어떤 의미에서 메시야가 오실 길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사자였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는 몰랐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쓰신거에요. 그래서 길을 준비하고 세계가 다 통할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고 언어도 준비하고 또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하다 보면 선교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뭐냐하면 문화적인 장벽이에요. 문화적인 장벽. 그래서 문화를 어떻게 뛰어넘느냐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문화를 뛰어넘느냐 Cross cultural이라는, 문화를 어떻게 뛰어넘느냐 그래서 다른 문화 속에 우리와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느냐 이것이 큰 문제인데 그 당시에 참 편리했든 것이 누가 다 문화를 통일시켰어요 알렉산더가, 다 헬라 문화로 다 이렇게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놓았단 말이죠. 하나님이 하신 일 입니다. 그리고 할 일을 다 하니까 알렉산더는 어떻게 되어야 됩니까 돌아가셔야 합니다. 하하`- 그래서 할 일을 어느정도 해놓고 나서 알렉산더는 죽습니다. 33세에 요절을 했어요. BC 323년에 죽었는데 죽은 후에 자기의 신하들에 의해서 알렉산더가 통치하든 세계가 한 3개의, 크게 3개의 지역으로 분활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4개, 조그만 자치제가 하나 있었습니다마는 보통 3개로 나누는데,
그런데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금 이스라엘 땅과 시리아 레바논 그쪽 , 그쪽 지역에 통치자로 임명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등장하는 통치자가 누구냐하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라는 사람이에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이 사람이 주전 175년까지 통치합니다. 주전175년까지 다스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일종의 뭐냐하면 알렉산더의 통치의 연장선상에서 통치하고 있는 일종의 헬라 희랍문화를 가지고 이 팔레스타인 땅을 다스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라는 사람이 악질이에요 문제는, 악질입니다. 아주 악질입니다. 그래서 아주 팔레스타인 땅을 다스리는 동안에 아주 악한 통치를 진행합니다. 우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우스신상, 희랍의 제우스 신상을 앉혀 놓았어요. 그리고 유대인들이 고기 가운데 제일 싫어하는 고기가 무얼까요 녜 돼지고기 싫어해요 유대인들이 돼지고기 안먹죠 녜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돼지 대가리 같은 것을 성전 안에다가 갖다 놓고 돼지 피를 성전 여기저기에다 발라놓고,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죠 도전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하고 할례를 폐하고 또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하는 종교적 의무를 다 패기하고 반대 시켰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돼요 여러분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자 우리가 나라를 빼앗기고 짓밟혀온 경험이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돼요 그렇게 되면 열 받지요 뭐 열 받지요 녜,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독립운동을 시작해요. 그때 제사장 가운데 마티아스라는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는데 경건한 제사장이고 민족을 사랑하는 제사장이였습니다. 그가 우리민족을 살려야겠다 이렇게 시리아의 횡포를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자기 자신도 똑똑했지만 자식들이 똑똑해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과 더불어 붕개합니다. 그들을 막카비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않아요 녜 교회 오래 다니다 보면 좀 어디선가 그런 말도 들어본 것 같은 생각이 나야 되요. 마카비 형제, 소위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중간기. 우리가 구속사를 공부하면 다 공부하게 되는데 마침 내일부터 우리가 구속사를 공부합니다마는 그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시대를 얘기해 주고 있는거에요. 유다 마카비 그 중에서도 형제들 가운데서도 제일 지도자가 유다 마카비. 마카비란 말은 망치라는 말입니다. 망치 hammer, 왜 망치유다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사람 유다 마카비의 얼굴이 생긴게 꼭 망치같이 생겨서 그렇게 별명을 붙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게 아니라 그의 강력한 전술, 게릴라전을 통해서 이 시리아와 대결하면서 매우 효과적인 민족해방 전쟁을 벌렸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드디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를 쫓아내고 그리고 성전을 회복해요. 성공했어요. 이 독립운동이, 게릴라식 독립운동이 성공을 합니다. 13절 한번 보세요. 9장13절, 9장1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9장13절 시작,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이게 바로 무슨 예언일까요 녜 이게 바로 마카비 예언이에요. 자 어디에서 알수 있어요 13절에서 어떤 부분 내가 네 자식들을 격동 시켜 하나님이 격동시켜서 누구를 치게 한다구요 헬라자식들을, 헬라 자식들이 바로 누구에요 바로 이 시리아. 아-그리고 바로 알렉산더의 후속 세력들. 그게 헬라 자식들이에요.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여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성공합니다. 성공해서 성전을 빼았고 성전을 뺏고나서 제일 먼저 무얼하느냐 하면 이런 청소를 해요. 더러운 것들을 다 청소하고 제우스상을 없애고 돼지 다 없애고 그 다음에 불을 켭니다. 어두워졌든 캄캄했든 성전에 일제히 메노라의 촛불이 등불이 환하게 빛나요. 그래서 신약성경에 가면은 그게 수전절이라고 되어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유태인들은 지금도 지키는데 일년 중에 아주 중요한 명절로 지키는데 이것을 하누카! 하누카 그런데 하누카 명절이 꼭 시기적으로 언제 같이 오느냐 하면은 크리스마스하고 같이 와요. 비슷한 때에요. 그래서 난 처음에 미국가서 살다가 우리 동네근처에 유대인들이 많은데 집집마다 그냥 다 이렇게 촛불을 많이 밝혀놓아서 크리스마스를 촛불 가지고 다 지키는구나 이 동네는, 무식해 가지고 몰랐어요.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지키는게 아니라 유대인들이 하누카의 명절을 지키는 그런 의식입니다. 자 16절 한번 같이 한번 읽어봐요. 16절 다같이 시작,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같이 구원 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그것이 성취된 거에요. 자, 그래서 마지막에 어떻게 되느냐, 17절 그 결과 다같이 읽겠습니다. 17절 시작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하리로다 이 포도주나 곡식은 기쁨과 풍요의 상징이죠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의 회복, 형통함과 아름다움이 회복되는 모습,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예루살렘의 이런 회복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더 중요한 예언이 나와요.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그렇게 왜적의 세력에서 해방하는 것, 거기서부터 끝나지 않아요. 예루살렘에 대한 기대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왜적의 침략에서 해방되어 잘 살게 된다, 하나님은 거기서 만족할 수가 없어요. 더 근본적인 해방,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더 근본적인 해방, 이번에는 가난에서의 해방이나 외세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 무슨 문제일까요 죄의 문제, 죄로부터 해방되어 정말 자유한 그리고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해방, 예루살렘의 진정한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한 분을 예비하십니다. 그분이 누구일까요 예수그리스도. 그 예언이 어디에 나옵니까 11절 녜, 아주 유명한 예언이지요 자 11절같이 읽습니다 시작 아, 9절부터 읽어요 9절 먼저 읽어요.9절부터 먼저 읽겠습니다. 9절10절을 먼저 읽고, 자 9절 10절 시작, 9절: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절: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어 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 우선 거기 까지만 읽으세요. 어떻게 또 이렇게 때를 맞추어서 하나님이 딱 이 말씀을 우리 고난주간에 이렇게 묵상하도록, 제가 계획한 것도 아닌데, 고난주간 이때 9장하자! 딱 그런것도 아닌데, 저는 언제든지 놀래요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님이 때를 잘 맞추어주시나, 하나님의 타임테이블은 정확합니다.
자 지나간 주일을 우리가 무슨 주일이라고 부릅니까 지난주일을 종료주일, 녜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멧시야로, 멧시야로 입성하신 그 사건이 여기 예언되어 있는거죠 BC 700년, 주전 700년경에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이 사건이 일어나기 700년 전에,그분이 메시야되실 그 예수그리스도가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여러분 그래도 성경이 성경이 아니에요 우연히 그렇게 일치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우연히 자 우리가 나중에 신약성경에 보시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 뭐 타고 오세요 나귀새끼 타고 오시잖아요 그대로, 예언된 그대로, 녜, 자 이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희망의 시작. 진정한 복음 진정한 희망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뿐만이 아니에요. 인간의 더 근본적인 문제, 죄로부터 해방되어 정말 하나님 앞에 죄 사함 받고 자유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복음이죠 믿습니까 여러분 자, 이 복음이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뭘 전할 것이요 화평을 전할 것이요 예수그리스도는 이방 사람들에게 군사적인 정복을 하는 알렉산더 같은 그런 분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는 뭘 전한다고 그랬어요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예수님의 정권은 어디에 미칠까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어디까지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스도의 정권은 이루게 될 것이다. 그분은 어떤 정부도 소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온 세계 안에 그분을 따르는 무리들로 가득합니다. 전세계 흩어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주간에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고난을 기억하잖아요 이것이 복음의 시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엄청난 역사를 보세요. 이 엄청난 예언, 녜. 이게 돌아버릴 문제에요. 이렇게 놀라운, 성경의 예언이 이렇게 정확할 수가 있어요 아주 디테일 하게 정확한 예언. 뿐만 아니라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11절입니다.
1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그런데 어떻게 주님이 해방하시는가 군사적인 방법으로 정복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한다고 그랬어요 언약의 피를 통해서 하시겠다. 언약의 피! 이게 정확하게 이루어진 것이 목요일 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밤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면서 잔을 높이 드시고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잔은 너희를 위해서 흘리는 내 언약의 피!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이에요. 언약의 피! 피! 녜. 다시한번 읽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물론 이것은 가까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해방되는 사건을 얘기해주고 있지마는 궁극적으로 이것은 뭐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예언입니다. 물 없는 구덩이 같은 지옥에서, 사회적인 압제에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지옥에서부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든, 황량하고 허무한 지옥에서부터 우리를 건져내신 분, 우리를 그렇게 건져내시기 위해서 예수께서는 이땅에 오셔서2000년전 바로 이주간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피를,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보혈의 피, 그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고 새로운 생명, 새로운 평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우신 구세주 메시야를 예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 그렇습니다. 정치적인 압제보다 더 무서운 영적인 압제. 죄 때문에, 방황하고 죄 때문에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상처 받고 괴롭고 어두운 인생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구세주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그가 예루살렘성에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시고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를 지시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므로 이 그리스도를 받아드리는 사람마다 새로운 삶을 새로운 평강을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감사하십시요. 그의 이름을 높여 드리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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