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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목자로 오실 메시아 (슥10:1-12)

본문

오늘 우리 스가랴서 10장을 함께 공부할 시간입니다. 스가랴서 10장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스가랴서 연구를 시작하면서 이 스가랴서가 네개의 구조로 나누어진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네 개의 구조 가운데 첫번째 부분은 서론이고, 둘째는 여덟개의 환상, 이상 둘로 이루어져 있고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두개의 메세지, 두개의 메세지가 서론은 1장이고, 1장 7절부터 8개의 비전이 시작됩니다. 두개의 메세지는 7장과8장, 이 두개의 메세지의 내용은 금식과 회복의 메세지였습니다. 그 다음에9장부터 시작해서 14장까지 두개의 예언, 녜. 서론, 여덟 개의 이상, 두개의 메세지, 두개의 예언, 이 두개의 예언, 9장부터14장까지 도달하는 부분이 바로 두개의 예언부분 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 9장부터 14장까지를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겠는데 9장부터11장까지가 첫번째 예언, 그 다음에12장부터14장까지가 두번째 예언이 되겠습니다. 첫 예언은 한마디로 말하면 뭐에요 이방인에 대한 심판. 또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두번째는. 그러나 단순히 심판에 메세지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심판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중요한 희망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희망은 어떤 희망입니까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그래서 9장부터11장까지는 예수님의 초림이 아- 그 중요한 예언의 초점이라고 할 수가 있고 12장부터14장까지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첫번째 부분에서 10장과11장, 오늘 그 중에서 10장을 같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이 10장과11장은 선한 목자로 오실 그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로 오실 메시야. 성경이 그 지도자들에 대해서 사용하는 아주 아름다운 그 표현, 명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목자라는 표현입니다 목자. 지도자라는 말보다도 목자라는 표현을 많이 쓰죠 다시 말하면 목자와 양의 관계가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지도자의 그 따르는 자, 추종자들의 관계를 가장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목자와 양의 관계로 지도자와 따르는 자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시대에 최대의 문제가 있다면 저는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상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를 잃어버렸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비극, 최대의 비극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리더쉽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일어난 가장 커다란 현대인들의 그 의식의 변화는 지도자를 그들의 의식 속에서 추방했다는 사실입니다. 지도자를 잃어버렸다. 그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를 그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봅니다. 신문이 나오고, 또 TV가 나오고 이런 매스미디어가 발달되면서 사람들은 지도자들에 관한 모든 것을 너무나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알고 보니까 지도자가 별 것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이런 매스미디어의 발달 때문에 지도자의 신화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옛날 그 지도자가 옛날 시대에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뭐냐하면 그건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잘 몰라서. 그러니까 모르니까 굉장히, 모르면 그 신비성이 있어요. 모르면 신비성이 있고, 그리고 굉장히 뭐가 있는 것 같고, 그것이 지도자가 옛날시대는 쉽게 등장할 수 있었든 배경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런 매스미디어의 발달, 또 민주주의 발달, 이런 것들이 지도자의 모든 것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클린턴 대통령이 100년 전에만 나왔어도 위대한 사람으로 아마 존경을 받았을 거에요. 몰랐으니까 하하 몰랐으니까. 그러나 그 지도자의 심지어 침실에서 일어난 일까지도, 한 사람과 나눈 사소한 대화까지도, 딕테이션이 되어서 글자 하나 틀림없이 다 공개되는 시대를 살면서 사람들은 소위 지도자의 미스, 신화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다 별 것이 없더라, 네. 이것이 시대의 특성이에요. 그러나 뭐 그까짓, 괜찮을지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는 필요하단 말이지요. 공동체는 여전히 지도자를 필요로 해요.
그런데 지도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시대 속에서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는 그런 딜레마 속에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20세기에 들어오는 초 입구에서 하버드의, 하버드대학에 총장을 지낸 한 분이 이런 말로 잘 표현을 했어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 이 시대를 가리켜서, 오늘 우리는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잃어버렸다. 흔들 수 있는 깃발을 잃어버렸다, 세번째로 믿을 수 있는 신조를 상실했다, 네번째로 따라갈 수 있는 지도자를 잃어버렸다. 이런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잃어버리고, 흔들 수 있는 깃발을 잃어버렸고, 믿을 수 있는 신조를 상실했고, 따라갈 수 있는 지도자를 우리는 잃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비극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바로 또, 어떤 의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 공부하고 있는 이 스가랴가 살고 있었던 시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그들은 새로운 꿈을 안고, 이스라엘 땅으로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돌아왔는데 거기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겠는데 그들을 인도할 수 있는 리드가 없는 거에요 리드가 없었어요. 물론 자천 타천에 여러 지도자를 자청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또 그들에게 일시적인 기대도 가져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포로 귀환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위 아-자칭 지도자를 통해서 많은 상처를 경험했습니다. 그 지도자를 통해서 계속 배신을 당하고 속임을 당하는 경험들을 가졌단 말이지요. 그래서 가짜 지도자들이 기성을 부리고 있었던 시대, 소위 악한 목자 나쁜 목자들이 있었던 시대, 이런 시대 속에서 상처 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중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이 스가랴 선지자를 오늘 불러서 그에게 메세지를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10장의 메세지는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심 하십시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가 오시고 있습니다. 바로 그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10장의 핵심이에요. 네, 지도자를 잃어버린 세대,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라는 사실, 그 분은 바로 우리의 구주요,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 메시야가 지도자가 되신다. 이것이 바로 10장의 초점, 핵심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우리는 10장을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10장1절로부터 3절까지는 목자의 필요성, 목자가 왜 필요한가, 지도자가 왜 필요한가 두번째로 이 4절 말씀에서는 목자의 약속, 그 목자가 오신다는 것을 약속합니다. 그 다음에 5절부터12절까지는 그 목자의 미션, 그 목자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라는 목자의 임무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10장1절부터3절까지 목자의 필요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우리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10장1절부터3절까지,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한 목소리로 시작,1절: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 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2절:대저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 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3절: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 가 그 무리 곧 유다족속을 권고하여 그들로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 니. 네, 한마디로 말하면 무슨 얘기입니까 참된 목자가 없기 때문에 백성들이 방황하고 있다 고통당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10장 첫부분의 메세지입니다. 우리가 2절의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백성이 뭐같이 유리하고 "양 같이 유리하고" 그랬습니다. 백성이 양 같이 유리하고 그랬습니다. 목자가 없는 양떼의 모습, 이 표현은 성경에 자주 나오지요 우리 복음서에도 예수께서 그 불쌍한 그 시대의 사람들을 보시면서 뭐라고 그랬어요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고 방황하고 있다"라는 말로 설명하셨습니다. 여러분 양의 특성이 어떤 특성일까요 저는 뭐 동물, 식물 이런 것 모르는데 양에 대해서는 조금 알아요.
왜냐하면 제가 목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0살 때까지 제 이름이 목동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제 팔자지요, 목사가 되는 것이 하하 네, 바로 멀지 않은 수원에 화산 목장이라고 있어요. 거기서 바로 제가 태어났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목장 관리인으로 계셨기 때문에 태어났고 어렸을 때는 제 별명으로 저를 불렀어요. 우리 식구들이, 그래서 목동아 목동아, 그래서 우리 아버님이 한잔하고 들어오시면 꼭 아 목동아를 불렀습니다 하하하 오 데니 보이. 네, 그래서 제가 미국 갔을 때 영어이름을 써야 되는데 뭐라고 붙일까 그러다가 우리 아빠가 밤낮 오 데니보이 대니 보이 그래서 데니 리로 부르자 이렇게, 제 이름도 부른 그 추억이 있습니다마는 어렸을 때 양이라든지 소, 뭐 우유, 소의 우유 젖도 짜보고 또 양떼들과도 놀았든 그런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양의 그 현저한 특성가운데는 3가지의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뭐냐하면 방향감각이 없어요 방향감각, 우리가 소도 말도 바깥에 같다 놓으면 반드시 제집을 찾아오지요
그런데 양은 못 찾아 와요.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는지를 몰라요. 또 두번째는 양은 아주 쉽게 더럽힘을 탑니다. 아주 깨끗한 것 같지만 양은 매일 씻겨 주어야 되요. 조금만 한눈을 팔면 뭘 묻히고 아주 더럽힘을 탑니다. 세번째로 양은 아주 약한 동물입니다.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떤 자구책, 보호책을 가지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모든 동물들을 보다가 보면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떤 비장의 무기나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 자연의 색깔과 자기 몸의 색깔을 비슷한 색깔, 무슨 색 이라고 그래요 보호색이라고 그러죠 그래서 자기를 공격해오는 것들에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연의 색깔과 자기가 같은 색깔을 갖는다든지, 혹은 신체의 한 부분을 예리한 무기로 사용한다든지, 그래서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은 그럴 수 있는 아무런 자구책이나 보호책이 없어요. 그래서 성경이 인간을 설명할 때 자주 나오는 유명한 표현, 마치 이사야서의 표현처럼 "우리는 다 양과 같아서" 우리는 다 양과 같아서, 어디를 가는지 몰라요. 여러분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한번 옆에 있는 사람보고 물어보세요.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하하 내 인생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우리가 방향을 잃어버리고 미로를 헤매는 인생처럼 살고 있습니다. 너무나 쉽게 오염을 탑니다. 세상의 영향, 세속적인 것들에 관한 영향을 너무나 쉽게 받습니다. 녜, 쉽게 오염 당하고 그리고 쉽게 두려워하고 녜,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 위험, 우리는 다 양과 같다. 양에게는 그래서 리드가 필요한 거에요. 목자가 필요한 거죠. 지도자가 필요한 거죠. 그러나 아-그래서 오늘 2절에 보시면 백성이 양같이 유리하며, 뭐가 없으므로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참된 목자가 없을 때는 사람들은 가짜 목자라도 만들어 놓아야 위로를 받아요, 마음에.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반드시 대용품 신을 갖습니다. 이것이 도스도예프스키가 한 유명한 말이에요. 신이 없는 인생은 반드시 대용품 신을 구한다. 가짜 신을 구한다는 말입니다 가짜 신. 그래서 사람들이 우상을 찾는 것입니다. 인간은 엄격하게 완전히 종교를 떠나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종교가 있어요. 다 자기의 종교가 있단 말이죠. 참된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고 소유하지 못한 인생은 반드시 우상을 찾도록 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면서도 조금만 그들의 신앙이 흔들리면 어디를 달려가요 우상으로 달려가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우상이 매력을 갖는 것은 우상은 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상은 보여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데, 영이시고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신데 우상은 구체적으로 눈에 보입니다. 시각적입니다. 오늘 10장2절 첫 부분에 보시면 뭐가 나와요 대저 뭐는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드라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아요 드라빔 네, 창세기에 나오죠 누구 사건 네, 야곱과 라헬, 이 부부가 그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갔다가 라반에게서 뭘 그 드라빔을 라헬이 훔쳐 가지고 나오죠 네, 도적질 하는 장면이 있어요. 창세기 31장 일꺼에요. 창세기 31장19절에 보시면 라헬이 이 드라빔을 도적질 합니다. 라반의 집을 떠나가면서 드라빔을, 이 드라빔이란 것은 일종의 가정에 대한 수호신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한 가정을 지키는, 가족을 지키는 수호신. 그것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런데 라헬이 하나님 믿는 사람이에요. 하나님도 믿으면서도 뭐냐하면 불안해져 가지고 두려워해 가지고 혹시 이 우상신이 있으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종종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면서도 너무나 급박해지고 마음이 절실하고 두려워지면 가끔 가서 뭘 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것이 비슷한 생리에요. 비슷한 생리.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답답은 하고 좀 보였으면 좋겠고,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그래서 이 드라빔 같은 눈에 보이는 우상 신을 의존하고자 했든 그런 슬픈 역사를 볼 수가 있습니다. 대저,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드라빔들은 뭘 말한다 허탄한 것을 말한다, 헛된 것이다 이 말이에요. 전혀 도움이 안된다 사실은. 또 복술자는, 점치는 사람,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다. 뭐 가끔 맞을 수도 있어요 가끔 맞아요. 그게 미혹이죠. 가끔 맞아요. 가끔 한번 맞는 것 가지고 뭐 신통하게 맞는다 그래갖고 사명대사가 임했다 그래갖고 하하하- 뭐 찾아다니고, 또 아무것도 아닌 여자를 우상처럼 만드는 매스미디어 역할을 볼 수가 있습니다. 틀린 것은 하나도 얘기 안하고, 한 10개쯤 틀리다가 하나쯤 맞으면 굉장한 것처럼 뭐 얘기하고, 거기서 위로를 구하는 인생들. 이런 헛된 우상에게서 위로를 구하고 있었든 그 시대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장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0장1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다같이 시작,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무슨 얘기 입니까 우상에게 구하지 말고 누구에게 구하라 하나님께 구하라.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봄비 때에 하나님께 번개를 구하라 그랬어요. 봄비 때에. 아-, 팔레스타인 땅에는 비가 두번 옵니다. 첫비가 언제 오느냐하면 가을에 와요. 10월 11월, 10월 11월에 첫번째 비가 옵니다. 그리고 이 봄비라는 것은 아- 3월4월쯤 오는데 그 비를 늦은 비라고 부릅니다 늦은 비, 네, 늦은 비에요. 그 얘기는 뭐냐하면, "봄비 때에 하나님께 구하라"라는 말은 늦게라도 이제라도 구하라, 좀 늦은 것 같지만 이제라도 우상을 포기하고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 인생에 응답이신 하나님, 소망이신 하나님, 진리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이제라도 구하라! 이 말입니다. 이제라도 구하라,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그래 하나님을 번개를 내시는 하나님, 번개. 번개는 뭐가 오기 전에 비가 오기 전에 먼저, 그것은 비의 징후입니다. 싸인 입니다. 이제 곧 비가 내릴 것입니다. 소낙비를 내리시는 하나님, 겨우 가까스로 비를 주신 하나님이 아니라 풍성한 비를 주신 하나님. 이토록 풍성한 것을 예비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그 하나님께 나와 구하시기 바랍니다. 늦게라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2절은 불행히도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제쳐놓고 어디를 달려가요 드라빔, 이 드라빔은 조그만한 거에요. 아주 조그마한 우상 신입니다. 지난번 그 다윗의 유물 전시전, 예술의 전당에서 할 때 저도 가보았습니다만 거기 가 보신 분들이 있어요 한번 손들어 봐요. 네, 그때 그 우상 보았어요 우상 구경했어요 조그마한 거에요. 손바닥만한 우상들, 네, 가지고 다니는, 이렇게 갖고 다닐 수 있는, 가끔 뭐 부처도 보면은 큰 부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것도 있어요. 네, 그런 식으로 작은, 작은 한 가정의 우상 신 이런 것들을 갖고 다니면서 거기다가 의지를 한단 말이지요. 인생이란 것이 그렇게 연약한 존재에요. 그래서 그게 눈에 보인다고, 보인다고 시각적이라고 그래서 그것이 또 도움이 될 줄로 착각하는 인생들. 그리고 헛된 것을 말하는 점쟁이를 찾아가서 거기에서 도움과 위로를 구하는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이 뭐냐 이것이 지도자들의 책임이다. 그래서 3절에는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그러니까 백성들이 이 지경이 되도록 지도자들은 뭘 하고 있었느냐 말이지요 그러니까 진정한 이땅에서의 영적 지도자들의 책임은 이 참되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그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이겠죠. 그러니까 지도자들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니까 사람들이 우상으로 달려가도 있었던 것입니다. 3절을 다시 한번 읽어요. 다같이 3절 다같이 시작,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권고하여 그들로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네,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왜 숫염소가 나오는가 염소떼가 다닐 때 항상 앞에 리드가 앞장섭니다. 그것이 숫염소에요. 다시 말하면 이것은 리드에 대한 상징입니다. 리드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말이죠. 내가 그들에게 분노한다. 그래서 백성들이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쫓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비극이다.그렇다고 해서 지도자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기에 우리시대는 참된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줄로 믿습니다. 여기 지도자의 필요성을 목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10장의 메세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서 두번째로 그 목자가 약속됩니다. 그러나 이제 이 유리하고 곤고하고 방황하고 있었든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목자를 약속하시는 장면이에요. 우리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모퉁잇돌이 그에게로서, 말뚝이 그에게로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로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로서 나와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에게서" 이 말입니다. 그에게서, 모퉁잇돌이 그분에게서 나온다. 즉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참된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소망은 하나님에게로서 나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강조된 것이 계속 뭐에요 "그에게서" 그에게로서 그에게서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에게로부터 주어지는 지도자, 목자, 메시야, 메시야 메시야. 그 메시야 상을, 여기 4절에 보시면 그 메시야 상을 몇가지 상징적인 표현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어떤 표현들이 등장합니까
첫째 "모통이돌" 여러분 예수님은 모퉁이돌 이십니다. 믿으십니까 모퉁이 돌이 되신다 Corner Stone이 되신다. 모퉁이돌. 건물을 지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모퉁이돌이죠. 그것이 기초에요 기초. 또 두개의 벽을 연결할 때, 그 중동지방의 건축법은 모퉁잇돌이 항상 가운데 있습니다. 부채살처럼 되어있어요. 중동지방의 모퉁잇돌은 이 부채꼴 살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쫙 그것의 중심으로 두개의 벽이 연결이 되어요. 딱 연결이 되어요. 녜, 건물의 기초, 가장 중요한 파운데이션, 사랑하시는 여러분 내 인생의 기초는 예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모통이돌이 되신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야. 내 인생의 진정한 지도자 내 삶에 기초가 되어주신 분 나의 인생의 Corner Stone, 나의 모퉁이돌이 되시는 주님, 그는 모퉁이돌 이십니다. 또 두번째는 뭐라고 그랬어요 네 네 "말뚝" 예수님은 또한 말뚝이십니다. 하하 아 이런 표현도 나와요. 예수님은 말뚝이십니다. 그건 별로 우리가 평소에 안 쓰는 표현인데 그렇죠 기도할 때 가끔 말뚝 되신 주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하 이렇게 한번 해보세요 하하 이 말뚝이라는 한국말의 이미지가 좀 이상하지만 진짜 그는 말뚝, 말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 말뚝이, 네, 이건 특별히 여기 말뚝이라고 한 것은 이 텐트를 칠 때 그 텐트를 흔들리지 않도록 연결시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말뚝이죠. 견고하게 하는 것, 그래서 장막을 견고하게 만듭니다. 말뚝이 있으므로 해서 이 장막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말뚝 되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므로 내 인생 흔들리지 않을 줄 믿습니다. 네, 그러니까 주님에게서 시선을 떼면 내 인생이 뭐에요 흔들려요.
왜냐하면 말뚝을 망각했기 때문에, 녜 말뚝. 또 어떤 표현이 등장합니까 그 다음에는 "싸우는 활" 전사에게 있어서 활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 활, 이 활이 없이는 전투할 수 없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화살이 되십니다. 그가 우리의 무기가 되신 줄로 믿습니다. 싸우는 활이신 바로 그 분. 그 다음에 또 어떤 이미지가 나와요 "권세 잡은 자" 권세 잡은 자에게 여기에선 힘이 있다 이 말인데 막강한 힘이 있는 분. 여러분 내가 활을 가지고 있어도 활을 당길 힘이 없다면 활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런데 이 활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활이 되어주시고 또 활을 당길 수 있는 힘도 되어주시는 예수님. 그분은 진정 나의 능력 나의 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바로 오실 메시야. 우리의 목자 메시야. 우리의 지도자 메시야. 그렇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오늘 우리시대에도 동일하게 우리의 힘이시고, 우리의 무기이시고, 우리의 말뚝이시고 내 인생의 기초인 것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목자의 약속이 바로 이 4절에 나온 것이에요. 그 다음 5절부터12절까지, 목자의 미션, 의무. 목자는 어떤 역할을 감당하는가 목자의 의무.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볼 수가 있습니다. 목자의 의무.5절, 함께 하신다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하신다" 목자가 함께 하신다, 그럼 끝난 것 아니에요 목자가 함께 하신다. 자, 저가 양의 특성을 말하면서 세가지, 양의 특성은 세가지라고 그랬어요.
첫째로, 뭐 다른 특성도 있지마는, 세가지 특성.첫째 양은 방향 감각을 잃어버려요. 방황해요. 그런데 목자가 있어주면 어떻게 돼요 목자가 방향을 잡아줍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어디로 가느냐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주님과 함께 있으면 됩니다. 그가 나를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마땅히 가야할 그 방향으로 그 목표를 향해서 나를 인도해가실 그분,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으로 그리고 아버지의 영원한 집을 향해서 나를 인도할 그분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또 양의 특성 두 번째는 뭐에요 쉽게 더럽힘을 탄다 그러나 목자만 함께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목자가 씻어주어요. 늘 깨끗하게 보호합니다. 그 주님을 떠나서는 깨끗함이 없어요. 거룩은 주와 함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룩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바로 거룩이에요. 함께 있으면 그분과의 교제가 상실되면 우리가 더럽힘을 타요. 여러분 큐티 몇일 안해보세요. 마음이 벌써 끈끈하고 더럽힘을 당하고, 녜 그런데 계속 안했는데 편안하다 하하. 큐티 안 했는데 몇 달 안 했는데 계속 편안하다, 마비증이 찾아오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제 마비상태에 들어간 거에요. 그건 완전히 마비상태, 네. 함께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거룩이에요. 자, 양의 또 하나의 특성이 뭐라고 그랬어요 양은 자구책이 없다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목자와 함께 있으면 목자가 우리의 보호가 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며"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며, 주님이 나의 보호에요. 주님이. 주님이 나의 보호에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며, 그런데 그 주님을 생각 안하고 골프 치러 간 사람들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며 하하하 주님이 우리의 보호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십니다. 5절, 다시 한번 읽어요 5절 다같이 시작,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대적을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 즉 그들이 싸워 말 탄자들로 부끄러워하게 하리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전장에 한 복판에 우리가 던짐을 받아도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그분이 함께 하십니다.함께 하십니다. 목자는 양떼들과 늘 함께 해 주셔요. 내가 때로는 내가 목자를 피하고 싶어도 나를 추적하시는 목자 되신 하나님 그가 우리의 승리의 원인인 것을 확인하십시다. 함께 하십니다. 두번째로 6절과7절에 보시면 구원하십니다. 따라서 하십시다 "구원하십니다"
첫째는 뭐 한다고 그랬어요 함께 하시고 둘째로 우리를 구출하셔요. 구원해 주셔요. 6절 다같이 읽어요. 시작,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내게 내어 버리움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 그들을 긍휼이 여겨주신다. 그래서 구원해 주신다. 구원하신다음에 그들을 견고하게 하신다 그래서 버림받은 적이 없었든 것처럼 그들을 구원하시겠다. 믿습니까 여러분 내가 위험 앞에 처할 때 나를 다시 구출하시는 그분. 구출하시는 그분. 함께 하시고 내가 위험에 처할 때, 내가 슬럼프에 처할 때 내가 구덩이에 던지움을 받을 때 빠져나올 길 없는 인생의 사면초과, 그 딜레마 속에 빠질 때 나를 건져내시는 주님. 그분이 우리의 변화 없는 목자이신 것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구출하십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회복시켜 주십니다. 다같이 "회복시키신다" 첫째는 함께 하십니다. 둘째는 구원하십니다. 세번째는 회복을 시켜 주셔요.
네, 8절 이하 11절까지, 어떻게 회복시키는가 우리 8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8절 다같이 시작,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 불어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같이 번성하리라" 녜, 목자가 휘파람을 불면 양떼들이 어떻게 합니까 다 모여요. 여기서 말한 휘파람은 아마 목자가 입으로 부는 그런 휘파람이 아니고 아- 일종의 그 갈대 파이프 같은 것이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대로 만든 파이프를 그 목동들이 목자들이 결정해서 그래서 파이프를 탁 불면 다 모여요. 목자의 음성을 목자의 부르는 소리인 줄을 알고 일제히 집합을 합니다. 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징계에 의해서 바벨로니아 앗시리아 전세계 흩어졌던 그들을 다시 모아주십니다. 모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다시 모여 또한번 번성하리라. 회복이에요. 온전한 회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다시 번성하리라. 그리고 9절, 9절 다같이 읽어요. 시작, "내가 그들을 열방에 뿌리려니와 그들이 원방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의 자녀와 함께 다 생존하여 돌아올지라" 다시 돌아온다 회복의 약속입니다. 다 돌아온다.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돌아오며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풍성하게 회복시키신다. 11절, "내가 그들로 고해를 지나게 하며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돌아오는 길에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신다 이 말입니다.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그들을 포로로 잡았든 앗시리아를 패망 시키시고 애굽을 치시고 그래서 그 백성을 다시 온전히 돌아와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 그는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 우리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하고 우리가 잃어버리고, 우리의 소유를 잃어버리고, 사랑했든 사람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삶이 깊은 고통과 어둠 속에 빠져있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요. 우리가 다시 그 주님을 의뢰하고 바라볼 때 주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회복은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 약속은 뭐냐하면 견고케 하신다. 회복시킨 다음에 그들을 아주 견고하게 해주신다. 12절입니다.
마지막 12절 다 같이 읽어요. 시작,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자, 12절,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어떻게 하신다고 그랬어요 "견고케 하리니" 견고하게 해주십니다. 다시는 흔들리지 않도록, 다시는 우리가 이 고통을 당하게 하지 않도록 우리를 견고케 하실 하나님.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어요. 견고하게 될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 그 견고한 것은 우리 자신이 뭐 어떤 견고할 수 있는 아- 그 소스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견고는 누구 때문입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하나님을 의지 하십시다. 그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그만큼 우리는 견고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견고하시는 하나님, 나의 망대가 되시는 하나님,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우리의 인생이 견고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이거예요. 얼마나 우리가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느냐 정말 바라보고 사느냐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리드라면, 참된 지도자라면 그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 그분이 우리의 인도자라면, 그렇습니다 인도자가 없는 세상, 지도자를 잃어버린 세상,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지도자 상실의 시대에서 염려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완전하신 지도자, 맘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지도자, 그 지도자는 이동원이 아니에요. 저는 여러분을 얼마든지 실망시킬 가능성이 있어요. 자꾸 저를 째려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하 주님을 째려보시기 바랍니다.
네, 주님. 그 분은 우리의 완전한 지도자, 흔들림이 없는 지도자, 그러니까 우리의 신앙의 초점을 그리스도에게 맞출수록 하나님을 바라볼수록 그만큼 내 인생은 견고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지도자로 삼은 행복을 고백 하십시요. 하나님이 나의 지도자가 되셨다 예수가 나의 지도자가 되셨다. 예수님이 나의 리드이시다. 그분이 진정한 나의 리드이시다. 저와 여러분들이 지도자가 될 수가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인 그 주님을 따라가는 행복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우리의 궁극적 지도자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그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우리는 소개하는 작은 안내자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작은 지도자라고는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의 책임은 초점을 자기에게 모으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다 인간성은 연약함이 있고, 우리는 다 흔들릴 수가 있고, 우리는 다 오류를 저질을 가능성이 사람에게는 언제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지도자의 특성은 뭐냐하면 끊임없이 누구를 가리키는 거에요 하나님 바라보세요. 예수님 바라보세요. 성령님 바라보세요. 잘못된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 입니까 네, 나를 바라보라고 하는 사람. 그건 잘못된 지도자에요. 진정한 지도자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 그렇습니다. 그 주님만이 오늘도 우리의 소망인 것을 확인하십시다. 그 주님을 바라보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을 신실하게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이 한 주간도 그분이 우리의 승리의 원인인 것을, 이유인 것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케 하심이 오늘 말씀을 받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의 모든 삶의 장에 권능과 평안으로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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