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택하심 (엡1:4)
본문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하던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고, 또한 그로하여금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누리게 하는 것은 어떤 원인 때문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즉각적으 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하여 주님을 자신의 메시야요 구세주로 영접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 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주님을 믿는 까닭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바울은 우리 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을, 우리가 구원함을 받아 영생을 소유하게 될 수 있었던 원인을, 시간이 있기 전에 이미 이 루어지고 작정된 일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세상이 있기도 전에, 최초의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으로 택함받아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누리 게 예정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본문의 표현을 다시보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 사실을 요한은 요15:16 절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택하여 세웠 나니"라고 말한다. 이제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세가지 사 실을 살피게 될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교훈하고 있다. 조금전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 던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결단이나 의지 때문 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창세전부터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도록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때로 이러한 고민을 호소해 온다. 과연 한 분 하나님 안에 각각 다른 세 인격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과연 하나님 의 몸이 인간의 몸을 빌려서 성육신 하실 수가 있는 것일까 물 론 그러한 의문점은, 연약한 우리 인간으로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질문일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문점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성경이 그 러한 질문에 답을 주거나 굳이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그러한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을 허락하기는 하지 만, 그러한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설명하거나 이해시키지는 않 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사실 중에 하나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가 그러한 성경의 사실들을 이해하 지 못한다는 이유로 논쟁하려 들 때에 우리를 꾸짖는다. 사실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거나 충분히 이해 시킬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의문점을 풀어서 설명할 수 있었음에도 그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롬9:20절을 통해 그러 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 히 하나님을 힐문 하느뇨" 바울은 우리들의 그러한 질문과 의 문점을 말하기에 앞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 분과 우리와 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험한 산길로 인도하는 아버지와 그 이유를 모 르고 동행하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험한 산행의 의문점을 품지 않 고 따를 수 있는 것은, 그 아이가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 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을 죽이려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겼던 이삭의 믿음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셨는데, 그 때 인간을 창조한 흙은 원어 성경을 보면, 단순한 흙이 아니라 흙의 가장 작은 형태, 먼지와 같 은 미세한 흙, 흡사 가장 고운 밀가루 분자와 같은 흙을 사용하 셔서 인간을 피조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떤 신학자는 이 사실을 놓고 이렇게 말한다. "인간을 가장 미세한 흙으로 피조하 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닌 연약한 존재인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연약한 인간이, 그리고 스스로 사단의 말을 들어 자신 을 영원한 파멸로 빠뜨려 버린 인간이, 아니 인간적인 관계에서 조차 이웃과 형제, 심지어 자신의 부모에게까지 바른 관계를 맺 지 못하는 연약하고 작은 존재인 우리들이, 영원하시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한 뜻과 생각을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얼 마나 잘못된 시도인가 본문에서 지금 바울은 이 사실을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 강조되는 말씀이지만, 성경은 연약한 인간을 이해시키기 위해 어떤 철학적인 설명을 가하려거나 이해 시키려는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다만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어떤 일부분의 사실을 사실로써 진술하는 것으로 모든 설명 이나 이해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설교는 선포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성경은 상관하지 않는다. 단지 사실을 사실로써 선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진술되는 하나님의 선 택과 예정에 관한 말씀도 인간의 이해 차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진리다. 델후2:13-14절,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 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은 이 세상이 있기 전부터 이미 성령에 의해서 거룩하게 구별되어진 사람들이다. 즉,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 들여 영생에 이르는 구원을 얻게 된 사람들인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진리를 믿어서 하나님께 선택되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 되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믿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은 벧전1:2절의 말씀을 통해 더욱 확실해진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 니" 이 말씀을 주목해 보라. "순종함"이란 말에 앞에 먼저 "거 룩하게"란 말씀이 전제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하나님 의 선택을 받은 자들을 위한 말씀인 것이다(특별계시).
둘째, 하나님의 예정과 그 예정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 스스로는 인간의 구원의 문제 에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역설하고 있는, 그래서 하나님 의 은혜의 놀라움을 말해준다. 보충설명:하나님께서 인간 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의 원초적인 축복과 그 선택에 의한 결과 를 책임져야만 하는, 그래서 범죄 후에 인간 스스로는 자신들의 죄를 사할 수 없음/"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4-25)/과, 그 결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세상에 성육신하실 수 밖에 없었던 필 연적 이유를 보충설명하도록 하라. 만에 하나라도 하나님에 대 한 우리들의 지식과 그 이해 여부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 어진다면, 그것보다 더 불안한 구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 약한 우리들의 이해에 따라 구원이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해서 우리가 구원되어진 이 사실은 얼 마나 아름다운 복음(복음)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내가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비롯된 것이다. 우리들의 장래가, 그것도 영생에 관한 구원의 여부가 우리들의 결정에 따라 우리들 자신에게 맡겨져 있다면, 우리는 오히려 그 불안함에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 의 연약함에도, 우리의 죄악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람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항상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다. 그래서 또한 우리는 우리 속 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 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빌1:6),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예정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감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도 바울 사도의 그 벅찬 감격과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 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어떤 이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잘못 이해해서, "
그렇다면 태초부터 우리들이 이 세상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미리 선택하고 예정하셨다면, 우리들이 전도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그 선택된 불신자들이 교회로 나와 구원을 받지 않겠는가"라 고 말하면서, 어리석게도 복음증거의 무용론을 주장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잘못 이해 한데서 온다. 쉬운 예를 들어 설 명해 보자. 가을에 곡식을 여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농 부는 밭을 갈지도, 씨를 뿌리지도 아니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농부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방편을 사용하셔서 추수하여야 할 가을의 곡식을 여물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도하고 말씀을 전파하는 우리들의 선한 수고를 통해서 이미 선 택되어지고 예정된 자들을 불러내고 계신 것이다. 보충설명:컵의 물을 보임으로서 갈증을 느끼도록하시고 또한 마시도록 하 신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수단과 방법까지도 이미 정해 놓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과 예정은, 창세전에 우리의 구원을 이미 작정해 놓으신 이 사실은, 전적으로 부패되어 영원한 생명 에 스스로 이를 수 없는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유일하고도 완 전한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것이다! 우리를 에정하시고 선택 하신 주님을 찬양하라! 세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목적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대한 해답을 우리는 본문 뒷부분에서 채을 수 있다. "우리 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 께서는 우리를 창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 다시 말하 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거룩하도록 하시기 위한 목적 하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되어지고 있는 거룩은 죄를 짓지 않는 바른 삶 을 의미하는 단순한 거룩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 에서 행하는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하는 기계 적인 거룩이 아니다. 또한 단순히 도덕적인 거룩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도덕이라는 것은 거룩함이 없이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거룩한 것이 없이도 도덕적인 사람일 수 있다. 왜냐하면 단순히 외적으로만 죄를 짓지 아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충설명:바리새인들의 외식.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되 어지는 거룩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 정도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외적으로 짓지 않는 정도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사랑이 깃들여져 있어서 자연스 럽게 행해지는 바른 삶(온유한 자의 본래 뜻과 같은 삶)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느냐는 문제다. 보충설명:사랑하는 마음 없이도 구제할 수 있다(도덕적 쾌락주의). 이 때문에 롬 13:10절에서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고자하는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은 될 수 있 을지언정 거룩한 사람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은 오늘 날 율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 들이 많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신앙생활은 복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함이다! 또한 하나님의 징계가 무 서워서가 아니라 은혜에 감사해서 율법을 순정할 뿐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거룩은 순종하기 위해서 의무적으 로 행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어느 날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 어 뜨리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이렇게 질문했다. "어느 계명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니이까" 주님의 대답은 이러한 것이었다. "첫째되고 큰 게명은 이것이니 네 마음을 다하 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28-31) 하나님의 말씀, 율법의 제일되는 목적은, 또는 율법 의 역할은 사랑이다. 거룩이다. 하나님과 여러분과의 관계, 그 러한 다음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이웃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 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것이 신앙생활이든 이세상의 일이든지 간에, 문제의 원인은 사랑의 부족에서 오는 것임을 숨길 수 없다. 보충설명:실패한 베드 로를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거듭 물으셨던 주님의 의도와 심중을 보충설명하라-' 충성심이 부족했었기 때문이 아 니라 열씸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부족했었 기 때문임을 깨우쳐 주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여하간 오늘 본문 4절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제일되는 목적은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성품을 지 닌 동일한 사람들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이다. 물론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것과 같은 완전한 거룩함, 즉 완전한 사랑의 삶을 죽은 순 간까지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사활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장래 어느 날 우리는 반드시 거룩하고 흠이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또한 주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완전함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그 나라에 들어가서 완성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완성은 영원한 나라에서 되어지지 만, 그 거룩한 사랑의 삶의 시작은 이 세상에서 시작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은 잊지 말아야 한다. 거룩과 사랑의 씨앗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의 결과로 우리들에 게 이미 심기워진바 되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실을 사도 요한은 요일3:9절에서 하나님의 씨로 표현하여 그 씨가 이미 우리에게 심기운바 되었다고 말한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기자는 3:1절에서 이렇게 그 말씀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함께 하 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 가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에 참여한 사람이요, 거룩함과 사랑의 온전함을 이미 시작한, 그 씨앗을 이미 마음 속에, 생활 속에 심기워진바 된 사람들인 것이다. 이 씨앗은 이 세상에서 이미 발아되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앞에 이르 게 될 때 온전하고 절대적인 완성의 모습, 그 씨앗의 열매를 거 두게 되는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랑, 완전한 거룩을 위해 하나님 께서는 태초전에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들의 그 어떤 일에서든지간에 우리가 먼저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거 룩하시기 때문에 그 분 앞에 서야 할 우리들도 반드시 거룩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 함이라"(살전4:3) 여기서의 거룩은 먼저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룩이요, 나중으로는 이웃과 나 사이의 거룩을 의미한다. 이 거룩함은 우리의 힘과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노력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하는 것 만이 문제가 된다. 엡1:1-4절까지 말씀되어지는 동안에 반복되는 구절은 무엇이었는가 1절 중에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그리고 3절 중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그 리고 4절 중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즉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마9:19-26절,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말씀하신 것이며, 요한은요15장에서 포도나 무와 그 가지의 비유를 통해, 오직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주 님의 거룩은 우리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재생산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제일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거룩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완전한 사랑을 나 타내기 위해 선행되어져야 할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 계를 먼저 맺는 일이다! 죄의 발생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깨뜨리는데서 비롯되어지지 않았던가 그리고 하나님과 의 바른 관계회복을 위해서, 우리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 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철저한 타락 위에 베풀어진 완전한 구원의 방법인 예정과 선택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준다. 그리고 우리의 연 약함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건을 보지 않 으시고 무조건적으로 예정 가운데서 선택하여 주신것을 바로 깨 닫는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그러한 선하신 뜻을 기뻐하며 따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말한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 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또한 사도 요한은 요일3:3절에서 이렇 게 사랑의 호소를 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하나님의 예 정과 선택의 은혜 속에서, 하나님과의 바른교제를 위해 더욱 거 룩한 삶, 사랑하는 삶이 행해지기를, 그래서 하나님의 신령한 복 을 더욱 풍성히 누리게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첫째,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교훈하고 있다. 조금전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 던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결단이나 의지 때문 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창세전부터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도록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때로 이러한 고민을 호소해 온다. 과연 한 분 하나님 안에 각각 다른 세 인격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과연 하나님 의 몸이 인간의 몸을 빌려서 성육신 하실 수가 있는 것일까 물 론 그러한 의문점은, 연약한 우리 인간으로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질문일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문점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성경이 그 러한 질문에 답을 주거나 굳이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그러한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을 허락하기는 하지 만, 그러한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설명하거나 이해시키지는 않 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사실 중에 하나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가 그러한 성경의 사실들을 이해하 지 못한다는 이유로 논쟁하려 들 때에 우리를 꾸짖는다. 사실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거나 충분히 이해 시킬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의문점을 풀어서 설명할 수 있었음에도 그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롬9:20절을 통해 그러 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 히 하나님을 힐문 하느뇨" 바울은 우리들의 그러한 질문과 의 문점을 말하기에 앞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 분과 우리와 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험한 산길로 인도하는 아버지와 그 이유를 모 르고 동행하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험한 산행의 의문점을 품지 않 고 따를 수 있는 것은, 그 아이가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 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을 죽이려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겼던 이삭의 믿음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셨는데, 그 때 인간을 창조한 흙은 원어 성경을 보면, 단순한 흙이 아니라 흙의 가장 작은 형태, 먼지와 같 은 미세한 흙, 흡사 가장 고운 밀가루 분자와 같은 흙을 사용하 셔서 인간을 피조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떤 신학자는 이 사실을 놓고 이렇게 말한다. "인간을 가장 미세한 흙으로 피조하 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닌 연약한 존재인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연약한 인간이, 그리고 스스로 사단의 말을 들어 자신 을 영원한 파멸로 빠뜨려 버린 인간이, 아니 인간적인 관계에서 조차 이웃과 형제, 심지어 자신의 부모에게까지 바른 관계를 맺 지 못하는 연약하고 작은 존재인 우리들이, 영원하시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한 뜻과 생각을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얼 마나 잘못된 시도인가 본문에서 지금 바울은 이 사실을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 강조되는 말씀이지만, 성경은 연약한 인간을 이해시키기 위해 어떤 철학적인 설명을 가하려거나 이해 시키려는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다만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어떤 일부분의 사실을 사실로써 진술하는 것으로 모든 설명 이나 이해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설교는 선포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성경은 상관하지 않는다. 단지 사실을 사실로써 선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진술되는 하나님의 선 택과 예정에 관한 말씀도 인간의 이해 차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진리다. 델후2:13-14절,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 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은 이 세상이 있기 전부터 이미 성령에 의해서 거룩하게 구별되어진 사람들이다. 즉,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 들여 영생에 이르는 구원을 얻게 된 사람들인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진리를 믿어서 하나님께 선택되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 되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믿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은 벧전1:2절의 말씀을 통해 더욱 확실해진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 니" 이 말씀을 주목해 보라. "순종함"이란 말에 앞에 먼저 "거 룩하게"란 말씀이 전제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하나님 의 선택을 받은 자들을 위한 말씀인 것이다(특별계시).
둘째, 하나님의 예정과 그 예정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 스스로는 인간의 구원의 문제 에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역설하고 있는, 그래서 하나님 의 은혜의 놀라움을 말해준다. 보충설명:하나님께서 인간 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의 원초적인 축복과 그 선택에 의한 결과 를 책임져야만 하는, 그래서 범죄 후에 인간 스스로는 자신들의 죄를 사할 수 없음/"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4-25)/과, 그 결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세상에 성육신하실 수 밖에 없었던 필 연적 이유를 보충설명하도록 하라. 만에 하나라도 하나님에 대 한 우리들의 지식과 그 이해 여부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 어진다면, 그것보다 더 불안한 구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 약한 우리들의 이해에 따라 구원이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해서 우리가 구원되어진 이 사실은 얼 마나 아름다운 복음(복음)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내가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비롯된 것이다. 우리들의 장래가, 그것도 영생에 관한 구원의 여부가 우리들의 결정에 따라 우리들 자신에게 맡겨져 있다면, 우리는 오히려 그 불안함에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 의 연약함에도, 우리의 죄악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람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항상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다. 그래서 또한 우리는 우리 속 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 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빌1:6),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예정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감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도 바울 사도의 그 벅찬 감격과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 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어떤 이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잘못 이해해서, "
그렇다면 태초부터 우리들이 이 세상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미리 선택하고 예정하셨다면, 우리들이 전도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그 선택된 불신자들이 교회로 나와 구원을 받지 않겠는가"라 고 말하면서, 어리석게도 복음증거의 무용론을 주장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잘못 이해 한데서 온다. 쉬운 예를 들어 설 명해 보자. 가을에 곡식을 여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농 부는 밭을 갈지도, 씨를 뿌리지도 아니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농부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방편을 사용하셔서 추수하여야 할 가을의 곡식을 여물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도하고 말씀을 전파하는 우리들의 선한 수고를 통해서 이미 선 택되어지고 예정된 자들을 불러내고 계신 것이다. 보충설명:컵의 물을 보임으로서 갈증을 느끼도록하시고 또한 마시도록 하 신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수단과 방법까지도 이미 정해 놓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과 예정은, 창세전에 우리의 구원을 이미 작정해 놓으신 이 사실은, 전적으로 부패되어 영원한 생명 에 스스로 이를 수 없는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유일하고도 완 전한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것이다! 우리를 에정하시고 선택 하신 주님을 찬양하라! 세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목적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대한 해답을 우리는 본문 뒷부분에서 채을 수 있다. "우리 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 께서는 우리를 창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 다시 말하 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거룩하도록 하시기 위한 목적 하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되어지고 있는 거룩은 죄를 짓지 않는 바른 삶 을 의미하는 단순한 거룩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 에서 행하는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하는 기계 적인 거룩이 아니다. 또한 단순히 도덕적인 거룩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도덕이라는 것은 거룩함이 없이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거룩한 것이 없이도 도덕적인 사람일 수 있다. 왜냐하면 단순히 외적으로만 죄를 짓지 아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충설명:바리새인들의 외식.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되 어지는 거룩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 정도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외적으로 짓지 않는 정도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사랑이 깃들여져 있어서 자연스 럽게 행해지는 바른 삶(온유한 자의 본래 뜻과 같은 삶)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느냐는 문제다. 보충설명:사랑하는 마음 없이도 구제할 수 있다(도덕적 쾌락주의). 이 때문에 롬 13:10절에서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고자하는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은 될 수 있 을지언정 거룩한 사람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은 오늘 날 율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 들이 많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신앙생활은 복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함이다! 또한 하나님의 징계가 무 서워서가 아니라 은혜에 감사해서 율법을 순정할 뿐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거룩은 순종하기 위해서 의무적으 로 행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어느 날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 어 뜨리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이렇게 질문했다. "어느 계명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니이까" 주님의 대답은 이러한 것이었다. "첫째되고 큰 게명은 이것이니 네 마음을 다하 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28-31) 하나님의 말씀, 율법의 제일되는 목적은, 또는 율법 의 역할은 사랑이다. 거룩이다. 하나님과 여러분과의 관계, 그 러한 다음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이웃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 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것이 신앙생활이든 이세상의 일이든지 간에, 문제의 원인은 사랑의 부족에서 오는 것임을 숨길 수 없다. 보충설명:실패한 베드 로를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거듭 물으셨던 주님의 의도와 심중을 보충설명하라-' 충성심이 부족했었기 때문이 아 니라 열씸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부족했었 기 때문임을 깨우쳐 주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여하간 오늘 본문 4절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제일되는 목적은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성품을 지 닌 동일한 사람들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이다. 물론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것과 같은 완전한 거룩함, 즉 완전한 사랑의 삶을 죽은 순 간까지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사활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장래 어느 날 우리는 반드시 거룩하고 흠이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또한 주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완전함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그 나라에 들어가서 완성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완성은 영원한 나라에서 되어지지 만, 그 거룩한 사랑의 삶의 시작은 이 세상에서 시작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은 잊지 말아야 한다. 거룩과 사랑의 씨앗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의 결과로 우리들에 게 이미 심기워진바 되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실을 사도 요한은 요일3:9절에서 하나님의 씨로 표현하여 그 씨가 이미 우리에게 심기운바 되었다고 말한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기자는 3:1절에서 이렇게 그 말씀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함께 하 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 가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에 참여한 사람이요, 거룩함과 사랑의 온전함을 이미 시작한, 그 씨앗을 이미 마음 속에, 생활 속에 심기워진바 된 사람들인 것이다. 이 씨앗은 이 세상에서 이미 발아되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앞에 이르 게 될 때 온전하고 절대적인 완성의 모습, 그 씨앗의 열매를 거 두게 되는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랑, 완전한 거룩을 위해 하나님 께서는 태초전에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들의 그 어떤 일에서든지간에 우리가 먼저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거 룩하시기 때문에 그 분 앞에 서야 할 우리들도 반드시 거룩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 함이라"(살전4:3) 여기서의 거룩은 먼저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룩이요, 나중으로는 이웃과 나 사이의 거룩을 의미한다. 이 거룩함은 우리의 힘과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노력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하는 것 만이 문제가 된다. 엡1:1-4절까지 말씀되어지는 동안에 반복되는 구절은 무엇이었는가 1절 중에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그리고 3절 중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그 리고 4절 중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즉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마9:19-26절,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말씀하신 것이며, 요한은요15장에서 포도나 무와 그 가지의 비유를 통해, 오직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주 님의 거룩은 우리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재생산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제일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거룩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완전한 사랑을 나 타내기 위해 선행되어져야 할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 계를 먼저 맺는 일이다! 죄의 발생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깨뜨리는데서 비롯되어지지 않았던가 그리고 하나님과 의 바른 관계회복을 위해서, 우리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 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철저한 타락 위에 베풀어진 완전한 구원의 방법인 예정과 선택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준다. 그리고 우리의 연 약함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건을 보지 않 으시고 무조건적으로 예정 가운데서 선택하여 주신것을 바로 깨 닫는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그러한 선하신 뜻을 기뻐하며 따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말한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 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또한 사도 요한은 요일3:3절에서 이렇 게 사랑의 호소를 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하나님의 예 정과 선택의 은혜 속에서, 하나님과의 바른교제를 위해 더욱 거 룩한 삶, 사랑하는 삶이 행해지기를, 그래서 하나님의 신령한 복 을 더욱 풍성히 누리게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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