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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 (엡1:5-6)

본문

이 시간,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 느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는가 제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한다. "예,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는 이렇게 대답한다. "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분들 중에도 이와같은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정말 큰일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의 어떤 노력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님을 가장 큰 주제로 강조하고 있기 때 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수 없다. 자신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곧 자신의 노력으로 죄로 말미암아 깨졌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된다. 위대 한 사도 바울은 회심하기 이전에 바로 앞에 말한 사람들과 같은 주장을 했던 사람이었다. 바울이 바울 되기 이전에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해 왔었다.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 이 없는 자로라"(빌3:5-6) '-보충설명하라. 그러나 바울이 다 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모든 것을 해로 여 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 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 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안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8-9)
예) 오른편 강도 의 양자됨을 보충설명하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외에는, 비록 우리가 선한 삶을 추구하고 어떤 특정한 죄를 범 하지 않았다 해도, 그러한 이유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 거나 되어져 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 본문 5 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5절의 말씀 가운데,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란 말씀의 정 확한 표현은 "자녀들로 받아들여지게 하셨으니"란 말이다. 이것 을 신학적 용어로 "양자됨"이라 한다(자식이 없는 사람이 고아원 같은데서 데려와 법률상 자기 자식으로 삼는 것을 양자로 삼는다 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용어, 양녀는 없는가 원어성경의 단어는 그래서 양성으로 그 단어가 표현되고 있다). 예수님 당시, 로마법에 보면 양자삼는 것에 관한 법이 있었는데, 그 핵심의 내 용은 어떤 사람이 일단 양자로 어느 집에 들어가게 되면, 그 양 자된 사람은 자신을 양자로 받아들인 사람의 이름을 따고, 또한 그로인해 양부모의 모든 소유와 특권을 친 자식과 같이 동일하 게 그 권리를 확보하고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하나는 양자된 자가, 지금 말씀드린 것과 같은, 법적으로 아버지의 모든 것에 대해 절 대적인 권리를 갖게 되는 양자로서의 변화와 두번째로는 그 아이 를 양자로 받아들인 사람으로서의 변화인데, 그 아이가 양자로 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그 아이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모든 권 한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당시에 있었 던 양자삼는 그러한 사회적 관습(참고:쥬다 벤허와 그의 양부 엘리어스와의 관계를 예로 들어 설명하라.)을 들어, 오늘 본문에 서 바울은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당신들이 하나님 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는가 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첫째, 바울이 양자라는 용어를 통해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교훈은 무엇인가 바울이 양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양자된 사람이 장차 누릴 지위와 신분에 대한 특별한 개념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양자의 의미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기가 어렵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양자가 되었을 때, 비록 우리가 그 사람의 양아들이 되었 다고는 하지만, 양자가 되었다고해서 태어날 때부터 그 때까지 지니고 있던 우리의 본래 성품까지 일시에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양자라는 말은 그 사람의 성품과 관계되는 말이라기 보다는 그 사람의 지위와 관계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예를 들 어 말씀드리자면, 어떤 아이가 양아들로 받아들여졌다고 할 때, 그 아이는 양부모와 실제적인 출생의 혈통적 관계는 없다. 다만 법적으로 양부모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므로 그들의 자녀가 된 것 뿐이다. 그러나 양부모와 천성은 같지 않아도 법적으로 그들의 자녀로서 지위를 보장받게 된다. 바울은 바로 이와같은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되었다는 단순한 깨달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된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여 말씀드리거니 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졌다 해도 우리가 지닌 과거의 죄와 성품이 그 순간 한꺼번에 사라지 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위치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품을 기준해 우리를 자신의 자 녀로 받아들이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양자됨으로서 얻게 되는 귀한 지위와 특권을 모른다. 오직 세상은 세상이기에 세상 것에만 매달려 살아가고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일 수 밖에 없는 당연한 모 습일른지도 모른다. 그들은 결코 보이지 않은 것에는 신경을 쓰 지도 관심을 두려고도 하지 않는다. 단지세상에서 누릴 명예와 지위와 소유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예) 성전미문의 앉은뱅이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움을 모르 고 있었음과 같다. 눅16:19-31절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소유하고 누리게 될 특권과 지위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 었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또한 아름다운 지위와 영예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부자는 죽음을 맞이하여서는 아무것도 가지고 간 것이 없었다. 반면에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는 아픔 속에서 부자의 대문 앞에 누워 있었지만, 그래서 아무도 이 나사로를 돌아 보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었지만, 죽음 후에 이 사람은 부자가 하나도 소유하지 못한 영원한 풍요로움들을 모두 누리게 됨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또한 누리게 될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두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양자된 그리스도인 들만이 그 영원한 것들을 소유하게 된다. 아직 우리들의 성품이 그리스도와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되었기때문에, 그 양자로서의 지위와 특권으로 인해 하나님의 그 모든 예비 하심을 누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세상 이 이해를 하든 하지 않든간에, 멸망받을 죄인으로서가 아니라 구원받을 죄인으로서 하루의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양자되었으므로 양자 삼으신 분의 뜻을 힘써 쫓는 삶을 살아 가는 것이다(참고:롬8:23,갈5:4).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되게 하신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 가 이를 위해 우리는 본문 6절말씀 가운데 기록된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께서 우리를 양자삼으신 그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대 단히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애당초 거룩하지 못한 우리들을 거룩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되심을, 감히 우리를 통해서 나타내시기로 작정하셨 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파격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양자되었다는 이 사실 앞에 서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부흥의 원인 을 델전1:2-8절의 말씀 가운데서 찾아보라. 그들은 믿음 가운데 소망을 갖고,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수고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보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안디옥교회의 성도들도 이웃들에게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을 통해 보임으 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도전을 받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 오늘날 교회 밖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복음 듣기를 은연 중에 꺼려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하 나일 수 밖에 없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우리들에게서 일어난 구원의 놀라운 사건을, 양자됨의 놀라운 감격을 그들에게 심어주 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신, 양자되게 하셔서 영원한 하늘의 기업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대한 찬송을 부르지 않고, 그 분앞에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을 돌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세상은 자신들과 같지 않은 자를 핍박하나 동시에 세상은 자신들과 같지 않은 자를 따르려고 하는 이중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은 세상답게, 교회는 교회답게, 소금은 소금으로서, 빛은 빛으로서 항상 존재 해야만 한다. 타협은 양자를 다 멸망으로 인도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에 대한 가장 큰 첫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모든 것을 통해서 드러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예:수가성 여인, 바돌로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고, 그 결과 세상은 우리를 통해 자신들과 다른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에 들어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의 연약한 삶은 오히려 그들 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언급되는 모든 구원얻은 사람들에게 말해지는 첫번째 음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시, 들에 있던 목자들에게 들려 온 천사들의 소리는 "지극히 놓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였다. 이 말씀의 기록 순서를 주목 해서 보라. "지극히 놓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말 이 언급된 다음에 기록되는 말씀,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구원의 결과로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죄에 대 한 우리들의 생각은 얼마나 잘못되어져 있는가 우리는 어떤 잘 못된 행위들을 가르켜 죄라고 말한다. 단지 나쁜 일을 했다는 의미에서만 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는 죄를 말하고 있지 않다. 죄의 본래 정체가 무엇인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들이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예:
1. 바리새인들, 서기관-말씀은 지키나 영광은 돌리지 못했다.
2. 마7:21절 이하에 나타나는 사람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 그래서 소요리문답 중 제 일문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일 이다"라는 말씀이다. 거듭 강조되는 말이지만, 죄의 가장 무서 운 성격은 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을 받았다라고 고백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구원함을 받았다라 고 말해야 좀 더 분명한 성경의 뜻을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소극적인 의미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기에 소극적인 신앙의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유익을 얻기 위 해 믿는듯한 어리석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한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 런 잘못을 우리는 은연 중에 범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5:16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이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 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과연 여러분은 불 신자들이 여러분을 만날 때마다, "당신의 그 모든 착한 행실의 원인이 하나님 때문인가"라는 반문을 받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 가고 있는가 다이아몬드로 구슬치기를 하던 초창기의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그 은혜의 크기를 생각하지 못하고 살 아가는 우리들의 오늘의 모습과 흡사하다. 우리들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 한 하늘의 기업까지 받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오늘 본 문 6절의 말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즉각적으로 우리들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로 인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통해 순간 순간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환경과 여건 속에서,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그래서 바울의 고백대로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이 므로, 갈2:20절의 말씀에 기록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 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서 사는 것이라"는 동일한 신앙을 고백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들 려 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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