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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릴 수 있는 육체의 정욕 (벧전2:11-12)

본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모든 인생들은 다 나그네들이지만 이미 예수를 믿은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나그네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강조해 주셨습니다. 영광스러운 나그네들이란 잠시 후면 사라질 세속적인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자들이 아니고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나그네들은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자 가 되어야 하며 영적으로 순간 순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 야 한다는 것을 이미 베드로전서 1장, 그리고 2장 상반부에서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번 교훈해 주셨습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는 이런 대원칙을 말씀한 다음에 영광스러운 나그네 들의 실제적인 생활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영광스러운 나그네들인 성도들의 개인적인 신앙 생활은 어떻게 할 것 이며, 사회 생활 속에서는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이 주 신 보금자리인 가정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장에서는 영광스러운 나그네들의 개인적인 신앙 생활에 대한 말씀을 함께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본문 말씀은 육체의 정욕 을 제어하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영광스러운 나그네들의 세상 생활의 한 부분인 것을 우리에게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치열한 전쟁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이 세상은 전쟁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신 무기들을 맞대고 지금도 전쟁하고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것 같고 평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사실 세계 전체가 전쟁터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이념 때문에 서로 보이지 않는 전 쟁들을 얼마나 치열하게 했습니까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이런 이념으로 세계가 온통 전쟁의 도가니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경제 전쟁 아닙니까 자국(自國)의 경제를 보 호하기 위해서 철저한 보호 무역 정책을 쓰는가 하면, 물건 하나라도 더 팔아야겠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자 아니하고 상대방 나라들을 침투해 들어 가는 경제 전쟁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와서는 지식의 지적 소유권들을 주장하면서 학문의 전쟁들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민족들이 자기의 민족성을 주창 하면서 민족주의 투쟁들이 각 나라마다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치열하고도 가장 무서운 전쟁은 우리와 상관없는 제 3영역 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기와의 투쟁이야말로 우리가 당면한 가장 치열한 전쟁이고 가장 무서운 전쟁입니다. 이 자기와의 싸움은 종전(終戰)고 휴전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 에 가는 날까지 우리는 자기와의 투쟁을 부단히 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우리 인간의 속에서는 양심과 욕심이라는 두 가지 세 력이 싸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양심이라는 것은 벌서 죄로 물든 것 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욕심과 싸울 때 쉽게 자기의 뜻을 포기하거나 욕심 에 타협해 버리고 맙니다. 성경은 화인(火印) 맞은 양심이 있다고 말씀합니다(딤전 4:2). 불에 데어서 감각이 없는 양심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 니 이런 양심이 욕심과 싸울 때에는 쉽게 자기와의 싸움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를 믿고난 이후에 우리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세력들이 싸움 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법과 죄의 법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신앙 생활을 해 오는 동안에 한 가지 큰 원리를 깨달았다. 구원 을 받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 죄의 법과 성령님의 법 이 두 가지 법이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다 (21절 이하 참조).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성령님의 법과 죄의 법의 싸움에서 우리가 죄의 법이라고 할 수 있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광스러운 나그네 들의 구체적인 삶의 한 부분인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삶 성경이 우리에게 모든 인생은 나그네라고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는데 이 나그네라는 자기 인식을 가지고 살 때에 사람들은 두 가지 생활 태도 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현실을 도피하거나 부정하거나 외면하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인생은 잠깐 사는 나그네라고 했는데, 세상은 잠시 거쳐 가는 여관과 같은 곳이라고 했는데 뭐 그렇게 열심으로 살 필요가 있겠는 가. 그저 되는 대로 살고 적당히 살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두 가지 생활 태도 가운데 어느 생활을 하라고 요구 합니까 후자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받은 후에 대단히 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 핍박을 이기고 위로를 받기 위해 서 예수님이 곧 재림하신다는 재림의 소망을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더 강 하게 가졌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자 이제 주님이 곧 오실 터인데 짧은 나그네 인생 뭐 그렇게 아둥바둥 애쓰며 살 필요가 있겠 느냐. 일도 하지 말고 현실 도피하면서 전도나 하다가 예수님 오면 천당 가자 라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때 바울 사도가 이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을 향해서 책망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신다고 해서, 너희들의 인생이 짧은 나그네 인생이라고 해서 현실의 삶을 도피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주님이 곧 오시 기 때문에 너희가 이 땅에 있는 나그네의 시간이 너무 짧지 않느냐. 그러므로 나그네 인생이 끝나기 전에 열심으로 이 세상에서 긍정적인 자세와 적 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선을 행하라. 베드로도 이 베드로전서에서 바로 이런 맥락 가운데 육체의 정욕을 제 어하고 선한 삶을 살라고 영광스러운 나그네의 삶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광스러운 나그네의 실제적인 삶의 첫번째 모습인 육체의 정욕 을 제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신앙 생활을 오래한 사람은 육 체의 정욕이란 말의 내용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서 일어나는 부정한 욕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2절에서는 베드로가 이 말을 사람의 정욕이란 말로 달리 표현했고, 바울은 갈라 디아서 5장 19절에서 육체의 일, 그리고 골로새서 3장5절에서는 땅에 있는 지체 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표현은 각각 다르지만 그 내용은 동일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 육체의 정욕이라는 것을 여러 말로 표현하였는데 그 내용을 종합해 보면 크게 다섯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음란한 생각과 생활을 말합니다. 이것이 가장 대표적일 것입니다.
둘째,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부정한 욕심들을 말합니다.
넷째, 화목하게 하지 못하는 성품과 생활, 그래서 시기하거나 질투하거 나 훼방하거나 당을 짓거나 하는 이런 여러 가지 성품들과 생활들을 가리킵니다. 다섯째, 우상 숭배입니다. . 눈에 보이는 우상을 숭배하는 생활도 물론 이거니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어떤 것들이 나에게 복을 주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이 나를 보호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이 인생이 의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인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삶의 자세도 이에 포함됩니다. 본문은 이런 육체적인 정욕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씀합니다. 11절을 다시 보면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 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육체의 정욕들은 영혼을 거스르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다시 말하 면 우리의 영적인 삶이 자라지 못하도록 하고 우리의 영적인 삶이 부패 해 버리도록 작용하는 것이 바로 육체의 정욕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말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우리의 영적인 삶을 부 패시키는 이런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입니다. 제어하라는 것은 속 에서 일어나서 자라지 못하게 하나는 뜻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삶을 지배 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영적인 삶을 질식시키지 못하도록 절제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성공적인 생활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만일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이 일에 실패한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진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100m를 달리는 선수가 출발점에서 준비하고 있다가 출발 신호와 함께 뛰기 시작했는데 한두 발자국 내딛다가 그만 넘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난 이후에 이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일에 실패한다는 것은 마치 100m를 달리는 선수가 출발 신호와 함께 출발하다가 넘어진 것과 다를 바 가 없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지만 여러 가지 생활의 여건들과 환경들과 또 자신이 하 고 있는 일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여건이 형성되면, 기회가 주어 지면 그때 신앙 생활 잘해야지. 영적인 생활은 그때 하지. 아직도 내 인생 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때 해야지. 조금 더 이런 육체적인 정욕에 나를 방임해야겠다 고 생각하는 분들이 혹 있습니다. 표현은 조금 다를지 몰라 도 그 마음 상태가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본문을 한 번 보십시오. 베드로전서 4장 3절을 보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한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 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 여기서 이방인 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총칭한 말입니다. 여기서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삶이 지나간 때로서 족하다고 했습니다. 내일 모레로 미루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제까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았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제는 칼로 베듯이 그런 삶과 절연하고 그 정욕을 제어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꾸 미룹니다. 내일부터 그렇게 살지. 한 달 후부터 그렇게 살지. 여건이 형성되면 그렇게 살지. 이 사업에서 돈을 벌고 정리한 다음에 그렇게 살지. 얼마나 많이 우리는 육체의 정욕에 자꾸 자기를 내 맡기면서 하루하루 미루며 사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지나간 때에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산 것으로 족하다. 이제 영광스러운 나그네가 되었으면 실제적으로 해야 할 일 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에 실패하면 영광스러 운 나그네의 삶을 살 수 없다고 본문은 강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에 힘쓰는 삶
그런데 영광스러운 나그네들의 실제적인 생활이 단순히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을 보면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 져. 라고 말씀합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에 힘쓰는 삶을 사는 것이 영광스러운 나그네들이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선한 삶을 살라고 말씀할 때마다, 입으로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만 우리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질문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 !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만도 힘든데 선한 일까지도 하라 구요 하나님 보십시오. 제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은 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제가 무슨 초인(超人)이라고 저 혼자만 선한 일을 하며 살겠습니까 하나님, 좀 보십시오. 이 사회가 다 악한 육체의 정욕으로 구조화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 속에서 나 혼자 선한 일을 행하여 이 사회에 무슨 변화를 기대 할 수 있겠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을 향해서 이런 반문을 해 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마는 이런 이유와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제가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하는 자기 변명과 자위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2장 12절을 보면 너희가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가운데에서, 또는 유대인들 중에서 선한 행실을 가지라 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 중에서 선한 행실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이방인 중에서. 이말은 무슨 말입니까 도저히 선한 행실을 가질 수가 없는 육체의 정 욕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구조 속에서 선한 행실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5절 말씀에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핑계로, 사회 구조를 핑계로, 또는 우리의 분위기를 핑계로 육체의 정욕의 삶을 제어하지 못하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 때문에 분위기 때문에 환경 때문에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 지 못한다고 하나님 앞에서 핑계를 대고 변명을 한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불 신앙이요 말씀에 대한 불순종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왜 우리가 선을 행해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왜 이방인 중에서,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도 선한 일 많이 하는 분이 대단히 많 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어떤 분들은 자신의 만족 혹은 자기의 위안을 위하여 선한일을 합니다. 또 선을 행함으로 사람들이 칭찬하고 주목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서 선을 행하라고 하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광스러은 나그네들이 나그네 인생길에서 선을 행해야 할 이유는 다 른 데 있습니다.
첫째로,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영광스러운 나그네로 부름을 받은 소명이 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부름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왜 우리 를 자신의 백성으로 불러 주셨습니까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셨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내 자신을 버림은 이제부터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딛 2:1 참조). 우리가 정욕으로 가득찬 세대 속에서 선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 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 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삶을 살 때에 불신자들이 아,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하나님이 능력 있는 분이구나. 이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참 힘있는 말씀이구나 하고 깨닫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이방인 중에서 선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3절). 소금 은 성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다시 말해서 성도로서 특성과 본분과 자기의 부르심을 받은 소명대로 살지 못하면 불신 세계에서 천대받고 영적인 권위를 다 상실해 버린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오늘 교회가 임을 잃어 가는 것, 교단이 힘 을 잃어 가는 것,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늘 이 세대 가운데서 힘을 잃어 가는 것은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소금이 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이방인의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특성과 본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선한 일을 바로 행하지 못할 때에 나 자신만 밟힐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백성들까지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예수 믿는 일을 방해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 셨습니다. 너희는 위선적인 그 악한 행동 때문에 너희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거니와 천국문에 서서 다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까 지 하는구나. 누가 너희를 보고 복음을 믿겠느냐 (마 23:13 참조). 우리 자신을 한번 살펴봅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삶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예수를 믿는가 살펴보십시오. 아니면 내가 예수 믿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혹시 예수를 믿지 않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 가 이방인 중에서, 이 악한 세대 속에서,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그런 사람 들 속에서 선한 일을 행해야만 너희 자신도 권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너희 를 통해서 복음이 불신자들에게 전달되고 이 복음이 오늘의 이 세대를 정 복할 수 있다 고 우리에게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가족 가운데 불신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불신 가족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전이 무엇이겠습니까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마는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나 가족들 앞 에서 부끄러움 없는 선한 삶을 묵묵히 살아갈 때 그것이 그 영혼에게는 강 력한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기독교를 핍박하던 그 강력한 로마가 어떻게 해서 주후 4세기 기독교를 공인하고야 말았습니까 어떤 힘이 로마의 힘을 꺾었습니까 순교 의 피를 흘려 가면서까지도 묵묵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하게 살았던 성도들 의 그 선한 삶이 결국 로마의 강력한 힘을 정복했던 것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를 향해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 세대 를 정죄하거나 비난하거나 소리를 높이거나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악한세대 속에서, 육체의 정욕대로 살고 있는 이방 세대 속에서 선한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 이것이 오늘의 이 세대를 향한 강력한 도전이 됩니다. 이것이 영광스러운 나그네들이 이 땅에서 살 아야 할 구체적인 삶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왜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이 없 겠습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다 보면 낙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 낙심합니다.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데 가만 히 자기를 살펴보니까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낙심하는 것입니다. 또 선을 행한다고 했는데 돌이켜 보면 선을 행하기보다 악을 행한 것밖 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에게 낙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 놓고 우리가 인간이기에 다른 사람이 나에 게 감사를 표해 주기를 기다릴 때가 있습니다. 선을 행해 놓고 상대방으 로부터 어떤 반응이 없을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또 정말 순수한 중심을 가지고 선을 행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곡해하고 왜곡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낙심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낙심하는 우리에게 성경이 뭐라고 약속합니까 너희가 모든 착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이미 너희에게 넘치게 주 셨다 (고후 9:8 참조).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 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너희에게 보답하기를 바라고 하는 선행은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선행이다. 오로지 우리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것을 기억하고 인정하시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선행이다. 사람에게 상급을 구합니까 그것은 의미 없는 선행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그 영원한 상급은 바라보고 묵묵히 선행을 행해야 합니다. 영 원한 상급은 영광스러운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선한 삶을 사는 하나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우리 가 이 일에 실패한다면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갈 수도 없거니와 마음에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기쁨과 평화는 승리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지 싸우고 있는 자나 실패하는 자에게는 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중에 또 어려운 일은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도 묵 묵히 하나님의 사람답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 일도 우리가 어렵다고 포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영광 받기를 기다리고 계시고 복을 땅끝까지 전하는 일을 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어렵다고 포기하지 맙시다.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그리고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이미 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힘들다고 출발하지도 않는 것이 아니라 출발하라. 육체의 정욕을 제어 하는 삶을 시작하라. 선한 삶 살기를 시작하라. 그러면 내가 너와 동행할 것이며 성령님은 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이 약속을 믿고 출발하면 우리는 반드시 이 일에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던 그 삶을 족하게 여기고 더 이상 미루 지 말고 이제부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자기를 이기는 승리자가 되 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방인 중에서 이런 악한 세대 속에서 선할 생활에 힘 씀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복하는 승리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잘하는 저희들의 연약한 모습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 여 자신을 이기라 하셨고 악한 세대에서 선한 삶을 살아 오늘의 이 시대를 정복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영광스러운 나그네의 할 일이라 하셨 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뜻은 있으나 힘이 없사오니 이미 약속하신 말씀을 따라서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 승리자들이 다되게 하여 주시옵소 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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