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깨어지는 야곱 (창43:1)
본문
애굽에서 사온 양식이 다 떨어졌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은 다시 애굽에 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베냐민 없이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전에도 수차례 아버지 야곱에게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야곱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이후 야곱 집안은 평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이 머무르는 곳에 평안에 없었으니 그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죄인을 부르셔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먹을 양식이 떨어지고 애굽에 가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야곱은 심 한 갈등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야곱은 자식들을 편애하던 잘못에서 돌 이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한 가지 사실에서 크게 오 해하였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자식을 편애한 나머지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외모로 보고 판단하는 어리석음이며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 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오는 것임을 여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극한 고통 가운데서 자식을 편애하는 자신의 잘못을 고침받게 됩니다. 야곱은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애굽에 가도록 내어 주면서 그들이 애 굽의 총리에게 동생이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불평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 기 아우 베냐민을 몹시 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들이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고는 자기에게로 다시 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야곱은 엄습해온 기근으로 부터 자기 가족을 구원해 내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면서도 한편 자기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곁에 두기 위해서 투 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좋지 못한 음모를 다시 꾸미고 있 지는 않은가 하고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자기 자신을 보증인으로 내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냐민을 데려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는 길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그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면서도 형제들이 흉계를 꾸미고 있지 않다는 결백을 드러내 보일 수가 있 었을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그들에게 내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곱 은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자기 곁에서 떠나 보낼 때 마치 죽음에 보내는 것 같은 비통한 심정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애굽의 총리에게 줄 선물과 함께 전에 가져갔던 돈 보다 갑절이나 더 준 비했습니다. 아들들에게 모든 가능한 준비를 시킨 뒤에 애굽의 통치자가 자기 아들 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한 뒤에 하나님께 의지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업이나 일이 어려움에 부딪칠 때 언제나 이러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즉 최선을 다해서 대처하여 준비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애굽의 총리가 굉장히 엄하고 철저한 사람이라 고 전했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언제라도 돌변하여 온화한 사람으로 될 수 있음 을 믿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부당하게 대할 때에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함으로 그들이 변화되어 정당하게 대하게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야곱은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절망에 가까운 탄식을 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포기하기 전까지 심한 갈등을 했 습니다. 그러나 이제 결단하고 나서 자기 가족들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 맡기게 되 었습니다. 야곱의 이러한 탄식은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에4:16)고 한 말과 비 슷한 내용을 나타냅니다. 둘 다 자신들의 비참한 상황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 맡 기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어쩌면 야곱은 자신이 바라던 바 대로 일이 되지 않고 예 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하였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모든 것을 감내했을 것 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도착하여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자 그들으 뜻밖의 대접에 당황하였습니다. 그들은 정체가 불분명한 외국의 천한 사람들인 자기들이 애굽의 총 리가 친절하게도 자기 집의 식사에 초대하여 주자 새로운 공포심이 일어났습니다. 이러다가 자기들 자루속에 숨어들어 왔던 돈 때문에 자기들이 고발되고 모두들 한 쇠사슬에 덜커덕 묶여지는 것은 아닌가 하여 불안했습니다. 어쩌면 요셉에 대한 자 기들의 죄가 이제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 양심의 가책도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런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심한 근심과 걱정이 생긴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자기 형제를 몰인정하게 다룬 그들의 양심이 자기 자신들을 고발한 것이고 그 들은 자기들이 형제를 다루듯 혹독하게 당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괴로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걱정으로 청지기에게 변명할 때에 청지기는 그들을 안심시키고 시므온을 데 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물을 가져다가 그들이 발을 씻게 하고 데리고 온 나귀들도 돌봐 주었습니다. 이것은 귀한 손님에게 베푸는 정중한 접대였습니다. 그들은 이런 환대를 받으면서도 안절부절 하였습니다. 요셉이 집에 오자 그들은 요셉 앞에 엎드려 예물을 바쳤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보는 순간 요셉은 정을 억누를 수 없 어 방으로 들어가 울었습니다. 잠시 후 정을 억제하고 나와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 었습니다. 형제들은 나이 순서대로 앉혀졌고, 음식이 분배되었는데 베냐민의 상에는 다른 형제들 보다 다섯 배나 많은 음식이 놓여졌습니다. 형제들이 나이 순서대로 앉는 것은 자기네의 집에서 늘 하던 습관이었는데 애굽에서 이렇게 된 것에 대하여 그 들은 더욱 어리둥절 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는 가장 귀한 손님에게 많은 음식을 베푸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형제들이 베냐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요셉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전에 아버지 야곱이 채색옷을 지어입힐 정도로 편애를 받았는데 그것을 시기했던 형들의 일을 기억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베냐민이 특별대우를 받을 때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경우와 같이 시기하지 않나 하 고 살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라헬의 아들 베냐민이 자기들 보다 나은 대 점을 받았어도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이상 서로를 미워하지 않게 되 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그들 형제들은 참된 화목을 회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열 두 형제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거룩한 백성을 만드시기로 작정하 였고
그러므로 그들은 여러 면에서 성결해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그 가정이 참된 화목을 이루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 기 아우 베냐민을 몹시 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들이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고는 자기에게로 다시 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야곱은 엄습해온 기근으로 부터 자기 가족을 구원해 내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면서도 한편 자기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곁에 두기 위해서 투 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좋지 못한 음모를 다시 꾸미고 있 지는 않은가 하고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자기 자신을 보증인으로 내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냐민을 데려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는 길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그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면서도 형제들이 흉계를 꾸미고 있지 않다는 결백을 드러내 보일 수가 있 었을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그들에게 내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곱 은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자기 곁에서 떠나 보낼 때 마치 죽음에 보내는 것 같은 비통한 심정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애굽의 총리에게 줄 선물과 함께 전에 가져갔던 돈 보다 갑절이나 더 준 비했습니다. 아들들에게 모든 가능한 준비를 시킨 뒤에 애굽의 통치자가 자기 아들 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한 뒤에 하나님께 의지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업이나 일이 어려움에 부딪칠 때 언제나 이러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즉 최선을 다해서 대처하여 준비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애굽의 총리가 굉장히 엄하고 철저한 사람이라 고 전했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언제라도 돌변하여 온화한 사람으로 될 수 있음 을 믿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부당하게 대할 때에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함으로 그들이 변화되어 정당하게 대하게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야곱은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절망에 가까운 탄식을 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포기하기 전까지 심한 갈등을 했 습니다. 그러나 이제 결단하고 나서 자기 가족들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 맡기게 되 었습니다. 야곱의 이러한 탄식은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에4:16)고 한 말과 비 슷한 내용을 나타냅니다. 둘 다 자신들의 비참한 상황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 맡 기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어쩌면 야곱은 자신이 바라던 바 대로 일이 되지 않고 예 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하였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모든 것을 감내했을 것 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도착하여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자 그들으 뜻밖의 대접에 당황하였습니다. 그들은 정체가 불분명한 외국의 천한 사람들인 자기들이 애굽의 총 리가 친절하게도 자기 집의 식사에 초대하여 주자 새로운 공포심이 일어났습니다. 이러다가 자기들 자루속에 숨어들어 왔던 돈 때문에 자기들이 고발되고 모두들 한 쇠사슬에 덜커덕 묶여지는 것은 아닌가 하여 불안했습니다. 어쩌면 요셉에 대한 자 기들의 죄가 이제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 양심의 가책도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런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심한 근심과 걱정이 생긴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자기 형제를 몰인정하게 다룬 그들의 양심이 자기 자신들을 고발한 것이고 그 들은 자기들이 형제를 다루듯 혹독하게 당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괴로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걱정으로 청지기에게 변명할 때에 청지기는 그들을 안심시키고 시므온을 데 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물을 가져다가 그들이 발을 씻게 하고 데리고 온 나귀들도 돌봐 주었습니다. 이것은 귀한 손님에게 베푸는 정중한 접대였습니다. 그들은 이런 환대를 받으면서도 안절부절 하였습니다. 요셉이 집에 오자 그들은 요셉 앞에 엎드려 예물을 바쳤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보는 순간 요셉은 정을 억누를 수 없 어 방으로 들어가 울었습니다. 잠시 후 정을 억제하고 나와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 었습니다. 형제들은 나이 순서대로 앉혀졌고, 음식이 분배되었는데 베냐민의 상에는 다른 형제들 보다 다섯 배나 많은 음식이 놓여졌습니다. 형제들이 나이 순서대로 앉는 것은 자기네의 집에서 늘 하던 습관이었는데 애굽에서 이렇게 된 것에 대하여 그 들은 더욱 어리둥절 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는 가장 귀한 손님에게 많은 음식을 베푸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형제들이 베냐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요셉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전에 아버지 야곱이 채색옷을 지어입힐 정도로 편애를 받았는데 그것을 시기했던 형들의 일을 기억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베냐민이 특별대우를 받을 때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경우와 같이 시기하지 않나 하 고 살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라헬의 아들 베냐민이 자기들 보다 나은 대 점을 받았어도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이상 서로를 미워하지 않게 되 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그들 형제들은 참된 화목을 회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열 두 형제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거룩한 백성을 만드시기로 작정하 였고
그러므로 그들은 여러 면에서 성결해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그 가정이 참된 화목을 이루도록 섭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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