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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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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가끔 영적인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과연 이러한 모습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정말,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까" 또 다른 고민은 "구원은 받았으니, 방종하게 사는 것 정도야! 용서하시겠 지"라는 여러가지 고민에 빠집니다. 우리들만 그런 고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러한 고민에 빠져 큰 어려움을 격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구원에 대한 의미를 잘 몰라서 방종에 빠졌으며, 그래서 성적인 타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갈라디아서 에 나오는 유대주의자들은 복음에 대한 오해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행함 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니,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방탕 하게 살아도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자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반 대하기 위해 믿음이 연약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율법으로 구원받지 않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니 구원은 받았으니 아무 렇게나 살아도 됩니까 아니면, 진정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공로가 없어 도 구원을 받습니까 우리 심각하게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이 질문들을 일축하면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할 수 ' 있습니다. 그러한 질문에 바울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육신에 속 한 사람의 열매와 영에 속한 사람의 열매를 비교하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1. 성령과 육체의 비교(16-18)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의 법조문들을 많이 만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 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맺지 못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이렇게 실패하지 않으려면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17절 말씀에 보면,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나오는데, 이는 '육신 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육신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들을 빛과 어둠은 같이 공존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요 1:4-5). 이곳에서 '육신에 속한 사람'이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육체를 따라 삶으로 육체의 열매를 거둘 수 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중간위치는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처럼 양자택일을 요구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율법아래 있다고 합니다(18). 성령 에 속한 사람은 성령을 좇아 살며 행해야만 합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의미는 '성령과 함께 동 거동락하면서, 성령안에서 머물러 있으며 서로 깊은 교재를 하는 것'입니다. 현 재 우리들 행하는 것은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닫는 것이며, 그 뜻을 따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말씀을 듣는 것만이 의인은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라면 성령의 인도하심따라 살아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 다"(요 8:47)에서 말씀하였습니다. 위에서 잠시 거론하였지만, 바울 사도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권하고 있 으면서, 19-21절까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의 열매를 나열하고 있고, 22-24 절까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열매를 나열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 디아 교인들에게 비교 검토하여 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잠시 육신의 열 매와 성령의 열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 육체에 속한 사람들의 열매(19-21) = 육체에 속한 사람들의 삶에 열매의 목록을 보면, 영적인 시궁창을 본 것같습니다. 어릴적에 저희 옆집에는 큰 구덩이를 파고 콘그리트 정사각형을 만든 후, 그위에 나무로 대충만든 변기위에서 일을 보는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아래를 보면 더러운 배설물이 다 보였습니다. 이곳에서 보기 좋은 것이 무엇이 있던가 요 그곳에서 건질 것이 무엇이 있던가 육신의 열매를 보면 꼭 그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며 속이 안좋습니다. 육체의 열매에 대해 15가지(참고 롬 1:29-32)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4가지로 분류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性)적인 방종입니다. 이것은 음 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입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간접적인 반항입니다.
둘째는, 종교적 타락입니다. 우상숭배와 술수(마술)입니다. 절대자 하나님 께 대한 적극적인 반항입니다. 세째는, 사회적인 방종입니다. 원수맺는 것, 분 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등입니다. 질서자이신 하나님 께 대한 반항입니다. 마지막으로, 술로 인한 방종입니다. 술취함과 방탕인데, 성령충만하신 하나님께 대한 영적인 반항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범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수단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떠나 버린 사람들에게 얻어지는 결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신앙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종종 심방해보면, 너무나도 비참하게 타 락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 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합니다. 그러다보니, 술과 담배에 빠지고, 그리고 연결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육체적 타락입니다. 성적으로 타락하고, 다음으로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집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좌초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육체의 열매는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인데, 이것은 영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고 현실에 급급하여 육신에게 좋을 때로 행한 결과들의 열 매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속해 있지만 육신에 속한 사람들도 맺는 열매가 있습니다. 결단코 신령한 성도들은 맺을 수 없는 열매입니다. 우리들의 심령속에 이러 한 것들이 나타나면, 우리들은 변명할 여지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바라보 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들은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로 거듭난 성도들이 영적인 시궁창에 해당되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행위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 더러운 시궁창에서 건져먹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바울 사도는 회개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계속 육체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21하반절에서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성령에 속한 사람들의 열매(22-24)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은 함부로 방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에게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주시기 위해 허락하셨지만, 이것을 성도들에게 방종을 위하여 허락하신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열매들입니까 보면 볼 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아름다운 열매들입니다. 마치 잘익은 먹음직한 포도송이 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3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향한 국면들입니다. 사랑(사랑은 모든 열매의 모체)과 희락과 화평입니다.
둘째로는 인간을 향한 면 들입니다. 오래참음(선을 위해서는 물러서지 않는 인내), 자비(친절), 양선(행 실로 나타난 사랑) 등입니다.
셋째는 자기를 향한 면들입니다. 충성(신실함, 믿음만함), 온유(힘과 권위의 올바른 사용), 절재(자기 통재)입니다. 이 9가지 종 류들은 따로따로 분리되어진 열매가 아니라, 포도송이와 같이 사랑을 중심으로 한 하나로 된 열매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육신에 속한 사람들도 흉내는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단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을 좇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맞추어 사는 것이기 때문에(23) 이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성도들은 인간의 본성인 육체와 정욕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밖아 죽였습니다. 우리들이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심령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를 믿는 믿음안에 사는 것입니다(참고 2:20). 성도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은 것은 우리 인간의 의지로 맺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심령속 에 충만하여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 성령안에서 행하라(25-26) = 바울은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중요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성령을 따라 살려고 한다면, 옛사람의 육체와 정욕을 죽이고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그들이 율법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전하므로 교회를 문란케 했던 진정한 이유는 자신들의 자존심이 손상하니깐 그렀던 것입니다. 바울은 갈 라디아 교회에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헛된 영광"을 구하다 보면, 자동적으로 서로 격동하고, 투기하게 되어 있습니다(26). 서로 물고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15절에서 "서로 다 멸망하 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보면 헛된 허영심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교회안에서 직분들은 하나님앞에 서로 종노릇하기 위함입니다 (눅 18:14).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하심따라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우리에 십자가를 지고(눅 9:23) 서로 높아지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영적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의 기본입니다. 결론 그리스도인들은 늘 삶속에서 육체의 정욕과 성령을 서로 충돌되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적인 갈등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육신에게 져서 죄악의 종노릇해서는 안되며,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2
4).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성령의 인도하심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자유의 자녀가 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성령 을 통하여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 인도하심 따라 행하여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성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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