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책임 (갈5:1)
본문
사람은 적어도 세가지 면에서 자유가 있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치적 자유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경제적인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셋째는 영적인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치.경제.종교는 이 세상을 버티고 있는 세개의 큰 기둥과도 같습니다. 그 중에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버팀대 에 균형이 기울어지기 때문에 위험하게 됩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점령을 당하여 그들의 통치를 받고 살 때 우리는 자유를 완전히 빼앗겼었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우리가 가장 절실하게 원하던 것은 그 무엇보다고 자유였습니다. 자유의 가치와 그 소중함은 자유 를 빼앗겼을 때에 뼈저리게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자유가 주어진 때에는 오히려 자유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잘 모르고 지냅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이 이십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으로, 선지자로,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왕으로서 정치적인 자유를, 선지자로서 경제적인 자유를, 또 제사장으로서 종교적인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왕 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평화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평화 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정치적인 억압과 부자유속에 있는 백성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오시는 소식은 세상을 참 으로 소망스럽게 하는 평화의 소식인 것입니다. 진정한 정치적 자유는 평화 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서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가 평화롭기를 항상 원합니다. 평화롭게 나라가 다스려지며, 민주화도 사회정의도 평화로운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바라고 염원하는 통일도 반드시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 루어 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통일은 오히려 민족을 더욱 분열시킬 것입니다. 한나라에 지도자는 백성을 평화롭게 다스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제들은 항상 평화를 기원해야 합니다. '너희에 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고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평화로운 정치 와 평화로운 나라안에서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평화로운 시대에 사는 백성들은 '땅은 소출을 내고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 실 것이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기때문에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옛날 세종대왕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훌륭한 우리 글인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을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논 밭을 질서있게 나누어 주어서 농민이 고루 농사짓게 하고 봄이면 양식이 떨어져 굶주리는 백성이 없도록 구호양곡을 마련하였고 양반이라도 자기 종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하고 사형에 해당하는 재판은 적어도 세번을 심리하여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없 도록 법률을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백성을 모든 면에서 자유케하고 자 선정을 베푼 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에도 솔로몬왕은 '평화의 사람'으로, 평화로운 정치를 하였음으로 이 스라엘의 황금시대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평화로운 정치가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원하시는 일이요 또 모든 백성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소원입니다. 거기에 국민이 원하는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평화는 평화의 왕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분이십니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고 포로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시력 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 주시며 복되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이루기 위해 서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정의를 구현할 뿐 아니라 그 정의구 현의 방법이 평화스럽고 의로우며 또 이것이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이 될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정의' 라고 하지만 이 정의가 악용되면 세상은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리고 혼란이오고 평화가 깨지며 자유를 잃어 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자유를 주시려고 가 장 위대한 선지자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수행하셨으며, 인간을 자유케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사명을 수행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죄와 아픔과 무거운 짐들 을 용서하고 위로하고 가볍게 하시는 큰 사제였으며, 인간을 영적으로 자유 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중보자가 되신 제사장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모 든 사람들은 누구나 다 용서와 위로와 해방과 영적인 자유를 필요로 하고있습니다. 참된 자유는 정치적.경제적 차원의 자유만을 가지고 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참으로 해방되고, 죄에서 구원됨으 로써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의 영적인 차원을 무시하게 되면 자유 를 위한 투쟁이나 항거는 오히려 더 큰 부자유만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알 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종교적인 차원의 자유를 얻어야 됩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케 하 시고 자유을 구속하는 모든 악마의 본거지를 사람의 마음에서 허물어 버리 십니다. 그것이 제사장으로서의 그 분의 역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를 자유케 하십니다. 또한 진정한 자유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것을 믿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하실 뿐만 아니라 자유를 주셨 습니다. 자유는 그리스도가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일제에서 해방된 것도 자유를 위하여 싸운 수많은 애국선열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때문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또3.1운동과 같은 전민족적인 항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해방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사건입니다. 자유를 사랑하고 그 처럼 갈망하는 우리 민족의 기도와 절규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이것을 주셨 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는 뜻을 가지셨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자유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가장 값있개 여기 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으셨다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것도 인간 자신들의 결단과 의지로써 하는 것이 가치있다고 보셨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 종해야 될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원치 않으 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들이 그 금단의 열매를 먹는 것을 막지는 아니하셨는가 그것이 항상 의문점인데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나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 하신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소중히 여기시고 그 자유를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왕 바로의 치하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그렇게 부 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없는 상태에 그들을 그냥 방치해 두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을 탈출해서 자유를 얻도록 인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 서문에는 나는 너희들을 애급 땅 노예의 집, 자유가 없는 땅으로부터 너희 를 이끌어 낸 하나님이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유의 땅으로 이끌어 내어주 신 해방자이시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출애굽을 자기들의 역사에서 길이 기억해야 될 해방절로 지켰고 그 해방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인간도 피조물의 하나이지만 그들이 가장 가치있는 존재인 까닭은 인간이 가진 '자유' 때문입니다. 자유의 가치를 알 때에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요 이 자유라는 가치를 아는 민족이 위 대한 민족이 됩니다. 참된 자유가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요, 앞을 향해 발전 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과거 우리를 자기의 속국으로 만들고 심지어는 우리 민족을 말살해 버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들은 먼저 우리의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자유케 하시려는 그의 뜻에 따라서 우리에게 해방을 주셨습니다. 신앙이란 것은 언제나 참된 자유의 가치 를 알게 하여줍니다. 거기에 눈뜨게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같은분은 여기 에 눈을 떠서 자기 고향을 떠났고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모험을 감행함으로 그의 후손들이 선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유를 향한 모험이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유케 하시고, 자유를 주실 뿐만 아니라 광야의 구름기둥 과 불기둥이 되어 대열의 선두에 서서 자유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그만큼 적극적이십니다. 이것을 생각하 였을 때에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를 감사해야 하고 소중히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그런데 인간사회에는 이 자유를 지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자유를 박탈하는 경우도있고 내부적으 로 스스로 자유를 저버리게 하는 일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는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유가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라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것은 인간의 책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 아니요 인간이 해야 될 일입니다. 자유는 너무도 소중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중요한 책임이 따 릅니다.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그처럼 귀한 자유를 수없이 준다한들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유를 오용하거나 악용하지 말라는 경고가 많습니다. 자유에 대한 책임이란 결국 자유를 남용.악용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종 의 멍에를 다시 메게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 게 된 목적과 동기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자유를 잃게하는 요소는 불신감 위화감 불안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고 그런 요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할 때에 결국 우리는 다시금 노예의 멍에를 메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불신감은 모든 것을 다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가 정부나 정치를 불신하게 되면 정치의 자유를 상실하게 됩니다. 짙은 불신 풍조, 이 불신감은 결국 다시금 종의 멍에를 메게하는 요인입니다. 불신의 씨를 물론 뿌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이 불신풍조는 과거에 뿌린 씨를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말하고 속이고 한것에 대한 심판을 지금 우리들은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불신감을 없애는 데에서 진정한 자유를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서로 믿을 수 없고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된 자유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볼때 우리 사회는 계층간의 격차와 그것때문에 오는 적개심이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 모릅니다. 여기에는 누가 누구를 위하고 편 들어 주고하는 그런 일보다는 모두에게 다 절제심이 요구된다고 믿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모세는 그가 인도하는 자기의 백성들에게 가장 많은 원망 과 불평을 들은 사람입니다. 오랜동안 애급에서의 종살이에 길들여져 있어서 국가와 민족공동체의 훈련이 부족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갑자기 자유 가 주어졌을 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를 원망하고 불평하고 서 로 질시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금 종의 멍에를 메는 일 밖 에 올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 대부분을 광야에서 생을 마치도 록 하셨습니다. 절제와 인내, 그것이 그 사람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에 이르 게 하였을 것인데, 그들은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참된 자유를 얻기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절제입니다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화감이 생기고 우리는 이로인해 계층간.지역간의 증오와 적 개심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책임은 절제입니다. 또 하나의 요인은 불안감입니다. 이 불안은 자유뿐만 아니라 모든 평화를 깨뜨리는 요소입니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이 어떻게 자유인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평화를 소유하겠습니까 불안은 인간에게 있는 깊은 죄때문에 옵니다.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케 하셨습니다. 진 정한 자유와 해방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으로서 완성됩니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이 수반됨으로서 지켜집니다. 자유가 중요한 것만큼 책임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참된 자유인이 되기 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자유를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그 얻은 자유를 굳게 지키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유를 주는 진리 성경
본문:요 8:31-36 인간속에 있는 진리들은 대부분이 교묘하고 변하고 바꾸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잘몰라서 따라갈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 진리가 잘못되어 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특히 적그리스도들의 진리는 더욱 교묘하게 인간들을 속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들어나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은폐시키기 위하여 방 어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는 동안에 사람들은 진리에 대하여 쉽게 생각하든지 아예 믿지 않으 려고 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심지어는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생각하 여 깊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든지 아니면 믿지 않으려는 불순종의 태 도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데서 오는 것들도 있으나, 교회가 그 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데서 오기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세상적인 잘못보다는 교회가 올바른 진리 안에서 살지 못하므로 왜곡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교회의 역사속에 이러한 문제로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사건이 있었 으니 바로 471년전 1517년 10월 31일에 윗텐벎이라고 하는 교회의 정문에 `마틴 루터'가 교황을 대항하여 잘못된 점을 시정하기 위해 95개조에 달하는 내용을 붙이게 된 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종교개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보면 교회 밖에서도 많은 문제 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교회내에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교회내 여러가지 많은 부패가 있었고, 교회의 교리적으로 탈 선을 하고 있었으며, 대중은 종교적인 열정이 있었던데 반해 교직자들은 신 앙생활의 수준이 저하 되었고, 도덕적 타락이 있었습니다.
1. "종교개혁"에는 세가지 주된 사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1) 성경 권위의 회복에 대한 외침이 있었습니다. 성경 권위를 교회의 권 위밑에 두고 있던 로마카토릭교회의 전통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던 이 사상 은 "교회 대회가 정경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성경이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 권위가 성경권위 보다 우선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던 교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모든 신앙 내용을 교회의 전 통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위에 신앙의 표준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성경을 교인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개방시킨 것이 종교개혁 의 근본 의도요, 내용입니다. 심지어 우리 장로교의 뿌리인 `존 칼빈'은 말 하기를 "성경을 떠나서 신앙을 논하는 자들은 광난증환자"라고 강하게 주 장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 니라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성경 말씀보다 자신에 게 주어진 은혜가 더 크게 들리도록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어떤 목 회자들은 자신의 말이 성경말씀보다 더 권위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 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교회에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 정도로 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모든 생활을 위 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앞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 "종교개혁"의 두번째 사상은 `이신칭의'의 사상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도 성경에 밝혀진 복음의 내용은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죄 용서를 받기 위하여 돈을 주고 `면죄부'라는 것을 샀습니다. 비싼 것일수록 죄를 많이 용서 받을 수 있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사면 살아 생전에 지은 죄도 용서를 받아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에도 이러 한 일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예수를 믿으면 병을 고칠 수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돈 봉투를 보고 기도를 해준 다는 것입니다. 돈 봉투가 두터우면 오래 기도해 주고 돈 봉투가 얇으면 간 단히 기도를 해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요사이는 돈을 내고 목사안수를 받는가하면, 돈을 내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덧 우리 의 교회들도 돈맛을 알아서 참된 헌금의 정신을 잊어버리는 한심스런 모습 들이 종종 일어나 세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합니다.
(3) "종교개혁"의 세번째 사상은 `만인제사장' 사상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복음을 믿고 회개하므로 그리스도를 통 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죄 용서도 철저하게 하나님과 나사이에 계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예수님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부 도 사이에 있어서 그 신부에게 죄의 고백을 하여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계셔야 함에도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과 나 사 이에 또 다른 사람이 있기를 원하는 모습이 강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하나님께 가까이 있을 때도 있어서 그들에게 나 대신 기도하도록 특별히 부탁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예 자신의 힘으로는 믿음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 이름은 누구에게나 하나님 께 가도록 길을 열어 주었는데 목회자를 의지하고, 특별 은사받은 사람을 의지하고, 나보다 믿음이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의지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리스도만 있어야 되는데도 어떤 한 사람을 자꾸만 사이에 두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어떤 특정인이 나와 하나님 사이에 있다면 그는 나의 우상이 되고마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1) 마귀의 권세아래 신음하며 놓여 있던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끊으시어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마귀를 이기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분입니다. 예수의 이름만이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고 자유를 얻 을 수 있습니다. 죄의 종에서의 해방, 그것이 곧 자유입니다. 죄인된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2) 그러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유를 주셨어도 인간 스스로가 자유를 버리고 맙니다. 오직 말씀속에서만 살아야될 인간 이 그 말씀을 버리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의 종이 되고맙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야 하는 인간이 자꾸만 보이는 것에 눈이 현혹되어 스스로 죄의 종이 되고맙니다. 누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포기하므로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3. 우리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 뿐입니다.
(1) 진리는 우리들에게 자유를 줍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신자들에게 영적인 자유의 기쁨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진리는 과학의 세 계, 철학의 세계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알 때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해방은 무지에서의 해방이지 죄에서의 해 방은 아 닙니다.
(2) 자유,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죄인된 인간은 진정 한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법이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든 지 아니면 인간의 방종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자유는 상대적이요, 궁극적이지 못합니다. 참된 자유는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는 권세를 통하여 승리하는데에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자유에는 정치적, 사상적, 언론적인 것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와 마귀에게서 자유를 얻지 못하면 이 모든 자유도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는 못합니다.
(3) 진리란 무엇입니까 진리는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진리이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1절). 일시적인 감정이나 남이 보는 앞에서 잘 믿는 것처럼 하는 것으 로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훈과 뜻을 연 구하고 실행하기를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이라야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는 구주로 영접할 수 없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만이 우리가 자유로워 집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믿음의 유일한 푯대가 될 때만이 참된 신앙의 진리안에 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온갖 우리를 유혹하는 데서 승리하게 하시는 대장이심을 믿고 그의 뒤를 따를 때만이 온전한 믿음의 승 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유의 특권을 부여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시기 위하여 진리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안에서만 이 참된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가 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정치적 자유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경제적인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셋째는 영적인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치.경제.종교는 이 세상을 버티고 있는 세개의 큰 기둥과도 같습니다. 그 중에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버팀대 에 균형이 기울어지기 때문에 위험하게 됩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점령을 당하여 그들의 통치를 받고 살 때 우리는 자유를 완전히 빼앗겼었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우리가 가장 절실하게 원하던 것은 그 무엇보다고 자유였습니다. 자유의 가치와 그 소중함은 자유 를 빼앗겼을 때에 뼈저리게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자유가 주어진 때에는 오히려 자유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잘 모르고 지냅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이 이십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으로, 선지자로,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왕으로서 정치적인 자유를, 선지자로서 경제적인 자유를, 또 제사장으로서 종교적인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왕 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평화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평화 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정치적인 억압과 부자유속에 있는 백성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오시는 소식은 세상을 참 으로 소망스럽게 하는 평화의 소식인 것입니다. 진정한 정치적 자유는 평화 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서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가 평화롭기를 항상 원합니다. 평화롭게 나라가 다스려지며, 민주화도 사회정의도 평화로운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바라고 염원하는 통일도 반드시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 루어 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통일은 오히려 민족을 더욱 분열시킬 것입니다. 한나라에 지도자는 백성을 평화롭게 다스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제들은 항상 평화를 기원해야 합니다. '너희에 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고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평화로운 정치 와 평화로운 나라안에서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평화로운 시대에 사는 백성들은 '땅은 소출을 내고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 실 것이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기때문에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옛날 세종대왕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훌륭한 우리 글인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을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논 밭을 질서있게 나누어 주어서 농민이 고루 농사짓게 하고 봄이면 양식이 떨어져 굶주리는 백성이 없도록 구호양곡을 마련하였고 양반이라도 자기 종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하고 사형에 해당하는 재판은 적어도 세번을 심리하여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없 도록 법률을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백성을 모든 면에서 자유케하고 자 선정을 베푼 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에도 솔로몬왕은 '평화의 사람'으로, 평화로운 정치를 하였음으로 이 스라엘의 황금시대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평화로운 정치가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원하시는 일이요 또 모든 백성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소원입니다. 거기에 국민이 원하는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평화는 평화의 왕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분이십니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고 포로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시력 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 주시며 복되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이루기 위해 서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정의를 구현할 뿐 아니라 그 정의구 현의 방법이 평화스럽고 의로우며 또 이것이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이 될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정의' 라고 하지만 이 정의가 악용되면 세상은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리고 혼란이오고 평화가 깨지며 자유를 잃어 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자유를 주시려고 가 장 위대한 선지자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수행하셨으며, 인간을 자유케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사명을 수행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죄와 아픔과 무거운 짐들 을 용서하고 위로하고 가볍게 하시는 큰 사제였으며, 인간을 영적으로 자유 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중보자가 되신 제사장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모 든 사람들은 누구나 다 용서와 위로와 해방과 영적인 자유를 필요로 하고있습니다. 참된 자유는 정치적.경제적 차원의 자유만을 가지고 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참으로 해방되고, 죄에서 구원됨으 로써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의 영적인 차원을 무시하게 되면 자유 를 위한 투쟁이나 항거는 오히려 더 큰 부자유만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알 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종교적인 차원의 자유를 얻어야 됩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케 하 시고 자유을 구속하는 모든 악마의 본거지를 사람의 마음에서 허물어 버리 십니다. 그것이 제사장으로서의 그 분의 역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를 자유케 하십니다. 또한 진정한 자유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것을 믿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하실 뿐만 아니라 자유를 주셨 습니다. 자유는 그리스도가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일제에서 해방된 것도 자유를 위하여 싸운 수많은 애국선열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때문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또3.1운동과 같은 전민족적인 항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해방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사건입니다. 자유를 사랑하고 그 처럼 갈망하는 우리 민족의 기도와 절규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이것을 주셨 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는 뜻을 가지셨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자유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가장 값있개 여기 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으셨다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것도 인간 자신들의 결단과 의지로써 하는 것이 가치있다고 보셨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 종해야 될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원치 않으 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들이 그 금단의 열매를 먹는 것을 막지는 아니하셨는가 그것이 항상 의문점인데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나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 하신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소중히 여기시고 그 자유를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왕 바로의 치하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그렇게 부 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없는 상태에 그들을 그냥 방치해 두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을 탈출해서 자유를 얻도록 인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 서문에는 나는 너희들을 애급 땅 노예의 집, 자유가 없는 땅으로부터 너희 를 이끌어 낸 하나님이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유의 땅으로 이끌어 내어주 신 해방자이시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출애굽을 자기들의 역사에서 길이 기억해야 될 해방절로 지켰고 그 해방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인간도 피조물의 하나이지만 그들이 가장 가치있는 존재인 까닭은 인간이 가진 '자유' 때문입니다. 자유의 가치를 알 때에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요 이 자유라는 가치를 아는 민족이 위 대한 민족이 됩니다. 참된 자유가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요, 앞을 향해 발전 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과거 우리를 자기의 속국으로 만들고 심지어는 우리 민족을 말살해 버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들은 먼저 우리의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자유케 하시려는 그의 뜻에 따라서 우리에게 해방을 주셨습니다. 신앙이란 것은 언제나 참된 자유의 가치 를 알게 하여줍니다. 거기에 눈뜨게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같은분은 여기 에 눈을 떠서 자기 고향을 떠났고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모험을 감행함으로 그의 후손들이 선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유를 향한 모험이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유케 하시고, 자유를 주실 뿐만 아니라 광야의 구름기둥 과 불기둥이 되어 대열의 선두에 서서 자유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그만큼 적극적이십니다. 이것을 생각하 였을 때에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를 감사해야 하고 소중히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그런데 인간사회에는 이 자유를 지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자유를 박탈하는 경우도있고 내부적으 로 스스로 자유를 저버리게 하는 일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는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유가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라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것은 인간의 책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 아니요 인간이 해야 될 일입니다. 자유는 너무도 소중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중요한 책임이 따 릅니다.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그처럼 귀한 자유를 수없이 준다한들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유를 오용하거나 악용하지 말라는 경고가 많습니다. 자유에 대한 책임이란 결국 자유를 남용.악용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종 의 멍에를 다시 메게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 게 된 목적과 동기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자유를 잃게하는 요소는 불신감 위화감 불안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고 그런 요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할 때에 결국 우리는 다시금 노예의 멍에를 메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불신감은 모든 것을 다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가 정부나 정치를 불신하게 되면 정치의 자유를 상실하게 됩니다. 짙은 불신 풍조, 이 불신감은 결국 다시금 종의 멍에를 메게하는 요인입니다. 불신의 씨를 물론 뿌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이 불신풍조는 과거에 뿌린 씨를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말하고 속이고 한것에 대한 심판을 지금 우리들은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불신감을 없애는 데에서 진정한 자유를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서로 믿을 수 없고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된 자유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볼때 우리 사회는 계층간의 격차와 그것때문에 오는 적개심이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 모릅니다. 여기에는 누가 누구를 위하고 편 들어 주고하는 그런 일보다는 모두에게 다 절제심이 요구된다고 믿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모세는 그가 인도하는 자기의 백성들에게 가장 많은 원망 과 불평을 들은 사람입니다. 오랜동안 애급에서의 종살이에 길들여져 있어서 국가와 민족공동체의 훈련이 부족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갑자기 자유 가 주어졌을 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를 원망하고 불평하고 서 로 질시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금 종의 멍에를 메는 일 밖 에 올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 대부분을 광야에서 생을 마치도 록 하셨습니다. 절제와 인내, 그것이 그 사람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에 이르 게 하였을 것인데, 그들은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참된 자유를 얻기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절제입니다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화감이 생기고 우리는 이로인해 계층간.지역간의 증오와 적 개심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책임은 절제입니다. 또 하나의 요인은 불안감입니다. 이 불안은 자유뿐만 아니라 모든 평화를 깨뜨리는 요소입니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이 어떻게 자유인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평화를 소유하겠습니까 불안은 인간에게 있는 깊은 죄때문에 옵니다.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케 하셨습니다. 진 정한 자유와 해방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으로서 완성됩니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이 수반됨으로서 지켜집니다. 자유가 중요한 것만큼 책임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참된 자유인이 되기 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자유를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그 얻은 자유를 굳게 지키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유를 주는 진리 성경
본문:요 8:31-36 인간속에 있는 진리들은 대부분이 교묘하고 변하고 바꾸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잘몰라서 따라갈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 진리가 잘못되어 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특히 적그리스도들의 진리는 더욱 교묘하게 인간들을 속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들어나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은폐시키기 위하여 방 어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는 동안에 사람들은 진리에 대하여 쉽게 생각하든지 아예 믿지 않으 려고 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심지어는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생각하 여 깊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든지 아니면 믿지 않으려는 불순종의 태 도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데서 오는 것들도 있으나, 교회가 그 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데서 오기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세상적인 잘못보다는 교회가 올바른 진리 안에서 살지 못하므로 왜곡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교회의 역사속에 이러한 문제로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사건이 있었 으니 바로 471년전 1517년 10월 31일에 윗텐벎이라고 하는 교회의 정문에 `마틴 루터'가 교황을 대항하여 잘못된 점을 시정하기 위해 95개조에 달하는 내용을 붙이게 된 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종교개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보면 교회 밖에서도 많은 문제 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교회내에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교회내 여러가지 많은 부패가 있었고, 교회의 교리적으로 탈 선을 하고 있었으며, 대중은 종교적인 열정이 있었던데 반해 교직자들은 신 앙생활의 수준이 저하 되었고, 도덕적 타락이 있었습니다.
1. "종교개혁"에는 세가지 주된 사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1) 성경 권위의 회복에 대한 외침이 있었습니다. 성경 권위를 교회의 권 위밑에 두고 있던 로마카토릭교회의 전통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던 이 사상 은 "교회 대회가 정경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성경이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 권위가 성경권위 보다 우선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던 교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모든 신앙 내용을 교회의 전 통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위에 신앙의 표준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성경을 교인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개방시킨 것이 종교개혁 의 근본 의도요, 내용입니다. 심지어 우리 장로교의 뿌리인 `존 칼빈'은 말 하기를 "성경을 떠나서 신앙을 논하는 자들은 광난증환자"라고 강하게 주 장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 니라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성경 말씀보다 자신에 게 주어진 은혜가 더 크게 들리도록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어떤 목 회자들은 자신의 말이 성경말씀보다 더 권위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 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교회에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 정도로 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모든 생활을 위 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앞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 "종교개혁"의 두번째 사상은 `이신칭의'의 사상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도 성경에 밝혀진 복음의 내용은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죄 용서를 받기 위하여 돈을 주고 `면죄부'라는 것을 샀습니다. 비싼 것일수록 죄를 많이 용서 받을 수 있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사면 살아 생전에 지은 죄도 용서를 받아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에도 이러 한 일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예수를 믿으면 병을 고칠 수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돈 봉투를 보고 기도를 해준 다는 것입니다. 돈 봉투가 두터우면 오래 기도해 주고 돈 봉투가 얇으면 간 단히 기도를 해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요사이는 돈을 내고 목사안수를 받는가하면, 돈을 내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덧 우리 의 교회들도 돈맛을 알아서 참된 헌금의 정신을 잊어버리는 한심스런 모습 들이 종종 일어나 세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합니다.
(3) "종교개혁"의 세번째 사상은 `만인제사장' 사상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복음을 믿고 회개하므로 그리스도를 통 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죄 용서도 철저하게 하나님과 나사이에 계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예수님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부 도 사이에 있어서 그 신부에게 죄의 고백을 하여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계셔야 함에도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과 나 사 이에 또 다른 사람이 있기를 원하는 모습이 강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하나님께 가까이 있을 때도 있어서 그들에게 나 대신 기도하도록 특별히 부탁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예 자신의 힘으로는 믿음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 이름은 누구에게나 하나님 께 가도록 길을 열어 주었는데 목회자를 의지하고, 특별 은사받은 사람을 의지하고, 나보다 믿음이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의지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리스도만 있어야 되는데도 어떤 한 사람을 자꾸만 사이에 두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어떤 특정인이 나와 하나님 사이에 있다면 그는 나의 우상이 되고마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1) 마귀의 권세아래 신음하며 놓여 있던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끊으시어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마귀를 이기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분입니다. 예수의 이름만이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고 자유를 얻 을 수 있습니다. 죄의 종에서의 해방, 그것이 곧 자유입니다. 죄인된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2) 그러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유를 주셨어도 인간 스스로가 자유를 버리고 맙니다. 오직 말씀속에서만 살아야될 인간 이 그 말씀을 버리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의 종이 되고맙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야 하는 인간이 자꾸만 보이는 것에 눈이 현혹되어 스스로 죄의 종이 되고맙니다. 누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포기하므로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3. 우리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 뿐입니다.
(1) 진리는 우리들에게 자유를 줍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신자들에게 영적인 자유의 기쁨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진리는 과학의 세 계, 철학의 세계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알 때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해방은 무지에서의 해방이지 죄에서의 해 방은 아 닙니다.
(2) 자유,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죄인된 인간은 진정 한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법이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든 지 아니면 인간의 방종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자유는 상대적이요, 궁극적이지 못합니다. 참된 자유는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는 권세를 통하여 승리하는데에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자유에는 정치적, 사상적, 언론적인 것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와 마귀에게서 자유를 얻지 못하면 이 모든 자유도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는 못합니다.
(3) 진리란 무엇입니까 진리는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진리이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1절). 일시적인 감정이나 남이 보는 앞에서 잘 믿는 것처럼 하는 것으 로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훈과 뜻을 연 구하고 실행하기를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이라야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는 구주로 영접할 수 없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만이 우리가 자유로워 집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믿음의 유일한 푯대가 될 때만이 참된 신앙의 진리안에 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온갖 우리를 유혹하는 데서 승리하게 하시는 대장이심을 믿고 그의 뒤를 따를 때만이 온전한 믿음의 승 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유의 특권을 부여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시기 위하여 진리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안에서만 이 참된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가 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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