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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갈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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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번째 편지 내용을 보면, 주후 1세기 고 린도 지역의 상황은, 20세기 말의 세계 정황과 아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도덕성의 상실과 가족의 붕괴, 이에 따른 낙태, 유아 살해, 그리고 동성 연애 문제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지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는,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에 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사회 에 만연된 타락상 때문이거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도덕적인 방종이나 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사랑의 결핍'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나 영적인 은사나 능력도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은사 가 다른 어떤 영적 은사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로 3절을 보십시오. 내가 사람 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랑이 없는 행동은 무의미합니다. 혹시 우리는, 사랑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우리는, 그 마음에 사랑 없이, 사람들을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 없이, 자신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사랑이 없으면, 능력도, 믿음도, 선행도, 헌신도 아무 유익이 없다 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사랑이 이렇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행동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들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모든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 입니다(마 22:37-40).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분별력은 선물로 주어진 것이자 훈련되는 것 잠 17:10 인간의 지식 습득 능력에 대해서 연구한 교육학자들은, 인간을 교육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반복 훈련 이라는사실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고 합니다. 교육학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두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인간의 반복되는 경험들은 인간의 뇌 어느 부분에 입력, 저장됨으로써, 동일한 상 황에서 자동 반응하는 효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반복되는 습관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영적인 훈련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영적인 훈련 역 시, 반복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꾸준하지 않으면, 별 힘이 없습니다. 기도 하는 일이나 전도하는 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살피는 일을 생각해 보십시 오. 꾸준히 기도하지 않으면, 꾸준히 전도하지 않으면, 할 때마다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도, 반복함 으로써 훈련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알아가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다른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반복 훈련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분의 생각을 가늠할 수 없고, 결국 그분의 뜻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 을 받아,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영생 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 이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며,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참 제자 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영생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라는 말은, 그분의 이름을 아는 것, 또는 그분의 행하신 일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의미입니다. 그것은 마치 부부가 서로를 깊이 경험함으로써 아는 것과 같이, 체험적으로 소유 하게 된 지식을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겪어서 안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 바로 그것이, 이 구절에서 사용된 안다는 것의 정확한 의 미가 되겠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아는 하나님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아는 하나님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그가 경험한 하나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구원의 주님, 사랑의 주님, 은혜의 주님, 그리고 의로 우신 주님을 낱낱이 경험하며 사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적용 가능한 실제적인 지혜 잠 3:21-26 때로 우리는 상식과 통찰력을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상식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식을 말합니다. 반면, 통찰력이란 사물을 살피는 능력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는, 물론 '건강한 상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상황이나 사물의 근원을 살피는 눈 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통찰력입니다. 상식과 통찰력의 차이는, 상식이 사물의 표면을 아는 것에 비해, 통찰력은 그것의 이면, 나아가 그것의 근원 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비록 인간의 통찰력이 완전하지는 않 지만,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잠언 3장 21절과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 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그렇습니다. 이 구절에서 말씀하는, 완전한 지혜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 리고 성경은 이러한 분별력 이 우리 영혼의 생명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살 아가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다. 하루는 어떤 젊은 여성이 빌리 그래함 목사를 찾아와서, 배우자 문제에 대해서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그 여성은 현재 교제하고 있는 남성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남성을 자신의 배우자로 원하시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여성은, 현재 교제하고 있는 남성이, 성격이나 취미, 취향이나 삶의 목적, 비전, 모든 면에서 자신 의 이상적인 배우자로 생각되는데, 한 가지 문제는, 그 남성이 그리스도인 이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이 여성에게, 믿음이 있는가 라는 문제가, 성격이나 취미, 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 라고 생각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 에 '신앙(믿음)'이라는 영원히 샘 솟는 근원이 없다면, 그 관계는 금방 말 라서 바닥을 드러내는 얕은 시냇물과 같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때로는, 자기 마음에 흡족한 어떤 부분에서만 하나님의 뜻 에 따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뜻을 자기 생각에 맞추려고 하는 잘못을 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이해를 초 월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 을 통해, 기도를 통해, 그분의 뜻을 살피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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