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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 바디매오의 구도정신 (막10:46-52)

본문

한국 사람 최대 관심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富)의 축적이었 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정도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까 지금은 건강에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몸에 좋다는 것은 해외에서까지 구해다 먹는 볼썽 사나운 모습도 보입니다. 운동과 오락에 관련된 산업이 번창합니다. 이는 부요와 건강 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 상들입니다. 본문에는 건강하지도 못하고 부요하지도 못한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 가 기록되어 있습니다.이야기의 주인공은 소경 거지 바디매오 입니다. 그는 시력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경제력도 없는 사람 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불행 하기 그지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불행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침내 구원에 도달하는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 입니다. 본장에서 살펴볼 내용은 소경 바디매오가 어떻게 불행을 극복하고 구원의 기적을 체험하는 자리에 이를 수 있었나 하는 점 입니다.
구세주를 기대함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변화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 서에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언급되어 있는데 그들 이 다 변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주님을 만나고도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이들이 있고, 반면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운명과 삶의 근본 을 뒤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변화된 사람들의 경우 그들은 예수님을 만날 때 호기심과 더불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 어떤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은 큰 의미 없이 무리 틈에 끼어 주님을 만 났던 사람들과 큰 차이를 드러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고향 마을인 나사렛에서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눅 4:14-30 참조). 아마도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께서 같은 고향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분을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 목공일을 하면서 성장한 청년 예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목수 이상의 존재로 보지 못하는 그들의 편견과 고정 관념이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가로막는 요인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기대가 없으 므로 예수께서는 아무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시대의 청교도들은 토요일날 설레이는 마음으로 주일을 기다렸 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린다는 것은 그 들의 삶에서 최고의 환희였습니다. 그들은 주일을 기다리고 준비하 였다가 주일날 아침에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나감으로써 살아 있는 신앙 교육을 하였습니다. 예배에서 진정한 축복을 경험하려면 예배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사실보다 예배에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지 고 참석하느냐가 휠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기 대하며 교회에 출석하십니까 생명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일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에 대해 많은 정보를 입수해 놓은 듯합니다. 그는 예수께 특별한 기대를 걸고 나아왔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 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47절). 그는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외쳤습니다. 나사렛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주 하찮은 도시로 여기는 마을입니다 . 유대인들끼리도 나사렛 사람들이라면 대단히 깔보았습니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 예수께서는 이 천대받는 나사렛 사람이셨습니다. 나사렛 사람이 란 말은 다분히 조롱하는 어투가 들어간 말입니다.
그런데 소경 바디매오는 주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소위 메시야 호칭입니다. 구약 시대부터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 바디매오에게는 그분은 평범한 교사나 인간이 아니라 다윗의 후손으로서 우리의 운명과 문제를 해결할 구세주일 것이다라는 구 세주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사람들이 그를 어떻 게 생각하느냐라는 평범한 정보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경의 계시에 따라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구주로 확신하십니 까 하나님을 만남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좋은 비결은 마 지막 의식(意識)을 갖는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주께 바라는 기 대는 마지막 기대입니다. 그가 이렇게 간절하게 주님을 기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주변 환경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主 )를 찾게 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소경인데다 거지였기 때문에 더 절박한 심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불행한 환경을 반드시 불행이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건강이 저주입니다. 부요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느 낀다면, 그 똑똑함과 부(富)가 저주입니다. 자신의 불행한 조건 이 예수님을 찾게 했다면 그 불행은 오히려 축복의 요인입니다. 자신의 궁핍한 처지를 깨달아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수년 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 집회를 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펠레 축구장이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한복판에 산이 있고 그 산 꼭대기에 그리스도의 상(像) 이라는 유명한 예수님의 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상을 쳐다보는데 아무리 고개를 들고 봐도 전체 가 다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때 안내원이 말하기를 무릎을 꿇고 위를 올려다보라고 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보니 정말 예수님 상 전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쩌면 주님은 무릎을 꿇는 사람들에게 만 보이는 분일지 모릅니다. 나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깨닫고 겸손하게 주 앞에 엎드릴 때 우리 의 구원자이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바디매오처럼 구세 주를 간절히 열망할 때 삶 가운데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기대할 때 생동감 있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비웃음을 극복함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했을 때 무리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냈는지 4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신앙 생활을 시작할 때 세상 사람들의 박수 갈채를 기대하지 마십 시오. 세상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사실 을 잊지 마십시오. 신앙의 결단은 고독합니다. 기독교 철학자 키엘케골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결단을 가리켜 이 일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외톨이의 결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결단에는 아무런 동조자 도 없습니다.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도 신앙의 길에는 동반자가 아니라 적이 되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결단은 언제나 고독한 결단입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당신만의 결단 입니다. 신앙은 주님 앞에서 각 개인이 고백해야 할 문제입니다.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든 상관없이 흔들림 없는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바디매오를 보십시 오. 그는 사람들이 뭐라 하든 개의치 않고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전보다 더욱 크게 소리 쳤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말렸을 때 잠 잠했다면 그는 자신의 불행을 그대로 안은 채 일생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는 자세로 더욱 열심으로 신 앙에 대한 해답을 추구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극복한 것 이 그의 삶에 놀라운 기적을 선사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구함
바디매오가 애타게 주님을 불렀을 때 자비로운 예수께서 그를 돌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5 1절). 이때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나 그에 게 가장 절실한 문제를 주께 아뢰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51절). 서양 속담에 차선(次善)은 최선(最善)의 적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일이 가장 좋은 일의 가능성을 없애는 경우가 있다는 뜻입니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우선 순위의 혼란에 있습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지, 기준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치관의 상실로 잘못된 판 단을 내리고 하찮은 일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숙제로 계속 남게 됩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른 일 을 포기하는 희생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바디매오는 눈을 뜨고자 하는 중대한 소원 앞에 다른 것은 과감히 내어 버리는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5 0절). 바디매오는 가장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겉옷을 내어 버리고 예수께 뛰어갔습니다. 겉옷을 내어 버린 일이 대수롭지 않게 여 겨지거든, 바디매오가 거지였다는 사실을 상기하십시오. 어쩌면 이 겉옷은 그의 전재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자기 의 전재산을 버리고 더 귀한 일을 선택했습니다. 바디매오는 구할 것을 구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구했습니다. 결국 눈을 뜨게 되는 기적으로 바디매오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 본문에서 제일 중요한 메시지는 바디매오가 눈을 뜬 다음에 한 행동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52절). 그는 길에서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만일 소경이던 당신이 눈을 떴 다면 무슨 일부터 하겠습니까 바디매오도 눈을 뜨면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시력을 회복하자마자 예수님 을 좇았습니다. 바디매오가 눈을 뜨고 처음 본 사람은 예수님이었 을 것입니다. 자기를 고쳐 준 예수님을 평생을 좇아야 할 분으로 첫눈에 알아본 바디매오의 신앙이 놀랍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 들이신 구세주를 바라보는 신앙의 눈을 가졌습니다. 당신은 바디매오와 같이 생애를 걸고 좇아야 할 분으로 예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신앙이란 예수님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삶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바디매오처럼 그분을 좇는 삶을 사십시오. 이것이 당신의 삶을 바꿔 놓을 위대한 기적의 출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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