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 교회 (행11:19-30)
본문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하였습니다. 누가가 바울을 바울을 따라 다니면서 전도현장에서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모든 답이 다 나옵니다. 전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을 거의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이해하였다고 하지만 이해 안되었다는 증거로
첫째로, 전도 열매가 안나옵니다. 두번째로는 기도응답이 없습니다. 이것은 벌써 전도가 안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럴 때는 빨리 방향을 잡아야지 억지로 버티고 있으면 안됩니다. 창세기를 누가 기록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니라!’ 하는 말씀을 모세가 기록했습니다. 아벨 예배를 받고, 가인 예배를 안받았는데 왜 안받았습니까 히11:4절에 ‘그 예물이 증거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같은 사건을 누가 기록했느냐 하면 모세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그냥 큰 역사를 일으킨 것이 아니고, 무엇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는 길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 왕에게 가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서 희생 제사를 드려야 되겠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재앙이 내릴 때마다 모세는 계속 바로에게 그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3일 길만 나가라!’ ‘남자만 데리고 나가라!’고 하지요. 유월절 피바르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다는 사건을 모세가 기록하였습니다. 모세는 양의 피바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고, 홍해를 건넜다는 사실을 알고 기록한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이 말은 다윗이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니, 은혜가 되어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사울 임금이 3천명, 5천명씩 군대를 보내서 다윗을 추격하고 있을 때, 다윗이 아슬아슬하게 굴에 숨어 있다 구원을 얻고, 광야에서 도망 다니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사건들을 체험하고 나서 집에 와서 기록한 일기이다. ‘하나님이 진짜 나의 목자시구나! 이런 상황에서 나를 건졌구나!’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는 절실한 체험적 고백이 나온 것이다. 모세가 창세기 출애굽기 기록할 때, 산에 올라가 바람 쇠면서 쓴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광야를 지나가면서 쓴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전도를 못 깨달아서는 도저히 성경을 못 깨닫는다. 말은 이해가 된다. 한국 말을 기록해 놓은 것을 누가 모릅니까 그러나, 내것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내것이 안되면 어떻게 되는가 불신자들은 점이나 쳐서 운명을 알아 맞추지만, 신자들은 길을 못찾아서 헤메고 앉아 있는 것이다. 어떨 때는 신자가 불신자 보다 훨씬 수준이 낮을 때가 있다. 왜냐면 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길을 훤히 열어놓고 방법을 다 알려 주었는데, 그것을 놓치고 나오는 것이 신비주의이고, 이상한 짖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몇가지만 깨달으면 길을 환히 다 열리도록 만들었다. 아무리 여러분이 전도자를 비웃으려고 하여도 비웃어지지를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계속 답을 주시기 때문이다. 몇가지만 깨달아 버리면 그 속에 하나님의 스케줄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겠구나! 어떻게 가야 되겠구나! 무엇을 해야 되겠구나! 하는 사실을 훤하게 분명하게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안되어지니까, 점쟁이보다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다. 점쟁이는 나중에 속을지라도 점이나 쳐서 조금씩 되는 것같다. 그러나, 신자는 완전히 모르니, 점쟁이 수준이 안되고, 무당 수준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로 성도들을 그렇게 방치되도록 하셨을까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공부만 하면 망한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하는 그것을 받아 내어야 한다. 바리새인이 성경공부를 얼마나 많이하였던가 성경공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다락방하러 가라!는 것은 성경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를 잘 아셔야 된다. 이 사도행전을 누가 기록했느냐 전도 현장에서 뛰는 누가가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방에서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신학자 중에서 신학자는 바울인데, 바울이 이 서신서들을 어디서 기록했느냐 하면 감옥소에서 기록하였다. 전도 현장에 가서, 그날 저녁에 남의 집에 엎드려서 기록하고, 그것도 자기가 기록 못할 때는 대서하는 사람을 시켜서 같이 기록하고 그랬다. 이 성경이 어디 감히, 침대에 드러 누워서 연구하면서 되어진 일이 아닌 것이다. 제가 집사님에게 편지를 보냈다면, 그 편지 내용만 바로 전달되면 되었지, 거기서 문장 투가 어떻고, 글자 모양이 어떻고, 그렇게 세세하게 연구하고 시간 보낼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 주셨을 때는 만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고 전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깨닫는 사람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1. 초대교회의 형편, 교회 분위기 초대교회의 형편은 아주 안좋았다. 그러나, 주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전과는 달랐다. 바리새인들 앞에 떨던 분위기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잘 보아야 된다. 사도행전에서는 초대교회 전도내용이 나온다.
2. 초대교회의 전도내용(3가지) ‘예수 믿으라!’고 단순히 말한 것은 아니다. 물론 예수 믿어야 되겠지만, ‘예수는 그리스도다!’고 증거하였다. 이것을 말하였다. 예수는 구약 시대에 기다린 메시야인데, 그 분이 지금 오셨다! 그러니, 믿으라!는 것이다. 3가지 증거를 보여 주겠는데,
1) 지금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이다. = 선자지 역할
2) 예수 그리스도가 길인데, 그 분을 영접하면, 당장 지금 성령님께서 내주하게 된다. = 제사장 역활 복잡하게 이야기할 것이 없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는데, 당신이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사람을 다 꺽어버린다. 예수 영접하면 성령님이 내주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다. 영접이라는 말을 알아야 성령님의 내주라는 말을 알고, 영접이라는 말을 알아야 구약, 신약을 구분한다. 영접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 오셨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이해해야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는 말을 깨닫게 된다. 억만 죄악과 저주에서 당장 해방받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길을 제시한 것이다.
3) 누가 뭐라고 해도 아담 하와를 넘어뜨리고 지금도 우리를 세밀하게 넘어뜨리 고 있는 사단의 세력을 꺽는 왕이 그리스도시다. = 왕의 역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이 3가지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다. 예수 그리스도를 현재 누려야 만이 역사한다. 이 3가지는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나가서 증거해야 된다. 증거할 이유는 세상이 이 3가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전도라는 것은 무슨 마음 먹고 나가서 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하는 것이고, 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진짜 축복을 받는 것이다. 여기서 지혜의 문이 다 열리고, 목회의 문, 경제의 문을 다 열어주시는 것이다. 사람 문도 다 열어주신다. 초대교회는 ‘예수는 그리스도다!’는 사실을 말했다. 이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부활하셨다는 말은 지금 역사하고 계신다는 말이다. 눈에 안보이게 보헤사 성령님으로 교회와 주의 백성들고 주의 종들을 세밀하게 다루고 계신다. 이것을 말하지 않고 성경 다른 것으로 깊이 들어가면, 그 사람을 죽이는 비결이다. 그것이 바리새인들이 한 길이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 다 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다 나와야 되는 것이다. 왜냐면, 골1:23-25, 골2:3-5에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고 하였다. 이 부활하신 주님은 내 속에 계시고 믿는 자 당신 속에 계시고, 믿는 자 우리 속에 함께 계신다. 이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님으로 내 속에, 당신 속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다. 하나님 만나는 길,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길, 사단을 꺽는 길 이 3가지는 초대교회에서 항상 나오는 것이다. 신약 성경 이야기 할때마다 나오는 것이다. 왜 이 이야기를 해야 되느냐 하면, 사단은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꺽는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리스도 이름을 항상 강단에서 말해야 이 사단이 꺽이는 것이다. 다락방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항상 증거해야 그 집에 사단의 세력이 꺽이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으면 사단은 절대 겁내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빠진 메세지는 절대로 하나님의 멧세지가 아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였다.
그러므로 전도를 어렵게할 것이 없고 성경대로 하면 된다.
3. 행1장-10장까지의 요약
1) 약속(행1:8)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니지 말고 약속한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하였고, 몇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받으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1:8절에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이 되리라!’고 하였다.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것이라고 하였다.
2) 성령님의 역사 행1장에 보면, 제자들과 120문도가 같이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썼다. 행1:14절에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고 하였다. 그러자,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셨다.
3) 능력(행2장) 부활하신 주님께 기도하였더니 당장 능력이 나타난다. 능력을 받고 보니, 드디어 눈이 열렸다. 예루살렘에 15나라 사람이 와 있었다. 와 있어도 영안이 어두우면 모른다. 전도 문이 어마어마한게 열려 있는데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로 성령님 받으면 눈이 열린다. 사람 살리는 눈이 열리는 것이다. 정말로 성령님 받으면 사람 살리는 눈이 열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은혜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깨달으면 어떻게 전도해야 되느냐 하는 ‘하나님의 약도’가 다 보인다. 너무 구원받을 때가 많다. 그리스도를 가진 자가 지금 조용히 지역을 장악해 들어가야 한다. 떠들지 말고 조용히 장악해야 한다. 복음을 가진 자가, 예수 안믿으면 안되는 이유, 예수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구원받는 길은 무엇인가 구원받고 나면 어떤 축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기도하면 어떻게 응답받는가 하는 것을 빨리 가르쳐야 한다. 엉뚱한 율법이나 제도를 가르치면 매일 싸울 뿐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눈감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행2:17절에 ‘젊은 이는 꿈을 보며, 늙은이는 환상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비젼과 길을 다 여신다. 하나님은 심심해서 우리와 숨박꼭질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악취미가 있어서 우리가 무슨 미로로 돌아 다니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뒷골목을 헤메게 하여서 겨우 찾도록 만드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은 은혜 안에서 정말로 주님고 같이 계시는 줄을 알고, 정말 주님이 함께하는 증거를 말하는 것이 전도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움직인다면 하나님은 모든 문을 다 열 것이다. 확실하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문을 다 열어주신다.
4) 핍박(행3장) 기적이 일어난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으나 걸으라!”고 베드로가 명령한다. 여기서 베드로가 앉은뱅이게게 명령해서 일어났다는 것만 이해하면 안된다.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느니라(행3:12-13)고 하였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기로 하신 것이다. 왜냐면, 제사장, 대 제사장, 서기관이 못일으키는 앉은뱅이를 하나님이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기로 하셨다. 베드로가 이것을 눈치챘던 것이다. 이것이 베드로의 믿음이다. 전도의 사명 가지고 계속 기도하다가 보니까, 이런 지혜와 눈이 열렸다. 여호수가아가 ‘태양아, 달아 멈추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할 것을 눈치챈 것이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를 것을 모세가 눈치챈 것이다. 기도하면 그런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벌써 문을 다 열고 예비해 놓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안 가거든요. 이럴 경우는 주일학교 아이가 가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해도 일어날 것이다. 골리앗을 잡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려고 예비 해놓았는데, 안 나가는 겁니다. 그때 다윗이 나갔을 뿐이다. 다윗이 돌멩이 던져서 이마에 맞춰서 죽인 것이다. 기적은 그리스도가 증거되면 계속 일어나게 되어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이 아니다. 주님이 베드로로 하여금 일어나게 만든 것이다(행3:12). 이 일 때문에 핍박이 일어나게 되었다. 당연히 일어나는 핍박이다. 예수님도 당한 핍박이다. 복음을 바로 전하면 당연히 핍박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여러분이 어슬프게 살아야 마귀가 가만히 있지, 복음 바르게 전하려고 하면 핍박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이때 하나님은 행4:25-31절에 성령님충만한 역사를 베푸셨다. 복음 바로 깨달은 자, 주와같이 동행하는 자는 핍박받아도 괜챦다는 말이다. 5) 시험(행5장) 밖에서 핍박이 나고, 안으로는 시험이 생겼다. 시험 당해도 괜챦다.
6) 일꾼(행6장) 성령님충만하고, 믿음충만하고, 지혜충만한 자를 세운다. 일꾼 세우는 일에 사명을 다해야 한다. 일꾼을 세운 그 결과 행6:7절에 보면, 예루살렘 전체에 하나님이 말씀이 퍼졌다. 7) 순교(행7장) 평신도 스데반이 유대인들을 모아놓고 바른 복음 전하고 순교한다. 교회 안에서 첫번째 순교자이다. 전 성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스데반이 똑바른 복음을 전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스데반이 새마을 운동이나 감사심고, 수수심는 일을 말했더라면 아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하고 돌에 맞아 죽었다. 무슨 공동체 이야기하였다면 절대로 돌에 맞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스데반이 예수 이야기를 똑바르게 말하고 돌에 맞아 죽었다. 8) 사마리아(행8장) 집사 빌립이 은혜받아서 전도하러 나가니까, 사마리아 문이 열렸다. 행1:8절의 성취이다.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가 성취된다. 또한, 아슬아슬한 순간에 에디오피아 내시가 복음 받는다. 전도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이 빌립을 건드리고, 내시를 건드렸다. 그래서 만나게 만드셨다. 우리가 정말로 복음 전할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주의 천사를 보내사 고넬료를 건드리고 베드로를 건드려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게 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답을 다 주신다. 9) 이스라엘의 충격적 사건(행9장) 유대 역사상 큰 사건이 벌어졌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던 사울이 회개하고 전도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정일이가 회개하고 내려와서 ‘나는 남한에서 살고싶다!’는 것과 한가지 일이다. 사울이 회개한 것이다. 10) 이방의 문(행10장) 고넬료가 돌아온다. 하나님은 이방의 큰 문을 열기시작한다.
4. 행1-10장 사이에서 3가지 기본전략을 보아야 한다-예루살렘 교회 전략(기본)
1) 홀로 다락방-기도 혼자서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면 어떤 문이라도 열린다. 만약에 어려움이 왔다면 그것은 더 큰 축복의 문인 것이다. 내가 정말로 복음을 위하여 기도했는데, 내게 곤란한 일이 왔다면, 그것은 축복으로 가는 문이다. 이 문이 열리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그런데 잘 안한다. 자꾸 떠들고 돌아다니고 그런다. 기도하면 될텐데. 떠들것 없다. 혼자서 기도하면 된다. 길을 가고오고 할때 기도하면 된다.
2) 지역 다락방(행2장) 그래서 행 2장에 지역 다락방이 열렸다.
3) 사명자 다락방 이때부터 이 다락방을 할 일꾼을 본격적으로 키워야 한다. 초대교회가 이상 3가지를 잘했는데, 예루살렘 전체에, 사마리아 전체에 말씀운동이 퍼져나갔다.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셨다. 주님은 지금도 분명히 살아서 성령님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5.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 차이점(행11장) 고넬료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면, 뭐라고 말해야 되겠는가 ‘이 일은 마28:16-20절의 말씀의 성취되었나! 할레루야!’라고 해야 될 것이다. 이 사건을 놓고 전 교회는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루살렘과 온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시더니, 이것이 이루어졌구나!고 해야 될 것이다.
그런데, 고넬료가 회개한 사건을 놓고, 전 교회가 모여 앉아서는 하는 말이 ‘이방인 고넬에게 세례를 준 것이 과연 성경적이냐’고 회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아직 덜 깨달았던 것이다. ‘고넬료가 무할례자인데, 세례받아서 되겠느냐 그리고 베드로 사도가 무할례자 집에 들어갔는데, 이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무할례자’하면서 유대인의 율법을 그대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었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큰 시각으로 볼때에 이 사건을 분기점으로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쓰지 아니하시고, 안디옥 교회를 쓰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때부터 베드로를 크게 쓰시지 않고, 바울을 더 크게 쓰신 것이다. 하나님의 큰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가 교황이다!고 하지만, 사실은 성경에 보면, 베드로를 크게 쓰지않고, 바울을 크게 사용했다. 예루살렘 교회를 크게 들어 쓴 것이 아니라, 안디옥 교회를 크게 들어 사용했다. 6. 안디옥 교회(오늘본문)
1) 그리스도를 아는 교회 (행11:19)“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스데반의 환난을 인하여 흩어졌던 자들이 모인 것이 안디옥 교회이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에 관해서 바르게 아는 자들이 모였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자가 모인 것이다. 참으로 구성요원이 좋았다. 그리스도를 진짜 아는 자 1-2명만 모이면 하나님은 역사하게 되어있다. 숫자가 작아도 괜챦다. 예수님이 소수에 집중했다는 말은 많은 사람은 버리고 몇사람만 데리고 놀았다는 뜻이 아니다. 확실한 일꾼 몇명을 중심으로 큰 일을 일으키신다는 뜻이다. 요한 웨슬레 같은 인물 하나만 있으면 옥스포드 운동 같은 것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요한 낙스 같은 인물 하나만 있으면 스코틀랜드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요한 낙스가 뭐라고 기도하였는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던지, ‘스코틀랜드를 내게 주시던지 아니면, 내 생명을 가져가시던지 하옵소서!’ 얼마나 확실한 기도를 하였는가 이같은 일꾼 한명으로도 족하게 주님은 일하실 수 있다. 이때 메어리 여왕이 뭐라고 하였는가 ‘요한 낙스의 기도하는 소리는 백만 대군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말발꿉 소리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한두명만 있으면 된다. 안디옥 교회를 잘 보라! 복음을 진짜 잘 이해한 일꾼 한두명만 있으면 된다. 복음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골치만 아파진다. 되는것처럼 보이지만 시끄럽다. 온갖것을 다 가져오는데, 프로그램을 총동원해서 온다. 그래서 지식을 총동원한다. 잘 모르니까 그렇게 시끄러운 것이다. 이래서 결과가 무엇인가 전도 열매가 안나오고, 부흥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응답이 안오는 것이다. 우리가 혹시 복음을 막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복음을 만약 막고 있었다면 끔찍한 일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 몇명만 모여도 큰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다. 예수를 10년, 20년 믿은 신자들이, ‘아니, 목사님 그리스도면 다입니까 교회는 구제를 많이해야 되지 않습니까’ 정말 교회의 주업무가 구제입니까 구제를 잘못하면 그것이 더 거지만드는 비결이다. 거지에게 돈도 중요하지만 그 정신을 뜯어 고쳐야 한다. 그 영을 살려 주어야 되는 것이다. 복음을 못받으니까, 자꾸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구제가 어떻고 하면서그래놓고는 기도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웃기지 마라 이 사람아!’고 하실 판이다. 계속 다른 것만 하면서 끝에 가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고 하는데, 그 기도가 응답이 되겠는가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자가 몇명만 일어나면 일이 되게 되어있다. 왜냐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 속에는 성령님께서 그 속에서 7가지 일을 벌이신다.
1성령님이 그 속에 내주하신다.
2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성령님이 그를 인도한다.
3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가 기도하면, 성령님께서는 반드시 역사를 일으킨다.
4하나님의 성령님은 기도하는 자에게는 가는 곳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권세로 사단을 결박시킨다. 5이 기도하는 주의 종들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은 세밀하게 응답을 주시는데, 주의 천사들을 보내사 응답의 문들을 전부 다 연다. 6이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이 절대로 멸망하지 않도록 영원하고 완전한 보증을 주었다. 7구원받은 자에게는 이 성령님께서 증거를 주신다. 그래서 온 세계로 나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증인되게 하신다. 전도 열매가 안나오고, 기도 응답이 안나오면 빨리 깨달아야 된다. 그리스도를 정말로 아는 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런 요원들이 모이면 역사가 막 일어난다. 안디옥 교회가 그랬다.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분이다. 모자라는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사단문제, 죄문제, 하나님 만나는 문제 다 해결된다. 우리가 하나님 만나면 다 된 것이다. 우리가 마귀를 꺽으면 다 된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건져 나왔고, 생명을 얻은 것이다. 이상 7가지 축복을 모르면 응답이 일어날 수가 없다.
2) 전하는 교회 안디옥 교회는 이 그리스도를 잘 전했다. 그리스도를 정말 안다면 전해야 된다. 불신자가 왜 죽는가 그 이유를 안다면 나가서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다. 이것은 흥분된 상태가 아니다. 대학에서 전부다 말하고 가르쳐 주는데 이 영적인 일만 말하지 않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 엡6:12절에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고 영적인 싸움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싸움이 경제문제나, 구제하는 문제나 지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이다. 우리 싸움은 따로있다. 안디옥 교회에 하나님께서 문들을 계속 열어주셨다.
3) 일꾼 세우는 교회(행11:26) 안디옥 교회가 드디어 일꾼을 키우기 시작했다. 제자삼는 사역을 아는 일꾼을 키웠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느냐를 말하는 것이 성경이야기이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한다. 하나님 만난 사실을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이것이 전도이다. 구약이 전부 하나님 만나는 이야기이다. 그 하나님 만난 것을 말하는 것이 전도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 현장이다. 이것을 다락방이라고 한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우리가 이땅에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고, 잠깐 살고간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하는가 이 복음 전하는 일꾼 만들어 놓고 가야한다. 이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을 다 부으신다. 여기서 축복이 완성된다. 여러분이 수준이 안되면 하나님이 일꾼을 안붙인다. 아무리 떠들어도 왔다가 다 가버린다. 아무리 희안한 방법을 써도 떠나버린다. 정말로 옳은 일꾼이라면 거기에 자꾸 사람들이 붙는다. 이 일꾼에게 하나님 만나는 복음과 하나님 전하는 전도와 하나님 누리게 되는 현장을 가르치게 되면 문은 계속 열리게 된다. 이 4가지를 가르치면 계속 문이 열린다. 이 4가지를 연구하면 경제, 사람, 축복 전부 다 열린다. 불신자들이 수준 높을수록 점을친다. 수준 높을수록 하늘의 뜻을 찾으려고 점을 치는 것이다. ‘목사님, 국회의원들이 점을 그리 많이칩니까’ 수준이 높거든요. 그러니까, 내 힘도 내 힘이지만 하늘의 뜻이 무엇인가 그것을 보는 것이다. 점치는 것을 좋게 이야기해 주면 하늘의 뜻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에게 속아서 어려움을 당하고 그런다. 복음, 전도, 누림, 일꾼 이 4가지를 모르면 헤멘다. 불신자보다 훨씬 머리가 안돌아가는 것이다. 꼭 사업도 안되는 것만 골라가면서 하는 것이다. 생전에 새벽기도 안하고, 철야기도 안하고 그러다가 어려움 겪고 그런다. 기도는 생전에 안하면서 사업은 한다는 것이 꼭 안되는 것만 하는 것이다. 절대 기도 안하고 일주일 내내 한다는 것이 30분 예배드리고 가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니 한다고 하는 것이 불신자보다 못하다. 그러다가 어디가서 하나님 뜻 찾는다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한다면 가서 눈감고 있다가 졸았는데, 무엇을 보았다고 그게 하나님 뜻이라면서 헤메는 것이다. 4가지를 발견하지 않는 이상 헛고생할 뿐이다.
1하나님 만나는 길이 무엇이냐 이것이 성경 66권의 주제이다. 하나님을 그러면 어떻게 말할 것이냐 이것이
2불신자 보는 눈이다.
3이 현장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를 아는 것이 축복 누리는 길이다.
4이 현장에서 사람을 만들어 놓고, 복음 깨달은 올바른 사람 만들려고 우리가 가는 것이다. 우리의 후대에 복음 깨달은 올바른 사람을 군대로 대학으로 중고등학교로 집어 넣어야 한다. 이 4가지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몽땅 부으신다. 그러면 여러분이 가기도 전에 축복을 부으신다. 안디옥 교회가 이것을 잘했다. 안디옥 교회가 잘한 이 4가지에 촛점을 맞추면 하나님의 지혜의 문이 열린다. 사60장을 읽어보라! 원방에서 몰려오고, 짖지도 않은 농사를 따먹게 될 것이고, 은금을 가지고 오게 될 것이다. 너무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온전히 도우신다. 7. 안디옥 교회에 나타난 역사
1) 행11: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니.” 십자가에 피흘리시고, 많은 죄를 해결하시고, 사단을 꺽으신 주의 손이 안디옥 교회와 함께한 것이다.
2) 행11:23-“주의 은혜가 보여.” 소문이 자꾸 퍼진다.
3) 행11:26-큰 무리가 모인다. (행11: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래서 큰 무리가 모여든다. 성령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안속는다. ‘네가 나를 존중히 여긴즉 나도 존중하고, 네가 나를 멸시하면 나도 멸시하리라!’ ‘네가 만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너를 하늘에서 시인할 것이요, 네가 나를 부인하면 나도 부인하리라!’고 하였다. 천하에 기근이 들었는데, 안디옥 교회는 물질 축복을 주셨다.
그러므로 신경쓸 것 없다. 우리가 정말로 복음 전하고 힘쓴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증거를 주실 것이다. 염려할 것이 없다. 다락방에 증거하러 가는 것이다. 나의 말이 아닌 것이다. 증거하러 가는 것이다. 주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것을 증거하러 가는 것이다. 멸망받아야 되는 나를 건지시는 주님을 증거하러 가는 것이고, 죽어야 되는 나를 살리신 주님을 증거하러 가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첫째로, 전도 열매가 안나옵니다. 두번째로는 기도응답이 없습니다. 이것은 벌써 전도가 안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럴 때는 빨리 방향을 잡아야지 억지로 버티고 있으면 안됩니다. 창세기를 누가 기록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니라!’ 하는 말씀을 모세가 기록했습니다. 아벨 예배를 받고, 가인 예배를 안받았는데 왜 안받았습니까 히11:4절에 ‘그 예물이 증거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같은 사건을 누가 기록했느냐 하면 모세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그냥 큰 역사를 일으킨 것이 아니고, 무엇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는 길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 왕에게 가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서 희생 제사를 드려야 되겠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재앙이 내릴 때마다 모세는 계속 바로에게 그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3일 길만 나가라!’ ‘남자만 데리고 나가라!’고 하지요. 유월절 피바르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다는 사건을 모세가 기록하였습니다. 모세는 양의 피바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고, 홍해를 건넜다는 사실을 알고 기록한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이 말은 다윗이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니, 은혜가 되어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사울 임금이 3천명, 5천명씩 군대를 보내서 다윗을 추격하고 있을 때, 다윗이 아슬아슬하게 굴에 숨어 있다 구원을 얻고, 광야에서 도망 다니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사건들을 체험하고 나서 집에 와서 기록한 일기이다. ‘하나님이 진짜 나의 목자시구나! 이런 상황에서 나를 건졌구나!’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는 절실한 체험적 고백이 나온 것이다. 모세가 창세기 출애굽기 기록할 때, 산에 올라가 바람 쇠면서 쓴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광야를 지나가면서 쓴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전도를 못 깨달아서는 도저히 성경을 못 깨닫는다. 말은 이해가 된다. 한국 말을 기록해 놓은 것을 누가 모릅니까 그러나, 내것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내것이 안되면 어떻게 되는가 불신자들은 점이나 쳐서 운명을 알아 맞추지만, 신자들은 길을 못찾아서 헤메고 앉아 있는 것이다. 어떨 때는 신자가 불신자 보다 훨씬 수준이 낮을 때가 있다. 왜냐면 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길을 훤히 열어놓고 방법을 다 알려 주었는데, 그것을 놓치고 나오는 것이 신비주의이고, 이상한 짖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몇가지만 깨달으면 길을 환히 다 열리도록 만들었다. 아무리 여러분이 전도자를 비웃으려고 하여도 비웃어지지를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계속 답을 주시기 때문이다. 몇가지만 깨달아 버리면 그 속에 하나님의 스케줄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겠구나! 어떻게 가야 되겠구나! 무엇을 해야 되겠구나! 하는 사실을 훤하게 분명하게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안되어지니까, 점쟁이보다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다. 점쟁이는 나중에 속을지라도 점이나 쳐서 조금씩 되는 것같다. 그러나, 신자는 완전히 모르니, 점쟁이 수준이 안되고, 무당 수준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로 성도들을 그렇게 방치되도록 하셨을까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공부만 하면 망한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하는 그것을 받아 내어야 한다. 바리새인이 성경공부를 얼마나 많이하였던가 성경공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다락방하러 가라!는 것은 성경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를 잘 아셔야 된다. 이 사도행전을 누가 기록했느냐 전도 현장에서 뛰는 누가가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방에서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신학자 중에서 신학자는 바울인데, 바울이 이 서신서들을 어디서 기록했느냐 하면 감옥소에서 기록하였다. 전도 현장에 가서, 그날 저녁에 남의 집에 엎드려서 기록하고, 그것도 자기가 기록 못할 때는 대서하는 사람을 시켜서 같이 기록하고 그랬다. 이 성경이 어디 감히, 침대에 드러 누워서 연구하면서 되어진 일이 아닌 것이다. 제가 집사님에게 편지를 보냈다면, 그 편지 내용만 바로 전달되면 되었지, 거기서 문장 투가 어떻고, 글자 모양이 어떻고, 그렇게 세세하게 연구하고 시간 보낼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 주셨을 때는 만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고 전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깨닫는 사람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1. 초대교회의 형편, 교회 분위기 초대교회의 형편은 아주 안좋았다. 그러나, 주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전과는 달랐다. 바리새인들 앞에 떨던 분위기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잘 보아야 된다. 사도행전에서는 초대교회 전도내용이 나온다.
2. 초대교회의 전도내용(3가지) ‘예수 믿으라!’고 단순히 말한 것은 아니다. 물론 예수 믿어야 되겠지만, ‘예수는 그리스도다!’고 증거하였다. 이것을 말하였다. 예수는 구약 시대에 기다린 메시야인데, 그 분이 지금 오셨다! 그러니, 믿으라!는 것이다. 3가지 증거를 보여 주겠는데,
1) 지금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이다. = 선자지 역할
2) 예수 그리스도가 길인데, 그 분을 영접하면, 당장 지금 성령님께서 내주하게 된다. = 제사장 역활 복잡하게 이야기할 것이 없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는데, 당신이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사람을 다 꺽어버린다. 예수 영접하면 성령님이 내주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다. 영접이라는 말을 알아야 성령님의 내주라는 말을 알고, 영접이라는 말을 알아야 구약, 신약을 구분한다. 영접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 오셨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이해해야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는 말을 깨닫게 된다. 억만 죄악과 저주에서 당장 해방받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길을 제시한 것이다.
3) 누가 뭐라고 해도 아담 하와를 넘어뜨리고 지금도 우리를 세밀하게 넘어뜨리 고 있는 사단의 세력을 꺽는 왕이 그리스도시다. = 왕의 역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이 3가지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다. 예수 그리스도를 현재 누려야 만이 역사한다. 이 3가지는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나가서 증거해야 된다. 증거할 이유는 세상이 이 3가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전도라는 것은 무슨 마음 먹고 나가서 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하는 것이고, 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진짜 축복을 받는 것이다. 여기서 지혜의 문이 다 열리고, 목회의 문, 경제의 문을 다 열어주시는 것이다. 사람 문도 다 열어주신다. 초대교회는 ‘예수는 그리스도다!’는 사실을 말했다. 이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부활하셨다는 말은 지금 역사하고 계신다는 말이다. 눈에 안보이게 보헤사 성령님으로 교회와 주의 백성들고 주의 종들을 세밀하게 다루고 계신다. 이것을 말하지 않고 성경 다른 것으로 깊이 들어가면, 그 사람을 죽이는 비결이다. 그것이 바리새인들이 한 길이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 다 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다 나와야 되는 것이다. 왜냐면, 골1:23-25, 골2:3-5에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고 하였다. 이 부활하신 주님은 내 속에 계시고 믿는 자 당신 속에 계시고, 믿는 자 우리 속에 함께 계신다. 이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님으로 내 속에, 당신 속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다. 하나님 만나는 길,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길, 사단을 꺽는 길 이 3가지는 초대교회에서 항상 나오는 것이다. 신약 성경 이야기 할때마다 나오는 것이다. 왜 이 이야기를 해야 되느냐 하면, 사단은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꺽는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리스도 이름을 항상 강단에서 말해야 이 사단이 꺽이는 것이다. 다락방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항상 증거해야 그 집에 사단의 세력이 꺽이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으면 사단은 절대 겁내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빠진 메세지는 절대로 하나님의 멧세지가 아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였다.
그러므로 전도를 어렵게할 것이 없고 성경대로 하면 된다.
3. 행1장-10장까지의 요약
1) 약속(행1:8)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니지 말고 약속한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하였고, 몇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받으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1:8절에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이 되리라!’고 하였다.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것이라고 하였다.
2) 성령님의 역사 행1장에 보면, 제자들과 120문도가 같이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썼다. 행1:14절에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고 하였다. 그러자,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셨다.
3) 능력(행2장) 부활하신 주님께 기도하였더니 당장 능력이 나타난다. 능력을 받고 보니, 드디어 눈이 열렸다. 예루살렘에 15나라 사람이 와 있었다. 와 있어도 영안이 어두우면 모른다. 전도 문이 어마어마한게 열려 있는데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로 성령님 받으면 눈이 열린다. 사람 살리는 눈이 열리는 것이다. 정말로 성령님 받으면 사람 살리는 눈이 열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은혜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깨달으면 어떻게 전도해야 되느냐 하는 ‘하나님의 약도’가 다 보인다. 너무 구원받을 때가 많다. 그리스도를 가진 자가 지금 조용히 지역을 장악해 들어가야 한다. 떠들지 말고 조용히 장악해야 한다. 복음을 가진 자가, 예수 안믿으면 안되는 이유, 예수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구원받는 길은 무엇인가 구원받고 나면 어떤 축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기도하면 어떻게 응답받는가 하는 것을 빨리 가르쳐야 한다. 엉뚱한 율법이나 제도를 가르치면 매일 싸울 뿐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눈감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행2:17절에 ‘젊은 이는 꿈을 보며, 늙은이는 환상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비젼과 길을 다 여신다. 하나님은 심심해서 우리와 숨박꼭질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악취미가 있어서 우리가 무슨 미로로 돌아 다니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뒷골목을 헤메게 하여서 겨우 찾도록 만드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은 은혜 안에서 정말로 주님고 같이 계시는 줄을 알고, 정말 주님이 함께하는 증거를 말하는 것이 전도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움직인다면 하나님은 모든 문을 다 열 것이다. 확실하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문을 다 열어주신다.
4) 핍박(행3장) 기적이 일어난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으나 걸으라!”고 베드로가 명령한다. 여기서 베드로가 앉은뱅이게게 명령해서 일어났다는 것만 이해하면 안된다.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느니라(행3:12-13)고 하였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기로 하신 것이다. 왜냐면, 제사장, 대 제사장, 서기관이 못일으키는 앉은뱅이를 하나님이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기로 하셨다. 베드로가 이것을 눈치챘던 것이다. 이것이 베드로의 믿음이다. 전도의 사명 가지고 계속 기도하다가 보니까, 이런 지혜와 눈이 열렸다. 여호수가아가 ‘태양아, 달아 멈추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할 것을 눈치챈 것이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를 것을 모세가 눈치챈 것이다. 기도하면 그런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벌써 문을 다 열고 예비해 놓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안 가거든요. 이럴 경우는 주일학교 아이가 가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해도 일어날 것이다. 골리앗을 잡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려고 예비 해놓았는데, 안 나가는 겁니다. 그때 다윗이 나갔을 뿐이다. 다윗이 돌멩이 던져서 이마에 맞춰서 죽인 것이다. 기적은 그리스도가 증거되면 계속 일어나게 되어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이 아니다. 주님이 베드로로 하여금 일어나게 만든 것이다(행3:12). 이 일 때문에 핍박이 일어나게 되었다. 당연히 일어나는 핍박이다. 예수님도 당한 핍박이다. 복음을 바로 전하면 당연히 핍박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여러분이 어슬프게 살아야 마귀가 가만히 있지, 복음 바르게 전하려고 하면 핍박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이때 하나님은 행4:25-31절에 성령님충만한 역사를 베푸셨다. 복음 바로 깨달은 자, 주와같이 동행하는 자는 핍박받아도 괜챦다는 말이다. 5) 시험(행5장) 밖에서 핍박이 나고, 안으로는 시험이 생겼다. 시험 당해도 괜챦다.
6) 일꾼(행6장) 성령님충만하고, 믿음충만하고, 지혜충만한 자를 세운다. 일꾼 세우는 일에 사명을 다해야 한다. 일꾼을 세운 그 결과 행6:7절에 보면, 예루살렘 전체에 하나님이 말씀이 퍼졌다. 7) 순교(행7장) 평신도 스데반이 유대인들을 모아놓고 바른 복음 전하고 순교한다. 교회 안에서 첫번째 순교자이다. 전 성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스데반이 똑바른 복음을 전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스데반이 새마을 운동이나 감사심고, 수수심는 일을 말했더라면 아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하고 돌에 맞아 죽었다. 무슨 공동체 이야기하였다면 절대로 돌에 맞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스데반이 예수 이야기를 똑바르게 말하고 돌에 맞아 죽었다. 8) 사마리아(행8장) 집사 빌립이 은혜받아서 전도하러 나가니까, 사마리아 문이 열렸다. 행1:8절의 성취이다.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가 성취된다. 또한, 아슬아슬한 순간에 에디오피아 내시가 복음 받는다. 전도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이 빌립을 건드리고, 내시를 건드렸다. 그래서 만나게 만드셨다. 우리가 정말로 복음 전할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주의 천사를 보내사 고넬료를 건드리고 베드로를 건드려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게 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답을 다 주신다. 9) 이스라엘의 충격적 사건(행9장) 유대 역사상 큰 사건이 벌어졌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던 사울이 회개하고 전도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정일이가 회개하고 내려와서 ‘나는 남한에서 살고싶다!’는 것과 한가지 일이다. 사울이 회개한 것이다. 10) 이방의 문(행10장) 고넬료가 돌아온다. 하나님은 이방의 큰 문을 열기시작한다.
4. 행1-10장 사이에서 3가지 기본전략을 보아야 한다-예루살렘 교회 전략(기본)
1) 홀로 다락방-기도 혼자서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면 어떤 문이라도 열린다. 만약에 어려움이 왔다면 그것은 더 큰 축복의 문인 것이다. 내가 정말로 복음을 위하여 기도했는데, 내게 곤란한 일이 왔다면, 그것은 축복으로 가는 문이다. 이 문이 열리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그런데 잘 안한다. 자꾸 떠들고 돌아다니고 그런다. 기도하면 될텐데. 떠들것 없다. 혼자서 기도하면 된다. 길을 가고오고 할때 기도하면 된다.
2) 지역 다락방(행2장) 그래서 행 2장에 지역 다락방이 열렸다.
3) 사명자 다락방 이때부터 이 다락방을 할 일꾼을 본격적으로 키워야 한다. 초대교회가 이상 3가지를 잘했는데, 예루살렘 전체에, 사마리아 전체에 말씀운동이 퍼져나갔다.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셨다. 주님은 지금도 분명히 살아서 성령님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5.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 차이점(행11장) 고넬료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면, 뭐라고 말해야 되겠는가 ‘이 일은 마28:16-20절의 말씀의 성취되었나! 할레루야!’라고 해야 될 것이다. 이 사건을 놓고 전 교회는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루살렘과 온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시더니, 이것이 이루어졌구나!고 해야 될 것이다.
그런데, 고넬료가 회개한 사건을 놓고, 전 교회가 모여 앉아서는 하는 말이 ‘이방인 고넬에게 세례를 준 것이 과연 성경적이냐’고 회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아직 덜 깨달았던 것이다. ‘고넬료가 무할례자인데, 세례받아서 되겠느냐 그리고 베드로 사도가 무할례자 집에 들어갔는데, 이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무할례자’하면서 유대인의 율법을 그대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었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큰 시각으로 볼때에 이 사건을 분기점으로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쓰지 아니하시고, 안디옥 교회를 쓰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때부터 베드로를 크게 쓰시지 않고, 바울을 더 크게 쓰신 것이다. 하나님의 큰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가 교황이다!고 하지만, 사실은 성경에 보면, 베드로를 크게 쓰지않고, 바울을 크게 사용했다. 예루살렘 교회를 크게 들어 쓴 것이 아니라, 안디옥 교회를 크게 들어 사용했다. 6. 안디옥 교회(오늘본문)
1) 그리스도를 아는 교회 (행11:19)“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스데반의 환난을 인하여 흩어졌던 자들이 모인 것이 안디옥 교회이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에 관해서 바르게 아는 자들이 모였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자가 모인 것이다. 참으로 구성요원이 좋았다. 그리스도를 진짜 아는 자 1-2명만 모이면 하나님은 역사하게 되어있다. 숫자가 작아도 괜챦다. 예수님이 소수에 집중했다는 말은 많은 사람은 버리고 몇사람만 데리고 놀았다는 뜻이 아니다. 확실한 일꾼 몇명을 중심으로 큰 일을 일으키신다는 뜻이다. 요한 웨슬레 같은 인물 하나만 있으면 옥스포드 운동 같은 것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요한 낙스 같은 인물 하나만 있으면 스코틀랜드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요한 낙스가 뭐라고 기도하였는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던지, ‘스코틀랜드를 내게 주시던지 아니면, 내 생명을 가져가시던지 하옵소서!’ 얼마나 확실한 기도를 하였는가 이같은 일꾼 한명으로도 족하게 주님은 일하실 수 있다. 이때 메어리 여왕이 뭐라고 하였는가 ‘요한 낙스의 기도하는 소리는 백만 대군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말발꿉 소리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한두명만 있으면 된다. 안디옥 교회를 잘 보라! 복음을 진짜 잘 이해한 일꾼 한두명만 있으면 된다. 복음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골치만 아파진다. 되는것처럼 보이지만 시끄럽다. 온갖것을 다 가져오는데, 프로그램을 총동원해서 온다. 그래서 지식을 총동원한다. 잘 모르니까 그렇게 시끄러운 것이다. 이래서 결과가 무엇인가 전도 열매가 안나오고, 부흥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응답이 안오는 것이다. 우리가 혹시 복음을 막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복음을 만약 막고 있었다면 끔찍한 일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 몇명만 모여도 큰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다. 예수를 10년, 20년 믿은 신자들이, ‘아니, 목사님 그리스도면 다입니까 교회는 구제를 많이해야 되지 않습니까’ 정말 교회의 주업무가 구제입니까 구제를 잘못하면 그것이 더 거지만드는 비결이다. 거지에게 돈도 중요하지만 그 정신을 뜯어 고쳐야 한다. 그 영을 살려 주어야 되는 것이다. 복음을 못받으니까, 자꾸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구제가 어떻고 하면서그래놓고는 기도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웃기지 마라 이 사람아!’고 하실 판이다. 계속 다른 것만 하면서 끝에 가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고 하는데, 그 기도가 응답이 되겠는가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자가 몇명만 일어나면 일이 되게 되어있다. 왜냐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 속에는 성령님께서 그 속에서 7가지 일을 벌이신다.
1성령님이 그 속에 내주하신다.
2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성령님이 그를 인도한다.
3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가 기도하면, 성령님께서는 반드시 역사를 일으킨다.
4하나님의 성령님은 기도하는 자에게는 가는 곳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권세로 사단을 결박시킨다. 5이 기도하는 주의 종들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은 세밀하게 응답을 주시는데, 주의 천사들을 보내사 응답의 문들을 전부 다 연다. 6이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이 절대로 멸망하지 않도록 영원하고 완전한 보증을 주었다. 7구원받은 자에게는 이 성령님께서 증거를 주신다. 그래서 온 세계로 나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증인되게 하신다. 전도 열매가 안나오고, 기도 응답이 안나오면 빨리 깨달아야 된다. 그리스도를 정말로 아는 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런 요원들이 모이면 역사가 막 일어난다. 안디옥 교회가 그랬다.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분이다. 모자라는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사단문제, 죄문제, 하나님 만나는 문제 다 해결된다. 우리가 하나님 만나면 다 된 것이다. 우리가 마귀를 꺽으면 다 된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건져 나왔고, 생명을 얻은 것이다. 이상 7가지 축복을 모르면 응답이 일어날 수가 없다.
2) 전하는 교회 안디옥 교회는 이 그리스도를 잘 전했다. 그리스도를 정말 안다면 전해야 된다. 불신자가 왜 죽는가 그 이유를 안다면 나가서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다. 이것은 흥분된 상태가 아니다. 대학에서 전부다 말하고 가르쳐 주는데 이 영적인 일만 말하지 않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 엡6:12절에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고 영적인 싸움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싸움이 경제문제나, 구제하는 문제나 지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이다. 우리 싸움은 따로있다. 안디옥 교회에 하나님께서 문들을 계속 열어주셨다.
3) 일꾼 세우는 교회(행11:26) 안디옥 교회가 드디어 일꾼을 키우기 시작했다. 제자삼는 사역을 아는 일꾼을 키웠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느냐를 말하는 것이 성경이야기이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한다. 하나님 만난 사실을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이것이 전도이다. 구약이 전부 하나님 만나는 이야기이다. 그 하나님 만난 것을 말하는 것이 전도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 현장이다. 이것을 다락방이라고 한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우리가 이땅에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고, 잠깐 살고간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하는가 이 복음 전하는 일꾼 만들어 놓고 가야한다. 이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을 다 부으신다. 여기서 축복이 완성된다. 여러분이 수준이 안되면 하나님이 일꾼을 안붙인다. 아무리 떠들어도 왔다가 다 가버린다. 아무리 희안한 방법을 써도 떠나버린다. 정말로 옳은 일꾼이라면 거기에 자꾸 사람들이 붙는다. 이 일꾼에게 하나님 만나는 복음과 하나님 전하는 전도와 하나님 누리게 되는 현장을 가르치게 되면 문은 계속 열리게 된다. 이 4가지를 가르치면 계속 문이 열린다. 이 4가지를 연구하면 경제, 사람, 축복 전부 다 열린다. 불신자들이 수준 높을수록 점을친다. 수준 높을수록 하늘의 뜻을 찾으려고 점을 치는 것이다. ‘목사님, 국회의원들이 점을 그리 많이칩니까’ 수준이 높거든요. 그러니까, 내 힘도 내 힘이지만 하늘의 뜻이 무엇인가 그것을 보는 것이다. 점치는 것을 좋게 이야기해 주면 하늘의 뜻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에게 속아서 어려움을 당하고 그런다. 복음, 전도, 누림, 일꾼 이 4가지를 모르면 헤멘다. 불신자보다 훨씬 머리가 안돌아가는 것이다. 꼭 사업도 안되는 것만 골라가면서 하는 것이다. 생전에 새벽기도 안하고, 철야기도 안하고 그러다가 어려움 겪고 그런다. 기도는 생전에 안하면서 사업은 한다는 것이 꼭 안되는 것만 하는 것이다. 절대 기도 안하고 일주일 내내 한다는 것이 30분 예배드리고 가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니 한다고 하는 것이 불신자보다 못하다. 그러다가 어디가서 하나님 뜻 찾는다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한다면 가서 눈감고 있다가 졸았는데, 무엇을 보았다고 그게 하나님 뜻이라면서 헤메는 것이다. 4가지를 발견하지 않는 이상 헛고생할 뿐이다.
1하나님 만나는 길이 무엇이냐 이것이 성경 66권의 주제이다. 하나님을 그러면 어떻게 말할 것이냐 이것이
2불신자 보는 눈이다.
3이 현장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를 아는 것이 축복 누리는 길이다.
4이 현장에서 사람을 만들어 놓고, 복음 깨달은 올바른 사람 만들려고 우리가 가는 것이다. 우리의 후대에 복음 깨달은 올바른 사람을 군대로 대학으로 중고등학교로 집어 넣어야 한다. 이 4가지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몽땅 부으신다. 그러면 여러분이 가기도 전에 축복을 부으신다. 안디옥 교회가 이것을 잘했다. 안디옥 교회가 잘한 이 4가지에 촛점을 맞추면 하나님의 지혜의 문이 열린다. 사60장을 읽어보라! 원방에서 몰려오고, 짖지도 않은 농사를 따먹게 될 것이고, 은금을 가지고 오게 될 것이다. 너무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온전히 도우신다. 7. 안디옥 교회에 나타난 역사
1) 행11: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니.” 십자가에 피흘리시고, 많은 죄를 해결하시고, 사단을 꺽으신 주의 손이 안디옥 교회와 함께한 것이다.
2) 행11:23-“주의 은혜가 보여.” 소문이 자꾸 퍼진다.
3) 행11:26-큰 무리가 모인다. (행11: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래서 큰 무리가 모여든다. 성령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안속는다. ‘네가 나를 존중히 여긴즉 나도 존중하고, 네가 나를 멸시하면 나도 멸시하리라!’ ‘네가 만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너를 하늘에서 시인할 것이요, 네가 나를 부인하면 나도 부인하리라!’고 하였다. 천하에 기근이 들었는데, 안디옥 교회는 물질 축복을 주셨다.
그러므로 신경쓸 것 없다. 우리가 정말로 복음 전하고 힘쓴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증거를 주실 것이다. 염려할 것이 없다. 다락방에 증거하러 가는 것이다. 나의 말이 아닌 것이다. 증거하러 가는 것이다. 주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것을 증거하러 가는 것이다. 멸망받아야 되는 나를 건지시는 주님을 증거하러 가는 것이고, 죽어야 되는 나를 살리신 주님을 증거하러 가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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