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불행은 영적소경 (막10:46-52)
본문
예수님의 생애 중에 믿음을 가져 칭찬도 받고 병도 고치고 구원도 받은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예를 들면 가나안 여인의 믿음,로마 백부장의 믿음,열두해 혈루증여인의 믿음을 들 수 있습니다.이들은 모두가 확신,간절, 인내의 모습들을 지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본문에 소개된 소경 바디매 오 역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디매오보다 더 급히 눈을 떠야할 소경들이 있습니다.이 사람이 누구이겠 습니까.
첫째는,꾸짖는 무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기구한 운명을 바꿔보려고 호소 하는 바디매오를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그를 꾸짖는 무리들이 있었 습니다. 일꾼이 되기 싫거든 차라리 구경꾼으로나 족할 일이지 방해군은 왜 되려 했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이들은 주님이 이땅에 오신것이 어느 특수계층 만을 위하여 오신것으로 잘못 생각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 여러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 을 대속물로 주러 오신 주님의 사명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정 작 눈을 떠야 할 사람은 영적인 소경인 제자들이었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가까운 것만 볼 줄 아는 근시 인생을 향하여 배를 바다의 더 깊은 곳으로 보내길 원하셨습니다. 지나친 현세주의기복주의는 보다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현실을 도외시한채 이상만 꿈꾸는 원시안적인 믿음도 신앙세계 의 맹점 이 되겠습니다.우리는 주의 날이 임박했다고 동심하며 자기 할 일도 팽개 치고 많은 사람을 혹세무민하는 원시안적 믿음의 눈을 바로 고쳐야 합니다. 또한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사시인생,사시적인 믿음도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눈동자를 만드시되 360도로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둘째로 눈을 뜬 바디매오를 살펴보겠습니다. 바디매오는 눈을 떴습니다.이는 우연도,의술도 아니었습니다.예수님 을 붙들고 놓치지 않고 간구했을 뿐입니다. 이 소경의 다부진 각오는 해도 그만,안해도 그만이 아닌 사생결 단 의 외침이었습니다.또한 외침이 있기에 앞서 그에게는 소리를 잘 듣도록 마음의 귀가 열려 있었습니다.소경들은 청각이 예민하지만 예수 란 말 을 듣는 바디매오의 귀는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마음과 더 불어 열려 있었 습니다.바디매오는 예수님을 에워싼 무리중에 더욱 소 리를 지른 사람이었 습니다.꾸짖고 잠잠하라고 하는 주위의 질시에도 이만한 방해쯤이야 하면서 방해앞에 좌절하지 않고 방해를 뛰어넘는 백절불굴의 믿음이었습니다.그 믿음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에는 그의 옷차림이 너무나 남루했습니다. 바디매오가 겉옷을 내버린 것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그의 믿음 을 보여줍니다.또 그는 애타는 소원을 빨리 예수님께 전달하고자 하는 간절함 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빨리 뛰어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보게 되 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길에서 좇았습니다. 길에서란 말은 즉시 좇았다는 것입니다.눈을 뜬 그 감격은 가족과 의 환 상적인 감격의 만남이지만,성경에 바디매오는 예수를 좇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예수를 좇는 일 외에 더 우선적인 일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눈을 떠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진정한 의미의 눈,영적인 눈을 떠야 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어쩌면 우리 자신이 예수님 곁에 있던 제자들처 럼 바디매오를 꾸짖 은 사람은 아닐는지요. 눈을 떠야 할 사람들이 소경 되어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세상에 이런 영적인 소경들이 많 으면 이세상은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밝은 눈이 많은 세상,참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찬 세상을 그려봅시다. 권력에 눈이 감긴 소경들,명예에 소경된 사람들,또한 물질로 눈 이 어두워 진 저들이 바디매오처럼 간절하게 예수님께 외치기를 바랍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첫째는,꾸짖는 무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기구한 운명을 바꿔보려고 호소 하는 바디매오를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그를 꾸짖는 무리들이 있었 습니다. 일꾼이 되기 싫거든 차라리 구경꾼으로나 족할 일이지 방해군은 왜 되려 했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이들은 주님이 이땅에 오신것이 어느 특수계층 만을 위하여 오신것으로 잘못 생각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 여러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 을 대속물로 주러 오신 주님의 사명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정 작 눈을 떠야 할 사람은 영적인 소경인 제자들이었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가까운 것만 볼 줄 아는 근시 인생을 향하여 배를 바다의 더 깊은 곳으로 보내길 원하셨습니다. 지나친 현세주의기복주의는 보다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현실을 도외시한채 이상만 꿈꾸는 원시안적인 믿음도 신앙세계 의 맹점 이 되겠습니다.우리는 주의 날이 임박했다고 동심하며 자기 할 일도 팽개 치고 많은 사람을 혹세무민하는 원시안적 믿음의 눈을 바로 고쳐야 합니다. 또한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사시인생,사시적인 믿음도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눈동자를 만드시되 360도로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둘째로 눈을 뜬 바디매오를 살펴보겠습니다. 바디매오는 눈을 떴습니다.이는 우연도,의술도 아니었습니다.예수님 을 붙들고 놓치지 않고 간구했을 뿐입니다. 이 소경의 다부진 각오는 해도 그만,안해도 그만이 아닌 사생결 단 의 외침이었습니다.또한 외침이 있기에 앞서 그에게는 소리를 잘 듣도록 마음의 귀가 열려 있었습니다.소경들은 청각이 예민하지만 예수 란 말 을 듣는 바디매오의 귀는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마음과 더 불어 열려 있었 습니다.바디매오는 예수님을 에워싼 무리중에 더욱 소 리를 지른 사람이었 습니다.꾸짖고 잠잠하라고 하는 주위의 질시에도 이만한 방해쯤이야 하면서 방해앞에 좌절하지 않고 방해를 뛰어넘는 백절불굴의 믿음이었습니다.그 믿음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에는 그의 옷차림이 너무나 남루했습니다. 바디매오가 겉옷을 내버린 것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그의 믿음 을 보여줍니다.또 그는 애타는 소원을 빨리 예수님께 전달하고자 하는 간절함 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빨리 뛰어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보게 되 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길에서 좇았습니다. 길에서란 말은 즉시 좇았다는 것입니다.눈을 뜬 그 감격은 가족과 의 환 상적인 감격의 만남이지만,성경에 바디매오는 예수를 좇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예수를 좇는 일 외에 더 우선적인 일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눈을 떠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진정한 의미의 눈,영적인 눈을 떠야 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어쩌면 우리 자신이 예수님 곁에 있던 제자들처 럼 바디매오를 꾸짖 은 사람은 아닐는지요. 눈을 떠야 할 사람들이 소경 되어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세상에 이런 영적인 소경들이 많 으면 이세상은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밝은 눈이 많은 세상,참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찬 세상을 그려봅시다. 권력에 눈이 감긴 소경들,명예에 소경된 사람들,또한 물질로 눈 이 어두워 진 저들이 바디매오처럼 간절하게 예수님께 외치기를 바랍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