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에서 일어난 일 (막10:46-52)
본문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리고성에서 소경인 거지 바디매오 를 고치신 기적에 대해 공부하게 됩니다. 본문의 말씀은 마태복음,마 가복음,그리고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세 복음서 에 기록되어 있는 이 사건이 본문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조금씩 차이 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46절을 보면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 나가실 때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여리 고에서 살고 있는 한 소경 바디매오를 고치셨다는 기사이고, 누가복음 18장 35절에서는 예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들어오실 때에 바디매오를 고친 기사입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서로 다르게 기록된 것은 시각적인 차이입니다. 당시에 여리고는 구 여리고와 신여리고로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라고 했고 누가복음 에서는 "이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라고 말씀하신 것은 구여리고 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예수께서 구 여리고에서 밖으로 나가고 계셨 고, 신 여리고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예수께서 구 여리고를 나오셔서 신 여기로고 가까이 오고 계실 때 그 중간지점에서 바디매오를 고치셨 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께서 이러한 고난의 길을 가는 와중에도 놀라운 축복을 바디매오에게 주시는 사건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고난의 주님은 또한 축복의 주님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고난의 주님께서 바디매오에게 어떤 은혜와 축복을 주셨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첫번째는, 평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49절에 보면 주님께서 "저를 부르라"고 하시는 음성을 들은 그들이 그 소경을 부르며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라고 합니다. 불 안과 초조에 떨고 있던 바디매오에게 "너를 부르시니 안심하고 일어나라"는 이 말은 평안의 축복을 전해주시는 주님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 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주님은 이렇게 바디매오에게 평안의 축복을 주 셨습니다. 두번째는 사랑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34절에 보면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 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민망히 여긴다'는 말은 헬라원문에 '긍휼히 여긴다'라는 말로서 예수님의 사랑의 공급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응답을 주셨습니다. 51절,52절에 보면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내가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는 말씀을 들을 때에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소경 바디매오는 말하고 있습니다. 눈먼 거지인 바디매오가 평안과 사랑과 응답의 축복 을 받은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본문 말씀은 바디매오의 신앙에 있 다고 강조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바디 매오가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그의 믿음 덕분인 것입니다. 과연 이 바디매오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구원받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로부터 평안과 사랑과 축복을 받는 놀라운 믿음,고난의 길을 걸어가시는 주님으로 하여금 축복하게 하는 놀라운 믿음의 요소가 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가지고 있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다른 말로 하면 믿음 이 생기면 어떠한 일이 생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1. 믿음이 요소는 열정입니다. 믿음이 마음속에 생기게되면 그 사람의 마음과 생활에 열정이 생깁니다. 본문 47절,48절을 보게 되면 "나사렛 예수시라하는 말을 듣고 소 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바디매 오의 열정적인 신앙의 모습을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이빈다. "소리질 러 가로되"라는 말이 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영어 원문에 '옐링'이라는 말은 가만히 있던 사람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비명을 지르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에 빠져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사람살려!' 하고 부르짖는 외마디 비명같은 소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칼빈은 바디매오의 소리지르는 것을 격렬한 감정의 표시라고 했 고, 렌스키는 광란적인 부르짖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르짖음은 바디매오가 얼마나 신앙적으로 뜨겁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부르짖었는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 신앙이 마음 속에 들어 있으면 열정적인 행동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뜨거운 열정의 신앙이 없이는 참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 스빈다. 스편서는 말하기를 '열정은 마음의 술취한 상태'라고 하며, 에머슨은 "위대한 업적치고 열정없이 이루어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본문을 보면 바디매오는 열정적으로 매달린 것이 두가지 있 었습니다.
첫째는,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지르는 신앙의 고백이 열정적이 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고백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신 나의 메시아요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신만이 나를 죄와 사망과 질병과 고통에서 구원하실 참 된 구주십니다."라는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고백을 분명히 하십시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 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열정적으로 드릴 때 예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네 하나님 아버지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생활의 열정이었습니다. 주 님의 자비와 사랑과 긍휼을 요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에 바디매오는 열 정적이었습니다. 이처럼 계속적으로 주님께서 들어주실 때까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는 열정적인 기도를 해야합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져버리고 말지만 장작불은 더 세게 타오릅니다.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불이 있어 신앙이 뜨거운 사람, 은혜가 강 하게 역사하는 사람들을 주위의 반대가 있고 핀잔을 받고 핍박이 있어 도 그 열정적인 신앙이 절대로 약해지지 않고 신앙의 고백과 기도의 생활이 더욱 열정적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신앙의 열정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영혼 속에서 터져나오는 신앙의 고백과 뜨거운 간구를 막을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예루살렘을 향하여 고난의 길을 가시는 주님 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고 주님으로 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 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의 불, 뜨거운 열정인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님의 불이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 게 임한 것처럼 여러분이 얼마나 신앙의 고백과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기도가 열정적이냐에 따라서 성령님의 충만함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생명은 불입니다. 신앙의 생명은 열정이요, 뜨거움인 것입니다. 여러분, 봉사의 열정,헌신의 열정,기도의 열정,신앙고백의 열정,찬양 의 열정이 식으면 안됩니다. 여러분, 신앙의 열정이 있을 때에 역사를 움직이고 환경이 변화되는 것을 믿으십시오. 뜨거워 지십시오. 열정이 없이 무슨 기도를 하며 찬 송을 하고 예배를 드립니까열정적인 신앙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2. 믿음의 두번째 요소는 포기하는 것입니다. 본문 50절에 보면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 아오거늘"이라고 했습니다. 겉옷을 내어 버렸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 기하였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치마와 같은 큰 통치마를 겉옷으로 입었습니다. 이 겉옷은 밤에는 침구로 낮에는 옷으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 라엘은 낮은 덥고 밤은 덥고 밤은 쌀쌀합니다.
그러므로 겉옷은 생활 의 필수품입니다. 그런 필수품은 바디매오는 왜 버렸을까요 앞은 안 보이고 주님은 부르시고 마음은 급합니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다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주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 폭 해야 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것입니다. 세상 것을 버리지 않으면 예수를 바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적인 것을 끊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수를 따르려면 버려야만 됩니다.옛 것을, 세속적인 것을 끊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끊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마음 속에 은혜가 들어오고 믿음이 들어오면 저절로 끊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많이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를 못 받으면 그리스도인이라고 계속해서 죄를 짓습니다. 화산재 에 덮여잇떤 폼페이시를 발굴, 복원시켜 놓은 곳에 가보면 2000년전인 데도 사우탕이며 여러가지 시설로 미루어보아 얼마나 쾌락적인 도시였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어떤 여자가 도망을 가다가 용암이 덮쳐서 죽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여자는 무거운 금덩어리를 들고 가다가 용암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끊을 것을 끊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세속 적이고, 세상과 짝하기를 하나님과 짝하는것보다 더 좋아하면 예수를 올바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3. 믿음의 세번째 요소는 분명한 소원을 갖는 것입니다. 51절에 보면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인가를 주기를 원하 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소경은 무엇을 보기 원했던 것일까요원문 성경에는 "주님 당신을 보기 원합니다."라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디매오의 간절한 소원은 주님을 보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진짜 마음속에 들어가면 세상적인 소원은 없어집니다. "예수만 바로 믿고 살아야지"하는 소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소원이 생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허황된 있었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하나는 주의 왼편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의 소원은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주님 당신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보지 않고서도 주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눈을 열어 주시면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따라가겠습니다."라는 분명한 소원이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열정, 세상을 끊어버리는 용기, 주님만 바라보고 주 님의 뜻대로만 사는 그런 신앙의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 을 소유하여 여러분의 신앙으로 인해 기뻐하시는 주님께 놀라운 축복 을 받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라고 했고 누가복음 에서는 "이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라고 말씀하신 것은 구여리고 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예수께서 구 여리고에서 밖으로 나가고 계셨 고, 신 여리고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예수께서 구 여리고를 나오셔서 신 여기로고 가까이 오고 계실 때 그 중간지점에서 바디매오를 고치셨 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께서 이러한 고난의 길을 가는 와중에도 놀라운 축복을 바디매오에게 주시는 사건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고난의 주님은 또한 축복의 주님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고난의 주님께서 바디매오에게 어떤 은혜와 축복을 주셨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첫번째는, 평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49절에 보면 주님께서 "저를 부르라"고 하시는 음성을 들은 그들이 그 소경을 부르며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라고 합니다. 불 안과 초조에 떨고 있던 바디매오에게 "너를 부르시니 안심하고 일어나라"는 이 말은 평안의 축복을 전해주시는 주님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 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주님은 이렇게 바디매오에게 평안의 축복을 주 셨습니다. 두번째는 사랑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34절에 보면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 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민망히 여긴다'는 말은 헬라원문에 '긍휼히 여긴다'라는 말로서 예수님의 사랑의 공급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응답을 주셨습니다. 51절,52절에 보면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내가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는 말씀을 들을 때에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소경 바디매오는 말하고 있습니다. 눈먼 거지인 바디매오가 평안과 사랑과 응답의 축복 을 받은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본문 말씀은 바디매오의 신앙에 있 다고 강조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바디 매오가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그의 믿음 덕분인 것입니다. 과연 이 바디매오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구원받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로부터 평안과 사랑과 축복을 받는 놀라운 믿음,고난의 길을 걸어가시는 주님으로 하여금 축복하게 하는 놀라운 믿음의 요소가 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가지고 있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다른 말로 하면 믿음 이 생기면 어떠한 일이 생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1. 믿음이 요소는 열정입니다. 믿음이 마음속에 생기게되면 그 사람의 마음과 생활에 열정이 생깁니다. 본문 47절,48절을 보게 되면 "나사렛 예수시라하는 말을 듣고 소 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바디매 오의 열정적인 신앙의 모습을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이빈다. "소리질 러 가로되"라는 말이 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영어 원문에 '옐링'이라는 말은 가만히 있던 사람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비명을 지르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에 빠져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사람살려!' 하고 부르짖는 외마디 비명같은 소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칼빈은 바디매오의 소리지르는 것을 격렬한 감정의 표시라고 했 고, 렌스키는 광란적인 부르짖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르짖음은 바디매오가 얼마나 신앙적으로 뜨겁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부르짖었는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 신앙이 마음 속에 들어 있으면 열정적인 행동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뜨거운 열정의 신앙이 없이는 참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 스빈다. 스편서는 말하기를 '열정은 마음의 술취한 상태'라고 하며, 에머슨은 "위대한 업적치고 열정없이 이루어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본문을 보면 바디매오는 열정적으로 매달린 것이 두가지 있 었습니다.
첫째는,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지르는 신앙의 고백이 열정적이 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고백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신 나의 메시아요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신만이 나를 죄와 사망과 질병과 고통에서 구원하실 참 된 구주십니다."라는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고백을 분명히 하십시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 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열정적으로 드릴 때 예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네 하나님 아버지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생활의 열정이었습니다. 주 님의 자비와 사랑과 긍휼을 요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에 바디매오는 열 정적이었습니다. 이처럼 계속적으로 주님께서 들어주실 때까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는 열정적인 기도를 해야합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져버리고 말지만 장작불은 더 세게 타오릅니다.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불이 있어 신앙이 뜨거운 사람, 은혜가 강 하게 역사하는 사람들을 주위의 반대가 있고 핀잔을 받고 핍박이 있어 도 그 열정적인 신앙이 절대로 약해지지 않고 신앙의 고백과 기도의 생활이 더욱 열정적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신앙의 열정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영혼 속에서 터져나오는 신앙의 고백과 뜨거운 간구를 막을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예루살렘을 향하여 고난의 길을 가시는 주님 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고 주님으로 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 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의 불, 뜨거운 열정인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님의 불이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 게 임한 것처럼 여러분이 얼마나 신앙의 고백과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기도가 열정적이냐에 따라서 성령님의 충만함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생명은 불입니다. 신앙의 생명은 열정이요, 뜨거움인 것입니다. 여러분, 봉사의 열정,헌신의 열정,기도의 열정,신앙고백의 열정,찬양 의 열정이 식으면 안됩니다. 여러분, 신앙의 열정이 있을 때에 역사를 움직이고 환경이 변화되는 것을 믿으십시오. 뜨거워 지십시오. 열정이 없이 무슨 기도를 하며 찬 송을 하고 예배를 드립니까열정적인 신앙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2. 믿음의 두번째 요소는 포기하는 것입니다. 본문 50절에 보면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 아오거늘"이라고 했습니다. 겉옷을 내어 버렸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 기하였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치마와 같은 큰 통치마를 겉옷으로 입었습니다. 이 겉옷은 밤에는 침구로 낮에는 옷으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 라엘은 낮은 덥고 밤은 덥고 밤은 쌀쌀합니다.
그러므로 겉옷은 생활 의 필수품입니다. 그런 필수품은 바디매오는 왜 버렸을까요 앞은 안 보이고 주님은 부르시고 마음은 급합니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다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주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 폭 해야 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것입니다. 세상 것을 버리지 않으면 예수를 바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적인 것을 끊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수를 따르려면 버려야만 됩니다.옛 것을, 세속적인 것을 끊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끊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마음 속에 은혜가 들어오고 믿음이 들어오면 저절로 끊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많이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를 못 받으면 그리스도인이라고 계속해서 죄를 짓습니다. 화산재 에 덮여잇떤 폼페이시를 발굴, 복원시켜 놓은 곳에 가보면 2000년전인 데도 사우탕이며 여러가지 시설로 미루어보아 얼마나 쾌락적인 도시였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어떤 여자가 도망을 가다가 용암이 덮쳐서 죽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여자는 무거운 금덩어리를 들고 가다가 용암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끊을 것을 끊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세속 적이고, 세상과 짝하기를 하나님과 짝하는것보다 더 좋아하면 예수를 올바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3. 믿음의 세번째 요소는 분명한 소원을 갖는 것입니다. 51절에 보면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인가를 주기를 원하 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소경은 무엇을 보기 원했던 것일까요원문 성경에는 "주님 당신을 보기 원합니다."라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디매오의 간절한 소원은 주님을 보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진짜 마음속에 들어가면 세상적인 소원은 없어집니다. "예수만 바로 믿고 살아야지"하는 소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소원이 생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허황된 있었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하나는 주의 왼편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의 소원은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주님 당신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보지 않고서도 주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눈을 열어 주시면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따라가겠습니다."라는 분명한 소원이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열정, 세상을 끊어버리는 용기, 주님만 바라보고 주 님의 뜻대로만 사는 그런 신앙의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 을 소유하여 여러분의 신앙으로 인해 기뻐하시는 주님께 놀라운 축복 을 받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