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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얻으려면 (막8:27-38)

본문

1.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간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 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은 모두 인간을 위한 것들이다.
2.예수님이 때로는 기적을 행하시기도 했고, 때로는 병을 고치기도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표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이었다.
3.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하시려는 생명은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에는 벽이 있었다. 예수님의 수준에 이를 인간이 있을리 없는 것이고 예수님의 진리를 이해 할 인간이 있을 수 없었다. 예수님의 관심은 언제나 어떻게 하면 인간들이 영적인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4.드디어 주님이 마음속의 비밀을 공개할 찬스가 주어졌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베드로를 통해서 였다.
5.그러나 베드로 역시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실 것인지에 대헤서는 분명하게 깨닫지를 못했다. 다만 어쩌다가 맞추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한 순간에 사단의 앞잡이라는 혹독한 책망을 받게 되었다. 6.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성도들 중에서 사단의 앞잡이가 되고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베드로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된다.
I.옳바른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27-30).
A.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의 문제는 예수님 자신에게도 관심거리였다. 사실 예수님의 사역 자체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2.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평가는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 이라고 하였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는 무서운 선지자였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는 죄의 지적도 포함되었음을 알수있다.
3.엘리야라는 견해도 있었다. 엘리야의 사역은 3년6개월 동안 비가 내리게도 했고 내리지 않게도 하였다. 그는 기도의 선지자였다. 예수님 역시 기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다.
4.
그렇다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어라고 평하던 과연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B.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1.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세주라는 말이다. 예수님을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이요,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2.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예수님께서 바로 나 자신을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II.확실하게 결단해야 한다(31-38).
A.죽었다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1.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이제 어느정도 깊이있게 진행돼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님에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2.주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그 고백의 바탕위에 진리를 말씀하셨다. 이것은 단순히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신 정도의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이요, 천국의 비밀이 공개된 중요한 사건이다.
3.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변한다.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4.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가나의 혼인집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죽었던 나사로는 이미 시체가 악취를 풍기는 상황이었음에도 “나사로야” 부르시는 예수님의 한마디에 벌떡 일어섰다.
5.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 매우 유익하기 때문이다. 삶의 질이 바뀌기 때문이다. 6.주님의 우리의 고백을 듣고 싶어 하신다.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는 고백이 있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비밀을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에 만족하셨다. 그래서 그에게 비밀을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죽어야 한다는 충격적인 말씀 이었다. 그러나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이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B.안됩니다.
1.예수님의 부활은 주안에서 잠든 모든 사람에게 부활의 확실함을 깨우치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모두 헛일일 것이다.
2.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의 이 말씀에 무조건 반대를 하였다.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단정하였다.
3.베드로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무조건 “예”하여야 함에도 베드로 처럼 일단 거부를 한다. 그 말씀을 영적으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 하셔서 말씀 하시지만 우리는 어이없이 주님을 실망시켜 드릴 뿐이다.
C.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1.주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우리에게서 주님을 만족시켜 드릴 조건은 하나도 없다. 또한 주님도 우리의 다른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고백을 원하실 뿐이다.
2.베드로의 고백은 주님을 감동시켜드리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주님의 기대를 어이없이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는 우선 자신의 의견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3.주님께서 왜 그말씀을 하셨는가를 생각지 않은 까닭이다. 우리가 수없는 기도를 드린다 하여도 베드로처럼 경솔하다면 우리를 유익되게 하지 못한다.
4.조금전의 베드로는 주님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제자였지만 주님의 뜻을 거부한 지금의 그는 제자가 아니라 “사단”이다. 사단에게 뿔이 달린것은 아니다.
5.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도 있고 사단이 될수도 있다. 외적인 조건 때문이 아니다. 결론
1.성도들 중에는 분명히 영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으로 마치려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그리스도”라는 대답을 했던 베드로는 분명히 영적인 사람이었다.
2.그러나 그것도 잠시의 순간이었고, 주님이 들려준 비밀의 말씀에 대하여는 이미 육적인 사람이 돼어버린 후였다. 그의 귀에는 그 말이 들려질리 없었다.
3.신앙은 영적인 진리운동이다. 이것은 종교행위가 아니다. 만일 우리가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였다고 교만해 진다면 육적인 단계로 하락하고 만다. 그러면 사단의 앞잡이노릇 밖에는 못한다.
4.주께서 우리에게 신령한 세계를 체험케 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 함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목표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5.아무리 신비한 세계를 경험하였어도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이단들은 한결 같이 신비한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들은 신비한 세계를 보여주신 주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은 육적인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사단”으로 변신했던 것이다. 6.우리에게는 생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생명을 얻어야 한다. 생명은 오직 영적인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7.로켓트는 다음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 분리작업을 한다. 더욱 새로운 추진력을 얻기 위해 주님께로 인도해준 육신의 사람을 벗어던지고 다음 단계로의 도킹을 시도해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도킹작업을 펼쳐야 한다. 천국에 이를 때까지 나의 옛사람은 계속해서 벗어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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