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 (막8:31-38)
본문
오늘 새벽까지 전교인 새벽기도회를 마쳤습니다. 그간 함께 기도해 주시고 가족이 함께 섬기는 교회되기 하기위해 힘써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20주년 기념행사가 이제 마무리 됐다는 생각입니다. 이 행사에 이어지고 있는 또하나의 큰 행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 활절입니다. 교회력으로 부활절이전 40일전부터 시작되는 수난절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그래서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시작되고 있는 사순절 절기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오늘 저녁 제자의 길이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의 선언으로부터 시작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하신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시장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되어 죽임 을 당하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성질급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청하기를 그럴 수가 없다는 것 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많은 군중들은 예수님께 대한 기 대가 컸습니다. 억압당하고 소외당한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의참딘 지도자로써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유일한 분으로 믿고 따랐는데 갑자기 죽임을 당하리는 사실은 생각하기도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급히 만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뜻 밖에도 정색을 하시고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사탄아 내뒤로 물러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사탄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그러나 예수님은 서슴치 않고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였 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일이지 예수님을 도와 주는 일이 아닙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도와 주어야 합바니다. 힘이 되어 주 고 그 뜻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리어 예수님을 넘어지게 한 다면 그것은 사탄이 하는 일일 것입니다. 스칸달리조"걸리게 한다죄짓게 한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예수님 을 반대한다는 뜻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뜻을 따르는 것인데 반대한다 면 그것은 마땅히 사탄이나 진배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일이요.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일이요, 나가서는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일입니다. 사람의 일들은 자기 생각 을 말합니다. 자기 유익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자신을 앞세우면 주님의 일을 할 수가 없을 것 입니다.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는 노력이 필 요합니다.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교회를 우선 생각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비로서 제자의 길은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 이라고 말씀인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뜻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길 은 내 뜻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지리(헤 아우톤)는 목적어로 자기 자신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부인하다는 아팔네 사스도 자기를 위해 부인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위해 자기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과감히 부정하고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긍정하는 인간의 모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께서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신 선한 목자가 그를 따르는 제자의 길을 멸망의 길로 방치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십지가의 험한 길임에 틀림없지만 그길은 곧 생명의 길이 될줄 믿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개의 갈림길을 찾게 됩니다. 세상적 삶을 위한 내뜻 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참 제자의 길을 따를 것인가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제자의 길을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교' 아라토지라는 명령이며 '쫓을 것이니라'는 아코루 데이토로 따르라는 현재 명령어입니다. 그길로 예수와 함께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절대 적인 명령이라는 점입니다. 이것만이 제자의 길이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길은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는데 누구든지 제목숨 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해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생명을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위해 믿음을 위해 제목숨을 잃으면 했는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입니다. 이 것은 곧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같은 수난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살길이 되고 그 길을 버리면 죽음의 길이 된다는 의미인데 진정한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38절에 중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한 세대에 나와 내 말을 부끄러 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이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비로서 구원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생명은 예수 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험하고 힘들어도 예수와 함께 하는 것이면 생명의 길이 될것입니다. 아무리 안전하고 평안한 길을 찾는다 고 해도 예수가 없으면 그것은 죽음의 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길은 예수와 함께 하는 길입니다. 죽으나 사나 우리는 주의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와 함께 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제자도 성경
본문:마 4:18-22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사복음서와 바울 서신 가운 데서 교량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28장으로 된 사도행전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중 1-7장까지는 위대한 사도로 변화된 베드로 의 활약상과 초대 교회의 부흥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 8-28장까지는 사 도 바울을 통해 복음이 유대 땅에서 전세계로 뻗어 나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1-7장까지는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생성되어 어떠한 부흥 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초대 교회 성도를 세부류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잘 적용 되는 말씀입니다. 이 부류중 첫째는 무리입니다. 사도행전 1장 15절에 보면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 라." 11장 24절에 보면 "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리"란 초대 교회 당시,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는 참석하나 그저 교회는 드나드나 시류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 들에게는 구원의 확신도,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신자입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 게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4장 32 절에는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5장 14절에는 "믿고 주께로 나 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 '믿는 사람'이란 '신자'를 말합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 주로 확실히 믿고 신앙 고백하는 참다운 신앙인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험과 고통 중에서도 신앙의 변화가 없이 꾸준하게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보다 더 좋은 신앙인이 바로 세 번째 부류인 '제자'입니다. '제자'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예수와 동거동락 하며, 예수와 함께 고난을 받으며, 예수와 함께 그의 영광에도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 며 예수님을 위해서 희생할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열 두제자를 부르사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 어쫓는 능력과 권세도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막3;13-15).
여러분은 이 세 가지 부류의 신자 중에서 어떤 부류에 속하십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무리의 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신앙의 태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신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이제는 '제자'가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 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시며, 나의 생명이시기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제자"라는 명사가 265번, "제자가 된다"는 동사가 25번이 나 쓰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제자'라는 말은 헬라 원문에 '마데테스'라고 합니다. 이것은 '배우는 자' 또는 '같은 방향으로 가면서 같이 행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제자란 자신의 마음을 어느 것에다 집중하고 있는 사람으 로서 이미 초신자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처음 상태를 떠나서 복음에 대해, 배움에 대해 종사하고,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나의 모든 소유와 시간과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 기 때문입니다(막3:13). 여러분이 만약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면 여러분은 이 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는 능력도, 복음을 전하는 능력도,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역사도 분명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는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가 갖추어야 할 제자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는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갈리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 를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4;19)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곧 그물을 버려두 고 예수를 쫓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야고보와 요한을 보시고 동일하게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배와 부 친을 내버려두고 예수를 쫓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버려두고"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휨"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포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강세형으로 하면 '숨을 거둔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세상적인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끊어야 할 것은 끊어야 합니다. 본문 20절, 22절은 예수님 을 따르기 위해서 제자는 때론 직업도, 가정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삶의 우선 순위를 예수 그리스도께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할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로 말미암아 많은 실패와 고통의 쓴잔을 마시게 됩니다. 사 울을 보십시오. 그는 욕심과 명예욕을 버리지 못해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되 었습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그는 육체적인 정욕을 버리지 못해 끝내 파멸 하고 말았습니다. 기독교는 버림이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 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버리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산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46)라고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것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23장 4절은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라 "고 합니다. 에스겔 20장 7절은 "너희는 눈에 드는바 가증한 것을 버리라 "고 합니다. 가증한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 하 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 라"고 데살로니전서 5장 22절에서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디모 데전서 2장 23절에서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고 디모데후서 2장 16절에서는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디도서 2장 12절에서는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라" 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또한 히브 리서 6장 1절에서는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베드로전서 2장 1절에서는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기자의 말처럼 이제 우리는 제자리걸음하는 신앙의 초보를 넘어 버려야 할 것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버릴 것을 버리는 자의 축복 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0장 29절에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 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 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 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 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쫓는 사람입니다. 본문 20절,22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쫓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쫓는다'는 말은 '연합한다'는 뜻으로 주님을 따르는 생활은 곧 주님과 연합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쫓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 하나가 되는 생활의 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물질도, 가정도 다 버 렸지만 예수님을 쫓지 않았다면 그들은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물질을, 명예를, 권력을 쫓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쫓아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나의 창조 자요,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쫓아야 할 참된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4장 27절에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을 따르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 십자가는 질병일 수도, 물질일 수도, 고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어깨에 걸머지고 예수님을 좇아가는 것이 제자가 걸어가야 할 삶인 것입니다. 이스 라엘의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간 것은 바로 십자가를 메고서 주님을 따라 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로서의 삶은 어려운 길이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쫓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 은 없습니다. 여러분, 제자가 되십시오. 버릴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를 좇아가는 참된 삶, 이것이 참된 제자도입니다. 제자가 됩시다 성경
본문:요 15:7-10 국토 면적에 비해 자동차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이라고 합니다. 그 리고 세계에서 교통사고가 제일 많은 나라도 한국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주한 외국인이 한국에서 운전하는 법을 소개해 화제를 모은 일이 있었습니다(미국 자동차 잡지 오토모티브 뉴스특파원).
첫째 파란불은 자동차 경주의 출발신호다. 파란불이 켜지는 순간 반드시 뒷차의 경적이 울릴 것이다. 그 전에 나가라.
둘째 차간거리는 1인치의 틈도 두지 말라. 그 틈을 메우지 않으면 뒷차가 매울 것이다.
셋째 시원하게 달릴려면 레미톤 차를 사서 타라. 모든 차가 길을 비켜줄 것이다.
넷째 모든 차선을 헤집고 다녀라. 주행차선만 골라서 다니면 앞으로 가기 어려울 것이다. 다섯째 차가 막힐 때마다 경적을 길게 울려라. 스트레스도 풀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여섯째 손을 흔들어라. 마구 끼어들고도 손만 흔들면 된다.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까'. 한마디로 우리의 자동차 문화를 비아냥댄 글이었습니다. 교육부는 금년 9월부터 유치원에서는 한해 40시간, 국민학교와 중학교는 20시간 이상 도로교통법과 경범죄 처벌법 등을 가르치도록 의무화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운전습관이나 비뚤어진 운전문화를 어려서부터 바로 가르치 자는 때늦은 발상인 것입니다. 누구에게엇 배우느냐, 어떻게 배우느냐,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그 사람 의 인격과 인생과 신앙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훌륭한 스승에게서 바른 삶을 배우면 인격인이 됩니다. 위대한 스승에게서 참 도를 배우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잘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 끝을 보면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의제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자가 될 수 있으며 제자가 할 일은 무엇인가를 본문 속에서 찾아보겠습니다.
1. 제자는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7절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부부입니다. 그래서 '무촌'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부인을 '안사람'이라고 부릅니다.여기서 말하는 '안사람'이란 집 안에 있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사람, 그래서 언제나 함께 있는 사람,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4절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나와 함께 살자. 내 집에 들어와 살자, 나와 함께 일하자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친구들 몇 사람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의 꽃을 피우느라 식사시간이 길어져 저녁 10세가 넘었습니다. 식사 후에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한잔씩 하기로 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집에 전화를 걸더니 부인이 몸살기가 있으니 빨리 약을 사오란다면 먼저 자 리를 떴습니다.그러자 3년 전에 부인이 세상을 떠난 친구가 "우리는 천천히 일어섭시다. 집에 가봐야 기다릴 사람도 없는데."라며 천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시한부 존재들입니다. 늘 언제나 기다려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가끔씩 지방집회를 마치고 돌아 오면 새벽 2시나 3시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집에 도착해 보면 아이 들은 잠에 골아떨어져 있지만 제 아내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밖에서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 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두번 세번 울려도 대답이 없자 섭섭 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기 혼자 잠을 자다니." 그러나 만일 입장이 바뀌어 내가 기다렸다면 나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을 것입니다. 서로 '안에' 거하는 것이 부부입니다. 이 원리가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 거하면 '원하는대로 이루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바꾸면 예수 밖에 거하면 원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부림처도 안되고, 안간힘 써도 안되고, 발을 동동 굴러도 안되는 이유는 내가 예수안에 거하지 않고 예수 밖에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린 자칫 잘못하면 예수 안에 산다든지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을 부자유자 나, 속박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예수 밖으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안되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뜻을 이루려면 행복을 잡으려면 진실한 성공을 이루려면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5절을 보면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2.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8절을 보면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 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의 비유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과실 을 맺지 않는 가지는 재해 버린다"고 했고, 4절에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했고, 8절에서는 "과실을 많이 맺어야 제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나무는 관상수가 있고, 유실수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관상수에게서 과실 을 찾지는 않습니다.그러나 유실수라면 당연히 과실이 있어야 합니다. 포도 나무는 과실을 맺는 유실수입니다. 탐스럽게 잘 익은 포도는 포도주의 원료가 되는가 하면 과실로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강조되고 있는 포도나무가 가지는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과실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당연한 본분을 의미합니다. 과실 은 나무의 결과이며 평가기준입니다. 포도가지가 제아무리 무성해도 과실이 없으면 포도나무 가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가지가 좋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영양공급이 중당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과실이 없으면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고 했습니다. 나에겐 과실이 있습니까 일년동안 뭘했습니까 단 한 알의 과실도 맺지 못한 채 잎떨어진 앙상한 가지만으로 금년을 마무 리할 생각입니까 제자는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금년 봄 유치부에서 아이듬에게 호박씨를 나눠주면서 집에 가져다가 심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 머리통보다 더 큰 호박 한 덩이를 가져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자기집 아파트앞에 심었더니 호박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1년 동안 교회를 들락거리면서 신앙생활하면서 호박 한덩어리도 맺지 못했 다면 그는 호박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제자는 열매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열매, 기도의 열매, 봉사의 열매, 성령님의 열매들 가운데 다는 맺지 못했다 하더라도 몇가지는 맺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매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3.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9절을 보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했고, 10절을 보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라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스승인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여러가지 면에서 사표가 됩니다. 예를 들면 청빈, 검소, 절제, 근면,관용,진실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본받 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희생과 사랑입니다. 만일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라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외면 한다면 그는 제자도 아니고,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한마 디로 자기를 희생하신 사랑입니다.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문법을 연구해 보면 명사의 종류가 여러가지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명사,인칭대명사,추상명사 등 명사의 종류가 여러가지 입니다. 사랑은 추성명사도 아니고, 형용사도 아닙니다. 사랑은 사건이며, 역사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뭔가를 골똘히 추상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하고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사랑을 추상화하고, 형용사화하고, 소설화화고,드라마화 하고,작품화해버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은 죽어가는 자식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고 밤새 뜬눈으로 눈물을 쏟으 며 지켜보고 있는 어머니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로 죽어가는 인간을 멀고 먼 하늘에서 지켜보며 관조하 고, 사색하고, 명상한 하나님의 명상록이 아닙니다. 친히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매맞고, 찢기고,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몸으로 고난의 사건인 것입니다. 제자는 그 사랑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신장기능이 약화돼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찰결과 건강한 사람의 신장을 이식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누가 신장을 기증하느냐였습니다. 어느 주일날 임시로 강단을 맡아 설교를 하게된 유명한 목사님이 전후사정 을 설명한 후 아무래도 교인들 가운데서 신장기증자가 나와야 될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기증자의 조건을 이야기한 후 고통받는 주의 종을 위 해 신장을 기증할 뜻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잠시후 여 기저기서 두 손을 들기 시작하더니 거기 모인 천여명이 거의다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설교를 맡은 목사님은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신장은 한 사람의 것이 면 되기 때문에 손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이처럼 주의 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 놀랐습니다.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사람을 지적하겠습니다"라며 오리털 하나를 꺼내 입으로 불었습니다. "이 오리털이 머리 위에 내려앉은 사람을 선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의 뜻을 기다리기 위해 조용히 기도하며 기다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드 디더 오리털이 강단을 떠나 회중석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오리털이 가까이 날아오면 사방에서 주여, 할렐 루야, 아멘 소리가 입바람에 섞여 나오고 그와 동시 오리털은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오리털은 그 누구 머리 위에도 내려앉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을 위해 신장을 바칠 사람을 결정하는 오리털이 내 머리 위로 날 아오고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끄러울 뿐입니다. 제자는 주님의 사랑을 배우고,따르고,실천해야 합니다. 제자가 지킬 게명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아멘.
그런데 도리어 예수님을 넘어지게 한 다면 그것은 사탄이 하는 일일 것입니다. 스칸달리조"걸리게 한다죄짓게 한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예수님 을 반대한다는 뜻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뜻을 따르는 것인데 반대한다 면 그것은 마땅히 사탄이나 진배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일이요.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일이요, 나가서는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일입니다. 사람의 일들은 자기 생각 을 말합니다. 자기 유익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자신을 앞세우면 주님의 일을 할 수가 없을 것 입니다.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는 노력이 필 요합니다.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교회를 우선 생각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비로서 제자의 길은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 이라고 말씀인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뜻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길 은 내 뜻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지리(헤 아우톤)는 목적어로 자기 자신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부인하다는 아팔네 사스도 자기를 위해 부인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위해 자기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과감히 부정하고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긍정하는 인간의 모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께서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신 선한 목자가 그를 따르는 제자의 길을 멸망의 길로 방치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십지가의 험한 길임에 틀림없지만 그길은 곧 생명의 길이 될줄 믿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개의 갈림길을 찾게 됩니다. 세상적 삶을 위한 내뜻 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참 제자의 길을 따를 것인가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제자의 길을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교' 아라토지라는 명령이며 '쫓을 것이니라'는 아코루 데이토로 따르라는 현재 명령어입니다. 그길로 예수와 함께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절대 적인 명령이라는 점입니다. 이것만이 제자의 길이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길은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는데 누구든지 제목숨 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해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생명을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위해 믿음을 위해 제목숨을 잃으면 했는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입니다. 이 것은 곧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같은 수난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살길이 되고 그 길을 버리면 죽음의 길이 된다는 의미인데 진정한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38절에 중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한 세대에 나와 내 말을 부끄러 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이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비로서 구원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생명은 예수 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험하고 힘들어도 예수와 함께 하는 것이면 생명의 길이 될것입니다. 아무리 안전하고 평안한 길을 찾는다 고 해도 예수가 없으면 그것은 죽음의 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길은 예수와 함께 하는 길입니다. 죽으나 사나 우리는 주의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와 함께 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제자도 성경
본문:마 4:18-22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사복음서와 바울 서신 가운 데서 교량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28장으로 된 사도행전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중 1-7장까지는 위대한 사도로 변화된 베드로 의 활약상과 초대 교회의 부흥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 8-28장까지는 사 도 바울을 통해 복음이 유대 땅에서 전세계로 뻗어 나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1-7장까지는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생성되어 어떠한 부흥 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초대 교회 성도를 세부류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잘 적용 되는 말씀입니다. 이 부류중 첫째는 무리입니다. 사도행전 1장 15절에 보면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 라." 11장 24절에 보면 "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리"란 초대 교회 당시,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는 참석하나 그저 교회는 드나드나 시류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 들에게는 구원의 확신도,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신자입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 게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4장 32 절에는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5장 14절에는 "믿고 주께로 나 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 '믿는 사람'이란 '신자'를 말합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 주로 확실히 믿고 신앙 고백하는 참다운 신앙인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험과 고통 중에서도 신앙의 변화가 없이 꾸준하게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보다 더 좋은 신앙인이 바로 세 번째 부류인 '제자'입니다. '제자'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예수와 동거동락 하며, 예수와 함께 고난을 받으며, 예수와 함께 그의 영광에도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 며 예수님을 위해서 희생할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열 두제자를 부르사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 어쫓는 능력과 권세도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막3;13-15).
여러분은 이 세 가지 부류의 신자 중에서 어떤 부류에 속하십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무리의 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신앙의 태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신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이제는 '제자'가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 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시며, 나의 생명이시기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제자"라는 명사가 265번, "제자가 된다"는 동사가 25번이 나 쓰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제자'라는 말은 헬라 원문에 '마데테스'라고 합니다. 이것은 '배우는 자' 또는 '같은 방향으로 가면서 같이 행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제자란 자신의 마음을 어느 것에다 집중하고 있는 사람으 로서 이미 초신자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처음 상태를 떠나서 복음에 대해, 배움에 대해 종사하고,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나의 모든 소유와 시간과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 기 때문입니다(막3:13). 여러분이 만약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면 여러분은 이 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는 능력도, 복음을 전하는 능력도,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역사도 분명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는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가 갖추어야 할 제자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는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갈리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 를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4;19)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곧 그물을 버려두 고 예수를 쫓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야고보와 요한을 보시고 동일하게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배와 부 친을 내버려두고 예수를 쫓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버려두고"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휨"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포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강세형으로 하면 '숨을 거둔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세상적인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끊어야 할 것은 끊어야 합니다. 본문 20절, 22절은 예수님 을 따르기 위해서 제자는 때론 직업도, 가정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삶의 우선 순위를 예수 그리스도께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할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로 말미암아 많은 실패와 고통의 쓴잔을 마시게 됩니다. 사 울을 보십시오. 그는 욕심과 명예욕을 버리지 못해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되 었습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그는 육체적인 정욕을 버리지 못해 끝내 파멸 하고 말았습니다. 기독교는 버림이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 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버리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산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46)라고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것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23장 4절은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라 "고 합니다. 에스겔 20장 7절은 "너희는 눈에 드는바 가증한 것을 버리라 "고 합니다. 가증한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 하 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 라"고 데살로니전서 5장 22절에서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디모 데전서 2장 23절에서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고 디모데후서 2장 16절에서는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디도서 2장 12절에서는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라" 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또한 히브 리서 6장 1절에서는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베드로전서 2장 1절에서는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기자의 말처럼 이제 우리는 제자리걸음하는 신앙의 초보를 넘어 버려야 할 것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버릴 것을 버리는 자의 축복 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0장 29절에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 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 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 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 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쫓는 사람입니다. 본문 20절,22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쫓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쫓는다'는 말은 '연합한다'는 뜻으로 주님을 따르는 생활은 곧 주님과 연합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쫓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 하나가 되는 생활의 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물질도, 가정도 다 버 렸지만 예수님을 쫓지 않았다면 그들은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물질을, 명예를, 권력을 쫓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쫓아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나의 창조 자요,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쫓아야 할 참된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4장 27절에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을 따르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 십자가는 질병일 수도, 물질일 수도, 고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어깨에 걸머지고 예수님을 좇아가는 것이 제자가 걸어가야 할 삶인 것입니다. 이스 라엘의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간 것은 바로 십자가를 메고서 주님을 따라 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로서의 삶은 어려운 길이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쫓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 은 없습니다. 여러분, 제자가 되십시오. 버릴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를 좇아가는 참된 삶, 이것이 참된 제자도입니다. 제자가 됩시다 성경
본문:요 15:7-10 국토 면적에 비해 자동차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이라고 합니다. 그 리고 세계에서 교통사고가 제일 많은 나라도 한국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주한 외국인이 한국에서 운전하는 법을 소개해 화제를 모은 일이 있었습니다(미국 자동차 잡지 오토모티브 뉴스특파원).
첫째 파란불은 자동차 경주의 출발신호다. 파란불이 켜지는 순간 반드시 뒷차의 경적이 울릴 것이다. 그 전에 나가라.
둘째 차간거리는 1인치의 틈도 두지 말라. 그 틈을 메우지 않으면 뒷차가 매울 것이다.
셋째 시원하게 달릴려면 레미톤 차를 사서 타라. 모든 차가 길을 비켜줄 것이다.
넷째 모든 차선을 헤집고 다녀라. 주행차선만 골라서 다니면 앞으로 가기 어려울 것이다. 다섯째 차가 막힐 때마다 경적을 길게 울려라. 스트레스도 풀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여섯째 손을 흔들어라. 마구 끼어들고도 손만 흔들면 된다.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까'. 한마디로 우리의 자동차 문화를 비아냥댄 글이었습니다. 교육부는 금년 9월부터 유치원에서는 한해 40시간, 국민학교와 중학교는 20시간 이상 도로교통법과 경범죄 처벌법 등을 가르치도록 의무화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운전습관이나 비뚤어진 운전문화를 어려서부터 바로 가르치 자는 때늦은 발상인 것입니다. 누구에게엇 배우느냐, 어떻게 배우느냐,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그 사람 의 인격과 인생과 신앙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훌륭한 스승에게서 바른 삶을 배우면 인격인이 됩니다. 위대한 스승에게서 참 도를 배우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잘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 끝을 보면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의제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자가 될 수 있으며 제자가 할 일은 무엇인가를 본문 속에서 찾아보겠습니다.
1. 제자는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7절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부부입니다. 그래서 '무촌'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부인을 '안사람'이라고 부릅니다.여기서 말하는 '안사람'이란 집 안에 있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사람, 그래서 언제나 함께 있는 사람,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4절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나와 함께 살자. 내 집에 들어와 살자, 나와 함께 일하자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친구들 몇 사람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의 꽃을 피우느라 식사시간이 길어져 저녁 10세가 넘었습니다. 식사 후에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한잔씩 하기로 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집에 전화를 걸더니 부인이 몸살기가 있으니 빨리 약을 사오란다면 먼저 자 리를 떴습니다.그러자 3년 전에 부인이 세상을 떠난 친구가 "우리는 천천히 일어섭시다. 집에 가봐야 기다릴 사람도 없는데."라며 천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시한부 존재들입니다. 늘 언제나 기다려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가끔씩 지방집회를 마치고 돌아 오면 새벽 2시나 3시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집에 도착해 보면 아이 들은 잠에 골아떨어져 있지만 제 아내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밖에서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 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두번 세번 울려도 대답이 없자 섭섭 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기 혼자 잠을 자다니." 그러나 만일 입장이 바뀌어 내가 기다렸다면 나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을 것입니다. 서로 '안에' 거하는 것이 부부입니다. 이 원리가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 거하면 '원하는대로 이루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바꾸면 예수 밖에 거하면 원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부림처도 안되고, 안간힘 써도 안되고, 발을 동동 굴러도 안되는 이유는 내가 예수안에 거하지 않고 예수 밖에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린 자칫 잘못하면 예수 안에 산다든지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을 부자유자 나, 속박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예수 밖으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안되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뜻을 이루려면 행복을 잡으려면 진실한 성공을 이루려면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5절을 보면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2.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8절을 보면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 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의 비유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과실 을 맺지 않는 가지는 재해 버린다"고 했고, 4절에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했고, 8절에서는 "과실을 많이 맺어야 제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나무는 관상수가 있고, 유실수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관상수에게서 과실 을 찾지는 않습니다.그러나 유실수라면 당연히 과실이 있어야 합니다. 포도 나무는 과실을 맺는 유실수입니다. 탐스럽게 잘 익은 포도는 포도주의 원료가 되는가 하면 과실로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강조되고 있는 포도나무가 가지는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과실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당연한 본분을 의미합니다. 과실 은 나무의 결과이며 평가기준입니다. 포도가지가 제아무리 무성해도 과실이 없으면 포도나무 가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가지가 좋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영양공급이 중당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과실이 없으면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고 했습니다. 나에겐 과실이 있습니까 일년동안 뭘했습니까 단 한 알의 과실도 맺지 못한 채 잎떨어진 앙상한 가지만으로 금년을 마무 리할 생각입니까 제자는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금년 봄 유치부에서 아이듬에게 호박씨를 나눠주면서 집에 가져다가 심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 머리통보다 더 큰 호박 한 덩이를 가져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자기집 아파트앞에 심었더니 호박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1년 동안 교회를 들락거리면서 신앙생활하면서 호박 한덩어리도 맺지 못했 다면 그는 호박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제자는 열매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열매, 기도의 열매, 봉사의 열매, 성령님의 열매들 가운데 다는 맺지 못했다 하더라도 몇가지는 맺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매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3.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9절을 보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했고, 10절을 보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라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스승인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여러가지 면에서 사표가 됩니다. 예를 들면 청빈, 검소, 절제, 근면,관용,진실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본받 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희생과 사랑입니다. 만일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라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외면 한다면 그는 제자도 아니고,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한마 디로 자기를 희생하신 사랑입니다.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문법을 연구해 보면 명사의 종류가 여러가지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명사,인칭대명사,추상명사 등 명사의 종류가 여러가지 입니다. 사랑은 추성명사도 아니고, 형용사도 아닙니다. 사랑은 사건이며, 역사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뭔가를 골똘히 추상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하고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사랑을 추상화하고, 형용사화하고, 소설화화고,드라마화 하고,작품화해버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은 죽어가는 자식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고 밤새 뜬눈으로 눈물을 쏟으 며 지켜보고 있는 어머니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로 죽어가는 인간을 멀고 먼 하늘에서 지켜보며 관조하 고, 사색하고, 명상한 하나님의 명상록이 아닙니다. 친히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매맞고, 찢기고,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몸으로 고난의 사건인 것입니다. 제자는 그 사랑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신장기능이 약화돼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찰결과 건강한 사람의 신장을 이식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누가 신장을 기증하느냐였습니다. 어느 주일날 임시로 강단을 맡아 설교를 하게된 유명한 목사님이 전후사정 을 설명한 후 아무래도 교인들 가운데서 신장기증자가 나와야 될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기증자의 조건을 이야기한 후 고통받는 주의 종을 위 해 신장을 기증할 뜻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잠시후 여 기저기서 두 손을 들기 시작하더니 거기 모인 천여명이 거의다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설교를 맡은 목사님은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신장은 한 사람의 것이 면 되기 때문에 손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이처럼 주의 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 놀랐습니다.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사람을 지적하겠습니다"라며 오리털 하나를 꺼내 입으로 불었습니다. "이 오리털이 머리 위에 내려앉은 사람을 선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의 뜻을 기다리기 위해 조용히 기도하며 기다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드 디더 오리털이 강단을 떠나 회중석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오리털이 가까이 날아오면 사방에서 주여, 할렐 루야, 아멘 소리가 입바람에 섞여 나오고 그와 동시 오리털은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오리털은 그 누구 머리 위에도 내려앉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을 위해 신장을 바칠 사람을 결정하는 오리털이 내 머리 위로 날 아오고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끄러울 뿐입니다. 제자는 주님의 사랑을 배우고,따르고,실천해야 합니다. 제자가 지킬 게명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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