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길에서 무었때문에 수군거렸소? (막9:33-35)
본문
자칫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혹은 함께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것이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를 중심으로해서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이루어진 세계를 기대하면서 자기중심의 세계를 확대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 뿐이다. 오직 자기 자신만 있고, 어떠한 것도 인정하려들지 않는 완고함까지 그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람이 있지아니하고 메마르고 건조한 착취의 기계, 이기적 욕구의 도구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여기에서는 도덕이니 윤리니, 정의로운 삶이라는 말이 오히려 어색하고 짜증스러운 군더더기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소중하지 않고 오직 게걸스러운 탐욕의 몸이 중요할 뿐인겁니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도 이러한 유혹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아니 이러한 사고방식에 젖어있었던 모양입니다. 제자들이 아마도 논쟁에 휘말려 든것 같습니다. 논쟁의 요지인즉 “예수가 권력을 잡을 때가 오면 제자들 중에 누구를 우선하여 권력의 핵심부로 불러모을 것인가”였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상당이 격앙된 어조로 서로 다투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들 생각하고 있던 것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계”였던 것입니다.
논쟁의 흐름으로 보아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된 세계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동지이며 함께하였던 자들도 더 이상 소중할 수 없으며, 다만 경쟁자일 뿐이고 걸림돌이되는 적으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길에서” 이러한 논쟁을 하였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리말하면 돌보고 사랑하며 섬겨야할 사람들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착취자의 가슴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적의를 품고 “누가 과연 높으냐”를 타툼하였던 것입니다. 민중은 허덕이며 목말라하고 있는데 권력에 눈이먼 이 땅의 정치인들을 생각나게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착취자의 가슴속에는 사람이 살지않고 오직 자신을 더욱 게걸스러운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회용 도구들만 있는 것입니다. 더우기 예수는 방금전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죽게될 것을,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내어다 보시며 말씀하신 뒤의 일이기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자신과 하나님나라의 일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눈멀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눈이멀어 그들 주위에 그들의 논쟁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목말라하는 민중”들을 못보고 있습니다. 이로한 제자들의 눈멀음은 마르코 10:39에서도 발견됩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맨 끝자리에, 바닥의 상태에 내려앉아 하나님 나라에 복무하며 죽음으로 사람들을 끝까지 섬겼습니다. 예수는 지혜의 격언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처절한 죽음으로 이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지혜격언이 아니라 예수의 삶이, 자신을 바친 삶이 생각과 격단의 유일한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안에서 성숙한 삶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기자신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인정하는 모습을 두고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남을 지배하려는 마음이 있는지를, 예수를 따르려는 분명한 결단을 흐트러놓는 요소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논쟁의 흐름으로 보아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된 세계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동지이며 함께하였던 자들도 더 이상 소중할 수 없으며, 다만 경쟁자일 뿐이고 걸림돌이되는 적으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길에서” 이러한 논쟁을 하였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리말하면 돌보고 사랑하며 섬겨야할 사람들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착취자의 가슴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적의를 품고 “누가 과연 높으냐”를 타툼하였던 것입니다. 민중은 허덕이며 목말라하고 있는데 권력에 눈이먼 이 땅의 정치인들을 생각나게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착취자의 가슴속에는 사람이 살지않고 오직 자신을 더욱 게걸스러운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회용 도구들만 있는 것입니다. 더우기 예수는 방금전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죽게될 것을,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내어다 보시며 말씀하신 뒤의 일이기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자신과 하나님나라의 일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눈멀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눈이멀어 그들 주위에 그들의 논쟁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목말라하는 민중”들을 못보고 있습니다. 이로한 제자들의 눈멀음은 마르코 10:39에서도 발견됩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맨 끝자리에, 바닥의 상태에 내려앉아 하나님 나라에 복무하며 죽음으로 사람들을 끝까지 섬겼습니다. 예수는 지혜의 격언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처절한 죽음으로 이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지혜격언이 아니라 예수의 삶이, 자신을 바친 삶이 생각과 격단의 유일한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안에서 성숙한 삶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기자신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인정하는 모습을 두고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남을 지배하려는 마음이 있는지를, 예수를 따르려는 분명한 결단을 흐트러놓는 요소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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