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동행하시는 예수님 (막6:45-52)
본문
이 본문은 오병이어 기적 직후에 나타나고 있는 사건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 오병이어 사건을 통하여 군중들은 감격하여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 유혹을 물리치고 산으로 들어 가셔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은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고 있었는데 이 배에 갑자기 풍랑이 몰아 부딧치기 시작하고 큰 바람이 불매 이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이 불안과 좌절과 실망과 낙심속에 빠지면서 살길을 구하여 노를 애써 젖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바다위를 걸어 제자들을 향해서 다가 오십니다. 제자들은 유령인가 하여 더욱 놀라고 더욱 불안해 하기 시작했을때 뜻밖에도 그것은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막6:50) 주님을 영접했던 배안의 제자들은 비로소 주님을 모시고 목적지 까지 무사히 도착했으며 바람도 파도도 잠잠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유명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서 고난가운데서도 함께 하시는 주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바라볼 때 은혜의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제자들에게 고난이 필요하였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무엇 때문에 이 제자들에게 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는 고난의 현장이 필요 하였을까요. 참새 한마리도 하나님의 허럭하심없이 떨어질수 없음이 하나님의 선언이라면 사람들의 머리까지도 주님앞에서는 다 세신바 되었다면 이 고난 이아픔 이문제를 주님께서 허용하신 이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방금 전에 경험했던 사실은 무엇입니까 이 바다의 고난을 받기 직전에 그들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오천명 이상의 수만은 사람들을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먹이시는 주님의 위대한 기적의 사건들을 그들은 체험 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서 그들이 깨달은 가장 놀라운 사실은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이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 전능하신 주님이 이 전지하신 주님이 이 놀라우신 주님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얼마나 소중한 일이며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따라서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주님과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 간다는것 이 주님과 더불어 인생을 산다는 것 이것은 과연 특권이 아닐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왜 이 고난을 허용하십니까. 주님은 잠시후에 역사적 육신적 시간적 공간적으로 이 제자들과 지금은 함께 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서 그들에게서 부터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분은 아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떠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지금은 함께 있어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지금은 함께 있어서 그들을 위로 하셨고, 지금은 함께 있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지만 주님이 그들의 곁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떠나가신 다음에 저 제자들은 어떻게 살것인가를 염려 하면서 그들에게 중대한 교훈을 가르쳐야할 필요를 주님께서는 느끼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이 제자들은 어떻게 살것인가 주님의 목소리가 들려 오지 않을 때에는 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 주님의 그 능력 있는 손길이 나타나지 않을때 이들은 과연 어떻게 삶과 사건들과 상황들을 직면해 나갈 것인가 그들에게 중대한 교훈을 가르쳐야할 필요를 주님께서는 느끼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께서는 요13장에서 이 사건 직후에 제자들에게 드디어 마음에 품었던 사실을 발표 하기 시작 합니다. “나는 곧 너희들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한다” 그때 제자들은 주님께서 곁을 떠나신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움과 근심속에 잠기게 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1절에 유명한 예수님의 메세지가 시작 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 하지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육신적으로 제자들을 떠나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몇 가지 중요한 약속을 하십니다. 우선 요한복음 14: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지금까지는 곁에 계셨어요 그래서 예수님 도와주세요 하고 구하면 얻었어요 요청하면 즉시 응답을 받았요 그러나 예수님이 지금 우리곁을 떠나시면 우리는 어떻게 할것인가 이때 예수님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기도하라 내가 떠난 이후에도 구하라 그러면 내가 시행하리라는 약속입니다. 계속되는 기도의 응답을 약속합니다 16절을 보세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는 부름을 받아 내곁에 계시며 내문제를 해결하며 나를 도와주시는 분을 말합니다. 이 위대한 보혜사 즉 보호하고 위로하고 은혜를 베풀던 예수님이 떠나가시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러나 또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영원토록 너희와 함쎄 있을 것이다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1절을 보십시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내 얼굴은 이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내 말씀을 간직하고 내 진리를 간직하고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너희에ㅐ게 나를 보여 줄것이다. 라고 말씀 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볼것입니다. 27절에“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육신적으로 떠나가시는 그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평안을 주실것이며 어떻게 계속 가르칠 것이며 어떻게 우리들의 요구를 계속 응답할것인가 이러한 질문울 가지고 전전긍긍하던 제자들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약속 이 어마어마한 이 약속을 제자들이 어떻게 소화할것인가 제자들에게는 더 큰 바다로 나가기 위하여 고난이 필요 했습니다. 인생이란 벳세다 들판의 기적만이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은 기적이 계속되지 않기 때문에 그 기적은 기적으로 간주 되는 것입니다.
둘째. 제자들은 왜 두려워하며 떨었습니까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까요 나는 그리스도인인데 이렇게 흔들리며 좌절하며 무의미한 삶의 늪속에서 비틀거리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1)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날도 있습니다. 축복 스럽던 그날 하나님의 은혜가 감격스럽게 내마음속에 다가오면 그날은 주님의 임제가 내 마음속에 생생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바람뿐입니다. 보이는 것은 파도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의 무력감 절망 좌절 불안. 주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아요 보이는 것은 답답한 현실입니다. 두꺼운 벽입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입니다. 요힌복음의 기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였다 여기 제자들은 거리를 느끼고 있습니다. 주님과 나 사이의 거리를 느끼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깝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2)이 제자들이 두려워 하였던 이유는 함께 하시는 주 예수님을 분별할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오실때 제자들은 유령인가 하여 더 깊은 좌절 더 깊은 불안 더 깊은 혼란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발견 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엠마오 길에 있는 두 제자의 체험을 방불하게 하지 않습니까. 모든것을 집어 치우고 싶다 이제 모든것을 그만 두겠다 난 이제 옛날로 돌아간다 교회 나오기 이전 그 자유했던 시절 내 마음대로 내 삶을 누릴수 있었던 그 시절 차라리 지금 가지고 있는 도덕의식과 신앙 의식이 나를 괴롭혀 나를 꽁꽁 묶는 이 시절이 아닌 자유했던 그 시절로 이 모든것을 백지로 하고 였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처량했습니다 . 슬펐습니다. 이 고독한 엠마오길에 어떤 나그네 한사람이 그 길에 동행했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밝아질때까지 주께서 그 눈을 열어 줄때 까지는 주님이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볼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볼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볼수 있고 함께 하시는 주님을 분별할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보아도 보지못했습니다.
3) 그들이 주님을 깨닫지 못한것은 그 마음이 둔하여 졌기 때문입니다. 막6:51-52)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즉 방금 전에 기적의 현장에서 기적을 행하시던 그 주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주님이 일을 할수 있는 분이란것을 망각한것입니다. 어제 고난의 언덕을 무사히 통과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습니다. 틀림없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던 우리가 오늘의 고통앞에서는 어제의 축복을 어제의 영광을 어제 함께 하시던 주님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한날 내마음에 그렇게 뜨겁게 계시던 주님 그 십자가 앞에 엎드려 나를 울게 했던 주님 그 주님이 생나지 않는 것입니다. 왜그렇습니까 그 마음이 둔해져서 그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함께하시는 주님 함께 계셔서 내 마음을 붙들고 내의식을 붙들고 내 영혼을 붙들고 내 영혼속에 거룩한 비전을 보여 주시던 그 주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4) 또 다른 이유의 하나는 믿음이 적었습니다. 물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베드로 에게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 하였느냐(마14:31) 여기서 믿음이 적은자여 하고 말씀 하신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날 갑자기 이런 절망과 불안과 낙심이 엄습해 온다고 해서 나는 신앙이 없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엄격히 말해서 의심은 신뢰했던 경험이 있던 사람만이 할수 있는 것입니다. 의심은 신앙의 특권입니다. 신앙인이 아닌사람은 오히려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 냉혹한 삶 속에서 지금 여기서도 나를 도울 수 있는 그 하나님을 믿는 큰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불안과 좌절 속에서 우리를 구원 하실 수 있습니다.
셋째. 풍랑 가운데서 도우시는 주님입니다. 46절을 보면 제자들이 배를 타고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를 건너 가고 있는동안에 주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주님은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고난 당하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겠습니까.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내가 괴롭게 노를 저으며 이 바다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분이 있음을 아십니까. 내가 이 노를 잡고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신음하며 이어려움을 당할 때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도하실 뿐만 아닙니다. 48절을 보십시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젓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내가 부딪히는 오늘의 삶의 갈등과, 내 가정의 갈등과, 내 삶의 모든 폭풍우 속에서 내가 얼마나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고 안타까와 하며 몸부림치면서 괴롭게 노젓는 그 모습을 주께서 보시고 내 고통을 보시고, 내 고독을 보시고, 내 절망을 보시고, 내 좌절을 보시고, 내 괴로움을 보시고, 내 눈물을 보시고, 내 아픔을 보시고, 내 허물을 보시고 찾아오십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48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하나님의 정확한 때에 오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왜 더 일찍이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분이 오시는 때가 정확한 때입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그들이 외롭게 노를 젖는 동안에 육체적으로 주님이 내 곁에 함께 계시지 않는 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괴로와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수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수 많은 죄없는 자유인들이 피눈물을 뿌리며 죽어가던 그 현장 속에서의 피맺힌 절규는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이 왜 이런 사건을 허용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연합군이 이 수용소를 탈환하고 이 수용소의 벽을 검사하다가 찬송가 가사가 씌어진 사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로도 이 사랑을 다 기록 할수 없겠네 이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웬 말입니까 그리고 그 밑에 조그마하게 씌어진 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 계십니다.” 주님은 이곳 까지 찾아 가셔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을 겁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우리는 불신자와 똑같은 골짜기와 바다와 계곡을 통과하도록 주님은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불신자와는 다른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주님께서 왜 이 풍랑을 허락하셨는지는 잘 모르지만 주님은 풍랑가운데서도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안이하고 평안하고 순탄 하다고 해서 이 문제를 외면 하지 마십시오 갈릴리 바다는 일기 예보가 적중하지 않는 바다입니다. 언제 어떻게 풍랑과 파도가 엄습해 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바다 가운데서 파도만, 물결만, 바람만 보인다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눈을 들어 저 산을 바라보십시오. 내가 눈을 들어 저 산을 바라보면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들의 하나님, 우리들의 구세주, 그분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이제 말하세요. 이 험한 세상에서의 외로움을 말하세요. 그리고 그분의 위로를 느끼세요. 그분의 임재 하심을 경험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에 빠지십시오. 여러분은 폭풍속에서도 평안함을 위로하심을 인도하심을 도우심을 느께게 될것입니다.
첫째. 제자들에게 고난이 필요하였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무엇 때문에 이 제자들에게 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는 고난의 현장이 필요 하였을까요. 참새 한마리도 하나님의 허럭하심없이 떨어질수 없음이 하나님의 선언이라면 사람들의 머리까지도 주님앞에서는 다 세신바 되었다면 이 고난 이아픔 이문제를 주님께서 허용하신 이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방금 전에 경험했던 사실은 무엇입니까 이 바다의 고난을 받기 직전에 그들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오천명 이상의 수만은 사람들을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먹이시는 주님의 위대한 기적의 사건들을 그들은 체험 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서 그들이 깨달은 가장 놀라운 사실은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이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 전능하신 주님이 이 전지하신 주님이 이 놀라우신 주님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얼마나 소중한 일이며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따라서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주님과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 간다는것 이 주님과 더불어 인생을 산다는 것 이것은 과연 특권이 아닐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왜 이 고난을 허용하십니까. 주님은 잠시후에 역사적 육신적 시간적 공간적으로 이 제자들과 지금은 함께 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서 그들에게서 부터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분은 아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떠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지금은 함께 있어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지금은 함께 있어서 그들을 위로 하셨고, 지금은 함께 있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지만 주님이 그들의 곁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떠나가신 다음에 저 제자들은 어떻게 살것인가를 염려 하면서 그들에게 중대한 교훈을 가르쳐야할 필요를 주님께서는 느끼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이 제자들은 어떻게 살것인가 주님의 목소리가 들려 오지 않을 때에는 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 주님의 그 능력 있는 손길이 나타나지 않을때 이들은 과연 어떻게 삶과 사건들과 상황들을 직면해 나갈 것인가 그들에게 중대한 교훈을 가르쳐야할 필요를 주님께서는 느끼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께서는 요13장에서 이 사건 직후에 제자들에게 드디어 마음에 품었던 사실을 발표 하기 시작 합니다. “나는 곧 너희들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한다” 그때 제자들은 주님께서 곁을 떠나신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움과 근심속에 잠기게 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1절에 유명한 예수님의 메세지가 시작 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 하지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육신적으로 제자들을 떠나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몇 가지 중요한 약속을 하십니다. 우선 요한복음 14: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지금까지는 곁에 계셨어요 그래서 예수님 도와주세요 하고 구하면 얻었어요 요청하면 즉시 응답을 받았요 그러나 예수님이 지금 우리곁을 떠나시면 우리는 어떻게 할것인가 이때 예수님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기도하라 내가 떠난 이후에도 구하라 그러면 내가 시행하리라는 약속입니다. 계속되는 기도의 응답을 약속합니다 16절을 보세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는 부름을 받아 내곁에 계시며 내문제를 해결하며 나를 도와주시는 분을 말합니다. 이 위대한 보혜사 즉 보호하고 위로하고 은혜를 베풀던 예수님이 떠나가시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러나 또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영원토록 너희와 함쎄 있을 것이다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1절을 보십시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내 얼굴은 이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내 말씀을 간직하고 내 진리를 간직하고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너희에ㅐ게 나를 보여 줄것이다. 라고 말씀 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볼것입니다. 27절에“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육신적으로 떠나가시는 그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평안을 주실것이며 어떻게 계속 가르칠 것이며 어떻게 우리들의 요구를 계속 응답할것인가 이러한 질문울 가지고 전전긍긍하던 제자들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약속 이 어마어마한 이 약속을 제자들이 어떻게 소화할것인가 제자들에게는 더 큰 바다로 나가기 위하여 고난이 필요 했습니다. 인생이란 벳세다 들판의 기적만이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은 기적이 계속되지 않기 때문에 그 기적은 기적으로 간주 되는 것입니다.
둘째. 제자들은 왜 두려워하며 떨었습니까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까요 나는 그리스도인인데 이렇게 흔들리며 좌절하며 무의미한 삶의 늪속에서 비틀거리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1)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날도 있습니다. 축복 스럽던 그날 하나님의 은혜가 감격스럽게 내마음속에 다가오면 그날은 주님의 임제가 내 마음속에 생생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바람뿐입니다. 보이는 것은 파도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의 무력감 절망 좌절 불안. 주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아요 보이는 것은 답답한 현실입니다. 두꺼운 벽입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입니다. 요힌복음의 기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였다 여기 제자들은 거리를 느끼고 있습니다. 주님과 나 사이의 거리를 느끼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깝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2)이 제자들이 두려워 하였던 이유는 함께 하시는 주 예수님을 분별할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오실때 제자들은 유령인가 하여 더 깊은 좌절 더 깊은 불안 더 깊은 혼란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발견 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엠마오 길에 있는 두 제자의 체험을 방불하게 하지 않습니까. 모든것을 집어 치우고 싶다 이제 모든것을 그만 두겠다 난 이제 옛날로 돌아간다 교회 나오기 이전 그 자유했던 시절 내 마음대로 내 삶을 누릴수 있었던 그 시절 차라리 지금 가지고 있는 도덕의식과 신앙 의식이 나를 괴롭혀 나를 꽁꽁 묶는 이 시절이 아닌 자유했던 그 시절로 이 모든것을 백지로 하고 였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처량했습니다 . 슬펐습니다. 이 고독한 엠마오길에 어떤 나그네 한사람이 그 길에 동행했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밝아질때까지 주께서 그 눈을 열어 줄때 까지는 주님이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볼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볼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볼수 있고 함께 하시는 주님을 분별할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보아도 보지못했습니다.
3) 그들이 주님을 깨닫지 못한것은 그 마음이 둔하여 졌기 때문입니다. 막6:51-52)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즉 방금 전에 기적의 현장에서 기적을 행하시던 그 주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주님이 일을 할수 있는 분이란것을 망각한것입니다. 어제 고난의 언덕을 무사히 통과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습니다. 틀림없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던 우리가 오늘의 고통앞에서는 어제의 축복을 어제의 영광을 어제 함께 하시던 주님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한날 내마음에 그렇게 뜨겁게 계시던 주님 그 십자가 앞에 엎드려 나를 울게 했던 주님 그 주님이 생나지 않는 것입니다. 왜그렇습니까 그 마음이 둔해져서 그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함께하시는 주님 함께 계셔서 내 마음을 붙들고 내의식을 붙들고 내 영혼을 붙들고 내 영혼속에 거룩한 비전을 보여 주시던 그 주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4) 또 다른 이유의 하나는 믿음이 적었습니다. 물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베드로 에게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 하였느냐(마14:31) 여기서 믿음이 적은자여 하고 말씀 하신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날 갑자기 이런 절망과 불안과 낙심이 엄습해 온다고 해서 나는 신앙이 없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엄격히 말해서 의심은 신뢰했던 경험이 있던 사람만이 할수 있는 것입니다. 의심은 신앙의 특권입니다. 신앙인이 아닌사람은 오히려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 냉혹한 삶 속에서 지금 여기서도 나를 도울 수 있는 그 하나님을 믿는 큰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불안과 좌절 속에서 우리를 구원 하실 수 있습니다.
셋째. 풍랑 가운데서 도우시는 주님입니다. 46절을 보면 제자들이 배를 타고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를 건너 가고 있는동안에 주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주님은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고난 당하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겠습니까.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내가 괴롭게 노를 저으며 이 바다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분이 있음을 아십니까. 내가 이 노를 잡고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신음하며 이어려움을 당할 때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도하실 뿐만 아닙니다. 48절을 보십시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젓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내가 부딪히는 오늘의 삶의 갈등과, 내 가정의 갈등과, 내 삶의 모든 폭풍우 속에서 내가 얼마나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고 안타까와 하며 몸부림치면서 괴롭게 노젓는 그 모습을 주께서 보시고 내 고통을 보시고, 내 고독을 보시고, 내 절망을 보시고, 내 좌절을 보시고, 내 괴로움을 보시고, 내 눈물을 보시고, 내 아픔을 보시고, 내 허물을 보시고 찾아오십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48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하나님의 정확한 때에 오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왜 더 일찍이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분이 오시는 때가 정확한 때입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그들이 외롭게 노를 젖는 동안에 육체적으로 주님이 내 곁에 함께 계시지 않는 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괴로와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수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수 많은 죄없는 자유인들이 피눈물을 뿌리며 죽어가던 그 현장 속에서의 피맺힌 절규는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이 왜 이런 사건을 허용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연합군이 이 수용소를 탈환하고 이 수용소의 벽을 검사하다가 찬송가 가사가 씌어진 사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로도 이 사랑을 다 기록 할수 없겠네 이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웬 말입니까 그리고 그 밑에 조그마하게 씌어진 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 계십니다.” 주님은 이곳 까지 찾아 가셔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을 겁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우리는 불신자와 똑같은 골짜기와 바다와 계곡을 통과하도록 주님은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불신자와는 다른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주님께서 왜 이 풍랑을 허락하셨는지는 잘 모르지만 주님은 풍랑가운데서도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안이하고 평안하고 순탄 하다고 해서 이 문제를 외면 하지 마십시오 갈릴리 바다는 일기 예보가 적중하지 않는 바다입니다. 언제 어떻게 풍랑과 파도가 엄습해 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바다 가운데서 파도만, 물결만, 바람만 보인다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눈을 들어 저 산을 바라보십시오. 내가 눈을 들어 저 산을 바라보면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들의 하나님, 우리들의 구세주, 그분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이제 말하세요. 이 험한 세상에서의 외로움을 말하세요. 그리고 그분의 위로를 느끼세요. 그분의 임재 하심을 경험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에 빠지십시오. 여러분은 폭풍속에서도 평안함을 위로하심을 인도하심을 도우심을 느께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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