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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으로 인한 고민 (막6:46-52)

본문

오늘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벳세다 들판에서 5000명을 먹이신 후, 백성들 로 부터 임금을 삼으려고 하는것을 보고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강건너 가버나움 으로 보내고 자신은 따로 산에 올라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을 재촉하여 서둘러 보내신 것은 백성들이 자신의 메시야직을 오해함 에 있었습니다. 백성들 생각으로는 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분이라면 우리가 기다 리던 메시야임에 틀림없으니, 저가 우리의 원한을 풀어 로마 정권을 타도하고 새 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현세적인 부푼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 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을 즉시 건너편 마을로 가게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날이 저물었다고 했습니다. 해가 지는 동안 까지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배를 저어가던 제자들 은 풍랑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생 문제와 함께 신앙으로 사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하는데 대한 말씀의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인생은 예기치 않은 풍랑으로 고난에 직면하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24절에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를 떠나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 을 당하더라"고 하는 말씀에서 우리 인생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생은 어떤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불행 속에 태어나는 사람도 있으나, 대부분 중 도에 예기치 않은 풍랑을 만나는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를 떠났다'는 것은 인생의 삶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결혼식을 많은 하객들 앞에서 남부럽지 않게 하고, 부모의 배경으로 부유하게 신혼의 출발을 했건만, 중간에 닥친 생의 역풍(逆風)으로 풍랑을 당한 인생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이 사별의 슬픔일 수도 있고, 그것이 갑짜기 닥친 사고일 수도 있고, 그것이 예기치 못했던 병고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잔잔한 바다를 항해해 가듯 순풍에 출발은 했으나 중간에 돌풍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인생 이란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인생이 흐르는 물같이 세월과 함께 흘러갈 수 있다면 얼마 좋으련만 푸쉬킨 의 말처럼 온갖 얽히고 설키는 일이 있기에 예기치 않은 계곡을 만나 급류로 변하 기도 하고, 낭떠러지를 만나 수십길 폭포가 되어 곤두박질하여 떨어지기도 하고, 돌부리를 만나 굽이굽이 돌아가야 만 하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란 말씀입니다. 사고, 실패, 가난, 파산, 이혼, 병, 죽음, 등등 인생의 역풍으로 인한 고난을 누가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바람이 거슬리므로. 라는 말에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거슬리는 바람이 역풍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누구나 젊어서 먹었던 희망과 포부를 다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거의 드 믓니다. 모두가 중도에 고난의 역풍으로 인생의 코-스가 바뀌었다거나, 어떤 경 우에는 영 딴 코-스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어쩌면 인생은 이러한 풍랑들로 인하여 성숙해 지고, 겸손해 지고, 사람이 되어 가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내가 풍랑 중에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계십니까 여러분에게 만 닥치는 풍랑이 아니란 것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왜 해필 나에게만 닥치는 고난인가 고 원망 스러운 분들이 계십니까 잠시 한걸음 물러서서 다음의 말씀을 경청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의 눈길이 주(主)님을 바로 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25절에 보면,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 들이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밤 사경에 라는 말씀이 주는 교훈입니다. 유대인들은 밤을 4 등급으로 나누었습니다. 초경, 중경, 삼경, 사경으로 나누었는데, 밤 사경이란 3-4시경을 말합니다. 새벽을 앞둔 제일 깊은 밤을 말합니다. 이것은 고난의 극치를 말합니다. 밤 사경에 주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 오셨다 고하였습니다. 가장 인생의 밑바닥에 까지 이르렀을 때, 주님은 찾어 오신다는 뜻입니다. 거의 죽게 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찾어 오신다는 뜻입니다. 밤 사경에 처한 성도들이 계십니까 주님이 가까이 고난 속에 찾아오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님을 바로 보지 못하고 유령 인줄 알고 무서워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누구나 다 주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불행한 속에 있다고 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죽겠다고 아우성 치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치 제자들이 무서워 소리 질렀다고 한 것처럼, 소리지르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러나, 저들 눈에 아직도 예수가 유령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용기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27절에 보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할 때 베드로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주여! 만일 주시여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 자체가 보통 용기가 아닙니다. 누구나 할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라!'는 것은 주님을 확인해 보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가장 어려운 지경이 처했을 때, 주님을 확인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어야 주님! 정말로 주님이십니까 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 베드로는 지금 '반신반의'하는 상태에서 한 말입니다. 주님이라면 얼마나 좋으련만, 한편은 유령인 것 같기도 하고, 무서운데 그래도 음성을 들어보면, 내니 두려워 말라!는 음성은 평소에 듣던 주님의 음성이기도 함으로 '만일 주시여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라!'고 하였습니다. 29절에 보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처음 베드로는 물위로 걸어갔다고 했습니다. 역사상 물위로 걸어 본 사람은 베드로 뿐인줄 압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주님을 보지 못하고 '바람을 보고 무서워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길이 주님을 바라보는 한 물위로 걸을 수도 있으나, 바람을 보는 순간 빠졌든 것처럼 세상을 더 크게 바라보면 다 빠져 버릴 수 밖에 없다는 교훈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중도에 교회 나오다 낙심한 사람들이 이런 경우입니다. 눈길이 예수님께로 부터 떠나면, 빠져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어떠한 역경과 고난 중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바로 듣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물위로도 걸어갈 수 있듯이 고난도 극복해 낼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세상의 온갖 유행의 바람! 또는 육체적 욕망의 바람들로 인하여, 세상으 로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결국 저들은 죽게 될 때 주여! 나를 구원하 소서! 라고 부르짖을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신고로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를 즉시 손을 내 밀어 저 를 건져 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고 하시며 함께 배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결국 택한 백성은 주님께서 하나도 버리지 않고 구원해 낸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죄중에 방황하며 빠져 들어가는 영혼들 중,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라 고 부르짖기만 하면 손을 내 밀어 구원해 내시는 주님이란 말씀입니다. 이것이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입니다. 생의 풍랑 중에서 지금도 돌아서기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임하십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라는 말 만 하면, 두손들고 자복 하기만 하면, '즉시' 손을 내 밀어 건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3.주님이 함께 하는 삶속에 비로소 평안을 얻는다는 교훈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장 중요한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32절에 말씀입니다. "베에 함께 오르시매 바람이 그치는지라"고 한 말씀입니다. 바람이 그쳤다는 것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입니다. 바람이 그쳤다는 것은 고난의 시련이 가시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람이 그쳤다는 것은 행복의 언덕에 도달하였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는 것에서라야 바람이 그쳤다는 말씀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배에 함께 올랐다는 것'은 주님과 한배를 탔다는 뜻입니다. 공동 운명 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람이 이제 불어와도 주님과 함께 당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직도 자신의 생각과 수단 방법을 앞세우는 한, 바람 잦을 날은 없습니다. 택한 백성이 풍랑 속에 있을 때, 주님은 가까이 와 계십니다. 고집을 버리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하기만 하면, 즉시 손을 내 밀어 붙잡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도 인생의 역풍 속에 시달리는 성도들이 있다면, 주님께 손을 내 미시기 를 바랍니다. 거기에 놀라운 '진실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이로 소이다'라는 고 백의 경험이 있을 줄 믿습니다. 33 절에 보니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감동의 장면입니까 신앙은 체험으로 믿게 되는 것이고, 그 체험이 있기에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신학생 한 사람은 나이 50에 가까워서 신학을 하게 된 사람입니다. 모두 믿는 가정에서 자란 그였기에 교회 생활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성경 지식도 누구보다 많았고, 학생시절에는 열씸히 교회 봉사도 했던 사람입니다.그가 신학에 오기까지는 퍽 많은 인생의 풍랑을 경험한 경력이 있은 후였습니다. 처음에는 공무원으로 시작하였다가, 다음에는 학교 교사로, 그리고는 장사를 하게 되었는데.모두가 자기의 원 되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실패요, 또 실패입니다. 풍랑이 잦을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생 나이 중반을 넘어서 신학의 문을 두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신학에 들어 온날 부터 모든 일이 그렇게 잘 풀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거칠게 몰아치던 풍랑이 고요하게 잔잔하게 평온을 찾았다는 것 이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그 한 사람만의 경험이겠습니까 (성 어거스틴의 고백 참 조)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여러분들의 가정에 주님이 함께 하셔서 모든 풍랑을 잔잔 케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모두 인가 귀도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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