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의 선결문제 (마7:1-5)
본문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경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사도행전 11장 2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이란 말을 성도들 스스로가 지어서 부른 이름이 아니라 불신자들이 지어준 칭호인 것입니다. 불신자들의 눈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 안믿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말하는 것을 보니 점잖고 행동하는 것을 보니 너무나도 얌전하다. 그들은 핍박을 받아도 기뻐하며 원수를 미워하지 아니하고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대단히 놀랍다. 그들은 이기적으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언제나 희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불신자들의 눈에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성도 간에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받들어 충성하는 훌륭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비추어진 것입니다. 불신자들의 눈에 비친 성도들의 대명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선결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웃과 화목하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절, 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번 동경에서 개최된 목회자 모임에서 개회 예배를 드리면서 맨전저 한 것은 강단 앞에 대야에 물을 떠다 놓고 한사람 한사람씩 손을 씻었습니다. 이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사형언도를 내리고난 다음에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 손을 씻었던 의미와는 다른 것입니다. 남북한이 그동안 서로 비방하고 정죄하고 미워했는데 그 모든 죄를 회개하고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이 의식을 행하고난 다음에 서로 서먹서먹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던 것입니다. 이때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남북한 정치 지도자가 남북회담을 하기 전에 먼저 남북한의 교회와, 성도들이 화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85년 동서 냉전 체제를 붕괴시킨 사건이 유럽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일을 담당했던 사람은 미국이나 영국 혹은 프랑스 또는 강대국들의 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역할을 했던 사람은 공산당 선언을 신봉했던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쵸프였습니다. 그가 공산당 선언을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후 봇물이 터지듯이 동서 냉전 체제가 붕괴되고 동서 화해의 시대가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동서독이 통일되기 전에 선구자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크리스챤들과 교회였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높이 쌓여 동서독 사람이 왕래조차 할 수 없었던 1969년에 교회는 동서독 화해를 위해서 동방백서를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백서의 내용은 고린도후서 5장 18절과 19절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들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하나님께로 부터 받았다는 확신 가운데 헌신을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희생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았고 적대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단결을 위해서 노력을 쏟았습니다. 장기간의 화해를 위한 노력의 결과 동서독 사이에 가로 놓였던 장벽이 무너지고 적대감이 사라지고 서로 화합하는 가운데 살 수 있게 되어진 것입니다.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되는 날이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먼저 화목하는 일에 힘써야 될 줄로 믿습니다. 가족들 간에도 서로 화해하여 사랑해야 하겠고, 성도 사이에도 서로 서먹서먹한 관계에 있다거나 미워하는 마음들이 있다면 먼저 찾아가서 화목해야 하겠습니다. 성도들 간의 무관심했던 것들, 이웃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 등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셔서 인사하고 사랑하고 화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민족이 화해하고 또 남한과 북한이 화해하는 날이 오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라고 말씀하고 있고, 16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 뿐만 아니라 이웃과 이웃을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겠고 남북한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모든 담을 무너뜨려 달라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둘째로, 내 눈에서 들보를 빼내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7장 1절로 5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남에게 비판받기를 싫어합니다.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기는 남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판받기를 싫어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한 예로 우리가 남에게 손가락질 할 때 한 손가락은 다른 사람을 지적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나머지 세개의 손가락은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거나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네 눈속에 있는 들보를 보라 말씀하였는데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 속에 있는 결점을 등한시 하면서 오히려 남의 결점을 들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로 인하여 남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커먼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온 세상이 온통 까맣게 보이는 것이고, 빨간 색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온통 빨갛게 보일 것입니다. 우리 속에 들보가 있다거나 아집과 편견이 가득차 있다면 사물을 정확하게 관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보를 제거해야 하고 색안경을 벗어 던져야 하며, 아집과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허물과 죄악된 요소를 제거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허물은 크게 보이고 자신의 허물은 작게 보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고 제거해 버리면 나의 허물이 컸던 것을 깨닫고, 남의 허물이 작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디엘 무디(D. L. Moody)는 “하나님의 거울을 통해서 보아 자신의 모습이 올바르게 비쳐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고 중국 전한서(前漢書)에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비판적이면 친구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버드(E. Hubbard)는 “말하기 전에 재고하라. 그런 후에 그것을 네 자신에게 말하라”고 했는데 이는 남을 비판하지 말고 네 자신을 먼저 살펴보라는 말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황금률이라고 말하는 마태복음 7장 12절에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논어(論語)에 “기소불욕(己所不慾)하고 물시어인(勿施於人)하라”고 했는데, 그 뜻은 “네가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 행치 말라”는 뜻으로 공자가 말한 것입니다. 힐렐(Hillel)은 “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네 이웃에게 행치 말라”고 했고, 토브(Tob)에는 “네가 싫어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하지 말라(Tob 4:15)”고 되어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소극적인 말들을 많이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적극적인 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이야기를 잘알고 있습니다. 어느날 두사람이 만나서 이성계가 먼저 입을 열어 무학대사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못생겼소! 꼭 돼지같이 보이오”라고 말하자 무학대사가 “내가 보기에는 당신은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이성계가 “나는 당신에게 돼지같다고 욕을 하였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날더러 부처님 같다고 칭찬을 하십니까”라고 하자 무학대사가 하는 말이 “당신 속에는 돼지가 들어 앉아 있어서 당신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돼지처럼 보이지만 내속에는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의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여러분 심령 속에 죄악이 가득하고 마귀에게 그 마음을 빼앗겼다면 많은 사람들을 볼 때에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욕심과 탐욕과 정욕으로 가득차서 죄만 짓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심령 속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면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예수님처럼 보이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남을 대접하는 대로 대접받는다는 이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면서 늘 예수님의 사랑을 간직하는 분들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셋쩨로,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일을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나님 나라의 성격과 우선순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고 성령님께서 다스리는 세계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의로운 마음이 생기고 평강이 넘치고 희락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지옥은 마귀가 다스리는 세계이며 어둠과 불의로 가득차고 근심과 걱정,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찬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께서 기쁨과 평강을 주시고 의로운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가 충만한 세계요,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세계입니다. 부정과 불의가 가득찬 곳이 지옥이지만 정의가 강물같이 넘쳐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먼서 기뻐하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툼과 분쟁과 전쟁이 없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고 있고, 미워하고 대적하는 일이 없고 서로 사랑하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눈물이 없는 곳, 질병이 없는 곳, 가난과 저주가 없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장차 우리 모두는 이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서 길이 길이 살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땅에서도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면서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아모스 5장 24절에 ‘오직 공법(公法)을 물같이, 정의(正義)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를 포함해서 모든 민족에게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번 동경대회는 동경에 있는 한국 YMCA에서 개최하였는데, 남한에서 약 70여 명, 일본에 있는 교포 지도자가 약 40여명, 북한에서 5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보면 목사님이 네명이고, 평신도 지도자가 한명이었습니다. 이분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성경연구도 하였습니다. 북한에는 두개의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정교회가 오백여개가 있으며, 1983년에 평양 신학원이 개교되어져서 그동안 6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20여명의 목사님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도수는 약 만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남북한의 교회를 비교해 보면 남한은 4만여개의 교회와 1300만명의 크리스챤이 있는데 비해 북한은 아직도 기독교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단은 북한 선교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없지만 타교단은 북한 선교 대책이 마련되어지고, 많은 선교 헌금을 준비해 놓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시편 126편의 말씀과 같이 “꿈꾸는 날, 꿈과 같이” 가까운 시일내에 남북한의 담이 무너져서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일되는 때에 그 모아둔 헌금이 북한 선교를 위해 쓰여진다고 하니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우리 교단도 이 일을 위해서 선교 헌금도 마련하고 선교사도 양성해야 되겠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먼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들이 준비된 상태에서 통일이 되어지는 그 날이 오면 북한으로 봇물터지듯이 남한에 있는 많은 교역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이 그곳에 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굳게 의지하면서 먼저 화목하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부터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면 그 이외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해 주실 것이고, 역사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피흘림이 없이 남북한이 통일되어지도록 역사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날이 속히 오도록 우리 모두가 깨어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선결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웃과 화목하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절, 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번 동경에서 개최된 목회자 모임에서 개회 예배를 드리면서 맨전저 한 것은 강단 앞에 대야에 물을 떠다 놓고 한사람 한사람씩 손을 씻었습니다. 이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사형언도를 내리고난 다음에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 손을 씻었던 의미와는 다른 것입니다. 남북한이 그동안 서로 비방하고 정죄하고 미워했는데 그 모든 죄를 회개하고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이 의식을 행하고난 다음에 서로 서먹서먹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던 것입니다. 이때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남북한 정치 지도자가 남북회담을 하기 전에 먼저 남북한의 교회와, 성도들이 화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85년 동서 냉전 체제를 붕괴시킨 사건이 유럽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일을 담당했던 사람은 미국이나 영국 혹은 프랑스 또는 강대국들의 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역할을 했던 사람은 공산당 선언을 신봉했던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쵸프였습니다. 그가 공산당 선언을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후 봇물이 터지듯이 동서 냉전 체제가 붕괴되고 동서 화해의 시대가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동서독이 통일되기 전에 선구자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크리스챤들과 교회였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높이 쌓여 동서독 사람이 왕래조차 할 수 없었던 1969년에 교회는 동서독 화해를 위해서 동방백서를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백서의 내용은 고린도후서 5장 18절과 19절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들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하나님께로 부터 받았다는 확신 가운데 헌신을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희생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았고 적대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단결을 위해서 노력을 쏟았습니다. 장기간의 화해를 위한 노력의 결과 동서독 사이에 가로 놓였던 장벽이 무너지고 적대감이 사라지고 서로 화합하는 가운데 살 수 있게 되어진 것입니다.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되는 날이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먼저 화목하는 일에 힘써야 될 줄로 믿습니다. 가족들 간에도 서로 화해하여 사랑해야 하겠고, 성도 사이에도 서로 서먹서먹한 관계에 있다거나 미워하는 마음들이 있다면 먼저 찾아가서 화목해야 하겠습니다. 성도들 간의 무관심했던 것들, 이웃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 등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셔서 인사하고 사랑하고 화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민족이 화해하고 또 남한과 북한이 화해하는 날이 오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라고 말씀하고 있고, 16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 뿐만 아니라 이웃과 이웃을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겠고 남북한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모든 담을 무너뜨려 달라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둘째로, 내 눈에서 들보를 빼내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7장 1절로 5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남에게 비판받기를 싫어합니다.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기는 남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판받기를 싫어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한 예로 우리가 남에게 손가락질 할 때 한 손가락은 다른 사람을 지적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나머지 세개의 손가락은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거나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네 눈속에 있는 들보를 보라 말씀하였는데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 속에 있는 결점을 등한시 하면서 오히려 남의 결점을 들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로 인하여 남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커먼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온 세상이 온통 까맣게 보이는 것이고, 빨간 색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온통 빨갛게 보일 것입니다. 우리 속에 들보가 있다거나 아집과 편견이 가득차 있다면 사물을 정확하게 관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보를 제거해야 하고 색안경을 벗어 던져야 하며, 아집과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허물과 죄악된 요소를 제거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허물은 크게 보이고 자신의 허물은 작게 보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고 제거해 버리면 나의 허물이 컸던 것을 깨닫고, 남의 허물이 작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디엘 무디(D. L. Moody)는 “하나님의 거울을 통해서 보아 자신의 모습이 올바르게 비쳐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고 중국 전한서(前漢書)에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비판적이면 친구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버드(E. Hubbard)는 “말하기 전에 재고하라. 그런 후에 그것을 네 자신에게 말하라”고 했는데 이는 남을 비판하지 말고 네 자신을 먼저 살펴보라는 말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황금률이라고 말하는 마태복음 7장 12절에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논어(論語)에 “기소불욕(己所不慾)하고 물시어인(勿施於人)하라”고 했는데, 그 뜻은 “네가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 행치 말라”는 뜻으로 공자가 말한 것입니다. 힐렐(Hillel)은 “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네 이웃에게 행치 말라”고 했고, 토브(Tob)에는 “네가 싫어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하지 말라(Tob 4:15)”고 되어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소극적인 말들을 많이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적극적인 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이야기를 잘알고 있습니다. 어느날 두사람이 만나서 이성계가 먼저 입을 열어 무학대사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못생겼소! 꼭 돼지같이 보이오”라고 말하자 무학대사가 “내가 보기에는 당신은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이성계가 “나는 당신에게 돼지같다고 욕을 하였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날더러 부처님 같다고 칭찬을 하십니까”라고 하자 무학대사가 하는 말이 “당신 속에는 돼지가 들어 앉아 있어서 당신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돼지처럼 보이지만 내속에는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의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여러분 심령 속에 죄악이 가득하고 마귀에게 그 마음을 빼앗겼다면 많은 사람들을 볼 때에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욕심과 탐욕과 정욕으로 가득차서 죄만 짓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심령 속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면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예수님처럼 보이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남을 대접하는 대로 대접받는다는 이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면서 늘 예수님의 사랑을 간직하는 분들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셋쩨로,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일을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나님 나라의 성격과 우선순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고 성령님께서 다스리는 세계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의로운 마음이 생기고 평강이 넘치고 희락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지옥은 마귀가 다스리는 세계이며 어둠과 불의로 가득차고 근심과 걱정,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찬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께서 기쁨과 평강을 주시고 의로운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가 충만한 세계요,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세계입니다. 부정과 불의가 가득찬 곳이 지옥이지만 정의가 강물같이 넘쳐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먼서 기뻐하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툼과 분쟁과 전쟁이 없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고 있고, 미워하고 대적하는 일이 없고 서로 사랑하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눈물이 없는 곳, 질병이 없는 곳, 가난과 저주가 없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장차 우리 모두는 이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서 길이 길이 살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땅에서도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면서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아모스 5장 24절에 ‘오직 공법(公法)을 물같이, 정의(正義)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를 포함해서 모든 민족에게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번 동경대회는 동경에 있는 한국 YMCA에서 개최하였는데, 남한에서 약 70여 명, 일본에 있는 교포 지도자가 약 40여명, 북한에서 5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보면 목사님이 네명이고, 평신도 지도자가 한명이었습니다. 이분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성경연구도 하였습니다. 북한에는 두개의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정교회가 오백여개가 있으며, 1983년에 평양 신학원이 개교되어져서 그동안 6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20여명의 목사님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도수는 약 만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남북한의 교회를 비교해 보면 남한은 4만여개의 교회와 1300만명의 크리스챤이 있는데 비해 북한은 아직도 기독교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단은 북한 선교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없지만 타교단은 북한 선교 대책이 마련되어지고, 많은 선교 헌금을 준비해 놓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시편 126편의 말씀과 같이 “꿈꾸는 날, 꿈과 같이” 가까운 시일내에 남북한의 담이 무너져서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일되는 때에 그 모아둔 헌금이 북한 선교를 위해 쓰여진다고 하니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우리 교단도 이 일을 위해서 선교 헌금도 마련하고 선교사도 양성해야 되겠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먼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들이 준비된 상태에서 통일이 되어지는 그 날이 오면 북한으로 봇물터지듯이 남한에 있는 많은 교역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이 그곳에 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굳게 의지하면서 먼저 화목하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부터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면 그 이외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해 주실 것이고, 역사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피흘림이 없이 남북한이 통일되어지도록 역사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날이 속히 오도록 우리 모두가 깨어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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