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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가? (마7:12)

본문

인권이란 사람의 권리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을 존중 히 여기고 사랑하라는 것이 율법의 기본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을 존중하라는 것은 성서의 가르침이요 우리 기독교사상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고대의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사상과 그들의 저서 가운데에서도 그러한 주장들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고 역사상 기독교의 신학자들과 영국을 비 롯한 구라파의 법학자들, 그리고 문인들이나 사상가들에 의하여 인간의 권리는 옹호되고 주장되어 왔습니다. 특히 프랑스혁명 이후에 구미 각국에서는 인권사상이 헌법에 반영이 되었고 그후 아시아, 중남미제국, 심지어는 아프리 카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자기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 각자가 자기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하고 관심이 큰것입니다. 인권에 대한 사상과 주장은 국제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어 나라와 나라사이에 혹 은 적대국가간에도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국제법들을 만들고 노예무역같은 것 을 금한다던지 사회와 노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던지 심지어는 전쟁중에 도 포로나 부상자들을 보호하고 국경을 초월하여 치료해 주어야 한다던지 하는 국제법이 만들어져 오늘날 적십자사와 같은 기관의 탄생을 보게 하였습니다. 특히 두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통하여 인권사상은 더욱 그 중요성이 강 조된것 같습니다. 1919년 1차대전이 끝나고 파리평화조약이 체결되었을 때에 국제연맹 헌장중에 인간의 권리와 복지를 보호하는 중요한 규정들이 제정되 었는데 예를들면 남자 여자 어린이들에 대한 공정한 노동조건을 보장해 야 한다던지, 식민지에서 원주민들을 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던지, 여자와 어 린이들의 인신매매를 금지 감독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전근대적인 암흑속에서 국민들의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 던 20세기초에 벌서 선진문명 세계는 인권에 대해 눈을 뜨고 이에 대한 활발 한 논의를 전개해 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와서는 UN헌장에서 기 본적 인권에 대한 신념을 언급하였고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사람이 법 앞 에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 집회 결사 신 앙의 자유와 같은 인권의 기본적 가치들을 규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인 권선언이 발표된 12월 첫주일을 전세계가 인권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인간의 가치나 인권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성경시대 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예수님 이전 유대교 사회에서는 그들이 읽고 배우는 '토라' 즉 율법에 의하여 형제애와 이웃 사랑에 대하여 가르치고 강조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가르침에서 인권사상이나 인권선언 같은 것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거창한것 보다는 이 문제를 좀 단순하고 소박 하게 생각하여 보고자합니다. 우리는 '사람으로서 사람을 어떻게 대할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인권이 사람의 권리라면 그 권리를 가진 사람과 사람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이루어져 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너희 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거든 먼저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곧 율법과 예 언자들의 가르침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유대교의 유명한 율법학자인 힐렐이란 랍비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율 법을 배우고 유대교로으로 개종읊 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이 하도 복잡하고 수가 많으니 딱 한마디로 요약하여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힐렐에게 '내가 한발로 서있는 동안 빨리 단 한마디로 율법전체를 요약해 말해주십시요. 그래야만 유대교를 믿겠습니다' 라고하였습니다. 그때 에 랍비 힐렐은 '너에게 싫은 일은 친구에게도 하지 말아라'라고 대답하였다 고 합니다. 그것이 율법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자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지 않는 그러한 덕행이 곧 율법에 골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대하는 황금율이 되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 랍비의 말을 생각하여 볼 때에 참으로 그 말에 동감이 됩니다. 내가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는 것이 싫으면 나도 남의 자존심 상할 말은 아 니해야 되지요. 비판 듣는 것이 싫으면 나도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됩니다. 나쁜말 듣는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남에게 나쁜말을 하지말아야 되겠습니다. 독재를 규탄하던 이가 권력을 잡으면 더 무서운 독재자가 되고 부정 불 의를 미워하던 사람이 오히려 더 큰 부정축재자가 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 아왔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그렇게 모릅니다. 간음중에 현장에서 잡혀 온 여 인을 정죄하여 법에 따라 처단하려고 했을 때에 예수님은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있거든 이 여자에게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돌 던질 자격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만일 그 자리에 유일한 자격자가 있었다면 그는 예수님이신데 주님은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랍비 힐렐은 '자기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네가 좋은 것을 남에게도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형제 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은 인도 주의 사상과 인간애를 실천하라는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교훈으로 가득차 있는데 '너는 길 잃은 원수의 소나 나귀를 만나면 그것을 임자에게 반드시 데 려다 주오야 한다.'(출 23:4)고 했습니다. 여기서 원수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 들에게 있어서는 이교도를 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숭배 자들인데 그들에 대해서까지도 인간애의 요청은 파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원수들인 이교도나 우상숭배자들을 대하는 하나님 백성들의 '사람 을 대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머리가 되고 꼬 리가 되게 하시지 않으신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다른사람과 경쟁관계에 있 을 때에 '사람은 언제라도 뒤쫓김을 당할지언정 남을 뒤쫓아서는 안된다' 고 했습니다.
'압박을 당하되 남을 압박하지 말라, 모욕을 당해도 앙갚음 하지말며 사랑으로 행하라'고 하면서 사람을 귀히 알고 그렇게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를 창조했다. 네가 그를 사랑하면 내가 너에게 응보의 보답을 할 것이고 네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반드시 벌을 내리는 심판자가 되 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사랑은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사랑입니다. 유대인들은 저주를 받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러나 대인관계에 있어서 '설사 네가 남에게 저주를 당하는 자가 될지라도 너는 남을 저주하는 자가 되지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인간됨의 도리입니다. 얼마나 인간적이 고 인도주의적입니까 최근 우리는 '인권운동'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만 인권을 회복하는 일 을 왜 운동으로 전개해야할까 왜 그것을 시위나 폭력으로 쟁취해야만 하게 되었을까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권을 짖밟고 무시한 과거 독재정권의 위정자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편으로는 과격한 방법으로 그것을 쟁취하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인권을 회복하고, 권력도 그러한 방법으로 쟁취한다면 그 사람들은 더 무서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 3자인 우리들 국민 대다수에 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역사의 방관자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은 사람 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가 내가 싫어 하는것을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하 고 내가 원하는 바를 남에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입장을 바꾸 어 생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위정자는 국민의 입장을, 국민은 국가를 이끌 어 나가는 지도자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입 장을 자녀들은 부모님의 입장을, 기성세대는 청년들을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입장을생각해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입장을 학생들은 선생님의 입 장을, 가난한 이들은 부자들의 입장을 부자는 가난한 이들의 사정과 처지를 생각해 봅시다. 또 우리 교인들도 자기 처지에서만 사람을 보지말고 불신자 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바리새인 들처럼 자신만 의롭다고 여기는 아집에 빠지고 자신의 입장에 안주하는 비겁 한 자가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입장을 알고 그 상처를 싸매고 고치고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비판이나 규탄이나 정죄나 폭로보다는 서로가 눈물흘 리며 회개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용서하고 서로 붙잡아 주는 위로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그 방법을 배우는 일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너희가 남에 게 대접을 받고 싶거든 먼저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곧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이다.'(현대인성경 마 7:12) 라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만 앉아계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입 장에서 우리를 보시지 않으시고 우리 입장이되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 를 아셨습니다. '그분은 원래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고 계셨지만 하나님과 동 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빌 2:6-) 이것은 하나님이 그 입장을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입장이 되셔서 고난과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를 아시기 위해 당신의 입장을 포기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감격과 은혜가 될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사람을 대할 때 에 그 입장을 바꾸어 보라는 교훈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으로서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요 진정한 사랑으로 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요 그렇게 될때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이러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람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 성경


본문:창 47:27-31 인간이 자율적인 존재인가, 타율적인 존재인가의 문제로 갈등을 겪어온지는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현대 과학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오늘날 사회는 인간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율주의가 더 팽배합니다. 그러나 사회 일면에서는 아직도 인간은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자기 마음 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타율주의가 있습니다. 이에 성경은 인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게서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한 피조물로써, 우주의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능력을 주었지만, 순종치 못함으로 죄를 범하고, 죄 가운데 빠지는 어리석음을 자 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게서는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인간의 사망을 대신 맛보게 하시고,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사망과 죄악 속에 있던 인간을 구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삼아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야곱을 등장시키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백성 백성들이 일평생 어떻게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삭의 둘째 아들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간교한 사람으로 속임수로 장자의 축복을 가로 챈, 한 마디로 말하여 그는 세속적인 인간의 모습을 지닌 보편적인 사람이 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특출난 에서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야곱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그에게 구원의 축복을 주 시고, 그의 삶을 윤택케하시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으로 창세기 25장 23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 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 기리라"는 말씀과 바울 사도가 로마서 9장 13절에서 "기록된 바 내가 야곱 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두 성경 말씀은 인간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선택 기준이 외적인 조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주권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세상적으로는 결점이 많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을 하나님 께 일평생 어떻게 인도해 주시는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축복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야곱은 간절히 축복을 갈망하던 사람이었습니다.그야말로 자기 아버지의 저주와 형 에서의 미움을 각오하고서 눈 먼 아버지가 축복하려고 할 때 별 미를 만들어 가지고 들어가서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또한 창세기 32장 26절에 보면 "자기와 씨름하는 천사를 향하여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 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얼마나 축복을 갈구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인간은 축복을 받고자 하는 욕망 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고 형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 속 깊숙히 잠재해 있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인간의 내면 속에 깊숙히 잠재해 있는 축복받고 행복해지려는 본성을 만족시켜 주심으로써 인간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8장 13절에서 15절을 보면 루스의 들판에서 잠을 자고 있는 야곱 에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세가지 축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는 물질의 축복과 "네 자선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을 편만할지며"라는 자손이 축복받을 것의 약속과"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라는 임마누 엘의 축복의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31장 이후를 보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야곱에게 이십여 년 동안에 내려주셔서 그는 밧단 아람 최고의 거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열두명의 자녀를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고 하나님이 언제나 그에게 역사하 여 함께 하시는 것을 느끼게 만든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을 약속하시고, 때가 되매 그 약속한 축복을 야곱에게 주셨습니까 야 곱이 일평생동안 하나님을 잘 믿는 신앙을 갖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야 곱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축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될 때에 놀라운 믿음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고백적인 신앙,둘째는 증거하는 신앙,셋째는 기도하는 신앙이 생 겼습니다. 창세기 28장 16절에 보면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 의 실존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믿음이 생기게 되면 자연적으로 신앙의 고 백이 일어납니다. 또한 야곱의 신앙은 증거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나 를 축복하심을, 나를 지켜주심을 증거하며, 자녀주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자 녀는 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믿음이 생기면 증거하게 됩니다. 역사가 일어납니다. 야곱의 신앙은 기도하는 신앙입니다. 에서가 사백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쳐 들어올 때에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믿음이 있어 야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더 큰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두려운 현실의 벽에서 용기를 가지고 그 현 실에 부딪치는 신앙이 위대합니까 아닙니다. 그보다 어려운 시련 앞에서, 고통 앞에서 두려워 떨지만, 그 두렵고 떨리는 나약함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신앙이 위대한 것입니다. 용기있고 호기있는 신앙보다, 기도하는 신 앙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에게 변화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이십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에게는 사백명의 에서의 군사가 쳐들 어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도 보내보고, 달래보기도 하고, 물질도 보내보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모든 식구를 그 저녁에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 얍 복강가에서 홀로 하나님과 만나는 야곱의 모습을 봅니다. 사람이 이렇게 궁 지에 몰리고 어려움 가운데 시달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는 하나님의 신호요, 변화된 삶을 살라고 요구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야곱은 온갖 몹쓸 짓을 다했으면서도 죄를 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옛 사람이 새사람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어 놀라운 변화의 삶을 살게 됩니다.
첫째는, 의식이 변했습니다. 과거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던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느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축복하셨다는 것을 느끼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 더 큰 축복인 것입니다.
둘째는 생활이 변했습니다. 어떻게 변했습 니까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겁장이 야곱이 변화되고 나서 담대한 용기르리 갖게 되었습니다. 변화되기 전에는 인위적으로 살던 야곱이 변화되고 나서 신앙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 삶을 주시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는 교회나와도 여전히 잘못된 사람이 많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예수 믿으려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전혀 변화의 삶을 살려고 하지 않고, 새롭 게 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적당주의로 예수믿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빨리 변화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시련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축복받고 변화되는 과정을 거치면 다된 줄로 생각 하빈다. "이제 고칠 것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야곱의 변화의 과정을 살펴 보십시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강권적인 변화의 생활을 통해서 새 삶을 누리므로 야곱의 생애가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참된 변화를 체험하고나서 야곱은 전혀 예기치 못한 시련과 고난에 봉 착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자기의 외동딸이 가나안 여인들은 무슨 옷을 입었거나 구경하러 갔다가 세겜성에서 강간을 당했습니다. 큰 시련입니다. 게다가 열 한번째 아들인 요셉, 똑똑하고 기대되었던 아들이 실종된 것입니다. 피묻은 옷만 형들이 가지고 왔습니다.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야곱은 뼛속이 저리는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 시련은 우연이요, 인간 의 잘못으로 왔다고 하겠지만 신앙적인 안목으로 보면 이 모든 시련과 고난 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새사람이 되고 축복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야곱에게 이런 시련과 고통을 주 셨습니까 이 시련과 고통은 우리의 삶에 유익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 시련과 고통이 올 때에 그것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야곱은 시련을 당하고나서 그의 생활에 세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로, 자식에게 연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자식에게 연연했습니다. 창세기 43장 14절에 보면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남을 축복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과거에는 축복만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에서의 축복도 자기가 가로챘습니다. 라반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축복은 하나도 안했습니다. 그러나 시련을 통해서 축복하며 살아야 되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창세기 46장1절에 보면 이십여 년 만에 아들 요셉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야곱이 아들 요셉이 보낸 애굽의 수레를 타고서 애굽으로 내려가 다 브엘세바에 도착했으 마때 더 이상 가지않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서두르지 않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을 보면 축복 받고 새 사람이 되었지만, 성숙치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하나님은 시련을 주 시는 것입니다. 이런 시련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참아 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것에게는 관심이 없으실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게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여러 사람 중 특별히 예수 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을 살피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축복도 주셔서 믿음을 성장시키고, 잘못된 것도 변화시켜 서 새롭게 하시고 때로는 아프지만 시련을 주어서 여러분의 삶을 성숙케 하 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감사하고 중심으로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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