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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신실한 약속 (마6:19-33)

본문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염려의 시대, 불안의 시대라고도 말합니다. 지난 1년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염려와 근심 속에서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1995년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작년의 묵은 염려 와 근심을 떨쳐버리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염려는 우리에게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아니 하냐"(마 6:25절) 또한 27절에서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 도 없습니다. 염려는 우리 생활에 있어 무익하고 유해할 뿐입니다. 이 '염려'라는 말은 '메린나워'또는 '메린에어'라는 말인데, 이 말 의 뜻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짐승이 다른 짐승의 목을 꽉 물어 질식시켜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염려는 우리를 상하게 하 고 온갖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염려와 근 심으로 인한 신경성 질병들이 얼마나 산재해 있습니까 불치병이라 불리우는 문둥병도 60%가 신경성이 그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 왔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염려와 근심이 많으면 신경이 예민해 지고 온갖 질병의 원인이 되어 고통과 괴로움에 직면하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생애에 두가지 강도에게 유린을 당하는데 첫 째는 어제에 대한 후회요,
둘째는 내일에 대한 염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 날에 내가 잘못하고 실수한 것 때문에 후회만 하면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뒤엣 것을 잊어 버 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십시오. 또한 아직 닥쳐오지 않은 내일 일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염려와 근심은 사단 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염려와 근심을 통해서 우리를 공격하고 쓰러뜨리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며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며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 곧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죠지 트루엣이라는 사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 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 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것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생활이며 축복받는 생활인가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염려하는 것이 얼마나 백해무익한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신 후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전에 주님은 마태복음 5장 18절에서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심 으로써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반드시 이루실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구하라"라는 말은 성도의 삶에서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하라"라는 말은 성도의 삶에서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하라"라는 말은 헬라 원 문의 현대시상인 '제텐'이라는 말로 '구하기를 계속하라','끊임없이 그 일에 열중하라'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최우선 순위에 두어 열중하고 매달 려야 할 것의
첫째는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며
둘째는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십시오. "그의 나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내 생활에 실현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서 판단하고 행동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는 육신에 속해 있지만 우리는 이미 구속받은 하늘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통치권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깊이 임 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라는 말은 '캐도스 캐논'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캐논' 이라는 말은 '자','척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 이 우리의 삶의 척도가 되어 하나님의 잣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 동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인가'에 대해 먼저 말씀의 잣대로 재어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안에 산다는 말은 성령님 안에서 산다는 것 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사는 삶은 의와 평강과 희락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새해에는 하늘 나라의 통치권 안에, 즉 성령님 안에서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했습니다. "그의 의"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5장 10-11절에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 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의'라는 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대속의 '의'이십니다. 그리스도 가 있기에 우리가 대속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무엘하 22장 21절은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주시며 내 손 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함을 받은 성도로서 마땅히 거룩하게 살 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살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기 전에 구속함을 받기 전에 행하던 죄된 모습을 버리 고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주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지 성령이 깨닫게 해주십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십일조 헌금할 마음이 생기고, 성수주일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땅히 주 안에서 살아가야 할 삶의 태도를 깨닫게 될뿐만 아니라 주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그러한 삶의 자세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는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채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 기에서 "더하시리라"는 말은 "프로스 티뎀"이라는 말로 '프로스'라는 전치사와 '티뎀'이라는 동사가 합성된 말입니다. '프로스'라는 말은 '-을 위하여' '-을 향하여','-쪽에'라는 뜻이며 '티뎀' 은 '진열해 놓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사방에 많은 축복을 진열해 놓으시고 축복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신 다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를 위 하여 이처럼 온갖 축복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내 주 위에 모든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히 쌓여 진열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환경, 곧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리에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죤 프렌츠라는 사람은 스페인 군대에 쫓겨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때 "빵 하나 를 가지고 빨리 도망하여 윗마을에 대문이 열려있는 집으로 가라 "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죤 프렌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갔고 그 집 주인은 그를 골방에 숨겨 주었습니다. 뒤 쫓아온 스페인 군사는 죤 프렌츠를 잡기위해 마을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군대를 피해 숨어 있던 죤 프렌츠는 빵 하나만 목고 배고파하던 중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만 되면 닭 한마리가 소리도 없이 골방에 들어와 달걀 하나씩을 낳고는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주간을 지내고 십오일째 되는 날에는 닭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 배가 고파 밖으로 나온 죤 프렌츠는 자기를 찾던 스페인 군대가 이미 다른 지방으로 다 철수한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깊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생활과 필요를 책임지시고 세밀하 게 간섭하여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는데 무엇을 염려하고 걱정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의 의에 근거해서 구원받은 사람, 하나님의 통치 안에 살면서 말씀에 기초하여 사는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방에 진열해 놓으신 축복을 쏟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포기할 수 있느냐 성경


본문:눅 18:28-30 이 세상에서 주님을 따르며 살아가는 신자는 여러가지의 용기가 필요 하다.
(1) 죄를 끊어 버리는 용기와
(2) 주를 위해 바치는 용기와
(3) 원수 마귀를 물리치는 용기와
(4) 주님을 위해 바로 그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훈련은 먼저 버리는 연단이다.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주시기 전에 포기하고 버리는 훈련을 먼저 시키심을 알 수가 있다. 이 훈련 (Training Course)에 합격하지 못하면 큰 그릇이 될 수 없고 큰 축복 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 것(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릴 수 있을 때 와 일시적인 세상의 기쁨을 버릴 수 있을때 하나님은 영원한 복락과 기쁨을 주시는 것이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집과 아내, 형제, 부모,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한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에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을 받으려면 세속적인 모든 것들을 비워야만 한다. 세상물질에 마음을 빼앗기면 정신적으로나 영 적으로 약해지고 근심걱정이 많아져 하나님의 큰 일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길을 가다가도 잘못 들어섰다 싶으면 고집부리지 말고 즉시 마음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나가야 되는 것이다. 특히 신앙생활에서는 무엇보다도 버리는 연습을 잘해야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를 뽑으실 때 부모와 형제,재물과 직업 이도 버리는 사람을 택하셨음을 볼 수가 있다.비록 불학무식한 어부일 지라도 베드로 같은 사람은 주님의 수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1) 누가복음 12장에 어떤 사람이 재산 상속문제로 형제간 다투다가 예수님을 찾아와 재산을 공평히 나누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을 때 예수님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재물을 나누는 자로 세 웠느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으며,
(2) 눅 14:26에는 예수께서 무릇 내게 오는 자는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자매 및 자기자신(목숨)까지 도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3)누가복음 18장 18절에 이하에 보면 공부를 많이한 어떤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의 문제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 으라"하시니 "그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고 기록되었다. 결국에 그사람(부자)은 이것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진정한 승리와 문제해결 그리고 참 행복을 경쟁사회속(아귀다툼)에서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마음속에 탐욕을 얼마나 빨리 버리 느냐에 따라서 비롯됨을 기억해야만 한다. 요즈음 세상에서 유행될 수 있는 단어들이라면 "경쟁 투쟁전쟁"이란 말들이 어울릴 것이다. 소유욕이 극에 달한 시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 사는 세상, 이런 상황에서 세상은 오염되어 가는 것이다. 그속에서 그리스도인(charistian) 의 모습은 가시밭의 백합화와도 같이 피어나야 하는데 주님의 말씀과 같이 자신까지도 비워 버릴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1. 아브라함(Abraham)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 가 그가 믿음의 조상된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 정든 고향과 친척 그리고 아비집을 떠나는 훈련과정(Training Course) 을 거쳐서
(2) 하갈과 이스마엘의 얽힌 인정과 욕정 그리고 애정을 버리고
(3) 더더욱 중요한 것은 고령에 얻은 외아들 이삭도 용 감히 포기하고 기꺼이 드릴 수 있다는데서 여호와께로부터 인정을 받 은 것이다.
2.모세는 어떤 것을 포기하였는가(여호와앞에서 신을 벗고 맨발로 선 모세의 포기).
(1) 그는 버리기 어려운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 통 받는 노예속에 뛰어들어 종 노릇하기를 택하였으며
(2)부귀와 영화 를 분토와 같이 꿈도 포기하였을 때 영원히 빛나는 역사속의 인물이 되었다. 요즈음 모세의 무덤을 발견하였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는데 그것이 지금와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와 백성들 앞에 서 보여준 자신의 모습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다.
3. 요셉(Joseph)은 어떠했는가
(1)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게 되어 멀리 애굽으로 인간 상품으로 팔 려가는 종이 신세가 되어 보디발의 집에 머슴으로 젊은 날의 시절들을 보내왔다. 그의 생애를 요약한다면 1) 타향살이 2) 감옥살이 3) 종살 이라고 하리만큼 구겨진 삶으로 젊은 시절을 지내왔다.
(2) 결국 그런 가운데서도 육체의 정욕의 유혹을 거절함으로써 애굽 의 총리대신이 되어 왕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천하를 호령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사도 바울(Paul)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라. 내가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안에서 발견되려함이니."(빌 3:7-8)라고 하였고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 하였다. 사도 바울 자신도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음을 볼 수가 있다. 주님 안에서 체험한 신앙의 철학은 확 고하였으며 순교의 열매로까지 연결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포기는 어떤 것이었나 하늘의 영광과 권세를 모두 버리시고 종의 형체로 오셨다. 그것은 가 장 비참한 모습으로 마굿간에서 탄생하시었다. 육체적으로 인간과 같 은 모습으로 오시기 위하심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인간의 모 습으로 마굿간에서 탄생하시었다. 육체적으로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오시기 위하심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인간의 모습으로 오심((Incamation)의 참의미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임마누엘로서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의 본질을 나타내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적으로 우리와 같은 분이었으니 그보다 더 자신의 위치를 낮추시어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이다.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 주심으로써 그분의 가슴 깊은 곳에 내재 하시는 인간애와 희생이 참 모습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과 생명까지도 버리셨던 예수님. 사도 바울 (Paul)은 이런 의미에서 권세가 있어도 쓰지를 말고 있어 도 없는자 같이 하라고 훈계하고 있다. = 결론 = 교회도 평화롭고 부흥되고 계속하여 발전하려면 각 사람 모두가 소유 욕을 버릴줄 알아야만 한다. 물욕과 탐심 그리고 명예욕과 권세욕도 버리고 주님과 같이 종의 자세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한다. 만일 목사는 목사대로 내가 제일이니 내 말에 절대 맹종하며 나를 섬 겨라 한다든지 '내가 누군데.'하는 '신 여기고 성의 성주'형태가되 면 안될 것이다. 또한 전도사님들도 "나도 주의 종인데 나를 이렇게 무시할 수가 있는가라는 내심 불평과 불만을 품고 있다든지 혹이나 장론미들은 "우리가 목사도 전도사도 맘 먹는 대로 할 수가 있다 나만 무시해 봐라 그냥 안놔둔다"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존경과 대접을 받기는 이미 틀린 것이다. 만일 그런 교역자와 교인들이 모인 곳(교회)에는 분쟁과 시기.질투만 있을 뿐이요 그런교회는 부흥이 되거나 축복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은 현재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삶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잘 것없는 권세나 명예를 가지고 자랑할 것 없다 고 사도 바울(Paul)은 말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잘났으며 바치면 얼마나 바치며 의로우면 얼 마나 의로운가예수님 앞에서 겸손하게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때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부요한 자가 되는 것이며 참으로 높아지고 존경 받는 자기 되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발자취를 따라 간다고 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주님을 위하여 사는 모습 성경


본문:롬 14:1-23 8절에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 이렇게 생사가 주 님 앞에 오직 한가지 목적 뿐이다. 그런고로 형제나 이웃이나 누구에게나 조그마한 문제를 가지고 비판하거나 흉보는 것은 우스운 일인 것이다. 결국 하나님 앞에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신자들은 각각 자기 맡은 바 본 문이 있고 달란트가 있고 이웃이나 형제자매를 업신 여김 아무 조건이 주 어지지 않았다. 음식에 대하여 좋아하는 음식이 있고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많이 먹는 사람이 있고 적게 먹는 사람이 있다. 이를 가지고 서로 비평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인간과 삶과 죽음도 다 주께 속한 것이다. 신자들이 고백할 것은 오로지 여호와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사 49:18).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모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같은 신앙 고백을 한 신자들 끼리 그리고 형제들끼리 해를 끼치는 일은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형제자매 앞에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일부러 놓 아서는 결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성도의 교제란 과연 무엇인가피차 식사대접하기를 먼저하는 것이 신자들 의 도리이다. 음식에 대하여 남에게 인색한 사람은 결코 사랑을 나눌 수 없다. 음식을 서로 대접하고 나누는 것은 곧 사랑의 교제인 것이다. 또한번 구제척으로 교훈한다. 고기를 먹든지 술을 마신다든지 하는 일을 가지고 남을, 이웃을, 형제를 넘어지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은 주님을 위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님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인 것이다.
그런데 신 자들은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 앞에서 덕을 세우는 일 외에 즉 신앙의 비본 질적인 것에 매여 종 노릇하며 주님에게도 이웃에게도 덕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에게 덕을 세우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게 된다. 신자들은 신념을 굳게 가지고 자기신념대로 주를 섬기라고 하였다. 자기 믿음이나 자기 신념에 대하여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다. 자기 신념에 대하여 정죄하면 결코 복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주님을 위하여 이웃과 형 제를 사랑하라는 강력한 교훈의 말씀이다. 주님을 만납시다 성경


본문:눅 24:13-35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예수님을 따르던 두 제자가 실망 하고 예루살렘에서 25리쯤 되는 엠마오로 가던 도중에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 기록되 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무력 한 사람에게 불과했다고 생각해서 실망하고 돌아가던 중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를 만납시다. 세상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내 길이 형통케 되고, 평탄한 길로 인도될 수도 있 고, 영원한 구렁텅이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에 처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누구를 제일 먼저 만납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부모님입니다. 여러분의 아버님이 김씨냐 박씨냐에 따라 모든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 또한 달라지는 것입니다. 학교에 갈때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또한 공부를 마 치고 이제는 청년이 되어서 결혼 적령기가 되면 배필을 만나게 되는데, 그 대상이 누 구냐에 따라서 행복해 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어느 교회 에 가서 어떤 목사님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우리 신앙의 문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목사님과 사모님이 있지만 어느 교회 어느 목사님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나의 영적 성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납시다'라는 제목은 평범하고 교회에서 많이 들었던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믿음의 대상은 에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가 교회로 찾아왔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석가모니나 공자나 그런 유명한 사람을 만나 기에 앞서서 내 인생을 새로운 인생으로 바꿔주는 역사적인 계기가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실망으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모습을 볼 때에 너나 여러분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불안하고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말할 수 없는 그 실망 속에서 누구를 만납니까 사람을 만나서 해결할 문제도 있지만 잘못 만나게 되면 결과는 오히려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까 주님에 대해서 한번 더 되새김질 하는 의미에서 생각해 봅시다.
먼저 주님의 이름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주님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 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였듯이 구원자로서의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님을 만난 자에게는 팔자를 고치는 놀라운 구원자로서의 예수님을 만 나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님을 만난 자에게는 팔자를 고치는 놀라운 역사가 일 어납니다. 저는 스무살의 나이에 부상을 당하여 불구가 되었지만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과거에 불구라는 의식이 다 사라져 버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불구로 만들어서라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고 오늘날 주의 종으로 삼으셨다는데 오늘날 주의 종으로 삼으셨다는데 감사드릴 뿐입니다. 절망 속에 헤매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 을 만나게 되어 지금 이렇게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는 것은 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을 만난 결과가 현실에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여러분께 솔직히 고백합니다. 만약 이 시대에 이런 불구의 몸이 절망 속에서 술이나 먹고 담배나 피우고 불안 과 초조 속에서 내 인생을 보냈다고 하면 나는 벌써 이 세상을 떠났을 사람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나, 누가 저 사람을 쓸 것인가 할 정도로 보잘것 없는 인생이지만 그러나 사람이 보는 것과는 상황이 정반대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우리가 젊었을 때 제일먼저 만나야 될 것은 배필입니다. 하지만 저의 배필이 되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누가 저런 사람과 결혼할 것인가 하는 비관적인 상태였고,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을 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의 문제는 주님이 하실 문제이지 내 자신이, 사람이 해 야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겨론을 얻게 되고 주님께 다 맡기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좋은 배필을 허락해 주셔서 생각지도 않던 상대를 만나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누가를 만나느냐 우리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배필을 허락해 주셔야지, 사람의 방법으 로 배필을 만나게 되면 결혼생활이 길지 못한, 불행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직장문제가 나옵니다. 어떤 직장에서 나같은 사람을 채용하겠습니까 내가 만약 사장이라고 해도 채용하지 않을 것입니다.훨씬 더 건강하고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는데 왜 나같은 불구자를 채용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주님을 만난 사람으로서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보건사회부에 취직할 기회가 저에게 왔습니다. 자유당 시절 많은 청탁들이 들어와서 많은 일류대학 출신들의 경쟁 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배후에 누가 있느냐가 따라서 결정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세상적인 배경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의 뒤에 계시기에 전혀 불안하거나 포기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우선 30명을 임시직원으로 뽑았는데 그 안에는 들어갔습니다. 3개월간 임시 근무를 하면서 그 근무성적에 따라서 반을 잘라 15명은 채용되고 15명 은 탈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보건사회부에서 임시 근무를 한 지3개월이 다 되어 갔습니다. 배경도 없고 출신학교도 그리 명문대가 아닌지라 사람의 생각으로는 채용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담당 과장이 하루는 저에게 국회의원 명함이라도 하나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는 국회의원도 없고 안되도 좋으니까 원칙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작성 한 명단에는 저의 이름이 빠졌습니다. 그 대신에 15명을 적은 다음에 맺 밑 줄에 '이 중한 사람이 공무원 직을 포기하면 하갑용을 대신 채용한다'라는 단서조항을 붙여서 결재를 올리니 국장 차관 장관의 결재가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결재가 난 후에 그 중 두 사람이 그 직을 포기했습니다.그들은 말단 공무원에 만족하지 않고 주 시나 사무관을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채용되어 공무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정식 공무원이 되고 보니 주일 성수문제가 제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일정 기간까지는 일요일에도 나와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는 담당과 정에게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저는 공무원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주일은 어길 수 없습니다."이렇게 말합니다. 과장님이 말하기를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게 공무 원이 되었는데 몇 달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것쯤이야 목사님이 용서하지 않겠냐"라 고 하며 직장을 포기하지 말고 근무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단단히 만난 저로서는 직장 때문에 주일을 어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직장은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기로, 주일을 지키기로 그 자리에서 맹세를 하고 과장님께 인사를 한 뒤에 "직장을 포기합니다."하고서는 돌아왔습니다. "주님을 만난 자의 역사가, 우리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는데, 그렇게 주님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직장을 포기하는 나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왔 습니다. 그 이튿날 과장님이 우리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직장에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나가보니 과장님 말씀이 "당신의 말을 듣고 나서 집에 가서 잠을 자려는데 도저히 잠 이 오지 않고 당신 얼굴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직장을 포기하더라도 나는 주님을 포 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던 당신의 말씀이 자꾸 귀에 쟁쟁울렸습니다. 잠도 한숨 이루지못한 채 아침에 되어 식사도 하지 않고 출근하여 장관실에 올라가서 보건사회 부장관님께 어제의 일을 보고 드리니 장관께서는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직장을 포기하는 크리스찬이 있다면 주일날에 그 사람에게는 특별히 휴무를 해서라도 하루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심히 근무하도록 하 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한 장관의 허락을 맡고 당신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라는 것입니다. 과장님과 장관께서는 두 분다 예수님을 모르는 불신자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역사하시까 불 신자들의 마음도 움직이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아닙니까 누가 그렇게 역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을 배경으로 한 자에게는 어느 누구을 배경으로 한 자에게는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도록 하나님이 배후에 역사하십니다.이렇게 해서 약 20년 동안 공직생활 을 하면서, 나의 인생이 육십을 넘었을 때 마지막으로 할 일이 없겠는가 해서,낮에는 공직생활을, 밤에는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눈이 하나 밖에 없어서 책을 보려면 눈이 아파서 한 시간 이상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이상하게도 눈이 편안하고 또렷이 보입니다. 두 눈 가진 사람보다 눈이 더 건강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일 어난 역사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만나면 건강해집니다. 우리는 절망할 때, 고독 할 때, 어려움을 당할 때 일수록 주님을 떠나지 말고, 주님을 만나게 되면 주님께서, 우리 형편을 아시고 모든 문제를 처리해 주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주 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분명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구인 제가 노후에 다른 사람에게 멸시천대를 받지 않도 록 노후대책을 지혜롭게 해주셔서 지금 현재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죽을 때까지 연금도 계속 나오고, 자녀들 학자금도 대학까지 지급됩니다. 비록 불구의 몸인지라 비참해 보일지는 몰라도 모든 교통수단이 무료라서 저는 자가 용이 필요없습니다. 모든 차들이 다 내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말입니다. 저는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로 저는 절망하거나 내 인생을 포기하거나 이로 인해 한탄하거나 불안 속에 살았던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감사할 뿐입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역사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하나님이 나 와 함께 하시고, 우리 주님이 늘 인도해 주시니까 이 세상 누구보다도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을 만난 덕택인줄로 믿습니다. 저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자꾸 눈물이 납니다. 우리 주님이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하면 오늘의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주님을 만나고 보니 이렇게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부족함이 없게 영육간에 채워주십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만나서, 이 땅위에서도 잘 살고 영적으 로도 잘 사는, 즉 영육간에 잘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 립니다. 우리는 허송세월 보내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이 없다고 한다 면, 우리 인생이 금생뿐이라면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헛된 이야기입니까 우리의 믿음 이 얼마나 헛수고입니까 부활이 있기에, 승리하신 우리 주님이 살아 계시기에 우리 믿음이 결단코 헛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모조리 학살하려 했던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에 변하여 신약시대의 대표적인 선교사로서 세계 만방에 다니면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주의 종이 아들과 사는 과부에게 채주가 찾아와서 남편이 진 빚을 갚지 못하 면 두아들을 자기 종으로 삼겠다고 했을 때, 그 여인은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엘리 사는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그 여인은 주님을 만나러 간 것입니다. 찾아가서 이런 사 정을 말했스빈다. 엘리사가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여인은 기름 한병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집에 있는 모든 빈 그릇을 많이 빌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한 병 뿐인 기름을 그 그릇들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한병밖에 없는 기름을 빈그릇에 부어 보았자 한 병밖에 나오지 않을 걷인데, 주님을 만난 자에게 일 어나는 주님의 역사는 초자연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상식을 초월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을 했더니 결과는 빈그릇에 부을 때마다 기름이 그릇에 가득차고 빈 그릇이 떨어지자 그 기름도 그쳤다는 것입니다. 여인이 다시 엘리사에게 찾아가서 " 당신 말대로 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라고 했더니, 그러면 그것을 가져가서 팔 아 가지고 빚을 갚고 그 나머지로 생활비를 하라고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는 것을 그 여인이 체험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체험을 하십니까 여러분도 초자연적인 역사,주님을 만나는 현실 속에 서 불가능이 없는 그러한 삶을 사시는 성도가 되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만납시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그곳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을 만나 여러분의 길을 형통케 하시고, 여러분이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주님을만난 자의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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