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잃지 않는 비결 (마6:25-34)
본문
미국의 유명한 록펠러는 사람이 얼마만큼 돈을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겠는 가라는 질문에 지금보다 조금다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행복은 물질의 많은 소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이 많다고 행복합니까 세상적으로 부유하다고 행복합니까 그 렇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들은 전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는 산상보훈의 말씀입니다. 예수게서 무리를 보 시고 산에서 제자들과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이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중 오늘 본 문 6장은 천국시민의 생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특히 25절에서 34절은 물질 때문에 염려와 근심에 빠져서는 안될 것을 강조합니다. 본문을 보면 "염려하지 말라"고 세번이나 강조합니다. 이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가난 때문에, 이성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우리의 인생에 고통과 괴로움을 줍니다. 염려함으로 불신앙에 빠지게 되고, 염려함으로 육신의 병마와 심령의 병마 에 걸리게 됩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염려하지 말란'는 말씀 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면에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삶을 바른 방향으로 재조정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른 자세를 가지고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염려함으로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겠느냐"이 말씀은 우리가 염려 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행복은 소유에 있는것 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복의 조건을 주셨 지만 염려함으로, 근심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그 행복의 조건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이에 오늘 본문은 행복을 잃지않는 비결을 다음 세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생각하여 보라 본문 28절에 보면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 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또 26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 니하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니나 너희는 이 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염려대신에 생각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서 기자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바람이 불 면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작은 문제에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바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생각하여 보라"는 말은 헬라원문에 "카타만다노"라는 말입니다. 이 '카나"라는 말은 철저하게, '만다노'라는 말은 배운다는 말입니다. 즉 이 대자연 속에서 자라는 백합화의 성장과정을 철저하게 배우고, 하늘을 날 아가는 새를 통해 삶의 원칙을 철저하게 생각하고 배워보라는 말입니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사업하고 실패하고, 아무 생각없이 도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인생의 삶을 대자연 속에 비쳐보며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칼타고의 한니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애꾸눈이었습니다. 어느날 화가를 불러 초상화를 그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화가는 열심히 초상 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한니발은 자신을 한눈없는 병신으로 그려 놓았다 며 그를 죽여버렸습니다. 며칠 후 다른 화가를 불러 다시 초상화를 그리라 고 하였습니다. 며칠 전의 죽은 화가 얘기를 들은 이 화가는 아주 온전한 두눈을 가진 한니발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한니발은 "내가 눈이 하나인데 어찌 두눈을 그렸느냐"며 그도 죽여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안 다른 화가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그리면 살아날 수 있을까 이 생각 저생각 하다 가 화가는 한니발의 옆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러자 한니발은 애꾸눈이 가려 진 자신의 옆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보고 아주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인생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업이 안되고, 가정적으로 불랭하고, 실패와 시련으로 인생의 앞길이 모두 막혀 있는것만 같아도 행복이라는 것은 어느 관점에서 생각하 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본문 30절을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자들아"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부정적 이고 세속적인 모든 세상의 생각들은 떨쳐버리고,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며 신령한 생각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 지금 인생의 가장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썰물 후에는 반드시 밀물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긍정적 이고 희망적인 생각으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현재의 고통과 시련을 참고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2.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이고 신령하고 희망적이라면 이미 신앙중심으로 인생 을 해결할 마음이 갖추어진 상태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 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모든 보화와 이 땅의 모 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먼저 그의 나라 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 유명한 앤드류 보나라는 사람은 세가지 중요한 인생의 철학을 갖고 있 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드리기 전엔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둘째는 무릎을 꿇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셋째는 성경을 읽기 전에는 어떠한 책도 읽지 않는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고, 먼저 기도하고, 먼저 성경을 읽고 먼저 주님과 더 불어 교통하는 이런 생활이 바로 우리의 삶 가운데 생각이 바뀌어질 때찾아 오는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희망적이고 경건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 를 위해서 인생의 삶을 살 때 우리가 그렇게도 고민하고 염려했던 문제거리 들은 모두 해결될 것입니다. 현재 아무리 신앙적으로 살아보려고 하지만 안되는 분이 있습니까 재산을 잃어버리고 , 행복도 잃어버리고, 남편도, 자식도 잃어버리고, 그 잃어버린 것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을 당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그저 지켜보 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신앙적으로 살고자 하는 자녀들을 위로하시고 생각 지 못한 크고 비밀한 것으로 우리의 근심과 염려거리들을 반드시 해결해 주 실 것입니다.
3. 자족하라. 본문 34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일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 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이란 것은 악을 말합니다. 이는 한 날을 지내면서 그 날의 고로움과 환난을 당할 때 그 하루의 삶에 만족하고 자족의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러면 누구에게 그런 고통을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바로 생각을 바 꾼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밀물 때가 있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나에 게 다시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의 인생의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저절로 먼저 기도하고, 먼저 말씀을 보고 그 날의 생활에 충실한 자족감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의 어떤 부인이 신문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크게 냈습니다. "급구:남편을 염가로 양돌합니다. 남편과 함께 남편의 사냥도구와 골 프채,개까지 끼워줍니다."그러자 미국 전역에서 불꽃튀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중 "남편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십시오."라는 편지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작은 일에 조차 불평하고 염려합니까 지금 살아있 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말씀하십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바꾸십시오. 하나님 중심으로 자족한 생활을 살면서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옛날 선교사 한분이 어느 시골에서 할머니 한분을 태우고 가는데 할머니가 머리에 잔뜩 짐을 지고 내려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그래서 왜 짐을 지고 가 느냐고 묻자 그 할머니께서는 타고 가는것도 미안한데 짐까지 어떻게 내려 놓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도 교인들 중에 이 할머니와 같이 염려 근심 보따리를 지고 가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내일 일이며 장래 일이며 모두 주 님께 맡기시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행복 찾기 성경
본문:마 5:3-12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바란다. 어떻게 해서든 저마다의 행복을 누리고 싶어한다. 어떤 이는 재물을 얻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어떤 이는 권력을 얻는데서 행복을 찾는다. 어떤이들은 세상 향락을 즐기는 데서 찾는다. 어떤 이는 자녀들에게서 혹은 아내나 남편, 연인에게서 행복을 찾는다. 또한 어떤 이들은 종교를 통해서 행복을 얻고자 한다. 즉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 의 삶에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복찾기와 방식은 옳은 것일까 이 방식을 탓할 수는 없지만 옳다 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종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교란 마루 宗과 가르칠 敎가 합해진 말이다.즉, 종교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가장 높고 깊고 마지막이 되는 가르침이 종교라는 것이다. 인생은 배우면서 사는 것이다. 학교라는 학습의 장에서 뿐만 아니라 생활 의 모든 자리가 배움의 터전이다. 가장,이웃,친지,학교,직장등 여러 곳에서 배우며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의 행복 찾기도 배워야 한다. 인생의 참 행복 의 기준을 잘 배워야 한다. 참된 종교는 바로 그것을 가르친다. 인생의 참 된 행복을 누리며 사는 법을 가르친다. 예수님이 가르친 것도 바로 그건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가장 사람답 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가를 가르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 딸이다. 이 사실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아라"라고 가르친 것이다.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 녀의 행복이다. 그래서 그 길을 가르치신다.이는 산상수훈 중에 팔복의 말씀이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 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 가 배부를 것임이요','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 음을 받을 것임이니라','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가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 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다른가 시한부 종말을 외쳐서 세상을 미혹하고,영생교 사건, 탁명 환소장 살해사건,광신도 이모의 조카 살인사건 등 광신적인 종교인들의 행 태는 그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는 너무 다르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외친다. "회개하라! 인생들이 지금처럼 살면 다 죽는다! 빨리 돌아서라'하시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이 나이가 들어 육신이 죽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 육신이 죽는 것만을 이야 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 그게 곧 죽는 것이라는 뜻이다. 육신과 함께 영혼이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 그리가지마라. 그리가면 죽는다. 살길은 여기 있다. 참된 복을 누리며 영원히 사는 길은 여기 있다고 가 르치는 것이다.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살고 싶으면 날 따라 오라 날 따라 살라 내가 가르치는데로 살면 나처럼 영원히 산다. 내가 곧 그 길이다'라 고 가르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영원한 행복과 생명을 누리길 원하신다. 이것을 허락하시 기 위해서 큰 사랑을 베푸셨다. 그 사랑은 생명을 다한 희생의 발을 씻기는 섬기는 사랑이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은 이렇듯 나눔과 섬김에 있다고 가르 치시고 사셨다. 우리가 참된 행복찾기에 나섰다면 이 진리를 늘 명심해야 한다. 사랑을 나 누면 사랑은 나눈만큼 배가 된다.남을 더 많이 섬길수록 더 존경이 되어 돌 아온다. 중요한 것은 서로 먼저 섬기고 나누는 사랑의 실천이다. 이것은 종 교의 본질임을 안다면 인간됨돠 하나님의 자녀됨을 파괴하는 제 정신이 아 닌 신앙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신앙이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을 회 복하는 일이 이 시대에 시급하다.
1. 생각하여 보라 본문 28절에 보면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 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또 26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 니하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니나 너희는 이 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염려대신에 생각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서 기자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바람이 불 면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작은 문제에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바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생각하여 보라"는 말은 헬라원문에 "카타만다노"라는 말입니다. 이 '카나"라는 말은 철저하게, '만다노'라는 말은 배운다는 말입니다. 즉 이 대자연 속에서 자라는 백합화의 성장과정을 철저하게 배우고, 하늘을 날 아가는 새를 통해 삶의 원칙을 철저하게 생각하고 배워보라는 말입니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사업하고 실패하고, 아무 생각없이 도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인생의 삶을 대자연 속에 비쳐보며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칼타고의 한니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애꾸눈이었습니다. 어느날 화가를 불러 초상화를 그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화가는 열심히 초상 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한니발은 자신을 한눈없는 병신으로 그려 놓았다 며 그를 죽여버렸습니다. 며칠 후 다른 화가를 불러 다시 초상화를 그리라 고 하였습니다. 며칠 전의 죽은 화가 얘기를 들은 이 화가는 아주 온전한 두눈을 가진 한니발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한니발은 "내가 눈이 하나인데 어찌 두눈을 그렸느냐"며 그도 죽여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안 다른 화가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그리면 살아날 수 있을까 이 생각 저생각 하다 가 화가는 한니발의 옆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러자 한니발은 애꾸눈이 가려 진 자신의 옆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보고 아주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인생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업이 안되고, 가정적으로 불랭하고, 실패와 시련으로 인생의 앞길이 모두 막혀 있는것만 같아도 행복이라는 것은 어느 관점에서 생각하 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본문 30절을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자들아"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부정적 이고 세속적인 모든 세상의 생각들은 떨쳐버리고,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며 신령한 생각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 지금 인생의 가장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썰물 후에는 반드시 밀물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긍정적 이고 희망적인 생각으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현재의 고통과 시련을 참고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2.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이고 신령하고 희망적이라면 이미 신앙중심으로 인생 을 해결할 마음이 갖추어진 상태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 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모든 보화와 이 땅의 모 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먼저 그의 나라 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 유명한 앤드류 보나라는 사람은 세가지 중요한 인생의 철학을 갖고 있 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드리기 전엔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둘째는 무릎을 꿇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셋째는 성경을 읽기 전에는 어떠한 책도 읽지 않는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고, 먼저 기도하고, 먼저 성경을 읽고 먼저 주님과 더 불어 교통하는 이런 생활이 바로 우리의 삶 가운데 생각이 바뀌어질 때찾아 오는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희망적이고 경건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 를 위해서 인생의 삶을 살 때 우리가 그렇게도 고민하고 염려했던 문제거리 들은 모두 해결될 것입니다. 현재 아무리 신앙적으로 살아보려고 하지만 안되는 분이 있습니까 재산을 잃어버리고 , 행복도 잃어버리고, 남편도, 자식도 잃어버리고, 그 잃어버린 것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을 당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그저 지켜보 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신앙적으로 살고자 하는 자녀들을 위로하시고 생각 지 못한 크고 비밀한 것으로 우리의 근심과 염려거리들을 반드시 해결해 주 실 것입니다.
3. 자족하라. 본문 34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일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 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이란 것은 악을 말합니다. 이는 한 날을 지내면서 그 날의 고로움과 환난을 당할 때 그 하루의 삶에 만족하고 자족의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러면 누구에게 그런 고통을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바로 생각을 바 꾼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밀물 때가 있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나에 게 다시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의 인생의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저절로 먼저 기도하고, 먼저 말씀을 보고 그 날의 생활에 충실한 자족감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의 어떤 부인이 신문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크게 냈습니다. "급구:남편을 염가로 양돌합니다. 남편과 함께 남편의 사냥도구와 골 프채,개까지 끼워줍니다."그러자 미국 전역에서 불꽃튀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중 "남편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십시오."라는 편지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작은 일에 조차 불평하고 염려합니까 지금 살아있 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말씀하십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바꾸십시오. 하나님 중심으로 자족한 생활을 살면서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옛날 선교사 한분이 어느 시골에서 할머니 한분을 태우고 가는데 할머니가 머리에 잔뜩 짐을 지고 내려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그래서 왜 짐을 지고 가 느냐고 묻자 그 할머니께서는 타고 가는것도 미안한데 짐까지 어떻게 내려 놓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도 교인들 중에 이 할머니와 같이 염려 근심 보따리를 지고 가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내일 일이며 장래 일이며 모두 주 님께 맡기시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행복 찾기 성경
본문:마 5:3-12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바란다. 어떻게 해서든 저마다의 행복을 누리고 싶어한다. 어떤 이는 재물을 얻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어떤 이는 권력을 얻는데서 행복을 찾는다. 어떤이들은 세상 향락을 즐기는 데서 찾는다. 어떤 이는 자녀들에게서 혹은 아내나 남편, 연인에게서 행복을 찾는다. 또한 어떤 이들은 종교를 통해서 행복을 얻고자 한다. 즉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 의 삶에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복찾기와 방식은 옳은 것일까 이 방식을 탓할 수는 없지만 옳다 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종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교란 마루 宗과 가르칠 敎가 합해진 말이다.즉, 종교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가장 높고 깊고 마지막이 되는 가르침이 종교라는 것이다. 인생은 배우면서 사는 것이다. 학교라는 학습의 장에서 뿐만 아니라 생활 의 모든 자리가 배움의 터전이다. 가장,이웃,친지,학교,직장등 여러 곳에서 배우며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의 행복 찾기도 배워야 한다. 인생의 참 행복 의 기준을 잘 배워야 한다. 참된 종교는 바로 그것을 가르친다. 인생의 참 된 행복을 누리며 사는 법을 가르친다. 예수님이 가르친 것도 바로 그건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가장 사람답 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가를 가르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 딸이다. 이 사실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아라"라고 가르친 것이다.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 녀의 행복이다. 그래서 그 길을 가르치신다.이는 산상수훈 중에 팔복의 말씀이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 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 가 배부를 것임이요','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 음을 받을 것임이니라','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가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 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다른가 시한부 종말을 외쳐서 세상을 미혹하고,영생교 사건, 탁명 환소장 살해사건,광신도 이모의 조카 살인사건 등 광신적인 종교인들의 행 태는 그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는 너무 다르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외친다. "회개하라! 인생들이 지금처럼 살면 다 죽는다! 빨리 돌아서라'하시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이 나이가 들어 육신이 죽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 육신이 죽는 것만을 이야 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 그게 곧 죽는 것이라는 뜻이다. 육신과 함께 영혼이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 그리가지마라. 그리가면 죽는다. 살길은 여기 있다. 참된 복을 누리며 영원히 사는 길은 여기 있다고 가 르치는 것이다.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살고 싶으면 날 따라 오라 날 따라 살라 내가 가르치는데로 살면 나처럼 영원히 산다. 내가 곧 그 길이다'라 고 가르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영원한 행복과 생명을 누리길 원하신다. 이것을 허락하시 기 위해서 큰 사랑을 베푸셨다. 그 사랑은 생명을 다한 희생의 발을 씻기는 섬기는 사랑이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은 이렇듯 나눔과 섬김에 있다고 가르 치시고 사셨다. 우리가 참된 행복찾기에 나섰다면 이 진리를 늘 명심해야 한다. 사랑을 나 누면 사랑은 나눈만큼 배가 된다.남을 더 많이 섬길수록 더 존경이 되어 돌 아온다. 중요한 것은 서로 먼저 섬기고 나누는 사랑의 실천이다. 이것은 종 교의 본질임을 안다면 인간됨돠 하나님의 자녀됨을 파괴하는 제 정신이 아 닌 신앙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신앙이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을 회 복하는 일이 이 시대에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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