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에 합당한 삶 (마6:9-13)
본문
주기도문의 둘째 기원인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주기도문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기원입니다. 여기서 “나라”는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이며 하나님 니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의 핵심주제로 공관복음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소원하는 청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에 의하여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복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할 본래의 창조목적에 합당하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태어날때부터 범죄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는 전혀 반대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타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드림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상태 곧 하나님과 죄인이었던 인간 사이에서 죄의 담이 무너져(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화목의 상태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가리키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모든 자녀들이 “나라”(Kingdom)곧 하나님의 다스림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에게 임하기를 간구하는 자세야말로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과의 관계
그렇다면 하나님나라와 복음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1.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선포된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의 선포조차도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마3:2). 특히 예수님의 생애를 요약했다고 볼 수 있는 마태복음 4장 17절에서 25절까지의 내용은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주님이 이 땅에 강림하신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 시작은 “회개하라 천국(하나님 나라)이 가까왔느니라”(마4:17)였으며 각색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몰아내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신 모든 이적조차도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기 위한 수단이며 표시(Sign)에 불과했으며 오직 “하나님 나라 전파”가 주님의 삶의 목적이었음을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마4:23-25). 그래서 마태는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마태복음을 기록할 때 처음에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소개되고 후에는 제자들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 마태복음 기록을 끝맺고 있습니다(마28:19-21). 결국 복음전파의 최후 목적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받아들이는 자들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분의 통치인 하나님 나라가 소개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2.하나님 나라의 명칭과 그 의미 복음서와 바울 서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명칭은 다양합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성호를 사용하기를 꺼려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하늘나라”(천국)란 명칭과 “나라”란 명칭을 주로 사용했으나 마가, 누가 등 다른 복음서 기자는 대부분 “하나님 나라”의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의 나라” “그 나라” “하나님 나라”등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명칭이 가장 적절한 칭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는 “나라”의 명칭이 히브리어로 “말쿠스”인데 다스림, 주권, 통치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는 이 “말쿠스”가 나라, 통치, 주권 등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특히 시145:13에는 주의 나라와 주의 통치가 같은 의미로, 영원한 나라와 대대에 이르는 나라가 같은 의미로 사용(댓귀법)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에서는 하나님 나라는 곧 어떤 장소적인 개념으로보다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그 자체를 의미했습니다. 신약에서는 구약의 “말쿠스”개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바실레이아”(헬라어로“왕국”을 의미함)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말쿠스”개념과 신약의 “바실레이아”는 모두 “왕의 다스림”, “왕의 통치”, “왕의주권”을 의미하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다스림, 주권)는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그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삶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3.하나님 나라의 이중적 의미:현제성과 미래성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이나 통치 그 자체라는 개념에서 볼 때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현재 “들어갈” 수 있고 “소유”할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마12:28에 언급되는데 이미(already)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위엄있는 통치로서 이 땅에 임했다고 주님은 선언하셨습니다. 또한 어린아이 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의 통치(나라)를 받아들이는(receive)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며(막10:15) 하나님 나라를 소유(마6:33)할 수 있으며 그 나라의 복(행복)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마5:3-11). 또한 하나님 나라는 현재 임하는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누리는 모든 행복의 최상급(헬라어 “마카리오이”)이며 하나님의 영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평화를 의미합니다(롬14:17). 그러나 이 악한 세대 속에(갈1:4 ; 엡2:1-2) 하나님의 통치로 인한 하나님 나라(눅17:20-21, 16:16 ; 마21:31)는 완전한 모습의 통치로 나타나지 않고 믿음으로만 누릴 수 있는 미완성적인 모습일 뿐입니다(마13:의 천국비유)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이미 현재에 임했으나 미래의 유업(마25:34)이라고 소개하셨으며 동시에 미래에 완전히 누릴 축복의 영역(마8:11,21:31 ; 눅16;16)이며 미래의 하나님의 선물(눅12:3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는 이 세대에 현존하는(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영적 실재이며 그리스도의 재림 때 완성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여되는 미래의 유업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의 하나님 나라의 특성은 “하나님 나라는 이미(alredy) 임했으나 아직 아니(Not yet)”라는 사상으로 요약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지금까지 고찰한 하나님 나라의 의미 아래서 볼 때 주기도문의 두번째 기원인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청원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과 함께 소원하는 고백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능력 아래서 복음과 함께 이 땅에 임하기(Coming, 도착)위해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은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은총을 얻음으로써 더 이상 사단의 통치 아래서 고통과 불행에 얽매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능력과 은혜 아래서 행복과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미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의 다스림을 받고 사는 삶의 모습을 불신자들에게 보임으로써 그들도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오도록 하는 “복음에 합당한 삶” 곧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이 땅에 임했음을 증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기원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서의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인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뻐하며 이것이 자신의 삶의 목표요 전부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결국 이 기원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소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1)하나님 나라는 회개를 통해서 임하는 방향전환의 삶의 실재적 모습입니다(막1:14 ; 마4:17). 회개(헬, 메타노이아)의 근본 어의는 마음의 변화(회심)인데 “지금까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사단이 통치 아래서 자신의 욕망과 이기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급급한 나머지, 원망하고 미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으로의 완전한 방향전환을 이루고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많은 노력과 수고와 인내가 동반되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자녀에게 하나님 나라는 항상 결단을 요구합니다. 이 결단을 하기 위해서 때로는 희생과 죽음까지도 치루어야 하는 “최후의 승부”에 대한 마지막 선택을 강요받을 때 즉시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선택하는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2)하나님 나라는 최고의 값을 지불함으로써 소유될 수 있는 모습으로 이 땅 임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밭에 감추인 보화 등)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 줍니다. 때로는 눈을 뽑고 손발을 잘라버리는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그렇게 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기원은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 어떠한 수고와 고통과 땀과 눈물도 아끼지 않겠다는 신앙고백이며 그렇게 살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새로운 결심을 하는 필사적인 각오가 담겨 있는 기도입니다. 얼마나 멋진 기원입니까
3)하나님 나라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모습으로 임합니다(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은 자신의 안락, 명예, 야망, 안전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더 기뻐하는 자들로서 비웃음이나 조롱이나 고독, 희생을 오히려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단지 입술로만의 경배(마7:21)로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할 때 핍박이나 고통을 구차하게 피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4)하나님 나라는 용서와 사랑을 통하여 임합니다(마18:13-35). 미움의 감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차단시키고 맙니다. 마음 속에 미움과 분노가 가득 차 있는 생활은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미움을 받는 대상보다 미워하는 자의 마음과 생활은 너무나 초라하고 불쌍하며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하고 이해하며 그 위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주는 모습은 바로 하나님게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이었던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사실의 반영입니다. 이러한 생활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착(임하는)했다는 표시요 선포입니다. 결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자녀들의 생활을 통하여 모든 민족과 온 세상에 전파될 것입니다(마24:14). 동서남북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기 위하여 모여들 것입니다(마8:11 ; 눅13:29). 그리고 끊임없이 자라 성장할 것입니다(막4:26-29). 몇몇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계획을 세울지라도 마침내 하나님 나라는 완전한 통치의 모습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기원은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감수 하겠다는 각오이며 하나님 나라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버리겠다는 결단입니다. 동시에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모든 요소와 자세를 갖추고 이 세대를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의지적 노력과 인내하겠다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뜻과 주장을 실현시키기 위해 고집하는 자에게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기원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영원무궁토록 이 세대(This age)와 올 세대(the age to come)에 충만하게 나타나기를 소원하는 이 기원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기도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소원하는 청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에 의하여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복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할 본래의 창조목적에 합당하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태어날때부터 범죄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는 전혀 반대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타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드림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상태 곧 하나님과 죄인이었던 인간 사이에서 죄의 담이 무너져(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화목의 상태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가리키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모든 자녀들이 “나라”(Kingdom)곧 하나님의 다스림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에게 임하기를 간구하는 자세야말로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과의 관계
그렇다면 하나님나라와 복음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1.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선포된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의 선포조차도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마3:2). 특히 예수님의 생애를 요약했다고 볼 수 있는 마태복음 4장 17절에서 25절까지의 내용은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주님이 이 땅에 강림하신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 시작은 “회개하라 천국(하나님 나라)이 가까왔느니라”(마4:17)였으며 각색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몰아내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신 모든 이적조차도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기 위한 수단이며 표시(Sign)에 불과했으며 오직 “하나님 나라 전파”가 주님의 삶의 목적이었음을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마4:23-25). 그래서 마태는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마태복음을 기록할 때 처음에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소개되고 후에는 제자들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 마태복음 기록을 끝맺고 있습니다(마28:19-21). 결국 복음전파의 최후 목적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받아들이는 자들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분의 통치인 하나님 나라가 소개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2.하나님 나라의 명칭과 그 의미 복음서와 바울 서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명칭은 다양합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성호를 사용하기를 꺼려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하늘나라”(천국)란 명칭과 “나라”란 명칭을 주로 사용했으나 마가, 누가 등 다른 복음서 기자는 대부분 “하나님 나라”의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의 나라” “그 나라” “하나님 나라”등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명칭이 가장 적절한 칭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는 “나라”의 명칭이 히브리어로 “말쿠스”인데 다스림, 주권, 통치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는 이 “말쿠스”가 나라, 통치, 주권 등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특히 시145:13에는 주의 나라와 주의 통치가 같은 의미로, 영원한 나라와 대대에 이르는 나라가 같은 의미로 사용(댓귀법)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에서는 하나님 나라는 곧 어떤 장소적인 개념으로보다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그 자체를 의미했습니다. 신약에서는 구약의 “말쿠스”개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바실레이아”(헬라어로“왕국”을 의미함)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말쿠스”개념과 신약의 “바실레이아”는 모두 “왕의 다스림”, “왕의 통치”, “왕의주권”을 의미하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다스림, 주권)는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그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삶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3.하나님 나라의 이중적 의미:현제성과 미래성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이나 통치 그 자체라는 개념에서 볼 때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현재 “들어갈” 수 있고 “소유”할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마12:28에 언급되는데 이미(already)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위엄있는 통치로서 이 땅에 임했다고 주님은 선언하셨습니다. 또한 어린아이 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의 통치(나라)를 받아들이는(receive)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며(막10:15) 하나님 나라를 소유(마6:33)할 수 있으며 그 나라의 복(행복)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마5:3-11). 또한 하나님 나라는 현재 임하는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누리는 모든 행복의 최상급(헬라어 “마카리오이”)이며 하나님의 영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평화를 의미합니다(롬14:17). 그러나 이 악한 세대 속에(갈1:4 ; 엡2:1-2) 하나님의 통치로 인한 하나님 나라(눅17:20-21, 16:16 ; 마21:31)는 완전한 모습의 통치로 나타나지 않고 믿음으로만 누릴 수 있는 미완성적인 모습일 뿐입니다(마13:의 천국비유)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이미 현재에 임했으나 미래의 유업(마25:34)이라고 소개하셨으며 동시에 미래에 완전히 누릴 축복의 영역(마8:11,21:31 ; 눅16;16)이며 미래의 하나님의 선물(눅12:3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는 이 세대에 현존하는(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영적 실재이며 그리스도의 재림 때 완성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여되는 미래의 유업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의 하나님 나라의 특성은 “하나님 나라는 이미(alredy) 임했으나 아직 아니(Not yet)”라는 사상으로 요약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지금까지 고찰한 하나님 나라의 의미 아래서 볼 때 주기도문의 두번째 기원인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청원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과 함께 소원하는 고백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능력 아래서 복음과 함께 이 땅에 임하기(Coming, 도착)위해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은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은총을 얻음으로써 더 이상 사단의 통치 아래서 고통과 불행에 얽매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능력과 은혜 아래서 행복과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미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의 다스림을 받고 사는 삶의 모습을 불신자들에게 보임으로써 그들도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오도록 하는 “복음에 합당한 삶” 곧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이 땅에 임했음을 증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기원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서의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인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뻐하며 이것이 자신의 삶의 목표요 전부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결국 이 기원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소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1)하나님 나라는 회개를 통해서 임하는 방향전환의 삶의 실재적 모습입니다(막1:14 ; 마4:17). 회개(헬, 메타노이아)의 근본 어의는 마음의 변화(회심)인데 “지금까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사단이 통치 아래서 자신의 욕망과 이기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급급한 나머지, 원망하고 미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으로의 완전한 방향전환을 이루고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많은 노력과 수고와 인내가 동반되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자녀에게 하나님 나라는 항상 결단을 요구합니다. 이 결단을 하기 위해서 때로는 희생과 죽음까지도 치루어야 하는 “최후의 승부”에 대한 마지막 선택을 강요받을 때 즉시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선택하는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2)하나님 나라는 최고의 값을 지불함으로써 소유될 수 있는 모습으로 이 땅 임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밭에 감추인 보화 등)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 줍니다. 때로는 눈을 뽑고 손발을 잘라버리는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그렇게 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기원은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 어떠한 수고와 고통과 땀과 눈물도 아끼지 않겠다는 신앙고백이며 그렇게 살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새로운 결심을 하는 필사적인 각오가 담겨 있는 기도입니다. 얼마나 멋진 기원입니까
3)하나님 나라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모습으로 임합니다(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은 자신의 안락, 명예, 야망, 안전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더 기뻐하는 자들로서 비웃음이나 조롱이나 고독, 희생을 오히려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단지 입술로만의 경배(마7:21)로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할 때 핍박이나 고통을 구차하게 피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4)하나님 나라는 용서와 사랑을 통하여 임합니다(마18:13-35). 미움의 감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차단시키고 맙니다. 마음 속에 미움과 분노가 가득 차 있는 생활은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미움을 받는 대상보다 미워하는 자의 마음과 생활은 너무나 초라하고 불쌍하며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하고 이해하며 그 위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주는 모습은 바로 하나님게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이었던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사실의 반영입니다. 이러한 생활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착(임하는)했다는 표시요 선포입니다. 결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자녀들의 생활을 통하여 모든 민족과 온 세상에 전파될 것입니다(마24:14). 동서남북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기 위하여 모여들 것입니다(마8:11 ; 눅13:29). 그리고 끊임없이 자라 성장할 것입니다(막4:26-29). 몇몇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계획을 세울지라도 마침내 하나님 나라는 완전한 통치의 모습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기원은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감수 하겠다는 각오이며 하나님 나라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버리겠다는 결단입니다. 동시에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모든 요소와 자세를 갖추고 이 세대를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의지적 노력과 인내하겠다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뜻과 주장을 실현시키기 위해 고집하는 자에게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기원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영원무궁토록 이 세대(This age)와 올 세대(the age to come)에 충만하게 나타나기를 소원하는 이 기원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기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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