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보다 착하다는 사람 (롬2:1-16)
본문
1장에서는 사람이 얼마나 악한 죄인인가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밀하게 죄목을 들어가면서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 죄목들은 사형에 해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말해 유죄가 확정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판결에 대하여 도무지 승복할 수 없다고 항소를 하는 자들이 2장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아니, 제가 사형이라고요 그건 너무 심합니다!”하고는 하나님 앞에서 뭔가 변명할 것을 들고 서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나님이 우리를 오죽이나 잘 아시겠습니까 우리의 속마음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환하게 들여다 보고 계시는 그분이 오죽 답답하시면 우리 보고 죄인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양심을 가진 사람이면, “주님, 저는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하고 깨끗이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주여,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죄인에게 가르쳐 주시옵소서!”하고 부르짖어야 바른 자세가 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2장에 등장하는 자들은 그렇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본론> 1절에 나오는 ‘
그러므로’라는 말에 주의합시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죽음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죄인이라는 말씀을 하셨으니 더 큰소리를 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할말이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다음에 어떤 부류의 사람이 나오고 있는지를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1저리 이하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그들은 하나님이 죄인이라고 하는 데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로 보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정죄해도 자기만은 아니라고 생각에서 무엇인가 은근히 자랑할 것을 들고 나오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수긍하지 않으려는 자들 모두를 통틀어서 말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선한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때 참 선하다고 할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자들을 향해서 무조건 죄인이라고 말을 하면 심기가 굉장히 불편할 것이 뻔합니다. 이러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통찰력이 매우 발달한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보다 수준이 높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살앙 해!”하는 나름대로의 높은 이상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어서 살아보려고 하는 독특한 데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대개 언행이 선하고 비교적 양심적임을 긍지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주변으로부터 착하다는 칭찬을 듣고,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어떤 때는 도적군자라는 고상한 별명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종일 일반 사람들이 감히 엄두도 못내는 선한 일에 뛰어들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선하게 보이는 자들을 향해 죽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마음속에 “그래도 나는 남보다 선해!”라는 강한 긍지를 숨기고 있습니다. 자기가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죄 이야기를 하면 별로 놀라지 않습니다. 자기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자기는 별로 해당이 없는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로마서 1장에서 지적하는 모든 죄 이야기가 전부 남의 이야기로 들리니 죄인으로 정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들이 바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요, 남보다도 선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바로 이같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2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뻔뻔스러운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루시는 것일까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창녀나 세리가 받는 하나님의 심판을 똑같이 받는 불행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기회를 주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비록 예배 때 나와 앉았지만 이 말씀을 꼭 들어야 할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점잖게 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와닿지 않아서 멍하게 앉아 있다가 가는 자들이 없잖아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시간 내내 죄에 대한 지적이 있었으나, 나갈 때에는 무표정하게 나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젊잖아서 생각이 깊어서요 그럴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무리 떠들어 봐라, 그래도 나는 선한데가 있어”하는 자부심 때문에 설교를 뒷전으로 들었거나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는 남보다는 선한 구석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본문 로마서 2장에 등장하는 장본인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도 나는 남보다는 선하다!”는 은근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에게 6가지 특징이 있다. 이 6가지를 잘 비추어 보아서 해당 사항이 없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라도 저촉되면 ‘그래도’의 고집을 깨닫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1. 남을 비판하는 경향이 강하다
(1) 본문 1절에서 이 사람을 가리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왜 이런 별명을 붙였을까요 그것은 자기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은근히 자기도모르게 남을 비판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결점은 눈에 잘 안들어 오고남의 약점이나 잘못은 항상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잘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기이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왜 은근히 남을 비판합니까 자기가 그 사람보다 선하다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그 비판으로 자기는 더 의롭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는 다른데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같지 않다는 우월감입니다. 이런 점에서 바리새인을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도 옳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창녀, 세리, 등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싸잡아서 비판하는 일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눅18: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양심이 아프도록 죄를 지적해 주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아니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비판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강하게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비판하는 옷, 남을 정죄하는 옷, 은근히 위선하는 옷, 교만한 옷으로 요란스럽게 치장하고 진짜 악한 것은 드러나지 않게 속에다 감추고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심하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가끔 직장에서 보면 자기 상관이나 동료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이 있으면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교회 장로나 집사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장로가 뭐 저래”라는 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덕을 세우지 못하는 점도 있고, 종종 잘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또 가끔 익울한 역을 먹는 때도 있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예수 믿는 사람 치고는 별 수가 없구만. 나는 안믿어도 저 사람보다는 나아!”하면서 자신을 추겨 올리는 심리는 매우 불쌍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더 선하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보다 못하게 보이는 동료들을 탓하면서 예수 믿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다 교회를 다니게 되어도 죄의식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복음을 들을 수 없는 불행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람끼리 조금 비교하면 조금 더 선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범하는 죄에 대해서는 둔하다
(1) (롬2: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무슨 뜻입니까 남을 판단하는 사람에게 똑같은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같은 일을 행하는 동일범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3절에 똑같은 말씀이 또 반복되고 있습니다. (롬2: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이와같은 말씀이 비추어 보면, 남보다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 죄에 대해서 매우 둔감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의 죄는 드러나서 자꾸 비판을 하지만 자기는 어떤 점에서 잘못되어 있는가를 잘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똑같은 악을 범해도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합니다. 그렇게 관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둔감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지를 모릅니다. 남의 죄는 자기 눈에 드러나 있지만 자기 죄는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드러나지 아니한 그것으로 기고만장해서 남을 비판하는 자기가 똑같은 죄를 범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눅16:1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들여다 보니 엉망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 마음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돈만 사랑하는 사람으로 드러났고 돈만 사랑하니까 남몰래 힘없는 과부의 재산을 삼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인 줄 몰랐습니다. 간음하는 사람을 죽이라고 소리치면서 소으로 여인을 행해 음욕을 품는 자신은 비판하지 않습니다. 형제끼리 싸운다고 욕하면서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자기 죄에 대하여 그만큼 둔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교회를 아무리 많이 다녀도 십자가가 자기 십자가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구원받을 필요를 별로 느낄 수 없습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3.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얻은 형통이나 행복이 자기가 선해서 얻은 복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4) (롬2: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서하심을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용납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잘못이 있어도 하나님은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길이 참는다는 말은 죄를 짖는 즉시 보복하지 않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상이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다른 사람은 교통 사고를 당해서 병신이 되어도 자기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암으로 일찍 죽는 것을 보는데 아직도 건강해서 심지어 병원에 가본 일조창 없을 정도입니다. 자녀들은 물론 다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형통하는 것을 보면 은근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아니, 사람이 양심을 바로 써야지, 죄 짓고는 못살지. 그래야 집안이 잘되고 하는 일이 복을 받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같은 생각에는 “그래도 남보다는 선하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는 것을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의 생각을 옳다고 할 수있습니까 롬2:4-5절을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금까지 내버려 두신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롬2:4-5)“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5)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그러니까, 그 형통은 그가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자기가 남보다 선해서 얻은 분복으로 알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막힌 착오입니까
그런데도 그 마음을 고쳐먹지 않고 깨닫지 않으면 결국 완전히 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중에 스스로 착각에 빠진 자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자기는 새벽기도 한 번 안 나가도 애들 공부 잘하고 부부애가 유별나게 좋은데 이웃에 사는 누구누구는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눈물 콧물 짜며 기도하는데도 애들이 시험에 낙방만 하니이해살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은근히 자기 집안이 잘되는 것이 남보다 선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다고 해도 별 볼일 없더라! 하고 교만하지 않는지요 이유가 어디 있던 간에 자기의 선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인해 만사가 잘된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임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가 있다는 본문의 경고를 귀담아 두어야 합니다.
4.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의 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가치한 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남보다는 선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은 자기의 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무가치하고 형편없는 것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선이 무엇입니까 진짜 선이란 7절을 보십시다. (롬2: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여기서 ‘참고 선을 행한다’는 말씀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대답이 7절에 이어 나옵니다.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자기 자녀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의 모든 축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축복이 지금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은근히 선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그 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인지를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선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자기 뜻을 이루는 선일 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선은 걸레조각과 같은 것입니다. (잠16: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는 인간의 마음에서 선한 것을 찾아 보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은근히 불교식 선개념이 아직도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석가가 말했다고 하는 법구경에는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이 마치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도 같다. 사람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물치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물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같은 사상에 수백년을 물들어 살았으니 그러한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예) 외국 좋은 식당에서 불을 켜지 않고 촛불로 분위기를 장식하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웨이터에게 물으니, “아무리 컴컴해도 음식을 코로 가지고 가는 사람 은 없고, 또 불이 어두우면 모두가 미인으로 보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컴컴한 마음 속에서 보면, 전부가 선한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빛되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보면 자기가 자랑하던 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5.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양심을 속입니다.(14) (롬2:14)“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율법은 없지만, 그 양심에 죄책감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롬2: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우리가 죄로 부패해도 양심에는 어느정도 선악을 기준을 논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모르는 자라고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마음 속에서 고통이 일어나고 서로 송사하고 서로 변명하는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의 영김의 고소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일 그가 정말 양심적이라면 스스로 선하다는 망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반면에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양심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한 사람도 이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도 알고 양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것도 속일 수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면 선과 멀어도 한참 떨어진 사람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자기 양심을 속이지 않는 한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6.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준엄한지를 모른다. (롬2:5).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계속 6절을 보면, (롬2: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외모로 취하시지 않고, 행한대로 바로 보응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헬라운 구별이나, 편애를 하지 않고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악이라도 다 드러나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롬2:16)“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는 남보다 선해!”하는 교만을 가질 때에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매우 무식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결론>
지금까지 스스로 선하다는 6가지의 특징을 이야기 했습니다.
1) 비평하기를 좋아한다.
2) 자기 죄에 대해서 둔감하다
3) 자기 형통이 자기 선의 대가인줄로 착각한다.
4) 자기 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가치없는 것인 줄을 모른다. 5) 자기 양심을 은근히 속이고 산다.
6)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준엄한가를 모른다. 우리는 은근히 다른 사람보다는 선하다는 교만을 가지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탕자의 형과 같이 집안의 탕자는 아닙니까 “나는 아버지 말씀을 안들은 것이 없어! 나는 동생하고 같지 않아!”하는 은근한 교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결국, 맏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서 돌아온 기쁨을 나눌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은근한 교만은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인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의를 자랑할 뿐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의 후예의 길을 갈 뿐입니다. 세리같이 통회하고 자복하며, 사울같이 죄인의 괴수임을 통회하면서 하나님의 불타는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복음의 사명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판결에 대하여 도무지 승복할 수 없다고 항소를 하는 자들이 2장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아니, 제가 사형이라고요 그건 너무 심합니다!”하고는 하나님 앞에서 뭔가 변명할 것을 들고 서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나님이 우리를 오죽이나 잘 아시겠습니까 우리의 속마음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환하게 들여다 보고 계시는 그분이 오죽 답답하시면 우리 보고 죄인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양심을 가진 사람이면, “주님, 저는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하고 깨끗이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주여,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죄인에게 가르쳐 주시옵소서!”하고 부르짖어야 바른 자세가 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2장에 등장하는 자들은 그렇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본론> 1절에 나오는 ‘
그러므로’라는 말에 주의합시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죽음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죄인이라는 말씀을 하셨으니 더 큰소리를 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할말이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다음에 어떤 부류의 사람이 나오고 있는지를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1저리 이하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그들은 하나님이 죄인이라고 하는 데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로 보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정죄해도 자기만은 아니라고 생각에서 무엇인가 은근히 자랑할 것을 들고 나오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수긍하지 않으려는 자들 모두를 통틀어서 말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선한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때 참 선하다고 할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자들을 향해서 무조건 죄인이라고 말을 하면 심기가 굉장히 불편할 것이 뻔합니다. 이러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통찰력이 매우 발달한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보다 수준이 높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살앙 해!”하는 나름대로의 높은 이상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어서 살아보려고 하는 독특한 데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대개 언행이 선하고 비교적 양심적임을 긍지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주변으로부터 착하다는 칭찬을 듣고,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어떤 때는 도적군자라는 고상한 별명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종일 일반 사람들이 감히 엄두도 못내는 선한 일에 뛰어들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선하게 보이는 자들을 향해 죽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마음속에 “그래도 나는 남보다 선해!”라는 강한 긍지를 숨기고 있습니다. 자기가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죄 이야기를 하면 별로 놀라지 않습니다. 자기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자기는 별로 해당이 없는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로마서 1장에서 지적하는 모든 죄 이야기가 전부 남의 이야기로 들리니 죄인으로 정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들이 바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요, 남보다도 선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바로 이같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2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뻔뻔스러운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루시는 것일까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창녀나 세리가 받는 하나님의 심판을 똑같이 받는 불행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기회를 주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비록 예배 때 나와 앉았지만 이 말씀을 꼭 들어야 할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점잖게 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와닿지 않아서 멍하게 앉아 있다가 가는 자들이 없잖아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시간 내내 죄에 대한 지적이 있었으나, 나갈 때에는 무표정하게 나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젊잖아서 생각이 깊어서요 그럴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무리 떠들어 봐라, 그래도 나는 선한데가 있어”하는 자부심 때문에 설교를 뒷전으로 들었거나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는 남보다는 선한 구석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본문 로마서 2장에 등장하는 장본인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도 나는 남보다는 선하다!”는 은근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에게 6가지 특징이 있다. 이 6가지를 잘 비추어 보아서 해당 사항이 없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라도 저촉되면 ‘그래도’의 고집을 깨닫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1. 남을 비판하는 경향이 강하다
(1) 본문 1절에서 이 사람을 가리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왜 이런 별명을 붙였을까요 그것은 자기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은근히 자기도모르게 남을 비판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결점은 눈에 잘 안들어 오고남의 약점이나 잘못은 항상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잘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기이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왜 은근히 남을 비판합니까 자기가 그 사람보다 선하다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그 비판으로 자기는 더 의롭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는 다른데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같지 않다는 우월감입니다. 이런 점에서 바리새인을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도 옳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창녀, 세리, 등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싸잡아서 비판하는 일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눅18: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양심이 아프도록 죄를 지적해 주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아니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비판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강하게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비판하는 옷, 남을 정죄하는 옷, 은근히 위선하는 옷, 교만한 옷으로 요란스럽게 치장하고 진짜 악한 것은 드러나지 않게 속에다 감추고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심하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가끔 직장에서 보면 자기 상관이나 동료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이 있으면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교회 장로나 집사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장로가 뭐 저래”라는 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덕을 세우지 못하는 점도 있고, 종종 잘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또 가끔 익울한 역을 먹는 때도 있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예수 믿는 사람 치고는 별 수가 없구만. 나는 안믿어도 저 사람보다는 나아!”하면서 자신을 추겨 올리는 심리는 매우 불쌍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더 선하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보다 못하게 보이는 동료들을 탓하면서 예수 믿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다 교회를 다니게 되어도 죄의식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복음을 들을 수 없는 불행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람끼리 조금 비교하면 조금 더 선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범하는 죄에 대해서는 둔하다
(1) (롬2: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무슨 뜻입니까 남을 판단하는 사람에게 똑같은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같은 일을 행하는 동일범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3절에 똑같은 말씀이 또 반복되고 있습니다. (롬2: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이와같은 말씀이 비추어 보면, 남보다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 죄에 대해서 매우 둔감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의 죄는 드러나서 자꾸 비판을 하지만 자기는 어떤 점에서 잘못되어 있는가를 잘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똑같은 악을 범해도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합니다. 그렇게 관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둔감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지를 모릅니다. 남의 죄는 자기 눈에 드러나 있지만 자기 죄는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드러나지 아니한 그것으로 기고만장해서 남을 비판하는 자기가 똑같은 죄를 범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눅16:1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들여다 보니 엉망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 마음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돈만 사랑하는 사람으로 드러났고 돈만 사랑하니까 남몰래 힘없는 과부의 재산을 삼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인 줄 몰랐습니다. 간음하는 사람을 죽이라고 소리치면서 소으로 여인을 행해 음욕을 품는 자신은 비판하지 않습니다. 형제끼리 싸운다고 욕하면서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자기 죄에 대하여 그만큼 둔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교회를 아무리 많이 다녀도 십자가가 자기 십자가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구원받을 필요를 별로 느낄 수 없습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3.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얻은 형통이나 행복이 자기가 선해서 얻은 복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4) (롬2: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서하심을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용납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잘못이 있어도 하나님은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길이 참는다는 말은 죄를 짖는 즉시 보복하지 않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상이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다른 사람은 교통 사고를 당해서 병신이 되어도 자기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암으로 일찍 죽는 것을 보는데 아직도 건강해서 심지어 병원에 가본 일조창 없을 정도입니다. 자녀들은 물론 다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형통하는 것을 보면 은근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아니, 사람이 양심을 바로 써야지, 죄 짓고는 못살지. 그래야 집안이 잘되고 하는 일이 복을 받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같은 생각에는 “그래도 남보다는 선하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는 것을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의 생각을 옳다고 할 수있습니까 롬2:4-5절을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금까지 내버려 두신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롬2:4-5)“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5)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그러니까, 그 형통은 그가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자기가 남보다 선해서 얻은 분복으로 알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막힌 착오입니까
그런데도 그 마음을 고쳐먹지 않고 깨닫지 않으면 결국 완전히 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중에 스스로 착각에 빠진 자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자기는 새벽기도 한 번 안 나가도 애들 공부 잘하고 부부애가 유별나게 좋은데 이웃에 사는 누구누구는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눈물 콧물 짜며 기도하는데도 애들이 시험에 낙방만 하니이해살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은근히 자기 집안이 잘되는 것이 남보다 선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다고 해도 별 볼일 없더라! 하고 교만하지 않는지요 이유가 어디 있던 간에 자기의 선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인해 만사가 잘된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임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가 있다는 본문의 경고를 귀담아 두어야 합니다.
4.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의 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가치한 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남보다는 선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은 자기의 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무가치하고 형편없는 것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선이 무엇입니까 진짜 선이란 7절을 보십시다. (롬2: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여기서 ‘참고 선을 행한다’는 말씀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대답이 7절에 이어 나옵니다.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자기 자녀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의 모든 축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축복이 지금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은근히 선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그 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인지를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선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자기 뜻을 이루는 선일 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선은 걸레조각과 같은 것입니다. (잠16: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는 인간의 마음에서 선한 것을 찾아 보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은근히 불교식 선개념이 아직도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석가가 말했다고 하는 법구경에는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이 마치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도 같다. 사람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물치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물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같은 사상에 수백년을 물들어 살았으니 그러한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예) 외국 좋은 식당에서 불을 켜지 않고 촛불로 분위기를 장식하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웨이터에게 물으니, “아무리 컴컴해도 음식을 코로 가지고 가는 사람 은 없고, 또 불이 어두우면 모두가 미인으로 보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컴컴한 마음 속에서 보면, 전부가 선한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빛되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보면 자기가 자랑하던 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5.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양심을 속입니다.(14) (롬2:14)“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율법은 없지만, 그 양심에 죄책감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롬2: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우리가 죄로 부패해도 양심에는 어느정도 선악을 기준을 논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모르는 자라고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마음 속에서 고통이 일어나고 서로 송사하고 서로 변명하는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의 영김의 고소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일 그가 정말 양심적이라면 스스로 선하다는 망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반면에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양심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한 사람도 이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도 알고 양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것도 속일 수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면 선과 멀어도 한참 떨어진 사람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자기 양심을 속이지 않는 한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6.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준엄한지를 모른다. (롬2:5).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계속 6절을 보면, (롬2: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외모로 취하시지 않고, 행한대로 바로 보응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헬라운 구별이나, 편애를 하지 않고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악이라도 다 드러나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롬2:16)“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는 남보다 선해!”하는 교만을 가질 때에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매우 무식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결론>
지금까지 스스로 선하다는 6가지의 특징을 이야기 했습니다.
1) 비평하기를 좋아한다.
2) 자기 죄에 대해서 둔감하다
3) 자기 형통이 자기 선의 대가인줄로 착각한다.
4) 자기 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가치없는 것인 줄을 모른다. 5) 자기 양심을 은근히 속이고 산다.
6)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준엄한가를 모른다. 우리는 은근히 다른 사람보다는 선하다는 교만을 가지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탕자의 형과 같이 집안의 탕자는 아닙니까 “나는 아버지 말씀을 안들은 것이 없어! 나는 동생하고 같지 않아!”하는 은근한 교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결국, 맏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서 돌아온 기쁨을 나눌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은근한 교만은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인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의를 자랑할 뿐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의 후예의 길을 갈 뿐입니다. 세리같이 통회하고 자복하며, 사울같이 죄인의 괴수임을 통회하면서 하나님의 불타는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복음의 사명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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