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말을 열애한 암논 (삼하13:1-4)
본문
사무엘하 13장에 나타나는 일들을 읽다 보면 성경에 꼭 이런 이야기까지 기록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낯이 붉어질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이런 말씀이 기록된 것을 보면서 또한 가지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다 기록하려면 세상에 둘 곳이 없을 정도라고 그랬고, 그래서 성경에 기록한 말씀들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전달해야 할 말씀들만을, 어떻게 보면 정말 고르고 골라서 기록하셨는데, 어째서 이 암논의 이야기가 이 중요한 성경에 자그마치 한 장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기록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도, 성경을 읽는 입장에서는 하나의 의문으로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그냥 땅에 떨어지는 것이 없다고 하셨고 하나도 헛된 말이 없다고 그랬는데, 오늘 이렇게 난잡스러운, 참으로 우리가 입 밖에 내기가 어려운 이야기가 왜 이렇게 많은 분량으로 귀하고 귀한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볼 때에 이 말씀의 비중이 그저 우리가 입 밖에 내기 어려운 그와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정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말씀이기에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다윗에게는 부인이 여럿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인들에게서 난 아들들이 또 많은데, 오늘 본문의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이 암논은 다윗의 큰아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 순리대로 한다면 이스라엘의 차기 왕권을 이어받게 될 황태자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성경에 그저 있다고만 되어 있지 그 이름이 계속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볼 때, 학자들은 보통
둘째 아들이 바로 오늘 13장에 나타나는 압살롬이라고 하는 아들을 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암놈과 압살놈 두 사람은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의 차기 왕권을 노리는 경쟁적인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암논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좀 괴퍅한 성격을 가졌던 그와 같은 아들이었고, 압살롬은 13장 후반부 이하에 나옵니다마는 그 모습이 아주 준수했고 잘생겼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가지 수완이 좋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을 다 다윗왕으로부터 빼앗아 갈 정도였으며, 그래서 후에 그는 아버지를 대적해서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권을 찬탈하고 다윗이 그저 군졸 몇 명만 이끌고 멀리 도망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만큼 왕권을 완전하게 쟁취할 수 있을 정도로 인심을 얻을 수 있었던 그와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두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암논이라는 큰아들이 나오는데 이 암논은 오늘 본문에 보니까 그 세째 아들 압살롬의 누이동생 다말을 열애했다 그랬어요. 저가 결혼할 수 없는 이복 누이동생을 너무 열애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렸어요. 그래서 매일 누워 있고 점점 병색이 짙어져 갈 때에, 이 암논의 사촌 형인 친구 요나단이 이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네가 무슨 무거운 근심거리가 있어서 그렇게 점점 고통을 당하고 병색이 짙어가느냐 나한테 이야기해 봐라.” 암논이 대답하기를 “내가 여차여차 해서 이렇게 병을 얻었다.” 그러자 요나단이 말하기를 “네가 어찌 그런 것 가지고 고민하느냐 네 아버지가 병문안차 오시거든 부탁을 해라. 다말로 하여금 네게 와서 떡을 주어서 너로 먹게 해 달라고.” 병든 아들이 더군다나 장자니까 다윗이 굉장히 사랑했거든요. 병든 아들이 식음을 전폐하는 상황에서 먹을 걸 달라고 할 때 부모 입장에서는 만류할 이유가 없죠. 안 먹어서 문제니까요. 그러니까 그 심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겁니다. 하여간 요나단이 암논에게 시키기를, 아버지인 다윗왕에게 부탁하여 다말을 오게 하여 음식을 먹여달라고 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말이 오거든 네가 다 알아서 해라고 하지요. 그런 후 오늘 기록된 대로 다말이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서 이복 오빠인 이 암논한테 와서 과자를 구워서 먹이려고 합니다. 암논은 주변 사람들은 다 물러가라고 하고는 침실로 그를 데리고 가서 강제로 겁탈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중요하게 볼 것은, 암논이 동침을 하고난 다음 바로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서 그 다말을 열애하던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미워하는 감정으로 그를 내쫓아 버린다는 이 부분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앙심을 품고 2년 동안을 기다리다가 암논을 죽여버리는 사건이 13장의 사건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보면서 13장에 의미심장한 단어를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13장 1절에 의미심장한 단어가 있는데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본문 중에 가장 핵심을 찔러주는 단어가 있는데 어떤 단어입니까 이것은 이 사건을 가장 잘 조명해 주는 단어이며, 또한 이 사건이 왜 발생하는가에 대한 촛점이 바로 이 단어에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단어는 “그 후에” 라는 단어입니다.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그 후에라는 것은 전제조건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제조건이 있은 후에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전제조건이 무엇입니까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겁탈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그 다음 회개하고 진통을 겪고난 다음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2장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분명히 다윗에게 질책을 하면서 “네가 범죄를 하였으므로 채찍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는데, 그 예언 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 12장 10절에 무어라고 예언합니까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자, 보십시오. 13장 이하의 난잡한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둘째, 인간이 얼마나 전적으로 부패해 있는가 그 부패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째,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앞으로 2-3주에 걸쳐 계속 다룰 것입니다. 오늘은 그 첫째 주제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과 그리고 이 형벌로 나타난 음행의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사건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다윗이 범죄한 그 결과로 다윗의 가문에 닥쳐오는 재앙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음행으로 범죄한 다윗의 가문이 똑같은 음행의 사건으로 모든 백성들 앞에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씨를 뿌리면 열매를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영적 원리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심는 대로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육에 속한 것을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고 영에 속한 것을 심으면 영생을 얻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은 음행을 심었습니다. 그 열매가 자식들에게 맺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죄를 심으면 쓴 것을 거두게 됩니다. 나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고통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암논이라는 아들이 행한 일들이 부당하다고 합니다. 암논은 자기 육체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형제의 자리에서 인륜의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도 무시해 버리고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고난 다음 그 여자의 장래를 생각치도 않고 내팽개쳐 버리는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모습이 바로 누구의 모습이었습니까 그 아버지 다윗의 모습 아니었습니까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남의 아내를 왕권을 가지고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장하기 위해서 자기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보내어 야비한 방법으로 죽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분을 통해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 앞에서 아름다운 모습의 본을 보여줘야 합니다. 다윗은 은밀하게 행했던 그 죄가 그 자식들에게서는 천하 만민에게 공개되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음행은 영적인 죄일 뿐인 것 같지만, 또한 나 개인의 은밀한 범죄인 것만 같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녀들에게도 그 결과가 이어지고 또한 그 가정까지도 파탄시키는,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커다란 범죄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얼마나 음란한 시대입니까 오늘 주변에 많은 음란의 영들이 많은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음란은 두 가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육적인 음란을 말하고,
둘째는 영적인 음란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음행죄가 어떤 죄인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악한 사탄이 마지막 시대에 성도들을 미혹하는 무기 가운데 가장 큰 무기가 바로 이 음행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 음행의 문제를 잘 정리하여야만 하겠습니다. 우리 강성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이 문제가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런 문제들이 얼마든지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고, 또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이 뿌리는 음행의 씨가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육적인 면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도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때 그것은 영적인 음란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제일로 사랑해야 될 하나님 자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명예나 재물,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음란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보다 우리의 육체적인 음란에 대해 말씀을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이 음행은 분명히 뿌린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죄악의 자리에 들어갈 때는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해야 되고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죄가 바로 이 음란이라는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11절에 보면 음란한 사람과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음행한 자와 사귀면 나도 같이 음행의 자리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보면, 음행을 피하라 그랬습니다. 에베소서 5장 3절에서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5절에 보면, 그 음행의 욕구를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음행의 욕구를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리라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6-8절에 보면, 음행을 피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본능이라는 게 있습니다.
첫째, 성취욕이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려고 하는 본능적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성취욕이 충족되지 않을 때 사람은 좌절하고 염세주의자가 되고 맙니다.
둘째 본능은 여러분이 잘 아는 식욕입니다. 이건 본능 중의 본능입니다. 배가 고프면 그저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고 그저 먹을 것만 생각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본능은 성욕입니다. 성취욕, 식욕, 성욕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인 본능입니다. 이 본능이 악한 것입니까, 선한 것입니까 여러분, 잘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난 다음에 그들에게 명한 명령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명했습니까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점령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준 성취욕입니다. 그리고 식욕도, 이 식욕을 떠나면 사람은 죽고맙니다. 저는 건강하지 않은 편이라 잘 모르지만, 건강한 사람은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데, 먹어야 할 시간만 지나면 배가 고파 견디기 힘이 든다고 합니다. 사실 그런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하루에 한 끼 먹어도 그만 두 끼 먹어도 그만, 그런 걸 잘 못 느껴요. 이것은 벌써 위에 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쳤을 때 통증을 느끼죠 그 통증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준 복 가운데 복입니다. 뭐가 복이에요 통증이! 여러분, 과로하면 그 증상이 나타납니까, 안 나타납니까 증상이 나타나는 것, 그게 복입니다. 증상이 안 나타나면 그냥 피곤한 줄 모르고 병이 드는지도 모르고 과로하다가 죽는 겁니다. 통증이 있으니까 이상만 나타나면 절제하고 준비하지요. 축복입니다. 이 식욕이라는 것도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 중의 하나입니다. 잠언에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해 아래 먹는 것보다 즐거운 낙이 없느니라 그랬어요. 여러분, 즐거움 가운데 최고의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먹는 것 이상의 즐거움은 없을 거에요. 하루만 굶어봐요. 먹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알게 될 겁니다. 기도원에 가서 금식을 하면 말이죠, 기도원에서 주는 음식이 변변치 못한데도, 된장국에 시래기 좀 넣고 멸치 하나 정도 뜰까 말까한 그 음식이 금식기도하면서 쳐다만 보아도 기도가 안 나오지요 그것이 얼마나 맛있게 보이는지. 먹음직스럽잖아요 먹는 것처럼 큰 즐거움이 없을 거에요. 하나님이 주신 복 중에 복입니다. 성욕도 마찬가지에요. 인간에게만 성욕을 준 것은 아니에요. 짐승에게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성을 아름답게 주셨습니다. 짐승은 새끼를 낳기 위한 산란기 때만 성적인 충동을 줍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성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셨습니다. 부부관계에서 이성을 아름답게 즐기는 것은 복 중에 복입니다. 부부관계에만 성을 즐기는 것이 특권이고 은혜입니다. 성은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아담에게 하와를 주셔셔 배필을 삼으셨습니다. 그는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하나입니다. 무촌입니다. 여러분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 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먹는 것을 탐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무엇을 탐하지 말라고요 먹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본능이지만 그것이 과하면 몸에 이상이 생깁니다. 욕심이 과하면 범죄의 길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성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것이요, 축복이고 은혜이지만, 이것이 과하면 가장 추한 것이요, 가장 악한 죄악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마지막으로 무어라고 말합니까 지나치면 악하기 때문에 억제하고 절제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암논의 죄는 무엇입니까 그가 아름다운 다말을 보고 연모하는 마음은 정상일 수가 있습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정말 아름다운 여자가 지나가면 옆에 부인이 있지만 고개가 돌아갑니까, 안 돌아갑니까 사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것은 비정상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난 다음 보시니 아름다우므로 “심히 좋았더라” 그러셨어요.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이에요. 아름다움은 축복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 이상으로 넘어가니까 문제인 겁니다. 암논과 다말은 더 이상 가까이 가서는 안 될 관계입니다. 아름다움을 보고 흠모하는 마음은 가질 수 있지만 그 마음을 계속 주어서는 안 되고 더더군다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되는데, 그는 악한 발동을 통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형제를 속여서 악한 자리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음행이라는 것은 성적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 “나는 이 범죄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착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다윗도 엄청나게 하나님의 훈련을 받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 만큼은 자만해서 안 될 일입니다. 왠지 압니까 본능 중의 하나이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저나 여러분은 음녀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음녀 문제를 가장 적나라게 표현한 구절은 잠언에 있습니다. 잠언 5장 1절에서 18절까지를 읽어보세요.
둘째 아들은 성경에 그저 있다고만 되어 있지 그 이름이 계속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볼 때, 학자들은 보통
둘째 아들이 바로 오늘 13장에 나타나는 압살롬이라고 하는 아들을 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암놈과 압살놈 두 사람은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의 차기 왕권을 노리는 경쟁적인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암논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좀 괴퍅한 성격을 가졌던 그와 같은 아들이었고, 압살롬은 13장 후반부 이하에 나옵니다마는 그 모습이 아주 준수했고 잘생겼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가지 수완이 좋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을 다 다윗왕으로부터 빼앗아 갈 정도였으며, 그래서 후에 그는 아버지를 대적해서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권을 찬탈하고 다윗이 그저 군졸 몇 명만 이끌고 멀리 도망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만큼 왕권을 완전하게 쟁취할 수 있을 정도로 인심을 얻을 수 있었던 그와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두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암논이라는 큰아들이 나오는데 이 암논은 오늘 본문에 보니까 그 세째 아들 압살롬의 누이동생 다말을 열애했다 그랬어요. 저가 결혼할 수 없는 이복 누이동생을 너무 열애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렸어요. 그래서 매일 누워 있고 점점 병색이 짙어져 갈 때에, 이 암논의 사촌 형인 친구 요나단이 이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네가 무슨 무거운 근심거리가 있어서 그렇게 점점 고통을 당하고 병색이 짙어가느냐 나한테 이야기해 봐라.” 암논이 대답하기를 “내가 여차여차 해서 이렇게 병을 얻었다.” 그러자 요나단이 말하기를 “네가 어찌 그런 것 가지고 고민하느냐 네 아버지가 병문안차 오시거든 부탁을 해라. 다말로 하여금 네게 와서 떡을 주어서 너로 먹게 해 달라고.” 병든 아들이 더군다나 장자니까 다윗이 굉장히 사랑했거든요. 병든 아들이 식음을 전폐하는 상황에서 먹을 걸 달라고 할 때 부모 입장에서는 만류할 이유가 없죠. 안 먹어서 문제니까요. 그러니까 그 심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겁니다. 하여간 요나단이 암논에게 시키기를, 아버지인 다윗왕에게 부탁하여 다말을 오게 하여 음식을 먹여달라고 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말이 오거든 네가 다 알아서 해라고 하지요. 그런 후 오늘 기록된 대로 다말이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서 이복 오빠인 이 암논한테 와서 과자를 구워서 먹이려고 합니다. 암논은 주변 사람들은 다 물러가라고 하고는 침실로 그를 데리고 가서 강제로 겁탈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중요하게 볼 것은, 암논이 동침을 하고난 다음 바로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서 그 다말을 열애하던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미워하는 감정으로 그를 내쫓아 버린다는 이 부분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앙심을 품고 2년 동안을 기다리다가 암논을 죽여버리는 사건이 13장의 사건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보면서 13장에 의미심장한 단어를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13장 1절에 의미심장한 단어가 있는데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본문 중에 가장 핵심을 찔러주는 단어가 있는데 어떤 단어입니까 이것은 이 사건을 가장 잘 조명해 주는 단어이며, 또한 이 사건이 왜 발생하는가에 대한 촛점이 바로 이 단어에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단어는 “그 후에” 라는 단어입니다.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그 후에라는 것은 전제조건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제조건이 있은 후에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전제조건이 무엇입니까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겁탈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그 다음 회개하고 진통을 겪고난 다음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2장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분명히 다윗에게 질책을 하면서 “네가 범죄를 하였으므로 채찍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는데, 그 예언 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 12장 10절에 무어라고 예언합니까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자, 보십시오. 13장 이하의 난잡한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둘째, 인간이 얼마나 전적으로 부패해 있는가 그 부패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째,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앞으로 2-3주에 걸쳐 계속 다룰 것입니다. 오늘은 그 첫째 주제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과 그리고 이 형벌로 나타난 음행의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사건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다윗이 범죄한 그 결과로 다윗의 가문에 닥쳐오는 재앙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음행으로 범죄한 다윗의 가문이 똑같은 음행의 사건으로 모든 백성들 앞에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씨를 뿌리면 열매를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영적 원리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심는 대로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육에 속한 것을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고 영에 속한 것을 심으면 영생을 얻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은 음행을 심었습니다. 그 열매가 자식들에게 맺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죄를 심으면 쓴 것을 거두게 됩니다. 나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고통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암논이라는 아들이 행한 일들이 부당하다고 합니다. 암논은 자기 육체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형제의 자리에서 인륜의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도 무시해 버리고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고난 다음 그 여자의 장래를 생각치도 않고 내팽개쳐 버리는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모습이 바로 누구의 모습이었습니까 그 아버지 다윗의 모습 아니었습니까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남의 아내를 왕권을 가지고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장하기 위해서 자기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보내어 야비한 방법으로 죽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분을 통해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 앞에서 아름다운 모습의 본을 보여줘야 합니다. 다윗은 은밀하게 행했던 그 죄가 그 자식들에게서는 천하 만민에게 공개되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음행은 영적인 죄일 뿐인 것 같지만, 또한 나 개인의 은밀한 범죄인 것만 같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녀들에게도 그 결과가 이어지고 또한 그 가정까지도 파탄시키는,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커다란 범죄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얼마나 음란한 시대입니까 오늘 주변에 많은 음란의 영들이 많은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음란은 두 가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육적인 음란을 말하고,
둘째는 영적인 음란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음행죄가 어떤 죄인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악한 사탄이 마지막 시대에 성도들을 미혹하는 무기 가운데 가장 큰 무기가 바로 이 음행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 음행의 문제를 잘 정리하여야만 하겠습니다. 우리 강성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이 문제가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런 문제들이 얼마든지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고, 또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이 뿌리는 음행의 씨가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육적인 면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도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때 그것은 영적인 음란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제일로 사랑해야 될 하나님 자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명예나 재물,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음란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보다 우리의 육체적인 음란에 대해 말씀을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이 음행은 분명히 뿌린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죄악의 자리에 들어갈 때는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해야 되고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죄가 바로 이 음란이라는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11절에 보면 음란한 사람과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음행한 자와 사귀면 나도 같이 음행의 자리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보면, 음행을 피하라 그랬습니다. 에베소서 5장 3절에서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5절에 보면, 그 음행의 욕구를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음행의 욕구를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리라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6-8절에 보면, 음행을 피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본능이라는 게 있습니다.
첫째, 성취욕이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려고 하는 본능적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성취욕이 충족되지 않을 때 사람은 좌절하고 염세주의자가 되고 맙니다.
둘째 본능은 여러분이 잘 아는 식욕입니다. 이건 본능 중의 본능입니다. 배가 고프면 그저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고 그저 먹을 것만 생각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본능은 성욕입니다. 성취욕, 식욕, 성욕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인 본능입니다. 이 본능이 악한 것입니까, 선한 것입니까 여러분, 잘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난 다음에 그들에게 명한 명령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명했습니까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점령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준 성취욕입니다. 그리고 식욕도, 이 식욕을 떠나면 사람은 죽고맙니다. 저는 건강하지 않은 편이라 잘 모르지만, 건강한 사람은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데, 먹어야 할 시간만 지나면 배가 고파 견디기 힘이 든다고 합니다. 사실 그런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하루에 한 끼 먹어도 그만 두 끼 먹어도 그만, 그런 걸 잘 못 느껴요. 이것은 벌써 위에 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쳤을 때 통증을 느끼죠 그 통증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준 복 가운데 복입니다. 뭐가 복이에요 통증이! 여러분, 과로하면 그 증상이 나타납니까, 안 나타납니까 증상이 나타나는 것, 그게 복입니다. 증상이 안 나타나면 그냥 피곤한 줄 모르고 병이 드는지도 모르고 과로하다가 죽는 겁니다. 통증이 있으니까 이상만 나타나면 절제하고 준비하지요. 축복입니다. 이 식욕이라는 것도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 중의 하나입니다. 잠언에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해 아래 먹는 것보다 즐거운 낙이 없느니라 그랬어요. 여러분, 즐거움 가운데 최고의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먹는 것 이상의 즐거움은 없을 거에요. 하루만 굶어봐요. 먹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알게 될 겁니다. 기도원에 가서 금식을 하면 말이죠, 기도원에서 주는 음식이 변변치 못한데도, 된장국에 시래기 좀 넣고 멸치 하나 정도 뜰까 말까한 그 음식이 금식기도하면서 쳐다만 보아도 기도가 안 나오지요 그것이 얼마나 맛있게 보이는지. 먹음직스럽잖아요 먹는 것처럼 큰 즐거움이 없을 거에요. 하나님이 주신 복 중에 복입니다. 성욕도 마찬가지에요. 인간에게만 성욕을 준 것은 아니에요. 짐승에게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성을 아름답게 주셨습니다. 짐승은 새끼를 낳기 위한 산란기 때만 성적인 충동을 줍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성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셨습니다. 부부관계에서 이성을 아름답게 즐기는 것은 복 중에 복입니다. 부부관계에만 성을 즐기는 것이 특권이고 은혜입니다. 성은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아담에게 하와를 주셔셔 배필을 삼으셨습니다. 그는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하나입니다. 무촌입니다. 여러분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 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먹는 것을 탐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무엇을 탐하지 말라고요 먹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본능이지만 그것이 과하면 몸에 이상이 생깁니다. 욕심이 과하면 범죄의 길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성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것이요, 축복이고 은혜이지만, 이것이 과하면 가장 추한 것이요, 가장 악한 죄악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마지막으로 무어라고 말합니까 지나치면 악하기 때문에 억제하고 절제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암논의 죄는 무엇입니까 그가 아름다운 다말을 보고 연모하는 마음은 정상일 수가 있습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정말 아름다운 여자가 지나가면 옆에 부인이 있지만 고개가 돌아갑니까, 안 돌아갑니까 사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것은 비정상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난 다음 보시니 아름다우므로 “심히 좋았더라” 그러셨어요.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이에요. 아름다움은 축복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 이상으로 넘어가니까 문제인 겁니다. 암논과 다말은 더 이상 가까이 가서는 안 될 관계입니다. 아름다움을 보고 흠모하는 마음은 가질 수 있지만 그 마음을 계속 주어서는 안 되고 더더군다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되는데, 그는 악한 발동을 통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형제를 속여서 악한 자리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음행이라는 것은 성적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 “나는 이 범죄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착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다윗도 엄청나게 하나님의 훈련을 받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 만큼은 자만해서 안 될 일입니다. 왠지 압니까 본능 중의 하나이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저나 여러분은 음녀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음녀 문제를 가장 적나라게 표현한 구절은 잠언에 있습니다. 잠언 5장 1절에서 18절까지를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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