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말의 행위와 하나님의 뜻 (창38:1:26)
본문
성도 여러분 오늘의 본문을 읽으시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어떻게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십니까 아니면 오늘의 내용이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은 없으십니까 저도 신학적인 사고가 자리를 잡아가기 전에는 오늘의 내용이 성경에 어떻게 있게 됬는지 아니면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다말이라는 여인이 자기의 남편과 시동생,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아버지까지 유혹해서 근친상간을 유도하는 내용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잘 모르겠고 그러니 저도 성경을 읽다가 이부분은 그냥 넘어가곤 했습니다. 경건한 성경책에 어떻게 이런 내용이 들어갔을까 하고 의아해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 3절을 보게 되면 무엇이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까 다말이라는 여인은 예수의 족보에까지 올라간 여인입니다. 어떻게 이런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갈 수 있나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내용을 보게 되면 세가지 차원에서 의구심이 생깁니다.
첫째로 다말은 남편이 죽자 시동생인 오난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난이라는 사람이 아기를 않만들려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오난을 죽이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말은 오난이 죽자 어린 셀라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시아버지가 셀라마저 죽일까 겁을 내게 되어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게 되니다말은 몸을 파는 여인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여기서 왜 다말은 창녀로 변신을 하게 되었는지, 집안 전체를 말아먹을려고 하는지 궁금하게 됩니다.
셋째로는, 배가 부르게 된 다말을 부족 전체회의 거쳐 화형식을 가지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누구냐 하고 묻자 아기의 아버지는 당신이라 했을 때 시아버지는 "너가 나보다 옳도다"라고 이야기 한 까닭입니다. 그럼
첫째로, 다말의 인물됨과 그에 대한 교훈에 대해서 기존 주석가들은 어떻게 설명했는지 살표보도록 합시다. 먼저 라이프성경의 성경인물 연구에서 다말이라는 여인의 교훈입니다. “다말이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계보에 올랐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죄를 승인하셨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실패까지도 그분의 역사에 사용하셨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성경은 영웅전이 아니다.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이 사용되었다는 행복한 경험을 한 죄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말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말은 죄인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사용하신다는 일반적인 이야기 이상으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나름대로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민영진 교수의 설명은 다음고 같습니다. “이방인 여자 과부인 다말에게 부당하게 덮어씌어진 운명을 다말 자신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말은 부당한 운명에 항거합니다. 지혜와 용기가 함께 동원된 항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대단히 위험한, 목숨을 저당 잡히는 위험한 모험이었습니다. 창녀로 변장한 다음 시아버지 유다를 유인하여, 한편으로는 그를 통하여 남편의 대를 이어 가겠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셋째 시동생 셀라를 자기에게 남편으로 주지 않은 시아버지 유다의 부당함을 일깨우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민영진교수는 자신의 부당한 인생살이에 저항하는 다말의 이야기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의 이야기가 단순한 저항의 차원의 이야기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가 됩니다. 그 다음인
둘째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땅에 대해서 입니다. 먼저 창세기 12장 1절에서 2절의 말씀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이 짧은 말 속에는 정착해 살 땅이 없어 이리저리 떠돌며 방황하거나 혹은 고작 남의 땅에 빌붙어 구차하게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선조들 중의 하나인 아브라함의 희망의 본질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소유의 땅에서 많은 자손을 낳고 안정되게 사는 것, 바로 이런 희망이 오죽 간절했으면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가 최초로 언급되는 창세기 12장의 서두에 언급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러한 희망은 결국 에집트에서 광야로의 탈출을 하게 하고 가나안 땅으로의 진입을 하게 됩니다.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일에 그 땅을 누구에게 주었고, 어떻게 나누어 주었으며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주고 혹은 누구는 많이 주고 누구는 적게 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되면 예전에 족장들이 땅이 없어서 설움당했던 것처럼, 또 다시 설움당하며 사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땅을 똑같이 나누어 주게 됩니다. 큰 지파에게는 많이, 작은 지파에게는 적게 주었습니다. 또한 12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는 농사를 짓지 않고 성전 일을 도왔기 때문에 일단 빼고, 11지파에게만 골고루 땅을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땅에 대한 생각은 법령으로 제도화 하게 되었습니다. “남의 땅을 절대로 침범하거나 빼앗아서는 안된다.”(신명기 27:17,잠언22:28;잠언 23:10) “땅을 사고 팔아서는 안 된다.”(레위기 25:23-28) “제 땅은 다시 되돌려 살 수 있어야 한다.”(레위기 25:23-28) “희년법”(레위기 25장)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직접 나눠주신 이 땅이 그토록 소중했던 것입니다. 자기의 것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이런 기쁨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자기의 것이 하나도 없고, 그것도 남의 종살이로 살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기의 땅이란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세번째로는 시형제 결혼법에 대해서 알아야만 오늘의 말씀을 이해가 될 것입니다. 가나안땅에 시작된 평등사회인 이스라엘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확대가족입니다. 확대가족은 가장과 그의 아내들, 아들들, 결혼하지 않은 딸들, 며느리들과 어린아들을 포함하는 혈족단위이고 기본적인 경제단위입니다. 즉 생산과 분배, 소비들이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자급자족의 단위였습니다. 이 확대가족이 자기 삶의 기반인 토지를 잃고 땅주인에 예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율법은 땅을 사고 파는 것을 금지한다고 위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단 대표적인 성서구절을 읽어 보도록 합시다. 신명기 19장 14절입니다.-신명기 27장 17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고대근동의 다른 지방에서는 과부에게 재산을 상속하였으나 이스라엘은 과부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른 지파에서 시집온 부인에게 재산이 상속될 경우 토지가 확대가족을 벗어나 다른 지파의 재산으로 귀속되게 됨으로 이러한 재산의 이동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그대신 과부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맏형이 사망할 경우 시형제와 결혼하게 하는 시형제결혼법을 강력하게 시행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시형제가 이러한 의무를 무시하면 그의 집안은 ‘신 벗긴 집안’이라고 불리우며, 그 공동체에서 망신을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형제 결혼의 의무는 시형제가 없을 경우에는 가까운 친척에게까지 확대되는 것을 볼수 있는 것이 성서의 롯기를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형님이 고인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재산 상속의 순서가 부인에게서 난 아들과 딸-결혼한 고인의 친형제-삼촌-친척의 순으로 되어 있으므로 형의 자손을 나아주지 않으면 친형제에게 재산이 상속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생각하면 오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시면 아까 읽었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 될 것입니다. 제가 풀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다말이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유다의 맏아들 엘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엘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므로 죽게 되었습니다. 엘이 죽자 다말은 시형제결혼법에 의해서 오난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됬습니다. 오난은 형 엘의 자손을 이어야 할 책임이 있었지만 아들을 안만들어 그 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하려고 했기에 나름대로 피임을 하게 됩니다. 역시 하나님의 눈밖에 나게 돼 오난이 죽게 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셀라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셀라가 아직 어리므로 나중에 결혼을 하자고 시아버지는 다말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시아버지인 유다는 속으로 셀라마저도 죽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유다의 아내가 죽고
셋째아들인 셀라가 다 컸는데도 유다는 셀라와 다말과 결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이에 다말은 창녀로 변장을 해 시아버지를 유혹을 하게 되는데 시아버지가 화대로 나중에 새끼 염소를 보낸다고 했는데 다말은 그 염소가 오기전에 담보물로 가지고 계신 도장과 허리끈과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를 잠시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말이 유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다말은 집으로 돌아와서, 창녀의 옷을 벗고, 도로 과부의 옷을 입었습니다. 한편 유다는 자기 친구에게 새끼 염소를 보내면서 창녀에게서 담보물을 찾아오게 하였으나 그 여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는 유다에게 가서 그 지역에는 창녀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다말의 배가 불러오고 창녀짓을 했다는 소문을 들은 유다는 “그를 끌어다가 화형에 처하”라고 합니다. 다말은 끌려 나오면서 시아버지에게 전갈을 보내게 되는데 그 전갈에는 “저는 이 물건 임자의 아이를 배었습니다.” “잘 살펴보십시오 이 도장과 이 허리끈과 이 지팡이가 누구의 것입니까!” 유다는 그 물건을 알아보고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나의 아들 셀라를 그 아이와 결혼시켜야 했는데” 하고 말하고 유다는 그 뒤로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본문말씀의 내용을 풀어서 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의 말씀의 의미가 이제는 어느정도 보입니까 저는 오늘의 내용속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잡히게 됩니다.
첫째로는 다말과 결혼한 엘과 오난, 결혼을 해야하지만 어리기 때문에 하지 않았던 셀라, 그리고 시아버지를 통해서 시형제 결혼법에 의해서 다말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지 다말이라는 여자가 남자를 밝혀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로는 오난의 부부생활에서 나타난 문제 입니다. 오난은 시형제 결혼법에 의해서 당연히 형 엘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설정을 했다고 합니다. 설정이라는 것은 땅바닥에 뿌렸다는 것입니다. 왜 오난이라는 사람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다말이 아이를 낳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형의 재산은 오난에게로 가게 됩니다. 재산 상속의 순서가 고인이 된 형의 아내에게 아이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친형제에게로 오는 것을 오난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서 분배해주신 땅이 어느 한 개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오난을 죽이게 됩니다. 이는 가나안에서 여리고성 전투를 이기고 아이성싸움에 대패한 이스라엘 군이 원인을 분석해 보니 아간이라는 자가 전리품을 숨겨 놓은 사건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쩨로는
셋째 동생인 셀라가 다컸음데 불구하고 시아버지인 유다는 결혼을 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유다는 다말이 남자를 잡아먹는 여자로 보였나 봅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이 엘과 오난 모두 보시기에 나쁜 놈들이니까 죽인 것이었습니다.
넷째로
셋째와의 결혼이 지연되자 다말은 일단의 결심을 하게 합니다. 창녀로 변신을 해서 시아버지인 유다를 유혹해서 엘의 대를 잇게 합니다. 만일 계속해서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엘의 제산은 어떻게 됩니까 엘의 재산은 다말에게로 상속이 됩니다. 다말에게 재산이 상속이 된다는 것은 다른 지파에서 와서 결혼을 한 다말이 그 지파로 재산을 가지고 가게 되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분배해주신 재산이 이상이 생기게 됩니다. 창녀로 변신한 다말은 한 사람인 시아버지만을 목적으로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윤리적인 눈으로 보게 되면 아주 나쁜 며느리 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윤리적인 잣대를 벗어던지고 내용을 보게 되면 다말은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게 따른 여인일 뿐입니다. 다섯째로 다말이 화형을 당하기전 배속의 아이의 아비는 이 물건의 주인입니다. 했을 때 유다가 한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너가 나보다 옳도다 한 내용입니다. 만일 욕정에 싸인 여인일 경우 그런 대답이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잠시 하나님의 뜻과 시형제결혼법을 어긴 자신이었기에 다말에게 너가 나보다 옳도다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판단으로 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내용이 오늘 우리의 윤리적인 잣대로 보게 되면 얼마나 외설스러운 내용입니까 하지만 우리의 윤리적인 잣대를 벗어던지고 자세히 보면 분명 다말은 하나님의 뜻에 충실한 여인이고 다말과 관계를 가졌던 유다의 아들인 엘과 오난, 심지어 시아버지인 유다는 하나님의 뜻을 어겼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보았을 때 자기에게 상속이 되면 얼마나 좋겠지만은 만일 그렇게 되면 노예생활을 벗어던지고 간안을 향해 탈출해 형성한 평등사회인 이스라엘이 붕괴되어지기 때문에, 다말은 자기 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소중이 여기고 실천하고 있는 다말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경험과 의지와 윤리적인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사회의 문제를 꽤뚫어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만 합니다. 자기의 의지 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소중하게 여기고 실천했던 다말, 하나님의 뜻이었던 평등한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해 몸소실천 했던 다말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실천하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내용을 보게 되면 세가지 차원에서 의구심이 생깁니다.
첫째로 다말은 남편이 죽자 시동생인 오난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난이라는 사람이 아기를 않만들려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오난을 죽이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말은 오난이 죽자 어린 셀라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시아버지가 셀라마저 죽일까 겁을 내게 되어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게 되니다말은 몸을 파는 여인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여기서 왜 다말은 창녀로 변신을 하게 되었는지, 집안 전체를 말아먹을려고 하는지 궁금하게 됩니다.
셋째로는, 배가 부르게 된 다말을 부족 전체회의 거쳐 화형식을 가지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누구냐 하고 묻자 아기의 아버지는 당신이라 했을 때 시아버지는 "너가 나보다 옳도다"라고 이야기 한 까닭입니다. 그럼
첫째로, 다말의 인물됨과 그에 대한 교훈에 대해서 기존 주석가들은 어떻게 설명했는지 살표보도록 합시다. 먼저 라이프성경의 성경인물 연구에서 다말이라는 여인의 교훈입니다. “다말이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계보에 올랐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죄를 승인하셨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실패까지도 그분의 역사에 사용하셨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성경은 영웅전이 아니다.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이 사용되었다는 행복한 경험을 한 죄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말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말은 죄인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사용하신다는 일반적인 이야기 이상으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나름대로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민영진 교수의 설명은 다음고 같습니다. “이방인 여자 과부인 다말에게 부당하게 덮어씌어진 운명을 다말 자신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말은 부당한 운명에 항거합니다. 지혜와 용기가 함께 동원된 항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대단히 위험한, 목숨을 저당 잡히는 위험한 모험이었습니다. 창녀로 변장한 다음 시아버지 유다를 유인하여, 한편으로는 그를 통하여 남편의 대를 이어 가겠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셋째 시동생 셀라를 자기에게 남편으로 주지 않은 시아버지 유다의 부당함을 일깨우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민영진교수는 자신의 부당한 인생살이에 저항하는 다말의 이야기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의 이야기가 단순한 저항의 차원의 이야기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가 됩니다. 그 다음인
둘째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땅에 대해서 입니다. 먼저 창세기 12장 1절에서 2절의 말씀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이 짧은 말 속에는 정착해 살 땅이 없어 이리저리 떠돌며 방황하거나 혹은 고작 남의 땅에 빌붙어 구차하게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선조들 중의 하나인 아브라함의 희망의 본질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소유의 땅에서 많은 자손을 낳고 안정되게 사는 것, 바로 이런 희망이 오죽 간절했으면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가 최초로 언급되는 창세기 12장의 서두에 언급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러한 희망은 결국 에집트에서 광야로의 탈출을 하게 하고 가나안 땅으로의 진입을 하게 됩니다.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일에 그 땅을 누구에게 주었고, 어떻게 나누어 주었으며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주고 혹은 누구는 많이 주고 누구는 적게 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되면 예전에 족장들이 땅이 없어서 설움당했던 것처럼, 또 다시 설움당하며 사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땅을 똑같이 나누어 주게 됩니다. 큰 지파에게는 많이, 작은 지파에게는 적게 주었습니다. 또한 12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는 농사를 짓지 않고 성전 일을 도왔기 때문에 일단 빼고, 11지파에게만 골고루 땅을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땅에 대한 생각은 법령으로 제도화 하게 되었습니다. “남의 땅을 절대로 침범하거나 빼앗아서는 안된다.”(신명기 27:17,잠언22:28;잠언 23:10) “땅을 사고 팔아서는 안 된다.”(레위기 25:23-28) “제 땅은 다시 되돌려 살 수 있어야 한다.”(레위기 25:23-28) “희년법”(레위기 25장)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직접 나눠주신 이 땅이 그토록 소중했던 것입니다. 자기의 것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이런 기쁨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자기의 것이 하나도 없고, 그것도 남의 종살이로 살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기의 땅이란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세번째로는 시형제 결혼법에 대해서 알아야만 오늘의 말씀을 이해가 될 것입니다. 가나안땅에 시작된 평등사회인 이스라엘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확대가족입니다. 확대가족은 가장과 그의 아내들, 아들들, 결혼하지 않은 딸들, 며느리들과 어린아들을 포함하는 혈족단위이고 기본적인 경제단위입니다. 즉 생산과 분배, 소비들이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자급자족의 단위였습니다. 이 확대가족이 자기 삶의 기반인 토지를 잃고 땅주인에 예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율법은 땅을 사고 파는 것을 금지한다고 위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단 대표적인 성서구절을 읽어 보도록 합시다. 신명기 19장 14절입니다.-신명기 27장 17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고대근동의 다른 지방에서는 과부에게 재산을 상속하였으나 이스라엘은 과부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른 지파에서 시집온 부인에게 재산이 상속될 경우 토지가 확대가족을 벗어나 다른 지파의 재산으로 귀속되게 됨으로 이러한 재산의 이동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그대신 과부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맏형이 사망할 경우 시형제와 결혼하게 하는 시형제결혼법을 강력하게 시행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시형제가 이러한 의무를 무시하면 그의 집안은 ‘신 벗긴 집안’이라고 불리우며, 그 공동체에서 망신을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형제 결혼의 의무는 시형제가 없을 경우에는 가까운 친척에게까지 확대되는 것을 볼수 있는 것이 성서의 롯기를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형님이 고인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재산 상속의 순서가 부인에게서 난 아들과 딸-결혼한 고인의 친형제-삼촌-친척의 순으로 되어 있으므로 형의 자손을 나아주지 않으면 친형제에게 재산이 상속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생각하면 오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시면 아까 읽었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 될 것입니다. 제가 풀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다말이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유다의 맏아들 엘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엘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므로 죽게 되었습니다. 엘이 죽자 다말은 시형제결혼법에 의해서 오난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됬습니다. 오난은 형 엘의 자손을 이어야 할 책임이 있었지만 아들을 안만들어 그 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하려고 했기에 나름대로 피임을 하게 됩니다. 역시 하나님의 눈밖에 나게 돼 오난이 죽게 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셀라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셀라가 아직 어리므로 나중에 결혼을 하자고 시아버지는 다말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시아버지인 유다는 속으로 셀라마저도 죽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유다의 아내가 죽고
셋째아들인 셀라가 다 컸는데도 유다는 셀라와 다말과 결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이에 다말은 창녀로 변장을 해 시아버지를 유혹을 하게 되는데 시아버지가 화대로 나중에 새끼 염소를 보낸다고 했는데 다말은 그 염소가 오기전에 담보물로 가지고 계신 도장과 허리끈과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를 잠시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말이 유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다말은 집으로 돌아와서, 창녀의 옷을 벗고, 도로 과부의 옷을 입었습니다. 한편 유다는 자기 친구에게 새끼 염소를 보내면서 창녀에게서 담보물을 찾아오게 하였으나 그 여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는 유다에게 가서 그 지역에는 창녀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다말의 배가 불러오고 창녀짓을 했다는 소문을 들은 유다는 “그를 끌어다가 화형에 처하”라고 합니다. 다말은 끌려 나오면서 시아버지에게 전갈을 보내게 되는데 그 전갈에는 “저는 이 물건 임자의 아이를 배었습니다.” “잘 살펴보십시오 이 도장과 이 허리끈과 이 지팡이가 누구의 것입니까!” 유다는 그 물건을 알아보고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나의 아들 셀라를 그 아이와 결혼시켜야 했는데” 하고 말하고 유다는 그 뒤로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본문말씀의 내용을 풀어서 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의 말씀의 의미가 이제는 어느정도 보입니까 저는 오늘의 내용속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잡히게 됩니다.
첫째로는 다말과 결혼한 엘과 오난, 결혼을 해야하지만 어리기 때문에 하지 않았던 셀라, 그리고 시아버지를 통해서 시형제 결혼법에 의해서 다말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지 다말이라는 여자가 남자를 밝혀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로는 오난의 부부생활에서 나타난 문제 입니다. 오난은 시형제 결혼법에 의해서 당연히 형 엘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설정을 했다고 합니다. 설정이라는 것은 땅바닥에 뿌렸다는 것입니다. 왜 오난이라는 사람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다말이 아이를 낳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형의 재산은 오난에게로 가게 됩니다. 재산 상속의 순서가 고인이 된 형의 아내에게 아이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친형제에게로 오는 것을 오난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서 분배해주신 땅이 어느 한 개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오난을 죽이게 됩니다. 이는 가나안에서 여리고성 전투를 이기고 아이성싸움에 대패한 이스라엘 군이 원인을 분석해 보니 아간이라는 자가 전리품을 숨겨 놓은 사건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쩨로는
셋째 동생인 셀라가 다컸음데 불구하고 시아버지인 유다는 결혼을 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유다는 다말이 남자를 잡아먹는 여자로 보였나 봅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이 엘과 오난 모두 보시기에 나쁜 놈들이니까 죽인 것이었습니다.
넷째로
셋째와의 결혼이 지연되자 다말은 일단의 결심을 하게 합니다. 창녀로 변신을 해서 시아버지인 유다를 유혹해서 엘의 대를 잇게 합니다. 만일 계속해서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엘의 제산은 어떻게 됩니까 엘의 재산은 다말에게로 상속이 됩니다. 다말에게 재산이 상속이 된다는 것은 다른 지파에서 와서 결혼을 한 다말이 그 지파로 재산을 가지고 가게 되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분배해주신 재산이 이상이 생기게 됩니다. 창녀로 변신한 다말은 한 사람인 시아버지만을 목적으로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윤리적인 눈으로 보게 되면 아주 나쁜 며느리 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윤리적인 잣대를 벗어던지고 내용을 보게 되면 다말은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게 따른 여인일 뿐입니다. 다섯째로 다말이 화형을 당하기전 배속의 아이의 아비는 이 물건의 주인입니다. 했을 때 유다가 한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너가 나보다 옳도다 한 내용입니다. 만일 욕정에 싸인 여인일 경우 그런 대답이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잠시 하나님의 뜻과 시형제결혼법을 어긴 자신이었기에 다말에게 너가 나보다 옳도다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판단으로 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내용이 오늘 우리의 윤리적인 잣대로 보게 되면 얼마나 외설스러운 내용입니까 하지만 우리의 윤리적인 잣대를 벗어던지고 자세히 보면 분명 다말은 하나님의 뜻에 충실한 여인이고 다말과 관계를 가졌던 유다의 아들인 엘과 오난, 심지어 시아버지인 유다는 하나님의 뜻을 어겼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보았을 때 자기에게 상속이 되면 얼마나 좋겠지만은 만일 그렇게 되면 노예생활을 벗어던지고 간안을 향해 탈출해 형성한 평등사회인 이스라엘이 붕괴되어지기 때문에, 다말은 자기 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소중이 여기고 실천하고 있는 다말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경험과 의지와 윤리적인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사회의 문제를 꽤뚫어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만 합니다. 자기의 의지 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소중하게 여기고 실천했던 다말, 하나님의 뜻이었던 평등한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해 몸소실천 했던 다말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실천하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