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다말의 희생 (창38:21-26)

본문

어떤농부가 소를 길렀는데 새끼를 두 마리나 낳았다.그래서 기뻐하면서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여호와 하나님께서 송아지를 두 마리나 낳게 해 주셨습니다.감사하여 그중에 한 마리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
그런데 얼마후 그중 한 마리가 죽어버렸습니다. 다시 그농부가 시무 룩한 표정으로 목사에게 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하나님의 송아지 가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헌신하고 있는가 불리한 상황이 되면 항상 하나님의 송아지만 죽어 나가는 헌신을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손해보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손 해보십시오 희생하십시오 말하고 있는 우리들은 아닌가 오늘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거듭난 우리들이 어떤 헌신을 드려야 할지를 생각 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신앙의 인물이라하면 모세나 다윗과 같은 그런 위인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다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더물다. 우리가 이 다말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 아 니라 아예 못되먹은 여인으로 손가락질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그래서 이 창세기 38장은 읽 어서 안되고 설교해서는 안되는 본문처럼 오해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유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말의 헌신, 희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기 억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다말이라는 존재없는 한 여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의 언약의 혈통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다시말해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역사가 어떻게 이루 어졌는가를 말씀해 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란다. 이 창 38장의 사건은 유다가 자기 형제들을 떠나 이방인들 가운데 정착하게 되면서 일어나 게 된다.유다가 이방인들 가운데 살면서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그리고 그를 통하여 세아들을 낳게 된다.그 첫째 아들은 엘 이며,들째는 오난
셋째는 셀라 였다. 이 아들들이 장성하자 유다는 장자 엘 을 위하여 역시 그곳 가나안 여인들 중에서 다말 이라고 하는 여인을 취하여 며느리로 삼는다.
그런데 이때 유다의 가정에 뜻밖의 불행한 일 이 발생한다. 유다의 장자 엘 이 결혼한 후 자식을 낳지도 못하고 죽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장자가 죽자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 에게 네형이 후사도 없이 죽었으니 너가 형을 대신하여 형수와 동침하여 형의 자식을 낳으라고 한다./그러나 들째 아들 오난은 이것을 거 부하였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0절에 보면 오난을 향하여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라고 했다.왜 성경은 이러한 오난의 행위가 악하다고 하는가 (신25:5)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 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신25:6)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이것은 계대 결혼법 , 혹은 시형제 결혼법 이라는 것이다.형제가 자식이 없이 죽었을 경우 그의 가장 가까운 형제 친척이 그 형제를 위하여 자식을 낳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그리고 계속하여 7절 이하에 보면 만일 그것을 거부하는 자가 있을 경우 그의 신발을 벗기고 얼굴 에 침밴음을 당하는 수치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상당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하나님 주신 기 업을 보존/ 한가정의 대가 끊긴다는 것은 그 가정에 속한 기업이 상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하나님 언약의 공동체로서의 특성을 나타내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법을 시행하는 것은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낳는 아들은 자기의 아들이 아니라 형의 아들이 되는 것이며, 형의 유산은 자기의 재산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대신 낳은 형의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보존하였다가 그에게 돌려 주어야 하는 희생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이런 역활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히브리말 로 고엘 이라 불렀다.즉 속량자(구속자)라는 말이다. 이렇게 하므로 구약의 가장 중심적인 정신-가난한 자,약한 자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라는 이웃사랑의 정신을 나타내라는 것이다. /이것이 출애굽의 정신이요,안식일의 정신이며,안식 년,희년의 핵심사상이며 율법의 정신이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정신이었다. 특별히 우리는 이 유다 가문이 장차 하나님의 구속사업을 위하여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유다의 가문은 그냥 의미없이 존재하다가 없어져도 되는 보통의 가문 이 아니라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태어날 가문이요,더 나아가서는 메시야가 오실 혈통임을 생각할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의 정신을 따라 누군가가 유다 집안의 고엘이 되어야 하 며,그의 희생에 의하여 장자 엘 의 후사가 이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난은 이것을 거부했다.이것이 하나님보시기에 그의 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다도 이일에 무관심했다. /순식간에 장자와 차자 두아들을 잃게 되자 유다는 며느 리 다말을 그의 친정으로 쫓아 보내버린다. (이런 경우 대개 어떤 말을 하나) 쉽게 말해 유다는 악귀가 붙은 재수 없는 여인 다말 때문에 자기의 두 아들이 죽었다고 판단하고서 다말을 내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다말은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불신앙가운데 살아가는 시아버지와 그 가문을 위하여 다말은 정숙한 과부의 의복을 벗어 던졌다.그리고 감히 창녀의 모습으로 변장을 한 후 시아버지를 유혹하였던 것이다. 단순히 인간 사회의 한시적인 윤리 도덕을 기준으로 이사건을 바라보지 말라.기독교신앙을 윤리도덕으로 대체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기독교는 윤리와 도덕을 부시한다는 말씀이 아니다) 도덕보다도 더 위에 있는 법을 생각해야 한다./ 윤리적으로 형편없는 여인이 라는 욕을 얻어먹으면서도(희생하면서) 하나님의 법을 나타내었다.하나님의 의를 추구했었 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일의 전말이 드러났을 때 유다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창38: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그대로 번역을 하자면 너의 의가 나보다 낫구나라고 외쳤던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라! 다말은 왜 창녀가 되어야 했는가 그정숙한 여인이 왜 창녀의 수치 를 당해야만 했나 다말이 당하였던 그 부끄러움과 수치는 누가 당해야 할 부끄러움이었는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세속에 빠져 하나님의 약속을 망각한 시아버지 유 다에게 주어져야할 부끄러움이요,수치가 아닌가 그러나 다말은 무너져가는 메시야 가문을 살리기 위하여 시아버지가 당해야할 조롱과 수치를 대신하여 스스로 창녀의 부끄러움을 자청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다말을 향하여 감히 어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누가 그를 향하여 너는 더 러운 창녀요,시아버지와 간음한 음부라고 욕할수 있겠는가 결코 그는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창녀의 옷을 입은 것이 아니었다. 먹고 살기 위하여 길거리로 나갔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며,가문이 위기에 처했 음을 깨닫지 못하는 시아버지를 고발하고,어떻게 하든지 약속의 혈통을 이어야 한다는 믿음 으로,시아버지를 자신의 고엘로 지목하고,스스로 창녀의 수치를 당하고자 결심했던 것이다. 이러한 희생이 바로 다말의 의로움이요,믿음이다. 이 다말의 희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룻4:11-12)보아스와 결혼하는 룻에게 이렇게 축복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마1:3에서 메시야의 족보를 기록함에 있어서 마태는 분명하게 이 위대한 다말의 의로운 행 위를 나타내고 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혈통을 타고 이세상에 오셨나 육체적으로는 유다의 후손으로 오셨지 만, 다말의 신앙을 소유한 자들의 의로운 혈통을 가지고 이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족보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그와같은 십자가 정신을 가지 고 희생하는 자들이 진정 예수님의 후손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사람들로 통하여 세워져 가고 있음을 믿으라.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시므로 우리 구원 을 이룩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내던지며 희생하고,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며, 심지어 생명바친 2,제3의 다말이 있었기에 오늘날 나에게까지,우리 침산제일교회에 까지 복음이 이어져 오게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여러분! 예수믿는 것 때문에 높임을 받고 존경받기 원하는가 아니면 다말처럼 희생하고 있는가 나는 창녀와는 다르다 그것을 의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예수 때문에 창녀의 수치를 당 하는 것이 의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이시대에 다말을 찾고 계신다.왜 전도가 안되는가 말잘하는 사람없어서 돈많은 사람없어서 다말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믿는 부모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왜 불신앙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가 누구책임인가 내가 본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다말처럼 헌신하고 희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 가정에 다말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에 다말이 되시기 바란다.이세상속에서 한사람의 다말로 살아가시기 바란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