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경건 생활2 (마6:1-18)

본문

예수께서는 6:5-8에서 기도 생활의 잘못된 것들을 지적했다. 외식하는 기도, 사람에게 보이려는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 등을 경계하고 하나님께 은밀히 기도하는 영적 생활을 권장했다. 이와 동시에 연계시켜 가르친 기도가 주님 가르치신 기도이다.
2.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 이라 함은 영원한 세계에 계신, 영생하는 세계에 계신 초월한 곳에 계신, 사람과 구별되는 세계에 계신 분이란 뜻으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 아버지여"라 함은 즉 생명의 관계, 사랑의 관계 축복과 도움의 관계를 말함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種 신앙인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어 초월하시고 영생하시는 하나님께서 제한되고 유한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내재하시며, 친밀하셔서 도우시는 은총을 베푸시는 관계이며.이 관계에 사이에 끊을 수 없는 생명의 흐름이 있음을 말함이다.
3.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에스겔 11:20에 "그들은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였고 에스겔 36:28에서도 그랬다. 신앙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일 즉 에스겔 11:10에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한 것과 같은 神認識이 없이는 신앙인이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높이는 일, 섬기는 일을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그의 본성과 성격이 거룩하시다. 이 거룩한 하나님을 신앙인과 만민에 의해서 거룩한 하나님으로 높이고 섬길 때 하나님께서 거룩히 여김을 받게된다. 거룩이라 함은 본래 "분리함"즉 구별되는 것을 의미한다. 바리새라는 말도 '분리한다'는 뜻이다. 제3계명(십계명)의 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하였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류가 타락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에 의해서 구원받은 무리들이 요한복음3:16말씀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세상의 다른 신과 구별되게 높이고 섬길때 하나님은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는 영원지존자가 되신다. 이 일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이루어지기를 기도 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성을 인류가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인식은 바울의 증거에서 찾을 수 있다.
(1) 에베소 1:3-5 에서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고 했으며
(2) 로마서 8:29-30에서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느니라" 하였다. 이상의 내용에서 볼 때 에베소에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의 말과 로마서에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의 말을 볼 때 그 의미와 뜻은 모두 하나님의 거룩을 인식하고, 경험하고, 인격화하기 위한 구원의 섭리를 기록했다. 에베소서와 로마서에 기록한 바울의 신인식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린도후서 4:6에서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한 바울의 다메섹 거리에서의 체험이 믿는자의 심령에 있어야 한다. 거룩하고 구별된 하나님은 거룩하게 구별된 신앙인에 의해서 거룩하게 여김을 받는다. 10절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1. 나라이 임하옵시며 나라는 왕이 통치하는 세계를 말한다. 나라(Kingdom) 란 말이 마태복음에 52회 마가복음에 20회, 누가복음에 46회 그리고 요한복음에 5회 기록 되어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어귀와 이와 동등한 표현들(하늘 나라, 그의 나라) 은 약 80회 사복음에 기록되었다. 이런 통계는 예수의 가 르침 중에서 이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예수께서 하나님나라 가 임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 회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회개하기 위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2) "내가 하나님의 성령님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으니라.(마12:28)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의 임재와 귀신을 쫓아냄으로써 이루어 진다.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에 관하여는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하늘로써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계 20:1-3) 한 말씀도 악마를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나서야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주적 종말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개인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적이며 규모에 있어서 다를 뿐 하나님의 통치라는 성격에 있어서 동일하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우주적이든 개인적이든 차별이 없이 임하게 하기 위해서 신앙인들은(교회는) 기도해야 한다.
2.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예수께서 말한 뜻은 하나님의 뜻으로써 사람이 행할 윤리적 계명에 기록된 것과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의 결의를 가르키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뜻이 이루어 지는 때는 예수 안에서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은총으로써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6:38-40)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라고 하는 '하늘'은 영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의지를 말한다. 이상의 말을 종합한다면 예수에게 주신자 즉 아들을 보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데 이들은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부활)것이 라고 말했음을 볼 수 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이라 함은 인류를 예수를 통하여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뜻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가르켜 말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내가 하늘로써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6:38-39) 하였다. 이 하나님의 뜻은 예수의 복음증거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를 통해서 예수 앞에 나오고 믿는 이들에게 영생이 주어져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11절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0절가지 하나님에 대한 기도와 인류 구원에 대한 기도가 그치고 11절 에서는 사람을 위한 기도가 시작된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1) 몸의 양식으로써 물질 (음식,물,공기)를 먹어야 하며
(2) 이성의 야식으로써 지식을 먹어야 하며
(3) 영혼은 신령한 양식(예수의 피,살,말씀)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며 힘을 얻고 발휘하여 목적을 달성한다. 이 귀절을 육신의 양식으로 해석한 (Calvin,Bruee) 자들도 있으며, 영적 양식으로 해석한 (Augutine)자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사람의 생명은 흙(몸)과 생기(영혼)의 결합에 의해서 세상(이 땅) 에서 삶을 존재하게 한다. 몸과 영혼의 분리는 즉 죽음이며 결합은 생명이다. 예수의 40일 광야 기도가 끝나게 되었을 때 마귀가 예수에게 돌로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하였다. 이 말씀의 의미는 사람은 몸이 떡으로 살아야 하되 그것은 '만'은 아니며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새로운 세계를 말했다. 이 새로운 세계라 함은 영혼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먹고 사는 신령한 세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과 예수의 살과 피(요6:53-55)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의 생명을 영생하게 하는 양식이 된다. 이와같은 양식을 먹기 위해서 예배를 통해서 일용할 양식(말씀)을 공급받아야 하며, 십자가 밑에서 신령한 양식(예수의 살)과 음료(예수의 피)를 마심으로 일용할 양식을 얻어야 영생에 이르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영혼이 잘되는 가운데서 "그의 나라라와 그의 의를. (마6:33) 구하면 육신의 양식도 넉넉히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전 인격적인 양식을 먹음으로써 신령한 일과 역사를 일으켜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5:17)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주의 일에 충성을 다 할 수 있다. 양식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양식과 일하기 위한 양식이 있다. 어떤 양식을 먹느냐 따라서 건강과 생명에 강함과 약함이 이루어진다. 12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가"라는 말과 "우리에게"라는 말의 개념에 차이가 있다. "우리가우리에게"는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구원의 공동체(교회) 일원으로서 사도신경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라는 고백과 같다. 이는 믿음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실수와 죄를 용서해주는 거룩한 교통을 의미한다고 본다. 또 다른 하나는 불신앙의 사람들, 구원받지 못하고 범죄한 자들을 "우리가"로 "우리에게"를 구원받은 개인과 공동체(교회)로 생각하여 불신앙의 행위를 구원받은 우리가 용서와 사랑을 베푸는 일이다. 마치 사도행전 16:27-31에서 바울사도가 자신을 가해한 사람의 죄를 간과하고 구원을 증거한 것과 같다.
2.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죄인 아닌 사람이 아무도 없다(롬3:10) 구원받는 신자도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죄지은 형제의 죄를 용서해주는 신령한 삶을 산 것과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타인의 죄를 용서하면 나의 죄도 용서받는다는 말이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이 말이 가르치는 용서의 정신은, 타인의 죄를 용서하는 삶을 사는 자는 자신의 죄도 용서받을 만큼의 신령한 신앙생활을 한다 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죄의 의미는 원문에 '빛'이라 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8:23, 누가복음 7:41-43에서 각각 죄를 빚으로 비유하여 해석했다. 용서를 한 자만이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13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멘)
1.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가 존재하지 않을때, 즉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는 신령한 은혜의 일이 없을때 시험에 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용서하지 않는자, 용서하지 못하는 자, 용서할 수 없는 자는 이미 믿음과 은혜 안에 있지 않으며 또한 시험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테두리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시험이 중단되지 않거나 악화될 때에 악에 빠지게 된다. 신앙인 또는 기도하는 자는 여기에서 구원을 받아야 된다.
그러므로 악에 빠지는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죄를 사하여 주지 않을 때 시작되어 멸망에 이르게 된다. 앞에 기록한 말을 해석해 주는 말을 바울이 고린도전서 2:10-11에서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다.라 말했다.
그러므로 용서하지 않는 자, 못하는자, 할 수 없는자는 사단의 궤계에 넘어지고 매어 있어 지혜로운 자 같으나 실상은 사단에게 속아 사는자 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시험에 들고 악에 빠져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된다.
2.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주님 기도의 후미에 기록된 이 내용은 송영인데 후세에 추가된 것이라 한다. 즉 예배의식을 위하여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나라에 관한 말은 10절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권세에 관해서는 13절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며, 영광에 관해서는 9절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시며"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후미의 말은 앞에 있는 주님이 가르친 기도를 간추려 정리한 말이라 하겠다.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영광의 응답으로 이루어 지며 응답된 기도는 하나님에게 영원한 것이다. 14절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절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 하시리라. 마태복음 18:15-35과 주님기도 (마6:12)에서도 볼 수 있다. 과실을 범한 자에 대하여 과실을 범하지 않은 자가 용서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세례요한의 증거와 예수의 증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3:2,4:17)에 비추어 볼 때 상층되는 점이 있다. 세례 요한은 마태복음 3:8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 하여 범죄한 자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범죄한 내용을 용서해줄 자에게 고백하고 용서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죄와 허물에 대한 용서의 길이 열릴수 없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징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 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17:3-4) 함으로써 죄를 범한 자 또는 과실을 범한 자가 잘못을 고백할 때의 용서를 말했다. 이와같이 죄의 고백이라고 하는 사실고백을 볼 때 용서는 하나님도 죄의 고백이 없을 때 허락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경건 생활(I) 성경


본문:마 6:1-18 1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 하라 한마디로 말해서 이 말씀은 예수의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위험성이 있는 행위에 대해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의"는 세속화 되며, 타락하게 되고 위선적으로 변질 되어버린다.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의'(롬3:22)를 내 '의'로 변질시켜 사람에게 과시한다는 것은 이미 타락으로 기울려져 있는 상태이다. 예수께서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16:23) 라고 베드로에게 말했다. 이처럼 예수의 제자된 자들이 하나님을 신앙행위나 경건행위가 아닌 사람에게 과시하는 것이라면 예수의 일을 (구원의 역사)을 넘어 뜨리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인위적 경건생활이나 신앙 행위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같은 위선과 외식에 이르게 한다.
2.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사람 앞에 '자기의 의'를 보이려고 행하는 행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할 일이 라고 경고한다. 바울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5) 하였으며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겨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배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에게니라" (딤후4:7-8) 요한사도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1서 2:16-17) 하였다.
그러므로 요한 소다가 말한 것과 같은 영적 허영심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것이 자기의 '의'를 사람들 앞에 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갈 5:24) 했다. 이상과 같은 신령한 차원에서 예수의 제자와 따르는 자들은 자기의 욕망과 신령한 싸움을 이겨야 한다. 2절
그러므로 구제 할때에 외식 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 구제할 때에 구제는 자비 동정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구제'는 본래 가난한 자와 병들어 있는 자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함으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 내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찌니라" (신15:11).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이스라엘이 구제해야 할 것을 명하였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 이니라"(마25:40) 함으로써 구제를 권장했다. 바울은 "만일 식물로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교회는 재물에 욕심이 없이 헌금하고 서로 나누어 먹음으로써 궁핍한 자가 없도록 구제에 힘썼다.(행6:1) 누가는,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 하신 바 되었으니"(행10:1-4)라고 기록하여 구제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경건한 일임을 증거했다. 이와 같은 구제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자들에게 물질적인 구제를 함으로 그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주어 힘을 얻거나 치료받을 기회를 만들어 낙심과 절망과 좌절의 위기를 모면하게 하고 구원의 길에서 실족하지 않도록 하게 하고 불신자로 하여금 구원의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구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는 솔로몬의 가르침과 같이 구제는 없어지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날이 있다. 또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14:31) 라는 말씀에서 구제는 하나님을 높이는 거룩한 일임을 격찬했다.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볼 때 구제는 하나님의 일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40일 금식기도 마지막에 사단과의 대화중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마4:4) 하신 말씀에 유의해야 한다. 또 바울의 말한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이라"(롬14:17) 한 말에 깊은 사려가 있어야 한다. 예수게서 말씀한 구제는 물질과 사랑의 마음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2.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으니라. '구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은 물질과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사랑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러나 더 한 차원을 높여 구제받을 자의 영혼을 사랑함과 영혼구원을 이루기 위한 행위어야 하다. 이와 같은 거룩한 행위를 실현해야 할 구제를 함에 있어서 예수 시대에 외식으로 구제하는 자들, 사람에게 영광의 영예를 얻고자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회당을 이용하거나 길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구제하는 자들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하늘의 상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이런 자들과 구별되어 하늘의 상을 받는 자들이 될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의 상은 사람들의 상보다 크고 영광되기 때문이다.
3. 너는 구제 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며 이 말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성자도 마찬가지며,성령님이 충만한 자도 그렇다. 문자적으로 볼 때 구제하는 자신도 모르게 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5:34-46 의 내용을 분석하면 의인들은 자기들이 행한 구제를 기억에서 모두 잊어버렸다. 그래서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 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37:39) 자기의 의로운 행위를 기억에 남겨두지 않는 자가 하나님의 보응을 받는 자가 된다는 가르침이다. 4절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1. 구제할 때에 은밀한 구제를 거듭 강조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나 인류에게 모든 생활의 편리를 허락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보살펴 주듯이 구제받을 자에게 구제하는 자가 보이지 않게 , 즉 은밀하게 살펴서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곧 진정한 구제라는 사실이다. 사람에게는 은밀하지만 하나님에게는 공개된 현실이 된다. 5절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기도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사람의 생각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성령님으로 기도하며"(유1:20)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눅 22:42) 예수께서 말씀하신 기도의 가르침은 깨어 기도하라9마26:41,막14:38),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막14:38,눅22:46),기도는 귀신을 내쫓는다(마9:29)라고 하였다. 예수의 재림의 때에 도망하는 날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했다. (마24:20)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식의 기도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바울의 말대로 기도는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하여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응답으로 받아야 한다.그러나 외식으로 기도하는 자들은 응답이라는 신령한 상을 받을 수 없다. 외식으로 기도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보이는 사람들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곧 스스로 속이는 자들이 되고 말았다.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는 이래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눅18:12). 이 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신앙적 관계로써 고백과 간구이다. 이 관계가 바로 된 후에야 모든 신앙의 행위가 바르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순결하고 바라야 한다. 열왕기하 4:33, 이사야 26:20에 '문을 닫고'라든가 '밀실에 들어가'라는 말들을 대하게 된다. 이상의 것들은 '골방에 들어가'라는 말과 뜻을 같이 한다고 본다. 골방은 '자르다'라는 뜻의 말로써 창고 별실, 다락이라는 뜻으로 이 곳은 세상 事로부터 물러나와 세상과 단절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신앙인은 기도 이외의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뢸수 없기 때문에 기도는 하나님의 은총의 방편이다.
2.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갚으시리라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기도로 끝나지 않고 응답을 필요로 한다. 이 응답은 은밀히 계시는 하나님 즉 보이지 않게 계시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게 갚아 주시는 응답이 있음을 말했다. 기도는 외형에 있지 않으며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신앙을 고백하여 소원을 아뢸 때 응답해 주신다.
그러므로 기도는 피조물인 신앙의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의 응답을 받는 거룩하고 복된 행위이기 때문에 은밀한 상황에서 신령한 성령님의 도움과 믿음으로 간구하여 이루어 진다. 7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1.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열왕기상 18장은 엘리야선지자가 아합왕 시대에 갈멜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불과 비를 기도의 응답으로 받은 내용을 기록했다. 열왕기상 18:25-29의 내용은 이방의신 곧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선지자들이 기도한 내용과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방인들은 중언부언 즉 중복되는 기도를 하였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는 하나님과 이방신은 비교할 수 없다.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는 기도의 응답이 있을 수 없다.
2.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이방인들은 신앙의 대상이 절대자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도의 말과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기도의 무응답은 기도말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부족으로 생기는 결과이다. 예수께서는 백부장에게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마8:13) 하였다. 이것이 예수의 믿음론이다. 야고보 사도는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5:15-16) 8절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1.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예수께서는 기도에 대하여 확실한 가르침을 주었다.
(1)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5절)
(2)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7절) 신앙은 기도의 응답이 있을 때 더욱 성장하며, 증거하며 증거를 받은 자들에게 믿음의 확신을 준다.
2.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믿음과 기도의 사람은 하나님께 구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꼭 있어야 할 것에 대한 지식이나 지혜 그리고 소유(응답)하는 신령한 신앙적 순서를 오판할 때가 많다. 수가성의 여인은 회개하지 않고 생명의 생수를 예수에게 구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회개함으로) 과 하나님의 '의'를 먼저 소유할 때에 먹고, 마시고,입는 것을 더 해주신다는 신령한 논리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자가 선행해야 할 영적 조건을 갖출 것을 가르치셨다. 그렇지 않는 사람이 기도할 때에는 말이 많은 기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있어야 할 것을" 알고 계신다. 이 "있어야 할 것을"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통하지 않고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1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