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6:9-13)
본문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사순절은 주님께서 수난받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사십일을 앞두고 지내는 교회절기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40일동안 광야에서 기도하신 것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40일기도는 이 사악한 세상나라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과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일전을 앞두고 행하신 마음의 준비이고 결의의 다짐이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이 사순절 기간동안을 특별한 묵상기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가 이 땅위에 심으려고 했는 하늘나라의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겨보는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동안에는 특별히 주기도(Lord's Prayer)를 연속적으로 묵상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기도는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셔서 행한 모든 구원의 역사의 경험을 가장 함축적으로 정리하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 주기도는 그의 가르침의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기도는 복음서의 요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기도 속에 복음의 내용이 모두 들어있고 예수님의 구원행동의 범위가 다 나타나 있습니다. 누가복음 11:1에는 이 주기도가 나오게 된 배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하고 요구한데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것은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가르쳐달라, 즉 기도의 형식같은 것을 가르쳐달라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가르침의 핵심을 알려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많은 종교가 있었는데 모든 종교에는 정해진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의 내용은 바로 그 기도의 내용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단순히 인간이 어려울 때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깊은 의미에서 신앙의 내용이며 한 종교가 갖는 신학의 핵심입니다. 정리된 기도는 한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신조(Creed)와 같습니다. 서양교회를 보면 예배서를 예배서(Book of Worship)라고 하지 않고 기도서(Book of Prayer)라고 하는데 이것은 기도가 곧 예배의 내용이고 신앙의 내용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선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먼저 주기도의 전체적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주기도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으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고 시작하신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점은 예수님의 기도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말을 듣노라면 기도란 당연히 하나님을 향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여기에는 아주 깊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정확한 정황은 모르지만 이런 가정을 한번 해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겠느냐 하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의 가르침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즉 “당신의 사상과 신학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제자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이 모든 권위를 다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최후의 힘이 있는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그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의 그 요청을 받고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고 가르쳐주신 첫대목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마지막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는 하나님에게로 다시 방향을 돌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속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그에게 권세가 있다고 보통 생각하는데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지 자신이 스스로 창출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끔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대통령에게 역사의 주권이 잡혀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때로는 아주 앞선 과학이, 경제가 역사의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역사, 이 세상의 생명은 어떤 철학도, 어떤 사상도, 어떤 이데올로기도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대뜸 돌아서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연속해서 기도하기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줄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어떤 계획과 뜻이 땅위에 임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주기도의 전체가 역사의 주인이, 이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주기도의 제일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는 말인데 현재 주기도의 형태에는 있습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이것을 영어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이것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당신의 것이란 말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절대신앙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가 주일예배를 드릴 때 이런 맥을 짚어가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예배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나온 우리는 예배 서두에 우리의 죄를 참회합니다. 그리고 용서의 확인을 받습니다. 그리고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에 응답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감사의 예물을 바칩니다. 중보기도를 하고 당신의 위로의 약속이 주어지면 그 다음에 우리는 일어서서 주기도송을 합니다. 그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주기도영창을 합니까 우리가 주기도송을 부를 때 막연히 찬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백은 이래야 할 것입니다. 이제 생은 나의 손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다시 한번 확인하거니와 나의 생명, 나의 삶, 우리의 생명, 우리의 삶, 이 역사와 인류의 미래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고 당신에게 그 권위가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 인간의 큰 착각은 우리의 역사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착각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말하기를 “주기도는 주님이 제자들과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하나님께 드린 기도며 오늘 우리가 이 기도를 드릴 때는 예수는 중보자가 아니라 우리와 나란히 한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드린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을 향해서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우리는 단지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죄인임으로 하나님께 감히 기도드리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해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으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말이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근원이요 역사의 주인이시다란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고의 권위를 바친 예수님 그 분이 기도를 드릴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고 자기의 자세를 하늘로 향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그런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그 의미는 이 세상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만 존재하지도 않고 세상만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보는 것은 주기도의 반은 하늘과 관계되어 있고 반은 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처음 세 가지 기도는 하늘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그 다음의 세 가지는 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 여 주옵시고 우리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런데 이렇게 하늘에 관계된 기도와 땅에 관계된 기도로 구성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주기도문은 끊임없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라이 (땅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라는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늘의 것이 땅에 이루어 지라는 것을 간구합니다. 이것은 땅이 땅 스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의해, 즉 하나님에 의해 존재하며 땅 스스로가 스스로 살 수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원칙과 축복하에서만 원만하게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땅의 독단적인 삶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이란 스포츠가 있습니다. 이 스포츠는 산소통을 짊어지고 바다 속에 들어가서 바다밑을 구경하고 즐기는 스포츠입니다. 산소통을 짊어지고 입에 산소마스크를 끼고 바다속에 들어가는데 그 속에 들어가는 순간 그는 완전히 등에 짊어진 산소통에서 나오는 산소에 생명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산소공급이 끊기면 그는 바로 죽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란 것이 말하자면 늘 하나님에게서 오는 은총이란 산소공급에 의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은총이 끊기면 바로 생명은 끝인 것입니다. 구약의 신앙중에 중요한 하나는 인간의 비참한 운명은 하나님이 그 은총을 거두어가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제사장 아론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축복할 때는 이렇게 축복하라고 일렀습니다(민수기 6:23-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 하노라. 이 축복기도에 따르면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면 그것이 곧 불행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이 항상 그들을 향하여 있도록 축복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기장 중요한 기초는 이 세상은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땅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 하늘의 뜻이 땅에 임할 때 거기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가 있다는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가르쳐 주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원리이요 역사의 원리임을 알려주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이 원칙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그는 이 땅의 원리에 따라 살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철저히 때로는 고독하게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이 땅의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묵상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점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늘의 뜻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그 날을 향해서 복음을 증거하고 외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즉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질 때 거기에 구원이 있고 해방이 있고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사순절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실현되도록 기도하고 나 자신 그렇게 순종하려는 결심을 마음속에 다지는 경건한 기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왜냐하면 주기도는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셔서 행한 모든 구원의 역사의 경험을 가장 함축적으로 정리하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 주기도는 그의 가르침의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기도는 복음서의 요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기도 속에 복음의 내용이 모두 들어있고 예수님의 구원행동의 범위가 다 나타나 있습니다. 누가복음 11:1에는 이 주기도가 나오게 된 배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하고 요구한데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것은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가르쳐달라, 즉 기도의 형식같은 것을 가르쳐달라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가르침의 핵심을 알려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많은 종교가 있었는데 모든 종교에는 정해진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의 내용은 바로 그 기도의 내용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단순히 인간이 어려울 때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깊은 의미에서 신앙의 내용이며 한 종교가 갖는 신학의 핵심입니다. 정리된 기도는 한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신조(Creed)와 같습니다. 서양교회를 보면 예배서를 예배서(Book of Worship)라고 하지 않고 기도서(Book of Prayer)라고 하는데 이것은 기도가 곧 예배의 내용이고 신앙의 내용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선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먼저 주기도의 전체적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주기도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으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고 시작하신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점은 예수님의 기도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말을 듣노라면 기도란 당연히 하나님을 향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여기에는 아주 깊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정확한 정황은 모르지만 이런 가정을 한번 해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겠느냐 하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의 가르침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즉 “당신의 사상과 신학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제자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이 모든 권위를 다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최후의 힘이 있는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그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의 그 요청을 받고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고 가르쳐주신 첫대목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마지막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는 하나님에게로 다시 방향을 돌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속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그에게 권세가 있다고 보통 생각하는데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지 자신이 스스로 창출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끔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대통령에게 역사의 주권이 잡혀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때로는 아주 앞선 과학이, 경제가 역사의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역사, 이 세상의 생명은 어떤 철학도, 어떤 사상도, 어떤 이데올로기도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대뜸 돌아서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연속해서 기도하기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줄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어떤 계획과 뜻이 땅위에 임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주기도의 전체가 역사의 주인이, 이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주기도의 제일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는 말인데 현재 주기도의 형태에는 있습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이것을 영어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이것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당신의 것이란 말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절대신앙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가 주일예배를 드릴 때 이런 맥을 짚어가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예배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나온 우리는 예배 서두에 우리의 죄를 참회합니다. 그리고 용서의 확인을 받습니다. 그리고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에 응답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감사의 예물을 바칩니다. 중보기도를 하고 당신의 위로의 약속이 주어지면 그 다음에 우리는 일어서서 주기도송을 합니다. 그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주기도영창을 합니까 우리가 주기도송을 부를 때 막연히 찬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백은 이래야 할 것입니다. 이제 생은 나의 손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다시 한번 확인하거니와 나의 생명, 나의 삶, 우리의 생명, 우리의 삶, 이 역사와 인류의 미래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고 당신에게 그 권위가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 인간의 큰 착각은 우리의 역사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착각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말하기를 “주기도는 주님이 제자들과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하나님께 드린 기도며 오늘 우리가 이 기도를 드릴 때는 예수는 중보자가 아니라 우리와 나란히 한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드린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을 향해서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우리는 단지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죄인임으로 하나님께 감히 기도드리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해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으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말이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근원이요 역사의 주인이시다란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고의 권위를 바친 예수님 그 분이 기도를 드릴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고 자기의 자세를 하늘로 향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그런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그 의미는 이 세상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만 존재하지도 않고 세상만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보는 것은 주기도의 반은 하늘과 관계되어 있고 반은 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처음 세 가지 기도는 하늘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그 다음의 세 가지는 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 여 주옵시고 우리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런데 이렇게 하늘에 관계된 기도와 땅에 관계된 기도로 구성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주기도문은 끊임없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라이 (땅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라는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늘의 것이 땅에 이루어 지라는 것을 간구합니다. 이것은 땅이 땅 스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의해, 즉 하나님에 의해 존재하며 땅 스스로가 스스로 살 수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원칙과 축복하에서만 원만하게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땅의 독단적인 삶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이란 스포츠가 있습니다. 이 스포츠는 산소통을 짊어지고 바다 속에 들어가서 바다밑을 구경하고 즐기는 스포츠입니다. 산소통을 짊어지고 입에 산소마스크를 끼고 바다속에 들어가는데 그 속에 들어가는 순간 그는 완전히 등에 짊어진 산소통에서 나오는 산소에 생명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산소공급이 끊기면 그는 바로 죽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란 것이 말하자면 늘 하나님에게서 오는 은총이란 산소공급에 의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은총이 끊기면 바로 생명은 끝인 것입니다. 구약의 신앙중에 중요한 하나는 인간의 비참한 운명은 하나님이 그 은총을 거두어가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제사장 아론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축복할 때는 이렇게 축복하라고 일렀습니다(민수기 6:23-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 하노라. 이 축복기도에 따르면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면 그것이 곧 불행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이 항상 그들을 향하여 있도록 축복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기장 중요한 기초는 이 세상은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땅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 하늘의 뜻이 땅에 임할 때 거기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가 있다는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가르쳐 주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원리이요 역사의 원리임을 알려주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이 원칙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그는 이 땅의 원리에 따라 살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철저히 때로는 고독하게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이 땅의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묵상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점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늘의 뜻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그 날을 향해서 복음을 증거하고 외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즉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질 때 거기에 구원이 있고 해방이 있고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사순절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실현되도록 기도하고 나 자신 그렇게 순종하려는 결심을 마음속에 다지는 경건한 기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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