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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난한 자는(마5:2 (눅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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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해 설교될 때 부자를 용납하며 말하는 것 같다라는 느낌이 많이 들 때가 많이 있다. 또한 가난한 자에 대한 해석도 일부 학자 에 의해 민중이나 소외된 계층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고도 여겨진다. 이 개념의 차이로 하나는 성경을 합리화-교회에 부자가 많이 들어고 고, 들어오기를 바라기에-시키는 일을 하고, 하나는 성경을 이념의 무기 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본다. 우선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심령이 가난한 자와 그냥 가난한 자와 어느 것이 더 가난한 자인가 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들어오기는 가난한 자는 물질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진짜 가난한 자이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물 질적인 부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단지 물질적으로 풍부하다고 할 지라 도 오히려 마음만 가난하게 가지면 된다라고 들어 왔다. 과연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도 심령이 가난할 수 있을 까에 대해 먼저 답이 나와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같다.
엄격히 말해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한 자가 심령이 가난해 진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 가기 보다 어렵다라는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기로는 가난한 자라는 표현보다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은 가난의 정도가 이미 사람이 감당할 정도보 다 지나친 적랄한 표현이라 여겨진다. 이 세상에서 마음까지 어디 의지할, 즉 반항할 아무 소망도 없는 물질적으로 심령적으로 진짜 가난한 자를 말하는 것이라 본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전혀 힘이 없음을 깨닫 고 오직 소망을 하늘에 둘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자라고 생각한다.아무 소망 없이 하루 하루 먹기에도 급급하며, 그것을 투정할 수도 없는 그러한 가난 한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거지가 부자일 수 있다. 거지짓을 하지만 그의 마음이 자기 합리화와 저주와 판단으로 꽉차 있는 자는 이미 부자일 것이다. 엄격히 반항할 그리고 자신의 삶에 한탄조차 말하는 것이 사치인 그 자들이 가난한 자이다. 엄격히 이 가난한 자는 민중이 될 수 없다. 반항 한다는 그 자체가 부자라는 증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가난한 자에 대해 소설로 바르게 쓴 자존심을 갖고 있을 때 그는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그 마지막 자존심을 버려야만 했을 때 그는 지짜 가난한 자가 된다. 이 이야기는 참으로 비참하게 끝나며, 그 시대의 한을 나타내 준다고 본다.남을 한하지도 못하는, 분노도 가지지 못하는 그 서러움을 가슴에 안은 채 죽어가야 하는 '화 냉대를 받아야 한다. 부자 청년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종교적으로 아무리 완벽한 생활 을 했어도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이 적용을 현대 교회에는 못할 것인가. 교회에 복을 받기 위한 어마어마한 십일조와 헌금을 가지고 들어 오는 자에게 가난한 자가 되지 못하면 천국국민일수 없을것이다. 엄격히 믿을 수 있는 자 가 누구냐라는 것이 다가온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성경의 전부를 자기의 삶으로 살아가며, 삶의 유일한 원천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자이다.
처음은 비슷할 수 있으나 부자와 가난한 자는 결국 확실한 차이를 나타낼 수 밖 에 없다. 붚이며,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소유권을 예수 이름으로 포기한 자이다. 아예 없다고 여기며 예수만을 위하여 사는 자가 가난한 자이다. '당신은 가난한 자입니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가난한 자가 교회 에 가득차 있다면 언제 파벌 싸움하고, 내가 0사니 0로니 하며 내가 이 교 휨이다. 예수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미 모든 것이나 자신의 것을 소 유한 자가 예수를 믿을 수 있을까. 자기의 의 , 돈 등을 소유한 자가 예수 를 부수물중에 하나로 믿어 주겠는가 오직 자기에게는 소망이 없고, 이 세상에 미련이 없으며, 오직 구원을 바라는 즉, 소경이 예아 봐야 한다. 이 부자들을 용납하는 목회자들이여, 그대들도 역시 부자이니 부자 삶의 위 로를 얻듯 소망을 오직 예수께만 두고 사는 것이다. 그의 마음의 중심과 연 연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만 그의 소유로 인정하는 자만이 소유할 가난한 자라고 생각한다. 부자 들이여, 그 부함과 집착에 만족할 생각을 말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에게 십자가는 단지 천국 가기위한 재물 중에 하나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가 슬프게도 당신은 천국에서 제외된 것이 아닌가 두려워 하며 뒤돌아 봐야 한다. 이 부자들을 용납하는 목회자들이치는 자들이여 그대들도 자신의 정욕과 분노를 위해 가난하지 않으며 가난 하다고 외치니 역시 그대들도 거짓말장이고, 도적질하는 이리이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만을 부여 잡고, 이미 그 모든 것을 포기하며 주님을 소망하며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가 가난한 자이다. 그렇기에 그는 노하기 보다 살그 자만이 결국예수의 제자요, 따르는 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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