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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마5:1-2)

본문

오늘은 40일 새벽특별기도회를 시작하는
첫째날을 맞이해서 마5:1,2절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께서 가라사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이런 40일 새벽특별기도회의 주제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주제로,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산상수훈 말씀을 강해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오늘은
첫째날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 산상수훈의 본론에 대하 말씀보다는 서론격인 말씀으로 증거하게 되겠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1)
1.예수께서 하신 말씀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어록이 많습니다. 성자들, 성인들, 철학자들 혹은 문학자들 혹 어떤 사람들은 인생 행복론자들 등등 유명한 명인들의 좋은 글들이 이땅에는 많이 있지만 오늘부터 우리가 40일동안 듣게 될 이 말씀은 세상 어떤 누구의 유명한 어록을 읽어나가는 그런 시간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가 듣게 됐다고 하는 점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주의 종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통한 성령님의 감동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들이 전부 다 진주처럼 귀하지만 특별히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우리가 이번 기회에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역사적으로 볼때 산상수훈의 말씀 이전까지는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까지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의 말씀을 하시다가 예수님이 오시기 전 400년의 기간은 암흑시대로서 어느 누구도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없는 막막하기 짝이 없는 유대땅이었습니다. 그 땅에 예수님께서 오시어 세례를 받으시고 40일동안 금식기도를 하신 후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하신 후에 주님께서 바로 마태복음 5장을 산에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40일 동안 말씀을 듣게 되어질때에 40일 기도 후에 당했던 시험에서 승리했던 주님의 승리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재함으로 말미암아 이 험한 세상을 그 어떤 시험과,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능히 승리할 수 있는 이런 귀한 능력의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생활이 날마다 날마다 승리로와질수 있는 축복이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이 말씀은 많은 신앙(지도)자의 필독서입니다 (이상재, 간디)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기때문에 신앙자들 혹은 세상적인 지도자들에게도 필독서로 읽혀왔던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를들면 월남 이상재 선생은 사실은 유교사상이 짙은 사람이었지만 일제때에 그가 일본을 반대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독방에 갇혀서 정말 혼자서 외롭고 쓸쓸할 때에 어느날 그 감옥 안의 마루 바닥의 마루 틈 사이를 우연히 보았는데 마루 바닥의 틈 사이에 왠 쪽지 하나가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도 심심하던 차에 그 쪽지를 꺼내서 읽어 보니까 바로 산상수훈의 말씀이 적혀있는 쪽지가 몇장 구겨진채 끼어 있더란 것입니다. 읽어 보았더니, 오른 편을 때리거든 왼 편을 돌려대라,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 까지 주어라, 5리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 10리까지 가도록 해라. 읽어보니까 너무나 허무 맹랑한 소리 같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비웃으면서 그 쪽지를 다시 있던 그대로 구겨서 마루 틈사이에 끼어 넣었습니다. 독방에 혼자 있다보니 심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너무나 심심하다 보니 마루 틈사이에 끼워뒀던 쪽지를 안 꺼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꺼내 보고 또 꺼내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독방에 갇혀 있을 때에 하도 심심해서 자기 몸의 이를 잡아서 이끼리 싸움을 붙이는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는 우스꽝스런 이야기들도 있는데 이를 싸움시킬 정도로 심심한 독방신세에서 종이쪽지 하나가 있는 것이 큰 보화를 얻은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재 선생은 계속 그 쪽지를 읽고는 비웃고, 다시 읽고는 또 비웃고 하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그 말씀을 읽고 또 읽는 사이에, 그 말씀에 감화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백번 그 말씀을 읽고난 다음에 감옥에서 나올 때에는 이미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어서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그가 기독계의 빛나는 지도자로서 우리 한국 역사상 중요한 인물로 꼽히게 된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인도의 간디라고 하는 사람은 2000명의 제자가 그를 따라 다녔다고 합니다. 그는 그가 인도를 서방 강대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독립국가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산상수훈 책을 들고서 무저항주의로 대항했기 때문에 나라를 건질 수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평소에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책을 읽을며 항상 가지고 다니라고 함으로 그의 제자 2000명은 언제든지 산상수훈의책을 들고 다녔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듀잇트라고 하는 사람은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의 전교훈의 요약’이라고 말했으며, 도루크라고 하는 사람은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나라의 대헌장’이라고말하였습니다. 신앙의 지도자들이나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산상수훈을 필독하면서 그들이 거기에서 얻은 진리를 통하여 삶을 승리롭게 하였으며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대 국가를 건져낼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에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축복 중의 축복인가를 우리가 바로 알고서 이 말씀의 귀기울이는 축복된 귀가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3.그래서 산상수(보)훈 이라고 합니다 (마5장17장) 이렇게 귀한 말씀이기 때무에 마5장 7장을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도 하고 혹은 산상보훈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 앉으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1절) 이 말씀은 산에 올라 앚으셔서 하신 말씀이라고 하는 사실이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그 장소는 참 좋은, 그야말로 장소로 볼 때에도 능히 이 보배와 같은 말씀이 술술 나올 수 있을 만큼 경치 좋은 아르다운 장소였습니다. 어쨌든 바로 그 아름다운 동산에 앉으셔서 하신 말씀이 이 말씀이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1.기독교는 산의 종교입니다 (창2장13장 8:4, 22장 출3장 19장)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를 산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별명이 많습니다. 음악의 종교다. 혹은 웅변의 종교다. 혹은 생명의 종교다. 여러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만 특별히 기독교는 산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산의 종교라고 해도 조금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산과 대단히 관계가 깊습니다. 창세기 2장과 3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의 시작이 바로 에덴동산에서부터였습니다. 시작되어진 이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물로 심판을 받고 인류가 다시 시작하게 되어질 때도 노아의 8식구가 머물렀던 방주도 아라랏산에(창8:4) 머물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의 조상으로 시험에 합격한 아브라함은(창22장)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드림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종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해방시키기 위해서(출3:115)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를 선택했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산에 올라 오라고 명함으로 십계명을 받게 되었음이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되었습니다. 왕상18:20140에 보면 바알, 아세라 850명의 거짓 선지자와 엘리야 참 선지자 한 사람이 850:1로 겨루어서 참 하나님(신)이 누구냐 하는 것을 겨루었던 장소도 갈멜산 이었습니다. 시121:112에 보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다” 해서 산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응답의 장소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17:1113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변화하셨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서의 우리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 준 것으로서 산에서 이런 기적의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마24:3이하에 보면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 마지막 징조에 대한 말세의 원본이라고 하는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을 강론하시기도 했습니다. 눅22:44, 마26:36146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했던 기도의 동산도 바로 산이었습니다. 산은 무엇을 말합니까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는 제2의 창조의 자리,홍수의 무지개의 자리,,시험에서 승리의 자리,,응답의 자리,,기적의 자리가 교회입니다. 이곳이 시온산입니다.
2.기독교는 올라가는 종교입니다 (눅2:41151, 24:13133) 눅24:13133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는 슬픔과 탄식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는, 예수님을 발견한 제자들이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했던 모습을 우리는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눅10:30에는 여리고로 내려가는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죽을 정도로 위험을 당했던 사실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내려갈 때에는 주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올라갈 때에는 주님을 찾은 줄로 믿습니다. 올라갈 때는 기쁨과 즐거움의 역사가 그들에게 함께 하게 된 줄을 믿습니다. 강도를 만났던 사람이 죽음의 생명을 건지게 된 후로는 다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올라가는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독수리처럼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피곤치 아니하고 계속 줄달음치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려가는 자는 망합니다. 우리는 이번 새벽기도회를 통해서 우리의 지난 날의 나태했던 신앙, 내려갔던 신앙을 다시 올려놓는, 상승시키는, 성장해 가는 믿음의 우리의 믿음이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3.앉으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26:55, 23:2) 뿐만 아니라 주님은 이 산에 오르셔서 서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앉으셔서 말씀을 했다고하는 점이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주님께서 일상적인 습관으로 이 말씀을 외칠 때는 언제나 앉으셔서 했던 모습들을 마26:55과 23:2을 볼 때 생각할 수 있습니다. 26:55에서는 “내가 날마다 상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23:2에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시편에1편에“복이있는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우리는 은혜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입을 열어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2절) 우리가 생각할 것은 2절 말씀에 주님이 바로 이 산에 오르시사 앉으셔서 “입을 열어 가르치”신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마4:22125, 요1:35151) 이 말씀을 받을 대상자들은 무리와 제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직접 선택했던 12제자들이 거기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본격적으로 증거되지 않았던 때였지만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말씀을 외치기 시작해서부터 그 말씀을 들었던 상당한 많은 무리들이 거기에 모였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왜 남들 잠잘때에 잠 안자고 이 새벽에 깨어서 여기에 나와 앉아 있어야만 합니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으러 나왔던 무리들, 제자들처럼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여기에 와 앉아 있는 무리들이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입을 열어 하신 말씀입니다 (히1:112, 요1:14, 112, 전3:7) 주님께서 입을 열어 말씀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제한되는 곳이 없이 어느 곳이건 간에 전파되어지기 시작을 했으니 주님이 입을 열어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이 입을 열어 말씀을 하셨다는 그 원문의 희랍어의 내용을 보면 동작 하나하나의 모습을 상세하게 표현해준 문장으로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본문 문장에 예수님이 입을 열어 말씀했다는 이 말씀은 마치 권위있는 대통령이 국가의 중대한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는 것과 같은 정중한 모습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마치 정전을 발료하는 것과 같은 정중한 모습으로 입을 여셨다고 하는 모습으로 원문은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가볍게 들을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요한 담화문을 발표하는 것과 같이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준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 말씀을 귀하게 듣고 귀하고 복된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3.가르치신 말씀입니다 (마4:23, 9:35, 13:54, 28:20, 딤전4:16) 뿐만 아니라 주님이 하신 말씀은 입을 열어 가르치시기 위한 말씀이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하신 3대 사업은 선교(복음, 전파) 교육(가르침) 치유(병든 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2번째가 교육(가르침)의 사업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이 산상수훈을 40일동안 우리들에게 새벽마다 나와서 이 말씀의 가르침을 받기를 원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축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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