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들 (마2:1-3,미5:2)
본문
해 마다 성탄절이 되면 나라 마다 떠들석합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들뜬 마음으로 이리저리 쏘다니며 기분 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쨌든 성탄절 이 되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지나갑니다. 다시말해 지금부터 2천년 전 그 첫번째 성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현상이 또다시 재현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조용히 탄생 하셨건만 세상은 스스로 요란하게 법석을 피 웁니다. 그 북새통에 성탄의 주님을 놓치고 맙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조용히 탄생하신 예수님 주변에서 무었이 그렇게 소 동하며 요란스럽게 하였는지를 살펴 봄으로 성탄의 주님을 진정으로 맞이 하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 보고자 합니다.
1.세상 일이 성탄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눅2:1-7)-호적 (인구조사) 유다는 당시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는 속국 이었습니다. 그래서 로 마의 황제 아구스도(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에 정확한 인 구조사를 통하여 정확한 세금 근거를 얻어 누락되는 이익을 없게 만들고, 통치하기 까다로운 식민지를 좀더 잘 통제하고자 하는 시책의 일환으로 호 적을 새로이 작성하도록 황제 칙령을 반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통치를 받고있던 모든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은 이때에 한 바탕 민족 대 이동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타향살이 하던 대부분의 사람 들은 자기 본적지인 고향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또한, 타국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고국의 고향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이들 여행자들의 마음은 오직 하루속히 호적을 끝내고 다시 무사히 집으 로 되돌아 가는 것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하여 대속의 큰 은혜와 구원의 선물을 가지고 조 용히 이세상에 임하셨을 때 세상사의 일에 분주하고 바쁜 무리들은 예수님 의 강림에 대해 생각조차 할수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인 그리스도의 초림 당시,온 세상이 코앞에 닥친 자기일에 분주하여 바람과 먼지를 일으키며 제갈길 가기에 바빠 분주하며 요란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같은 사람들의 행동은 예수님의 재림시에도 똑같 은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처럼 홍수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다 죽게 되기 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면서 세상일에 분주하여 재림하실 그리스도에 관해 받아들이고 생각할 여유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일에 너무 바빠 주님 생각 못하면 주님 영접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 하셨을 때 많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며 고대하 던 메시야가 오셨는 데도 세상 살아가는 일에 빠져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 던 것입니다. 더구나, 성전에서 하나님만 섬기며 일하던 제사장들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으며, 말씀에 정통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그 박식한 성경지식이 정작 알아야 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주의 일을 하는 주의 종들 이었으나 세상일에 분주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교회의 직분이 주님을 만날수 있게 해주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닌 신앙의 연수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데로 사는 자가 하나님과 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2.인간의 정치적 야욕이 성탄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2:3, 16) 세상이 자신의 일에 분주하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비 천한 마굿간에서 조용히 태어 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탄생 을 알고 찾아온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 이 하늘에 나타난 이상한 별을 연구하여 유대땅 베들레헴까지 왔던 것입니다. 박사들은 그 별의 주인공이 큰 왕이 분명하였기에 그땅의 왕을 찾아가 보는 것을 당연한 이치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나라 왕실로 찾 아가 본 결과 거기에는 앞으로 왕이 되실 왕자가 태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유대나라 왕실이 벌집을 후벼 놓은듯 난리와 소동이 일어 나 고 말았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왕은 의심이 많고 포악하기로 유명한 분봉왕 헤롯이었던 것입니다. 헤롯은 기회주의자 로서 로마 황제에게 잘보여
B.C37년에 이스라엘의 분봉왕으로 임명받은 이두메 지방 출신 이었습니다. 헤롯은 당시 나이 70 세 였으나 왕위에 대한 애착 때문에 아내와 심지어 아들까지 의심하여 모 반죄로 처형 시키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정치적 야욕이 강했던 것은 그가 얻은 왕위가 로마나라에 잘보여 어렵게 얻은 자리일 뿐 아니라 무 었보다 자리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위에대한 애착이 아내나,아들까지도 서슴없이 죽일수 있는 헤롯에게 새 왕이 유대 땅에 탄생하였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에 신경이 곤두 서지 않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성 내에는 태어난 새왕을 찾아내어 제거 시 키지 않고는 편히 잠을 잘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성내는 새로 태어난 왕을 찾아 제게 시키는 일로 요란해 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정치 권력을 탐내거나, 넘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 려 이땅의 권력가들이 그 권력을 정말 든든히 세울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오신 분이 셨습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이 세상의 왕들과 다른 것이었 습니다. 감히 이 세상의 왕들이 자신들의 왕권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우주적인 왕중의 왕 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세상의 왕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겸손히 무릎 을 꿇고 그 왕관을 주님께 돌려 드리므로 진정한 왕권을 보장 받을 수 있 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장서서 이 주님을 맞이하고 경배 해야 할이는 바로 헤롯대왕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의 무지막지 하고도 채울수 없는 무 분별한 정치적 야욕이 조용하고도 겸손히 맞이 해야 할 주님께 소란을 피우며, 어리석게 칼을 들 고 탄생하신 주님께 도전하였던 것입니다. 나의 권력과 명예를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과 믿음을 헌신짝 처럼 무시해 버리는 행동이 바로 어리석은 현대판 헤롯대왕입니다. 겉으로는 주님을 위 한다고 내세우지만 마음으로는 자기 고집과 편견으로 똘똘 뭉쳐있어 주의 뜻을 거스리면, 자신의 고집과 명예의 야욕이 주님께 도전하는 행위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자신의 명예와 권력, 자리,위치 싸움을 포기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탄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빌2:3)말씀의 권면과 같이 "아무 일에나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 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3.인간의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성탄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막2:7)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신 이 날 그렇게도 흔한 따뜻하며, 깨끗한 하나의 자리가 없어 주님은 이리저리 전전긍긍 하셨습니다. 모든 세상의 깨끗하고도 안락한 안방들이 모두 다 주님의 것인데도 세상은 자 기것이라 큰소리 치며 버티고서는 주님께 한 자리조차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해산의 시간이 임박한 마리아의 몸의 예수님은 큰 낭패를 당하셨던 것 입니다. 도대체 왜 모든세상의 집들의 주인이시요, 인간의 창조주되신 주 님께서 거하실 곳이 이처럼 낭패를 당하시도록 만들었습니까 가장 존귀 하신 주님이신데 왜 이처럼 천대를 받는 지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까 아무리 천한 사람으로 보였을 찌라도 이 딱하고 다급한 순간에 단 하룻밤 의 양보와 희생이 없었더란 말입니까 이럴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우리 주님을 이처럼 천덕 구러기로 보이게 만들었습니까 이천년전 그때 그 사람들 만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 주님을 이토록 난처하고도 처량하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바로 사람 들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적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나 하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과, 우리가족 만이 편안하면 주님 도 신앙도 잠시 외면 할수있다는 사고방식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천년전 마리아가 찾은 여관에는 모두 하룻밤을 편하게 보낼려는 사람 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을 내어준다는 것은 그 사정이 어떠하였든지 크나큰 손해요, 기득권을 빼앗기는 일로 여길 정도로 철저히 이기적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관 주인도 기득권을 돈으로 먼저 방에 든 사람들에게 팔았기에 힘이 없었습니다. 이같이 탄생의 주님 주변에는 하나 같이 자기 기득권을 철저히 지키려는 하룻밤 나그네들과 돈으로 하룻밤 방의 기득권을 팔고 돈이란 위력에 속 수무책인 여관 주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인간의 이기적인 속셈이 존귀하신 주님을 불결하고 차디찬 마굿간으로 내 몰았습니다.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주님은 존귀한 자리에 모셔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 사고방식이 주님을 마굿간으로 몰아 내고있습니다. 오늘날 주님은 연약한 형제자매안에 함께 계십니다. 가난한 이웃 속에 말 없이 계십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해 죽어가는 심령들 가운데 초라히 계 십니다. 이제 이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이들을 돕지않 으면 성탄의 주님을 영접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눈멀게 하는 이 이기적 사고방식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치 않으면 영원히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불행한 소경이 되 고 말 것입니다.
4.성탄의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 일까요
1)요셉처럼 의롭고(마1:19) 마리아처럼 은혜받은자(눅1:28)가 영접 할 수 있습니다. 의로움은 믿음으로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히브리서는 증언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의 대속의 은혜를 분명히 믿을 때에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메시야에 대한 믿음은 영적이며, 대속적인 믿음 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로마의 식민통치에서 구출하여 주실 정치적이고도 민족적인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주님으로 믿어서는 의로와 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메시야를 고대하며 오매불망 기다렸던 수많은 제사장들,바리새인들,서기관들,그리고 유다 백성들이 정작 주님을 맞이하 환영 했어야 할 그 순간을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이며, 대속적인 주님을 알고 깨닫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은 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성탄의 주님을 무지하여 배척 하거나 외면하는 처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 은혜를 항상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주의 은혜 없이는 잠시라 도 살수 없음을 깨닫고 더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2)목자들 처럼 겸손하며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 주님을 영접할 수있습니다. 목자들은 수 많은 양떼들을 책임지고 돌보는 자 입니다. 이 일이 힘들 고 어렵지만 더우나,추우나 낮이나, 밤이나 한결같이 맡겨진 양떼들을 위 하여 불철주야로 먹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목자들이 성탄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맡은 주님의 양떼 코흘리게 유치부생이든, 주일학생이든, 중고등부 든, 청년이든, 장년이든, 맡은 자들은 참 목자의 자세로 돌 보아야 합니다. 교사, 구역장, 권찰님들은 특별히 주님의 양떼들을 맡은 작은 목자들 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맡겨진 양떼들에 충성하면 성탄의 주님을 만나 게 될 것입니다. 이 교회에 교사로 구역장으로 권찰로 양떼들을 돌보는 사명을 받은 겸손히 맡은 일에 충성하여 성탄의 주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 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동방박사들 처럼 성탄의 주님 만나기를 사모하고 찾는 자들이 만납니다 동방박사들은 오직 이 성탄의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온갗 험산준령을 넘고 강과 야수와 여행의 위험을 무릎쓰고 찾아 왔던 자들 입니다. (렘29:13)에 "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고 하였습니다 주님과 천국은 침노하며, 애쓰는 자들이 만나고,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 만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가 만나게 됩니다. 기도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응답됩니다. 성탄 의 주님앞에 간절히 찾고 사모하는 마음 없이는 만날수 없습니다. 예배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찬송도 간절한 마음으로 드려 야 합니다. 기도도 불붙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감사도 헌금도 진실된 정성으로 받쳐져야 합니다. 봉사와 섬김도 충성된 마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구제도 전도도 깊은 사랑으로 하여야 합니다. 성도를 섬기며, 주의 사자들 을 섬기는 것도 주님을 섬기듯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누구든지 이 주의 가르침을 무시하면 주님도 그를 무시하실 것입니다.
'결론' 성탄의 주님은 준비된 심령에 찾아 오십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을 본받을 찌언정 주님을 보지못한 세상적인 일이나, 명예의 야욕이나,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을 본받지 않으시 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오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요셉처럼 의로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처럼 주의 은혜를 입은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목자들 처럼 맡은 양떼들에 겸손히 충성하는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방박사들 처럼 주님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으시므로 반드시 재림의 주님을 만나시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세상 일이 성탄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눅2:1-7)-호적 (인구조사) 유다는 당시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는 속국 이었습니다. 그래서 로 마의 황제 아구스도(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에 정확한 인 구조사를 통하여 정확한 세금 근거를 얻어 누락되는 이익을 없게 만들고, 통치하기 까다로운 식민지를 좀더 잘 통제하고자 하는 시책의 일환으로 호 적을 새로이 작성하도록 황제 칙령을 반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통치를 받고있던 모든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은 이때에 한 바탕 민족 대 이동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타향살이 하던 대부분의 사람 들은 자기 본적지인 고향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또한, 타국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고국의 고향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이들 여행자들의 마음은 오직 하루속히 호적을 끝내고 다시 무사히 집으 로 되돌아 가는 것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하여 대속의 큰 은혜와 구원의 선물을 가지고 조 용히 이세상에 임하셨을 때 세상사의 일에 분주하고 바쁜 무리들은 예수님 의 강림에 대해 생각조차 할수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인 그리스도의 초림 당시,온 세상이 코앞에 닥친 자기일에 분주하여 바람과 먼지를 일으키며 제갈길 가기에 바빠 분주하며 요란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같은 사람들의 행동은 예수님의 재림시에도 똑같 은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처럼 홍수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다 죽게 되기 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면서 세상일에 분주하여 재림하실 그리스도에 관해 받아들이고 생각할 여유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일에 너무 바빠 주님 생각 못하면 주님 영접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 하셨을 때 많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며 고대하 던 메시야가 오셨는 데도 세상 살아가는 일에 빠져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 던 것입니다. 더구나, 성전에서 하나님만 섬기며 일하던 제사장들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으며, 말씀에 정통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그 박식한 성경지식이 정작 알아야 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주의 일을 하는 주의 종들 이었으나 세상일에 분주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교회의 직분이 주님을 만날수 있게 해주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닌 신앙의 연수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데로 사는 자가 하나님과 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2.인간의 정치적 야욕이 성탄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2:3, 16) 세상이 자신의 일에 분주하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비 천한 마굿간에서 조용히 태어 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탄생 을 알고 찾아온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 이 하늘에 나타난 이상한 별을 연구하여 유대땅 베들레헴까지 왔던 것입니다. 박사들은 그 별의 주인공이 큰 왕이 분명하였기에 그땅의 왕을 찾아가 보는 것을 당연한 이치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나라 왕실로 찾 아가 본 결과 거기에는 앞으로 왕이 되실 왕자가 태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유대나라 왕실이 벌집을 후벼 놓은듯 난리와 소동이 일어 나 고 말았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왕은 의심이 많고 포악하기로 유명한 분봉왕 헤롯이었던 것입니다. 헤롯은 기회주의자 로서 로마 황제에게 잘보여
B.C37년에 이스라엘의 분봉왕으로 임명받은 이두메 지방 출신 이었습니다. 헤롯은 당시 나이 70 세 였으나 왕위에 대한 애착 때문에 아내와 심지어 아들까지 의심하여 모 반죄로 처형 시키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정치적 야욕이 강했던 것은 그가 얻은 왕위가 로마나라에 잘보여 어렵게 얻은 자리일 뿐 아니라 무 었보다 자리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위에대한 애착이 아내나,아들까지도 서슴없이 죽일수 있는 헤롯에게 새 왕이 유대 땅에 탄생하였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에 신경이 곤두 서지 않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성 내에는 태어난 새왕을 찾아내어 제거 시 키지 않고는 편히 잠을 잘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성내는 새로 태어난 왕을 찾아 제게 시키는 일로 요란해 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정치 권력을 탐내거나, 넘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 려 이땅의 권력가들이 그 권력을 정말 든든히 세울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오신 분이 셨습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이 세상의 왕들과 다른 것이었 습니다. 감히 이 세상의 왕들이 자신들의 왕권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우주적인 왕중의 왕 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세상의 왕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겸손히 무릎 을 꿇고 그 왕관을 주님께 돌려 드리므로 진정한 왕권을 보장 받을 수 있 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장서서 이 주님을 맞이하고 경배 해야 할이는 바로 헤롯대왕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의 무지막지 하고도 채울수 없는 무 분별한 정치적 야욕이 조용하고도 겸손히 맞이 해야 할 주님께 소란을 피우며, 어리석게 칼을 들 고 탄생하신 주님께 도전하였던 것입니다. 나의 권력과 명예를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과 믿음을 헌신짝 처럼 무시해 버리는 행동이 바로 어리석은 현대판 헤롯대왕입니다. 겉으로는 주님을 위 한다고 내세우지만 마음으로는 자기 고집과 편견으로 똘똘 뭉쳐있어 주의 뜻을 거스리면, 자신의 고집과 명예의 야욕이 주님께 도전하는 행위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자신의 명예와 권력, 자리,위치 싸움을 포기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탄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빌2:3)말씀의 권면과 같이 "아무 일에나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 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3.인간의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성탄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막2:7)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신 이 날 그렇게도 흔한 따뜻하며, 깨끗한 하나의 자리가 없어 주님은 이리저리 전전긍긍 하셨습니다. 모든 세상의 깨끗하고도 안락한 안방들이 모두 다 주님의 것인데도 세상은 자 기것이라 큰소리 치며 버티고서는 주님께 한 자리조차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해산의 시간이 임박한 마리아의 몸의 예수님은 큰 낭패를 당하셨던 것 입니다. 도대체 왜 모든세상의 집들의 주인이시요, 인간의 창조주되신 주 님께서 거하실 곳이 이처럼 낭패를 당하시도록 만들었습니까 가장 존귀 하신 주님이신데 왜 이처럼 천대를 받는 지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까 아무리 천한 사람으로 보였을 찌라도 이 딱하고 다급한 순간에 단 하룻밤 의 양보와 희생이 없었더란 말입니까 이럴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우리 주님을 이처럼 천덕 구러기로 보이게 만들었습니까 이천년전 그때 그 사람들 만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 주님을 이토록 난처하고도 처량하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바로 사람 들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적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나 하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과, 우리가족 만이 편안하면 주님 도 신앙도 잠시 외면 할수있다는 사고방식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천년전 마리아가 찾은 여관에는 모두 하룻밤을 편하게 보낼려는 사람 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을 내어준다는 것은 그 사정이 어떠하였든지 크나큰 손해요, 기득권을 빼앗기는 일로 여길 정도로 철저히 이기적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관 주인도 기득권을 돈으로 먼저 방에 든 사람들에게 팔았기에 힘이 없었습니다. 이같이 탄생의 주님 주변에는 하나 같이 자기 기득권을 철저히 지키려는 하룻밤 나그네들과 돈으로 하룻밤 방의 기득권을 팔고 돈이란 위력에 속 수무책인 여관 주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인간의 이기적인 속셈이 존귀하신 주님을 불결하고 차디찬 마굿간으로 내 몰았습니다.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주님은 존귀한 자리에 모셔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 사고방식이 주님을 마굿간으로 몰아 내고있습니다. 오늘날 주님은 연약한 형제자매안에 함께 계십니다. 가난한 이웃 속에 말 없이 계십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해 죽어가는 심령들 가운데 초라히 계 십니다. 이제 이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이들을 돕지않 으면 성탄의 주님을 영접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눈멀게 하는 이 이기적 사고방식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치 않으면 영원히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불행한 소경이 되 고 말 것입니다.
4.성탄의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 일까요
1)요셉처럼 의롭고(마1:19) 마리아처럼 은혜받은자(눅1:28)가 영접 할 수 있습니다. 의로움은 믿음으로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히브리서는 증언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의 대속의 은혜를 분명히 믿을 때에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메시야에 대한 믿음은 영적이며, 대속적인 믿음 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로마의 식민통치에서 구출하여 주실 정치적이고도 민족적인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주님으로 믿어서는 의로와 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메시야를 고대하며 오매불망 기다렸던 수많은 제사장들,바리새인들,서기관들,그리고 유다 백성들이 정작 주님을 맞이하 환영 했어야 할 그 순간을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이며, 대속적인 주님을 알고 깨닫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은 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성탄의 주님을 무지하여 배척 하거나 외면하는 처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 은혜를 항상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주의 은혜 없이는 잠시라 도 살수 없음을 깨닫고 더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2)목자들 처럼 겸손하며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 주님을 영접할 수있습니다. 목자들은 수 많은 양떼들을 책임지고 돌보는 자 입니다. 이 일이 힘들 고 어렵지만 더우나,추우나 낮이나, 밤이나 한결같이 맡겨진 양떼들을 위 하여 불철주야로 먹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목자들이 성탄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맡은 주님의 양떼 코흘리게 유치부생이든, 주일학생이든, 중고등부 든, 청년이든, 장년이든, 맡은 자들은 참 목자의 자세로 돌 보아야 합니다. 교사, 구역장, 권찰님들은 특별히 주님의 양떼들을 맡은 작은 목자들 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맡겨진 양떼들에 충성하면 성탄의 주님을 만나 게 될 것입니다. 이 교회에 교사로 구역장으로 권찰로 양떼들을 돌보는 사명을 받은 겸손히 맡은 일에 충성하여 성탄의 주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 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동방박사들 처럼 성탄의 주님 만나기를 사모하고 찾는 자들이 만납니다 동방박사들은 오직 이 성탄의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온갗 험산준령을 넘고 강과 야수와 여행의 위험을 무릎쓰고 찾아 왔던 자들 입니다. (렘29:13)에 "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고 하였습니다 주님과 천국은 침노하며, 애쓰는 자들이 만나고,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 만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가 만나게 됩니다. 기도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응답됩니다. 성탄 의 주님앞에 간절히 찾고 사모하는 마음 없이는 만날수 없습니다. 예배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찬송도 간절한 마음으로 드려 야 합니다. 기도도 불붙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감사도 헌금도 진실된 정성으로 받쳐져야 합니다. 봉사와 섬김도 충성된 마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구제도 전도도 깊은 사랑으로 하여야 합니다. 성도를 섬기며, 주의 사자들 을 섬기는 것도 주님을 섬기듯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누구든지 이 주의 가르침을 무시하면 주님도 그를 무시하실 것입니다.
'결론' 성탄의 주님은 준비된 심령에 찾아 오십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을 본받을 찌언정 주님을 보지못한 세상적인 일이나, 명예의 야욕이나,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을 본받지 않으시 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오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요셉처럼 의로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처럼 주의 은혜를 입은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목자들 처럼 맡은 양떼들에 겸손히 충성하는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방박사들 처럼 주님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으시므로 반드시 재림의 주님을 만나시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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