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 하셨는데 (마2:1-8)
본문
오래전에 영국 런던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런던 교외 한 농가를 지나가던 일행의 사람이 농가 주인에게 우산을 하나만 빌릴 수 있겠느냐고 청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우산을 빌려 달라고 하니 안 빌려줄 수는 없고 해서 자기가 쓰던 우산 중에서 다 부러진 낡은 우산 하나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인인 한 여인에게 그 우산을 씌워 주고 거기를 떠났습니다. 며칠 후 어떤 사람이 아주 예쁘게 포장된 편지와 함께 그가 주었 던 우산을 다시 가져왔습니다:그 편지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라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우산을 빌렸던 여인의 사인이 기록되어 있 었습니다.
그런데 사인은 '여왕 엘리자베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농부는 얼마나 가슴을 치며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 그런 줄 알았더라면 내가 정성을 다해서 그 분을 영접했을 것인 데, 그 분에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우산을 드렸을 것을.오래 전 영국 런던 교외 어느 허름한 농가에서 여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이 비극적인 실수가 성탄을 맞이했 던 팔레스틴 땅에도 일어났습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땅에 오셨지만 이 사건의 엄청난 의미를 깨 닫지 못하고 그 분을 만날 수 있었던 특권을 잃어 버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헤롯왕을 보십시오. 그 당시 유대 땅을 통지하고 있던 헤롯왕은 메시야가 유대 땅에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오늘 2장 1-2절을 보세요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 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 라' 하니. 이 들이 말하는 유대인의 왕은 보통 왕이 이닙니다.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메시아, 내 삶의 모 든 문제의 대답이 되고 생명의 주가 되는 그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동방에서부터 찾아온 이 박사들은 유대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이 르러서 그 나라의 최고 책임자에게 '만왕의 왕이 오셨다는데 그 분 이 어디에 탄생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7절 이하를 보십시오. '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 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헤롯왕도 그 분이 경배 받아야 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 내가 왕인데'라는 의식이 그를 불쾌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헤롯이 나증에 어떻게 했어요 16절을 보세요.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 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 세히 알아본 그때를 표준하여 두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주신 말씀 마태복음 사람을 죽이는 칼을 가지고 성탄을 맞이하려 했던 이 헤롯의 오 류는 과거의 이야기만을 아닙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의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고 그 분올 경배하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헤롯이 그 아기 가 메시아인 것과 그 분에게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불쾌하게 생각하며 음모를 꾸몄던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다시 말 하면 예수님 때문에 자기가 손해 본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을 거절하는 이유 증에 하나가 교회 에 나가는 것이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 들은 주일 아침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굉장한 일로 생각합니다.
헌금하는 것은 재물의 낭비로 여깁니다. 아내가 예수 믿으면 아내를 예수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런 남편은 예수님을 자기의 경쟁자로 생각해서 아내가 예수를 열심히 믿지 못하도 로 눈에 불을 켜고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혜 롯왕과 같은 의식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헤롯왕의 이기심과 꼭 갈은 마음 때문에 오늘도 그리스도는 만나지 못하고 예배당 문턱만 드나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말씀 을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영생에 대한 굶주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일 까 사람이 죽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이 청년은 영흔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이러한 질문 때문에 어느날 과감하게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재물에 대한 욕심이란 것을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 재물에 대한 욕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절대로 하나님께 나올 수가 없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 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 으라'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재물이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주님을 위해 서 이것을 사용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재물을 맡기 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 재물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방해 가 된다면 주님께서는 그것을 버리라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칭년을 재물에 대한 욕심을 극복할 수 없어 등을 돌렸 습니다. 성경에 보면 근심하며 가니라' 했는데 정말 슬픈 대목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돌아서는 이 청년의 모습을 상 상해 보십시오. 이기심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의 비극적인 모습입니다. 여러분,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너무 열심히 믿으면 손해 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도 재물도 양보하지 않은 채 일주일에 한번 예배당에 나오시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 헤롯왕처럼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이기심의 정체를 주목하고 헤롯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 당시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헤롯왕은 동 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서기관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4절을 보 세요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 로 이렇게 기록된바' 무슨 말입니까 '헤롯대왕이시여, 미가서에 의하면 메시아는 틀림없이 우리 유대땅 저 베들레헴에 탄생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서기관들은 성경을 얼마나 잘 아는 사람들 입니까 그들은 정확하게 예수님 나신 곳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의 나심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 가운데는 서기 관과 제사장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소위 기독교적인 지식은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하니럿이 살아계시고 예수님이 구주시라는 것, 그리고 성경 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아는 것으 로 그치고 맙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나신 곳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까 지 찾아갈 수 있는 발이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님 앞에 내 놓을 수 있는 손이 없었습니다. 손도 없고 발도 없고 머리만 있는 단순한 지 식 뿐. 이것이 서기관들의 비극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이 런 사람이 없습니까 야고보 2장 19절을 보세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의 믿음은 지식에 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고 인류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다는 것까지 귀신도 압니다. 그러나 이 귀신이 하나님 앞에 항복합니 까 신앙은 항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배는 말하자면 항복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항복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알기는 알지만 예배가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항복이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고백이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봉사가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섬김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야고보는 그런 믿음은 귀신들도 갖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아는 성경의 지식을 내 삶 속에 적용할 수가 없는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의미가 없이 죽은 것입니다. 그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겠습니까 물론 안다는 것이 증요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준 비와 자세를 가지고 말씀을 배워 알아야 합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믿이니이다 주님께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제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알기는 알았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했던 그 당시 종교인들의 비극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여관 주인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2장 7절에 보면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 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했습니다. 그 당시 베들레헴에는 가이사아구스도의 영에 의해서 호적을 하 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여관마다 만원이 되 어 마리아와 요셉은 방올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구유에 낳 게 되었습니다. 다른 손님 맞기에 바빠서 여관 주인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시는 예수님을 가까이 있으면서도 맞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서 우리는 그때부터 역사를 다시 세기 시작 해서 주전(주님 오시기전), 주후(주님 오신 후)로 나누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문밖에 계셨 습니다.
그런데 왜 여관 주인이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습니까 이 유는 간단합니다. 너무 바빠서 그랬습니다. 많은 손님들이 갑자기 밀어닥치니까, 더구나 권력 있는 손님, 돈 많은 손님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어 바쁘다보니 정말 정말 귀한 손님이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셨는데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가운쎄는 이런 형된에 있는 분이 안 계십니 까 그저 먹고 사느라고 바빠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는 사람 들, 세상 일에 바빠서 정말 증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비극이 바로 여관 주인의 비극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그 순간, 내 목숨 이 영원을 향해 떠나는 그 순간, 돈이 무슨 소용있습니까 권력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흑시 우리는 세상 에 도취되어서 더 중요 한 일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4년 6월 나치 독일에게 결정적 패배 를 안겨준 한 사건이 있습니다. 히틀러가 제일 신임하던 독일의 명 장 롬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롬멜 장군은 독일이 구라파 와 전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프랑스를 잘 지키는 것이 가장 중 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남부 해안을 지키고 그 지역을 요새화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5월 말 며칠간 그곳의 날씨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바다에는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안개가 껴서 작전을 전개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롬멜 장군은 며칠동안 좀 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6월 6일이 롬멜 장군 부인의 생일이어서 장군은 아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베를린으로 돌아왔 습니다. 아내의 생일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 롬멜 장군은 연합군의 노르만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롬멜 이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돌아갔던 것이 독일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 주게 된 것입니다. 작은 일 때문에 중대한 일을 실수하는 비극이 개인이나 국가에 종종 일어납니다. 땀흘려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입니다. 살아가려면 돈을 버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 때문에 가장 증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금년도 며칠밖에 남지 않았는데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서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셨습니까 잠깐 되는 이 세상, 끝날 때 나는 저 영원의 순간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 상상해 보셨습니까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내 삶에 어떤 모습으로 결산될 것인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중요한 물음에 대답할 생각을 하지 않고 덜 중요한 것에 매 여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비유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인이 잔치를 잘 차렸습니다. 그리고 손님들을 초대했습니다. 우리 주인께서 잔치를 잘 차렸습니다. 부디 오셔서 즐기시고 자리 를 빛내 주십시오.'
그런데 초대받은 손님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댑니다. , 나는 밭을 사서 그 밭의 형편을 좀 보아야 되므로 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소를 샀는데 그 소를 시험해 보아야 하기 때문에 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새 차를 샀기 때문에 시운전을 해 보아야 하므로 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집을 새로 사기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오늘은 거기에 가 보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주인의 마음은 몹시 섭섭했습니다. '할 수 없다. 그들은 자기에 일을 하게 하라. 돈 버느라 바빠서 신앙에 대 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대로 버려두라. 쾌락에 빠져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상실한 그들을 그대로 두라. 그 대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데려오라. 천국을 향한 꿈을 가진 사람들을 데려 오라. 예수님을 향한 불붙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데려오 라. 내가 그들을 위해서 이 잔치를 열겠다.'고 말합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천국잔치를 베풀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는$이 주인의 마음을 이해합니까 이제 어느날 이 세상 역사의 막이 내릴 때의 광경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 이하를 보세요 '노아 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 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그와 같으리라' 여러분, 여기 예수님이 정죄하신 것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 가가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흔인잔치에 참석하셔서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낭만을 거절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의 강조점은 그들이 인자의 다시 오심을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 서 흥수가 나서 다 저희를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사소한 일 때문에 바빠서 더 중요한 사건을 잊 어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 주 예수를 통해서 구속의 감격을 몰랐던 사람들, 주님 안에서 사는 새 생명의 기쁨 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광스러운 삶올 놓쳤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첫번 크리스마스에 아기 예수를 영접하지 못했던 비극의 주인공들과 같지는 않습니까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내 가 무슨 손해를 본다고 생각해서 주님께 나 자신을 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알 것은 다 알면서도 그 이상은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는 아닙니 까 우리는 베들레헴 여관주인처럼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아두고도 일상적인 삶에 대한 관심 때문에 주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별 의미가 없는 하나의 공휴일로만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성경에서 가장 슬픈 구절 중의 하나는 요한복음 1장 11절이라고 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가 만드신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절을 보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 셨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주님을 우리 마음과 삶속에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욕심 때문입니까 이기심 때문입니까 무관심 때문 입니까 아니면 세상 재미 때문입니까 우리는 첫번째 크리스마스를 놓쳐버린 사람들처럼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운데 헤롯왕의 얼굴을 닮은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관주인과 같은 사람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성경은 잘 알지 만 아는 것에서 그치고 주님을 내 마음과 삶 속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슬픈 일입니다. 이 슬픔 때문에 사랑하는 이웃에게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 전하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는 우리의 구주십니다. 그 분이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죄와 사 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주님 때문에 우리의 삶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의 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생각만 해도 신기한 기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삶이 정말 행복합니다. 세상의 것이 좀 부족해도 우리는 주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주님 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을 전하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원합니다. 머리는 있어도 베들레헴에 찾아 갈 손과 발이 없었던 서기관의 비극이 우리의 비극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서 세상에 오신 이 날,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설레임 이 있습니다. 주안에서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인은 '여왕 엘리자베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농부는 얼마나 가슴을 치며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 그런 줄 알았더라면 내가 정성을 다해서 그 분을 영접했을 것인 데, 그 분에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우산을 드렸을 것을.오래 전 영국 런던 교외 어느 허름한 농가에서 여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이 비극적인 실수가 성탄을 맞이했 던 팔레스틴 땅에도 일어났습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땅에 오셨지만 이 사건의 엄청난 의미를 깨 닫지 못하고 그 분을 만날 수 있었던 특권을 잃어 버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헤롯왕을 보십시오. 그 당시 유대 땅을 통지하고 있던 헤롯왕은 메시야가 유대 땅에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오늘 2장 1-2절을 보세요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 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 라' 하니. 이 들이 말하는 유대인의 왕은 보통 왕이 이닙니다.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메시아, 내 삶의 모 든 문제의 대답이 되고 생명의 주가 되는 그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동방에서부터 찾아온 이 박사들은 유대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이 르러서 그 나라의 최고 책임자에게 '만왕의 왕이 오셨다는데 그 분 이 어디에 탄생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7절 이하를 보십시오. '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 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헤롯왕도 그 분이 경배 받아야 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 내가 왕인데'라는 의식이 그를 불쾌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헤롯이 나증에 어떻게 했어요 16절을 보세요.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 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 세히 알아본 그때를 표준하여 두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주신 말씀 마태복음 사람을 죽이는 칼을 가지고 성탄을 맞이하려 했던 이 헤롯의 오 류는 과거의 이야기만을 아닙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의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고 그 분올 경배하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헤롯이 그 아기 가 메시아인 것과 그 분에게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불쾌하게 생각하며 음모를 꾸몄던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다시 말 하면 예수님 때문에 자기가 손해 본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을 거절하는 이유 증에 하나가 교회 에 나가는 것이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 들은 주일 아침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굉장한 일로 생각합니다.
헌금하는 것은 재물의 낭비로 여깁니다. 아내가 예수 믿으면 아내를 예수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런 남편은 예수님을 자기의 경쟁자로 생각해서 아내가 예수를 열심히 믿지 못하도 로 눈에 불을 켜고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혜 롯왕과 같은 의식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헤롯왕의 이기심과 꼭 갈은 마음 때문에 오늘도 그리스도는 만나지 못하고 예배당 문턱만 드나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말씀 을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영생에 대한 굶주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일 까 사람이 죽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이 청년은 영흔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이러한 질문 때문에 어느날 과감하게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재물에 대한 욕심이란 것을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 재물에 대한 욕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절대로 하나님께 나올 수가 없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 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 으라'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재물이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주님을 위해 서 이것을 사용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재물을 맡기 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 재물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방해 가 된다면 주님께서는 그것을 버리라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칭년을 재물에 대한 욕심을 극복할 수 없어 등을 돌렸 습니다. 성경에 보면 근심하며 가니라' 했는데 정말 슬픈 대목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돌아서는 이 청년의 모습을 상 상해 보십시오. 이기심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의 비극적인 모습입니다. 여러분,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너무 열심히 믿으면 손해 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도 재물도 양보하지 않은 채 일주일에 한번 예배당에 나오시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 헤롯왕처럼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이기심의 정체를 주목하고 헤롯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 당시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헤롯왕은 동 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서기관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4절을 보 세요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 로 이렇게 기록된바' 무슨 말입니까 '헤롯대왕이시여, 미가서에 의하면 메시아는 틀림없이 우리 유대땅 저 베들레헴에 탄생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서기관들은 성경을 얼마나 잘 아는 사람들 입니까 그들은 정확하게 예수님 나신 곳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의 나심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 가운데는 서기 관과 제사장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소위 기독교적인 지식은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하니럿이 살아계시고 예수님이 구주시라는 것, 그리고 성경 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아는 것으 로 그치고 맙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나신 곳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까 지 찾아갈 수 있는 발이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님 앞에 내 놓을 수 있는 손이 없었습니다. 손도 없고 발도 없고 머리만 있는 단순한 지 식 뿐. 이것이 서기관들의 비극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이 런 사람이 없습니까 야고보 2장 19절을 보세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의 믿음은 지식에 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고 인류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다는 것까지 귀신도 압니다. 그러나 이 귀신이 하나님 앞에 항복합니 까 신앙은 항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배는 말하자면 항복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항복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알기는 알지만 예배가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항복이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고백이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봉사가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섬김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야고보는 그런 믿음은 귀신들도 갖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아는 성경의 지식을 내 삶 속에 적용할 수가 없는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의미가 없이 죽은 것입니다. 그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겠습니까 물론 안다는 것이 증요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준 비와 자세를 가지고 말씀을 배워 알아야 합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믿이니이다 주님께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제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알기는 알았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했던 그 당시 종교인들의 비극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여관 주인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2장 7절에 보면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 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했습니다. 그 당시 베들레헴에는 가이사아구스도의 영에 의해서 호적을 하 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여관마다 만원이 되 어 마리아와 요셉은 방올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구유에 낳 게 되었습니다. 다른 손님 맞기에 바빠서 여관 주인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시는 예수님을 가까이 있으면서도 맞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서 우리는 그때부터 역사를 다시 세기 시작 해서 주전(주님 오시기전), 주후(주님 오신 후)로 나누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문밖에 계셨 습니다.
그런데 왜 여관 주인이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습니까 이 유는 간단합니다. 너무 바빠서 그랬습니다. 많은 손님들이 갑자기 밀어닥치니까, 더구나 권력 있는 손님, 돈 많은 손님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어 바쁘다보니 정말 정말 귀한 손님이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셨는데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가운쎄는 이런 형된에 있는 분이 안 계십니 까 그저 먹고 사느라고 바빠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는 사람 들, 세상 일에 바빠서 정말 증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비극이 바로 여관 주인의 비극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그 순간, 내 목숨 이 영원을 향해 떠나는 그 순간, 돈이 무슨 소용있습니까 권력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흑시 우리는 세상 에 도취되어서 더 중요 한 일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4년 6월 나치 독일에게 결정적 패배 를 안겨준 한 사건이 있습니다. 히틀러가 제일 신임하던 독일의 명 장 롬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롬멜 장군은 독일이 구라파 와 전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프랑스를 잘 지키는 것이 가장 중 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남부 해안을 지키고 그 지역을 요새화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5월 말 며칠간 그곳의 날씨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바다에는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안개가 껴서 작전을 전개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롬멜 장군은 며칠동안 좀 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6월 6일이 롬멜 장군 부인의 생일이어서 장군은 아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베를린으로 돌아왔 습니다. 아내의 생일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 롬멜 장군은 연합군의 노르만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롬멜 이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돌아갔던 것이 독일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 주게 된 것입니다. 작은 일 때문에 중대한 일을 실수하는 비극이 개인이나 국가에 종종 일어납니다. 땀흘려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입니다. 살아가려면 돈을 버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 때문에 가장 증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금년도 며칠밖에 남지 않았는데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서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셨습니까 잠깐 되는 이 세상, 끝날 때 나는 저 영원의 순간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 상상해 보셨습니까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내 삶에 어떤 모습으로 결산될 것인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중요한 물음에 대답할 생각을 하지 않고 덜 중요한 것에 매 여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비유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인이 잔치를 잘 차렸습니다. 그리고 손님들을 초대했습니다. 우리 주인께서 잔치를 잘 차렸습니다. 부디 오셔서 즐기시고 자리 를 빛내 주십시오.'
그런데 초대받은 손님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댑니다. , 나는 밭을 사서 그 밭의 형편을 좀 보아야 되므로 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소를 샀는데 그 소를 시험해 보아야 하기 때문에 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새 차를 샀기 때문에 시운전을 해 보아야 하므로 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집을 새로 사기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오늘은 거기에 가 보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주인의 마음은 몹시 섭섭했습니다. '할 수 없다. 그들은 자기에 일을 하게 하라. 돈 버느라 바빠서 신앙에 대 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대로 버려두라. 쾌락에 빠져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상실한 그들을 그대로 두라. 그 대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데려오라. 천국을 향한 꿈을 가진 사람들을 데려 오라. 예수님을 향한 불붙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데려오 라. 내가 그들을 위해서 이 잔치를 열겠다.'고 말합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천국잔치를 베풀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는$이 주인의 마음을 이해합니까 이제 어느날 이 세상 역사의 막이 내릴 때의 광경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 이하를 보세요 '노아 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 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그와 같으리라' 여러분, 여기 예수님이 정죄하신 것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 가가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흔인잔치에 참석하셔서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낭만을 거절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의 강조점은 그들이 인자의 다시 오심을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 서 흥수가 나서 다 저희를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사소한 일 때문에 바빠서 더 중요한 사건을 잊 어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 주 예수를 통해서 구속의 감격을 몰랐던 사람들, 주님 안에서 사는 새 생명의 기쁨 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광스러운 삶올 놓쳤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첫번 크리스마스에 아기 예수를 영접하지 못했던 비극의 주인공들과 같지는 않습니까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내 가 무슨 손해를 본다고 생각해서 주님께 나 자신을 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알 것은 다 알면서도 그 이상은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는 아닙니 까 우리는 베들레헴 여관주인처럼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아두고도 일상적인 삶에 대한 관심 때문에 주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별 의미가 없는 하나의 공휴일로만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성경에서 가장 슬픈 구절 중의 하나는 요한복음 1장 11절이라고 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가 만드신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절을 보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 셨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주님을 우리 마음과 삶속에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욕심 때문입니까 이기심 때문입니까 무관심 때문 입니까 아니면 세상 재미 때문입니까 우리는 첫번째 크리스마스를 놓쳐버린 사람들처럼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운데 헤롯왕의 얼굴을 닮은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관주인과 같은 사람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성경은 잘 알지 만 아는 것에서 그치고 주님을 내 마음과 삶 속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슬픈 일입니다. 이 슬픔 때문에 사랑하는 이웃에게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 전하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는 우리의 구주십니다. 그 분이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죄와 사 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주님 때문에 우리의 삶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의 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생각만 해도 신기한 기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삶이 정말 행복합니다. 세상의 것이 좀 부족해도 우리는 주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주님 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을 전하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원합니다. 머리는 있어도 베들레헴에 찾아 갈 손과 발이 없었던 서기관의 비극이 우리의 비극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서 세상에 오신 이 날,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설레임 이 있습니다. 주안에서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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