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주변의 사람들 (마2:1-12)
본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고 그 가정에는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 나는 시대를 잘못만나 태어났다, 참으로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태어났다는 식으로 불평하는 경우를 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셨다고 합니다. 그 시대는 헤롯 왕이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헤롯왕 때에”-헤롯왕 시대에는 그야말로 폭군의 정치가 펼쳐지던 때였습니다. 헤롯은 예루살렘에 대성전을 짓는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자기의 명성을 날렸습니다. 그의 인격은 우리나라 왕중에서 가정 폭군이라고 불리우는 연산군 이상으로 못된 자였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아내와 장모를 죽였을 뿐 만 아니라 장남과 다른 두 아들도 죽였습니다. 그리고 열명을 헤아리는 아내가 있었으나 근친상간까지 해던, 이루 말할 수 없는 비 인격적인 모습을 가진 자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때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실로 불행하고 어두운 때이지만 영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그때가 예수께서 오실 가장 적절한 때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탓하기도 합니다. 우루과이 라운드니 해가지고 농민들은 못살겠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러한 시대적 변혁을 이겨나가도록 해 주실것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시대에 살게하셨을까 그리고 대한민국에 그 중에서도 경상도 땅인 이곳 대평마을에서 뿌리를 두고 살게 하셨을까 왜 교회를 이곳에 세우셨을까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러한 이유는 복음을 증거하며 살게 하기 위함인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연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해답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신 것은 그 시대가 오히려 복음을 심고 뿌려서 터를 닦는데에 오히려 적기 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결정하시고 일하십니다. 이러한 신앙이 저와 여러분에 있다고 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꿈과 비젼을 반드시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본론'
자!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해서 각기 다르게 반응하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1. 헤롯왕과 같이 겉으로는 환영하나 속으로는 저주하고 적의에 찬 태도를 보여주는 반응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적의에 찬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불경스런 태도를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없이 취합니다. 십자가를 불태우는가 하면, 사단을 숭배하고 돈을 숭배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등 복음에 반기를 드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이 교회안에 있을 수도 있고 신학교의 강의실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면서 성도들에게 사기를 치고 예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지나치게 아부성을 띄는 사람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겉과 속이 변함없이 진실된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믿는 사람하면 물어볼것도 없이 진실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세상사람에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하지 못한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태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정직과 진실의 운동을 펼쳐야 할 줄 압니다. 오늘날은 정직의 위기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아니 정직의 상실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정직과 진실의 본보기로서 다시한번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교회는 서로를 믿고 존경하고 귀히 여기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실험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종교적으로 전문 직업인인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무관심한 반응입니다. 신앙의 태도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관심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도 그저 습관적으로 헌금하고, 습관적으로 나와서 설교 듣고 봉사하는 이러한 태도가 정말 무서운 신앙의 적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회개할 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잘나오니까요! 반성할 것도 헌금도 열심히 하고 맡은 일을 제대로 하는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인 습관을 갖게 되면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뜻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됩니다. 깨닫지도 못하므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해가 되어지기 일쑤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에 대해서 가장 관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어야 그들이었지만 오히려 무관심 하고 냉담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와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한 번도 은혜에 감격해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은지 오랜된 훈장만 자랑하고 한 번도 회개하는 눈물을 흘려보지 못하고 주님의 피묻은 손을 만져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종교를 하나의 여가선용 정도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우리 성도들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정말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계십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애착을 갖고 이루어 드리기 위해 깨어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럽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밖의 문제가 아니라 안의 문제이기에 심각하다고요! 교회에서는 섬김의 자리만 있지 어떤 자리를 위한 싸움이 있어서는 않됩니다. 당파가 나위어서도 않됩니다. 그러한 것은 주님의 몸을 다시 한 번 찢는 영적범죄입니다. 서로서로 정죄하기 위해서 헛점을 알아내기 위한 관심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그리스도안에서 몸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고자 하는 마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관심 보다는 관심을 관심가운데서는 사랑과 섬김의 관심을 갖기를 갖기를 원합니다.
3. 먼길을 생명바쳐 찾아온 동방박사들의 반응입니다. 이들은 감격과 기쁨의 경배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아기 예수님께 무릎꿇고 경배 했지만 어느누구 하나 잘했다고 박수쳐준 사람없었습니다 그들은 묵묵히 경배와 헌신을 주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통해서 세가지 정도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동방박사들은 죽음을 무릎쓰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예배란 하나의 종교의식의 차원이 아닙니다.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만나는 결단이요 헌신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언대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메시야를 경배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먼 길 베들레헴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2절에 나타난것처럼 오로지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헌신 없이, 참된 경배 없이 불가능합니다. 높으신 보좌 위에서 인간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그들은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온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경배하는 태도에 따라 은혜받는 양이나 질은 각각 다릅니다. 설교자가 얼마나 설교를 잘하느냐에 따라 은혜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하나님을 만나러 오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어떤 태도로 교회에 오셨습니까 진심으로 하나님을 정성것 경배하기 위해서 오신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혹시 그 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동안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멀리 느껴집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렘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오늘부터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으십시오! 기도로 찾으십시오! 말씀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찬송으로 주님과 교제하십시오! 봉사로 주신 기쁨을 표현하십시오! 전도로 받은 은혜를 이웃에게 보이십시오! 모든 것을 각오하고 전심으로 찾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때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행복이요, 기쁨이 될것입니다.
둘째로, 동방박사들은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참된 예배란 정성어린 예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은 오늘날 우리가 예배시에 드리는 헌금과 같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참으로 많이 내느냐 적게 내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헌금에 회개의 눈물이 있고 감사의 기도가 담겨져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그저 감사나 감격없이 아까워하며서 학교에 내는 등록금과 같이 우리의 헌금이 전락해버린다면 그것은 헌금의 바른정신이 아닌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도 가듯이 예배시에 드리는 헌금은 우리의 마음과 함께 하나님께 드려지는 신앙의 표현인것입니다. 자원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은 향기로운 예물이 되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셋째로, 동방박사들은 순종했습니다. 12절에 보시면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동방박사들은 드디어 별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그 장소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고 꿈속에 천사를 통해서 지시함을 받고 헤롯에게로 가지 않고 자시의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표현되고 순종으로 완성되어집니다. 예수님을 내 성격대로 내 마음대로 믿으려 해서는 않됩니다. 내 식으로 교회를 봉사하고 섬기면 서로서로 마찰이 생기게 됩니다. 모일 때마다 큰 소리가 나가 불화가 일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의 원리대로 순종하며 봉사하는 사람은 항상 그가 가는 곳마다 평화를 일구어냅니다. 때로는 바보같이 보일지라도 말씀대로 순종할 때 거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앙생활의 결론은 우리의 인격에 순종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됩니다. 어떤 분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눈물나게 봉사와 기도, 섬김으로 순종하는 분이 있습니다. 누가 알아주던 말던 상관하지 않고 오직 겸손하게 주님의 일이라면 순종합니다. 어려운 환경이나 형편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기쁘게 순종하며 충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다 똑같이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아닙니다. 헤롯왕과 같이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서기관과 바리새인같은 종교인들의 무관심과 위선! 이같은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을 결과적으로 대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향한 진정한 경배의 자세를 갖었습니다. 이들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정성것 예물을 드림으로 저들의 정성을 표현했습니다. 순종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경배를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대평제일교회 성도님들은 동방박사가 보여준 경배의 자세를 본받고 우리에게 경배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의 삶을 살아서 우리의 한 생애가 주님만 높여드리는 참 예배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가끔 나는 시대를 잘못만나 태어났다, 참으로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태어났다는 식으로 불평하는 경우를 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셨다고 합니다. 그 시대는 헤롯 왕이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헤롯왕 때에”-헤롯왕 시대에는 그야말로 폭군의 정치가 펼쳐지던 때였습니다. 헤롯은 예루살렘에 대성전을 짓는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자기의 명성을 날렸습니다. 그의 인격은 우리나라 왕중에서 가정 폭군이라고 불리우는 연산군 이상으로 못된 자였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아내와 장모를 죽였을 뿐 만 아니라 장남과 다른 두 아들도 죽였습니다. 그리고 열명을 헤아리는 아내가 있었으나 근친상간까지 해던, 이루 말할 수 없는 비 인격적인 모습을 가진 자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때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실로 불행하고 어두운 때이지만 영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그때가 예수께서 오실 가장 적절한 때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탓하기도 합니다. 우루과이 라운드니 해가지고 농민들은 못살겠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러한 시대적 변혁을 이겨나가도록 해 주실것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시대에 살게하셨을까 그리고 대한민국에 그 중에서도 경상도 땅인 이곳 대평마을에서 뿌리를 두고 살게 하셨을까 왜 교회를 이곳에 세우셨을까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러한 이유는 복음을 증거하며 살게 하기 위함인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연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해답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신 것은 그 시대가 오히려 복음을 심고 뿌려서 터를 닦는데에 오히려 적기 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결정하시고 일하십니다. 이러한 신앙이 저와 여러분에 있다고 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꿈과 비젼을 반드시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본론'
자!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해서 각기 다르게 반응하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1. 헤롯왕과 같이 겉으로는 환영하나 속으로는 저주하고 적의에 찬 태도를 보여주는 반응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적의에 찬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불경스런 태도를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없이 취합니다. 십자가를 불태우는가 하면, 사단을 숭배하고 돈을 숭배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등 복음에 반기를 드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이 교회안에 있을 수도 있고 신학교의 강의실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면서 성도들에게 사기를 치고 예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지나치게 아부성을 띄는 사람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겉과 속이 변함없이 진실된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믿는 사람하면 물어볼것도 없이 진실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세상사람에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하지 못한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태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정직과 진실의 운동을 펼쳐야 할 줄 압니다. 오늘날은 정직의 위기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아니 정직의 상실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정직과 진실의 본보기로서 다시한번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교회는 서로를 믿고 존경하고 귀히 여기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실험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종교적으로 전문 직업인인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무관심한 반응입니다. 신앙의 태도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관심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도 그저 습관적으로 헌금하고, 습관적으로 나와서 설교 듣고 봉사하는 이러한 태도가 정말 무서운 신앙의 적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회개할 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잘나오니까요! 반성할 것도 헌금도 열심히 하고 맡은 일을 제대로 하는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인 습관을 갖게 되면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뜻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됩니다. 깨닫지도 못하므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해가 되어지기 일쑤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에 대해서 가장 관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어야 그들이었지만 오히려 무관심 하고 냉담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와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한 번도 은혜에 감격해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은지 오랜된 훈장만 자랑하고 한 번도 회개하는 눈물을 흘려보지 못하고 주님의 피묻은 손을 만져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종교를 하나의 여가선용 정도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우리 성도들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정말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계십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애착을 갖고 이루어 드리기 위해 깨어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럽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밖의 문제가 아니라 안의 문제이기에 심각하다고요! 교회에서는 섬김의 자리만 있지 어떤 자리를 위한 싸움이 있어서는 않됩니다. 당파가 나위어서도 않됩니다. 그러한 것은 주님의 몸을 다시 한 번 찢는 영적범죄입니다. 서로서로 정죄하기 위해서 헛점을 알아내기 위한 관심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그리스도안에서 몸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고자 하는 마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관심 보다는 관심을 관심가운데서는 사랑과 섬김의 관심을 갖기를 갖기를 원합니다.
3. 먼길을 생명바쳐 찾아온 동방박사들의 반응입니다. 이들은 감격과 기쁨의 경배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아기 예수님께 무릎꿇고 경배 했지만 어느누구 하나 잘했다고 박수쳐준 사람없었습니다 그들은 묵묵히 경배와 헌신을 주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통해서 세가지 정도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동방박사들은 죽음을 무릎쓰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예배란 하나의 종교의식의 차원이 아닙니다.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만나는 결단이요 헌신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언대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메시야를 경배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먼 길 베들레헴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2절에 나타난것처럼 오로지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헌신 없이, 참된 경배 없이 불가능합니다. 높으신 보좌 위에서 인간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그들은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온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경배하는 태도에 따라 은혜받는 양이나 질은 각각 다릅니다. 설교자가 얼마나 설교를 잘하느냐에 따라 은혜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하나님을 만나러 오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어떤 태도로 교회에 오셨습니까 진심으로 하나님을 정성것 경배하기 위해서 오신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혹시 그 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동안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멀리 느껴집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렘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오늘부터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으십시오! 기도로 찾으십시오! 말씀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찬송으로 주님과 교제하십시오! 봉사로 주신 기쁨을 표현하십시오! 전도로 받은 은혜를 이웃에게 보이십시오! 모든 것을 각오하고 전심으로 찾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때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행복이요, 기쁨이 될것입니다.
둘째로, 동방박사들은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참된 예배란 정성어린 예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은 오늘날 우리가 예배시에 드리는 헌금과 같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참으로 많이 내느냐 적게 내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헌금에 회개의 눈물이 있고 감사의 기도가 담겨져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그저 감사나 감격없이 아까워하며서 학교에 내는 등록금과 같이 우리의 헌금이 전락해버린다면 그것은 헌금의 바른정신이 아닌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도 가듯이 예배시에 드리는 헌금은 우리의 마음과 함께 하나님께 드려지는 신앙의 표현인것입니다. 자원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은 향기로운 예물이 되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셋째로, 동방박사들은 순종했습니다. 12절에 보시면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동방박사들은 드디어 별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그 장소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고 꿈속에 천사를 통해서 지시함을 받고 헤롯에게로 가지 않고 자시의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표현되고 순종으로 완성되어집니다. 예수님을 내 성격대로 내 마음대로 믿으려 해서는 않됩니다. 내 식으로 교회를 봉사하고 섬기면 서로서로 마찰이 생기게 됩니다. 모일 때마다 큰 소리가 나가 불화가 일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의 원리대로 순종하며 봉사하는 사람은 항상 그가 가는 곳마다 평화를 일구어냅니다. 때로는 바보같이 보일지라도 말씀대로 순종할 때 거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앙생활의 결론은 우리의 인격에 순종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됩니다. 어떤 분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눈물나게 봉사와 기도, 섬김으로 순종하는 분이 있습니다. 누가 알아주던 말던 상관하지 않고 오직 겸손하게 주님의 일이라면 순종합니다. 어려운 환경이나 형편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기쁘게 순종하며 충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다 똑같이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아닙니다. 헤롯왕과 같이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서기관과 바리새인같은 종교인들의 무관심과 위선! 이같은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을 결과적으로 대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향한 진정한 경배의 자세를 갖었습니다. 이들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정성것 예물을 드림으로 저들의 정성을 표현했습니다. 순종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경배를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대평제일교회 성도님들은 동방박사가 보여준 경배의 자세를 본받고 우리에게 경배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의 삶을 살아서 우리의 한 생애가 주님만 높여드리는 참 예배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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