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길을 예비한 자 (마3:1-6)
본문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해 나가실 때에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사단의 위협이 지속적으로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30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이제 공생애를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자신이 메시야이심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기 시작합니다. 그에 앞서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례요한입니다. 그는 예수님과는 친척이고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는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선지자로서 예수님 앞서 와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가는 길을 곧게 닦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시간 저는 예수님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와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요한을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본론'
1. 하나님의 때에 등장한 세례요한(1절) 1절을 보면 “그때에 세례요한이 이르러 유대광야에 전파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그 때에”라는 단어는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의 시기다 끝나고약 400년이 흐른 다음의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약 400년동안 이스라엘에 묵시나 다른 메시지를 주시지 않고 침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이 400년의 침묵의 시간은 그야말로 파란 만장한 시기였습니다. 고통과 암흑의 시기였습니다. 그야말로 소망의 한 줄기 빛을 갈망하는 외롭고 괴로운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400년의 침묵을 깨고 선지자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문을 여십니다. '예화' 부부싸움:말하지 않고 있을 때 제일 답답!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는 때가 있고 여름의 작렬하는 태양 빛과 태풍과 비바람같은 고통의 시간을 거치고 추수하는 가을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개입하십니다 어떤 목표를 두고 씨앗을 뿌리면 하나님은 결국 가장 적절한 때에 거두게 하십니다. 신앙의 씨앗을 믿음으로 뿌리십시오! 기도의 순종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둔다고 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뿌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열매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쓰임받게 됩니다.
2. 셰례요한과 그의 사역!
1) 그의 사역지:유대 광야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선지자로서의 준비기간을 보냈을 뿐 아니라 이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시작을 광야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광야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입니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이 별로 없고 물이 귀할뿐더러 여러 가지 위험요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외로운 곳입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곳입니다. 관심이 없는 곳입니다. 인기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듭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화려함과 성공을 쫓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도들은 광야생활이 필요합니다. 광야에서의 연단이 필요합니다. 그저 교회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만 만족하며 산다면 발전이 없습니다. '예화' 온실에서의 화초는 참 아름답습니다. 많은 사람의 환호와 칭찬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보여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심지가 강하지 못합니다. 여러 가지 낯선 환경이나 병충해가 오면 금방 병들어 견디지 못하고 시들고 썩고 맙니다. 결국 나가야 하는 곳이 세상의 환경인데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믿음의 연단이 없으면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수 없습니다. 자신을 추수리기에도 급급합니다. 결국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합니다. 연약한 성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들꽃은 화려하지도 사람들의 눈길도 쉽게 끌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명력이 강합니다. 비바람,폭풍우가 치는 가운데서도 살아남습니다. 세상에서 화려하게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게 서서이 저들을 변화시킵니다. 작은 빛일지라도 저들에게 비추어서 어두움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 모르는 삶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또한 소리없이 녹아져서 부패를 막고 바른 모범을 보여줌으로 살맛나는 삶이 그리스도안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에게 광야가 있습니까 한차원 신앙을 성숙케 하는 광야의 연단이 있습니까 기도의 광야로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기도로 광야를 정복하십시오 말씀순종의 광야로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순종으로 광야의 기적을 체험하십시오 전도의 광야로 자신을 던지십시오 그래서 새생명을 잉태하십시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여러 가지 광야가 옥토로 변하여 씨앗이 뿌려져 축복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나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광야를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고 광야에서의 시간이 하나님께 가장 귀히 쓰임받는 기간임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재림의 길을 더욱 평탄게 하는 성도의 삶이 되기를!
2) 그의 메시지:1 회개를 선포함(2절) 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세례요한의 이 메시지는 여러분도 들어야 하고 목회자인 저도 들어야 합니다. ‘회개’-“메타노이아”= 생각을 다르게 하라, 생각을 고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회개란 단순히 어떤 사건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슬퍼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보다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쉽게 표현하면, 잘못된 것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으로부터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그렇게도 많이 회개에 대해서 설교를 듣고도 삶이 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회개가 아니라 후회를 했기 때문입니다. 회개란 행동의 변화인것입니다. '예화' 어떤 분은 부흥회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고 회개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이 문제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눈물에 자신이 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눈물 흘리는 것으로 자신이 거룩해진 것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없이 거기서 끝나고 맙니다. 이것은 회개가 아니라 감상이요 낭만입니다. 회개에는 죄를 후회하고 슬퍼하는 애통이 뒤따르지만 슬픔 그 자체가 나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이 여기서 말하는 회개란 생각과 태도와 행동의 일대 전환을 뜻합니다. 8절에 보면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폼만 좋은 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예수를 잘 믿을 것같이 생긴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그리스도인,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마치 불에 타다 남은 숯동강처럼 아주 불쌍하고 보기 흉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예수 안믿는 사람이기보다는 예수믿다가 그만 둔 사람,회개하면서도 열매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분들은 예수 믿는다고 말하니까 전도할 길도 없습니다. 차라리 안믿는다고 하면 전도라도 할 수 있지만 믿는다고 하니까 화인것입니다. 그저 교회나 왔다갔다하고, 찬송가나 높이 부르고 마치 그것이 다인 양 다니지만 그 생활을 보면 회개의 열매가 없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가정의 회복과 교회의 부흥의 비결은 회개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회개하고 생활의 변화를 받아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일 큰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온 죄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변화되지 않는 죄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참으로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천국을 선포함 천국이 가까왔다고 합니다. 세례요한이 그렇게 회개하라고 외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천국 때문입니다.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보장되지 않는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천국의 왕이신 예수께서 곧 등장할 것이니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최대의 준비는 꽃다발이나 대합창이 아니라 바로 회개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장소적인 의미의 천국도 있지만, 천국은 누가 통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세례요한은 천국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이 오신 것을 천국이 임했다는 말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지배자요 통치자이신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정말 천지가 진동할 엄청난 사건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가 계신 곳이 천국이요 예수가 지배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이미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어느곳이든지 내 주예수 모신 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아멘!
3) 그의 생활 모습(4절) 검소한 삶 약대털옷/ 허리에 가죽 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 오늘날에는 이러한 것이 최고의 고가품들로 취급받지만 당시에는 가난과 검소함의 모습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호의호식하는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족적인 모습인것입니다. 그는 마땅한 집도 없이 광야에서 거처했다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이러한 삶의 모습은 오늘날 풍요로운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화려하고 말 잘하고 인기 중심이고 세속적인 모습에서의 탈피를 이해서 각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성도들은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자가 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과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돈을 선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돈을 낭비해서는 않됩니다. 그런 모든 돈과 시간은 선교적인 삶을 위해서 투자되어야 하며 봉사와 구제에 투자되어야 합니다.
3. 그의 초기 사역의 결과(5-6절)
1 사방에서 그에게 나아옴
2 자기들의 죄를 자복함
3 그에게 물세례를 받음 즉 세례요한의 설교가 아주 큰 효과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며 이상한 옷을 입고 설교했는데도 그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영적 부흥이 일어난것입니다. 부흥이 무엇입니까 죄인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가 진동하는 사건이요 영혼이 거듭나고 마귀가 떠나가는 영적부흥인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러한 기적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때에 등장한 세례요한(1절) 1절을 보면 “그때에 세례요한이 이르러 유대광야에 전파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그 때에”라는 단어는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의 시기다 끝나고약 400년이 흐른 다음의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약 400년동안 이스라엘에 묵시나 다른 메시지를 주시지 않고 침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이 400년의 침묵의 시간은 그야말로 파란 만장한 시기였습니다. 고통과 암흑의 시기였습니다. 그야말로 소망의 한 줄기 빛을 갈망하는 외롭고 괴로운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400년의 침묵을 깨고 선지자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문을 여십니다. '예화' 부부싸움:말하지 않고 있을 때 제일 답답!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는 때가 있고 여름의 작렬하는 태양 빛과 태풍과 비바람같은 고통의 시간을 거치고 추수하는 가을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개입하십니다 어떤 목표를 두고 씨앗을 뿌리면 하나님은 결국 가장 적절한 때에 거두게 하십니다. 신앙의 씨앗을 믿음으로 뿌리십시오! 기도의 순종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둔다고 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뿌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열매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쓰임받게 됩니다.
2. 셰례요한과 그의 사역!
1) 그의 사역지:유대 광야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선지자로서의 준비기간을 보냈을 뿐 아니라 이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시작을 광야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광야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입니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이 별로 없고 물이 귀할뿐더러 여러 가지 위험요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외로운 곳입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곳입니다. 관심이 없는 곳입니다. 인기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듭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화려함과 성공을 쫓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도들은 광야생활이 필요합니다. 광야에서의 연단이 필요합니다. 그저 교회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만 만족하며 산다면 발전이 없습니다. '예화' 온실에서의 화초는 참 아름답습니다. 많은 사람의 환호와 칭찬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보여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심지가 강하지 못합니다. 여러 가지 낯선 환경이나 병충해가 오면 금방 병들어 견디지 못하고 시들고 썩고 맙니다. 결국 나가야 하는 곳이 세상의 환경인데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믿음의 연단이 없으면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수 없습니다. 자신을 추수리기에도 급급합니다. 결국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합니다. 연약한 성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들꽃은 화려하지도 사람들의 눈길도 쉽게 끌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명력이 강합니다. 비바람,폭풍우가 치는 가운데서도 살아남습니다. 세상에서 화려하게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게 서서이 저들을 변화시킵니다. 작은 빛일지라도 저들에게 비추어서 어두움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 모르는 삶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또한 소리없이 녹아져서 부패를 막고 바른 모범을 보여줌으로 살맛나는 삶이 그리스도안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에게 광야가 있습니까 한차원 신앙을 성숙케 하는 광야의 연단이 있습니까 기도의 광야로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기도로 광야를 정복하십시오 말씀순종의 광야로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순종으로 광야의 기적을 체험하십시오 전도의 광야로 자신을 던지십시오 그래서 새생명을 잉태하십시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여러 가지 광야가 옥토로 변하여 씨앗이 뿌려져 축복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나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광야를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고 광야에서의 시간이 하나님께 가장 귀히 쓰임받는 기간임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재림의 길을 더욱 평탄게 하는 성도의 삶이 되기를!
2) 그의 메시지:1 회개를 선포함(2절) 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세례요한의 이 메시지는 여러분도 들어야 하고 목회자인 저도 들어야 합니다. ‘회개’-“메타노이아”= 생각을 다르게 하라, 생각을 고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회개란 단순히 어떤 사건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슬퍼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보다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쉽게 표현하면, 잘못된 것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으로부터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그렇게도 많이 회개에 대해서 설교를 듣고도 삶이 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회개가 아니라 후회를 했기 때문입니다. 회개란 행동의 변화인것입니다. '예화' 어떤 분은 부흥회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고 회개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이 문제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눈물에 자신이 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눈물 흘리는 것으로 자신이 거룩해진 것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없이 거기서 끝나고 맙니다. 이것은 회개가 아니라 감상이요 낭만입니다. 회개에는 죄를 후회하고 슬퍼하는 애통이 뒤따르지만 슬픔 그 자체가 나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이 여기서 말하는 회개란 생각과 태도와 행동의 일대 전환을 뜻합니다. 8절에 보면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폼만 좋은 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예수를 잘 믿을 것같이 생긴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그리스도인,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마치 불에 타다 남은 숯동강처럼 아주 불쌍하고 보기 흉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예수 안믿는 사람이기보다는 예수믿다가 그만 둔 사람,회개하면서도 열매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분들은 예수 믿는다고 말하니까 전도할 길도 없습니다. 차라리 안믿는다고 하면 전도라도 할 수 있지만 믿는다고 하니까 화인것입니다. 그저 교회나 왔다갔다하고, 찬송가나 높이 부르고 마치 그것이 다인 양 다니지만 그 생활을 보면 회개의 열매가 없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가정의 회복과 교회의 부흥의 비결은 회개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회개하고 생활의 변화를 받아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일 큰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온 죄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변화되지 않는 죄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참으로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천국을 선포함 천국이 가까왔다고 합니다. 세례요한이 그렇게 회개하라고 외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천국 때문입니다.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보장되지 않는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천국의 왕이신 예수께서 곧 등장할 것이니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최대의 준비는 꽃다발이나 대합창이 아니라 바로 회개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장소적인 의미의 천국도 있지만, 천국은 누가 통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세례요한은 천국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이 오신 것을 천국이 임했다는 말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지배자요 통치자이신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정말 천지가 진동할 엄청난 사건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가 계신 곳이 천국이요 예수가 지배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이미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어느곳이든지 내 주예수 모신 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아멘!
3) 그의 생활 모습(4절) 검소한 삶 약대털옷/ 허리에 가죽 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 오늘날에는 이러한 것이 최고의 고가품들로 취급받지만 당시에는 가난과 검소함의 모습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호의호식하는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족적인 모습인것입니다. 그는 마땅한 집도 없이 광야에서 거처했다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이러한 삶의 모습은 오늘날 풍요로운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화려하고 말 잘하고 인기 중심이고 세속적인 모습에서의 탈피를 이해서 각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성도들은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자가 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과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돈을 선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돈을 낭비해서는 않됩니다. 그런 모든 돈과 시간은 선교적인 삶을 위해서 투자되어야 하며 봉사와 구제에 투자되어야 합니다.
3. 그의 초기 사역의 결과(5-6절)
1 사방에서 그에게 나아옴
2 자기들의 죄를 자복함
3 그에게 물세례를 받음 즉 세례요한의 설교가 아주 큰 효과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며 이상한 옷을 입고 설교했는데도 그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영적 부흥이 일어난것입니다. 부흥이 무엇입니까 죄인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가 진동하는 사건이요 영혼이 거듭나고 마귀가 떠나가는 영적부흥인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러한 기적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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