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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의 의의와 목적 (마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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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땅에 세워진 4만 교회와 1200만 성도가 넘는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대명제 아래 성탄절 축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 이 인류역사 속에서 태어나고 죽어갔지만 성탄절만큼 온 인류가 기뻐하고 기뻐하는 일은 일찌기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행위만을 가지고 정죄하고 구원 을 논하던 율법시대가 막을 내리고 행위의 잘못은 조금 있을지라도 용서라는 은 혜의 수단을 통해 사해주시는 복음이 처음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영어로는 "GOSPELGOOD-NEWS"라고 합니다. 그리고 헬라어로는 뉴 앙겔리온이라고 합니다. 이는 "좋은 소식,복된 소식,기쁜 소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뉴앙겔리온이라는 낱말이 쓰이게 된 역사적 배경을 보면 로마시대에 전 쟁을 치루면서 아군이 적군과 싸워 전쟁을 치룰 때에 승리한 아군의 전령이 임금 에게 승전소식을 알리기 위해 황급히 말을 타고 달려와서 알리는 소식을 "뉴앙겔 리온"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겼다는 승리의 소식은 얼마나 감격스런 기쁨의 일 이었을까요 그게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과 저주 가운데 있었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초림 예수로 강림하셔서 사탄의 세력에서 놓임받게 하셨고 구원을 얻어 이 세상 어둠과 죄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십자가의 군병을 삼으셨습니다. 이게 복음 입니다. 구약시대에도 복음을 의미하는 내용이 두가지가 있었습니다. 먼저는 구약 시대 의 복음이란 사람이 태어나는 일을 복음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이는 구약의 창세 기 3장 15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태어날 여자의 후손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며 그 사탄은 여자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대적자가 되리라는 말씀 입니다. 이미 복음은 창세기의 예언으로서 성모 마리아라는 여자의 후손으로 태 어날 아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은 내용은 주님께서 요16:21 말씀에서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나으면 사람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는 기억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은 포로생활 속에서 해방을 받아 자유를 얻게 되리라고 외치는 소식을 복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깊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기성세대에 끌려와서 예루살렘으 로 돌아갈 수 있는 70년의 세월이 흐르면 자신들은 한 줌의 흙이 되어 묘지에나 누워있을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이 되면 우리는 바벧론의 압제에서 해방이 되는 구속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는 그 부푼 희망 을 안고 바벧론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하여 죄에서 해방을 얻게 되는 구원의 예 시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바로 복음의 시작입니다. 4복음서를 기록한 내용 가운데 각 기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 태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탄생에 대 한 기록을 왕가의 혈통인 다윗의 족보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가는 어떻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탄생 자체가 곧 복음의 시작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 들려주신 말씀들만 복음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 심으로서 주님 자신이 복음이요 진리인 것입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사람이 태어 나는 것을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 자신이 태어나신 일이 기쁜 소 식이요 주님 자신이 진리이셨기 때문에 예수님 탄생을 복음의 시작이라고 기록했 던 것입니다. 또 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할 때에 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 만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또 구세 주이심을 믿는 우리들이 어떤 영적 교훈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를 상고하면서 말씀으로 은혜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예언대로 탄생하셨다는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인간을 창세기에서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받 은 인간과 태어나는 인간입니다. 창조받은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 을 불순종하여 인간은 태어나는 방법으로 세상에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 후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아담의 형상(죄의 속성)을 몸에 지니고 계속하여 태어나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선지자들에게 예언된대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사9:6-7에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 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6절의 말씀도 미 가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미5:2에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대고을 중 에서 작을지라도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예언한 말씀대로 성취되어졌습니다. 결혼한 가정에서 자녀가 태어나도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면서도 "아무게 집에 딸을 낳대, 아들을 났어"라고 기뻐 하면서 모르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보인양 전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태어나는 일이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은 무려 700년 전에 예 언한 일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1주일 이후에 일어날 일을 말하여도 놀랍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냥 700년이 지나니까 어쩌다가 마리 아의 몸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일찌기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한다면 700년 전의 일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창세기의 예언입니다. 서론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여자의 후손 즉 성모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쳐부수는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4,000년 전의 예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예언은 정확하며 신비로운 것이며 기적 중에 기적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의 구속을 이루기 위한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된 사건 중의 하나가 째 맞는 오늘의 성탄입니다. 이는 성경 에 기록된 예언이 반드시 성취되어지는 일로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는 진리를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언을 신실하게 믿고 예언된 말씀에 따 라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성탄을 축하하는 것으로만 끝내는 예배보다는 낮아진 인간 의 모습으로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온 인류를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시고 다시 오실 재림주로서 예언이 되어있는 사실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없이 믿는 참된 재림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미선교회가 빗나간 예언을 했고 또 주님은 10월 26일에 오시지 않았기에 주님의 재림이 이루 어 지지않는다고 생각한다든지 아직도 주님이 재림은 먼 곳에 있다고만 여겨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도적같이 하늘에 번개가 번쩍임같이 또는 오늘 밤에라도 오실 수 있다는 깨어있는 재림신앙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둘째로 말씀이 육신으로 오시기 위해 성령님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단 순히 말씀으로 존재하시던 성자 예수께서 이 세상에 우리처럼 몸을 덧입고 오셨 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깊은 영적인 뜻이 담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인 참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는 말씀으로 계시는 것보다 직접 우리 눈에 보이시면서 구원의 역사를 위해 능동적으로 일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결 국 인간들이 볼 수 있는 상황 가운데서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셨던 모든 일들이 능동적이었습니다. 적극적이었습니다. 마지못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자유주의 신 학에서처럼 어떻게 하다보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게 되신 그리스도가 아니 십니다. 그 분은 오셔서 가난한 자들과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을 자신의 발로 찾 아 나섰고 억눌린 자를 향하여 자유함을 주시는 사랑의 손이 멈춰져 있지 않으셨 던 분이십니다. 누가 비방을 할지라도 그 일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주님은 죽음과 맞바꾸시면서 일하셨던 적극적인 분이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합니까 교회는 시대의 한 복판에 서있고 그리스도인은 세상 중앙에 우뚝 서있는 존재들입니다. 아무리 잘 믿는다 할지라도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인은 존재할 수 없고 교회가 거룩함과 속되고 부정함을 성과 속으로 구분한다 할지래 도 세상에 세워져 있지않고 불교처럼 산 속으로 들어가도 되는 종교가 아닙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5:13-14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 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지 교회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기에 이 의미는 더욱 분명 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그리스도 정신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시대정신에 그리스도 정신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교회는 수천명이 되어가면서도 적극적으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손길이 점점 적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점점 더 많은 유급직원을 두어야 합니다. 모두 다 세상살이에 바쁘기 때문에 봉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 그리스도인들은 봉사나 사랑의 손길 대신에 손쉬운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돈만으로 대신하려는 현대 그리스도인의 신사고(신사고)가 그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치만 이런 것들을 용납해 나가는 현대교회는 점점 거룩함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누구라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이렇 게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육신으로 오셨습니다. 그 주님 은 육신으로 오시지 않고도 말씀만으로도 일하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믿음좋은 백부장에게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시니 집에 있는 하인이 나 은 일이 그렇습니다. 말씀만 가지고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창조 사역에 말씀으로 동참하신 그리스도가 그러합니다. 창조사역 때 성령님은 수면에 운행하시는 분으로 계셨고 성자는 말씀으로 계시면서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님 탄생에 대해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광의 보좌에 계실 주님이 육신을 덧입고 허물많고 흠이 많고 탈도 많 고 탓도 많은 죄악된 세상에 오신 것은 능동적으로 일하시려는 것이셨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정신을 배워야 할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인간도 어떤 일을 할 때에 직접 가지않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전화로도 할 수 있고 편지로 도 할 수도 있는 일들과 대중수단을 이용하여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면 시골 에 계신 부모님들이 농사를 지어 도시에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주기위해 직접 가 지고 올라 오실 수도 있으나 우편제도의 하나인 소포를 이용하여 전달할 수도 있 고 정기화물을 이용하거나 철도청의 수화물로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직접 자신이 낮아지신 신분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적극적으로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깊은 뜻을 위하여 일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성탄절에 적극적으로 가난한 자,헐벗은 자,눌린 자,갇힌 자를 뒤돌아 보게도 되 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육신으로 오실 때에 왜 성령님으로 잉태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잉태하셨다는 것은 남자를 경험한 일이 없는 동정녀에게서 일반적으로 인간들이 태어나는 방법이나 수단이 아닌 특별한 탄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곧 특별한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특별한 방법을 선택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목적이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특별한 방법으로 출생케 하실 이 유가 없습니다. 더 깊은 영적인 의미는 인간과 인간인 남녀의 결합으로는 구세주 가 탄생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종교를 만드는 창시자나 교주는 남녀의 결합으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성육신은 인간의 수단으로 될 수 없다는 진리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떤 분은 예수님의 나심보다는 오심이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 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을 주는 종교임을 믿습니까 아직도 이러한 진리의 확신이 없으신 분은 확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 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 진리를 일찌기 깨달은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를 세워나 갈 때에 사도행전 4:12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단호 하게 외쳤습니다. 감히 이와같은 외침은 진리의 확신없이는 할 수 없는 설교입니다.
셋째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만이 그리스도인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육신을 덧입으셔서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인류의 한 일원이 되셨지만 그 분은 우리들의 구세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친히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하셨지만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예수라 하 라고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알려 주셨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녀의 이름을 짓는 작명권은 아버지에게 있는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이는 곧 천부권을 행사하 신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신 것을 입증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스라엘의 영광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탄생 자체가 우주적인 사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누가복음 2:13-14에서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땅 에서는 그에게 경배를 드리며 목자들이 찬양을 했으며 마리아가 찬양을 했는가 하면 하늘에서도 천군과 천사들이 찬양을 했습니다. 하늘과 땅을 우리는 우주라 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탄생은 우주적인 사건으로서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일입니다. 재림주로 오실 때도 우주적인 사건으로 오십니다. 한사람이 잠 을 자다가 한 사람은 맷돌 갈다가 어떤 사람은 밭에 있다가 데려감을 당한다고 마 24:40-44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둥글다고 하기 전에는 이 말씀이 엉뚱하게 해석되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을 보면 동방박사 세사람이 아기 예수를 보고 가장 크 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기뻐한다는 말이 여러곳에 기록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다는 기록은 이곳 뿐입니다. 곧 예수님 탄생 자체가 기뻐하고 기뻐할 일이라는 뜻이요 그 주님을 믿고 나아가면 우리 의 일생 다가도록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일들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일 먼저 찾아 오는 감정은 기쁨입니다. 그 다음이 평안입니다. 물 속에 빠진 자를 건져주었는 데 그가 하는 말이 "아! 나는 이제 평안하다"고 할까요 아닙니다. 그의 마음 속 에 건짐받아 살아난 사실이 기적같이 꿈만같이 기쁠 것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섬기기만 하면 기쁨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 고 실제로 우리가 그러한 경험을 하면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도 주님을 만난 체험이 약한 성도 들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주님을 만나므로 말미암아 기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만 해도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마 3:17,12:18,17:5,눅 3:22) 해롯왕도 예수를 보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눅23:8)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자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요20:20) 여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자 기뻐하면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마28:8) 천사들도 예수의 탄생을 두고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 한다고 하였습니다.(눅2:20) 승천하시는 주님을 보고도 제자들은 경배하면서 기뻐했다고 했습니다.(눅 24:52) 예수님 자신도 자신에게는 기쁨이 충만히 있어 그를 믿는 너희 속에 기쁨을 충 만케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요15:11)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모일 때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서 기도를 드렸고 그러다가 성령님을 받았다고 했습니다.(행2:46)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습니다.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기쁨이 없 다면 예배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가장 큰 기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 기쁨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황영조선 수가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온 국민은 한없이 기뻐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지지하던 기독교인들은 김영삼장로님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기 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쁨은 작은 기쁨에 불과 합니다. 우리는 큰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가장 크게 기뻐하는 일을 경험하면 사소한 삶에 문제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고 맙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을 때 얻는 이 큰 기쁨이 무엇인지 이해 하여야 하고 그 기쁨을 경험해야 합니다. 주님만이 주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이 기쁨을 누리시는 복된 성탄절 아침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결론의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앞 길에는 주의 재림만이 구속을 이루시 기 위한 예언만이 남아 있습니다. 700년 전의 예언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주님을 심판주로 보내신다는 예언은 분명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처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 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고 무엇보다 더 열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벧전4:7-8) 또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받들고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주님처럼 일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제자로 부르 셨던 사람들을 보면 모두 다 자기 삶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들을 불러서 사 용하셨습니다. 나뭇가지에 졸고 있는 새를 먹이신다고 하지않고 공중 나는 새를 보라고 했습니다. 밤새도록 수고하여도 고기를 잡은 것이 없었지만 이른 아침에 다음 출항을 위하여 그물을 깊고 있는 베드로와 그 형제를 부르셨습니다. 세관에서 열심히 집 무를 보던 세리마태를 불러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핍박이라도 열심히 더 적극적 으로 일삼던 사울을 불러 바울로 만드시고 세계선교를 위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열심히 쟁기를 잡고 농사일을 하던 엘리사를 불러 엘리야의 후계자로 삼으셨습니다. 살인까지 저질러 가면서 자기 동족을 열심으로 사랑하던 모세를 불러 민족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마찬가지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죄많은 세상에 오셔서 능동적으로 구원을 성취하신 주님의 뒤를 따르려면 우리도 피동적으로 마 지못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능동적으로 일하는 하나님 나라 의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기쁨이 없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너무나 잘 압니다. 기쁨이 없어 어떤 자들은 우울증에 걸리 기도 합니다. 기쁨이 없어 생을 포기하는 자살극도 이 땅에서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기뻐하고 살아갈 수 있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작은 기쁨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잠언 14:13에서 웃을 때에 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큰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가장 큰 기쁨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오 게 되어 있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누렸던 기쁨, 그 기쁨은 주님을 경배할 때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몸된 교회 위에 주님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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