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받은 계시 (마1:18-25)
본문
인간의 역사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몇가지 조건들이 부합될 때에 성취되어 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근래의 동 서독의 굳은 장 벽이 허물어지는 일이나 이로 인해 동구라파의 여러국가들이 자유를 부르짖 어 민주화의 거센 물결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정치 경제사회 문화의 발전 과정에서 인간들의 의식이 변화하고 자유에 대한 열망이 높아감에 따라 사 회변화의 조건들이 무르익어감으로 일어나게된 변혁의 물결이라고 할 수 있 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목적하는 방향으로 나 갈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역사가 진행되어 나아갈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변화 발전되어 나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 그 여러가지 조건들 중에 하나는 그 역사 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과 결단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일은 전 인류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전환시 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사도바울도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때가 참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때가 차서'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서기 원년 의 세계의 여러가지 상황과 조건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가 예수님이 오 셔야 할 결정적인 시기요 가장 적합한 때였는데, 그 때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역사를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안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시는 사람들을 통하 여 당신의 목표를 달성하십니다.
'역사'라고 하면 무슨 굉장한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란 영웅호걸이나 이름이 있는 명망있는 지도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로서는 알지도 보지도 못한 이름없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 역사의 방향은 움직이고 결정되 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세주로 세상에 오셨지만 그 때 그 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나사렛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알았을 뿐이고 모두 다 무관심하게 지났습니다. 당시 에 헤롯왕이나 아우구스트 황제 같은 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크게 알려진 사람링들이요, 또 유대인 사회의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랍비등은 그 이름과 명성이 널리 알려진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나 요셉 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 이면서 북쪽 갈릴리 나사렛에 살았고 또 그의 직업은 가난한 목수였습니다. 이런 평범한 한 서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사람이 누구이며 또 관심을 가 질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오시게 하셨고 또한 이들 은 그 뜻을 깨닫고 신앙으로 순종하였음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역사는 언제나 이름없는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져 나갑니다. 아우구 스트 황제나 헤롯왕, 또 그 당시에 이름을 떨치던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랍비 들은 실상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이 오시는 길 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구원의 사업을 훼방한 장본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경건한 사람들, 말없이 자신의 삶을 진실하고 꺼 끗하게 살아가던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려는 의지를 가진 이름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참여자가 되었고 또한 그 역사를 이루는 주도자들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 요셉 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서민으로 나사렛에서 목수생활을 하고있는 사람이 었는데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는데 있어서 누구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인물입니다. 요셉은 마리아 와 정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동거하기 전에 자기 약혼녀 마리아에게 잉 태된 것이 나타나 홀로 고민하고 괴로워 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여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만일 생각없는 사람이었다면 마리아에 대하여 큰 오해를 품고 모든 일을 그릇쳤을런지도 모릅니다. 약혼 하고 동거하기 전에 잉태한 것을 알았다고 하면 그것을 용납할 남자가 어디 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이렇게 된 사실을 자기만 알고 조용히 끊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면 요셉은 신중한 사람이요 사려깊은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극 단적으로 끌고가 일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불행한 사태이지만 이러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또 이러한 상황속에서 자신과 마리아가 모두 다 상처를 받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길 이 무엇일까 그는 이 모든 일들을 신중히 생각하고 또 고민하면서 해결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애를 썼습니다. 만일 요셉이 생각없는 사람으로 이 일을 처리하고 말았다면 나중에 마리아의 억울한 입장은 어떻게 보상되며 또 자기 자신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겠습니가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이 하 시려는 일이 성취되지 못하고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는 길이 막혀졌을런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중대한 일을 나사렛 동네의 이름없는 처녀 마리아와 그의 약혼자인 요셉을 통해서 이루셨다는 것인데 이 두 사람의 사랑과 신의, 존경과 의로운 판단이 인류 구원의 계획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한 훌륭한 믿음의 사람 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일거일동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매일의 평범한 삶, 일상 적인 생활들, 아무도 알아주지않고 별것도 아닌 소소한 일들이 모이고 쌓여 서 결국 역사를 움직이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 은 겨자씨와 같이, 또는 작은 누룩과 같이, 보이지 않고 소리도 없는 가운데 자라고 두루 퍼져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됩니다. 그와는 반대로 사람들의 의롭 지 못하고 신중하지 못한 생각과 행동들은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뜻을 항상 방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생각없는 결단 순간적인 기분이나 감정으로 치우친 행위 그리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나 자기 중심적인 판단들이 그 이후에 진행되는 역사 안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과 피해들을 끼쳤습 니가 '조금만 참았다면', '그런 말만 아니했더면', '생각의 방향을 이쪽으 로 돌렸더라면' 좋았을뻔한 일들이 역사 안에는 참으로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를 참으로 어렵게 만드는 것은 지나간 역사에서 크고 작은 오류들, 잘못된 판단들, 생각없는 행동들 때문에 빚어진 나쁜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역사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나는 아니다',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되고 공헌이 될 수 있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 요셉은 이렇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성경이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고 가르치는 진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인간 들이 순종했느냐 거역했느냐를 돌아보게 하고, 그 각각의 결과들이 어떻게 되었느냐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계획과 목적에 대하여 반항하는 인간들, 또 그 약속을 의심하고 믿지 아니한 인간들은 심한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스스로 파기하고 떨어져 나가면 그들은 구원을 상실하고 광야의 떨기나무처럼 보잘 것없고 쓸모없고 가련한 모습으로 전락 하게 됩니다. 그리고 끝까지 반항하고 거역한자들은 시간과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도 없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순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고 의로우신 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은 곧 인간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역사의 방향은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역사에는 언제나 인간의 순종이 요구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죄악에서 죽어가는 인류를 그 죄에 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사업에서 자기 몫을 훌륭히 감당한 사람중에 하나가 바로 이 요셉입니다. 물론 요셉도 인간이기에 그가 처한 정신적인 곤경은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 구원의 역사라고 하는 것을 쉽게 말은 하지만 거기에 순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 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순종하시고 또 순종하신 결과는 곧 십자가에 죽으신 일이었습니다. 순종은 어려운 것이고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인지 모릅니다. 마지막 순종은 십자기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여기서 고민하고 방황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다 이루어드리고, 다 순종하지는 못한다고해도 그 뜻에 순종하려고 애쓰고 또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심히 고민해보는 노력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때 요셉의 고민과 문제를 도와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그에게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그가 꾼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계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님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 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0하). 하나님의 계시가 언제나 꿈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고민하는 요셉, 모든 것을 신중하고 깊이 생각하는 요셉에게 하나님은 꿈을 통하여 모든 사실을 명확히 설명하시고 납득케 하시고 시인케하여 주셨습니다. 이 단순한 계시가 그것이 참 계시였기 때문에 요셉은 즉각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다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여 줍니까 계시는 마음속에 의심이 나고 바른 판단을 하기가 어려울 때 우리를 주님의 뜻과 그 목적으로 인도하여 줍니다. 이 때 요셉이 경험한 것은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꿈을 통하여 계시하셨다는 것은 아주 객관적 시건이요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 계시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도록 인도하시고 명 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이 결단하여 행해야 될 일입니다. 계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만일 요셉이 꿈 꾼 것만을 생각하고 자기환상과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그 분부대로 그 아내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이 어떻게 이루어졌겠습니까 계시 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또한 계시는 환상이나 도취가 아니라 거기에는 하나님의 분부와 명령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 명령을 듣고 따를 때에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가 받은 계시로 인하여 마음에 안심과 평화왔고 지금까지 고민 하고 염려했던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또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한 일꾼들에게 계속하여 그 뜻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고 그 뜻대로 따르도록 인도하 시는 것이 계시의 목적입니다. 우리의 매일 생활에서 밤과 아침에, 또는 곤 경의 때와 평안한 때, 의심의 짙은 먹구름이 끼었을 때, 바른 판단이 어려울 때,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숨겨진 뜻을 보여 주심으로써 우리를 승리와 축복 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과 뜻과 목적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일은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요셉이 방황하고 의심할 때 하나님은 계시로 그 뜻을 보 여 주시고 그렇게 된 목적을 분명히 알려 주셨다는 것, 이것은 요셉에게 큰 은혜요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하시려는 모든 일에 기꺼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름없는 한 가난한 목수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역사에 동참한 사람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에 도움이 되는 사람,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뜻을 깊이 깨달으며 계시의 빛 을 받아 그 목적을 알고 또 그 분부와 명령에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귀중한 하나님의 구원역사 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쁜마음으로 순종하시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의 효도 성경
본문:창 47:11-12 해마다 어버지 주일을 맞이할때에 효도할 것을 말씀하게 됩니다. 금 년은 유엔(UN)에서 가정의 해로 정한 해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에덴 에서 조직하셨습니다.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기초가 되는 곳으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신성하여야 합니다.가정으로써 가정 은 묘판과 같습니다. 가정이 바르게 되고 못되는데 따라서 행불행이 좌우됩니다.
1) 효도할 수 있는 가정의 바탕 가정은 혈연관계로 맺어진 곳으로 부모와 처자식 그리고 부부간의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가정은 부부의 결합으로써 성립이됩니다. 아담이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하나님은 하와를 만들때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드시고 그를 아내로 주셨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에게 이는 내 뼈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서 부부의 일 체를 알 수 있습니다. 부부의 생활을 위하여 아내는 남편에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의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시고 부모는 자식을 노렵게 하 지말고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엡 6:1-2).부모를 공경 하면 땅에서 장수하고 잘 된다고 하였습니다. 큰 빌딩은 기초가 튼튼 하여야만 높게 건물을 쌓아 올라갈 수 있습니다. 효도의 기반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부터 시작할 때 바른 효도를 할 수 있습니다.
2) 가정의 기본적인 기능 기계가 고장이 나면 기계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스빈다. 기계에는 반드시 동력이 있어야만 운전이 됩니다. 가정에는 각기 맡은 기능 이 있습니다. 신뢰와 애정으로 뭉쳐진 공동체에는 반드시 서로 돕고 위하는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이기적인 생각이 앞서면 안됩니다. 요즘 여자들의 결혼 조건에서 시부모를 모시지 않는 것이 결혼의 한 조건이 되기도 한답니다. 유리 부론펜브레노(Urie Bronfen brenner)라는 학자는 세가지의 기본 적인 기능이 깨어진 것을 말합니다.
(1) 생물학적인면 "가정을 자녀를 잉태하고, 생성하고 양육하는 최상 의 장이다. 육체적인 돌봄을 받으며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구성할 때 까지 필요한 물질적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구성할 때 까지 필요한 물질적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제대로 안된 다고 지적을 합니다.
(2) 심리학적이면 "가정은 부모의 언어를 배우는 가장 적당한 장이 며, 인간됨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사회속에서 어떻게 이웃과 함께 사는가 하는 방법을 배우며, 문화 가치가 무엇이며, 그 가치를 어떻게 받아야할 것인지를 배우는 최상의 장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자 마되 고 있지를 않습니다.
(3) 사회학적이면 "가정은 결혼이 무엇이며, 가정생활이 무엇이며, 어떠한 가정을 이루워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최상의 장이다. 넓은 사회, 직장등 국민의식을 배우는 곳이다."오늘의 사회는 이러한 기능 이 깨어졌기에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3) 요셉이 효도 요셉은 어렸을때 부터 그는 조상적부터 믿는 믿음의 생활과 부모님이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믿음의 진실과 인격의 수련이 잘 된 사람입니다. 조상의 믿음의 계승과 부모님의 교육을 잘 받아서 일찍부터 꿈의 비밀과 형들의 모함으로 애굽의 팔렸을 때도 그는 놀라운 꿈 해몽을 하였기에 그는 바로왕을 통하여 그 나라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가나 안의 흉년을 만났을 때 그의 가정을 애굽으로 인도했으며 야곱이 바로 왕에게 축복한 일과 그의 가정이 편히 살 수 있는 것과 그의 유언에 의하여 가나안으로 부친을 장례한 것입니다. 40일을 통한 방부제를 넣 고 70일간의 곡을하는 것으로 효를 다한것입니다. 생전 사후에 까지 효한것이 요셉의 효도입니다. 요셉의 생애 성경
본문:창 39:9-18 전도서 7장 14절 말씀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 라"라고 우리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인생의 여정에는 순경의 때와 역경의 때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요셉의 일생입니다. 주 지하는 바와 같이 요셉의 일생에는 세번에 걸친 위기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광야에서 형들에 의해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에서 십일년 동 안 노예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며,둘째는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집요하게 그를 유혹해 올때 그녀의 유혹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 을 쓰고 2년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세번째는 애굽의 총리대 신이 되어 칠년 동안 애굽에 임한 극심한 기근과 가난속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 내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감당해내야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 번의 역경 속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다름아닌 '유혹 '이라는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환란과 고통 때문에 넘어지 기보다는 유혹 때문에 이 세상에서 쓰러지는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성령님에 이끌려 먼저 광야로 가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 광야에서 사단은 세가지 시험으로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첫째, 사단은 '이 돌들이 떡 덩이 가 되게 하라'고 했으며둘째,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성 꼭대기 에서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셋째,사단은 '높은 곳으로 데리고 올 라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네가 만일 내게 한번만 경배하고 절을 하면 이 모든 세상의 것은 네게 줄 것이다'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당하셨던 이 장면을 주목해 볼때 우리는 마귀의 시험이 결 단코 강압적인 음성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마귀의 음 성은 부드럽고 달콤하여 누구나 한번쯤은 그렇게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하게되는 유혹도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무 서운 것입니다. 유혹은 은혜받은 사람에게도 옵니다 언젠가 "빛과 소금 이라는 기독교 잡지에서 그리스도인 남여 100명을 대상 으로 '첫번째로 가장 많이 유혹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첫번째는 물질적인 유혹으로 나타났으며 두번째는 명예의 유혹, 세번째는 주일성수, 네번째는 이성에 대한 정욕에 문제,다섯번째는 음주와 흡연의 유혹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통계를 참고해 볼 때 그리스도인들 이 받는 유혹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받는 유혹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가장 힘든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혹을 이기는 것이 힘든 까닭은 바로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이기는 사람은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오늘 본문의 청년 요셉은 진실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요셉의 생애에 있어 그가 총리 대신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오랜 기근 의 시련을 잘 극복한 것보다는 29세 나이에 보디발의 아내로 부터 집요하고 도 끈질긴 유혹을 받았을때 자기의 신앙과 윤리의 정조를 잘 지켜 유혹을 물리친 그 사건이 더 위대하고 훌륭한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만약 이 유혹 에 실패했다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발탁되지도 못햇을 뿐만 아니라 고향에 있는 아버지와 형제들을 오랜 기근에서 구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빈다. 마귀는 본래의 뜻이 "유혹하는 자"입니다. 마귀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찾아 옵니다. 요셉은 형들의 불의를 보지 못할 정도로 성결한 사람이었습니다(창 37:2) .또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였습니다(창 39:2). 그러나 이렇게 성경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그 삶을 형통하게 한 사람에게도 유혹은 찾아왔습니다.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요셉에게 닥친 시험은 집요하고도 끊임없는 유혹이었습니다. 10절 말씀은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참하지 아니 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라고 하였으며, 12절 말씀은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참하지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 하여 나가매"라고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혹의 많은 부분은 성문제를 통해서 오게 되는데 요셉과 같이 신앙생활 잘하고 정결한 사람도 이성문제에 직면해 넘어질 위기에 서게 된 것입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하는 사건으로 정욕의 유혹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유혹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 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요셉은 유혹을 거절하였습니다. (창 39:8). 둘 째, 유혹의 자리에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창 39:10). 세번째로 요셉은 직 면한 유혹에서 적극적으로 도망하였습니다. 환난은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이 나에 게 찾아올 때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도망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0절에서 집에는 여러가지 그릇이 있되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22절에서 "또한 네가 청년 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유혹은 믿음이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은 "믿음으로 요셉은"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 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시는 다음 세가지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첫째, 믿음이 있으면 자아의식이 생깁니다. 본문 9절에서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유혹할 때 내 마음속에는 '내가 이래서는 안 되지'라는, '나'라는 자아의식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요셉이 말한 '내가'라는 고백 뒤에는 자신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을 받고 약속 의 말씀을 받은 믿음의 아들이라는 자아의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창 25:23,33:5,37:7,9). 여러분 이처럼 '내가 누구인가'모태에서 택정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받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는가'라는 강한 자아의 식이 신앙으로 정립되면 죄의 유혹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의 선각자인 주기철 목사님은 "내가 넘어지면 한국교회가 무너진다"라 고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넘어지면 여러분이 속한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가를 알아 야 합니다.
둘째, 믿음이 있으면 죄의식이 생깁니다. 본문 9절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라는 말씀에서 이 '악'이 라는 말은 '파멸시킨다'는 뜻의 '라아라'에서 왔는데 이것은 불법을 말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관계를 맺는 것은 불법인 것입니다. 성경은 불 법이 죄라고 단호히 말씀합니다. 칼빈은 죄를 짓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죄의식으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현대인의 문제는 죄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죽어서 선 과 악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이 오면 쓰러집니다.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가장 슬 퍼하시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셋째,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의식이 생깁니다. 본문 9절의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까"라는 말씀에서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말은 히브리말에 "엘로힘'이라는 단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엘로힘'이라는 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했습니다. 요셉이 이처럼 '엘로힘'의 하나님을 부른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당면한 유혹에서 자신을 구원하실 능력의 하나님을 참 의지하면서 간 절히 기도하며 엘로힘의 하나님을 불렀던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코람데 어)'살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식'인 것입니다. 요셉이 자기를 깨끗이하여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던 것처럼 여러분도 자기를 깨끗이 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 그 여러가지 조건들 중에 하나는 그 역사 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과 결단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일은 전 인류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전환시 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사도바울도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때가 참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때가 차서'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서기 원년 의 세계의 여러가지 상황과 조건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가 예수님이 오 셔야 할 결정적인 시기요 가장 적합한 때였는데, 그 때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역사를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안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시는 사람들을 통하 여 당신의 목표를 달성하십니다.
'역사'라고 하면 무슨 굉장한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란 영웅호걸이나 이름이 있는 명망있는 지도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로서는 알지도 보지도 못한 이름없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 역사의 방향은 움직이고 결정되 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세주로 세상에 오셨지만 그 때 그 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나사렛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알았을 뿐이고 모두 다 무관심하게 지났습니다. 당시 에 헤롯왕이나 아우구스트 황제 같은 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크게 알려진 사람링들이요, 또 유대인 사회의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랍비등은 그 이름과 명성이 널리 알려진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나 요셉 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 이면서 북쪽 갈릴리 나사렛에 살았고 또 그의 직업은 가난한 목수였습니다. 이런 평범한 한 서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사람이 누구이며 또 관심을 가 질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오시게 하셨고 또한 이들 은 그 뜻을 깨닫고 신앙으로 순종하였음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역사는 언제나 이름없는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져 나갑니다. 아우구 스트 황제나 헤롯왕, 또 그 당시에 이름을 떨치던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랍비 들은 실상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이 오시는 길 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구원의 사업을 훼방한 장본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경건한 사람들, 말없이 자신의 삶을 진실하고 꺼 끗하게 살아가던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려는 의지를 가진 이름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참여자가 되었고 또한 그 역사를 이루는 주도자들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 요셉 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서민으로 나사렛에서 목수생활을 하고있는 사람이 었는데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는데 있어서 누구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인물입니다. 요셉은 마리아 와 정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동거하기 전에 자기 약혼녀 마리아에게 잉 태된 것이 나타나 홀로 고민하고 괴로워 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여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만일 생각없는 사람이었다면 마리아에 대하여 큰 오해를 품고 모든 일을 그릇쳤을런지도 모릅니다. 약혼 하고 동거하기 전에 잉태한 것을 알았다고 하면 그것을 용납할 남자가 어디 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이렇게 된 사실을 자기만 알고 조용히 끊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면 요셉은 신중한 사람이요 사려깊은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극 단적으로 끌고가 일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불행한 사태이지만 이러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또 이러한 상황속에서 자신과 마리아가 모두 다 상처를 받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길 이 무엇일까 그는 이 모든 일들을 신중히 생각하고 또 고민하면서 해결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애를 썼습니다. 만일 요셉이 생각없는 사람으로 이 일을 처리하고 말았다면 나중에 마리아의 억울한 입장은 어떻게 보상되며 또 자기 자신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겠습니가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이 하 시려는 일이 성취되지 못하고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는 길이 막혀졌을런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중대한 일을 나사렛 동네의 이름없는 처녀 마리아와 그의 약혼자인 요셉을 통해서 이루셨다는 것인데 이 두 사람의 사랑과 신의, 존경과 의로운 판단이 인류 구원의 계획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한 훌륭한 믿음의 사람 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일거일동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매일의 평범한 삶, 일상 적인 생활들, 아무도 알아주지않고 별것도 아닌 소소한 일들이 모이고 쌓여 서 결국 역사를 움직이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 은 겨자씨와 같이, 또는 작은 누룩과 같이, 보이지 않고 소리도 없는 가운데 자라고 두루 퍼져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됩니다. 그와는 반대로 사람들의 의롭 지 못하고 신중하지 못한 생각과 행동들은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뜻을 항상 방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생각없는 결단 순간적인 기분이나 감정으로 치우친 행위 그리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나 자기 중심적인 판단들이 그 이후에 진행되는 역사 안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과 피해들을 끼쳤습 니가 '조금만 참았다면', '그런 말만 아니했더면', '생각의 방향을 이쪽으 로 돌렸더라면' 좋았을뻔한 일들이 역사 안에는 참으로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를 참으로 어렵게 만드는 것은 지나간 역사에서 크고 작은 오류들, 잘못된 판단들, 생각없는 행동들 때문에 빚어진 나쁜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역사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나는 아니다',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되고 공헌이 될 수 있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 요셉은 이렇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성경이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고 가르치는 진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인간 들이 순종했느냐 거역했느냐를 돌아보게 하고, 그 각각의 결과들이 어떻게 되었느냐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계획과 목적에 대하여 반항하는 인간들, 또 그 약속을 의심하고 믿지 아니한 인간들은 심한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스스로 파기하고 떨어져 나가면 그들은 구원을 상실하고 광야의 떨기나무처럼 보잘 것없고 쓸모없고 가련한 모습으로 전락 하게 됩니다. 그리고 끝까지 반항하고 거역한자들은 시간과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도 없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순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고 의로우신 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은 곧 인간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역사의 방향은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역사에는 언제나 인간의 순종이 요구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죄악에서 죽어가는 인류를 그 죄에 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사업에서 자기 몫을 훌륭히 감당한 사람중에 하나가 바로 이 요셉입니다. 물론 요셉도 인간이기에 그가 처한 정신적인 곤경은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 구원의 역사라고 하는 것을 쉽게 말은 하지만 거기에 순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 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순종하시고 또 순종하신 결과는 곧 십자가에 죽으신 일이었습니다. 순종은 어려운 것이고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인지 모릅니다. 마지막 순종은 십자기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여기서 고민하고 방황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다 이루어드리고, 다 순종하지는 못한다고해도 그 뜻에 순종하려고 애쓰고 또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심히 고민해보는 노력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때 요셉의 고민과 문제를 도와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그에게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그가 꾼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계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님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 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0하). 하나님의 계시가 언제나 꿈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고민하는 요셉, 모든 것을 신중하고 깊이 생각하는 요셉에게 하나님은 꿈을 통하여 모든 사실을 명확히 설명하시고 납득케 하시고 시인케하여 주셨습니다. 이 단순한 계시가 그것이 참 계시였기 때문에 요셉은 즉각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다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여 줍니까 계시는 마음속에 의심이 나고 바른 판단을 하기가 어려울 때 우리를 주님의 뜻과 그 목적으로 인도하여 줍니다. 이 때 요셉이 경험한 것은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꿈을 통하여 계시하셨다는 것은 아주 객관적 시건이요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 계시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도록 인도하시고 명 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이 결단하여 행해야 될 일입니다. 계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만일 요셉이 꿈 꾼 것만을 생각하고 자기환상과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그 분부대로 그 아내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이 어떻게 이루어졌겠습니까 계시 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또한 계시는 환상이나 도취가 아니라 거기에는 하나님의 분부와 명령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 명령을 듣고 따를 때에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가 받은 계시로 인하여 마음에 안심과 평화왔고 지금까지 고민 하고 염려했던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또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한 일꾼들에게 계속하여 그 뜻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고 그 뜻대로 따르도록 인도하 시는 것이 계시의 목적입니다. 우리의 매일 생활에서 밤과 아침에, 또는 곤 경의 때와 평안한 때, 의심의 짙은 먹구름이 끼었을 때, 바른 판단이 어려울 때,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숨겨진 뜻을 보여 주심으로써 우리를 승리와 축복 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과 뜻과 목적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일은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요셉이 방황하고 의심할 때 하나님은 계시로 그 뜻을 보 여 주시고 그렇게 된 목적을 분명히 알려 주셨다는 것, 이것은 요셉에게 큰 은혜요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하시려는 모든 일에 기꺼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름없는 한 가난한 목수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역사에 동참한 사람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에 도움이 되는 사람,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뜻을 깊이 깨달으며 계시의 빛 을 받아 그 목적을 알고 또 그 분부와 명령에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귀중한 하나님의 구원역사 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쁜마음으로 순종하시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의 효도 성경
본문:창 47:11-12 해마다 어버지 주일을 맞이할때에 효도할 것을 말씀하게 됩니다. 금 년은 유엔(UN)에서 가정의 해로 정한 해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에덴 에서 조직하셨습니다.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기초가 되는 곳으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신성하여야 합니다.가정으로써 가정 은 묘판과 같습니다. 가정이 바르게 되고 못되는데 따라서 행불행이 좌우됩니다.
1) 효도할 수 있는 가정의 바탕 가정은 혈연관계로 맺어진 곳으로 부모와 처자식 그리고 부부간의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가정은 부부의 결합으로써 성립이됩니다. 아담이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하나님은 하와를 만들때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드시고 그를 아내로 주셨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에게 이는 내 뼈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서 부부의 일 체를 알 수 있습니다. 부부의 생활을 위하여 아내는 남편에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의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시고 부모는 자식을 노렵게 하 지말고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엡 6:1-2).부모를 공경 하면 땅에서 장수하고 잘 된다고 하였습니다. 큰 빌딩은 기초가 튼튼 하여야만 높게 건물을 쌓아 올라갈 수 있습니다. 효도의 기반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부터 시작할 때 바른 효도를 할 수 있습니다.
2) 가정의 기본적인 기능 기계가 고장이 나면 기계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스빈다. 기계에는 반드시 동력이 있어야만 운전이 됩니다. 가정에는 각기 맡은 기능 이 있습니다. 신뢰와 애정으로 뭉쳐진 공동체에는 반드시 서로 돕고 위하는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이기적인 생각이 앞서면 안됩니다. 요즘 여자들의 결혼 조건에서 시부모를 모시지 않는 것이 결혼의 한 조건이 되기도 한답니다. 유리 부론펜브레노(Urie Bronfen brenner)라는 학자는 세가지의 기본 적인 기능이 깨어진 것을 말합니다.
(1) 생물학적인면 "가정을 자녀를 잉태하고, 생성하고 양육하는 최상 의 장이다. 육체적인 돌봄을 받으며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구성할 때 까지 필요한 물질적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구성할 때 까지 필요한 물질적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제대로 안된 다고 지적을 합니다.
(2) 심리학적이면 "가정은 부모의 언어를 배우는 가장 적당한 장이 며, 인간됨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사회속에서 어떻게 이웃과 함께 사는가 하는 방법을 배우며, 문화 가치가 무엇이며, 그 가치를 어떻게 받아야할 것인지를 배우는 최상의 장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자 마되 고 있지를 않습니다.
(3) 사회학적이면 "가정은 결혼이 무엇이며, 가정생활이 무엇이며, 어떠한 가정을 이루워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최상의 장이다. 넓은 사회, 직장등 국민의식을 배우는 곳이다."오늘의 사회는 이러한 기능 이 깨어졌기에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3) 요셉이 효도 요셉은 어렸을때 부터 그는 조상적부터 믿는 믿음의 생활과 부모님이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믿음의 진실과 인격의 수련이 잘 된 사람입니다. 조상의 믿음의 계승과 부모님의 교육을 잘 받아서 일찍부터 꿈의 비밀과 형들의 모함으로 애굽의 팔렸을 때도 그는 놀라운 꿈 해몽을 하였기에 그는 바로왕을 통하여 그 나라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가나 안의 흉년을 만났을 때 그의 가정을 애굽으로 인도했으며 야곱이 바로 왕에게 축복한 일과 그의 가정이 편히 살 수 있는 것과 그의 유언에 의하여 가나안으로 부친을 장례한 것입니다. 40일을 통한 방부제를 넣 고 70일간의 곡을하는 것으로 효를 다한것입니다. 생전 사후에 까지 효한것이 요셉의 효도입니다. 요셉의 생애 성경
본문:창 39:9-18 전도서 7장 14절 말씀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 라"라고 우리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인생의 여정에는 순경의 때와 역경의 때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요셉의 일생입니다. 주 지하는 바와 같이 요셉의 일생에는 세번에 걸친 위기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광야에서 형들에 의해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에서 십일년 동 안 노예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며,둘째는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집요하게 그를 유혹해 올때 그녀의 유혹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 을 쓰고 2년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세번째는 애굽의 총리대 신이 되어 칠년 동안 애굽에 임한 극심한 기근과 가난속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 내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감당해내야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 번의 역경 속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다름아닌 '유혹 '이라는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환란과 고통 때문에 넘어지 기보다는 유혹 때문에 이 세상에서 쓰러지는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성령님에 이끌려 먼저 광야로 가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 광야에서 사단은 세가지 시험으로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첫째, 사단은 '이 돌들이 떡 덩이 가 되게 하라'고 했으며둘째,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성 꼭대기 에서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셋째,사단은 '높은 곳으로 데리고 올 라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네가 만일 내게 한번만 경배하고 절을 하면 이 모든 세상의 것은 네게 줄 것이다'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당하셨던 이 장면을 주목해 볼때 우리는 마귀의 시험이 결 단코 강압적인 음성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마귀의 음 성은 부드럽고 달콤하여 누구나 한번쯤은 그렇게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하게되는 유혹도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무 서운 것입니다. 유혹은 은혜받은 사람에게도 옵니다 언젠가 "빛과 소금 이라는 기독교 잡지에서 그리스도인 남여 100명을 대상 으로 '첫번째로 가장 많이 유혹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첫번째는 물질적인 유혹으로 나타났으며 두번째는 명예의 유혹, 세번째는 주일성수, 네번째는 이성에 대한 정욕에 문제,다섯번째는 음주와 흡연의 유혹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통계를 참고해 볼 때 그리스도인들 이 받는 유혹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받는 유혹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가장 힘든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혹을 이기는 것이 힘든 까닭은 바로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이기는 사람은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오늘 본문의 청년 요셉은 진실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요셉의 생애에 있어 그가 총리 대신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오랜 기근 의 시련을 잘 극복한 것보다는 29세 나이에 보디발의 아내로 부터 집요하고 도 끈질긴 유혹을 받았을때 자기의 신앙과 윤리의 정조를 잘 지켜 유혹을 물리친 그 사건이 더 위대하고 훌륭한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만약 이 유혹 에 실패했다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발탁되지도 못햇을 뿐만 아니라 고향에 있는 아버지와 형제들을 오랜 기근에서 구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빈다. 마귀는 본래의 뜻이 "유혹하는 자"입니다. 마귀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찾아 옵니다. 요셉은 형들의 불의를 보지 못할 정도로 성결한 사람이었습니다(창 37:2) .또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였습니다(창 39:2). 그러나 이렇게 성경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그 삶을 형통하게 한 사람에게도 유혹은 찾아왔습니다.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요셉에게 닥친 시험은 집요하고도 끊임없는 유혹이었습니다. 10절 말씀은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참하지 아니 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라고 하였으며, 12절 말씀은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참하지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 하여 나가매"라고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혹의 많은 부분은 성문제를 통해서 오게 되는데 요셉과 같이 신앙생활 잘하고 정결한 사람도 이성문제에 직면해 넘어질 위기에 서게 된 것입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하는 사건으로 정욕의 유혹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유혹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 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요셉은 유혹을 거절하였습니다. (창 39:8). 둘 째, 유혹의 자리에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창 39:10). 세번째로 요셉은 직 면한 유혹에서 적극적으로 도망하였습니다. 환난은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이 나에 게 찾아올 때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도망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0절에서 집에는 여러가지 그릇이 있되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22절에서 "또한 네가 청년 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유혹은 믿음이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은 "믿음으로 요셉은"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 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시는 다음 세가지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첫째, 믿음이 있으면 자아의식이 생깁니다. 본문 9절에서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유혹할 때 내 마음속에는 '내가 이래서는 안 되지'라는, '나'라는 자아의식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요셉이 말한 '내가'라는 고백 뒤에는 자신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을 받고 약속 의 말씀을 받은 믿음의 아들이라는 자아의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창 25:23,33:5,37:7,9). 여러분 이처럼 '내가 누구인가'모태에서 택정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받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는가'라는 강한 자아의 식이 신앙으로 정립되면 죄의 유혹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의 선각자인 주기철 목사님은 "내가 넘어지면 한국교회가 무너진다"라 고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넘어지면 여러분이 속한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가를 알아 야 합니다.
둘째, 믿음이 있으면 죄의식이 생깁니다. 본문 9절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라는 말씀에서 이 '악'이 라는 말은 '파멸시킨다'는 뜻의 '라아라'에서 왔는데 이것은 불법을 말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관계를 맺는 것은 불법인 것입니다. 성경은 불 법이 죄라고 단호히 말씀합니다. 칼빈은 죄를 짓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죄의식으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현대인의 문제는 죄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죽어서 선 과 악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이 오면 쓰러집니다.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가장 슬 퍼하시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셋째,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의식이 생깁니다. 본문 9절의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까"라는 말씀에서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말은 히브리말에 "엘로힘'이라는 단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엘로힘'이라는 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했습니다. 요셉이 이처럼 '엘로힘'의 하나님을 부른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당면한 유혹에서 자신을 구원하실 능력의 하나님을 참 의지하면서 간 절히 기도하며 엘로힘의 하나님을 불렀던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코람데 어)'살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식'인 것입니다. 요셉이 자기를 깨끗이하여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던 것처럼 여러분도 자기를 깨끗이 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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