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의 목적 (마1:21)
본문
성탄절이란 예수님께서 성육신(Incarnation)한 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이를 가리켜 성육신(성육신), 도성 인신(도성인신), 화육(화육)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존귀 하신 분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성육신하시게 된 것입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말씀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에 대한 작명권 (작명권)이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친히 하나님께서 작명해 주시 므로 천부권(천부권)을 행사하신 것이고 요셉은 의부에 불과하고 하나님 아버지 게서 친아버지가되신다는 것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름의 뜻 그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셨습니다. 죄란 하마르티아, 화살이 빗나갔다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만들어주신 창조의 목적을 빗나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된 것입니다. 만 일 우리의 시조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더라면 생명과를 따먹고 영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타락하였기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여 고난을 겪으면서 비참하게 살다가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께서 이 불쌍한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인생의 죄를 담당하시어 공의의 하나님께 제물이 되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남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죄없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무죄한 사람이어야 죄 인의 죄를 대속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혁명 때 한 젊은이가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기 위해 감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선한 일을 많이 하였지만 아무 도 그를 대신하여 죽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대신 하여 죽어줄 수 있는 큰 사랑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사형수들을 호명할 때 그 아버지는 아들을 대신하여 대답하고 교수대로 끌려가 마침내 아들을 대신 하여 사형집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대신하여 죽어줌으로 그 아들은 무죄 석방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형수에게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셨는데 사형집행을 다하기 전에 연로하신 부모님을 뵙고 세상을 떠나고자 하는 마지막 한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간수에게 그 사정을 하소연했더니 만일 당신을 대신하여 감옥에 갇혀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형수는 다정 한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친구는 그 편지를 받자마자 교도소로 달려와 친 구를 대신해 수감이 되었습니다. 간수는 부모님을 찾아가는 사형수에게 만일 당신이 아무날 아무시까지 돌아오지 아니하면 당신 친구가 교수형을 대신 당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 사형수는 하루면 내가 다녀올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달려가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오게 되었는데 도중에 뜻밖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와 홍수를 만나서 약속된 시간에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대신 사형집행을 당하 였고 친구가 대신 죽어줌으로 말미암아 그 사형수는 무죄석방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보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 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하심이 니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보면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 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여러분과 저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 주시기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하시기 위해 성육신 하시어 이 땅에 성탄하시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 생하셨을 적에 홀연히 허다한 천군천사가 나타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 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성탄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 평화를 허락해 주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피조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는데 인간이 범죄타락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피조물에게 돌리는 것을 용납지 아니하십니다. 이사야 42장 8 절에 보면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 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인생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인간이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가로채고 있습니다. 말세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무리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해방신학 이라는 잘못된 신학사상이 나타난 이후에 뉴에이지(New Age)사상이 등장했고 포 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이라는 신학사상이 나타났습니다. 뉴에이지신학에 서 다원주의 신학이 나온 것입니다. f별연 분명하게 예수님 이외에는 천하 인간 에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인류 를 죄가운데서 구원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길과 훈자 진리가 되시는 것을 확신 합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는 제 때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뉴에이지 사상을 퍼뜨려서 다원주의 신학을 제창하여 예수님 이외에도 구원받을 길이 있다 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6장 19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빌립보서 1장 24절 이하의 말씀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쳐서 그들로 구원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이땅에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f굘가 오늘 우리는 삶의 목적을 상실해버리고 존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해서 죄를 짓고 육신의 쾌락을 누리며 마음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도용하면서 이 땅을 살아가고 령윱다. 오늘 여러분과 저는 성탄의 의의를 바로 깨달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탄의 목적은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시기 위함입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평화를 갈망해 왔지만 이 땅위에 진정한 평화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 어났던 당시는 로마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 운 세상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창검으로 억압하여 만들어낸 거짓된 평화였습니다. 팔레스틴에 주둔했던 로마 14군단의 잔인한 행동에 의해 수많은 사람f들이 목 숨을 잃고서 만들어낸 가공할만한 평화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식민지 곳곳에서 평화를 구가했습니다만 그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평화가 아니라 박해와 압제였던 것입니다. 정의는 힘이고 힘이 정의로 통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만 분명히 기억 해야 될 것은 정의는 힘이지만 결코 힘이 정의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평화는 힘이지만 힘이 평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힘이 정의이고 힘이 평화라고 잘못 착각 한 사람들이 군사력이나 물질의 힘이나 인간의 완력으로 정의와 평화를 만들려고 사람들f 억압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시의 헤롯대왕 이나 로마총독이 때로는 국고를 털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도하고 로마식 사우나 목욕탕을 퓬냘구 헬라식 운동경기장을 만들어 국민보건에 이바지하기도 했으며 로마식 도로를 건설하여 교통의 편리를 제공해 주기도 하면서 선정을 베 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장된 평화에 불과했고 그것이 참된 행복이 나 평화가 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군화발에 짓밟힌 식민지에는 거 짓 평화가 있었을 뿐입니다. 언제 라이벌이 나타나 헤롯대왕의 권좌를 빼앗아갈른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 힌 헤롯대왕이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서 동생을 죽이고 아내마저 죽이는 끔찍한 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런 헤롯대왕에게 어느날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느냐 우리가 그 의 별을 보고 찾아왔노라 그에게 경배하기를 원하니 그가 있는 곳을 가리켜 달라 고 한다는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깜짝 놀란 헤롯대왕은 내가 유대인의 왕인데 또 어떤 왕이 태어났다는 말인가하고 생각하여 어렸을 때 그왕을 없애버려야 하겠다는 잔인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두살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 조리 살해해 버리는 끔찍한 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분명 무력이나 인간의 힘이나 물질의 힘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님을 깨달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가짜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f가 오신 분이 아니라 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 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각주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 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조건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시한부적이 고 피상적이고 상대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성공하거나 모든 일이 잘되거나 합격 하면 평안하지만 실패하고 불합격하고 환난과 역경과 고난을 당하면 그 평안이 사라져 버리는 그렇게 시한부적이고 조건적이고 환경적인 것이 세상적인 평안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항구적이고 중심적이며 절대적인 평 안입니다. 환난과 역경가운데서도 평안함을 누릴 수 있는 참된 평화인 것을 감사 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이런 평화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주님이 주시는 이 평안을 소유했기에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감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만 조금도 염려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고 도리어 평강 가운데 편안하게 잠잘 수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평안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깊은 감방에 갇혔습니다만 찬송하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다가 원수가 던지는 돌에 맞아 순교의 제물이 되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났고 그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고 하늘나라 에 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이런 평화가 깃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잘되고 뜻대로 되고 성공하면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도 고난과 시련과 어려움이 다가오면 울상을 짓고 이맛살을 찌푸리고 불안해하고 원망불평 하는 그러한 세상적인 평안을 소유할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우리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차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성육신의 목적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느 날 빌립이 예수님께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오니 제발 하나님을 보 여 주십시요 그러면 족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빌립아 내가 너와 함께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무슨 하나님을 또 보여달라고 하느냐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탄절에 여러분과 저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기 위해서는 성육신의 경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가족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성 육신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4절에 보면 제직의 자격을 말하면 서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옛날 율법시대에는 가정을 다스리는 것이 쉬웠습니다. 잘못할 때는 매를 때리고 호통을 치면 자녀들이 부모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은혜 시대에는 그렇게 해서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오늘날 말 세가 되어져서 율법을 가지고 가정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형제 나 심지어 자식도 내 마음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좋은 말로 타일러도 잔소리 정도로 여기고 걸핏하면 아버지 어머니 시대는 우리 시대와 다릅니다 세대차이입니다라고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 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가족을다스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육 신하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교회에 훌륭했던 목사님들 중에 한분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셨고 다른 한분은 아직도 이 땅에 살아 계시는데 한분의 딸은 양색시가 되었고 다른 한분의 아들은 폭력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목사님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으며 강단에 서서 설교하기가 얼 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렇지만 실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면 서 가정에서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녀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 주는 성육 신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간 결과 마침내 한 딸은 회개하여 올바 른 믿음을 가지고 권사님이 되었으며 한 아들은 그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올바 른 믿음을 가지고 주의 종이 되어 미국에서 지금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족들을 잘 다스리는 길은 한길 밖에 없는데 부모님들이 솔선수범 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길 밖에 없습니다. 직장이나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잘하고 큰소리 치는 것으로 남을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희생하여 우리를 통하여 살아계 신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만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구원받 아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께서 구유에 탄생하심으로 인류를 위한 신령한 양식이 되신 것처럼 오늘 구원받 은 성도들도 가족과 이웃과 직장동료와 친구들에게 신령한 밥이 되어지므로 그들 이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의 신령한 양식을 먹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 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탄절의 의의를 올바로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죄사함받고 구원받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이땅에 진정한 평화를 주 시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께만 영광돌리고 주님의 평강을 소유하 여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니 우리도 우리 자신을 희생하므 로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이웃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성육신하시게 된 것입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말씀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에 대한 작명권 (작명권)이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친히 하나님께서 작명해 주시 므로 천부권(천부권)을 행사하신 것이고 요셉은 의부에 불과하고 하나님 아버지 게서 친아버지가되신다는 것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름의 뜻 그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셨습니다. 죄란 하마르티아, 화살이 빗나갔다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만들어주신 창조의 목적을 빗나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된 것입니다. 만 일 우리의 시조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더라면 생명과를 따먹고 영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타락하였기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여 고난을 겪으면서 비참하게 살다가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께서 이 불쌍한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인생의 죄를 담당하시어 공의의 하나님께 제물이 되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남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죄없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무죄한 사람이어야 죄 인의 죄를 대속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혁명 때 한 젊은이가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기 위해 감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선한 일을 많이 하였지만 아무 도 그를 대신하여 죽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대신 하여 죽어줄 수 있는 큰 사랑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사형수들을 호명할 때 그 아버지는 아들을 대신하여 대답하고 교수대로 끌려가 마침내 아들을 대신 하여 사형집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대신하여 죽어줌으로 그 아들은 무죄 석방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형수에게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셨는데 사형집행을 다하기 전에 연로하신 부모님을 뵙고 세상을 떠나고자 하는 마지막 한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간수에게 그 사정을 하소연했더니 만일 당신을 대신하여 감옥에 갇혀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형수는 다정 한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친구는 그 편지를 받자마자 교도소로 달려와 친 구를 대신해 수감이 되었습니다. 간수는 부모님을 찾아가는 사형수에게 만일 당신이 아무날 아무시까지 돌아오지 아니하면 당신 친구가 교수형을 대신 당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 사형수는 하루면 내가 다녀올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달려가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오게 되었는데 도중에 뜻밖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와 홍수를 만나서 약속된 시간에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대신 사형집행을 당하 였고 친구가 대신 죽어줌으로 말미암아 그 사형수는 무죄석방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보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 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하심이 니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보면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 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여러분과 저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 주시기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하시기 위해 성육신 하시어 이 땅에 성탄하시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 생하셨을 적에 홀연히 허다한 천군천사가 나타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 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성탄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 평화를 허락해 주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피조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는데 인간이 범죄타락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피조물에게 돌리는 것을 용납지 아니하십니다. 이사야 42장 8 절에 보면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 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인생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인간이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가로채고 있습니다. 말세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무리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해방신학 이라는 잘못된 신학사상이 나타난 이후에 뉴에이지(New Age)사상이 등장했고 포 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이라는 신학사상이 나타났습니다. 뉴에이지신학에 서 다원주의 신학이 나온 것입니다. f별연 분명하게 예수님 이외에는 천하 인간 에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인류 를 죄가운데서 구원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길과 훈자 진리가 되시는 것을 확신 합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는 제 때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뉴에이지 사상을 퍼뜨려서 다원주의 신학을 제창하여 예수님 이외에도 구원받을 길이 있다 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6장 19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빌립보서 1장 24절 이하의 말씀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쳐서 그들로 구원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이땅에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f굘가 오늘 우리는 삶의 목적을 상실해버리고 존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해서 죄를 짓고 육신의 쾌락을 누리며 마음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도용하면서 이 땅을 살아가고 령윱다. 오늘 여러분과 저는 성탄의 의의를 바로 깨달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탄의 목적은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시기 위함입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평화를 갈망해 왔지만 이 땅위에 진정한 평화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 어났던 당시는 로마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 운 세상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창검으로 억압하여 만들어낸 거짓된 평화였습니다. 팔레스틴에 주둔했던 로마 14군단의 잔인한 행동에 의해 수많은 사람f들이 목 숨을 잃고서 만들어낸 가공할만한 평화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식민지 곳곳에서 평화를 구가했습니다만 그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평화가 아니라 박해와 압제였던 것입니다. 정의는 힘이고 힘이 정의로 통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만 분명히 기억 해야 될 것은 정의는 힘이지만 결코 힘이 정의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평화는 힘이지만 힘이 평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힘이 정의이고 힘이 평화라고 잘못 착각 한 사람들이 군사력이나 물질의 힘이나 인간의 완력으로 정의와 평화를 만들려고 사람들f 억압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시의 헤롯대왕 이나 로마총독이 때로는 국고를 털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도하고 로마식 사우나 목욕탕을 퓬냘구 헬라식 운동경기장을 만들어 국민보건에 이바지하기도 했으며 로마식 도로를 건설하여 교통의 편리를 제공해 주기도 하면서 선정을 베 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장된 평화에 불과했고 그것이 참된 행복이 나 평화가 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군화발에 짓밟힌 식민지에는 거 짓 평화가 있었을 뿐입니다. 언제 라이벌이 나타나 헤롯대왕의 권좌를 빼앗아갈른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 힌 헤롯대왕이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서 동생을 죽이고 아내마저 죽이는 끔찍한 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런 헤롯대왕에게 어느날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느냐 우리가 그 의 별을 보고 찾아왔노라 그에게 경배하기를 원하니 그가 있는 곳을 가리켜 달라 고 한다는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깜짝 놀란 헤롯대왕은 내가 유대인의 왕인데 또 어떤 왕이 태어났다는 말인가하고 생각하여 어렸을 때 그왕을 없애버려야 하겠다는 잔인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두살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 조리 살해해 버리는 끔찍한 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분명 무력이나 인간의 힘이나 물질의 힘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님을 깨달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가짜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f가 오신 분이 아니라 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 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각주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 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조건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시한부적이 고 피상적이고 상대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성공하거나 모든 일이 잘되거나 합격 하면 평안하지만 실패하고 불합격하고 환난과 역경과 고난을 당하면 그 평안이 사라져 버리는 그렇게 시한부적이고 조건적이고 환경적인 것이 세상적인 평안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항구적이고 중심적이며 절대적인 평 안입니다. 환난과 역경가운데서도 평안함을 누릴 수 있는 참된 평화인 것을 감사 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이런 평화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주님이 주시는 이 평안을 소유했기에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감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만 조금도 염려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고 도리어 평강 가운데 편안하게 잠잘 수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평안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깊은 감방에 갇혔습니다만 찬송하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다가 원수가 던지는 돌에 맞아 순교의 제물이 되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났고 그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고 하늘나라 에 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이런 평화가 깃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잘되고 뜻대로 되고 성공하면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도 고난과 시련과 어려움이 다가오면 울상을 짓고 이맛살을 찌푸리고 불안해하고 원망불평 하는 그러한 세상적인 평안을 소유할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우리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차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성육신의 목적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느 날 빌립이 예수님께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오니 제발 하나님을 보 여 주십시요 그러면 족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빌립아 내가 너와 함께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무슨 하나님을 또 보여달라고 하느냐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탄절에 여러분과 저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기 위해서는 성육신의 경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가족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성 육신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4절에 보면 제직의 자격을 말하면 서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옛날 율법시대에는 가정을 다스리는 것이 쉬웠습니다. 잘못할 때는 매를 때리고 호통을 치면 자녀들이 부모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은혜 시대에는 그렇게 해서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오늘날 말 세가 되어져서 율법을 가지고 가정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형제 나 심지어 자식도 내 마음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좋은 말로 타일러도 잔소리 정도로 여기고 걸핏하면 아버지 어머니 시대는 우리 시대와 다릅니다 세대차이입니다라고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 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가족을다스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육 신하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교회에 훌륭했던 목사님들 중에 한분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셨고 다른 한분은 아직도 이 땅에 살아 계시는데 한분의 딸은 양색시가 되었고 다른 한분의 아들은 폭력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목사님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으며 강단에 서서 설교하기가 얼 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렇지만 실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면 서 가정에서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녀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 주는 성육 신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간 결과 마침내 한 딸은 회개하여 올바 른 믿음을 가지고 권사님이 되었으며 한 아들은 그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올바 른 믿음을 가지고 주의 종이 되어 미국에서 지금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족들을 잘 다스리는 길은 한길 밖에 없는데 부모님들이 솔선수범 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길 밖에 없습니다. 직장이나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잘하고 큰소리 치는 것으로 남을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희생하여 우리를 통하여 살아계 신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만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구원받 아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께서 구유에 탄생하심으로 인류를 위한 신령한 양식이 되신 것처럼 오늘 구원받 은 성도들도 가족과 이웃과 직장동료와 친구들에게 신령한 밥이 되어지므로 그들 이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의 신령한 양식을 먹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 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탄절의 의의를 올바로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죄사함받고 구원받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이땅에 진정한 평화를 주 시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께만 영광돌리고 주님의 평강을 소유하 여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니 우리도 우리 자신을 희생하므 로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이웃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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