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어디 계실까 ? (눅2:41-51)
본문
I.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낱낱이 기록한 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안다"(요21:25)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그렇게 많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에 관한 기록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수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 생에 관한 기록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공생을 시작하는 30 세까지의 기록은 거의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예수님의 탄생 이후 공생애를 시작하는 30세 사이에 있었던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유 일한 기록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12살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얼마 있으면 우리 나라에 추석명절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민족의 큰 명절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종 생활하던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입니다. 이 유월절에는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은 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절기 예배에 참석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모님들도 이 유월절 예배에 매년 열심히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12살이 되던 해에는 예수님도 데리고 유월절 예배에 참석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유월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유월절은 무 교절과 연결 되어서 8일 동안 계속됩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절기 예배 가 끝이 났습니다. 그러자 집을 떠나 8일 씩이나 예루살렘에 머물었던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고향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러자 소란하던 예루살렘이 적막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예루 살렘 성 전을 떠나지 않고, 성전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모들은 이 사실도 모르고, 예수님을 찾아보지도 않 고, 예수님이 그 동네 사람들이나 아니면 친척들과 함께 있을 것으로 생각 을 하고는 그냥 내려 갔습니다. 그러다가 하룻길을 간 후에 예수님의 부모들은 친족들과 아는 동네 사람 들에게 예수님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미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예수님의 부모들은 예수님을 찾아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읍니다. 하룻길을 왔다가 돌아가는데, 사흘이 걸린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간 절하게 예수님을 찾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샅샅이 예수님을 찾 으면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을 찾고 보니, 예수님이 성전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앉아서, 그들 의 가르침을 듣기도하고, 그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같이 앉아 있었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을 듣는 자들은 그 지혜와 대답하는것을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예수님은 보통 어린아이가 아니였습니다. 반갑기도하고, 사흘동안 예수님을 찾느라고 고생을 한 것을 생각을 하니 화도나서 예수님의 부모님은 예수님께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모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살펴 보면서 몇가지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큰 손해를 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다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동행하셔야 할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 니까 예수님을 잃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만약 예수님을 잃어 버 린 분들이 있으면 오늘 설교를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부모도 예수님을 잃어 버리자,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1) 시간적 손해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은 예루살렘 집회에 참석하느라고, 집을 오랬동안 비워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집에 가면 할 일이 많 이 쌓여 있습니다. 그것들을 빨리하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집회가 끝나자 마자 쏜살 같이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빨리 집에 가서 일을 하기 위하여 달려 갔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들은 시간을 벌려고 빨리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 서두르다가 그만 예수님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잃어 버리고 나자, 그들은 시간의 큰 손해를 보았읍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야 했습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오는데 그들은 사흘이 걸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들은 모두 나흘의 시간을 손해를 보았습니다. 바쁘다고 빨리 서둘러서 집으로, 세상으로 돌아가다가 보니,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시간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일이 바쁘다고, 교회에 나오지도 않고, 나왔다가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은 큰 시간적 손해 를 보게 됩니다.
2) 말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들은 예수님을 잃어 버린 것을 깨닫자, 말 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 "우리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아들을 잃어 버렸으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을 다시 찾을 때까지, 사흘 동안 미친듯이 쫓아 다녔을 것 입니까 먹지도 않고, 잠도 못자고 쫓아 다녔습니다. 지금 아들을 잃 어 버렸는데, 밥 먹을 여가가 어디 있으며, 잠을 잔들 잠이 오겠습니까 예수를 잃어 버리면 이렇게 큰 심적인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저도 제가 광림교회 부목으로 있을때, 우리 딸 현주를 잃어 버렸었읍니다. 아직 종은이가 태어나기도 전이였습니다. 집에 자식이라고는 딸 하 나 밖에 없는데, 그만 집사람이 주일날 예배 드리러 왔다가 예배가 끝난 후 에 나오다가 현주를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 리아와 같이, 우리 딸 현주가 어머니를 따라 오겠지하고, 그냥 나왔습니다.
그런데 광림 교회는 3부 예배가 끝이나면, 수 많은 사람들이 밀려 나오기 때문에 한번 어머니 손을 놓쳐버리면 찾기가 힘이 듭니다. 딸을 잃어 버렸다는 소리를 듣자, 저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에 있겠지. 아니면 누가 데리고 있겠지"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온통 다 찾아 보았습니다. 친구 목사님들도, 전도사님들도 찾았습니다. 방송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러자 이성을 잃어 버렸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부모님도 저와 똑같았을 것입니다. 저는 선교회 모임에 가서 설교하기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교하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머 리 속에는 별의 별 나쁜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미워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솔찍이 죽이고 싶도록 미워졌 습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이런 심적인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서, 주위에 있는 모든 파출소에 신고를 했 습니다.
그런데 한참 후에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지도 못하고, 제 친구가 차를 가지고 가서 데리고 왔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담당하고 있던 선교구의 교인 아들을 따라서 그 먼 곳까지 따라 갔답니다. 그래서 못보던 아이가 따라오니까, 그 집사님이 우리 딸 현주를 파 출소에 데려가 주었답니다. 그 집사님이 지금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말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기쁨을 다 잃어 버립니다. 잠시도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 고통이란 이 루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예수님을 잃어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어둠속에 방황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어둠속에 서 방황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가는 길이 캄캄해 집니다. 어디로 가야 좋을 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부모님들은 예수님을 잃어 버린 후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갈때는 하루 걸린 길을 사흘을 찾아서 왔습니다. 시간이 3배로 더 걸렸습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잃어 버려서 어둠속에서 방황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이렇게 어둠 속에서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둠속에 빠지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예수님 의 부모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자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아들을 잃어 버릴까바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밤이 되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보고 네 방에 올라가서 자라고 했다. 아들은 이층에 있는 자기방으로 갔다. 이층은 캄캄했다. 불을 켜려고 했지만, 전기 스위치에 손이 닿지 않아 켤 수가 없었다. 어둠속에 놀란 아들은 아버지 방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하게 "네 방으로 오 라가서 자. 거기도 하나님이 계신다"라고 말을 했다. 아들은 이것이 아 버지의 마지막 말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매 를 맞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기 방으로 올 라갔다. 방문을 열자, 방은 캄캄했다. 처음 왔을때 보다 더 무서웠다. 아이는 방에 한 발을 들여 놓고는 이렇게 말을 했다. "하나님, 만약하나님이 이 방에 계신다면 제발 꼼짝 말고 계세요. 만약 그렇지 않고 움직인다면 저는 놀라서 죽게 될 것입니다." 어둠속은 이렇게 두렵습니다. 죽음과 같은 두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도 빛되신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어둠속에서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빛되신 예수님을 잃어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빛은 열을 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인생의 열정을 잃 어 버리게 됩니다. 삶의 의욕이 사라집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잃어 버 리는 것은 마치 기계에 동력장치를 잃어 버린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립니다. 열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것은 삶의 근거를 잃어 버 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예수님은 잃어 버려서는 안됩니다.
2. 예수님을 왜 잃어버렸습니까 그럼 예수님의 부모는 절대로 잃어 버려서는 안되는, 잃어 버리면 이렇 게 큰 손해를 보는 예수님을 왜 잃어버렸습니까
1) 예수님의 길을 따르기 보다는 사람들의 길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집회가 끝이나자, 예수님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서 예루살렘 성전에 더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회가 끝이나자 모두들 앞을 다투어 집으로 돌아 갔읍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도 그 많은 사람들과 같이 집으로 돌아 갈 줄 알고, 집으로 서둘어 내려 갔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사람들의 길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따라 가다가 예수님을 잃어 버립니다. 사람들 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예수님의 길인줄 알고 생각도 않고, 세상 사람 들의 길을 따라 갑니다. 그들을 한참 따라 가다가 보면, 아무리 찾아봐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잃어 버린 큰 손해가 찾아 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길을 따르기 보다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잃어 버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다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 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라고 각지파에서 한 사람씩 12 사람을 택하여 보냈 습니다. 그들은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백성들에게 보고 를 했습니다. 그때 10 사람은 그 땅을 악평을 하고, 도저히 그 곳을 정복 할 수 없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다 그들 편에 섰습니다. 모두들 그 10 사람을 따라 갔습니다. 오직 여호수아 와 갈렙만이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길을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읍니다. 그들 중에는 축복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 간자가 하나도 없었읍니다. 그들은 다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길 을 따른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축복의 땅에 들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 사람들이 다 간다고 하나님의 길을 저버리고 사람들의 길을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른 길로 가도 하나님의 길을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모는 예배를 드리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떠났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을 떠나면 예수님을 잃어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학생이 학교를 떠나면 공부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농부가 농토를 떠 나면 곡식을 잃어 버리고 맙니다.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면 예수님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하나님이 자녀들이 하나님의 집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을 떠나면 예수님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절 대로 하나님이 집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고, 많은 사람들이 다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간다고 하 더라도 하나님의 집을 떠나 세상으로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바빠서 예수님을 잃어 버립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바빴습니다. 8일이 넘게 집을 비웠기 때문에 집에 가 면 할일이 많이 밀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빨리 할려고 급히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렇게 급히 집으로돌아가다가 보니, 예수님도 찾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지금도 바빠서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쁘다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집을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남침례교 목사인 크리스웰(Dr. W.
A. Criswell) 목사 님이 시카고에 있는 북쇼어 침례교(North Shore Baptist Church)에서 집회 를 인도할 때, 그 교회 교회학교 교장이자, 크래프트 식품(Kraft Foods)회 사 설립자인 제임스 엘 크래프트(James L. Kraft) 집사의 집에 식사초대를 받아 갔다. 크래프트 집사는 크리스웰 목사님께 자기가 살아온 길을 이야기 했다. 그는 어렸을 때 치즈로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야망을 가졌다. 그는 치즈를 만들어서 그것을 팔아서 큰 부자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그는 젊었을 때 패디(Paddy)라는 이름의 당나귀가 끄는 작은 마차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을 했다. 크래프트는 치즈를 만들어서는 마차에 싣고 패디 당나귀로 그 마차를 끌게 하면서 시카고 거리를 누비며 팔았다. 돈을 빨리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주일도 지키지 않았고, 교회일 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돈을 빨리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 없이 일을 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젊은 크래프는 절망하기 시작을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일은 많이하고 힘들게 하는데도 돈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절망중에 하루는 주일날 치즈를 만들어 마차에 싣고 팔러 가다가, 교회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크래 프트에게 성령님이 임하였다. 그래서 길에서 당나귀의 줄을 잡아 당겨 마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당나귀에게 말을 했다. "패디야, 뭔가 잘 못된 것이 있다.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우선순위가 잘 못 된 것 같다. 아마도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을 우리 삶의 제일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 같다." 크래프트는 그자리에서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는 그는 앞으로 사는 동안 제일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 일하 겠다 서약을 했다. 크래프트는 크리스웰 목사님께 말을 했다. "그후나는 큰 부자가 되었 습니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의 회장 보다는 차라리 이 북 쇼어 침례교의 평신도의 직분이 더 귀합니다. 나의 본업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세상일만 하다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읍니다. 고생만 하지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절대로 교회를 떠나 예수님을 잃어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4)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v.43) 집회가 끝이났을 때 예수님은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성전에 머물렀는데, 그 의 부모는 이를 몰랐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성전에 계시는데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들 아들이 자기들 주위에 없는데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을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사는 동안에 지금 예수님이 어디에 계실까 생각해 보시는 분이 계십니까 일 주일에 몇번이나 예수님이 어디에 계실까하고 생각을 하십니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잃어 버립니다. 적어도 하루에 3 번, 아침 먹을 때, 점심 먹을 때, 저녁 먹을 때는 "예수님이 어디계실까 "하고 생각해 보 시기 바랍니다. 관심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잃어 버립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순간적으로 예수님보다는 집에 있는 일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것은 예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 문입니다.
3.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 계십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린 것을 알았으면,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내 가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으면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지 않고는 행복과 기쁨을 다시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은 다 헛된 삶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잃어 버린 자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아들 예수를 잃어버린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다시 찾는 심정으로 우리 도 잃어 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린 자들은 이 시간 다시 예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자들은 이 시간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으시 기 바랍니다. 그럼 예수님의 부모는 어떻게 예수님을 다시 찾았습니까
1)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을 찾기 위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 갔다는 것은 성전으로 다시 돌아 갔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거기서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을 잃어 버린 곳에 가 봐야 다시 예수님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엉뚱한 곳에 가서 찾으면 헛 수고만 합니다. 그래서 (계2:4-5) 말씀을 보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람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러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어디서 예수님을 잃어 버렸는지 생각하고 돌이켜 그곳으로 가서 예수님을 다시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두는 밤에 시내 버스에서 내리다가 안경을 잃어 버렸읍니다. 눈이 몹씨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안경을 찾지 않으면 캄캄한 밤에 집 을 찾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안경을 찾았습니다. 한참 있다가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보니 이 사람이 가로등 밑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던 자는 어두운데 뭘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안경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지나가던 자는 눈이 나쁜 자가 안경을 잃 어 버려 찾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서 도와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안경 이 어디에 떨어졌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차에서 내리다가 떨어 뜨렸고 했습니다. 지나가던 나그네는 이상해서 그럼 그 안경이 떨어진 정 류장에서 찾아야지 왜 이 가로등 밑에서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여기가 더 밝기 때문에 여기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안경을 찾으려면 잃어버린 자리에서 찾아야지, 밝다고 가로등 밑에 가서 찾으면 찾겠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다시 돌아 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 버린 곳으로 돌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 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전에 계시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계시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서는 예수님을 만 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성전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2) 다른 곳에서 예수님을 찾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고 야단을 치는 어머니에게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왜 나를 찾아 오셨습니까 "하고 책망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이 집에 있는데 왜 다른 곳에서 나를 찾으셨습니까 "하는 책 망입니다. "내가 아버지 집에 있는데, 왜 다른 곳에서 나를 찾느라고 이 틀이나 더 고생을 하셨습니까 "하는 책망입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쉽게 찾지 못한 것은 성전이 아닌 다른 곳에 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친족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찾 았습니다. 그러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사람들 속에서 찾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은 사람들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 계십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길에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읍니다. 예수님은 길에서 찾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하셨읍니다. 교회외에 다른 곳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수덕사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이곳에 주지 스님으로 계시는 최혜암 스님께서는 황해도 연백군 해월면에서 태어나서 11 세에 출가를 해서 불교계에 90평생을 몸을 담고 계셨습니다. 그는 향년 101세에 입적을 했습니다. 그가 입적을 할 때 그를 지켜보고 있던 스님께서 그에게 "인생이 무엇이 냐 "고 질물을 했습니다. 그러자 최혜암 스님께서는 인생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이와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人生은 무상무공 무비고이라"고 말했 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은 항상 있는 것도 없는 거니와 빈 것도 없 고 비지 않은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공헌한 대답입니까 다른 종교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다른 철학에서도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교회에 와야 만날 수 있습니다.
3) 시간을 투자해야 찾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을 사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사흘을 투자했습니다.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는 잃어 버린 예수님을 찾 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잃어 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흘을 투자해야 합니다. 사흘을 투자 못하면 적어도 3 시간은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야 잃어 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잃어 버린 시대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찾지 못하면 우리는 행복을 다시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잃어 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기 위하여 시간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다시 찾는 것을 제일 우선 순위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4) 근심하여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 반드시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과연 성전에 계실까 " 하면서 근심하여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에 반드시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성전에 계실까 안계실까 하는 의 심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런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오면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면 교회에 와도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히11:6) 말씀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 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올때 여기에 예수님이 반드시 계심을 믿고 나와야 합니다. 조금도 의심을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을 잃어 버렸다 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집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린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다시 찾은 것과 같이 우리 성도님들도 잃어 버린 예수님을 다시 다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 생에 관한 기록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공생을 시작하는 30 세까지의 기록은 거의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예수님의 탄생 이후 공생애를 시작하는 30세 사이에 있었던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유 일한 기록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12살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얼마 있으면 우리 나라에 추석명절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민족의 큰 명절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종 생활하던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입니다. 이 유월절에는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은 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절기 예배에 참석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모님들도 이 유월절 예배에 매년 열심히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12살이 되던 해에는 예수님도 데리고 유월절 예배에 참석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유월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유월절은 무 교절과 연결 되어서 8일 동안 계속됩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절기 예배 가 끝이 났습니다. 그러자 집을 떠나 8일 씩이나 예루살렘에 머물었던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고향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러자 소란하던 예루살렘이 적막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예루 살렘 성 전을 떠나지 않고, 성전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모들은 이 사실도 모르고, 예수님을 찾아보지도 않 고, 예수님이 그 동네 사람들이나 아니면 친척들과 함께 있을 것으로 생각 을 하고는 그냥 내려 갔습니다. 그러다가 하룻길을 간 후에 예수님의 부모들은 친족들과 아는 동네 사람 들에게 예수님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미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예수님의 부모들은 예수님을 찾아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읍니다. 하룻길을 왔다가 돌아가는데, 사흘이 걸린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간 절하게 예수님을 찾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샅샅이 예수님을 찾 으면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을 찾고 보니, 예수님이 성전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앉아서, 그들 의 가르침을 듣기도하고, 그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같이 앉아 있었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을 듣는 자들은 그 지혜와 대답하는것을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예수님은 보통 어린아이가 아니였습니다. 반갑기도하고, 사흘동안 예수님을 찾느라고 고생을 한 것을 생각을 하니 화도나서 예수님의 부모님은 예수님께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모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살펴 보면서 몇가지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큰 손해를 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다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동행하셔야 할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 니까 예수님을 잃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만약 예수님을 잃어 버 린 분들이 있으면 오늘 설교를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부모도 예수님을 잃어 버리자,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1) 시간적 손해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은 예루살렘 집회에 참석하느라고, 집을 오랬동안 비워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집에 가면 할 일이 많 이 쌓여 있습니다. 그것들을 빨리하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집회가 끝나자 마자 쏜살 같이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빨리 집에 가서 일을 하기 위하여 달려 갔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들은 시간을 벌려고 빨리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 서두르다가 그만 예수님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잃어 버리고 나자, 그들은 시간의 큰 손해를 보았읍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야 했습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오는데 그들은 사흘이 걸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들은 모두 나흘의 시간을 손해를 보았습니다. 바쁘다고 빨리 서둘러서 집으로, 세상으로 돌아가다가 보니,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시간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일이 바쁘다고, 교회에 나오지도 않고, 나왔다가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은 큰 시간적 손해 를 보게 됩니다.
2) 말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들은 예수님을 잃어 버린 것을 깨닫자, 말 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 "우리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아들을 잃어 버렸으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을 다시 찾을 때까지, 사흘 동안 미친듯이 쫓아 다녔을 것 입니까 먹지도 않고, 잠도 못자고 쫓아 다녔습니다. 지금 아들을 잃 어 버렸는데, 밥 먹을 여가가 어디 있으며, 잠을 잔들 잠이 오겠습니까 예수를 잃어 버리면 이렇게 큰 심적인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저도 제가 광림교회 부목으로 있을때, 우리 딸 현주를 잃어 버렸었읍니다. 아직 종은이가 태어나기도 전이였습니다. 집에 자식이라고는 딸 하 나 밖에 없는데, 그만 집사람이 주일날 예배 드리러 왔다가 예배가 끝난 후 에 나오다가 현주를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 리아와 같이, 우리 딸 현주가 어머니를 따라 오겠지하고, 그냥 나왔습니다.
그런데 광림 교회는 3부 예배가 끝이나면, 수 많은 사람들이 밀려 나오기 때문에 한번 어머니 손을 놓쳐버리면 찾기가 힘이 듭니다. 딸을 잃어 버렸다는 소리를 듣자, 저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에 있겠지. 아니면 누가 데리고 있겠지"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온통 다 찾아 보았습니다. 친구 목사님들도, 전도사님들도 찾았습니다. 방송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러자 이성을 잃어 버렸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부모님도 저와 똑같았을 것입니다. 저는 선교회 모임에 가서 설교하기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교하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머 리 속에는 별의 별 나쁜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미워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솔찍이 죽이고 싶도록 미워졌 습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이런 심적인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서, 주위에 있는 모든 파출소에 신고를 했 습니다.
그런데 한참 후에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지도 못하고, 제 친구가 차를 가지고 가서 데리고 왔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담당하고 있던 선교구의 교인 아들을 따라서 그 먼 곳까지 따라 갔답니다. 그래서 못보던 아이가 따라오니까, 그 집사님이 우리 딸 현주를 파 출소에 데려가 주었답니다. 그 집사님이 지금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말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기쁨을 다 잃어 버립니다. 잠시도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 고통이란 이 루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예수님을 잃어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어둠속에 방황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어둠속에 서 방황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가는 길이 캄캄해 집니다. 어디로 가야 좋을 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부모님들은 예수님을 잃어 버린 후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갈때는 하루 걸린 길을 사흘을 찾아서 왔습니다. 시간이 3배로 더 걸렸습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잃어 버려서 어둠속에서 방황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이렇게 어둠 속에서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둠속에 빠지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예수님 의 부모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자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아들을 잃어 버릴까바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밤이 되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보고 네 방에 올라가서 자라고 했다. 아들은 이층에 있는 자기방으로 갔다. 이층은 캄캄했다. 불을 켜려고 했지만, 전기 스위치에 손이 닿지 않아 켤 수가 없었다. 어둠속에 놀란 아들은 아버지 방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하게 "네 방으로 오 라가서 자. 거기도 하나님이 계신다"라고 말을 했다. 아들은 이것이 아 버지의 마지막 말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매 를 맞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기 방으로 올 라갔다. 방문을 열자, 방은 캄캄했다. 처음 왔을때 보다 더 무서웠다. 아이는 방에 한 발을 들여 놓고는 이렇게 말을 했다. "하나님, 만약하나님이 이 방에 계신다면 제발 꼼짝 말고 계세요. 만약 그렇지 않고 움직인다면 저는 놀라서 죽게 될 것입니다." 어둠속은 이렇게 두렵습니다. 죽음과 같은 두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도 빛되신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어둠속에서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빛되신 예수님을 잃어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빛은 열을 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인생의 열정을 잃 어 버리게 됩니다. 삶의 의욕이 사라집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잃어 버 리는 것은 마치 기계에 동력장치를 잃어 버린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립니다. 열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것은 삶의 근거를 잃어 버 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예수님은 잃어 버려서는 안됩니다.
2. 예수님을 왜 잃어버렸습니까 그럼 예수님의 부모는 절대로 잃어 버려서는 안되는, 잃어 버리면 이렇 게 큰 손해를 보는 예수님을 왜 잃어버렸습니까
1) 예수님의 길을 따르기 보다는 사람들의 길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집회가 끝이나자, 예수님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서 예루살렘 성전에 더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회가 끝이나자 모두들 앞을 다투어 집으로 돌아 갔읍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도 그 많은 사람들과 같이 집으로 돌아 갈 줄 알고, 집으로 서둘어 내려 갔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사람들의 길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따라 가다가 예수님을 잃어 버립니다. 사람들 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예수님의 길인줄 알고 생각도 않고, 세상 사람 들의 길을 따라 갑니다. 그들을 한참 따라 가다가 보면, 아무리 찾아봐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잃어 버린 큰 손해가 찾아 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길을 따르기 보다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잃어 버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다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 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라고 각지파에서 한 사람씩 12 사람을 택하여 보냈 습니다. 그들은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백성들에게 보고 를 했습니다. 그때 10 사람은 그 땅을 악평을 하고, 도저히 그 곳을 정복 할 수 없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다 그들 편에 섰습니다. 모두들 그 10 사람을 따라 갔습니다. 오직 여호수아 와 갈렙만이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길을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읍니다. 그들 중에는 축복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 간자가 하나도 없었읍니다. 그들은 다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길 을 따른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축복의 땅에 들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 사람들이 다 간다고 하나님의 길을 저버리고 사람들의 길을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른 길로 가도 하나님의 길을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모는 예배를 드리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떠났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을 떠나면 예수님을 잃어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학생이 학교를 떠나면 공부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농부가 농토를 떠 나면 곡식을 잃어 버리고 맙니다.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면 예수님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하나님이 자녀들이 하나님의 집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을 떠나면 예수님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절 대로 하나님이 집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고, 많은 사람들이 다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간다고 하 더라도 하나님의 집을 떠나 세상으로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바빠서 예수님을 잃어 버립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바빴습니다. 8일이 넘게 집을 비웠기 때문에 집에 가 면 할일이 많이 밀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빨리 할려고 급히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렇게 급히 집으로돌아가다가 보니, 예수님도 찾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지금도 바빠서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쁘다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집을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다 예수님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남침례교 목사인 크리스웰(Dr. W.
A. Criswell) 목사 님이 시카고에 있는 북쇼어 침례교(North Shore Baptist Church)에서 집회 를 인도할 때, 그 교회 교회학교 교장이자, 크래프트 식품(Kraft Foods)회 사 설립자인 제임스 엘 크래프트(James L. Kraft) 집사의 집에 식사초대를 받아 갔다. 크래프트 집사는 크리스웰 목사님께 자기가 살아온 길을 이야기 했다. 그는 어렸을 때 치즈로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야망을 가졌다. 그는 치즈를 만들어서 그것을 팔아서 큰 부자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그는 젊었을 때 패디(Paddy)라는 이름의 당나귀가 끄는 작은 마차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을 했다. 크래프트는 치즈를 만들어서는 마차에 싣고 패디 당나귀로 그 마차를 끌게 하면서 시카고 거리를 누비며 팔았다. 돈을 빨리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주일도 지키지 않았고, 교회일 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돈을 빨리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 없이 일을 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젊은 크래프는 절망하기 시작을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일은 많이하고 힘들게 하는데도 돈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절망중에 하루는 주일날 치즈를 만들어 마차에 싣고 팔러 가다가, 교회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크래 프트에게 성령님이 임하였다. 그래서 길에서 당나귀의 줄을 잡아 당겨 마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당나귀에게 말을 했다. "패디야, 뭔가 잘 못된 것이 있다.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우선순위가 잘 못 된 것 같다. 아마도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을 우리 삶의 제일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 같다." 크래프트는 그자리에서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는 그는 앞으로 사는 동안 제일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 일하 겠다 서약을 했다. 크래프트는 크리스웰 목사님께 말을 했다. "그후나는 큰 부자가 되었 습니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의 회장 보다는 차라리 이 북 쇼어 침례교의 평신도의 직분이 더 귀합니다. 나의 본업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세상일만 하다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읍니다. 고생만 하지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절대로 교회를 떠나 예수님을 잃어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4)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v.43) 집회가 끝이났을 때 예수님은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성전에 머물렀는데, 그 의 부모는 이를 몰랐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성전에 계시는데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들 아들이 자기들 주위에 없는데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을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사는 동안에 지금 예수님이 어디에 계실까 생각해 보시는 분이 계십니까 일 주일에 몇번이나 예수님이 어디에 계실까하고 생각을 하십니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잃어 버립니다. 적어도 하루에 3 번, 아침 먹을 때, 점심 먹을 때, 저녁 먹을 때는 "예수님이 어디계실까 "하고 생각해 보 시기 바랍니다. 관심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잃어 버립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순간적으로 예수님보다는 집에 있는 일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 버리는 것은 예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 문입니다.
3.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 계십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린 것을 알았으면,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내 가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으면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지 않고는 행복과 기쁨을 다시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은 다 헛된 삶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잃어 버린 자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아들 예수를 잃어버린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다시 찾는 심정으로 우리 도 잃어 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린 자들은 이 시간 다시 예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자들은 이 시간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으시 기 바랍니다. 그럼 예수님의 부모는 어떻게 예수님을 다시 찾았습니까
1)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을 찾기 위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 갔다는 것은 성전으로 다시 돌아 갔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거기서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을 잃어 버린 곳에 가 봐야 다시 예수님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엉뚱한 곳에 가서 찾으면 헛 수고만 합니다. 그래서 (계2:4-5) 말씀을 보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람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러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어디서 예수님을 잃어 버렸는지 생각하고 돌이켜 그곳으로 가서 예수님을 다시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두는 밤에 시내 버스에서 내리다가 안경을 잃어 버렸읍니다. 눈이 몹씨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안경을 찾지 않으면 캄캄한 밤에 집 을 찾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안경을 찾았습니다. 한참 있다가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보니 이 사람이 가로등 밑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던 자는 어두운데 뭘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안경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지나가던 자는 눈이 나쁜 자가 안경을 잃 어 버려 찾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서 도와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안경 이 어디에 떨어졌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차에서 내리다가 떨어 뜨렸고 했습니다. 지나가던 나그네는 이상해서 그럼 그 안경이 떨어진 정 류장에서 찾아야지 왜 이 가로등 밑에서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여기가 더 밝기 때문에 여기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안경을 찾으려면 잃어버린 자리에서 찾아야지, 밝다고 가로등 밑에 가서 찾으면 찾겠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다시 돌아 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 버린 곳으로 돌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 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전에 계시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계시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서는 예수님을 만 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성전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2) 다른 곳에서 예수님을 찾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고 야단을 치는 어머니에게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왜 나를 찾아 오셨습니까 "하고 책망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이 집에 있는데 왜 다른 곳에서 나를 찾으셨습니까 "하는 책 망입니다. "내가 아버지 집에 있는데, 왜 다른 곳에서 나를 찾느라고 이 틀이나 더 고생을 하셨습니까 "하는 책망입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쉽게 찾지 못한 것은 성전이 아닌 다른 곳에 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친족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찾 았습니다. 그러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사람들 속에서 찾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은 사람들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 계십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길에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읍니다. 예수님은 길에서 찾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하셨읍니다. 교회외에 다른 곳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수덕사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이곳에 주지 스님으로 계시는 최혜암 스님께서는 황해도 연백군 해월면에서 태어나서 11 세에 출가를 해서 불교계에 90평생을 몸을 담고 계셨습니다. 그는 향년 101세에 입적을 했습니다. 그가 입적을 할 때 그를 지켜보고 있던 스님께서 그에게 "인생이 무엇이 냐 "고 질물을 했습니다. 그러자 최혜암 스님께서는 인생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이와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人生은 무상무공 무비고이라"고 말했 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은 항상 있는 것도 없는 거니와 빈 것도 없 고 비지 않은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공헌한 대답입니까 다른 종교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다른 철학에서도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교회에 와야 만날 수 있습니다.
3) 시간을 투자해야 찾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을 사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사흘을 투자했습니다.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는 잃어 버린 예수님을 찾 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잃어 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흘을 투자해야 합니다. 사흘을 투자 못하면 적어도 3 시간은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야 잃어 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잃어 버린 시대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찾지 못하면 우리는 행복을 다시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잃어 버린 예수님을 다시 찾기 위하여 시간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다시 찾는 것을 제일 우선 순위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4) 근심하여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 반드시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과연 성전에 계실까 " 하면서 근심하여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에 반드시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성전에 계실까 안계실까 하는 의 심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런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오면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면 교회에 와도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히11:6) 말씀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 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올때 여기에 예수님이 반드시 계심을 믿고 나와야 합니다. 조금도 의심을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을 잃어 버렸다 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집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잃어 버린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다시 찾은 것과 같이 우리 성도님들도 잃어 버린 예수님을 다시 다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