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예수 잃어버린 길에 세 함정 (눅2:41-51)

본문

예수님의 어렸을 때 이야기는 12살 때의 본문 이야기 한 곳밖에 발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곳 한 곳뿐입니다. 본문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가지 습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이면 예루살렘 32km 반경 내에 살고 있는 성인 남자는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남자나 여자, 어린이나 아이, 국내외 모든 유대인들이 다 모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일년간 돈을 열심히 모아서 유월절에 한 번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가지 습관을 알아야 이 사건이 이해됩니다. 유대인들은 3살에 옷단에 술을 달고 알파벳 공부를 하게 됩니다. “(민15: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민15:39)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민15:40)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 이 때 알파벳을 만든 과자에 꿀을 발라 먹으며 말씀은 꿀과 같이 달다는 사실을 공부합니다.
5살에 쉐마와 시편과 신6:1-3절을 어머니로부터 익혀야 합니다. 10살이면 미쉬나 연구에 들어갑니다. 13살이 되면 바르 미트바 예식을 거행하여야 합니다. 율법의 아들이라는 예식입니다. 부모가 받은 율법을 자녀가 받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15세에 탈무드 연구를 시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공부하는 백성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헌 책방이 없습니다. 책은 팔지 않는 물건입니다. 옷을 팔아 책을 사는 백성입니다. 12살은 마르 미트바를 연습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3살을 대비하려고 12살에 성전으로 간 것 같습니다. 모두가 예루살렘으로 갈 때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카라반이라고 불리우는 여행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갈 때에 강도나 어떤 위험을 대비하여 여자와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앞에 가고 남자들은 역시 무리를 이루어 뒹에 가는 여행이었습니다. 갈 때 올 때 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이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가서 유월절을 지키고 오는데 예수님이 앞에 여자들과 아이들 무리속에 당연히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집에 와서 보니 없었습니다. 하루를 걸어 온 먼 길이었지만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친척집을 다 돌아 다녔습니다. 갈만한 곳을 다 가보았습니다. 이틀이 걸렸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은 마지막으로 성전으로 가 보았습니다. 뜻밖에도 예수님은 저명한 율법학자들과 함께 성경 토론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있는 자들이 모두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에 놀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반갑기도 하고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 이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를 잃어버리고 가는 길에는 세가지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1. 고생의 함정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걸음으로 세가지 고생을 하였습니다.
1) 거리적인 고생 예루살렘과 나사렛은 139km입니다. 약 3일길입니다. 자동차가 있다면 한 시간반 정도의 거리입니다. 그러나 걸어서 가야하는 길이기에 더구나 열대지방이기에 고생길입니다. 139km 정도 왔다가 하룻길 40km 걷다가 다시 40km 올라가서 온종일 40km 정도 찾다가 139km를 걸어 왔으니 모두 400km이상을 걸은 셈입니다. 거리적으로 고생하였습니다.
2) 시간적인 고생 예수님의 부모는 3일길을 걸어 갔다가 3일길을 걸어 와야 했습니다. 물론 나귀정도는 탔을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 하룻길을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걸었습니다. 다시 하룻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예수를 찾았습니다. 6일 길이 9일 길이 되었습니다.
3) 심적 고생 3일간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아 다니던 부모의 심정은 피를 말리는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눅2: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눅2: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친척집과 아는 집을 모조리 뒤졌을 것입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미국의 우주인 어윈박사는 병석에서 기도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과속하고 있다.” 예수님보다 앞서 가는 선행은 신앙적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수님보다 뒤에 쳐지는 후행도 안됩니다. 예수님과 따로 걷는 별행도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의 뜻으 거스리는 역행도 안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2. 헛수고의 함정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걷는 길은 헛수고의 길이었습니다. 가도 다시와야 합니다. 걸은 것만큼 손해입니다. 다행히 하룻길을 걷다가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을 발견했기에망정이지 나사렛까지 다 가서 발견하여 3일길을 걸어 오려고 하였으면 더 큰 헛수고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살다가 타락한 분에게 “다시 교회에 나오세요.”라고 권면하였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어요.” 나사렛을 가기 전에, 3일길 가기 전에 어서 돌이켜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다시 모셔야 합니다. 미국에서 지금 인기있는 간증강사중에 한분이 스텐레이 탐 장로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장로이면서도 제대로 신앙생활하지 못하며 사업에만 열중하였습니다. 사업이 우선순위 1위였습니다. 5번이나 파산하였습니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결론은 헛수고였습니다. 그는 여섯 번째 사업을 시작하여 몸부림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다시 해봐라, 이번에는 주님을 사장으로 모시고 해봐라.” 이 음성 듣고 그는 그의 사업의 51%의 주식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변호사를 찾아가서 아예 법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제는 사사건건 경영주되시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매년 순이익 200만불, 약 26억원의 흑자를 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51%인 14억 가량은 헌금이었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신앙생활한 결과 물질적인 축복은 물론 자녀들이 그렇게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걷는 길은 고생길이요 헛수고의 길입니다.
3. 근심의 함정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걷는 길은 근심의 길입니다. 성전에서 성경 토론을 하고 있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어머니 마리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2:48)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몹시 근심하였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걷는 길은 평안이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걷는 이들은 이렇게 찬송할 수 있습니다.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맘이 늘 평안해.”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어느 여인이 마더 테레사 수녀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자살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살하십시오. 그러나 자살 전에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칼타코에 와서 내일을 한 달만 도와주고 자살하십시오.” 그 여인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칼타코로 와서 테레사 수녀와 함께 가난한 자, 병든 자, 고통받는 자들을 위하여 일했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좋은 환경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봉하사는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도 누구에겐가 필요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게 되면 근심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새로운 인생이 됩니다. 예수님을 다시 찾는 오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은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걸었기에 세가지 함정에 빠졌습니다.
1. 고생의 함정
2. 헛수고의 함정
3. 근심의 함정 그러면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바로 성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2살에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이 바로 예수님 중심의 신앙생활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1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