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 부활절 오후 (눅24:25-35)
본문
할렐루야!! 오늘 부활의 영광을 받으신 우리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우리를 살려 주셔서 부활의 영광을 얻게 하 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세세 무궁토록 돌립니다. '아멘'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리고 마지막 말세에 남 종과 여종에게 모든 육체에게 물붓듯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신 은혜를 사모하여 모이신 삽교읍내의 모든 성도들에게 우리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이 지나고 마지막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분부 하시기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 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는 말씀 을 믿고 다락방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기를 열흘, 120명의 문도들은 모두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삽교지역에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오순절 다락방에 역사하 셨던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성령님과, 불의 혀와 같이 갈라져 저들의 머리위에 임하던 불과 같은 성령님이 이시간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 함께 은혜받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첫번 부활절 오후입니다. 우리들은 '첫 번 크리스마스' 라는 말은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첫 번 부활 절이란 말은 잘 듣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첫 번 크리스마스란 예수님이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시던 날 밤에 목자들 이 들에서 양을 칠 때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이 예수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 던 밤이 첫번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에 '첫번 추수감사절' 이란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말하면 우리들은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 너가서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농사를 지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서 오늘의 우리들이 지키는 추수감사절 이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 에서 나올 때에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계명을 통하여 맥추절을 지켜라 수 장절을 지켜라 고 말씀하셨고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하나님께 드를 때 가인은 자기가 지은 농산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아벨은 양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인류 최초로 추수감사절을 지킨 사람은 바로 가인입니다. 사랑하는 삽교지역의 성도 여러분!! 나는 오늘 첫 번 부활절에 있었던 사건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부활이란 말은 예수님 이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활이란 단어 자 체가 없었습니다.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도에는 거지가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거지가 되면 대대로 거지가 되 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고 살 것이 있어도 거지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흰 두교의 종교적 율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적선을 하면 절대로 그들 은 '고맙습니다' 라든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없답니다. 인도에서는 감사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누구를 도와 주어도 당신은 전생에 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이전에는 부활이란 단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비 로서 부활을 말씀하셨고 (마20: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 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 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를 알아 듣지 못하였습니다. 과거 50년대 60년대에는 성령님 소리만 해도 이단이라고 정죄를 했습니다. 찬 송을 부를 때 박수를 치면 당장 이단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디 아멘 소리를 하 였습니까 기도원에 갔다 하면 교회에서 쫏겨났습니다. 방언을 하면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성령님 소리를 처음 들으니까 그런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가서 "너희가 믿을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 고 물으니 에베소의 교인들이 대답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 라"(행19:2) 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6.25동란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경제위기시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몇일전 충북 보은에서 목회하는 생질에게 갔었는데 세 살짜리 딸 아이가 경제위기시대 라는 말을 어찌나 똑똑하게 잘 하는지 감탄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 해 12월 이전에는 경제위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경제위기라는 국제금융기구가 있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경제위기 라는 말을 합니다. 이와 같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듣는 말은 이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이란 말을 처음듣는 유대인들과 바리새인 새두개인 서기관 율법사등 당시의 교권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고 로마가 기독교를 핍박을 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예수의 예 자만 해도 잡혀갔고 부활 소리만 내도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이 부활절은 지금 온 세계가 지키는 명절중의 명절이요 대 축제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인줄로 믿습니다.'아멘' 이 부활절을 맞이하여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연합예배를 드리는 삽교지역의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이제 오늘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무거운 침묵속에 고요와 정적이 감도는 예루살렘 성안에는 안식일이 지나고 첫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안식후 첫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물러갔습니다. 공포와 두려움도 사라졌습니다. 할렐루야!! 안식후 첫날은 숨가쁘게 하루가 전개됩니다.
1 이른 새벽에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던2 여 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2 막16:9절 말씀에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고 하였습니다.
3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항상 행동이 앞서는 베드로가 달려가 서 예수님의 무덤에 가 확인을 하였습니다.
4 고전15:5절에는 베드로에게 보이셨다고 하였습니다. 5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로부터 이 보고를 들은 대제사장이 돈을 주면서 자 기들이 잠자는 사이에 예수의 제자들이 와서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하라고 군병들을 매수를 하였습니다.(마28:11-15) 6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안은 또한번 소용돌이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추종자들의 체포령이 떨어졌고 부활이란 말만하여도 잡혀갔습니다. 7 오후에는 글로바와 누가 두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도중 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8 저녁때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 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안식후 첫날 즉 부활의 날 오후에 있었던 사건 으로 글로바와 또다른 제자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도중에 주 님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저들의 마음이 뜨거워 져서 예루살렘으 로 돌아온 사건입니다. 지중해 연안의 크지도 않은 작은 나라 이스라엘, 그리고 작은성 예루살렘에 서 일어난 부활의 사건은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 류의 역사를 주도해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신앙의 능력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누가 뭐라고 해도 철저하게 부활의 신앙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위에 우리 기독교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있는 수천 수만가지의 종교중에 부 활을 믿고 또 부활을 전하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지금까지 그렇게 믿어왔듯이 이 부활의 신앙은 앞으 로 우리 주님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이 영원 불변의 진리 인 것을 믿습니다. '아멘' 두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라 하는 동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푼어치 의 소망이라든가 희망이라곤 찾아 볼 수 없이 낙심과 실망에 빠져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터벅 터벅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제 나름대로 지난날들의 추억들을 하나씩 회상하면서 무거운 발걸 음을 옮겨놓고 있었습니다. 이젠 예루살렘에도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자칫하면 로마 군인들에 게 체포되어 예수님과 같이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지 감치 피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찬란하고 영화로웠던 날들이었습니까 수천 수만명이 옹위 를 하며, 가는곳마다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5병2어의 기적을 비롯해서, 바리 새인과 대제사장 서기관들의 끈질긴 질문에도 무난히 척척 대답하심으로, 예수님을 따라 다닐때의 그 우쭐하던 마음과, 호산나를 부르는 환호성속에 승리의 입성을 하실 때는, 금방이라도 로마제국의 구속에서 해방을 시켜, 유대나라의 왕이 되며, 제자들은 한자리씩 높은 지위를 었겠노라는 소망도, 하루 아침에 갈 보리 산상의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심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젠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바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목숨이라도 유지하 기 위해서는 방치해 두었던 고깃배와 그물을 수리해서 고기를 잡아야 묵구멍에 풀칠이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직장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렇한 심 정으로 그들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장사지낸지 사흘째 되는날 아침에 말로만 듣던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사람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들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근심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가 변하여 평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의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은 우리 인생의 실상을 보여 주신 것 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인간들이 죄로 인하여 소망이 없을 때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 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아멘'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은 낙망과 실망중에 빠져서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신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났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두 사람중에 한 사람은 글로바 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또한사람은 이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바로 본 누가복음서를 기록한 누가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이 대목에 와 서 그때 당시 자신의 믿음 없었던 것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가 부 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밝히기를 회피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여행은 낭만과 꿈이 있는 즐거운 관광여행이 아닙니다. 기다려주는 이도 없고 그렇다고 약속된 장소로 찾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히 발걸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습니다. (눅13:33) 예루살렘을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것 입니다. 성경에는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화를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1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었다고 이방나라 모압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가서 아들 둘을 결혼까지 시켜 잘 살아보려고 했지만 남편도 죽고 아들 둘도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에 축복을 다시 회복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멘'2왕상2:36절이하의 말씀에는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시므이는 다윗왕 이 난리를 피하여 피난을 갈 때에 다윗을 욕하고 저주하였으나 나중에 다윗이 환궁을 할 때 용서를하여 주었습니다. 그후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왕위를 이어 받았을 때에 솔로몬은 시므이를 불러 예루살렘성을 떠나지 말 것을 명령하였고 시므이도 그렇게 하기로 하였으나 몇 년이 지났을 때에 시므이의 종 두명이 도 망을 갔습니다. 시므이는 솔로몬왕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종을 찾으려 예루살 렘성을 벗어났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3눅10:36절 이하에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강도를 만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하였 습니다.
4창12:10절에는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시험과 환란을 당하였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예루살렘이나 하나님의 성지를 떠났다가 환란을 당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눅2:36절에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는 주야로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기도하다가 결례받으러 오신 아기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행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 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예루살렘은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떠나지 마시 기 바랍니다. 남들과 똑같아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남 보다 더욱 노력하고 다른 사람보다 교회 한 번이라도 더 오는 사람이 은혜도 더 받고, 다른 사람보다 기도 한 번이라도 더 하는 사람이 은혜를 더 받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2. 두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 25리라고 하였는데 아마 이들은 지금 25 리가 아니라 250리처럼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일들 과 신변의 위협 등으로 걱정과 근심에 쌓여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 아오셨으나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머리속에 생각하는 것은 주님께서 평소에 말씀하신 "인자가 이런 고난을 겪어야 영광을 얻으리라"는 것은 추호도 생각지 않고 앞으로의 살아갈 걱정으로 그들의 눈은 어두워져 서 주님을 보고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사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 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 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말함이라" 또한 저들은 자기들이 예루살렘을 떠나가면서도 주님께서 자기들을 떠난 것 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 시한번 자신들을 뒤돌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났고, 우리의 눈과 귀가 어두워져서 주님이 보이지 않고, 주 님의 음성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곁에 여러분 곁에 오셔서 우리와 동행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3. 두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축사하신 떡을 받고서야 눈이 밝아졌 습니다. 왕상 19:3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브엘세바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 누워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에게 구운 떡과 물을 주어 기운을 회복케 하시고 40주야를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선악과를 먹고서 죄악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 축사하신 떡을 먹고 우리의 죄악으로 가리워 진 육안이 신령한 눈으로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세상의 근심과 걱정과 환란으로, 재리와 염려로, 가리워진 영의 눈이 하나님 이 주시는 생명의 만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떡을 먹고 밝아지는 역사가 일 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 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신령한 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난자에게 열려지는 것입니다. 신령한 눈이 밝아지면 모든 세계가 달라집니다. 우리 눈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그대로 보이는 것입니다. (예; 파란색 안경을 쓰면 세상이 파라 케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면 세상이 빨갛게 보입니다)
※ 찬송가 204장 3절 주안에 있어 즐거워라 마음의 풍랑이 잠자도다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하리로다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죄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참과 거짓 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진리를 보고도 진리로 믿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무쪼록 신령한 영의 눈이 밝아져서 주님을 보고 따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4.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뜨거워 졌습니다. 감리교를 창설하신 존 웨슬리 목사님은 올더스케ㅇ 거리의 작은 집회에서 말씀을 들을 ㄸ 그의 마음이 뜨거워 졌다고 했습니다. 절망에 빠져서 엠마오 길 을 가고 있던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들려 주실 때에 저들의 마음이 뜨거워 졌다고 하였습니다. (눅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여러분의 마음이 이시간 뜨거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마음이 뜨거워 질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음이 뜨거워 져야 한다는 것은 비단 우리가 성령님의 불을 받아서 우리의 육 체가 뜨거워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의 시대를 보면 너무나 냉 정하고 너무나 차가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간 본연의 아름답고 따뜻함이 없 어졌습니다. 이것을 뜨거운 사랑과, 뜨거운 열심과, 뜨거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를 Mega death 시대라고 합니다. Mega라는 것은 핵폭탄의 폭팔력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서 1Mega=100만명을 죽일 수 있는 단위입니다. 곧 떼죽음 시대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어도 한 두 사람 죽는 것은 눈도 꿈쩍 하지 않습니다. 수십명씩 죽어야 그제사 마음이 동합니다. (마11: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얼어붙은 마음이 녹을 줄을 모릅니다. 뜨거워지지 않 고 있습니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하였습니다. 열심(熱心)이란 뜨거운 마음을 말합니다. 뜨거운 마음이 있으면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또 마음이 뜨겁지 않으면 범죄를 하여도 가책이 없습니다. 주일 을 범하여도,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새벽기도를 하지 않아도, 전혀 가책을 느 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마음이 없으면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고 힘이 듭니다. 예; 자동차도 기름에 불이 붙어서 뜨거워 져야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의 마음이 뜨거워 질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남 같이 고달픈 인생길을 가는 여러분들도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 혜받고 뜨거워 지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5. 마음이 뜨거워진 두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결실입니다. 두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부활 하신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이,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것 같이, 이 두 사람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사람은 돌아올 수 있습니다. 능동적으로 행동을 합니다. 적 극적인 신앙을 갖게됩니다. 집나간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뜨거워 질 때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삽교지역의 성도 여러분들이여!! 지금 자기의 신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아 잘못된 것은 빨리 돌아서 야 합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대로 가면 안됩니다. 그러면 지옥의 구렁에 빠지고 맙니다. 회개란 가든 길을 돌이키고 180°회전하여 ∪턴하는 것입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 게서 네가 돌아서라" 도적질 하던 도둑이 도둑질을 끊고, 음란죄 짖던 사람이 죄를 짖지 않고, 주 일성수 안하던 사람이 주일성수 잘하고, 십일조 안하던 사람이 십일조 잘하는 것으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예' 내가 열네살인가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천안에서 서울을 가려고 기차 를 타러 플ㄹ홈에 나와 보니까 양측에 기차가 서있는데 기차에 써 붙인 것이 이쪽 기차도 '서울-장항' 이라고 붙어 있고 저쪽 기차도 '서울-장항' 이라고 붙 어 있어서 아무거나 무심코 탓습니다.
그런데 잠시후 기차가 출발을 하는데 반 대로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잘못 탄 것을 알고 다음 역인 모산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천안에 다시 와서 서울행 기차를 탄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낙심중에 세상을 향하여 가던 발걸음이 예수를 만나 담대함을 얻 어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은 신앙의 열매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뜨거워 질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핍박 을 피하여 가다가 주님을 만나고 다시 로마로 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 교를 당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음 사랑, 처음 믿음, 처음받은 은혜, 처음 열심, 지금도 있습니까 잃어버린 사람은 찾아야 합니다. 돌아서야 합니다. 나는 처음 목회 시작할 때의 열정과 그 열심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열심을 다시 찾으려고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뜨거워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에서 돌아서기를 바랍니다.'아멘'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낙심된 자를 찾아오셔서 구원하여 주신 주님은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도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언제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곤 하였습니다. 브엘세바 광야에서 지친 몸으로 홀로 잠들어 있는 야곱에게도 하나님이 찾아 오셨고, 새벽 미명에 성전에서 고히 잠들어 있는 사무엘에게도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호렙산에서 양을 치던 모세에게도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속에서 모세를 찾 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한 밤중에 풍랑으로 고통을 당 할 때에도 주님은 물위로 걸어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공포와 낙심중에 질려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너희에 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면서 저들에게 숨을 내 쉬면서 성령님을 받으라고 하 셨습니다.(요20:22) 지금 이 순간에도 앞으로 우리가 어디가서 무엇을 하던지 동행해 주시고 계 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약 속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을 멈추고 돌이켜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갈 예루살렘은 처음사랑 처음 믿음으로 뜨거웠던 바로 그 순간 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않됩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 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욜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고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구하는이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자에게 도움을 주시고,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세상에서 실패와 낙심을 하였을 때에, 우리 곁에 찾아오셔서 말씀을 들려주 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우리들의 마음이 뜨겁게 변화를 받아서, 새사람이 되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행1:8)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 모두 뜨거운 부활신앙을 가지고 부활하신 주님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증 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이 지나고 마지막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분부 하시기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 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는 말씀 을 믿고 다락방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기를 열흘, 120명의 문도들은 모두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삽교지역에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오순절 다락방에 역사하 셨던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성령님과, 불의 혀와 같이 갈라져 저들의 머리위에 임하던 불과 같은 성령님이 이시간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 함께 은혜받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첫번 부활절 오후입니다. 우리들은 '첫 번 크리스마스' 라는 말은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첫 번 부활 절이란 말은 잘 듣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첫 번 크리스마스란 예수님이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시던 날 밤에 목자들 이 들에서 양을 칠 때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이 예수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 던 밤이 첫번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에 '첫번 추수감사절' 이란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말하면 우리들은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 너가서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농사를 지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서 오늘의 우리들이 지키는 추수감사절 이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 에서 나올 때에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계명을 통하여 맥추절을 지켜라 수 장절을 지켜라 고 말씀하셨고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하나님께 드를 때 가인은 자기가 지은 농산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아벨은 양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인류 최초로 추수감사절을 지킨 사람은 바로 가인입니다. 사랑하는 삽교지역의 성도 여러분!! 나는 오늘 첫 번 부활절에 있었던 사건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부활이란 말은 예수님 이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활이란 단어 자 체가 없었습니다.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도에는 거지가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거지가 되면 대대로 거지가 되 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고 살 것이 있어도 거지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흰 두교의 종교적 율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적선을 하면 절대로 그들 은 '고맙습니다' 라든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없답니다. 인도에서는 감사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누구를 도와 주어도 당신은 전생에 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이전에는 부활이란 단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비 로서 부활을 말씀하셨고 (마20: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 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 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를 알아 듣지 못하였습니다. 과거 50년대 60년대에는 성령님 소리만 해도 이단이라고 정죄를 했습니다. 찬 송을 부를 때 박수를 치면 당장 이단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디 아멘 소리를 하 였습니까 기도원에 갔다 하면 교회에서 쫏겨났습니다. 방언을 하면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성령님 소리를 처음 들으니까 그런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가서 "너희가 믿을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 고 물으니 에베소의 교인들이 대답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 라"(행19:2) 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6.25동란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경제위기시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몇일전 충북 보은에서 목회하는 생질에게 갔었는데 세 살짜리 딸 아이가 경제위기시대 라는 말을 어찌나 똑똑하게 잘 하는지 감탄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 해 12월 이전에는 경제위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경제위기라는 국제금융기구가 있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경제위기 라는 말을 합니다. 이와 같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듣는 말은 이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이란 말을 처음듣는 유대인들과 바리새인 새두개인 서기관 율법사등 당시의 교권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고 로마가 기독교를 핍박을 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예수의 예 자만 해도 잡혀갔고 부활 소리만 내도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이 부활절은 지금 온 세계가 지키는 명절중의 명절이요 대 축제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인줄로 믿습니다.'아멘' 이 부활절을 맞이하여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연합예배를 드리는 삽교지역의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이제 오늘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무거운 침묵속에 고요와 정적이 감도는 예루살렘 성안에는 안식일이 지나고 첫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안식후 첫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물러갔습니다. 공포와 두려움도 사라졌습니다. 할렐루야!! 안식후 첫날은 숨가쁘게 하루가 전개됩니다.
1 이른 새벽에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던2 여 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2 막16:9절 말씀에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고 하였습니다.
3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항상 행동이 앞서는 베드로가 달려가 서 예수님의 무덤에 가 확인을 하였습니다.
4 고전15:5절에는 베드로에게 보이셨다고 하였습니다. 5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로부터 이 보고를 들은 대제사장이 돈을 주면서 자 기들이 잠자는 사이에 예수의 제자들이 와서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하라고 군병들을 매수를 하였습니다.(마28:11-15) 6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안은 또한번 소용돌이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추종자들의 체포령이 떨어졌고 부활이란 말만하여도 잡혀갔습니다. 7 오후에는 글로바와 누가 두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도중 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8 저녁때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 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안식후 첫날 즉 부활의 날 오후에 있었던 사건 으로 글로바와 또다른 제자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도중에 주 님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저들의 마음이 뜨거워 져서 예루살렘으 로 돌아온 사건입니다. 지중해 연안의 크지도 않은 작은 나라 이스라엘, 그리고 작은성 예루살렘에 서 일어난 부활의 사건은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 류의 역사를 주도해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신앙의 능력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누가 뭐라고 해도 철저하게 부활의 신앙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위에 우리 기독교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있는 수천 수만가지의 종교중에 부 활을 믿고 또 부활을 전하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지금까지 그렇게 믿어왔듯이 이 부활의 신앙은 앞으 로 우리 주님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이 영원 불변의 진리 인 것을 믿습니다. '아멘' 두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라 하는 동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푼어치 의 소망이라든가 희망이라곤 찾아 볼 수 없이 낙심과 실망에 빠져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터벅 터벅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제 나름대로 지난날들의 추억들을 하나씩 회상하면서 무거운 발걸 음을 옮겨놓고 있었습니다. 이젠 예루살렘에도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자칫하면 로마 군인들에 게 체포되어 예수님과 같이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지 감치 피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찬란하고 영화로웠던 날들이었습니까 수천 수만명이 옹위 를 하며, 가는곳마다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5병2어의 기적을 비롯해서, 바리 새인과 대제사장 서기관들의 끈질긴 질문에도 무난히 척척 대답하심으로, 예수님을 따라 다닐때의 그 우쭐하던 마음과, 호산나를 부르는 환호성속에 승리의 입성을 하실 때는, 금방이라도 로마제국의 구속에서 해방을 시켜, 유대나라의 왕이 되며, 제자들은 한자리씩 높은 지위를 었겠노라는 소망도, 하루 아침에 갈 보리 산상의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심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젠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바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목숨이라도 유지하 기 위해서는 방치해 두었던 고깃배와 그물을 수리해서 고기를 잡아야 묵구멍에 풀칠이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직장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렇한 심 정으로 그들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장사지낸지 사흘째 되는날 아침에 말로만 듣던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사람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들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근심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가 변하여 평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의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은 우리 인생의 실상을 보여 주신 것 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인간들이 죄로 인하여 소망이 없을 때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 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아멘'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은 낙망과 실망중에 빠져서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신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났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두 사람중에 한 사람은 글로바 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또한사람은 이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바로 본 누가복음서를 기록한 누가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이 대목에 와 서 그때 당시 자신의 믿음 없었던 것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가 부 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밝히기를 회피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여행은 낭만과 꿈이 있는 즐거운 관광여행이 아닙니다. 기다려주는 이도 없고 그렇다고 약속된 장소로 찾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히 발걸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습니다. (눅13:33) 예루살렘을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것 입니다. 성경에는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화를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1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었다고 이방나라 모압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가서 아들 둘을 결혼까지 시켜 잘 살아보려고 했지만 남편도 죽고 아들 둘도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에 축복을 다시 회복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멘'2왕상2:36절이하의 말씀에는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시므이는 다윗왕 이 난리를 피하여 피난을 갈 때에 다윗을 욕하고 저주하였으나 나중에 다윗이 환궁을 할 때 용서를하여 주었습니다. 그후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왕위를 이어 받았을 때에 솔로몬은 시므이를 불러 예루살렘성을 떠나지 말 것을 명령하였고 시므이도 그렇게 하기로 하였으나 몇 년이 지났을 때에 시므이의 종 두명이 도 망을 갔습니다. 시므이는 솔로몬왕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종을 찾으려 예루살 렘성을 벗어났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3눅10:36절 이하에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강도를 만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하였 습니다.
4창12:10절에는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시험과 환란을 당하였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예루살렘이나 하나님의 성지를 떠났다가 환란을 당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눅2:36절에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는 주야로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기도하다가 결례받으러 오신 아기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행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 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예루살렘은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떠나지 마시 기 바랍니다. 남들과 똑같아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남 보다 더욱 노력하고 다른 사람보다 교회 한 번이라도 더 오는 사람이 은혜도 더 받고, 다른 사람보다 기도 한 번이라도 더 하는 사람이 은혜를 더 받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2. 두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 25리라고 하였는데 아마 이들은 지금 25 리가 아니라 250리처럼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일들 과 신변의 위협 등으로 걱정과 근심에 쌓여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 아오셨으나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머리속에 생각하는 것은 주님께서 평소에 말씀하신 "인자가 이런 고난을 겪어야 영광을 얻으리라"는 것은 추호도 생각지 않고 앞으로의 살아갈 걱정으로 그들의 눈은 어두워져 서 주님을 보고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사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 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 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말함이라" 또한 저들은 자기들이 예루살렘을 떠나가면서도 주님께서 자기들을 떠난 것 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 시한번 자신들을 뒤돌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났고, 우리의 눈과 귀가 어두워져서 주님이 보이지 않고, 주 님의 음성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곁에 여러분 곁에 오셔서 우리와 동행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3. 두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축사하신 떡을 받고서야 눈이 밝아졌 습니다. 왕상 19:3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브엘세바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 누워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에게 구운 떡과 물을 주어 기운을 회복케 하시고 40주야를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선악과를 먹고서 죄악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 축사하신 떡을 먹고 우리의 죄악으로 가리워 진 육안이 신령한 눈으로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세상의 근심과 걱정과 환란으로, 재리와 염려로, 가리워진 영의 눈이 하나님 이 주시는 생명의 만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떡을 먹고 밝아지는 역사가 일 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 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신령한 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난자에게 열려지는 것입니다. 신령한 눈이 밝아지면 모든 세계가 달라집니다. 우리 눈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그대로 보이는 것입니다. (예; 파란색 안경을 쓰면 세상이 파라 케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면 세상이 빨갛게 보입니다)
※ 찬송가 204장 3절 주안에 있어 즐거워라 마음의 풍랑이 잠자도다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하리로다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죄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참과 거짓 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진리를 보고도 진리로 믿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무쪼록 신령한 영의 눈이 밝아져서 주님을 보고 따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4.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뜨거워 졌습니다. 감리교를 창설하신 존 웨슬리 목사님은 올더스케ㅇ 거리의 작은 집회에서 말씀을 들을 ㄸ 그의 마음이 뜨거워 졌다고 했습니다. 절망에 빠져서 엠마오 길 을 가고 있던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들려 주실 때에 저들의 마음이 뜨거워 졌다고 하였습니다. (눅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여러분의 마음이 이시간 뜨거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마음이 뜨거워 질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음이 뜨거워 져야 한다는 것은 비단 우리가 성령님의 불을 받아서 우리의 육 체가 뜨거워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의 시대를 보면 너무나 냉 정하고 너무나 차가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간 본연의 아름답고 따뜻함이 없 어졌습니다. 이것을 뜨거운 사랑과, 뜨거운 열심과, 뜨거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를 Mega death 시대라고 합니다. Mega라는 것은 핵폭탄의 폭팔력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서 1Mega=100만명을 죽일 수 있는 단위입니다. 곧 떼죽음 시대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어도 한 두 사람 죽는 것은 눈도 꿈쩍 하지 않습니다. 수십명씩 죽어야 그제사 마음이 동합니다. (마11: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얼어붙은 마음이 녹을 줄을 모릅니다. 뜨거워지지 않 고 있습니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하였습니다. 열심(熱心)이란 뜨거운 마음을 말합니다. 뜨거운 마음이 있으면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또 마음이 뜨겁지 않으면 범죄를 하여도 가책이 없습니다. 주일 을 범하여도,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새벽기도를 하지 않아도, 전혀 가책을 느 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마음이 없으면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고 힘이 듭니다. 예; 자동차도 기름에 불이 붙어서 뜨거워 져야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의 마음이 뜨거워 질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남 같이 고달픈 인생길을 가는 여러분들도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 혜받고 뜨거워 지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5. 마음이 뜨거워진 두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결실입니다. 두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부활 하신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이,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것 같이, 이 두 사람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사람은 돌아올 수 있습니다. 능동적으로 행동을 합니다. 적 극적인 신앙을 갖게됩니다. 집나간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뜨거워 질 때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삽교지역의 성도 여러분들이여!! 지금 자기의 신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아 잘못된 것은 빨리 돌아서 야 합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대로 가면 안됩니다. 그러면 지옥의 구렁에 빠지고 맙니다. 회개란 가든 길을 돌이키고 180°회전하여 ∪턴하는 것입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 게서 네가 돌아서라" 도적질 하던 도둑이 도둑질을 끊고, 음란죄 짖던 사람이 죄를 짖지 않고, 주 일성수 안하던 사람이 주일성수 잘하고, 십일조 안하던 사람이 십일조 잘하는 것으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예' 내가 열네살인가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천안에서 서울을 가려고 기차 를 타러 플ㄹ홈에 나와 보니까 양측에 기차가 서있는데 기차에 써 붙인 것이 이쪽 기차도 '서울-장항' 이라고 붙어 있고 저쪽 기차도 '서울-장항' 이라고 붙 어 있어서 아무거나 무심코 탓습니다.
그런데 잠시후 기차가 출발을 하는데 반 대로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잘못 탄 것을 알고 다음 역인 모산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천안에 다시 와서 서울행 기차를 탄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낙심중에 세상을 향하여 가던 발걸음이 예수를 만나 담대함을 얻 어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은 신앙의 열매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뜨거워 질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핍박 을 피하여 가다가 주님을 만나고 다시 로마로 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 교를 당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음 사랑, 처음 믿음, 처음받은 은혜, 처음 열심, 지금도 있습니까 잃어버린 사람은 찾아야 합니다. 돌아서야 합니다. 나는 처음 목회 시작할 때의 열정과 그 열심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열심을 다시 찾으려고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뜨거워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에서 돌아서기를 바랍니다.'아멘'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낙심된 자를 찾아오셔서 구원하여 주신 주님은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도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언제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곤 하였습니다. 브엘세바 광야에서 지친 몸으로 홀로 잠들어 있는 야곱에게도 하나님이 찾아 오셨고, 새벽 미명에 성전에서 고히 잠들어 있는 사무엘에게도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호렙산에서 양을 치던 모세에게도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속에서 모세를 찾 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한 밤중에 풍랑으로 고통을 당 할 때에도 주님은 물위로 걸어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공포와 낙심중에 질려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너희에 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면서 저들에게 숨을 내 쉬면서 성령님을 받으라고 하 셨습니다.(요20:22) 지금 이 순간에도 앞으로 우리가 어디가서 무엇을 하던지 동행해 주시고 계 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약 속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을 멈추고 돌이켜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갈 예루살렘은 처음사랑 처음 믿음으로 뜨거웠던 바로 그 순간 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않됩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 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욜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고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구하는이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자에게 도움을 주시고,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세상에서 실패와 낙심을 하였을 때에, 우리 곁에 찾아오셔서 말씀을 들려주 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우리들의 마음이 뜨겁게 변화를 받아서, 새사람이 되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행1:8)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 모두 뜨거운 부활신앙을 가지고 부활하신 주님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증 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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